[사후명]풍운무림 제1권 (전3권) - 25편 (25/45)
그리고… 또다시 난폭한 손길에 여인의 힘없는 마의가 찢겨져 나갔다. 찌익-! 치맛자락이 길게 찢어지고, 그 사이로 희멀건 허벅지가 드러났다. 손이라도 대면 그대로 미끄러져 버릴 듯 윤기 흐르는 허벅지. 그 허벅지의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간신히 그 허벅지의 가운데를 가리고 있던 마의자락이 젖혀졌다. 저 드러나는 신비의 밀궁! 흡사, 늘어진 수양버들처럼 긴 음모(陰毛)가 보였다. 길면서도 그것은 매우 부드러웠다. 위로부터 가지런히 내려진 채 소담스럽게 올라 있는 둔덕. 일순, 여천후의 두 손에 의해 여인의 허벅지가 들어올려졌다. 두 남녀의 자세는 실로 괴이하기 그지없었다. 요화란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 아래, 사내는 무릎을 꿇은 채 여인의 허벅지를 어깨 위에 걸치고 그 깊숙한 곳을 직시하고 있었다. 긴 우거진 숲은 여인의 허벅지가 들어올려져 좌우로 벌어지자, 그대로 양 옆으로 흘러내리며 그 사이의 저 어두운 신비의 동굴을 드러내 보인다. 석류보다도 붉은 속살… 그곳은 이미 촉촉이 젖어 있는 상태였다. 문득, 여천후는 심한 갈증을 느꼈다. 느낌은 곧 강력한 실천으로 옮겨졌다. "흡!" 여천후는 그 맑은 감로수를 깊숙이 흡입했다. 그것도 모자라 먹을 것을 다 먹고 빈 접시를 핥아먹는 어린아이와도 같이 혀를 밀어 넣으며 깊숙이 침입해 들었다. 순간, 어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으흑! 아……!" 마치 물뱀(水蛇)처럼 동굴을 헤엄쳐 가는 이물질의 감촉에 요화란은 넘어질 듯 머리를 제치며 몸부림쳤다. 그녀의 두 손은 사내의 머리를 모조리 잡아 뽑을 듯이 움켜쥐고 있었다. 여천후의 어깨 위로 걸쳐진 허벅지는 뇌전을 맞은 듯 경련을 일으킨다. 문득, 여천후는 여인의 허벅지 사이에서 얼굴을 들어올렸다. 여인의 허벅지가 빠져 나가고, 무릎의 관절에 이르러 그것은 허공에서 멈춰져야 했다. "하아, 천후……." 요화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풀어진 동공으로 여천후를 올려다보았다. 활짝 벌어져 의자의 손잡이 양쪽에 걸쳐져 있는 허벅지는 차라리 완전히 벗겨진 나신(裸身)보다 더한, 보는 자의 영혼까지 뇌살시켜 버릴 정도로 유혹적인 자세가 아닌가? "이제 나는 화란누나가 원하는 남자가 된 것 같은데 말이야. 누나를 가질 자격이 있지 않아?" 여천후는 빙긋 웃으며 박속같은 흰 이를 드러냈다. 그랬다. 삼 년 전, 번뇌혈봉후 요화란은 여천후의 쉰한 번째 첩(妾)이 될 것을 수락하면서 단서를 달았었다. - 어린 낭군님, 삼 년(年)의 세월을 참아 주겠어요. 그 후에 최소한 나, 요화란을 꺽을 정도로 절대고수가 되지 못하거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면 그대는 내 손에 죽을 거예요. 당신은 그만한 가치를 내게 제공해야만 할 거예요. 죽을 목숨을 살려 주고, 초일류의 무공을 전수해 준 제국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을 정도로 나, 요화란을 한 명의 여자로서 만족할 수 있게 해야만 해요! 여천후는 자신이 지금 그런 정도의 경지에 이르러 있음을 자신하고 있는 것이었다. "천후……!"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요화란는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그의 말을 거부한다거나 하는 표정은 결코 아니었다. '이미 천축을 떠나던 그 날부터 천첩은 당신의 것이에요. 언제 어디서나 천후,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일순, 요화란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이어 그녀는 교수를 밑으로 뻗었다. 여인의 손길이 능숙하게 사내의 하의를 풀어 헤쳤다. 순간, 곧이라도 터져 버릴 듯이 거대한 불기둥(火柱)이 솟아올랐다. 하늘을 뚫어 버릴 듯한… 아니 만 근의 거암(巨岩)을 올려 놓는다 해도 그것을 아래로 처지게 할 수는 없으리라. 여인의 활짝 젖혀진 허벅지 사이는 하늘을 바라보듯 열려져 있는 상태였다. 또한 사내의 화기도 천주(天柱)인 듯 우뚝 솟아 있었다. 요화란의 교수가 파르르 경련하며 사내의 화기를 움켜 쥐었다. 이어 그것을 잡아, 여인은 자신의 은밀한 비소로 끌어들였다. 어느 한순간, 그 거대한 불기둥은 질퍽한 늪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악! 천후……!" 터져 나오는 숨 넘어갈 듯한 여인의 교성! "우웃!" 여천후의 입에서도 헛바람 빠지는 신음이 흘러나옴은 당연한 일이었다. 이물질이 침입하자, 저 뜨거운 용암의 동굴이 막대한 공세를 펼쳤기 때문이었다. 저 깊숙한 무저동에서 빨아들이는 막대한 흡입감. "헉!" 여천후는 그대로 격렬하게 하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요화란의 입에서 새어 나오는 교성은 점점 증폭되어 갔다. 그녀의 동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흰자위만이 드러날 정도로 탈색되어 있었다. 그녀는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들었다. 단정하게 묶였던 머리끈이 풀어지고, 긴 흑발(黑髮)이 그녀의 옥용을 뒤덮으며 흩날린다. 여인의 두 손은 터뜨릴 듯이 자신의 유방을 움켜쥐며 문지르고 있었다. 실로 뜨거운 열풍(熱風)이 거칠게 휘몰아쳤다. 제13장 원세무림(元世武林)의 상고기인(上古奇人) 황금장원. 이름 그대로 황금의 성이었다. 방원 오천 평의 대지를 휘감아 도는 벽(壁)에서부터, 수십 채의 전각이 모조리 황금을 녹여 입힌 금박(金箔)이 씌여져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황금장원은 생긴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 이름은 중원천하에서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였다. 황금서생 여천후! 중원에서 없는 사람들의 대부(代父)로서, 그 명망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처음엔 질시의 눈길을 보내던 사람들의 시선도 이젠 존경의 그것으로 바뀌었음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리고 황금장원으로부터 새로운 풍운(風雲)이 일어나니……. 휘이잉- 파츠츠츠츳-! 엄청난 대강풍의 소용돌이가 일고 있었다. 그것은 또한 광장(廣場)의 십 장(丈) 이내에서만 형성되고 있었다. 암굴(暗窟), 높이 겨우 두 자에 불과한 어둠만이 깔려 있는 동굴이었다. 들어가자면 기어서 들어가는 수밖엔 없으리라. 한데, 암굴의 십 장 밖으로는 수많은 인영이 둘러싸고 있었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인물들이었는데, 그 중 육 척에 달하는 반월거검(半月巨劒)을 든 마의거한(麻衣巨漢)이 눈에 들어왔다. 마의검왕 호극충의 안색은 밀납같이 창백해져 있었다. 가볍지 않은 내상을 입은 듯해 보였다. "으음, 대체 저것이 무엇이기에 본좌를 퉁겨 낸단 말인가?" 깊은 침음성을 토해 내는 그의 눈엔 회의와 불신의 빛이 역력했다. 그 때였다. "노야와 가주께서 오신다!" 썰물이 빠지듯 좌우로 갈라지는 군중들의 사이로 두 노소(老少)가 걸어오고 있었다. 사파륭과 여천후였다. "……!" 여천후는 묵묵히 동굴 앞에 섰다. 쿠쿠쿠-!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대강풍. 조롱(鳥籠)에 갇힌 야생의 독수리가 조롱을 깨고 튀어 나오기 위해 발악하는 기세와도 같았다. 폭발하면 사방을 온통 찢어발길 듯이 휘몰아치는 무서운 위력의 소용돌이였다. "……!" "……." 좌중의 인물들은 여천후의 사색을 깨뜨리지 않고자 숨을 죽였다. 문득, 여천후의 미안에 미소가 어렸다. "이제 보니 진식(陣式)이 펼쳐져 있군." 그의 중얼거림에 좌중의 인물들은 의혹의 빛을 떠올렸다. 사파륭이 말을 받았다. "진식이라니? 이곳엔 진을 펼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 않느냐?" 그의 의혹은 당연한 것이었다. 진식이라면 보통 나무와 돌 등 유형물(有形物)로 이루는 것이 아닌가? 또한 진식은 안으로 사람이 들어가야 변화하거늘, 지금의 암굴 앞에 펼쳐져 있는 대강풍의 소용돌이는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것이었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여천후의 말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여천후의 말에 다시금 안목을 넓혔다. "저것은 유형물(有形物)의 진식이 아닙니다. 그것은 극히 초보적 단계지요. 진식의 극치란 무형물(無形物)로서 이루는 것입니다." "……!" "우주에는 오행기(五行氣)가 있습니다.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의 오행은 상극(相剋)과 상생(相生)의 성질이 있습니다." 오행상극(五行相剋). 오행이 서로 배척하고 부정하는 이치였다. 토극수(土剋水), 수극화(水剋火), 화극금(火剋金), 금극목(金剋木), 목극토(木剋土)를 이른다. 오행상생(五行相生). 오행이 순환해서 서로 생(生)하여 주는 이치였다. 금생수(金生水), 수생목(水生木), 목생화(木生火), 화생토(火生土), 토생금(土生金)을 일컫는 말이었다. 여천후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우주에 깔린 만상(萬象)의 기(氣)를 한 곳에 웅축시키면, 저와 같이 공간 내에서도 무서운 진식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 청산유수마냥 거침없이 이어지는 말에 좌중은 압도되고 말았다. '녀석…….' 사파륭의 노안으로 흐뭇한 웃음이 감돌았다. "그리고 검주(劒主)가 다치신 것은 내공을 끌어올렸기 때문이오." 여천후의 말에 마의검왕 호극충은 의아한 빛을 띠며 되물었다. "아니? 내공을 끌어올렸기 때문이라니요?" "저것은 전설로만 전해 내려오는 오행생극진(五行生剋陣)이라는 것으로, 진식 자체가 곧 완벽(完璧)이오." "……?" "그 어떤 이물질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포화상태인데, 그곳에다 막강한 내공을 쏟아 부었으니 산 것만 해도 다행인 줄 아시오." 여천후의 농담 섞인 말에 마의검왕 호극충은 무안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러는데, 불쑥 한 인영이 앞으로 나섰다. 삼십오 세 가량의 미부였다. 그녀의 풍염하게 솟은 가슴 부위엔 두 송이 국화(菊花)의 문양(文樣)이 수놓여져 있었다. 수수한 자의(紫衣)를 걸친 맑은 혜지(慧智)를 가진 봉목의 여인. "그럼 무공이 없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겠군요?" 말 한 마디에도 지성과 고아함이 흐른다. 여인은 국화미인(菊花美人)이라는 별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아는 사람들은 호칭을 달리 불렀다. 천예부인(千藝婦人) 화운영(花雲英). 천 가지 기예(技藝)를 지니고 있는 여인이라는 뜻이었다. 나이는 삼십삼 세(歲)였다. 자신의 재주에 미치는 사내가 없어 결혼을 하지 못한 불운한 여인이기도 했다. 유일하게 취옥성주인 취옥여왕 나후빙연과 비견되는 천혜를 지닌 지다성(知多星). 그녀는 황금장원을 짓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설계, 감독했다. 기관토목학(機關土木學)에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녀였는데, 이제는 남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여천후를 바라보는 서글한 봉목에는 어떤 희열의 빛이 흐른다. 화운영의 물음에 여천후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하지만 저곳을 뚫는 사람이라면 아마도 정신력에 있어 고금제일일 것이오." "그 말씀은?" "오행살극진은 악마의 진식이외다.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초인적인 정신력 없이는 죽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오." 여천후의 말에 화운영은 아쉬운 빛을 머금었다. "그렇다면 저곳은 영원히 미지의 세계로 남겠군요. 뭔가 범상치 않은데……." 그녀의 옥음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좌중의 인물들은 경악실색하고 말았다. 여천후가 어느 새 대강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화누님! 뭐라도 있으면 가져올 테니, 기다리시오." 낭랑한 웃음 소리와 더불어 여천후의 신형은 사라지고 말았다. "저, 저……." "아니, 소야(少爺)께서?" 군웅들은 발만 동동 구를 뿐 말릴 수도 없었다. 그러나 사파륭만은 별로 걱정이 없는 듯했다. '천뢰대산의 대황곡… 인간이 살 수 없는 지옥 같은 최악의 험지에서도 천후는 삼 년간이나 살았지. 그래도 자신의 잠재력을 모두 융합시키지는 못했는데, 나오면 내공이 진일보해 있겠는걸?' 그랬는가? 여천후가 대강풍의 혼돈 속으로 스스로 들어간 것은 한마디로 자신감이 있었다는 말이었던 것이다. 물론, 그게 마음먹은 대로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쿠쿠쿠- 휘이이잉-! 억겁(億劫)을 지나 온 듯, 대강풍의 소용돌이는 암흑 속에서 울부짖는다. 두 자 남짓한 높이의 기나긴 암굴은 성인의 체구라면 기어서 들어가야 할 정도로 좁았다. 뿐이랴? 저 끊임없이 매몰차게 작렬하는 폭풍강은 암석에 구멍이라도 낼 듯이 휘몰아친다. 한데……. "헉! 헉!" 도저히 끝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이를 악무는 신음성이 들려 오는 것은 웬일인가? 참혹했다. 갓 태어난 어린애같이 기어가는 물체는 다름아닌 여천후였다. 그의 무릎과 팔꿈치는 완전히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마로는 구슬 같은 땀이 쏟아져 내리고, 악다문 입가에는 진홍빛 피가 점점이 흘러내린다. 휘몰아치는 대강풍에 옷자락은 이미 넝마조각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도대체 이 동굴은 어디서 끝난단 말인가? 최소한 십 리는 온 것 같은데…….' 여천후는 가물거리는 정신을 추스리며 신형을 앞으로 이동시켰다. 가이 없는 암흑 속에서 보이는 것이라곤 칠흑뿐이었다. 귀를 때리는 것은 피부 가죽을 벗겨 버릴 듯이 맹타해 오는 강풍의 호곡성. 수십 번이나 내공을 끌어올리고 싶었으나 여천후는 초인적인 인내로 참아냈다. 만일 조금이라도 내공을 끌어올렸다면 여천후의 전신은 고깃덩어리가 되어 영원한 하직인사를 올렸을 것이다. 되돌아갈 수도 없었다. 상하(上下), 좌우(左右)에 끼인 몸을 어떻게 돌릴 수 있단 말인가?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오직 앞을 보며 가야만 했다. 질질 끌려 오는 다리는 천만 근의 무게요, 살이 다 벗겨져 새하얀 뼈가 드러날 정도의 팔은 이미 감각이 없었다. 기약 없는 행로(行路)였다. 여천후는 기고 또 기었다. 그가 태어나서 걸을 수 있을 때까지 기어다닌 것보다 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랐다. 얼마나 왔는지도 생각지 않았다. 무념무아(無念無我). 육체의 극심한 고통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승화시키는 여천후였다. 그는 개체(個體)가 아니라, 대자연에 동화된 자연기(自然氣)였다. 공(空)! 얼마나 굶었는지도 모를 정도지만 그의 체내에 음식물이 없다는 것은 기정 사실이었다. 한데, 보라! 저 눈앞에 펼쳐진 장관(壯觀)을……. 오행살극진! 다른 이기(異氣)의 침입을 불허하는 죽음의 살인진식은 어느 새 여천후마저 포용하고 있었다. 금목수화토의 오행기(五行氣)는 인간의 체내에도 잠재되어 있는 기운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미미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데, 흡수되고 있었다. 우주에서 가장 극맹한 오행기를 모아 이룬 오행살극진은 어느 샌가 대강풍을 미풍(微風)으로 화한다. 여천후의 체내에서 미세한 폭발음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다섯 가지의 이질 기류는 여천후의 체내에서 서서히 상생, 상극을 거듭하며 융합되고 있었다. 공(空)… 즉(卽), 무(無)의 상태에서 그것은 곧 천원(天元)이요, 태극(太極)이 아니겠는가? 오행합일천원신체(五行合一天元身體). 도저히 살(肉)로 이루어진 인간의 몸으로는 이룰 수 없는 절대신체의 탄생은 이렇듯 우연히 이루어졌다. 시간은 화살같이 흘러갔다. "아… 빛이다!" 여천후의 동공이 작게 오므라들었다. 빛! 도대체가 얼마만큼의 시간을 암동 속에서 보냈는지는 추측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 멀리 어둠의 일각을 부수며 뻗어 나오는 한 줄기 빛을 보면서 비로소 몸의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이윽고 여천후는 기나긴 두 자 높이의 암동을 벗어나기에 이르렀다. "……!" 여천후는 일시에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광선에 눈이 부심을 느끼며 눈을 내리감았다. 그리고 시각이 지나자, 차츰 그의 시각은 정상을 회복했다. 그 순간, 여천후의 입에서 아연한 탄성이 새어 나왔다. "헉! 저렇게 큰……!" 그가 있는 곳은 하나의 장방형 석실(石室)이었다. 방원 백여 장에 달하는 대전이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거대한 금광(金光)이 대전의 태반을 뒤덮고 있었다. 여천후의 시선은 그 금광에 닿아 있었다. "저렇게 거대한 거북(龜)이 있었다니!" 금광에 싸인 물체는 바로 거북의 등껍질이었다. 여천후는 천천히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그런데 여천후의 전신을 보라! 그의 옷은 갈기갈기 찢겨져 핏자국이 선명하거늘, 신체에는 아무런 이상도 없는 것이 아닌가? 오히려 피부에는 윤기가 흐르고 근육은 더욱더 탄탄해져 있었으니, 이해할 수 없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모든 것은 바로 오행의 기운이 여천후의 체내에서 이룬 변화였다. "만년금령신구(萬年金靈神龜)의 껍질이로군. 으응……?" 거북의 등껍질, 거기에는 미세한 금이 수없이 가 있었다. 그것도 체계적으로 어떤 형상을 이루며……. "이것은 초기의 갑골문자(甲骨文字)가 아닌가?" 여천후는 더욱 흥미로운 눈빛을 발하며 세세히 갈라진 선들을 이어 갔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문자의 시작을 보여 주는 갑골문자였다. 갑골문자. 소의 견갑골(肩胛骨:어깨뼈)이나 거북의 등껍질에 나타나는 초유의 상형문자(象形文字)가 그것이었다. 삼천 년도 더 된 은왕조(殷王朝) 때에 사용되던 고대의 신비문자가 여천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한데, 도대체가 모르는 것이 없는 여천후는 천자문을 읽어 내려가듯이 유려하게 해독해내고 있었다. <노부들은 천수약종(天手藥宗) 초사량(草沙亮)과 살황대독후(薩荒大毒后) 나천후(那天厚)라 한다.> "원세쌍천종이 남긴 유물이란 말인가!" 가히 경악에 가까운 신음성이 여천후의 입 속에서 흘러나왔다. 원세무림(元世武林)! 그렇게 불리우는 세계가 있었다. 모든 것이 결과가 있으려면 시작이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무림의 역사를 일컬을 때 삼천 년(年)이라고들 말을 한다. 하지만 그 엄청난 세월 속에서 지금껏 남아 있는 증거(證據)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가장 확실한 전례(前例)는 소림사(少林寺)를 창건한 달마대사(達磨大師)가 처음으로 창안했다는 오금희(五禽戱)가 최초의 무공으로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달마오권(達磨五拳)이라는 이름으로 개명(改名)된 채, 원래의 위력에 비해 열 배나 증폭된 권결(拳訣)이 되어 소림칠십이종절예(少林七十二種絶藝)의 하나로 포함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본다면, 그 이전엔 없다는 말인가? 무공(武功)도 무인(武人)도 무림(武林)이라는 곳도 없었는가? 아니었다. 무림의 규모도 작았고, 무공의 수효도 적었지만 무인들은 그 이전에도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여러 가지의 제약(制約)이 따랐다. 철(鐵)이 없으니, 나무(木)나 돌(石) 종류가 병기(兵器)의 기본이 되어 강력한 초식(招式)의 발전이 저해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내공(內攻)과 권각법(拳脚法)만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 그마저 후학양성(後學養成)이 쉽지 않은 일이었다. 남겨 기록할 문자(文字)가 없었기에 벌어진 사태였다. 또 하나 간과할 수 없는 제약은 지필묵(紙筆墨)이었다. 황제(黃帝)의 시대에 이르러 창힐(倉詰)에 의해 갑골문자가 만들어졌으나, 소의 견갑골이나 거북의 등껍질같이 부피가 큰 곳에만 한시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죽간(竹簡)이나 양피(羊皮) 같은 것은 아주 고급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그런 것을 사용할 수조차 없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당시의 상황은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설화(說話)에서나 막연하게 엿볼 수 있을 정도였다. 지금의 무림을 현세무림(現世武林)으로 하자면 그 아득한 문자 이전의 무림을 원세무림(原世武林), 혹은 창세무림(創世武林)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원세무림의 설화에서 아직껏 내려오는 두 명의 절대초인(絶代超人)의 이름은 어지간한 무인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었다. 원세쌍천종(元世雙天宗). 천수약종(天手藥宗) 초사량(草沙亮), 살황대독후(薩荒大毒侯) 나천후(羅天厚). 원세무림(元世武林), 그 아득한 시절에 두 초인은 등장했다. 천수약종 초사량의 의술은 가히 신술(神術)이었다. 설사, 죽은 사람이라도 죽은 지가 보름 전이면 다시 혼을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신의가 바로 그였다. 그는 침술(針術) 등 의학(醫學)에도 조예가 깊었으나, 만인을 진정 경탄케 한 것은 그의 약(藥) 제조술이었다. 아무리 불치의 병이라 해도 그의 약 한 첩이면 평생을 무병장수한다. 또한 세인들이 그를 신으로 모신 것은 약의 재료 때문이었다. 천고의 영약(靈藥)으로도 고치기 힘든 불치병(不治病)을 들과 산에 있는 평범한 약초로 다시금 인생을 되돌려 놓은 초절한 의술의 원조! 의가(醫家)에서 그의 존재는 가히 신(神)의 위치와 동급이었다. 살황대독후 나천우. 그는 천하독문(天下毒門)의 시조로 숭앙받는 인물이었다. 자신의 몸으로 수많은 독물(毒物)을 시험하여 독공(毒功)의 체계를 세운 대독인(大毒人). 그가 남긴 천독신공(天毒神功)은 가히 고금제일의 독공이라 전해지고 있었다. 두께 일 장의 금강석(金剛石)일지라도 한 줌의 물로 녹여 버리는 대독공이었던 것이다. 그 앞에서 독에 대하여 말하지 말라! 일세를 풍미하다 이름만 남기고 사라졌던 대기인들인 원세쌍천종! 그들의 신화는 아직도 무림인들의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었다. 그러니, 여천후가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서로 독보(獨步)하던 우리는 태산(泰山)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그리하여 태산의 한적한 그늘에 앉아 삼 일 주야를 서로 언쟁한 바, 서로의 길이 같음을 알게 되었다. 만류귀종(萬流歸終)! 그 평범한 진실은 독공과 의술에 종사한 우리를 하나로 의기투합케 했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