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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명]풍운무림 제1권 (전3권) - 20편 (20/45)

2026-09-24 08:59:34 조회 8
그 순간, 여천후의 신형이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하늘도 불태워 버린다! 천신화강!" 화르르르르! 분노한 사자의 포효와 함께 폭출하는 파멸의 불꽃놀이였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껏 유례가 없었던 일천 인(人) 대(對) 한 명(人)의 대결이었다. 드디어 두 기류가 하나로 맞닥뜨렸다. 푸화악-! 엄청난 굉음과 함께 산산이 부숴져 사방으로 날아가는 불꽃. "크아악!" "캐액!" 그 순간 일천 혈영인의 맨 앞에서 달려들던 전위(前位) 백 명이 그 자리에서 새까만 숯으로 변모하고 말았다. 일순간에 생긴 진(陣)의 공백을 놓칠 여천후가 아니었다. "오늘 부로 혈십자교는 영원히 지상에서 사라지리라!" 한소리의 호탕한 대소가 여천후의 입에서 터져 나오며 기괴한 현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어느 새 그의 신형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어디에서도 그의 옷자락조차 찾을 수 없었다. "어디에 있느냐?" "우우, 사술(邪術)이다!" 목표를 잃은 혈영인들이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허공 일각에서 여천후의 살기 띤 음성이 터져 나왔다. "여기다! 칠채천강공!" 파츠츠츠-! 허공에서 쏟아져 내리는 현란한 일곱 가지 색(七色)의 빛무리는 여지없이 혈영인들의 한복판에 작렬했다. "크아아악!" "무신(武神)이다! 으악!" 폭풍 같은 칠색강기에 휩쓸린 혈영인들은 감히 피할 엄두조차 못 내고 속속 쓰러져 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비명을 지르는 일뿐이었다. 여천후는 어느덧 혈해(血海)의 광장에 천신(天神)처럼 우뚝 서 있었다. 비록 오백 명의 혈영인을 척살했다고는 하나, 천병신기군단의 초강고수 십오 인이 공동창안한 칠채천강공은 막대한 내공의 소모를 요하는 것이었다. 그의 안색은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여천후의 그런 기색을 알아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저 놈이 인간이란 말인가?" 십자혈교황은 넋이 빠져 버렸다. 일천 명의 화공고수들로 이룬 가공할 죽음의 포위망은 일천 인의 화공을 한 군데로 집중시켜, 어떠한 것이라도 녹여 버리는 악마의 마진(魔陣)을 이루고 있었다. 한데, 여천후는 오히려 화공으로 혈영인들 일백을 몰살시키고 그에 아랑곳없이 또다시 들어 보지도 못하던 빛무리를 뿌려대 오백 인을 살상하고 말았던 것이다. 눈으로 직접 목도했으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여천후의 신위에 뉘라서 경악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십자화령인(十字火靈人)! 혈나찰의 혈음정(血陰精)과 지옥화린정(地獄火燐精)의 정화를 한데 얻은 죽음의 사형집행인 십자화령인의 가공할 화력은 한마디로 가공무비할 정도였다. 지금 여천후의 내공은 폭발할 지경에 이르러 있었다. 본신의 내공과 혈나찰의 삼 갑자에 달하는 혈음정, 그리고 천신화강의 무한대의 화강공은 서로가 다른 이질적인 기운으로, 여천후의 체내에서 서로 부딪치며 폭발하는 활화산(活火山)처럼 폭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 하물며 인간이 사지(死地)에 몰리면 최후의 발악이라도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십자혈교황의 안색은 처참할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다 틀렸다! 혈십자교의 천년부활도, 십자화령인을 탄생시켜 천년제국을 견제하려던 것도! 죽인다, 모조리!' 내심으로 치를 떨던 십자혈교황은 광폭하게 혈영인들을 몰아붙였다. "혈십자교의 형제들이여! 저 놈을 화형시켜라! 한 줌의 잿가루로 만들어라!"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 거의 일만 명에 달하는 혈십자교도들은 불꽃을 향해 날아드는 불나방과도 같이 여천후를 에워싸며 짓쳐 들었다. "우아! 죽여라!" "위대한 아수라혈마신에게 제물로 바쳐라!" "오라!" 여천후는 품안의 벽라공주를 힘껏 안으며 서서히 공력을 끌어올렸다. 벽라공주는 가공할 여천후의 신위에 망연히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그녀는 눈길을 돌려 장내를 돌아보다가는 그대로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새카맣게 통구이가 되어 아직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는 시신을 비롯하여, 오장육부가 산산이 짓이겨진 시체들로 이루어진 목불인견의 참상! '대체 이 사람은 대성인(大聖人)인가? 대악마(大惡魔)인가?' 그 모든 참상이 단 한 사람, 여천후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고는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직접 목도한 벽라공주마저도 믿기지 않을 정도였으니까. "검형탄강!" 우르르르! 천병신기군단의 천병삼천종 중 철혈검종의 검학(劒學)인 천뢰검기(天雷劒氣)가 피어 올랐다. 무기가 없어도 체내의 기로써 검형(劒形)을 만드는 무형검강(無形劒 )이 일어난 것이다. 벌 떼처럼 날아들던 일백 혈영인들은 벼락처럼 작렬하는 무형검기에 스치자, 그대로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크아악!" "으악!" 그들은 채 여천후의 십 장 안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즉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베고 또 베어 넘겨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의 물결(人海)이었고, 그 주위론 사람의 장벽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혈영인들은 철저하게 공격적인 무공만을 사용했다. 수비는 아예 생각지도 않는 듯 생명을 도외시한 채 밀려드는 혈영인들의 인해전술(人海戰術) 앞에서 여천후의 살기는 점점 사그라져 들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생명은 누가 뭐래도 고귀한 것이다. '내가 인간을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신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여천후는 문득 벽라공주를 안고 있는 팔이 무거워져 옴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회의(懷疑)가 전신을 뒤덮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움직여야 했다. 우우우웅-! "크아악!" 골통이 바스러지고, 팔과 다리가 절단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쉬고 싶다.' 여천후의 손은 점점 더 느려져 갔다. 그에 비례하여 혈영인들의 공격은 더욱 집요해졌다. "네놈이 신이 아닌 다음에야… 허억!" 뒤에서 득의의 괴소를 흘리던 십자혈교황의 입에서 일순 헛바람이 새어 나왔다. 보라! "와아! 혈십자교를 쳐부셔라!" "소성존을 구하라!" "으하하핫! 감히 천병신기군단의 가주를 납치해? 죽어랏!" 삼천오백에 달하는 대군세가 물밀듯이 아수라성전으로 밀려 드는 것이 아닌가? 폭풍지세! 하나하나가 천하에 다시 없을 극강의 고수들이었다. 천병신기군단! 항마바라환령대! 아수라성전으로 밀려 들어온 인물들은 바로 이들이었다. 바라대성존은 수라혈수갑을 차고 있는 십자혈교황의 앞으로 날아 내렸다. "그대가 혈십자교의 수장인가?" 뜻밖의 사태에 움찔하던 십자혈교황은 정신을 추스리며 괴소를 발했다. "크크크! 바라대성람의 바라문도들인가?" "그렇다! 오늘로서 혈십자교는 영원히 사라지리라!" 바라대성존의 단호한 말에 십자혈교황은 신형을 날려 오며 수라혈수갑을 흔들었다. "크크크! 어차피 네놈을 죽이려 했거늘, 이곳까지 오다니… 잘 왔다! 받아랏 아수라혈마수(阿修羅血魔手)!" 츄아아아-! 수라혈수갑에서 가공할 혈광이 빛살같이 뻗어 나왔다. "천환무극영(千幻無極影)!" 일성의 폭갈음과 함께 바라대성존은 신형을 좌우로 흔들었다. 스스스스슷……! 바라대성존의 신형은 순식간에 열여덟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가? 천환무극영. 가루라성존이 남긴 최고의 분신술(分身術)이었다. 그것은 여타의 분신술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일반적으로 분영(分影)은 허로,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환무극영의 분신(分身)은 그것이 곧 실체(實體)나 다름이 없었다. 십팔 개의 그림자 전체가 곧 하나나 마찬가지였으니, 허(虛)와 실(實)이 구분되지 않는 천고의 기환술이 발휘되는 중이었다. "크크크! 이런 사술 따위로 본존을 어찌……." 가소롭다는 듯 웃어제끼던 십자혈교황의 안색이 일순 시커멓게 일변했다. 십팔 개의 환영에서 뿜어져 나오는 항마강기는 그 어느 것도 허수(虛手)가 없는 것이 아닌가? "이익! 수라혈류강(修羅血流 )!" 십자혈교황은 무작정 수라혈수갑을 휘둘러 혈강기를 폭출시켰다. 그러나 그의 공세는 하릴없이 허공을 스치고 빠져 나갈 뿐이었다. "허허, 실망인걸. 혈십자교가 고작 이런 정도였는가?" 열여덟 개의 바라대성존의 입에서 동시에 범종(梵鐘)이 울리듯 가공할 사자후가 흘러나왔다. "고작?" 십자혈교황의 귀에서 흰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올랐다. 고수들의 싸움에선 마음의 평정이 절대였다. 심화(心火)가 치밀 대로 치민 십자혈교황의 손발이 제대로 돌아갈 리가 없었다. 마치 어린애와 어른의 싸움이랄까? 옥황노야 사파륭은 굳어진 표정으로 전면을 주시하고 있었다. 흑포청년. 천년제국의 흑룡왕이라 지칭되던 인물이 그 앞에 서 있었다. 사파륭이 안광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그대는 천년제국의 인물인가?" "……!" 흑룡왕의 동공이 급격히 확장됐다. 그런 그의 눈빛엔 경악과 의문이 서려 있었다. "그대가 어찌 본제국을 아는가?" 천년제국. 공포의 이름만을 신기루처럼 간직한 죽음의 천년군림(千年君臨)의 야망을 지닌 집단이었다. 그 이름이 알려졌다고는 하나, 소재지나 속한 인물은 전혀 모른다. 한데, 난데없이 나타나 대뜸 천년제국을 들먹이니……. 흑룡왕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사파륭의 눈가로 뇌전 같은 섬광이 스쳐 지나갔다. "노부 말인가? 혹시 알지 모르겠구먼, 구주종횡가라고……." "구주종횡가!" 그 말에 흑룡왕은 저절로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의 눈엔 형언할 수 없는 경악과 충격이 교차되고 있었다. 변황제일적(邊荒第一敵)! 새외 모든 국가들의 공통된 증오의 대상이었다. 또한 구주종횡가는 변황인들에겐 그야말로 공포와 경외의 단체였다. 천오백 년 이래, 변황은 합쳐질래야 합쳐질 수 없었다. 기회는 여러 번 있었으나 변황일통(邊荒一統)의 일 보 전에 꼭 좌절되고야 말았던 이해할 수 없는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분(內分)! 어디선가 모르게 분열이 조장되어 그 때마다 변황일통의 꿈은 무산되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분열된 변황의 힘은 항시 중원에 비해 보잘것 없게 되었다. 변황 최대의 꿈인 중원정복! 그것은 몽상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러나 비밀은 언젠가는 밝혀지는 법이다. 삼백 년 전, 불길같이 일어난 초원의 대영웅 테무진(鐵木眞)은 대초원을 비롯하여 변황에 산재한 사십구 국(國)을 병합하여 몽고대제국(蒙古大帝國)을 건설하고 징기스칸(成吉思汗)이란 칭호를 받는다. 이어, 그의 손자 쿠빌라이(忽必烈)가 변황의 꿈인 중원을 정복하면서 대원제국(大元帝國)이라는 사상최강의 국가를 이룬다. 그 날은 초유로 맞이하는 중원대치욕(中原大恥辱)의 날이었다. 그러면서 이제껏 알지 못했던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다. 테무진을 도와 천하일통을 성사시킨 변황제일의 현자(賢者)인 초원성자(草原聖者) 타뢰(他雷)가 그 신비를 밝힌 것이다. 그는 말했다. - 변황인들이여, 구주종횡가를 기억하라. 수천 년간 변황에 잠입하여 분열을 조장시켜 변황의 꿈, 중원정복을 지연시킨 변황제일적인 구주종횡가를! 조금의 틈이라도 보이면 그들은 파고든다. 그리고 함께 기억하라. 육합수호천황가를! 중원의 수호신(守護神), 육합수호천황가를 항시 경계하라! 초원성자 타뢰의 한(恨) 맺힌 포효가 변황을 울렸고, 그 때부터 구주종횡가는 전 새외인들의 공동적이 되었다. 그러나 초원성자 타뢰도 죽었고, 변황의 대영웅 징기스칸 테무진도 죽었다. 미증유의 거력을 가졌던 대제국인 대원제국도 중원에서 쫓겨나, 다시금 북방의 대황지(大荒地)로 돌아갔다. 세월의 무상함 속에 잊혀진 이름, 구주종횡가! 그 이름이 다시금 거론된 것이었으니, 흑룡왕이라는 흑의청년이 기겁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둘의 이야기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자신의 생명이 급급한 판에 남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흑룡왕의 눈가로 잔혹한 살광이 어렸다. "초원성자님의 말씀을 소홀히 하여 네놈들의 간세(間世:첩자)에 대원제국이 멸망했다. 죽이리라! 네놈을 죽이고, 육합수호천황가 전부를 부수리라!" 처절한 한(恨)과 비례하여 증폭되는 살기(殺氣)는 섬뜩할 지경이었다. 천년제국의 수호구룡왕(守護九龍王)의 칠룡(七龍) 흑룡왕(黑龍王) 뇌극달(雷克達)! 흑룡왕이란 흑의청년의 신분은 바로 그것이었다. 흑룡왕의 핏발 선 동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살광은 눈빛만으로도 살인을 자행할 정도로 강렬했다. 휘익-! 그 때 마의(麻衣)를 걸친 장한이 그의 앞에 내려섰다.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뇌전 같은 섬광이 뿜어져 나오는 사순 가량의 중년거한이었다. 그의 오른손(右手)엔 유난히 날카로운 장검이 쥐어져 있었다. 검은 용(墨龍)이 등천하듯 휘감겨 있는 검이었다. 마의검왕(麻衣劒王) 호극충(弧克衝). 천병삼천종 중 검종의 진전을 이어받은 검도의 달인이었다. 이곳에 온 삼백삼십삼 인의 천병신기군단의 수좌이기도 한 마의검왕 호극충이 앞으로 나선 것이다. "본좌는 마의검왕! 천병신기군단의 검존(劒尊)이다." 마의검왕의 우렁찬 사자후에 흑룡왕의 시선은 더욱더 짙은 살광을 머금었다. "천병신기가의 조무래기인가? 언젠가는 맞부딪쳐야 할 일! 지금 모조리 죽여 주마! 쳐랏!" 그의 사나운 일갈에 주위에 있던 암흑의 장막이 서서히 밀려났다. 오백 묵령마마대(墨靈魔魔隊)! 전신이 도검불침(刀劒不侵)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마도최강의 외문기공(外門奇功)인 묵철마강공(墨鐵魔 功)을 익힌 인간 살인병기였다. 전신의 피부가 세 치 두께의 만년한철(萬年寒鐵)보다 더욱 견고하여, 어지간한 병기로는 그들의 피부에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 더욱이 근력(筋力)을 극대한으로 키운 그들의 파괴력은 능히 손가락으로 바위에 구멍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그들의 정신력 또한 철골(鐵骨)을 지닌 자들답게 어떤 상대의 앞에서도 후퇴란 없었다. 웬만한 상처쯤은 코끼리를 토끼가 발로 찬 정도의 가려움증 정도로 치부한다. 철저히 인성(人性)이 말살당한 인간도부수(人間屠夫手)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앞엔 천적(天敵)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는가? 천병신기군단 개개인이 소유한 병기가 금옥(金玉)을 무 베듯 하는 무적신병기(無敵神兵器)임을 모르는 오백 묵령마마대는 그대로 기세 좋게 밀고 들어갔다. "크크크!" "키키키!" 가공할 묵령강기가 와선(渦線)을 그으며 작렬했다. "하핫! 아이들이 재롱을 부리는군!" "후후, 어디를 잘라 줄까?" "그 곳만은 남겨 두게나. 저승에 가서 남녀 구별도 못하면 억울하지 않겠는가?" 천병신기군단은 마치 유람을 나온 시인묵객(詩人墨客)처럼 여유롭게 농담을 주고받았다. 검은 묵기류가 막 일 장 이내로 덮쳐 들자, 그제서야 병기를 꼬나 쥐었다. "자, 어서 저 검은 강아지들을 베고 가주를 뵈러 가자!" 슈우우우! 날카롭기 그지없는 병기의 예기(銳氣)가 뻗어 나왔다.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 천왕도(天王刀)를 받아 봐라!" 촉한(蜀漢)의 맹장(猛將), 장비(張飛) 같은 거한이 나서며 수중의 육중한 묵도(墨刀)를 휘두른다. "천하제일창(天下第一槍)도 여기 있다." 시퍼런 양날이 달린 신창(神槍)이 가공할 예기를 뿜어 냈다. 검(劒), 도(刀), 채찍(鞭), 봉(棒), 궁(弓), 창(槍), 겸(鉗), 추(鎚), 극(戟), 도끼(斧), 철퇴(鐵槌), 언월도(偃月刀) 등……. 그야말로 천하병장기가 한 곳에 모였다. 그것도 천하에 드문 천고의 신병기를 뉘라서 당할 수 있겠는가? "크아악-!" "캑!" 세 자 두께의 만년한철보다 강인하다는 묵철호신강기막(墨鐵護身剛氣幕)이고 뭐고 없었다. 천병신기군단의 가공할 무공과 천고의 신병 앞에 썩은 짚단처럼 베어 넘어지는 오백 묵령마마대. 이것은 싸움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일방적인 도살(屠殺)이었다. "헉! 저, 저럴 수가!" 흑룡왕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그는 이제껏 자신의 수족과도 다름없는 묵령마마대가 잔인한 도살을 행하는 것만 보아 왔을 뿐이다. 도검을 튕겨 내 버리는 묵령마마대의 피부와, 손에 잡히면 그 어떤 것이라도 바스러뜨리는 완력(腕力)을 지닌 수하들의 활약을 그는 기꺼운 마음으로 보아 왔던 터였다. "묵철마강공이 저리 쉽게 깨지다니……." 그야말로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천병신기군단의 개개인이 지닌 신병이기의 예리함을 간파하지 못한 그의 불찰이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다. 마의검왕 호극충의 검기가 그의 무서운 위력을 동반한 채 날아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핫하! 애송이, 본좌와 놀아 보자!" 마의검왕은 호탕한 대소를 터뜨리며 흑룡왕의 앞을 가로막았다. 흑룡왕은 이를 갈아붙였다. "으득! 네놈부터 죽여 주리라! 마마혈전공(魔魔血電功)!" 콰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피의 뇌전(血電), 검광(劒光)이 뒤얽히며 주위 이십 장 이내를 초토화시켰다. 이무기와 독수리의 처절한 혈투! 그러나 서로 치열하게 싸우는 와중에서 흑룡왕이 조금씩 밀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무공이 엇비슷하면 그 다음은 병기가 좌우한다. 마의검왕이 지닌 것은 반월천신검(半月天神劒)이라는 것으로, 천고에 드문 신병이었다. 유난히 검의 폭이 두터워, 마치 반월(半月)을 보는 듯한 기형검(奇形劒)은 화려한 색채를 허공에 그리며 현란하게 춤추고 있었다. 흑룡왕이라는 묵의청년은 강력한 힘과 무수한 변화를 일으키는 마의검왕 호극충의 공세 앞에서 방어하는 데 급급할 뿐이었다. 아수라지옥도! "크아악!" "죽어랏!" "으악!" 혈전(血戰)과 혈투(血鬪)! 오천 장에 달하는 아수라성전은 완전히 지옥의 아비규환이었다. 발길에 채이느니 시신이요, 숨을 들이쉬면 콧속으로 스며드는 내음이 곧 혈향(血香)이었다. 바닥은 어느 새 제 빛을 잃고 시뻘건 피의 늪(血池)으로 질퍽거린다. 대체 사람의 생명이 이토록 가치가 없단 말인가? 여천후, 그는 멍하니 장내를 주시하고 있었다. 간혹, 그에게 덤벼드는 혈십자교도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여천후의 일 장 밖에서 퉁겨져 나가 널브러졌다. 무형강막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한없이 순수하고 가이 없는 맑은 성정을 지닌 여천후였기에, 그의 심정은 목전의 아비규환을 보자 착잡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데, 바로 그 때였다. "아우! 어서 그 아수라마신상(阿修羅魔神像)을 부셔 버리게! 그러면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네!" 여천후의 귓전으로 파고드는 한 줄기 전음이 있었다. 십자혈교황과 대적하고 있는 바라대성존의 목소리였다. "……!" 여천후는 신형을 돌렸다. 입에서는 지옥의 불길을 뿜어 내고, 세 개의 눈에선 폭포수같이 핏물이 흘렀다. 아수라마신상, 혈십자교의 신인 아수라혈신(阿修羅血神)이 오연하게 버티고 서 있었다. 잠시 아수라마신상을 주시하던 여천후는 벽라공주를 내려놓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 헐렁한 장포에 싸인 벽라공주는 흘러내리는 옷깃을 여미며 여천후를 뒤쫓았다. 화르르르-! "혈십자교에서 힘을 얻어 초인무학의 제이단계 천뢰검기를 펼칠 수 있게 됐다. 아수라의 혈마신, 그대에게 처음으로 보여 주리라!" 여천후는 서서히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검(劒)! 여천후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세가 뿜어지는데, 그것은 하나의 거대한 검형(劒形)으로 화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천뢰검기!" 여천후의 입에서 우렁찬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고오오오-! 벽력이 천지를 암흑 속으로 가두고, 그 사이로 뻗어 가는 한 줄기 시퍼런 빛이 있었다. 쿠쿠쿠쿠! 무너져 버린다. 천 년간을 우뚝 서 있던 아수라마신상의 정수리가 쩍 갈라지고, 뒤이어 세 개의 머리가 추락했다. 여덞 개의 팔(八臂)이 조각조각 부서져 떨어졌다. 콰아앙-! 아수라마신상의 몸 전체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 순간, 아수라성전에 있던 모든 움직임이 일순간에 멈추었다. "……!" "……!" 장내는 씻은 듯한 정적 속에 파묻혔다. 그곳엔 두 부류의 인간군(人間群)들이 있었다. 회의(懷疑)와 불신(不信), 경악(驚愕)과 절망(絶望)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는 암울한 눈빛의 혈십자교들.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환희에 빛나는 동공을 치켜뜬 바라문도들이었다. "저럴 수가? 아수라혈마신께서!" 십자혈교황의 신색은 참혹할 정도로 이지러졌다. '다 틀렸다. 후일을 도모할 수밖에.' 그는 고개를 돌렸다. 화염에 휩싸여 있는 아수라성전의 반대편, 화염의 계곡 저쪽엔 일만여의 소년소녀들이 마치 목각인형처럼 부복해 있었다. 명령을 내리지 않으면 영원히 움직이지 않을 듯이 부복해 있는 그들은 아무런 이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실혼인과도 같은 존재였다. '저것들을 이용하면 충분히 빠져 나갈 수 있지.' 내심 생각을 굴리던 십자혈교황은 재빨리 신형을 날렸다. 그는 수라혈수갑을 번쩍 치켜올렸다. "아수라의 충복들이여! 오라! 이교도들을 막으라! 죽음으로 아수라혈마신의 축원을 받으라!" 심혼(心魂)이 떨릴 듯한 귀기스런 떨림음이 십자혈교황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휘류류류! 일순, 수라혈수갑에서 검붉은 광채가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빛은 삽시간에 흐릿한 눈으로 부복해 있던 소년소녀들을 뒤덮었다. 뻣뻣하게 굳어 있던 일만여 소년소녀들의 눈에 핏빛 광기가 어리기 시작하며, 그들은 속속 화염을 통과하며 바라문도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