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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명]풍운무림 제1권 (전3권) - 11편 (11/45)

2026-09-24 08:59:34 조회 14
그런 식이었다. 혈궁삼살천의 살수들에겐 여인의 알몸을 감상한다거나, 유혹에 흔들리는 기색 따위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혈궁삼살천의 살수들 중 자의(自意)로 살수가 되고자 입문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나이 다섯 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혹독한 수련을 쌓게 하면서 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백 명이 입문한다면 그 과정에서 오십 명이 혹독한 수련과정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 설혹 그 과정을 지났다 하더라도 여인의 관문을 이기지 못하면 아예 생식기를 없애 버린다. 여인을 품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실행을 할 수 없는 사내는 오히려 여인을 증오하게 되었다. 백팔 명의 요화(妖花)들은 결코 자질이 뒤지거나 무공수준이 낮지는 않았다. 단지 그녀들은 이제까지 싸워 오는 동안 사내들의 특성을 알게 되고, 힘들이지 않고도 자신의 육체를 무기로 하여 손쉽게 상대를 죽일 수 있었기에… 무공보다는 미모와 육체를 최고의 기예(技藝)로 여겼기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럴 수가?" 백팔요화를 먼저 보내고 천천히 걸어오던 번뇌혈봉황 요화란은 벌어지고 있는 참상을 목격하고는 얼굴이 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삼 각(刻)의 정도의 시간밖엔 흐르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기습을 완료해 놓고 황금을 정리하고 있으리라 생각하며 온 곳에는, 백팔 구에 달하는 여인들의 시체만이 뒹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혈궁삼살천의 일천에 달하는 살수들은 냉혹하고 신속한 수법으로 상대를 제압하고는 사라져 버린 후였다.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이토록 깨끗한 살인수법을 지녔단 말인가?" 번뇌혈봉황 요화란의 봉목으로 의혹과 아울러 폭발할 듯한 분노의 살기가 내뿜어졌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고 말았다. "뱀(蛇)!" 전신의 피부에 소름이 돋아나며 그녀의 봉목은 경악과 불신으로 흡떠졌다. 소리도 없었다. 그렇지만 어느 사이엔가 그녀의 주위로는 꿈틀거리는 냉혈동물이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었다. 유난히 길다란 몸통에 다리도 달리지 않은 징그러운 동물은 다름아닌 뱀이었다. 그것도 보통의 뱀이 아니라,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채 방패 같은 목깃을 세우고 있는 구아사(溝牙蛇)가 한두 마리도 아니고 수천, 수만 마리가 떼거지로 몰려 있는 것이 아닌가? 더욱 공포스러운 것은 구아사의 무리 중 선두에 있는 새하얀 백령구아사였다. 초점도 없이 유리마냥 반짝이는 두 개의 눈알을 마주보는 순간, 번뇌혈봉황 요화란은 자신이 여자임을 자인하고 말았다. 여인의 영원한 천적(天敵)인 뱀. 그것도 천하의 뱀 중 가장 강력한 독액(毒液)을 지녔다고 알려진 구아사의 무리에 둘러싸여 있는 상태에서 여인이라는 존재는 무공의 고하(高下)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세모꼴의 머리와, 벌어진 아가리 위에 길쭉하게 뻗어 내린 독아(毒牙)와, 피를 머금은 듯 붉고 길다란 혀가 두 개로 갈라져 널름거리는 모습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어 혈관이 꽉 막혀 버리는 듯한 압박감만을 주고 있을 뿐이었다. 사람이 이토록 반갑게 느껴졌을 때는 번뇌혈봉황 요화란의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없었다. "쯧쯧, 살수 아저씨들이 너무 냉혹무비했는걸?" 눈(雪)이라고 내린 듯 새하얀 사슴을 타고 장내로 들어서던 여천후는 가볍게 혀를 차며 눈살을 찌푸렸다. "이렇게 예쁜 누나들을 무참하게 죽여 버리다니 말이야. 안 그래, 나나?" 그의 말에 대답하는 소녀의 목소리는 싸늘하기 이를 데 없었다. "흥! 여자가 얼굴만 이쁘고 몸매만 좋으면 뭘 해? 죽어 있는 여자들 옷차림 좀 보라지. 아예 홀딱 벗었잖아? 저런 여자들은 여자에게 수치야. 여자는 한 남자의 앞에서만 옷을 벗어야 하는 거야. 저런 음탕한 여자들은 차라리 죽는 것이 나아!" 백령구아사의 방패깃 뒤에서 얼굴을 내밀며 나나는 뾰족한 교갈을 터뜨렸다. "그럼 저 누나는 괜찮네? 옷은 다 입고 있으니 말이야." 여천후는 요화란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렇기는 했다. 어찌 되었든 요화란은 피부를 드러내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나나는 빽 소리를 질렀다. "저게 옷이야? 차라리 홀딱 벗는 것보다 더 야하지. 저 커다란 젖가슴 좀 봐. 몽땅 보이고 있잖아?" "어디?" 여천후는 백섬의 등에서 내려와 요화란에게 다가갔다. "우와……!" 여천후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려화누님보다 더 큰 것 같은데?" 요화란의 앞에서 가슴을 바라보던 여천후는 문득 그녀에게 물음을 던졌다. "요염한 누나, 가슴을 한 번 만져 봐도 되지?" 물어 보는 것과 동시에 여천후의 손이 뻗어 나가고 있었다. 두 손으로 두개의 유방을 잡아 쥐는 여천후였다. "……!" 요화란은 기가 막혔다. 기가 막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비단 그랬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유방을 마음껏 매만지는 소년의 손을 제지하지도 않았다. '도대체가……?' 지금의 상황은 그녀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류고수의 수준에 달해 있는 백팔요화혈봉이 몰살당해 있더니, 한 방울의 독액으로 백 명을 독사(毒死)시킬 수 있을 정도의 구아사를 떼거지로 몰고 나타난 백령구아사의 머리에 타고 있는 소녀와, 지금껏 본 적도 없는 거대한 사슴과 함께 나타난 황금의 눈을 지닌 미소년은 다짜고짜 자신의 유방을 제것인 양 거리낌도 없이 마구 주무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히야! 딴 건 몰라도 크기와 탄력은 려화누님과 오십 명의 누나들 누구도 이 요염한 누나를 따를 순 없겠는걸?" 열세 살 정도의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소년은 연신 탄성을 터뜨리고 있었다. "감촉은 어떨까 몰라? 옷 속에 있는 것을 만져 보고 싶긴 한데… 보여 줄 수 있어?" "훗!" 요화란은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천진하다고 해야 할까? 순진함의 극치라고 하기보다는 넘치는 자신감의 발로라 해야 옳을 것이다. 사실 요화란이 정신을 차린 것은 여천후가 나타나면서 말을 했을 때부터였다. 그녀가 여천후를 처음 보면서 느낀 것은 범상치 않다는 사실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기운과 더불어 지극히 아름다운 용모는 사실 그녀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정도였다. 그리고 요화란은 이 황금의 눈을 지닌 미소년이 백팔요화를 눈 깜짝할 사이에 해치고 어마어마한 백령구아사를 부리는 신비인들에게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녀 자신이 제아무리 강하다 해도 백팔요화 모두를 이겨낼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백팔요화를 쓰러뜨린 상대가 다수이긴 했지만, 그녀 자신이 상대할 정도는 못 됨을 너무도 잘 자각하고 있었다. 주변으로는 무형(無形)의 살기가 그물처럼 요화란을 에워싸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상대의 요인(要人)으로 짐작되는 미소년이 다가오자, 요화란은 여천후를 사로잡아 인질로 삼은 후 이 자리를 탈출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상대를 더욱 안심시키기 위해 근접을 허용하고, 여천후가 막 자신의 젖가슴을 매만지려 할 찰나에 손을 쓰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손을 쓰지 않았다. 아니, 손을 쓰지 못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었다. 눈(眼)! 황금의 동공은 태양처럼 찬란하게 그녀의 어둡고 축축한 마음을 환하게 밝혀 주고 있지 않은가? 요화란은 단연코 이런 눈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를 보는 사내들의 눈이란 노소(老少)를 막론하고 굶주린 늑대가 맛난 고깃덩어리를 보는 것과 같이 혼탁하고 탐욕스럽기 이를 데 없는, 욕망의 불길에 휩싸인 그런 눈빛뿐이었다. 맑았다. 만추(晩秋)의 구름 한 점 없는 창궁(蒼穹)을 보는 듯도 했고, 시리도록 투명한 심산계곡의 계류(溪流) 속을 들여다보는 것도 같았다. 터질 듯이 부풀어오른 자신의 유방을 매만지면서도 미소년의 눈엔 호기심과 아름다움에 대한 탐구심과, 꽃을 보면서 욕심이 나는 지극히 자연스런 사랑만이 보이고 있었다. 요화란은 그저 보지 못한 요염한 자태를 자랑하는 꽃(花) 한 송이였으며, 여천후는 꽃을 음미하다가 손길을 대 보는 탐미자(眈美者)일 뿐이었다. 미소가 살포시 요화란의 입가로 흘러갔다. "이걸 진짜 만지고 싶단 말이죠?" 따사로운 미소를 지으며 요화란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앞섶을 잡아당겼다. 그녀의 윗옷은 보통 여인의 저고리처럼 옷고름으로 매고, 풀르는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옷고름 같은 것은 아예 없고, 몸에 짝 달라붙게 통으로 꿰매어 목 위에서 아래로 내려 입는 것이었다. 유난히 깊이 패여 있는 가슴 부위는 그야말로 터질 듯한 유방의 탄력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는데, 그것을 강제로 양손으로 잡아 밑으로 내렸지만 워낙 꽉 끼게 입은 옷이라 두 개의 유방 모두를 꺼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옷 속에 조여 있던 오른쪽 젖가슴이 옷자락 위로 튀어 나왔다. 어지간히 손이 큰 사내도 결코 한 손으로 감싸쥘 수 없을 정도로 큰 유방은 서설(瑞雪)이라도 내린 듯 뽀얗기 그지없었다. 그토록이나 탐스런 유방임에도 밑으로 처지거나 옆으로 퍼져 나가지 않고, 앞으로 튀어 오른 요화란의 유방은 진정 고무공 같은 탄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런 젖가슴의 정상에 매달린 아주 작은 분홍빛의 유실(乳實)은 너무도 작았다. 여천후는 빙긋 웃으며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조심스레 요화란의 젖꼭지를 매만졌다. "히야, 요건 굉장히 앙증맞은데?" "아!" 일순, 요화란은 자신도 모르게 짧은 신음을 토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이제껏 그녀의 맨살을 만진 사내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감촉도 정말 좋은걸?" 여천후는 손바닥을 여인의 젖가슴에 살짝 대고는 눌러 보다가 아예 손 안으로 주물러 보았다. 아직은 다 자라지 않은 여천후의 손에 그토록이나 크고 탐스런 여인의 유방이 잡혀질 리는 만무했다. "어쭈, 도망가?" 여천후는 한 손으로는 양이 차지 않는지 아예 두 손으로 요화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할 수 없었다. 두 손으로도 요화란의 유방 하나를 장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칫! 매끄럽고 탄력이 있어 좋긴 한데, 너무 커!" 여천후는 불만을 토했다. 요화란은 살포시 미소지으며 입을 열었다. "제 가슴은 더 이상 커지진 않을 거예요. 하지만 소공자의 손은 앞으로 더 커질 터이니, 나중엔 충분하지 않겠어요?" 만일, 지금의 요화란을 그녀를 아는 누군가가 본다면 기가 막혀 말도 하지 못할 것이다. 번뇌혈봉황 요화란. 천년제국의 수호구룡왕 중 요룡후(妖龍后)로 알려진 그녀의 손속은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그녀의 마음은 만년빙굴(萬年氷窟)과도 같이 냉혹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상대적이었다. 이제껏 그녀가 겪었던 모든 사내가 똑같았다. 그녀를 아무런 사심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한 송이 꽃처럼 대해 준 사내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이다. 탐욕의 불길을 담은 눈으로 자신의 육체에 대한 소유욕에 갖은 아부를 떨며 구역질나는 선심을 던지고, 그 더러운 손으로 자신의 몸을 매만지려는 추악한 사내들만을 그녀는 보아 왔다. 물론, 그녀의 나이가 들면서 본능적인 애욕(愛慾)의 불길에 뜨거워진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이 바라던 남성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순박함과 용기를 지닌 사내에게 추파를 던져 본 적은 있었다. 그런데 평소엔 침을 질질 흘리며 자신의 몸을 훔쳐보던 자들이 추파를 던져도 한결같이 감히 자신을 만지지조차 못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상대를 용기도 없는 사내 자식이라 욕하며 차 버린 번뇌혈봉황 요화란이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된 경우가 그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요화란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녀에겐 남모르는 비밀 한 가지가 있었다. 요화란은 부친의 얼굴도 모를 정도로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고, 모친은 어린 그녀를 데리고 재가(在家)를 하게 되었다. 계부(繼父)라는 위인이 문제였다. 아니, 어쩌면 너무도 아름답고 성숙한 요화란 자신의 몸 때문일지도 몰랐다. 또래의 아이보다 머리 하나는 큰 훤칠한 키에, 열세 살에 불과한 어린 소녀는 성숙한 여인보다 더욱 탐스러운 가슴과 둔부의 곡선을 보여 주었다. 그 당시에 그녀의 모친은 이미 청춘이 끝난 나이였기에 요화란과 대조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계부의 눈길은 자신과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양녀(養女)의 몸으로 향했다. 목욕을 하면서도 항시 승냥이 같은 계부의 눈길을 느껴야만 했고, 행여 옷이라도 갈아입으려 할 때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독사의 눈길을 감지해야만 했다. 결국 일은 벌어지고 말았다.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어느 날이었다. 이불도 걷어 젖히고 얇은 나삼자락만 입은 채 잠자리에 들었던 요화란은 아예 속옷마저도 벗어 던져 버렸다. 꿈결에서 거친 이리의 숨결과 사나운 들개의 발길질을 느끼며 잠을 깬 그녀는, 자신의 몸을 찍어 누르는 계부를 보았다. 그런 요화란의 손에 계부가 강제로 빼놓은 문고리가 잡혔고, 나무에 박혀 있던 날카로운 문고리의 끝으로 계부의 목을 정신없이 찔렀다. 피가 튀고 비명이 터져 나오는 것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집에서 도망 나온 그녀가 정처없이 떠돌다가 천년제국의 인재발굴을 책임진 제국호법(帝國護法)의 눈에 뜨인 것이 그녀의 나이 열네 살 때의 일이었다. 요화란에게 주어진 무공은 삼백여 년 전, 여인천하(女人天下)를 부르짖으며 여인제국(女人帝國)을 건설했던 군림화벌(君臨花閥)의 주인이자, 여중제일요(女中第一妖)라 불리웠던 나찰염후(羅刹艶后) 하옥상(河玉孀)의 독문무공인 쾌락천음무(快樂天淫舞)와 환희요음소(歡喜妖淫笑), 혈음요살강기(血淫妖殺 氣) 등이 수록되어 있는 나찰요음경(羅刹妖淫經)이었다. 십 년에 걸쳐 중원의 영재(英才)와 정기 넘치는 무인(武人)들 수천 명이 쾌락의 춤과 환희에 찬 요사스런 웃음에 피를 토하며 정혈(精血)을 빨리운 채, 나찰염후 하옥상과 그녀가 이끄는 나찰여인들에 의해 죽어 갔다. 그 끔찍한 만행이 중지된 것은 그보다 더욱 요사스런 요염함의 등장으로 인해서였다. 혈염요니(血艶妖尼) 화요(火妖)라는 이름을 지닌, 후세에 고금제일요(古今第一妖)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여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녀는 서장(西藏)에서 출현한 한 명의 풍성한 혈가사(血袈裟)를 걸친 비구니였다. 여하튼, 천성적으로 타고난 풍염한 몸매에 중원에서 가장 요악스러운 요공(妖功)을 연성한 요화란은 보는 사내들로 하여금 원초적인 번뇌(煩惱)를 일으키는 존재가 되었다. 천년제국의 야망을 이룩할 제일선의 전사(戰士)들인 수호구룡왕의 자리에 오른 그녀는 일곱 번의 임무를 맡아 완벽하게 수행해냈다. 온몸에 찰싹 달라붙는 옷을 입은 그녀의 환상적으로 풍성한 몸매를 보는 그 모든 사내들의 반응은 한 가지였다. 그녀에게서 살기(殺氣)를 느꼈다 손 쳐도, 그 아름다운 몸매를 손상시키겠다는 생각은 아예 하지조차 못했다. 죽어 가면서도 사내들의 불타 오르는 욕망의 눈길은 요화란의 가슴과 은밀한 부위에 고정되어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것들이 요화란에게는 증오스러울 정도로 싫었다. 그런데 그녀의 눈앞에 홀연히 나타난 이 신비로운 미소년은 달랐다. 아주 맑은 눈망울로 그저 지극히 아름다운 한 송이의 꽃을 관조(觀照)하는 듯하다가, 이내 시각미(視覺美)로만은 만족할 수 없어 손으로 촉감미(觸感美)를 느끼는 아주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자신을 어루만지고 있질 않은가 말이다. 그것은 신선한 충격으로, 요화란의 얼어붙은 마음의 빙벽(氷壁)을 부숴 버렸다. 그래서 자신의 소중한 부위를 내보였을 때 그 어떤 사내도 선뜻 손을 뻗치지 못했거늘, 이 미소년은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탐스런 유방을 매만지고 있었다. 그것이 더욱 그녀의 마음에 들고 있다는 사실은 요화란으로서도 어떤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는 본능적인 느낌이 되어 다가왔다. 무조건적인 이끌림이랄까? 아주 귀여운 강아지를 보며 풀어지는 마음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원적(一元的)이다. 지극히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風光) 속에서 일상의 고뇌(苦惱)를 떨쳐 버릴 수 있는 것은 인간만이 지닌 자연스런 이성(理性)의 발로라고 할 수 있다. 그런 것이었다. 굳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요화란과 여천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논리(論理)는……. "흥!" 아주 못마땅한 듯한 냉소가 담긴 콧방귀가 장내를 휘저었다. 냉소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나나였다. 그녀는 여천후가 요화란의 유방을 만지다 못해 아예 두손으로 주무르며 몹시도 흐뭇해 하자, 심기가 뒤틀린 것이었다. "나도 저 언니처럼 나이가 들면 더 커질 수 있어! 그 때 가서 나나의 가슴을 만지려고 하면 손목을 부러뜨려 버릴 거야! 불결한 손(手) 같으니라구!" 나나는 앵돌아져 연신 콧방귀를 날렸다. 여천후는 그녀의 협박에 짐짓 큰일났다는 듯 요화란을 보며 화급한 어조로 말했다. "요염한 누나, 빨리 나나의 마음을 풀어 주는 게 좋겠는데? 나나는 쉰 번째 첩(妾)인데, 요염한 누나가 내 쉰한 번째 첩이 되려면 나나에게 밉보여선 안 된다구." "예?" 일순, 요화란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벌써 첩이 오십 명이고, 나를 오십하고도 첫번째 첩으로 삼겠다고요?" "왜? 싫어?" 여천후는 천연덕스럽게 되묻고 있었다. 그런 중에도 그의 손은 요화란의 터질 듯 부풀어올라 있는 젖가슴을 더듬고 있는 형편이었다. "누나 같은 여자는 아마 다시 볼 수 없을 거야." 여천후의 황금의 동공엔 진지함이 보이고 있었다. "내가 조그만 장사꾼에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다 해도 수중의 금전이 모자라면 포기하겠지만, 나는 천하(天下)를 사고 파는 대천상(大天商)이 되려는 마음을 지니고 있지. 아니, 그래야만 하는 운명을 타고났을 거야." 요화란은 점점 여천후의 눈 속으로 자신의 영혼이 빨려들어가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나에게 붙여진 황금충(黃金蟲)… 황금의 벌레라는 별호는 참으로 맘에 들어. 나는 반드시 천하라는 황금 덩어리를 내 손에 거머쥘 거야. 그런데 맘에 드는 여자가 나를 싫다고 한다 해서 그냥 돌아선다면 황금충이 아니겠지?" 여천후는 강렬한 눈길로 요화란을 직시했다. "결정해! 내 쉰한 번째의 첩이 될 것인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죽든지!" "……." 요화란은 숨이 막혀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앞에 있는 존재는 단지 열세 살 먹은 환상적으로 아름답게 생긴 미소년이 아니었다. 천하라는 거대한 황금 덩어리를 자신의 손 안에 올려놓고 주무르는 대천상(大天商)의 웅대한 혼(魂)을 그녀는 보고 있는 것이었다. 죽느냐 사느냐는 그녀가 결정해야만 했다. 단순히 그녀보다 무공이 강한 자가 자신을 제압하고 그런 물음을 던졌다면 그녀는 주저없이 죽음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침묵의 눈길이 여천후의 눈으로 가 닿았다. 녹야원의 서북단엔 하나의 얕으막한 야산(野山)이 자리해 있었다. 그리 크진 않았지만 빽빽하게 들어찬 수림(樹林)은 충분한 어둠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그곳에 일단의 사람들이 매복해 있다는 것을 녹야원의 사슴들은 이미 감지한 상태였다. 벌레소리조차 없는 야산의 숲 속엔 이백 명에 달하는 인물들이 숨어 있었다. "빌어먹을 계집들! 밤일에만 화끈하지, 하는 일은 느려 터지구만. 후딱 해치우고 얼른 신호를 보내면 뒷일은 본좌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고 했건만."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승려는 다름아닌 소뢰음사의 주지 지옥존자였다. 그의 뒤로는 지옥존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지옥사영불(地獄四影佛)이 도열해 있었다. 지옥사영불 중 수좌인 혈해마불(血海魔佛)이 비릿한 음소(淫笑)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 "계집들이 엉덩이 돌리는 일에나 빠릿빠릿하지, 어디 중요한 대사를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조금 있으면 파랗게 질려서 구원요청이나 할 테니,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일을 처리하고 난 후 계집들의 지극한 방중술(房中術) 시중이나 받도록 합지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저 도도한 요화란이란 계집도 감격에 겨워 스스로 옷을 벗고, 그 탐스런 유방을 흔들며 존자께 최고의 쾌락을 안겨 드릴 것입니다." 그의 말은 아부의 극치를 보이고 있었으나 내심으로는 요화란의 육체를 떠올리며 침을 삼키고 있었다. "오늘 일이 잘못되는 날에는 그 계집을 묶어 놓고라도 강제로 범할 것이야. 물론 제대로 일을 처리해도 축하의 합환주를 마셔야겠지. 몸을 뜨겁게 달구는 양념을 듬뿍 섞은 합환주를 말이야." 지옥존자는 입맛을 다시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의 뒤로는 이백 명의 건장한 승려들이 등에 빈 궤짝을 하나씩 메고 있었다. 일이 제대로 처리된다면 그 빈 궤짝은 하나에 오백 근씩의 황금이 들어가는 금궤(金櫃)로 변할 것이다. '이 빌어먹을 놈의 계집들이 파사국의 상인 놈들과 배를 맞추고 있는 거야, 뭐야? 왜 이리 시간이 걸리지?' 다시금 녹야원의 안쪽을 바라보는 지옥존자의 눈가로는 어떤 불안한 기색이 스쳐가고 있었다. "내가 바라는 완벽한 남성상(男性相) 중 첫번째 조건은 나보다 강한 사내여야만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