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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후명]풍운무림 제1권 (전3권) - 10편 (10/45)

2026-09-24 08:59:34 조회 11
그 때 사슴 중의 왕이 이 나라 왕에게 말했다. "이 들에서 자주 활을 쏘면 우리 사슴들은 한꺼번에 몰살당하고 맙니다. 그러면 그 시체가 썩어 폐하의 반찬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하루에 한 마리씩만 바치게 해 주신다면 폐하께서는 매일같이 신선한 고기를 잡수시게 되고 우리들도 생명을 연장할 수 있으니,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그것, 참 좋은 의견이구나." 그 말에 이 나라의 왕도 이를 허락하여 궁전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두 무리의 사슴은 생명을 연장하게 되었다. 그런데 한 무리의 사슴 중의 한 마리가 다음 차례로 죽게 되었다. 그러나 그 사슴은 암놈으로 새끼를 배고 있었다. 그래서 이 암사슴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슴 무리의 왕에게 애원했다. "내가 죽게 되면 내 뱃속에 들어 있는 새끼가 출생을 못합니다. 내가 낳을 새끼들에게는 죽는 차례가 정해 있지 않잖사옵니까?" 그러나 사슴의 왕은 매정하게 고개를 돌리며 돌보아 주지 않았다. "다음은 하여간 네 차례다." 할 수 없어 슬퍼진 암사슴은 이웃의 다른 사슴 무리의 왕에게 가서 울면서 호소했다. "아, 이것이 어미의 자비심이라는 것이구나. 어미의 은혜는 태어나지 아니한 새끼에게도 미치고 있구나. 좋다, 내가 네 대신 희생되겠다." 다른 사슴 무리의 왕은 곧장 사람의 왕이 사는 궁전 문 앞에 이르렀다. 그 때 사람들은 이런 사람이 사는 거리에까지 사슴이 나왔다고 큰 법석이었다. 그 사슴의 왕은 궁전에 들어가 인간의 왕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오늘 죽어 왕궁으로 올 사슴은 지금 새끼를 배고 있습니다. 만약 그 사슴 모자가 죽게 된다면 이는 차마 볼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저를 대신 죽여 주십시오." 이 말을 들은 그 나라의 왕은 깊은 탄식을 터뜨렸다. "호오, 진정 훌륭한 마음씨로다. 너는 사슴의 모양을 한 인간이다. 반대로 나는 인간의 허울을 쓴 사슴이다." 그 후로는 이 숲에서 일체 한 마리의 사슴도 잡지 못하게 엄명을 내렸다. 철려화는 봉목을 반짝이며 여천후를 신화의 세계에서 현실로 인도해 왔다. "왕은 모든 사슴을 자유롭게 해방시켰지요. 그래서 이곳을 녹야원이라 부르게 되었사옵니다. 그리고 그 인정 많은 사슴의 왕은 전생에 보살로서의 수행을 닦을 때의 석가(釋迦)요, 또 다른 하나의 어질지 못한 사슴왕은 데바달다(提波達多)라고 하지요." "데바달다?" "석가를 암살하려고 한 아수라(阿修羅)의 화신을 일컫는 악인의 대명사이지요." 철려화는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누운 여천후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살포시 미소를 머금었다. 힘이 없음에도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걸고 천년제국의 수호구룡왕의 일원인 미룡왕 음세흔이라는 초강자와 싸운 여천후에게서 철려화는 뿌듯한 사랑과 가없는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 철려화는 열세 살의 소년이 아닌, 그 어떤 남자보다 든든한 믿음을 주는 최고의 정인(情人)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녹야원에 대한 그런 전설보다도 더욱 사실적인 성역의 의미는… 석가세존께서 득도(得道)를 하신 이후, 처음으로 설법(說法)을 베푸신 곳이기에 불가의 성지(聖地)로 추앙받고 있는 것이옵니다." "꽤나 의미가 있는 곳이긴 하군. 오늘은 저기서 쉬어 갈까?" 여천후는 길게 기지개를 펴며 중얼거렸다. 장관(壯觀)이었다. 끝도 보이지 않는 푸른 초원(草原) 위에 도무지 헤아릴 수 없는 수천, 수만 마리의 사슴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은 벅찬 감동으로 안겨 들고 있었다. 이곳엔 사람이 오히려 사슴을 피해 다닌다. 녹야원에서 사슴은 신령(神靈)스런 존재였으며, 인간이 지난 수백 년간 단 한 번도 해를 끼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이 무서운 줄도 몰랐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녹야원에 서식하는 수만 마리의 사슴 무리들이 여천후와 일행들에게 양쪽으로 길을 열어 주고 있지 않은가? 그 이유는 천광백록 때문이었다. 사슴의 제왕 앞에서 뭇 사슴들은 고개마저 조아리며 최대의 경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하물며, 천광백록의 등에 타고 있는 여천후는 사슴들에게 신적인 존재로 비춰지고 있음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한 일이 아니겠는가? 녹야원에서 가장 따사로운 햇빛이 스며들고 가장 보드라운 초지가 깔려 있는 사방 천 평 정도의 초원에 사파륭 일행이 천막을 치자, 그 놀라운 소문은 삽시간에 천축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천축불가(天竺佛家)의 오대성역 중 한 곳인 녹야원에서 말썽을 피운 자는 천축무림과 왕실의 공적(共敵)이 되어 죽을 때까지 추적을 받는다. 그렇기에 녹야원의 사슴들이 인간에게 아무리 무례하다 해도 인간은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는데, 오만불손하기까지 한 녹야원의 사슴들이 자신들의 거처를 일단의 인간들에게 내주었다는 사실은 범상하게 받아들일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 * * * "한 가지 문제가 있군요." 번뇌혈봉황 요화란이 아미를 찌푸렸다. 지옥존자 역시 동감이라는 듯 침중한 신색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렇구료. 천하를 도모하는데 힘(力)과 세력(勢力)보다 황금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야 알겠소." 지옥존자의 얼굴엔 낭패한 표정이 역력했다. 번뇌혈봉황의 옥용에는 싸늘한 한기(寒氣)가 풀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도대체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군요. 그래도 소뢰음사라면 천축에서 대뢰음사와 쌍벽을 이루는 최고의 사찰인데, 재정(財政)이 거의 바닥이라니… 이런 상태에서 무슨 대사(大事)를 도모한다는 건지 정말 기가 막히는군요." 비릿한 조소가 그녀의 입가로 진하게 번져 간다. "그거야… 본사를 추종하는 방파들이 정기적으로 상납(上納)을 하는데다, 서천축국의 왕실에서 필요할 때마다 지원을 해 주는지라 들어오는 대로……." "족족 써 버렸단 말이죠? 술과 고기를 퍼먹고, 절을 증축하고, 계집을 사서 음욕을 채우기 급급했단 말이겠지요?" "……." 지옥존자는 할 말이 없는 듯, 쓴 입맛을 다시며 입을 다물었다. "대사를 도모하려면 병력(兵力)의 원정이동(遠征移動)은 필수이고, 동조세력을 규합한다거나, 전투물자(戰鬪物資)를 구입해야 하는데다가, 소모된 물자의 보급은 기본인데 그것조차 소홀히 하면서 천축의 패권 타령을 하다니… 정말 기가 막힐 일이군요." 번뇌혈봉황의 말은 점점 신랄해지고 있었다. "일단 일부터 벌이면 되지 않겠소? 필요한 물자는 그 때 그 때 현지조달하면 될 텐데, 뭐가 걱정이오?" "약탈(掠奪)은 안 돼요!" 번뇌혈봉황은 단호하게 지옥존자의 말을 잘랐다. "일단 패권을 장악한 후라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지만, 그 과정에서 상관 없는 사람들을 괴롭히면 대업(大業)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게 되어요. 초왕(楚王) 항우(項羽)가 막강한 무력으로 한왕(漢王) 유방(劉邦)과의 대결에서 백전구십구승(百戰九十九勝)을 했지만 마지막 싸움에서 진 이유가 무엇이겠어요? 아직 중원의 주인이 되기 전인데도 함양(咸陽)에서 무지막지한 살륙(殺戮)과 약탈을 자행하여 민심(民心)을 잃었기 때문이에 요. 하물며 세력이 오히려 대뢰음사에 뒤져 있는 지금, 그런 만행을 저지른다면 아무리 힘이 있다 해도 천축무림의 패권(覇權)을 잡을 수 없어요." 그녀의 지적은 정확했다. 지옥존자는 대답이 궁해져 번뇌혈봉황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건드리기만 해도 쾌락의 신음을 토할 것만 같은 계집이 머리는 냉철하다 못해 냉기(冷氣)가 풀풀 날리는군.' 그는 터질 듯이 팽창된 번뇌혈봉황의 젖가슴을 훔쳐보며 내심으로 혀를 내둘렀다. "지금 와서 제국에 손을 내밀어 봐야 고작 몇십만 냥 정도밖에 지원을 받을 수 없는데… 어찌한다?" 번뇌혈봉황은 갸름하고 긴 자신의 손톱을 깨물며 고뇌에 빠졌다. '제국의 수호구룡왕은 각자 임무를 맡았다. 아직 우리 아홉 사형제가 정식으로 지존의 제자로서 공인받은 것이 아닌데, 임무를 실패한다면 나의 자리는 위태로워진다. 반드시 성공시켜야만 돼!' 그녀는 자신의 마음에 모질게 다짐을 가하고 있었다. 그 때였다. 지옥존자가 문득 눈빛을 반짝이며 자신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그렇군! 그 놈들이라면 문제가 없겠어." "무슨 방법이 있나요?" "그렇소. 지금 녹야원에 대한 소문을 들었소?" "녹야원이라면 불가의 오대성역 중 한 곳으로 사슴들의 천국이라 일컬어지는 그곳 말인가요?" "그곳에 한 떼의 대상(大商)이 유숙하고 있다 하오." "상인?" "옥황노야 사파륭이란 파사국의 제일거상(第一巨商)인데, 천하의 옥(玉) 중 절반이 그의 손에서 거래가 될 정도로 거부(巨富)인 자요." 지옥존자는 비릿한 흉소를 흘리며 말을 이어 갔다. "마침 거래를 끝내고 파사국으로 귀환하는 듯한데, 아마도 황금 수천만 냥은 족히 있지 않을까 하오만……." "좋군요. 천축인도 아니니, 나중에 밝혀진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는 않을 테니까." 번뇌혈봉황의 봉목에서도 혈광(血光)이 일렁거렸다. 그것은 그녀가 피를 보고자 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그 일은 나와 백팔요화가 맡겠어요. 존자는 거사가 끝난 후, 황금의 운반에나 차질이 없도록 해요." 그녀는 이미 일을 끝낸 것처럼 자신만만하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걱정 마시오. 그대가 넘겨 준 암흑제석천께서 남기신 최강의 패도불공(覇道佛功)인 암흑파뢰불강(暗黑破雷佛강)을 이미 칠 성까지 연마했으며, 그 최후의 수법인 암흑마뢰인(暗黑魔雷印)은 비록 오 성밖엔 익히지 못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뢰음사의 무공쯤은 어떤 것이든 부숴 버릴 수 있소! 수하들에게도 흑석천뢰경의 무공을 전수하여 소뢰음사는 전보다 세 배 강해져 있는 상태라고 생각하면 무방할 것이외다." 지옥존자는 자신만만하게 호언장담했다. 대체적으로 초식동물(草食動物)은 청력(聽力)과 후각(嗅覺)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민감하게 발달되어 있었다. 그것은 인간이 아무리 극고한 수련을 거쳤다 해도 따를 수 없는 그들만이 지닌 본능이었다. 그들은 약(弱)했다. 독수리 같은 강인한 날개도 없고, 비호(飛虎)의 날카로운 발톱도 갖추지 못했으며, 사자(獅子)의 강력한 이빨도 없었다. 표범(豹)의 날쌘 몸을 지니지도 못했고, 독사(毒蛇)의 독아(毒牙)나 늑대(狼)의 잔인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오직 상대의 기척을 먼저 알아차리고, 상대가 살수를 드리우기 전에 먼저 도망가는 수밖엔 생존의 방법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제일 먼저 이방인의 침입을 알아챈 것은 녹야원 전역에 퍼져 있는 사슴 무리들이었다. 처음엔 인간의 냄새를 맡으면서 안심을 했다. 사실, 녹야원의 사슴들에게 인간이라는 존재는 살쾡이보다 더 안전하고 친숙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후각이 지나가고 소리를 들으면서 사슴들은 죽음의 느낌이 다가옴을 직감했다. 바람을 타고 풍겨 오는 살기(殺氣)는 사슴들이 본 야수(野獸) 중 가장 흉폭한 검은 늑대(黑狼)의 그것보다 더욱 진했다. 두- 두- 두- 두- 두! 기겁을 한 사슴의 무리가 집단으로 튀어 오른 것은 지극히 당연한 자연의 섭리였다. "이런!" 번뇌혈봉황 요화란은 나직하게 혀를 찼다. 그녀는 휘하의 백팔요화를 이끌고 은밀하게 녹야원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사파륭 일행을 제거한 후 신호를 보내면, 지옥존자가 황금을 운반하는 것으로 작전을 끝내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기습작전은 첫걸음부터 빗나가고 말았다. "할 수 없다. 눈에 보이는 대로 죽여라!" 번뇌혈봉황의 봉목에서 싸늘한 살기가 피어 올랐다. "호호! 죽음의 춤사위를 추어 볼까?" "서역의 푸른 눈을 지닌 오랑캐들이 눈이 휘둥그래질걸? 언제 우리같이 어여쁜 미녀를 그 야만인들이 보기나 했겠어? 목이 떨어진 후에도 황홀해 할걸?" 백팔요화혈봉은 자신만만한 몸짓을 보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사실 그녀들의 자신감은 충분히 근거가 있었다. 그만큼 그녀들의 미모(美貌)는 뛰어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몸매 역시 황홀할 정도로 미끈하게 빠져 있었고, 거기에 더하여 그녀들의 옷차림은 지극히 허술했다. 도대체가 이 여인들은 옷감이 극도로 부족한 빈한(貧寒)한 나라에서 온 듯, 윗저고리건 아래 치마건 제대로 길이와 넓이를 맞추어 입은 여자가 없질 않은가? 도연랑(桃淵朗)이라는 이름을 지닌 열여덟 살 정도의 여인은 윗저고리는 단정하게 차려 입었다. 한데, 아래가 문제였다. 긴 각선미(脚線美)와 희멀건 허벅지만이 자신의 자랑이라도 되는 듯, 아예 삼각(三角)의 붉은 고의만으로 아래를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추미연(秋美燕)은 어떤가? 그녀는 허벅지가 드러난 짧은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온몸이 터져 나갈 듯 꼭 끼이게 입고 있는지라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부위가 조개가 입을 벌린 듯 도발적으로 튀어 나와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다리를 벌린 채 보이고 있었다. 원앵(嫄鸚)은 이제 겨우 열여섯 살 정도나 됐을까 한 앳된 소녀였다. 남만(南蠻) 대리국(代理國) 출신인 듯, 아담한 체구에 까무잡잡한 피부를 지닌 야성미(野性美)가 물씬 풍기는 소녀는 엉덩이에 얇은 비단천을 두르고 있을 뿐이었다. 비단천 밑으로 무성한 음모(陰毛)가 어슴프레 비추는 것으로 보아, 고의도 걸치지 않은 그녀는 젖가슴 역시 폭이 짧은 천으로 동여매 놓고 있었다. 작은 젖꼭지가 금방이라도 도드라져 나올 듯, 뾰록진 모습은 그야말로 남자들의 가슴에서 욕망의 불길이 확 타오르게 할 만큼 유혹적이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설추련(雪秋蓮)이라는 여인은 그야말로 터질 듯한 젖가슴을 자랑하고 있었다. 스물다섯이라는 무르익은 나이 덕인지 그녀는 농익다 못해 터질 듯이 풍만한 몸매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녀의 옷차림 역시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치마라고 할 수 있을까? 치마의 길이는 분명 발끝에 닿을 정도로 길었건만, 그 치마는 허리를 기점으로 길게 아래로 갈가리 찢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더운 여름 날, 문을 열어 놓고 문가에 걸어 둔 주렴(籌簾)과도 같았다. 잘게 찢어진 치마자락 사이로 미끈한 종아리와 희멀건 허벅지살이 그대로 드러난 것은 기본이었고, 아무 것도 걸쳐지지 않은 신비의 동굴이 다리가 교차될 때마다 언뜻언뜻 비치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그녀의 상체는 더욱 환상적이었다. 원앵과는 달리 그녀는 허리끈에 앞뒤로 또 다른 끈 두 개를 달아 어깨 위로 걸쳐 놓고 있는 중이었다. 뽀얀 등과 어깨와 배의 맨살에 햇살이 부서져 눈부신데, 젖꼭지만을 간신히 가린 채 폭발적으로 솟구쳐 오른 거대한 유방의 출렁거림은 욕망의 덩어리 그 자체였다. 두 개의 살덩어리가 크게 흔들리는 것도 아랑곳 않은 채 그녀는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런 식이었다. 연령도 생김새도 다른 백팔 명의 아름다운 요화(妖花)들은 자신들의 자신 있는 부위를 더욱 노출시키며, 몸매와는 어울리지 않는 비쾌한 신법을 전개하여 녹야원 깊숙이 침투해 갔다. 안타까운 일이었다. 아름다움을 아름답게 보아 주지 않는 사람에겐 아름다움은 결코 무기가 될 수 없었다. 어떤 방면의 인간들은 절대무심(絶代無心)이라는 단어로 자신의 감정(感情)을 수십 겹 휘감아 놓아야만 했다. 살수(殺手)라는 직업살인가(職業殺人家)들이 바로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었다. 혈궁삼살천! 불귀사혈과 혈응살단, 무영살각에 속한 살수들은 인간이 지닐 수 있는 오욕(五慾)과 칠정(七情)을 깡그리 말살시킨 인간들이었다. 느닷없이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은 무표정한 사내들을 보자, 백팔요화들은 잠시 놀라긴 했지만 저으기 안심했다. 그녀들에게 사내란 동물은 눈을 까뒤집고 자신들의 몸을 탐하며 달려드는 욕망의 숫컷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그런 망상이 깨어지는 데는 촌각(寸刻)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백팔요화는 한꺼번에 군무(群舞)를 추기 시작했다. 옷 같지도 않은 옷을 펄럭거리며 자신 있는 부위를 살짝살짝 노출시킨다. "흐응……." "하아아……." 끈적끈적한 콧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도연랑은 맨앞에서 자신의 다리를 번쩍 치켜들었다. 거의 머리 위까지 치켜져 올린 다리는 일직선으로 뻗어, 새하얗고 미끈한 각선미가 드러나면서 은밀한 부위가 도발적으로 튀어 나왔다. 그녀는 사내의 눈길이 자신의 허벅지 사이로 모아져 있으리라 자신만만해 하며 그대로 벼락치듯 들어올렸던 발끝을 사내의 머리로 후려쳤다. 그런 방법으로 그녀의 족퇴파(足腿破)에 머리가 박살나 죽은 사내는 지금까지 부지기수였다. 무림에 속한 여인들이 보는 사내는 크게 두 부류였다. 정파(正派)에 속한 백도인(白道人)들은 여자의 속살을 보면 눈길을 외면하고 여인의 은밀한 부위에는 결코 손을 대지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사파(邪派)에 속하는 흑도인(黑道人)들은 오히려 여인의 속살을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며 은밀한 부위는 만져야만 직성이 풀리다 못해, 가리고 있는 것까지 찢어발기며 욕망의 동물이 되어 버린다. 눈앞의 사내가 어떤 방면의 인물이건 도연랑이 치켜올린 허벅지 사이의 은밀한 곳을 보든지 외면하든지 간에, 그녀의 죽음의 발끝을 피하지 못하고 죽은 사내의 숫자에 또 하나가 가산되리라 생각한 것은 심각한 오산이었다. 턱-! 상대는 정확히 그녀의 발길질을 보며 발목을 낚아챘다. 그와 아울러 상대의 예리한 수도(手刀)가 벌려진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무참하게 파고들었다. 아랫도리의 은밀한 동굴이 불에 지져진 듯, 화끈해짐을 느끼며 도연랑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악!" 그녀는 목젖이 터져 나갈 듯한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저 무식한 사내는 그녀가 기억하고 싶지조차 않은, 일곱 명의 파락호들에게 열네 살인가 되었을 때 집단으로 겁탈을 당하며 느꼈던 충격보다 더욱 아픈 고통을 하체에 선사했던 것이다. 하체가 피범벅이 되어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도연랑은 혼미한 정신 속에서 유언 같은 중얼거림을 토했다. "뭔가… 잘못됐어." 질못된 것은 바로 백팔요화 자신들이었다. 원앵은 자신의 엉덩이를 가리고 있던 붉은 비단천을 잡아 풀었다. 정상적이라면 사내의 눈길은 자신의 하체로 집중되어야만 했다. 사르륵-! 그렇게 생각하면서 원앵은 비단천을 풀어 헤치며 천 조각을 너울거렸다. 그 사이로 언뜻 무성한 소녀의 신비림이 보였다. 그녀는 두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잡아 좌우로 벌렸다. 아예 은밀하고 신비로운 여인의 동굴이 저 내밀한 분홍빛의 내부마저 보일 정도로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호홋! 아래 입(下口)에 신경쓰는 동안, 네놈은 윗입(上口) 때문에 죽는 것이지!' 원앵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입술을 오므렸다. 팟-! 눈에 보이지조차 않는 미세한 비침(飛針)이 그녀의 입 속에서 쏘아져 나와 상대의 목젖을 향해 쏘아져 갔다. 오독탈명침(五毒奪命針)이란 것으로, 다섯 가지의 극독(極毒)을 함유한 침에 스치기만 해도 상대는 일곱 걸음을 옮기지 못하고 죽고야 마는 악독한 독침이었다. 원앵은 상대의 얼굴에 죽음의 검은 반점이 퍼져 가는 것을 지켜보려 했으나, 뭔가 이상함을 깨달은 것은 자신의 하체 은밀한 부위가 따끔함을 느끼고 나서였다. 상대는 정확히 원앵이 얼굴로 날린 독침을 이빨로 물고는 그대로 되쏘아 냈는데, 날아온 오독탈명침은 그녀가 방심하고 있는 하체의 은밀한 동굴 속으로 파고들었던 것이다. "악!" 원앵은 질겁하며 자신의 치부를 벌려 미세한 침을 뽑아 내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정신이 아찔해지면서 그녀는 온몸의 신경이 마비되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말았다. 결국 그녀는 쓰러지고 말았다. 원앵은 마지막으로 자신의 온몸에 검은 반점이 피어 오르는 것을 보았을 뿐이었다. 설추련은 젖꼭지만을 가리고 있던 끈을 잡아 좌우로 젖혔다. 출렁거리는 유방의 흔들림만으로도 충분히 상대를 뇌살시킬 정도로 그녀의 젖가슴은 탐스럽기 그지없었다. 설추련은 그런 자신의 유방을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부채살처럼 펴진 손가락 사이로 새하얀 살집이 비집고 튀어 나올 정도로 투실투실한 그녀의 젖가슴인데, 그것을 마주잡고 비비며 코먹은 비음을 흘린다. "흐응, 이걸 터뜨리고 싶지 않나요?" 사내라면 누구라도 그녀의 손을 떼 버리고, 자신의 손으로 저 터질 듯 팽창된 유방을 잡아 문지르며 얼굴을 파묻고 싶을 것이다. 설추련이 이제껏 상대했던 사내들은 모두 그랬다. 그녀의 손아귀에서 일그러지는 유방에만 정신이 팔렸을 뿐이지, 정작 그녀의 손… 아니, 손가락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피- 핑-! 그랬기에 손가락이 부채살처럼 펴지며 열 개의 손가락 끝에서 피처럼 붉은 열 개의 손톱(血爪)이 튀어 나왔을 때에는 방어라는 단어조차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상대가 문제였다. 혈응살조(血鷹殺爪) 파독(巴禿)이라는 인물은 다름아닌 혈궁삼살천에 속한 혈응살단의 부단주(副團主)였다. 그의 장기가 바로 응조공(鷹爪功)이었고, 조법(爪法) 중 최강이라는 혈응살조 파독의 응조공은 자신의 원래 손톱 대신 천년혈응(千年血鷹)의 발톱을 빼내 박은 혈응조(血鷹爪)로서, 그 빠름과 강력함은 보통의 응조공에 비해 십 배의 위력이 있었다. 설추련이 날린 열 개의 손톱은 그대로 바스러졌다. 그 대신 혈응살조 파독이 날린 열 개의 혈응조는 빛살처럼 빠르게 날아와, 설추련이 그렇게도 자랑했던 탐스런 유방을 갈가리 찢어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