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23편 (23/87)
이어 휑하니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현일립은 퍼뜩 정신이 들어 급히 그를 불러 세웠다. "자...잠깐." 조자건이 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자 현일립은 입가의 피 를 쓰윽 훔치며 침중한 어조로 물었다. "나는 아직도 내 미리혈옥수가 어떻게 귀하의 손짓 한 번에 깨졌는지 이해가 되지 않소. 혹시 가르쳐 줄 수 있겠소?" 조자건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미리혈옥수는 확실히 위력면에서 강호일절(강호일 절)이라 할만큼 대단한 무공이었소. 하지만..." 현일립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의 입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당신은 너무 그 속도와 강맹한 위력만을 믿고 변화에는 미 처 신경을 쓰지 않았소. 그래서 내가 십팔장을 펼쳐 미리혈옥 수가 전개될 열 여덟 개의 방위들을 미리 선점(선점)해 버리자 미리혈옥수는 완전히 펼쳐지지 못하고 중간에 억제되어 버렸던 거요." 조자건은 빙긋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 바람에 당신은 기혈(기혈)이 역류되어 내상을 입은 거 요. 다시 말해서 당신을 부상입힌 것은 나의 공세가 아니라 당 신이 펼쳤던 미리혈옥수의 진기였소." 그 말을 듣고서야 현일립은 머리 한 구석이 확 뚫린 듯 모든 사실을 명약관화하게 알 수 있었다. 강호에서 위력이 뛰어난 무공일수록 그 진기(진기)의 자유로 운 수발(수발)이 더욱 힘들어진다. 진기를 자신이 마음먹은대 로 내뻗고 거둘수 있어야만 그 절학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런데 현일립은 비록 미리혈옥수를 펼쳤지만 미리혈옥수가 나아갈 방향이 모두 조자건의 공세에 점거되어 완전히 전개되 지가 못했다. 즉, 미리혈옥수의 장공에 내포되어 가공할 기세로 뻗어나가 던 그의 진기가 공세가 차단됨에 따라 미처 돌아오지 못하고 체내에 남아 있던 진기와 서로 상충(상충)되어 그에게 심각한 내상을 입혔던 것이다. 다른 무공이었으면 현일립의 실력으로 어쩌면 중도에 멈춰진 진기를 다시 거둘수 있었겠지만 미리혈옥수는 그 위력만큼이나 진기가 과도하게 소모되어 현일립은 미처 그 진기의 역류되는 힘을 감당하지 못했던 것이다. 현일립은 다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그런데....귀하가 펼친 무공은...." "복호장중의 남산박호요." 현일립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가득 떠올랐다. "그렇지만...남산박호는 세 군데 밖에는 공격하지 못하는 초 식인데..." "강호에서 열 여덟 군데의 방위를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초 식은 흔치 않소. 그래서 나는 남산박호를 여섯 번 연거푸 펼쳐 냈소." 현일립의 얼굴에 경악의 기색이 가득했다. 현일립은 물론이 고 옆에서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사마결 또한 놀람에 찬 눈으 로 조자건을 응시하고 있었다. 남산박호는 복호장의 수법중에서 그래도 가장 빠르고 위력적 인 초식이었다. 그런데도 강호의 고수들에게 보잘것 없는 무공 으로 인식된 이유는 이 초식은 오직 세 가지 변화밖에 일으키 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비록 빠르긴 하지만 변화가 극히 단순하고 공격방위가 세 군 데밖에 되지 않아 모두들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조자건은 그 짧은 순간에 무려 여섯 번이나 평범한 남산박호의 초식을 되풀이하여 전개하여 무시무시한 절학을 간 단하게 꺾었던 것이다. 말은 쉽지만 미리혈옥수가 펼쳐진 그 간발(간발)의 순간에 앞으로 전개될 열 여덟 군데의 방위를 파악하여 여섯 번의 초 식을 시전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일이었 다. 현일립이 얼굴을 실룩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하려고 막 입을 열 때였다. "그 앞에 계신 분은 혹시... 자건형님 아니십니까?" 갑자기 멀지 않은 숲속에서 한 인물이 이렇게 외치며 장중 (장중)으로 뛰어들어 오는 것이 아닌가? 제13장 음 모 시 초 일, 혈 윤 그는 이제 갓 이십 세쯤 되었을 갈의청년(갈의청년)이었다. 갈의청년은 보통 체구에 이목구비가 수려했는데 먼길을 달려 온 듯 전신에 뽀얀 먼지가 앉아 있었다. 갈의청년은 조자건을 보자 반가워 어쩔 줄 모르는 듯 급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형님...과연 형님이셨군요. 접니다. 저 모르시겠읍니까?" 조자건은 난데없이 갈의청년이 불쑥 나타나 자신을 형님이라 고 부르자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돌연 눈 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너는 혹시 승남(승남)이 아니냐?" 갈의청년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손을 덥썩 움켜 잡았 다. "예. 형님. 저 진승남(진승남)입니다. 절 잊지 않으셨군요." 조자건은 찬찬히 그를 살펴보다가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지 었다. "내가 어찌 너를 잊겠느냐? 그동안 네가 너무 많이 자라 미 처 못알아봤구나. 그때는 열 다섯 살의 어린 아이였는데..." 갈의청년, 진승남은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에 하얀 이를 드러 내며 활짝 웃었다. "그때도 어린애는 아니었읍니다. 형님만 그렇게 생각했지 전 그때 벌써 다 컸는걸요." 조자건은 흥분한 기색으로 마구 떠드는 진승남의 얼굴을 새 삼스러운 듯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진승남은 조자건에게는 잊을 수 없는 친구인 진표(진표)의 둘째동생이었다. 진표에게는 모두 세 명의 동생이 있었는데 바 로 밑이 진결(진결)이고 그 밑으로 진승남과 진봉(진봉) 남매 가 있었다. 진승남은 어려서 부터 조자건을 친형처럼 몹시 따랐는데 호 승심(호승심)이 강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본성 은 몹시 착했다. 헌데 생전 고향을 떠난 일이 없던 진승남이 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것일까? 한동안 반가운 기색으로 어쩔줄 모르던 진승남은 흥분된 마 음이 가라앉자 갑자기 조바심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참. 형님. 저의 큰 형님 소식 들으셨읍니까?" 조자건은 그렇지 않아도 지금 진표에 대해서 물어보려던 참 인지라 고개를 저었다. "아니 듣지 못했다. 네 큰 형은 잘 있느냐?" 진승남의 얼굴에 침통한 표정이 가득했다. "사실은 그때문에 형님을 급히 찾아온 것입니다. 진표형님 은...지금 몹시 위급한 처지에 있읍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자세히 말해 보아라." "사실은..." 진승남은 머뭇거리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원래 진표의 세 동생중 제일 맏이인 진결은 하남성일대에서 는 소문이 자자한 미녀였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는 낙양성을 나갔다가 혈륜(혈륜) 막비(막비)의 눈에 띄게 되었다. 막비는 장강이북(장강이북)에서는 가장 유명한 고수중 하나 로 특히 손속이 매섭고 잔인하며, 호색(호색)하기로 악명(악 명)을 날리는 인물이었다. 평소부터 여색(여색)을 즐겨하던 막비는 그녀의 미색(미색) 에 눈이 번쩍 띄여 그녀를 희롱하려다가 그녀의 결사적인 반항 으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간신히 막비의 마수(마수)에서 벗어난 진결이 집으로 돌아와 진표에게 이 사실을 말하자 성격이 불같은 진표는 참지 못하고 막비에게 결투를 신청했던 것이다. 그는 상대가 천하에 악명이 자자한 혈륜 막비라는 것을 알았 으나 추호도 겁을 집어 먹거나 꼬리를 빼지는 않았다. 그것은 과연 철혈객(철혈객)이라고 소문난 진표다운 행동이었으나 많 은 사람들은 막비가 얼마나 무서운 인물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너무 무모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결을 비롯한 진승남,진봉 등 세 남매는 아무리 진표를 만 류했으나 그의 결심이 추호도 흔들리지 않자 불안과 걱정으로 안절부절했다. 그때마침 진승남은 우연히 종남산(종남산)부근에서 조자건 이란 인물이 나타나 고수들을 연파하여 명성을 날리고 있다는 소문을 듣고 혹시 그가 과거 진표와 친하게 지내던 그 조자건 이 아닌가 하여 급히 달려왔던 것이다. 그는 이곳에 올때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으나 조자건 이 노호령에서 강장비환 현일립과 비무를 한다는 소식을 줏어 듣고 이곳으로 왔다가 드디어 조자건을 만나게 된 것이다. "자건형님. 제발 큰 형님을 막아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큰형님은 아주 큰 일을 당하게 될지 모릅니다. 막비는....너무 무서운 인물이에요." 조자건은 묵묵히 진승남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동안에도 그는 조금도 표정이 바뀌지 않았을 뿐더러 화를 내거나 걱정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지 짤 막하게 물었을 뿐이다. "그들이 싸우기로 한 날짜가 언제냐?" 진승남은 기대 반 걱정 반의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며 대답했 다. "모레 오시(오시)입니다." "장소는?" "동작대(동작대)입니다." 조자건은 한동안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가 돌연 나직 하게 탄식을 했다. "이곳에서 동작대가 있는 임장현(임장현)까지는 모레 아침이 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하지만 너는 너무 늦게 왔다." 진승남은 영문을 몰라 하는 얼굴로 물었다. "늦게 오다니요...?" 조자건의 얼굴에는 별반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지만 왠지 침울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 "진표가 막비에게 결투를 신청하기 전에 내가 알았다면 반드 시 두 사람을 싸우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허나..." 조자건의 음성은 납덩이를 달아 놓은 듯 무겁기 그지 없었 다. "일단 그들이 결투를 약속한 이상 진표는 결코 내 도움을 받 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동작대는 이름처럼 대(대)라든지 무슨 궁(궁)같은 건물이 있 는 곳은 아니었다. 아니 예전에는 분명히 크고 아름다운 대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오래전에 무너지고 지금의 동작대는 오직 폐허와 타버린 잿더미만이 남아 영화(영화)의 무상(무상)함만을 나타 내 주고 있을 뿐이었다. 동작대는 원래 위(위)의 조조(조조)가 세운 것으로, 큰 동작 (동작)을 주조하여 다락 꼭대기에 놓았으므로 그런 이름이 붙 은 것이다. 그후 조(조)의 석호(석호)가 더욱 화려하게 축영했으나 파 괴, 재건을 거듭하다가 최후에는 북주(북주)때 완전히 파괴되 었다. 한낮의 햇살은 제법 따가웠다. 진표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씻을 겨를도 없이 양 손을 질풍 같이 휘두르고 있었다. 파파파팍! 눈깜짝할 사이에 그는 무려 스물 네 개의 각기 다른 초식을 줄줄이 펼쳐냈다. 허나 소용없었다. 어느 새 막비의 신형은 그의 노도와 같은 장세(장세)속을 유 연하게 빠져나오고 있었다. 막비는 하남성 신야(신야)의 막가장(막가장)출신이었다. 아 버지는 이십년전에 무림천하에 혈명(혈명)을 자자하게 떨쳤던 륜마(윤마) 막동(막동)이었는데 막비는 막동의 둘째 아들이었 다. 막비의 형이며 막동의 큰 아들인 막상(막상)은 스물 한살의 나이에 중주삼사(중주삼사)와 시비가 붙어 싸우다가 죽었다. 막동은 아들의 죽음에 분노하여 중주삼사에게 도전했으나 그들 의 합공을 견디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물러나고 말았다. 막동 은 꼬박 칠주야(칠주야)를 앓다가 죽었는데 그때 막비의 나이 열 다섯 살이었다. 막비가 다시 무림에 출도한 것은 팔년 뒤였다. 그는 출도하 자마자 제일 먼저 중주삼사에게 도전하여 십 초만에 그들을 모 두 도륙했다. 그때 막비는 그들의 눈알을 뽑고 혀를 자른 다음 심장을 꺼 내 죽였는데 그 처참한 방법 때문에 많은 무림인들을 전율하게 만들었다. 그 해에 막비는 모두 열 다섯 명과 싸웠는데 상대를 전부 악 랄한 방법으로 살해해서 살명(살명)을 자자하게 떨쳤다. 이 년 이 지나자 사람들은 막비라는 이름만 들어도 눈쌀을 찌푸리게 되었고 다시 오 년이 흐른 지금 그의 이름은 누구에게나 공포 심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막비의 장기는 별호 그대로 륜(윤)이었는데 그의 륜법(윤법) 은 아버지인 막동을 훨씬 능가했다. 이유는 모두 두 가지였다. 하나는 그의 재질이 탁월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우연 한 기회에 이백년 전의 마인(마인)인 색혈비마(색혈비마) 허구 패(허구패)의 비급을 얻었기 때문이었다. 허구패는 당시 비마보(비마보)라는 경공과 색혈륜(색혈륜)_ 수법으로 강호를 주름잡았었는데 막비는 이 색혈륜 수법을 더 욱 발전시켜 자신만의 독특한 절학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대혈칠륜(대혈칠륜)이라는 무공이었다. 막비의 대혈칠륜은 우내십대기문병기에 거의 필적한다고 까지 소문난 무서운 절기였다. 허구패의 비마보를 터득한 막비는 경공에도 일가견이 있었 다. 그는 지금 자신의 경공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었다. 스르르.... 그의 신형은 마치 보이지 않는 줄을 타고 허공을 자유자재로 나르듯 유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진표는 입술을 질끈 깨문 채 다시 벼락같이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며 십이장(십이장)을 질풍처럼 갈겨댔다. 그가 회심의 절기로 생각하는 쇄심십이참(쇄심십이참)이라는 상승무공이었 다. 쐐쐐쐐쐐쐐! 사방이 온통 칼날같은 손그림자로 뒤덮혀 버렸다. 허나 막비 의 몸은 마치 허깨비와도 같이 그 엄밀한 장영(장영)속을 유유 히 헤집고 다녔다. 진표는 이미 백 초 이상을 미친 듯이 퍼부어댔다. 그런데도 막비의 몸에 티끌만한 상처조차 입힐 수 없었다. 스르르... 막비의 몸이 미끄러지듯 허공을 가로지르며 진표의 코앞으로 다가들었다. 이제까지 계속 피하기만 하던 막비가 처음으로 진 표를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것이다. 진표는 피하기는 커녕 두 눈을 부릅뜬 채 자신을 향해 다가 오는 막비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어느새 뽑아들었는지 막비 의 오른손에는 기이한 모양의 륜(윤)이 쥐어져 있었다. 륜은 마치 피처럼 시뻘건 색으로 물들어 있어서 보기만 해도 섬뜩했는데 사방으로 날카로운 톱니바퀴같은 칼날들이 예광을 번뜩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막비의 혈륜이었다. 알려진 바로는 막비의 대혈륜 초식아래에서 십 초 이상을 견 뎌낸 사람이 없다고 한다. 진표는 이미 이런 사실을 귀가 따갑 도록 들어왔지만 추호도 겁을 집어 먹거나 꼬리를 빼지 않았 다. 오히려 그는 더욱 투지만만하게 두 눈을 번뜩이며 막비를 향 해 맹공을 취했다. "이얍!" 그는 주위가 떠나갈 듯한 고함을 내지르며 양 손을 마치 풍 차처럼 휘둘러댔다. 파파파파.... 세찬 돌풍이 몰아치듯 주위가 온통 휘몰아치는 광풍의 소요 돌이에 갇혀 버렸다. 이것은 진표의 삼대절학중 하나인 선풍사 십사수(선풍사십사수)라는 절기였다. 찰나의 순간에 사십사수 가 폭풍노도처럼 몰아닥치면 누구라도 당해내지 못한다는 무서 운 무공이었다. 섬전처럼 다가들던 막비의 몸이 순간적으로 허공에서 멈칫하 는 것 같았다. 허나 다음 순간, 팟! 그의 오른손에 들린 혈륜이 번득거렸다. 그것은 마치 마른 하늘에 뇌전(뇌전)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 았다. 그 순간 진표는 자신의 엄밀하기 그지없는 장세의 일각 이 맥없이 무너지며 무언가 빛살같은 예기가 쏘아져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 속도는 그야말로 진표가 이제까지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보지 못했던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크윽!" 진표는 어깨죽지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짤막한 신음을 토하며 뒤로 비틀 물러났다. 어느 사이에 그의 왼쪽 어 깨는 쭈욱 갈라져 시뻘건 선혈을 뿜어내고 있었다. 혈륜이 살짝 스치고 지나갔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격중되었다 면 그의 어깨는 송두리째 잘려나가고 말았을 것이다. 허나 단순히 스치기만 했는데도 진표는 왼쪽 팔을 들어올릴 수도 없을만큼 심각한 통증을 느꼈다. 그가 미처 몸을 가눌 사이도 없이 다시 시뻘건 혈륜이 그에 게로 다가왔다. 혈륜의 길이는 겨우 두 자반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것이 어찌나 영활하고 생동하게 움직이는지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 다. 파라라락! 진표는 자신이 마치 수백, 수천 개의 칼날속에 갇힌 듯한 착 각에 빠져 버렸다. 그 엄청난 공세속에서 몸을 피한 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로만 여겨졌다. 그는 피할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파앗! "크윽!" 진표는 다시 오른쪽 팔에 막대한 통증을 느끼고 몸을 휘청거 렸다. 또다시 막비의 혈륜이 그의 오른팔을 스치고 지나간 것 이다. 그의 오른팔은 두 치가량 쭈욱 갈라져 뼈가 드러나 보일 정 도로 심한 상처를 입었다. 허나 그 순간 진표는 어떤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 자는 지금 나를 일부러 쓰러뜨리지 않고 있다!) 사실 처음의 일격조차 진표는 제대로 피할 수가 없었다. 그 런데 막비의 혈륜은 단지 그의 왼쪽 어깨를 스치기만 했을 뿐 이다. 그때 진표는 자기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번의 공세는 진표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진표는 그저 목을 길게 내민 채 상대의 손에 쓰러질 수 밖에 는 없었다. 그런데 막비의 혈륜은 이번에도 역시 그의 몸을 스 치고 지나갔을 뿐이다. 이것은 결코 요행이나 우연이 아니었다. 막비같은 절대고수 의 손이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빗나갈 리는 없는 것이 다. 진표는 이 사실을 알자 감사하기는 커녕 오히려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고수들간의 격전에서 상대가 사정을 봐주어 목숨을 구했다는 것은 치욕스럽기조차 한 일이었다. 더구나 막비의 조소어린 눈 빛은 그가 진표에게 호의를 가지고 사정을 봐준게 아니라는 것 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었다. 막비는 진표를 희롱하려는 뜻임이 분명했다. 그것은 마치 고양이가 부상당한 쥐를 금방 잡아먹지 않고 실 컷 약을 올리고 골탕을 먹이려는 것과 같았다. 쥐를 먹는 고양 이는 꼭 배가 고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종의 즐거 움이며 오락이었다. 막비는 그 오락을 마음껏 즐길 생각인게 분명했다. 진표는 누구에게 모욕을 당하거나 희롱을 당하고 가만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분노로 머리가 터져나갈 지경이엇으나 이미 양 팔에 심각한 부상을 당해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조차 없었다. 그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질끈 깨물며 허공을 박차고 뛰어올 라 막비를 향해 맹렬하게 양 발을 휘둘렀다. 양 손을 고정시킨 채 허공을 비스듬히 날아가며 순식간에 열 여덟 번의 발길질을 해대는 이 수법은 원앙십팔퇴(원앙십팔퇴) 라는 독특한 절기였다. 허나 진표의 사력을 당한 공격으로도 막비의 옷자락 하나 건 드릴 수 없었다. 막비는 아주 간단하게 그의 발길질을 피하며 진표에게 바짝 다가들었다. 가격할 목표를 잃고 허공에서 비틀거리는 진표를 응시하는 막비의 입가에는 싸늘한 조소가 담겨 있었다. 팟! 그의 오른손에 들린 혈륜이 다시 섬찝한 빛을 뿌리자 진표의 몸이 허공에서 뚝 떨어져 내렸다 "윽!" 진표는 다시 오른쪽 허벅지를 륜에 찔려 맥없이 바닥에 나뒹 굴고 말았다. 그의 몸은 양 팔과 다리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시 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막비는 입가에 비릿한 조소를 띄우며 바닥에서 바둥거리며 일어나고 있는 진표를 바라보았다. "벌써 지쳤나, 진표? 남들이 하도 철혈객(철혈객)이라고 떠 들어대서 그래도 한 가닥 하는줄 알았는데 이거 정말 실망이 군." 진표는 분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간신히 일 어났다. 허나 그가 채 몸을 완전히 가누기도 전에 막비는 장난 하듯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번쩍! "큭!" 혈륜이 날카로운 빛을 뿌리자 진표의 마지막 남은 왼쪽 다리 에서 시뻘건 핏줄기가 뿜어나왔다. 진표는 다시 맥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그는 벌레처럼 바둥거리면서도 필사적으로 다시 일어나려 했 다. 허나 이미 사지(사지)에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었기 때문에 몸을 일으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도 진표는 포기하지 않고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막비는 그 모습을 내려보며 냉랭하게 웃었다. "어서 일어나지. 내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겠다고 큰소리쳤던 것 같은데 벌서 생각이 바뀌었나?" 진표의 얼굴은 무섭도록 창백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기를 쓰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는 금시라도 쓰러질 듯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막비를 향해 다가왔다. 허나 그가 채 두걸음도 떼어 놓기 전에 막비의 손이 번뜩함 과 동시에 진표의 몸에 다시 두 개의 핏줄기가 뿜어나왔다. 양 쪽 옆구리가 모두 갈라 터졌는데 이번 상처는 상당히 심각해서 갈비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였다. 진표의 비쩍 마른 몸은 크게 휘청거렸다. 그런데도 그는 신음조차 내지 않고 핼쓱한 얼굴을 하고 막비 를 향해 계속 다가오는 것이었다. 막비는 음산하게 웃으며 다시 왼손을 슬쩍 흔들었다. 진표의 몸에는 다시 세 개의 핏줄기가 새로 생겨났다. 그래도 진표가 쓰러지지 않자 막비는 몇 차례 더 혈륜을 휘 둘렀다. 이제 진표의 몸은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선혈로 인해 완전히 시뻘겋게 변해 버렸다. 그의 몸은 그야말로 단 한군데도 성한 곳이 없었다. 혈인(혈인)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 다. 막비는 무표정한 얼굴로 피에 젖어 있는 진표를 향해 계속 손을 휘둘렀다. 진표가 제아무리 철혈한(철혈한)이라 해도 엄 연히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이제 진표의 인내에도 한계가 왔고 체력은 바닥이 난지 오래였다. 쿵! 마침내 진표는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썩은 고목처럼 바 닥에 나뒹굴고 말았다. 그제서야 막비는 손을 멈추며 무표정한 얼굴에 싸늘한 미소 를 떠올렸다. "진표. 과연 끈질기군. 하지만 오늘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그렇다. 확실히 막비는 진표에겐 너무도 벅찬 상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