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21편 (21/87)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얼 마의 시일이 흐른 후였다. 파금왕 일행은 곧 떠나갔다. 그들은 나타날 때처럼 한 줄기 바람같이 홀연히 떠나가 버렸 다. 만약에 파금왕이 내기의 댓가로 두고 간 열 개의 담자가 아 직 땅에 남아 있지 않았다면 그들이라는 존재가 아예 이곳에 나타난 일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들 뿐만 아니라 오늘 벌어진 모든 일들이 조자건에게는 마 치 환상속의 일처럼 생각되었다. 사마결이 미소를 띄면서 그에게로 다가왔다. "확실히 조형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구료. 조형이 아닌 다 른 누구라도 이번 내기에서 이길 수 없었을거요." 조자건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지는 않을거요." 사마결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조형같은 사람을 만났다는 것은 나에게는 커다란 복(복)이 라 할 수 있소. 물론 수고한 댓가는 지불하겠소." 그는 아직도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담자를 가리키며 말을 계속했다. "우리는 아주 공평히 배분합시다. 저 담자는 모두 열 개이니 우리는 다섯 개씩 나누어 가지도록 하는게 어떻겠소?" 조자건은 사양을 하지 않았다. "좋소." 그는 자기가 잡상인도 아닌데 왜 담자를 갖고 가느냐고 따지 지도 않았다. 그는 이런 일은 거절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마결은 그를 쳐다보며 만족스런 신색으로 다시 말했다. "그럼 조형이 먼저 다섯개를 고르시오." 조자건을 머뭇거리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그는 앞으로 걸어가 아무렇게나 가까운 곳의 담자의 장대를 들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약간 변했다. 그 담자의 장대는 어찌나 무거운지 들어올리기가 벅찰 정도 였다. 조자건은 이어 다른 것을 들었다. 그러자 그의 표정은 더욱 놀라움으로 변했다. 그는 한쪽에서 빙글거리며 웃고 서 있는 사마결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담자들은 모두 금으로 된 것이오?" 사마결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전부 그렇소." "순금(순금)이오?" "조금도 잡물질이 섞이지 않은 순금이오." 비단 담자의 장대뿐만 아니라 그 안의 물건들도 마찬가지였 다. 심지어는 땅콩을 담는 되박과 순두부를 담는 그릇, 쟁반, 젓가락등도 모두 순금덩어리였다. 조자건은 그제서야 파금왕이나 사마결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 을 알았다. 순금덩어리로 만든 열 개의 담자라면 비취환희불이 제아무리 귀한 기보라 할지라도 절대로 밑지는 장사가 아닐 것이다. 또 한 이런 순금덩어리를 바쳤기 때문에 파금왕은 잡상인들의 어 려운 부탁을 순순히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번에는 사마결이 조자건에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커다란 부자가 되었는데 앞을 무얼 할 생각이 오?" 조자건은 다섯 개의 금으로 된 담자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파금왕의 마차에서 가져온 나무막대기를 만지작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다가 불쑥 물었다. "이 근처에서 무공이 가장 뛰어난 고수가 누구요?" 사마결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종남일대에서 제일가는 고수라면 당연히 절명도객(절명도 객) 낙무극(낙무극)이오." "그의 거처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삼십 리쯤 되는 곳에 있는 낙가보(낙가 보)요. 헌데 그건 왜 물으시오?" 조자건은 나무막대기를 오른쪽 어깨에 올려놓으며 담담한 음 성으로 말했다. "오늘 무기를 하나 얻었으니 한 번 사용해 봐야겠소." 사마결은 어처구니 없다는 눈으로 나무막대기를 가리켰다. "이 보잘것 없는 나무토막으로 낙무극의 칼을 상대하겠다는 거요?" "싸우는건 병기들이 아니라 나와 낙무극이오." "당신은 낙무극의 어린도(어린도)가 어떤 것인줄 몰라서 그 런 말을 하는 거요. 무공은 둘째치고 낙무극의 어린도는 그런 볼품없는 나무토막으로는 막을 수 없는 무시무시한 보도(보도) 란 말이오." 사마결이 얼굴에 핏대를 올리며 떠들어 댔으나 조자건은 표 정하나 바꾸지 않았다. "모양이야 앞으로 다듬으면 되는 것이니 너무 그렇게 타박하 지 마시오." 이어 그는 어이가 없어 하는 사마결의 어깨를 두드렸다. "우선 이 담자들은 당신의 장춘곡에 보관합시다. 그런다음에 낙무극의 칼솜씨가 별호처럼 그렇게 무시무시한지 확인해 봐야 겠소." 그는 사마결의 반응도 기다리지 않고 먼저 다섯 개의 담자들 을 질머지고 성큼성큼 걸어갔다. 사마결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다가 쓴웃음을 지으며 나머지 담자들 들고 그의 뒤를 따라갔 다. 제12장 비 무 행 노 일, 어 인 배첩을 받아보기 전부터 낙무극(낙무극)은 기분이 나빴다. 한 장의 하얀 배첩. -비무(비무)를 청하오. 조자건. 배첩안에는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씌여 있었다. 그 글을 읽자 낙무극은 더욱 기분이 나빴다. "미친 놈. 이젠 별의별 잡놈까지 다 무적초자 흉내를 내는 군." 사 년전, 무적초자 화군악이 천하제일고수가 된 후 수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비무첩을 들고 천하를 누비고 다녔다. 게중에는 진정으로 무도(무도)를 연구하기 위해서 비무행을 하는 자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그야말로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 부분의 인물들이 명성을 얻기 위해 괜한 싸움을 걸어왔던 것이 다. 무림대회가 불과 몇 달앞으로 다가온 근래에는 이러한 비무 자(비무자)들이 더욱 불어나서 사방천지에 비무첩이 난무하는 형편이었다. 며칠전에도 낙무극을 꺾어 이름을 날려보고자 비무를 청해온 신출내기 고수 하나가 있었다. 낙무극은 아예 상대하기도 싫었 지만 그 자가 어찌나 집요하게 졸라대던지 귀찮고 화가 나서 비무에 응해 주었다. 결과는 물론 뻔했다. 그 자는 이 초(이초)만에 오른 팔이 잘린 채로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했던 것이다. 낙무극은 주저없이 자신의 어린 도로 그 자의 머리통을 날려 버렸다. 그는 항상 허명만 쫑아 남을 괴롭히는 그런 풋내기들을 제일 경멸해왔다. 그런데 오늘 또 그런 미친 놈 하나가 나타난 것이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며칠 전의 그 놈은 그래도 이 근처에서 제법 이름이 알려진 작자였는데 오늘 도전해 온 놈은 아예 듣 도 보도 못한 완전한 무명(무명)이라는 점 뿐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보주(보주)님?" 비무첩을 들고 왔던 호위무사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 럽게 물었다. "그냥 내쫑아 버릴까요?" 낙무극은 잠시 인상을 찡그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들여보내라." "예?" 호위무사가 그의 의도를 몰라 머뭇거릴 때 낙무극의 입가에 냉혹한 미소가 그려졌다. "흐흐...이런 놈들은 아예 단번에 숨통을 끊어 놓아야 한다. 그래야 다른 얼간이들이 겁을 먹고 쓸데없는 짓거리를 하지 않 을 것이다." 낙무극의 음성은 진한 살기가 뚝뚝 떨어질만큼 무시무시해서 호위무사는 급히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낙무극의 나이는 올해 마흔 두 살. 열 네살 때부터 무공을 익혔으며 사부는 회하(회하)일대를 주름잡았던 회하일도(회하일도) 냉풍(냉풍)이었다. 낙무극이 냉풍의 문하를 나온 것은 그의 나이 서른 살이 되 었을 때였는데 그의 출도가 이렇게 늦은 것은 순전히 냉풍이 자신의 마지막 절기인 절명십삼도(절명십삼도)를 완벽하게 익 힐 때까지 낙무극을 붙잡아 두었기 때문이었다. 냉풍의 기대대로 낙무극은 출도한 지 불과 일 년만에 섬서 (섬서)지방에서 제일가는 고수가 되었으며 강북(강북)에서 가 장 칼을 잘 쓰는 열 사람중에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의 절명십삼도는 한 치의 사정도 보지 않고 상대를 베어 넘기는 무서운 도법으로, 눈깜박할 사이에 벼락같은 십삼도가 떨어지면 아무도 제대로 받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특히 몇 년전에 우연히 입수한 어린도(어린도)로 인해 그의 절명십삼도는 더욱 가공할 위력을 나타내게 되었다. 어린도는 천하에 이름난 보도로서 금석(금석)을 두부처럼 잘 라버리는 위력이 있었다. 어린도를 손에 쥔 낙무극은 마치 날개달린 천마(천마)처럼 더욱 쟁쟁한 위명을 날려서 이제는 강호에서 칼을 잘 쓰는 사 람이야기를 할때는 언제나 그의 이름이 앞부분에 오르내리곤 했다. 낙무극이 태사의에 앉아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을때 호위무 사가 한 사람을 데리고 대청안으로 들어왔다. 낙무극은 안광을 번뜩이며 그 자를 노려보았다. 호위무사를 따라 들어온 인물은 알록달록한 화의를 걸친 괴 이한 몰골의 사나이였다. 낙무극은 그 화의사나이의 상판을 보 자 갑자기 차를 마실 기분이 싹 가시고 말았다. (자식...더럽게도 못생겼군. 저 놈이 비무첩을 보내온 조자 건이란 놈인가?) 낙무극이 눈쌀을 찌푸릴 때 다시 화의사나이 뒤로 한 사람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팔뚝이 드러나는 짧은 백삼(백삼)을 입고 이마에 백건 을 맨 키가 훤칠한 청년이었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중반쯤 되어 보였는데 눈빛이 아주 차 고 맑았다. 한 손에는 뭉툭한 나무토막 비슷한 것을 들고 있었는데 자세 히 보니 비슷한게 아니라 진짜 나무토막이었다. 단지 끝부분을 엉성하게 다듬어 손잡이처럼 하여 잡고 있는게 여느 나무토막 과 다를 뿐이었다. 백의사내는 그게 무슨 보검(보검)이라도 되는양 오른쪽 어깨 에 척 올려 놓은 채로 태연자약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낙무극은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목검과 나무토막도 구별하지 못하는 촌놈 하나와 보기만 해 도 밥맛이 뚝 떨어질 것 같은 못난이. 둘 중 누가 비무첩을 보 낸 놈인지 모르지만 정말 분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게 아닌 가? 낙무극은 절로 짜증스러워져서 싸늘하게 소리쳤다. "누가 비무첩을 보낸 놈이냐?" 나무막대를 들고 있는 백의사내가 앞으로 나섰다. "나요." 낙무극은 싸늘한 안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왠만한 고수라면 보기만 해도 질려버릴 만큼 무시무시한 눈 빛이었다. 그런데도 백의사내는 태연한 신색으로 그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낙무극의 눈꼬리가 꿈틀거렸다. 차갑고 맑게 정지(정지)되어 있는 눈. 그 눈을 보자 낙무극의 마음 한 구석이 싸늘하게 식어왔다. (대단한 정력(정력)을 가진 놈이군.) 낙무극은 움찔하여 상대를 경시하던 생각을 달리했다.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던 고수들이 때때로 무명의 인물들에게 의외의 패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그중에는 물론 상대의 무공이 월등해서 패하는 경우도 있지 만 태반이 상대가 이름이 없는 자라고 너무 안이하게 대처했기 때문이었다. 낙무극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의 냉정한 눈 빛을 보자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상대가 만만치 않은 인물임을 직감했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좀더 차분한 눈으로 바라보자 백의사내는 확실히 여느 신진고수(신진고수)들과는 조금 달랐다. 신진고수들이 처음 비무를 하게 되면 누구나가 흥분을 하기 마련이다. 남과 처음으로 무예를 겨룬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뜨고 긴장 되어 몸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경우가 많다. 게중에는 너무 긴 장하여 자신이 가진 실력을 반도 채 펼치지 못하고 쓰러지는 자들도 많았다. 그런데 눈앞의 백의사내는 조금도 흥분하거나 긴장한 것 같 지 않았다. 오히려 나무막대를 들고 태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자세는 수많은 격전을 치룬 노강호(노강호)처럼 노련해 보이기 조차 했다. 낙무극이 안광을 빛내며 찬찬히 살피고 있을 때 백의사내가 담담한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낙양(낙양)의 조자건이 한 수 배우러 왔소." 낙무극은 다시 한 번 머리를 굴려 보았으나 무림에서 조자건 이란 인물이 있다는 말은 들어본 기억이 전혀 없었다. 낙무극은 가볍게 손뼉을 한 번 쳤다. 곧 대청뒤에서 시비 하 나가 나타나 머리를 조아렸다. "내 칼을 가져 오너라." 지시를 받은 시비가 사라지자 낙무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 어났다. "낙양에서 조씨 성을 가진 자라면 낙양대협(낙양대협) 조검 행(조검행)이 제일 유명한데 너는 조검행의 일족(일족)이냐?" 백의사내,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럼 낙양제일고수인 팔선검(팔선검) 이횡(이횡)의 문하 냐?" "아니오." "그럼 사문(사문)이 어디냐?" "당신이 이긴다면 내 사문이 어디든 신경쓸 필요가 없을거 요. 그리고 내가 이긴다면 당신이 내 사문을 안다한들 무슨 소 용이 있겠소?" 낙무극은 조자건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싸늘한 웃음을 흘렸 다. "흐흐...건방진 놈이군. 네 놈이 말하지 않아도 몇 수만 겨 루어 본다면 나는 네 놈의 사문을 알아낼 수 있다." 조자건은 빙긋 웃을 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때 마침 시비가 칼을 하나 들고 대청안으로 들어왔다. 낙 무극은 시비에게서 칼을 건네받자 얼굴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칼은 무척 특이했다. 너비나 길이는 다른 칼과 비슷했는데 날이 기이하다 할 정도 로 얇았다. 어찌나 얇은지 마치 종이로 만든 칼 같았다. 허나 도신(도 신)에 흐르는 섬찝한 예기(예기)는 그것이 결코 종이로 만든 칼이 아님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무림의 십오대보도(십오대보도)중 하나로 꼽히 고 있는 어린도였다. 어린도는 날카롭기도 물론 날카롭지만 한 가지 기이한 특징 을 가지고 있었다. 안력이 예리한 고수가 자세히 살펴본다면 칼 겉표면에 조그 만 돌기같은 것이 무수히 나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 돌 기는 매미장처럼 얇팍한 수정(수정)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일단 칼을 쥔 사람이 공력을 주입하게 되면 그 수정돌기들이 일제히 일어나 무수한 칼날로 변해 버리고 만다. 그 모양이 마치 물고 기(어)의 비늘(인)같다고 해서 어린도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 다. 얄팍한 강도의 표면에 나 있는 무수한 칼날들은 스치기만 해 도 살이 베어지고 뼈가 갈라지는 무서운 위력이 있어서 막아내 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왠만한 보검이라도 이 어린도의 표면에 나 있는 어린에 닿게 되면 잘라지거나 뚝뚝 부러지고 만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이 어린도의 차가운 칼날아래 한 줌 이슬로 사라졌는 지 모른다. 낙무극은 어린도를 손아귀에 움켜쥐자 무궁한 호승심이 불같 이 일어났다. "애송이. 어서 와라. 내 외호(외호)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 님을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조자건은 여전히 나무막대를 어깨에 올려 놓은 채 미동도 않 고 있었다. 낙무극은 한동안 날카로운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했으나 그가 공격해 올 기색을 보이지 않자 눈썹을 치켜 세웠다. (이 놈이 감히 나보고 선수(선수)를 쓰라는 건가?) 무림인들간의 비무에서는 이름이 덜 알려진 쪽이, 그리고 나 이가 적은 쪽이 먼저 공격을 하는 것이 일종의 불문율(불문율) 처럼 되어 있었다. 그것은 예의(예의)이전에 상수(상수)가 하 수(하수)에게 베풀어주는 마지막 관용 같은 것이었다. 그것을 무시한다는 것은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싸우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였다. 낙무극의 마음에 진한 살심(살심)이 꾸역꾸역 피어 올랐다. 그는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번개같이 조자건에게 달려들며 어린도를 세차게 휘둘렀다. 쓰악! 공기가 갈라지는 듯한 예리한 파공음이 터져 나오며 주위에 싸늘한 도광(도광)이 뿜어 나왔다. 낙무극의 이 일도(일도)는 비록 별다른 변화는 없었지만 가 공할 정도로 빠르고 갑작스러워서 어린도의 모습은 아예 보이 지도 않았다. 과연 조자건은 낙무극의 가공할 기세에 질려 버렸는지 피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후후...놈! 베었다.....!) 낙무극이 회심의 미소를 날릴 순간, 조자건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그 순간 낙무극은 자신의 어린도가 빈 공간을 맥없이 가르고 지나가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반사적으로 허공을 가른 어린도 를 회수했다. 낙무극이 급히 시선을 돌려 보니 조자건은 처음의 그 장소에 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같은 자세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낙무극의 몸이 움찔했다. 그는 도무지 조자건이 무슨 신법(신법)으로 자신의 벼락같은 일도를 피해냈는지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분명히 상대를 베었다고 느낀 순간 그의 칼은 헛되이 허공을 스치고 지나갔으니 그로서는 어안이 벙벙할 수 밖에 없었다. 허나 그는 수많은 격전을 치룬 절세고수답게 금새 마음을 진 정시키고 어린도의 손잡이를 힘주어 움켜 잡았다. "이 놈. 과연 몸이 빠르군. 하지만 오늘 상대를 잘못 골랐 다. 내 절명십삼도 앞에서는 아무리 빠른 신법도 무용지물일 뿐이다." 낙무극은 싸늘하게 내뱉으며 수중의 어린도를 기이하게 휘둘 렀다. 파파팍! 마치 부채질을 하는 듯한 음향과 함께 어린도의 도신이 부르 르 떨리며 세 가닥의 빛살같은 섬광이 조자건의 가슴팍을 향해 폭사되어 나왔다. 낙무극이 드디어 절명십삼도의 하나인 사월삼성(사월삼성)을 펼친 것이다. 조자건은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 몸을 빙글 돌리며 왼 손 을 쭉 뻗었다. 순간 무서운 속도로 쏘아져 가던 어린도광이 조자건이 방금 있던 자리를 스치고 지나감과 동시에 조자건의 손이 주춤거리 고 있는 낙무극의 코 앞으로 다가왔다. 그 시기의 적절함은 그 야말로 자로 잰 것 같았다. "헛!" 낙무극은 자신도 모르게 다급한 경호성을 내지르며 수중의 어린도로 다가오는 조자건의 왼손을 빗발처럼 그어댔다. 절명 십삼도중의 절초인 구살분금(구살분금)이었다. 평소에 낙무극이 이 구살분금을 펼치면 제아무리 고강한 무 공의 소유자라도 이 빗살처럼 퍼부어지는 가공할 도의 공세를 견디지 못하고 뒤로 정신없이 몰리게 마련이다. 헌데 어찌된 영문인지 그를 향해 다가들던 조자건의 왼손은 구살분금의 막 강한 도세속을 너무도 유연히 뚫고 계속 접근해 오는 것이 아 닌가? 할 수 없이 낙무극은 급히 어린도를 회수하며 뒤로 세 걸음 물러섰다. 졸지에 뒤로 주르르 밀려난 낙무극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 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자건이 조금전에 펼친 것은 분명 평범한 비화수(비화수)중 의 수점매화(수점매화)라는 초식이었다. 그런데 그 보잘 것 없 는 수점매화가 어떻게 자신의 구살분금을 뚫고 들어올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이상한 것은 조자건의 태도였다. 고수들간의 싸움에서는 일단 승기(승기)를 잡았으면 놓치지 말고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헌데 조자건은 공격해 들어오기는 커녕 오히려 뒤로 한 걸음 물러나서 낙무극으로 하여금 자세를 가다듬도록 허용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낙무극은 이것을 보고 무공은 예상외로 고강할 지 몰라도 역 시 풋내기는 풋내기라고 생각했다. 이런 풋내기에게 십 여년을 도산검림(도산검림)속에서 살아온 자신이 패할 리는 없는 것이 다. (이번에야 말로.....) 낙무극은 새로운 투지를 불태우며 조자건을 향해 달려들며 벼락같은 칠도(칠도)를 내질렀다. 슈슈슈슉! 그의 이번 공격은 전력을 다한 것이었기 때문에 조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놀라운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번에는 조 자건도 당하지 못하겠다고 느꼈는지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허나 물러났다고 느낀 순간, 스윽! 그의 몸은 마치 급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처럼 유연하 게 도광을 뚫고 낙무극의 면전으로 다가들었다. 낙무극은 마치 귀신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자건이 다시 왼손을 내뻗자 그의 상반신 전체가 그 손아래 무방비상태 로 노출되었다. (좋다! 이 놈...!) 낙무극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며 십이성(십이성) 공력을 끌어올렸다. 츠츠츠츳.... 괴이한 음향과 함께 그의 수중에 있던 어린도가 갑자기 두 배로 부풀어오르며 섬찝한 도기(도기)가 뿜어나오기 시작했다. 허나 사실은 어린도가 커진 것은 아니었다. 낙무극이 어린도에 공력을 주입시킴에 따라 칼 표면에 나 있 던 어린들이 일제히 곤두서서 갑자기 커진 것처럼 보인 것이 다. 낙무극은 어린도강(어린도 )을 끌어올린 채로 절명십삼도의 절초들을 연거푸 전개하기 시작했다. 파파파팍.... 주위 사방이 시퍼런 도기에 휩쓸리며 매서운 경기가 폭풍처 럼 일어났다. 조자건의 손이 제아무리 빠르고 강력하다 해도 이처럼 무시무시한 도기속에 휩쓸리게 되면 그대로 잘라져 버 릴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었다. 과연 조자건은 급히 손을 거두며 뒤로 두 걸음 재빠르게 물 러났다. 낙무극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비호같이 다가들 며 연거푸 열 세번이나 어린도를 상하(상하)로 그어댔다. 바로 절명십삼도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십삼연환참(십삼연환 참)의 절초가 전개된 것이다. 이 십삼연환참은 열 세 번의 칼질이 각기 다른 변화를 일으 켜 상대의 전신을 핍박하기 때문에 피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는데 그 무서움이 있었다. 조자건도 일시지간 피할 방법을 찾지 못한 듯 그 자리에 우 두커니 서 있었다. "앗?" 뒤에서 이들의 격전을 구경하고 있던 화의사나이가 놀란 경 호성을 터뜨리고 낙무극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떠오를 순간, 조자건은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있던 나무막대를 내려 자신 을 향해 폭발치듯 다가오는 도광 한가운데를 푹 찔렀다. 딱! 무언가가 부러지는 음향이 들리며 금시라도 조자건의 전신을 짓이길 듯 하던 무시무시한 도광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화의 사나이는 영문을 몰라 급히 앞을 바라보다 두눈을 찢어질 듯 부릅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