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14편 (14/87)
그 발길질은 강호의 하류무사들이나 시전하는 시시한 원앙각 (원앙각)같았으나 이상하게도 두인은 뻔히 괴인의 발이 자신에 게 날아오는 것을 보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다. 쾅! "크윽!" 두인은 다시 맥없이 발길질에 걷어차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괴인은 쓰러진 그의 머리를 지그시 짓밟았다. "크으윽......!" 두인은 일어나려고 발버둥을 쳤으나 꼼짝도 하지 못하고 얼 굴이 온통 자신이 흘린 피와 흙으로 범벅이 되었다. "이제 당신도 남에게 머리를 짓밟힌다는 것이 그리 기분좋은 일은 아니라는걸 알았겠지?" 그제서야 괴인은 두인의 머리를 밟던 발을 거두고 바닥에 쓰 러져 있는 곽회의 몸을 안아들더니 모옥안으로 들어갔다. 탁! 모옥의 문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굳게 닫혔다. 간신히 고개를 쳐든 두인은 이를 부드득 갈며 닫힌 방문을 무섭게 노려 보았다. "이......이놈! 기다려라. 본 맹을 건드린 것이 얼마나 커다 란 실수였는 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 줄테니......" 두인은 비실비실 바닥에서 일어나 입가에 묻은 피를 닦을 생 각도 하지 않고 서둘러 모옥 앞을 떠나갔다. 곽회가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주위가 이미 어둑어둑해진 저 녁 무렵이었다. "으으음......" 힘겨운 신음을 토하며 간신히 눈을 뜬 곽회는 자신이 어느 허름한 침상위에 누워 있음을 깨달았다. 침상은 더럽고 악취를 풍겼으나 방은 더욱 더럽고 더욱 심한 악취가 풍기고 있었다. 마치 돼지우리를 연상케 하는 그런 곳 이었다. 곽회는 비록 그 악취로 인해 머리가 어지러워지고 구토를 느 꼈지만 호기심이 강렬하게 자극돼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그가 쓰러지기 직전 보았던 대나무로 아무렇게나 만 든 그 모옥안이 분명했다. 모옥의 벽과 바닥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고, 먹다만 반찬찌꺼 기, 솥, 냄비가 근처에 늘어져 있었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머리를 치렁치렁 늘어뜨린 괴인이 앉 아 있었다. 괴인은 때론 넋빠진 것같이 멍하니 앉아 있다가 갑자기 껑충 뛰어 일어나 허공에다 손을 휘둘러대곤 했다. 그것은 얼핏 보 기에 평범하기 그지없는 복마검법(복마검법)의 검초 같았으나 자세히 보니 여타 복마검법과는 어딘가 달랐다. 허나 어느 점이 다른가 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살펴보아도 알 수가 없었다. 괴인은 곽회가 깨어난 것 조차 전혀 깨닫지 못하는 듯 그에 게 아예 눈도 돌리지 않았다. 곽회는 한동안 괴인이 실성한 듯 정신없이 손을 휘두르는 광 경을 지켜보고 있었으나 다시 상처가 쑤시고 머리가 어지러워 자리에 누운 채 눈을 감았다. 온 몸이 불로 지진 듯 쑤시고 아 파왔다. 곽회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이 어떻게 두인의 손에서 살아날 수 있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리 오래 생각할 것도 없 이 그는 자신이 괴인에 의해 구출되었다는 것을 쉽사리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그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것은 괴인이 대체 누구이기에 무적검수맹의 보복을 두려워 하지 않고 자신을 구했느냐는 것 이었다. 그는 두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두인은 철검백건대의 십이통령(십이통령)중 하나로, 섬서성 에서는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뛰어난 고수였다. 무적검수맹은 모두 일대(일대), 일전(일전), 일원(일원)의 세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중 가장 세력이 방대하고 중추 적인 역할을 하는 곳이 바로 일대인 철검백건대였다. 철검백건대의 통령이라면 강호무림에서 누구나가 부러워하고 일견 두려워하는 자리였다. 통령의 위로는 오직 두 명의 호법(호법)과 철검백건대의 대 장(대장)만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두인의 손에서 자신을 구했다는 것은 괴인의 솜씨가 보통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당금 무림에서 눈앞의 괴인과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곽회는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다시 힘겹게 눈을 떴다. 그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은 한 쌍의 차갑고 맑게 빛 나는 눈이었다. 어느 새 괴인이 침상옆에 선 채 그를 내려다 보고 있었던 것 이다. 곽회는 일어서려고 애를 쓰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뉘신지는 모르나......구해 주어서 정말 고맙소." 괴인은 아무 말도 없이 일어나려는 그의 어깨를 지그시 눌렀 다. 그것은 그대로 누워 있으라는 무언(무언)의 표시였다. 곽회 는 일어나려는 것을 포기하고 다시 침상위에 누웠다. 그제서야 비로소 곽회는 괴인의 얼굴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 다. 괴인의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 이마를 반이나 가리웠고 입가 와 턱에는 수염이 수북히 나 있었지만 생각보다는 나이가 많은 것 같지 않았다. 곽회는 괴인이 아직 서른을 넘지 않았을 거라 고 생각했다. 이목구비의 윤곽은 의외로 뚜렷했다. 괴인은 곽회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자 희미한 미소를 떠 올리며 불쑥 입을 열었다. "당신은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오. 이곳에서 며칠 푹 쉬었다 가 상처가 아물면 떠나도록 하시오." 그 말을 끝으로 괴인은 방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곽회는 침상에 누운 채 그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것 을 바라보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소리쳐 물었다. "귀하의 이름을 알 수 있겠소?" 괴인은 밖으로 나가다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는 씨익 웃었다. "나는 조자건(조자건) 이라 하오." 이, 집 형 조자건은 근처의 산봉우리를 뛰어다녔다. 얼마되지 않아 그는 필요한 몇 가지 약초(약초)들을 캘 수 있었다. 모옥으로 돌아온 그는 약초들을 짓이겨 즙을 내어 곽회의 상 처에 발랐다. 그의 동작은 차분했고 아주 익숙했다. 곽회는 묵묵히 그가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는 것을 보고 있다 가 불쑥 물었다. "귀하는 의원(의원)이시오?"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그건 왜 물으시오?" "다른 사람들을 치료해 본 경험이 무척 많은 것 같아서 그렇 소."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었다. "무척 익숙해 보인단 말이오?" "그렇소." "그건 내가 과거에 어떤 무공을 익히느라 매일같이 심한 외 상(외상)을 입은 적이 있기 때문이오. 그래서 이런 상처에는 어떤 약초들이 잘 듣는지 제법 알 수 있게 되었소." "외공(외공) 의 일종이었소?" "그렇소." 곽회는 호기심이 났으나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다른 사람 의 무공에 대해 세세하게 물어본다는 것은 무림인들에게는 금 기(금기)시되는 일이었다. 조자건이 발라준 약즙의 효과는 과연 뛰어나서 곽회는 금새 상처부위의 통증이 가시며 전신이 가려워지는 것을 느꼈다. 동 시에 전신이 솜처럼 무거워지며 저절로 졸음이 밀려왔다. 조자건은 곽회의 그런 상태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지 그의 어 깨를 가만히 두드렸다. "이제 한잠을 푹 자고 나면 한결 개운해 질거요." 곽회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었으나 어느 새 졸음이 밀려와 꿈속으로 빠져 들었다. 곽회가 깊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 조자건은 천천히 밖으로 나 왔다. 주위는 어느 새 칠흑같이 어두어져 있었다. 근처에 무성한 수림들은 밤바람이 부는대로 흔들리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개 울물이 흐르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조자건은 개울 옆에 앉아 조용히 흐르는 개울물을 응시했다. 흡사 정겨운 물 흐르는 소리를 통해 흘러간 과거를, 혹은 앞 으로 닥쳐올 운명을 그려 보는 듯 했다. 이 년(이년)! 그가 태극동을 떠나 이곳 종남산의 깊숙한 산중(산중)에 거 처를 정한지도 벌써 이 년이 흘렀다. 사부인 동곽선생이 죽은 후 그는 간단한 행랑을 꾸려 인적이 드문 심산유곡(심산유곡)을 떠돌다가 이곳에 정착했던 것이다. 이곳은 몇 가지 점에서 그의 마음에 꼭 들었다. 첫째는 유달 리 맑고 신선한 공기가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태양이 빤히 내 리쬐어 좌공을 연마하기에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가장 중요한 점은 계곡이 깊고 수림이 짙게 우거져 있어 남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공 수련에만 전념할 수 있다는 것 이었다. 사실 태극동은 방문객들이 적다고는 할 수 없어 무공에만 몰 두하기에는 적지 않게 불편했다. 허나 이제 이 년동안의 고요를 깨고 이곳의 적막과 평온도 방해를 받게 되었다. 물론 전혀 우연(우연)한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조 자건은 이번 일로 인해서 이곳에서 더 이상의 수련은 할 수 없 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지난 이 년동안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태극문의 열 가지 무공을 익히는데만 주력했다. 심지어는 식사시간을 줄이기 위해 하루 한 끼만 먹었고, 세 수나 목욕은 아예 생각지도 못했다. 누구라 해도 이 년동안 그와같은 생활을 해 왔다면 이런 몰 골로 변하기 마련이다. 허나 그는 아직도 자신의 무공이 완벽하다고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아니, 자신의 무공이 완벽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없다 는 것이 더 분명한 말일 것이다. 대체 어느 정도가 완벽한 것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그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지난 세월 동안 그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 뿐이었다. 그는 이 년동안 후회 없는 세월을 보내왔다. 그 세월동안 무엇을 얻었던 아니면 아무 것도 얻지 못했던 그것은 중요한게 아니다. 단지 최선을 다했다는 그것만으로도 조자건은 사부인 동곽선 생과 형인 조립산의 영혼 앞에 떳떳할 수 있는 것이다. 이틀이 지나자 곽회는 침상에서 일어나 걸을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동안에 조자건은 그에 대해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벌써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을 것이 다. 왜 무적검수맹을 배반하게 되었는가? 어떻게 두인에게 쫏겨 사경(사경)에 처하게 되었는가? 대체 곽회에게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가? 허나 조자건은 이러한 의문에 대해서 결코 묻지 않았다. 어느 누구에게도 각자 비밀을 간직할 권리는 있는 것이며, 또한 어느 누구도 그 권리를 파괴할 권리를 가진 사람은 없다 는 것을 조자건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곽회도 자신에 대한 것은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삼일 째 되는 날 아침에 조자건을 바라보며 진심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정말 고마웠소. 살아 있는 한 이 은혜는 결코 잊지 않을거 요." 곽회는 비록 커다란 소리로 말하지는 않았으나 조자건은 그 의 진정(진정)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갈거요?" 곽회는 이미 자신이 앞으로 행동할 일을 정해 놓은 듯 결연 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한 가지 의혹을 풀어야 하오. 그 의혹을 풀기전에는 절대로 눈을 감을 수 없소." 조자건은 그의 음성과 표정에서 한 줄기 비장한 기색을 읽을 수 있었다. 곽회는 잠시 몇 번이나 망설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말하시오." "만일 내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한 사람에게 내 말을 전해 주시오." 곽회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철검백건대의 대장인 절정검(절정검) 사공척(사공척)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을 조심하라고 전해 주시오. 그가 바로 배반 자라고." 절정검 사공척은 강호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고수중의 한 사 람이었다. 그는 약관을 갓 넘은 나이에 무적검수맹에 가입했으며 가입 한지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철검백건대의 대장이 되었다. 무 적검수맹 내에서 그의 서열(서열)은 오위(오위) 이내였으며, 무공으로는 능히 일이위를 다툴 정도였다. 그는 철검백건대 뿐만 아니라 강호무림의 수많은 청년고수들 의 우상(우상)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자건은 곽회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곽회는 다시 한 번 감격에 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휑하 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이곳에 올 때는 비록 비참한 몰골이었으나 떠날 때의 그의 뒷모습은 사나이다운 의연함이 있었다. 그는 다시 죄인(죄인) 곽회가 아닌 분양쾌검 곽회로 되돌아 온 것이다. 조자건은 그의 굳건한 뒷모습을 바라보며 왠지 이제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날 저녁. 조자건은 저녁 수련을 마치고 막 침상에 누우려다가 자리에 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어느 새 모옥은 수 십명의 백의인들에게 둘러 쌓여 있었다. 모옥의 앞에는 세 명의 인물들이 우뚝 선 채 방문을 열고 나 오는 그를 차가운 눈으로 쏘아보고 있었다. 조자건은 그중 우측의 인물이 몇 일전에 곽회를 쫏아왔던 두 인이란 자임을 알아 보았다. 중앙에 서 있는 인물은 체구가 아주 당당한 황포중년인이었 다. 중년인의 안광은 마치 두 개의 횃불처럼 강렬했고, 전신에서 는 패도(패도)적인 기운이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중년인의 허리춤에는 하늘을 나는 비룡(비룡)처럼 기이하게 구부러진 기 형검(기형검)이 매어져 있었다. 좌측의 인물은 회의를 걸친 냉막한 인상의 청년이었다. 회의청년은 두인과 마찬가지로 이마에는 백건을 두르고 허리 춤에 철검을 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철검백건대의 인물임이 분 명했다. 두인은 조자건을 보자 두 눈에 살광(살광)을 번뜩이며 음산 한 웃음을 날렸다. "흐흐......이 놈. 아직 나를 잊지는 않았겠지?" 조자건은 그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묵묵히 중앙의 황포 중년인을 바라보았다. 황포중년인은 조자건의 전신을 쓰윽 훑어 보다가 종(종)이 울리듯 굉량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본인은 무적검수맹의 집형전(집형전) 소속인 용형검(용형 검) 단리건(단리건)이라 하오. 본 맹의 반도(반도) 한 명이 귀 하의 거처에 숨어 있다는 말을 들었소. 그를 내 주시겠소?" 그의 말은 비록 정중했으나 말투와 표정에는 은연중 상대를 위압하는 기운이 담겨 있었다. 집형전은 무적검수맹의 삼대조직(삼대조직)인 일대, 일전, 일원 중 일전이었다. 그들은 무적검수맹의 형법(형법)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숫자 는 얼마되지 않았으나 하나같이 당세무림을 떨쳐 울리는 무서 운 고수들이었다. 특히 용형검 단리건은 집형전의 십대집법(십대집법)중 한 사 람으로 자타가 공인하는 절세의 검객이었다. 그의 좌측에 있는 회의청년은 두인과 마찬가지로 철검백건대 의 십이통령중 한 사람인 귀검(귀검) 음태평(음태평)이었다. 조자건은 짤막하게 말했다. "그는 여기 없소." 단리건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게 정말이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아침에 떠났소." 그때 두인이 앞으로 나서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 하지 마라! 그 놈은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할텐 데 어떻게 제발로 걸을 수 있단 말이냐?" 조자건은 그의 말에는 아예 대꾸도 하지 않고 담담한 음성으 로 말했다. "믿을 수 없다면 모옥을 조사해도 좋소. 하지만 나는 잠을 자야 하니 일각내로 끝내고 물러가 주시오."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그들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쓸데없 는 번거로움을 만들기 싫어서였다. 허나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단리건은 냉엄한 눈으로 조자건을 쏘아보았다. "곽회가 이곳에 있던 없던 귀하가 그를 도운 것은 본 맹의 행사를 방해 하는 짓이었소. 귀하는 그 댓가를 치루어야만 하 오." "어떤 식으로 치루면 되겠소?" 단리건의 음성은 칼로 물을 자르는 듯 단호하기 그지 없었 다. "본 맹의 반도를 도운 죄(죄)는 양 손목을 자르고 십 년동안 수옥(수옥)에 가두는 것이오." 그것은 너무도 가혹하기 그지없는 형벌이었다. 조자건은 조금도 놀라지 않고 오히려 피식 웃었다. "다른 방법은 없소?" 단리건의 눈에서 화광(화광)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없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휘익! 두인과 음태평은 비호보다도 빠르게 조자건의 양쪽으로 짓쳐 들었다. 그들의 공세는 그야말로 악랄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했다. 허나 조자건의 몸은 이미 거기에 없었다. 그들의 공세가 채 다가서기도 전에 조자건의 몸은 흡사 허깨 비처럼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헛!" 두인과 음태평은 다급한 헛소리를 토하며 급히 손을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그들의 귓전으로 단리건의 경악성 이 들려왔다. "머리위다!" 두 사람의 반응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신속했다. 단리건의 음성이 들려오자마자 그들은 번개같이 바닥으로 몸 을 굴리며 허공을 향해 각기 이검(이검)씩을 격출했다. 팟! 팟! 네 가닥의 빛살같은 검기가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허나 그 순간, "크윽!" "헉!" 두인과 음태평은 각기 손목에 엄청난 통증을 느끼고 수중에 들고 있던 철검을 놓치고 말았다. 그들은 오만상을 찌푸린 채 손목을 부여잡고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놀랍게도 조자건은 처음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의 오른손에 두 자루의 철검이 쥐어져 있지만 않았다면 그는 아예 움직이지도 않았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이럴수가......" 두인과 음태평은 손목의 통증도 잊은 듯 입을 딱 벌린 채 경 악의 빛을 감추지 못했다. 허나 그들중 가장 놀란 사람은 용형검 단리건이었다. 오직 그 만이 조자건이 무슨 수법으로 두인과 음태평의 손에 서 철검을 빼앗았는지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천하무림에 산재한 수많은 금나수법(금나수법)중에서 도 가장 형편없는 종류인 포천삼(포천삼)이었다. 포천삼은 사 실 금나수법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소맷자락을 휘둘러 하늘을 가둔다는 거창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실제로는 소매로 하늘을 가리는 시늉을 할 뿐, 별다른 변화도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자건이 포천삼의 식으로 소맷자락을 휘두르자 기이 하게도 두인과 음태평의 살인적인 공세가 눈녹듯이 사라지며 그들의 장검이 마치 자석에 빨려 들어가듯 조자건의 소맷자락 으로 끌려 들어간 것이 아닌가? 단리건 자신도 직접 눈으로 보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어찌 보잘 것 없는 포천삼에 이와같은 위력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혹시 상대의 수법은 포천삼과 형태만 비슷할 뿐 전혀 다른 무서운 절학이 아닐까? 단리건은 아마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허나 상대가 무슨 수법을 사용했던 결코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했다. 그는 낮빛을 무겁게 굳힌 채 조자건에게로 다가갔다. "과연 한가닥 재주가 있군. 그러나 단신(단신)으로 무적검수 맹에 대항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그의 오른손은 어느 새 용형검의 손잡이를 힘주어 움켜잡고 있었다. 조자건은 여전히 두 자루의 철검을 쥔 채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단리건의 눈빛이 싸늘하게 굳어질 순간, 쉬아악! 그의 용형검이 기이한 호곡성을 내며 무서운 속도로 뽑혀 나 왔다. 단리건의 용형오식(용형오식)중 발검식(발검식)인 묵룡탈심 (묵룡탈심)은 천하무림에서 가장 빠른 다섯 가지 발검식 중의 하나였다. 그 쾌속함이란 직접 당해본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가공스러운 것이었다. 단리건의 입가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떠 올랐다. 그는 자신의 묵룡탈심이 조자건의 미간을 가르고 지나갔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의 미소는 채 반도 퍼지기 전에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조자건은 단순하게 고개를 옆으로 반 자쯤 이동했을 뿐이었 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단리건의 용형검은 아슬아슬하게 조자건의 관자놀이를 스치 고 지나가 버렸다. 그리고 어느사이엔지 조자건의 수중에 쥐어져 있던 두 개의 철검은 단리건의 양쪽 옆구리에 하나씩 꽂힌 채 흔들거리고 있 었다. 상대가 힘을 주지 않아서인지 철검은 그의 피부가죽만을 살 짝 뚫고 들어왔을 뿐이다. 허나 단리건의 마음은 차가운 비수로 심장을 관통당한 듯 싸 늘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묵룡탈심을 이토록 완벽하게 피해낸 사람을 본적이 없었다. 또한 이토록 간단한 수법으로 자신을 제압하는 사람도 본 적 이 없었다. 눈앞의 괴인이 사용한 수법은 분명 비화수(비화수)중의 낙서 비화(낙서비화)를 검으로 시전한 것이었다. 허나 그 평범한 낙 서비화 초식이 이토록 무서울 줄이야...... 단리건은 옆구리가 찢긴 고통도 잊은 채 멀거니 조자건을 바 라보고 있었다. 한쪽에 서 있던 두인과 음태평도 할 말을 잊은 듯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 용형검 단리건이 정체모를 괴인에게 단 일 초만에 제압당했 다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믿지 못할 일이 자산들의 눈앞에 벌어진 것 이다. 조자건은 단리건의 창백하게 굳어진 얼굴을 주시하며 담담하 게 입을 열었다. "당신들에게 용건이 없다면 이만 가보시오." 단리건은 아무 말없이 자신의 양쪽 옆구리에 박혀 있는 두 개의 철검을 뽑았다. 쭉! 핏물이 뿜어나왔으나 단리건은 조금도 개의치않고 두 개의 철검을 원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두인과 음태평도 묵묵히 철 검을 받아들었다. 단리건은 조자건을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몸 을 돌려 걸어갔다. 두인과 음태평, 모옥을 에워쌌던 열 다섯 명의 백의무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조그만 기척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조자건은 그들의 모습이 어둠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고 서 있다가 우측의 숲속으로 시선을 돌렸다. "밤바람도 찬데 이제 그만 나오는게 어떻겠소?" 순간, "하하......정말 굉장한 이목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