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무협지]태극문 - 51편 (51/87)

2026-09-23 18:02:56 조회 9
"......." "공손축은 비록 이 건물을 지었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신공원 밖으로 나온 적이 없네. 또한 그는 노조종과는 일면식도 없을 뿐 아니라 노조종을 일격에 살해할 만한 무공조차 가지고 있지 못하네. 그러니 그는 흉수가 될 수 없지." 원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궁소천은 횃불같이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럼 이제 본 맹주와 천룡대협이 남는데 자네가 보기에는 흉수가 우리 둘 중 누구일 것 같은가?" 원령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읍니다." 궁소천은 다그쳤다. "추측이라도 해보게." 원령의 얼굴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감히 추측할 수 없습니다." 사대금강중 원령과 가장 사이가 두터운 것은 다비금강(다비 금강) 원진(원진)이었다. 두 사람은 모두 소림장문인인 혜정의 문하일 뿐 아니라 나이 도 동갑이고 같은 고향 출신이라 그 친분이 남달랐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번의 참극에 대해서 서로 허심탄회한 의 견을 교환하기도 했다. "자네가 보기에 흉수일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은 누구인가?" 주위에 아무도 없을 때 원진은 원령을 바라보며 나직한 음성 으로 물었다. 원령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네." 원진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 다시 물었다. "듣기로는 궁맹주(궁맹주)는 어제 밤새 무적검수맹의 수뇌인 물들과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더군. 그와 술자리를 같이한 인물 만 해도 스무 명이 넘는다네." "......." "특히 그중 철선새제갈 소동루와는 연회가 파할때까지 함께 있었다네. 자네도 알다시피 소동루는 평생 허언(허언)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인물 아닌가?" "그렇지." "소동루는 궁맹주가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절대로 연 회장을 벗어난 일이 없다고 자신의 명예를 걸고 선언했네. 그 가 그렇게까지 말했다면 궁맹주는 혐의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걸세." 원령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면으로 원 진을 쳐다보았다. "자네가 말하려는 의도는 무엇인가?" 원진의 얼굴에 망설임의 표정이 떠올랐다. 하나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더니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노조종을 죽인 흉수는 반드시 잡아야 하네." "그거야 이를 말인가?" "그래서 말인데 밀실을 알고 있는 세 사람중에서 두 사람은 흉수가 될 가능성이 없네. 그렇다면 오직 한 사람이 남았을 뿐 이네." "자네는 감히 그 분을 의심하는 것인가?" "나는 단지 어제밤에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만 알고 싶을 뿐일세." 원령은 유달리 반짝이는 눈으로 원진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단지 그뿐인가?" 원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그 말만 해주면 나를 비롯한 누구도 그를 의심하지 않 을걸세. 아무 말이라도 좋으니 그가 자신이 어제 어디에 있었 는지만 밝힌다면 사람들은 안심할 수 있을걸세. "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의심받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을걸. 설사 생각한다 해도 그는 의심을 풀기 위 해서 구차한 변명 따위는 절대로 하지 않을걸세." 원진은 갑자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모두들 걱정하고 있네. 그가 어젯밤의 자신의 행방 에 대해서 절대로 먼저 입을 열지 않을까봐 두려워 하고 있 네." 원령의 얼굴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떠올랐다. 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무도 감히 그에게 그것에 대해 물어볼 사람도 없 겠지." 사건에 어떤 실마리를 던져준 사람은 사대금강중 가장 우둔 하다고 알려진 벽력금강 원각이었다. 원각은 백결대선사의 직계후손인 나한전(나한전) 전주 혜명 (혜명)의 제자였다. 백결대선사의 죽음에 가장 슬퍼한 사람도 그 였다. 그는 백결대선사의 시신을 발견한 그 시각부터 그 시신옆에 붙어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시신을 발견한지 여섯 시진 이 넘었건만 그는 식사도 하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은 채 밀실 의 한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러던 중 문득 그는 목없는 백결대선사의 두 손이 조금 이 상한 모양으로 굳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좌한 자세 그대 로 양 손을 무릎에 깎지껴 얹고 있었는데 그 손이 마치 무언가 를 쥐고 있는 듯 잔뜩 오무린 채로 정지해 있었던 것이다. 원각은 흉수의 흔적을 발견할 때까지 시신을 건드리거나 움 직여서는 안된다는 원령의 말이 생각이 났으나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억지로 백결대선사의 굳어진 양 손을 잡아 펼쳤다. 손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쭈글쭈글한 백결대선사의 왼쪽 손바닥에 희미한 혈흔 (혈흔)이 나 있을 뿐이었다. 그 혈흔은 오른손목의 가운데 손가락을 세게 눌러서 생긴 자 국이었다. 아마 백결대선사가 정좌해 있는 상태에서 머리통이 달아나는 최후의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오른손 중지(중지)를 눌러 왼손바 닥에 쓴 것 같았다. 가늘게 그어진 두 개의 핏자국! 그것은 '이(이)'자였다. "이것이 대체 무슨 의미일까?" 모여든 중인들은 백결대선사의 주름진 손바닥에 쓰여진 글자 를 보고 치밀어 오르는 의혹을 참지 못했다. 궁소천은 눈썹을 살짝 찌푸린 채 원령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노조종께서 흉수의 정체를 말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 까?" 원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럴 겁니다. 하지만 무슨 뜻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군 요." 중인들중 누군가가 나직한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혹시 무슨 자를 쓰려다가 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느 군..." 중인들은 소리가 난 곳을 돌아보았다. 번우량의 묵직한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백결대선사의 시신을 발견한 후 그가 입을 연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의혹어린 시선을 받고 있으면서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었다. 그것이 더욱 중인들 의 의혹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대체 그는 지난 밤에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아무도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고 번우량 자 신도 그에 대한 것은 전혀 말하지 않았다. 원령은 총기어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언가 생각나는 점이라도 있습니까?" 번우량은 담담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저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야." 원령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수도 있겠군요. 하지만 이(이)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무 척 많은데..." 그때 말없이 있던 원법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 난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게 있어요." 원령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게 무언가?" "대체 노조종께선 그 시각에 무엇을 하러 그 밀실에 들어가 셨을까요?" 그 말에 중인들은 흠칫하는 표정이었다. 확실히 그것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그동안 모두 들 백결대선사의 죽음과 흉수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만 신경을 썼지 누구도 그가 왜 저녁 시간에 그 밀실에 들어갔는가 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한데 원법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본 즉 확실히 기이한 일이 아 닐 수 없었다. 백결대선사가 살해된 시각은 대략 유시에서 술시사이로 추측 되고 있었다. 그것은 원각이 백결대사를 마지막으로 본 시각이 유시이고 그가 실종된 것을 알아차린 시각이 술시이기 때문이 다. 유시에서 술시사이라면 아직 저녁무렵으로 사람들의 왕래가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시간대였다. 따라서 은밀한 일을 처 리하기 위해서 밀실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렇다고 단순히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기에도 석 연치 않았다. 휴식을 취하려면 거실이나 연공실로도 충분한데 굳이 침실 깊숙이 있는 밀실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더우기 백결대선사가 연공실에서 조식(조식)을 취하다가 아 무런 기척도 없이 밀실로 들어간 것도 의문스러운 점이었다. 원법의 설명을 들은 원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네 말대로 의문스러운 점이 한 두군데가 아니로군. 대 체 노조종은 그 시간에 무엇때문에 밀실에 들어가신 것일까?" 원법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그 밀실은 대사형의 침실과 연결되어 있는데 대사형을 만나 려고 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원령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밀실이 대사형의 침실과 연결되어 있다고? 네가 그걸 어떻 게 아느냐?" 이번에는 원법이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었다. "그거요? 누군가 말하는걸 들었습니다." 원령은 안색이 변해 그에게 다그쳤다. "그게 누구냐?" 원법은 별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원령이 왜 이렇게 호들갑 을 떨까하고 궁금해 하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글쎄요...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아뭏든 분명히 누군가가 그런 소리를 하는 것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아라. 넷째야. 이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누가 너에게 그런 소리를 했느냐?" 원령의 안색이 심각해 질수록 원법은 더욱 영문을 몰라 당황 했다. "자...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분명히 어떤 공개석상에서 들은 것 같은데..." 원령은 낮빛이 무거워지며 음성 또한 평소의 그답지 않게 침 중해졌다. "원법. 이 일은 그냥 대충 넘어갈 성질의 것이 아니다. 네 말대로라면 대사형과 궁맹주 외에도 이곳에 밀실이 있다는 것 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데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 나지 않는단 말이냐?" 그제서야 원법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가 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금 아무도 감히 내색하지 않지만 가장 많은 의심을 받고 있는 사람은 번우량이었다. 번우량이 의심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곳에 밀실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그를 포함하여 세 사람밖에 되지 않기 때문 이었다. 그중 두 사람은 혐의가 없는 것이 분명한만큼 천하의 번우량으로서도 중인들의 의혹을 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더우기 번우량은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만한 어떠한 행동이 나 변명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만에 하나 번우량 외에 이곳에 밀실이 있는 것을 알 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자야 말로 흉수일 가능성이 농후했 다. 왜냐하면 번우량은 결코 백결대선사를 살해할 인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중인들의 시선이 원법에게로 집중되었다. 원법의 준수한 얼굴에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원법은 중인들의 따가운 시선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 졌다. 하나 조급하면 할 수록 그의 머리속은 잔뜩 헝클어져서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 다. "네째! 빨리 사실을 말해라!" 성질이 급한 원각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 다. 원법은 더욱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저...정말 모르겠어요. 분명히 듣긴 들었는데...누구에게서 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그럴리가 있느냐? 너는 평소에도 자신의 기억력이 대단하다 고 항상 입버릇처럼 말해 왔는데 이런 중대한 일을 잊을 리가 있느냐?" "나...난 정말..." 원진이 의혹어린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원법. 자네 혹시...?" 원법의 수려한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무...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원진은 탄식을 하며 입을 다물었다. 그때 원령이 그를 빤히 응시하며 조용한 음성으로 물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니냐?" "그...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너는 그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 감히 발설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냐?" 원법은 안색이 대변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둘째 사형 말씀은....?" 원령의 얼굴에 엄격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 아니냐? 너는 스스로 그 걸 고백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니냐?" 원법은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하니 원령을 쳐다보았다. 원령은 한동안 냉엄한 얼굴로 그를 응시하다가 돌연 나직하 게 한숨을 내쉬었다. "네째사제. 너는 너무도 큰 잘못을 저질렀다. 감히 노조종을 시해(시해)하고 네 입으로 스스로 꼬리를 드러내다니..." 원법의 몸이 주위에서도 확연히 알 수 있을 정도로 격하게 떨렸다. 그는 절망어린 시선으로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난..." 아무도 그를 쳐다보는 사람이 없었다. 원법의 얼굴에 절망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나...난 잘못이 없어...난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구...!" 갑자기 원법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달려나갔다. 하나 그가 채 두 발자국도 내딛기 전에 원령이 번개같이 양 손을 휘둘렀다. 파팟! 원법은 혈도(혈도)가 짚힌 채 맥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 다. 쓰러진 그의 얼굴은 경악과 공포, 비분, 절망이 범벅이 된 채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원령은 그를 제압한 후 무거운 탄식을 토해냈다. "네째. 너는 항상 자신이 남보다 총명하다고 자부했지만 이 번에는 너무 약은 꾀를 부리려다 제 풀에 넘어갔다. 자신의 입 으로 밀실에 대해서 지껄이다니 그건 평소의 너 답지 않은 일 이었다." 원각은 아직도 반신반의하는 표정으로 원법과 원령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정말 네째가 그런 짓을 했단 말입니까?" 원령은 씁쓸한 웃음을 머금었다. "나는 그가 대사형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할 때부터 그 에게 의심이 들었네. 하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의심한 것은 노 조종이 남기려고 했던 글자가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지." 원각은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그게 무엇입니까?" 원령은 옥금강 원법을 내려다 보며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바로 옥(옥)자 일세." 제32장 백 치 내 역 일, 유 혹 조자건은 팔을 돌려 보았다. 부드럽게 잘 돌아갔다. 이번에는 허리를 움직여 보았다. 앞뒤로 세차게 회전시켜도 거의 아무런 통증도 느낄 수가 없었다. 한바탕 간단하게 육합권을 연마하고 나자 이마에 가벼운 땀 이 솟아났다. 그것은 아주 좋은 징조였다. 전신의 기혈(기혈)이 잘 유통되어 기력이 원활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정성스런 동작으로 태극문의 열 가지 무공을 차례 로 시전해 보았다. 육합권의 육정개산(육정개산)부터 복마검법 의 금강서벽(금강서벽)까지 모든 무공을 시전했을 때는 이미 뉘엿뉘엿하게 서산에 해가 기울어지고 있었다. 그가 뒤뜰에 가서 세수를 하고 있을 때 사마결이 안으로 불 쑥 들어왔다. 그는 뜨락의 한쪽 모퉁이에 서서 흐뭇한 눈으로 조자건을 보 고 있었다. 조자건이 세수를 마치자 그는 다가와서 수건을 내 밀며 혀를 찼다. "벌써 완쾌된 것 같군. 정말 당신같이 회복이 빠른 사람은 처음 보았소." 조자건은 얼굴을 닦으며 빙긋 웃었다. "내가 뭐라고 했소? 며칠만 더 침상에 누워 있으면 나는 아 마 홧병이 나서 죽을거라고 했지 않소?" "하하...아뭏든 조형은 대단한 사람이오. 그런데 아까 이곳 에 오면서 아주 이상한 소문을 들었소." "그게 뭐요?" 사마결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소림의 최고어른인 백결대선사의 신상(신상)에 무언가 변고 (변고)가 일어났다는거요." 조자건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변고?" "나도 자세한건 모르오. 소문이 워낙 중구난방이라서 당체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요. 하지만 무언가 소림사측에 심상 치 않은 일이 벌어진건 분명한 듯하오." 조자건의 안색이 침중해졌다. 소림사의 변고! 이것은 그가 예상했던 일이었다. 무언가 번우량의 신상에 어떠한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짐 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그 일이 닥쳤다고 생각하자 그는 다시 한 번 번우량이 걱정되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찾아가서 조심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나 그가 말하든 말하지 않든 번우량은 반드시 함정에 빠질 것이다. 자신이 그랬던 것 처럼... 일단 그 자가 번우량을 함정에 빠뜨리기로 계획을 세웠다면 누가 무슨 수를 쓰던 번우량은 함정에 빠질 것이다. 절대로 그 자의 계획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번우량에게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조자건의 눈가에 착잡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비록 위험에 처하겠지만 우량은 살아날 것이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재회(재회)다운 재회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자건은 이렇게 스스로를 위안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때 사마결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참...오다가 그들을 만났소." 조자건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들이라니?" 사마결은 히죽 웃었다. "파금왕과 황금왕후 말이오. 파금왕의 그 요란한 황금마차는 언제 보아도 휘황찬란하더군." "어디서 그들을 보았소?" "철심교(철심교)부근에서요. 파금왕은 정각을 찾고 있었소. 날 보고 정각을 만났느냐고 해서 만났지만 다시 헤어졌다고 했 소. 그 자는 무척 걱정을 하고 있더군." 조자건은 언뜻 한 가지가 궁금했다. "파금왕이 이곳에 온 것은 정각때문이오?" "그보다는 다른 일 때문같소. 아마 그 낙일도(낙일도)를 쓰 는 자를 뒤쫑아 온 것 같소." "그럼 낙일도가 금릉에 왔단 말이오?" "그건 잘 모르겠소. 파금왕도 이 근처에서 그 자의 행방을 놓친 모양이오." 낙일도가 금릉에 왔다! 이것은 확실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낙일도에 대한 전설은 오래전부터 무림에 퍼져 있었지만 낙 일도법을 익힌 자가 무림에 나타난 것은 불과 육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시간동안 그는 무려 백 마흔 두 명의 무림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비무를 했다. 결과는 백전백승(백전백승)! 누구도 그의 낙일도를 받아낸 사람이 없었다. 또한 누구도 그의 낙일도 밑에서 목숨을 부지한 사람이 없었다. 그의 칼은 고금제일(고금제일)의 마도(마도)로 소문이 났고, 그는 천하제일의 살성(살성)으로 알려졌다. 낙일도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리면 그 근처의 고수들이 꼬 리를 물고 도주한다는 말이 들려오기도 했다. 누구나가 그와 대결하는 것을 꺼려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공포심을 느꼈 다. 어떤 사람들은 그가 당년의 화군악과 너무도 비슷하다고 말 하기도 했다. 혜성과 같이 나타나 뭇 고수들을 연파(연파)했으며, 손속이 잔인해서 상대한 사람은 누구도 살려두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른 것이 있다면 화군악은 철검을 쓰는 대신에 그 자는 도 를 쓴다는 점 뿐이었다. 하나 조자건이 낙일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전혀 다 른 곳에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나중에 차차 밝혀지게 될 것이다. 하늘에는 일점 편월(편월)이 두둥실 떠 있었다. 조자건은 침상위에 누워 창문 너머로 내비치는 조각달을 물 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상념(상념)이 그의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하나 그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리운 진표의 얼굴이었 다. 진표는 과연 어디에 있을까? 어떤 형편에 처해 있을까? 그는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그에 대한 생각을 하면 할수록 그는 가슴이 아팠다. 진표일가(진표일가)가 잘못된 길에 접어 들었다면 그건 전적 으로 자신 때문이었다. 자신을 제거하기 위해서 진표일가가 희 생되었다면 그것은 그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모용수(모용수)...! 그들을 해치지 마라. 그들이 만약 잘못 된다면 나는 정말 너를 용서할 수가 없게 된다.) 조자건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빌었다. 진표를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모용수 본인을 위해 서도 그는 충심으로 이렇게 빌었다. 그때 어디선가 기이한 향기가 흘러나왔다. 조자건은 전에도 그 향기를 맡은 적이 있었다. 그 향기의 기억은 그의 뇌리에서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었 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언제 들어왔는지 그녀는 방안의 한쪽 귀퉁이에 서서 그를 쳐 다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방긋 웃었다. 그 미소는 남자라면 도저히 견듸지 못할 신비한 흡입력을 담 고 있었다. "내가 찾아온 것이 뜻밖인가요?" 조자건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당신이 왔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를 찾아올 줄은 몰 랐소." 그녀는 그윽하게 웃었다. "나는 그동안 당신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당 신을 한 번 만나고 싶었어요." '만나고 싶었다'라는 말은 무척 흔하다. 하지만 그녀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자 몹시 은밀하면서도 야릇한 쾌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조자건은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물었 다. "당신이 이런 야심한 시각에 다른 남자를 만나기 위해 빠져 나온걸 당신 남편은 알고 있소?" 그녀는 방긋 웃었다. "당신은 나를 놀리고 싶은 모양이군요. 하지만 전에도 말했 다시피 나는 전혀 그에 대해 부담을 갖지 않아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내 남편에 상관없이 나는 그 일을 하고 말지 요." "그럼 당신 남편도 당신이 나를 만나러 온다는 것을 알고 있 소?"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어요." "그럼 어떻게 빠져 나왔소?" "그는 지금 시간에는 항상 신공(신공)을 연마하기 때문에 다 른 사람들은 그를 건드릴 수 없답니다. 이제 아셨나요, 호기심 많은 양반?" 그녀의 비웃는 듯한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조자건은 다 시 물었다. "당신이 나를 찾아온 이유는 무엇이오?" 그녀는 입가에 묘한 미소를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그에 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