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49편 (49/87)
"아!" 멀찌감치 떨어져 있던 사마결 조차도 그 가공할 위력에 안색 이 새퍼렇게 변해 버렸다. 지금 조자건은 전력을 다해 응천성에게로 접근해 가는 중이 었다. 구룡편과 같은 길다란 채찍을 꺾기 위해서는 될 수 있는 대로 가까이 접근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유리했기 때문이다. 조자건이 펼친 것은 복마검법중의 선인지로(선인지로)였다. 이것은 상대의 공세를 가르며 접근하기에는 가장 좋은 초식이 었다. 그런데 응천성이 스스로의 몸을 채찍으로 감으며 채찍의 길 이를 최소로 해서 엄청난 공세를 퍼부을 줄이야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파팍! 조자건의 나무막대가 그 가공할 기세를 감당하지 못하고 허 공을 튕겨져 올랐다. 그와 함께 조자건의 전신이 무방비상태로 구룡편의 공세에 노출되었다. (이젠 끝이다...!) 사마결은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콰쾅! 지축이 뒤흔들리는 듯한 엄청난 굉음이 터져나오며 매서운 경기가 사방을 뒤덮었다. 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뒤로 정신없이 물러났다. 이어 그 사 람은 피를 토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우웩!" 사마결은 급히 눈을 뜨고 앞을 바라보았다. 순간 그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지며 입이 딱 벌어졌다. "저...저럴수가..." 놀랍게도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피를 게워내고 있는 사람은 그토록 가공스런 위세로 공격했던 구룡편 응천성이 아닌가? 이, 정 체 사마결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응천성은 연거푸 세 번이나 피를 토해낸 후 멍하니 중얼거렸 다. "와...와선룡(와선룡)이 깨어지다니...이럴수가..." 그는 중상을 당한 고통보다는 자신이 패한 것이 믿기지 않는 듯 넋을 잃은 모습이었다. 조자건은 그의 이 장 앞에 서 있었다. 비록 양쪽 소매가 모 두 잘려나가 팔뚝이 피투성이가 되었으나 그는 의연한 모습으 로 우뚝 서 있었다. 안색이 조금 창백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별다른 부상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기이한 것은 분명 구룡편에 튕겨져 나갔던 나무막대가 여전 히 그의 오른손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었다. 응천성은 여전히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그를 올려다 보았 다. "어...어떻게 된거지? 어떻게 와선룡을 깨뜨렸지...?" 그는 자신이 어떻게 패했는지 그것이 의문스러워 미칠 지경 이었다. 와선룡이 깨어질 수 있다고는 단 한 번도 상상조차 해 본 적 이 없는 그였다. 더구나 그것이 태극문의 제자 손에 깨어지리 라는 것은 도저히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태극문의 무공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었다. 와선룡은 광동응가가 칠 십년의 절치부심끝에 만들어낸 일생 일대(일생일대)의 절학이었다. 칠십 년전, 광동응가의 가주였던 편신 응구유는 태극문의 창 시자인 태극천자 위지독고에게 도전했다가 패퇴했다. 그때 그 는 노룡진구주황으로 위지독고의 전신을 휘감았으나 위지독고 가 선인지로의 일식으로 그의 공세를 가르고 들어와 그를 격상 시켰다. 그때 위지독고가 손에 사정을 보지 않았다면 응구유는 즉사 하고 말았을 것이다. 응구유는 그 길로 광동으로 돌아와 피를 토하며 한 달이나 누워 있다가 자신의 복수를 부탁하며 숨을 거두었다. 광동응가에서는 응구유의 패인(패인)을 여러각도에서 분석했 다. 그 결과 가장 커다란 원인은 응가의 편법이 아주 가까운 접 근전에서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약점을 보완하고 일격에 상대를 물리칠 수 있는 수법을 만들기 위해서 광동응가는 아주 오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그 초식을 시험하는 도중에 광동응가의 직계후손 다섯 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고 십 여명이 반신불수가 되어 쓰러지기도 했 다. 하나 광동응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침내 칠십 년만에 광동응가는 자신들의 약점을 완벽하게 보완하고 단 일격에 접근해 오는 상대를 격살시킬 수 있는 필 살(필살)의 초식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바로 와선룡이었다. 이것은 가까이 접근해 오는 상대를 스스로의 몸으로 채찍을 휘감아 반격하는 무서운 수법으로, 특히 위지독고가 응구유를 쓰러뜨릴 때 사용했던 초식을 만나면 도저히 상대가 피할 수 없게끔 만들어진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선인지로로는 절대로 이 초식을 피할 수도 없고 막을 수도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런데도 응천성은 패했다. 그것도 조자건이 선인지로를 펼 쳐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패한 것이다. "왜지...? 왜 내가 패했지...?" 응천성은 조자건을 올려다 보며 거듭 물었다. 조자건은 그를 내려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당신의 초식은 완벽했소. 난 처음 그 초식을 보았을때 도저 히 피할 방법을 찾지 못했소." "그런데 어떻게..." "당신이 채찍을 자신의 몸에 감고 빠르게 회전하는 수법은 정말 일품(일품)이었소. 하지만 그때 나는 문득 당신의 몸이 너무 빠르게 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응천성의 얼굴에 한 줄기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그게 무슨 말이오?"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의 회전하는 속도나 기세는 너무 빨랐소. 그게 바로 당 신의 약점이었소." 응천성은 물론이고 듣고 있던 사마결조차 멍청한 표정이 되 었다. 초식이 빠르다는 것은 그만큼 그 위력이 무섭다는 것이었다. 절정고수일수록 더욱 빠르게 초식을 시전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법이다. 그런데 너무 빠른 것이 오히려 약점이라니 그들이 이 해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조자건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빠르면 그만큼 정확성을 기하기가 힘들어지는 법이오. 더구 나 앞이나 옆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회전하는 상태에 서 빨라진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고수라 해도 목표물을 정확하 게 인식하기가 힘들어지게 되오. 그래서 나는 일부러 내 나무 막대를 당신의 채찍에 부딪쳐 튕겨지게 했소. 당신의 시선은 그것에 홀려 잠깐 나를 놓쳤소." 응천성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그의 입을 뚫어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조자건은 설명을 계속했다. "그런다음 나는 당신이 회전하는 방향과 반대방향으로 몸을 회전시켰소. 우리들이 반대방향으로 한바퀴를 완전히 돌때까지 나무막대는 튕겨진 상태로 허공에 떠 있었소. 그래서 나는 그 것을 다시 잡고 태산압정(태산압정)의 식으로 당신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내리쳤던 거요. 당신의 몸은 구룡편에 감겨 있어서 비록 치명적인 부상은 면했으나 그 바람에 회전하는 속도가 당 신의 능력범위를 초과하게 되었소." 조자건은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결국 당신은 스스로 회전하는 통제력을 잃고 진기가 역류해 서 내상을 입게 된 것이오." 응천성은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무거운 탄 식을 토해냈다. "너무나 빠른 것이 와선룡의 약점이라니...나는 정말 몰랐 소." "와선룡은 좋은 수법이오. 하지만 잠깐이라도 상대를 놓치게 되면 올바른 공격범위를 정할 수 없다는게 흠이오. 아마 당신 이 조금만 노력한다면 그 흠을 없앨 수 있을거요." 조자건이 서 있는 위치를 정확하게 알았다면 응천성의 구룡 편은 그를 쓰러뜨렸을 것이다. 하나 조자건의 나무막대가 퉁겨 나가자 응천성의 시선은 자신도 모르게 그쪽으로 쏠렸고 그 짧 은 순간 조자건은 반대쪽으로 몸을 날려 그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결국 응천성의 와선룡은 전혀 엉뚱한 방향을 공격하게 되었 고 그 순간 조자건은 와선룡의 약점을 찾아내고 그를 쓰러뜨렸 던 것이다. 말은 쉽지만 생사(생사)를 다투는 그 촌각의 와중에 상대의 질풍노도같은 공세의 약점을 파악하고 이와같이 움직일 수 있 다는 것은 그야말로 경이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응천성은 한동안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의 입가에 흘러내리는 핏줄기는 약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조금씩 흘러나 오고 있었다. 하나 응천성은 그것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무 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잠시 후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어쩌면 나는 와선룡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모 르오. 하지만..." 그는 조자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단점을 보완한다해도 당신은 다시 또 그걸 파해(파해)할 수 있을거요." 그렇다. 응천성이 비록 와선룡의 현재 드러난 단점을 메꾼다 해도 조 자건은 또 다른 헛점을 발견해낼 것이다. 와선룡을 제 아무리 보완한다 해도 인간이 만든 초식인 이상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무공이라면 조자건은 반드시 그 파해 법을 발견하고 말 것이다. 인간이 만든 초식이라면 어딘가에 반드시 크고 작은 헛점이 있기 마련이다. 그 헛점이 없는 무공은 천하에 오직 한 군데 밖에는 없다. 응천성은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다. "결국 우리 광동응가는 영원히 태극문(태극문)의 무공을 꺾 을 수 없다는 말이 되는군..." 조자건은 눈을 번쩍 빛냈다. "당신은 내가 태극문의 제자라는걸 어떻게 알았소?" 응천성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전에 누군가에게서 서신을 받았소." 응천성은 한 달전에 자신의 거처로 불쑥 날아든 정체모를 편 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그 서신을 쓴 사람이 당신을 모함하고 있다는 것은 짐 작을 했소. 당신이 태극문의 후예라는 것이 무림에 전혀 알려 지지 않은 것은 당신이 그걸 내세우지 않았다는 뜻인데 남들앞 에서 함부로 그런 말을 내뱉었을리가 없지. 하지만 당신이 태 극문의 후예임을 안 이상 나는 우리 가문의 원한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당신과 겨루어야 겠다고 생각했소. 그래서 당신이 무림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금릉에 온 것을 알고 나도 무림대회에 참가했던 거요." 조자건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허공을 응시한 채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조용히 물었다. "내가 화신묘에 간다는 것은 어떻게 알았소?" 응천성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게 조금 이상하오. 그날 밤 나는 내 숙소에 누워 있는데 예전의 그 편지가 다시 날라왔소. 그 속에는 당신이 화신묘에 있으니 늦기 전에 찾아가서 혼을 내 주라고 적혀 있더군. 나는 반신반의 하여 그곳에 갔다가 당신을 보게 된 거요." 조자건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에 잠겼다. 옆에서 이들의 말을 듣고 있던 사마결이 응천성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그에게 좋지 않은 감정이 있을텐데 왜 그를 구하기 위해서 뛰어 들었소?" 응천성의 얼굴에 한 줄기 엄숙한 표정이 떠올랐다. "나의 조부께서는 정당한 결투끝에 태극천자에게 패하셨소. 따라서 나도 반드시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그를 꺾고 싶었소. 구천에 계신 조부께서도 그걸 원하셨을거요." 사마결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광동응가가 오랫동안 강호무림에 지워지지 않는 명성을 쌓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들은 결코 남의 약점이나 위기 를 틈타 이익을 보는 하류(하류)의 무리들이 아닌 것이다. 자신들의 실력과 정당한 방법으로 그와같은 명성을 이룩했던 것이다. 사마결은 전통(전통)이란 결코 하루아침에 세워지는 것이 아 님을 새삼 깨달았다. 문득 그는 한 가지 생각이 떠올라 다시 물었다. "그런데 대체 누가 당신에게 그런 편지를 띄웠단 말이오?" 응천성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나도 모르겠소." 사마결은 조자건을 돌아보았다. "당신은 짐작가는 사람이 없소? 누군가 당신을 잘 알고 있거 나 원한을 가진 사람이 없냔 말이오."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의 말은 틀렸소." 사마결은 어리둥절하여 물었다. "뭐가 틀렸단 말이오?" "나를 잘 알고 있는 사람임은 분명하지만 내게 원한을 가진 것은 아니오." 사마결은 깜짝 놀랐다. "그럼 당신은 그 편지를 보낸 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단 말이 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태극문의 후예임을 아는 사람은 천하에서 오직 네 사 람뿐이오. 그중 그런 일을 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소." 사마결은 자신도 모르게 급히 물었다. "그가 누구요?" "내 동문이오." "동문이라면서 무엇때문에 그런 짓을 한거요?" 조자건은 잠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그의 눈에 푸른 하늘 이 가득 들어왔다. "그건 나를 살리기 위해서요. 그는 나를 한 번은 살려준다고 했으니까." 사마결과 응천성은 귀신에 홀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그런 짓을 했다고? 그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조자건의 음성은 담담해서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나는 지금까지 줄곧 요사이 내게 벌어진 일이 어떻게 된 것 인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소. 하지만 지금은 모두 이해하게 되 었소." 사마결은 눈치가 빠른 인물답게 즉시 그의 말속에 숨은 뜻을 알아차렸다. "그럼 그동안 당신 주변에 벌어진 일들이 모두 그 자가 한 짓이란 말이오?" 조자건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 자가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내가 무림대회에서 우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요." 사마결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당신이 우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렇소." "당신의 동문이라면서 왜 당신을 막는단 말이오?" 조자건의 대답은 간단했다. "자신이 우승하기 위해서겠지." 사마결은 다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런데도 또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 응천성을 불렀단 말이 오?" "그렇소." 조자건은 사마결이 계속 물어볼 태세이자 빙긋 웃으며 말을 계속했다. "그는 응천성의 성격이 고지식해서 결코 남을 암습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소. 그래서 그는 일부러 그에게 편지를 보내 내가 있는 곳으로 유인한 거요. 그날 밤 그는 완 벽한 함정을 파놓고는 응천성으로 하여금 나를 구출하게끔 유 도했소." "하지만..." "그의 목적은 나를 무림대회에 참가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 로 고수들을 더 풀어 나를 쫑지 않았던거요. 더구나 그는 일전 에 나를 한 번은 살려주겠다고 말을 했거든." "하지만 당신은 귀왕령에 중독되어 하마터면 죽을 뻔 하지 않았소?" 조자건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아뭏든 나는 죽지 않았소. 아마 그는 내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고 당신이 나를 데리고 난자림에게 갈 것이라고 예측했을 지도 모르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일이...세상에 그렇게 머리좋은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이오?" 조자건은 딱 부러지는 음성으로 말했다. "분명히 있소. 그가 바로 그런 사람이오." 사마결은 반신반의하는 음성으로 물었다. "그 자가 정말 그토록 머리가 뛰어나단 말이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일단 어떤 일을 계획하면 한 치의 착오도 있을 수가 없소. 그가 모든 가능성을 예측해서 일을 진행하기 때문이오." 조자건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나는 걱정이오." 사마결은 멍청한 표정이었다. "무엇이 걱정이란 말이오?" 조자건의 얼굴에 한 줄기 어두운 그림자가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이번 무림대회에서 반드시 우승하려고 하오. 그리고 아마 우승할 것이오. 그래서 걱정스럽소." 사마결은 다시 물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스럽소?" 조자건의 음성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가 우승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번우량을 꺾어야 하오. 그 러니 그가 번우량에게 무슨 짓을 할지 두렵단 말이오." 제31장 이 차 음 모 일, 제 거 멀리 그녀가 있는 방의 불빛이 보였다. 진승남은 벌써 가슴이 뛰었다. 이제 잠시후면 다시 그녀의 몸을 안을 수 있다. 그녀의 부드 러운 살결과 촉촉한 입술을 생각하자 그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뜨거워졌다. 그녀가 자신에게 진지하지 않다는 것은 그도 알고 있었다. 그외에 몇 사람의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처음 그녀를 안았을때 그녀의 입으로 직접 들은 바가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를 반쯤 놀리는 심정으로 대하는 것이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그녀를 안을 수만 있다면 그는 행복했고, 그녀를 정복함으로 서 더할 나위없는 충족감을 느끼면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마침내 그는 그녀의 방앞에 도착했다. 방문을 열자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언제 보아도 그녀는 아 름다웠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못할 사실이었다. 그녀는 정말 베어물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진승남은 빙긋 웃으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를 기다렸나요?"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모르지만 그녀의 얼굴은 보통때보다 싸늘해 보였다. 진승남은 다시 말했다. "내가 너무 늦게 와서 화가 났어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진승남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좀 웃어봐요. 그러고 있으니까 내가 무섭잖아요." 그녀의 손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진승남은 자신이 잡은 그녀 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손이 너무 차요. 이리와요. 내가 따뜻하게 해줄께요." 그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으려 했다. 그녀는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진승남은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정말 화가 났어요?" 처음으로 그녀는 고개를 들어 정면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진승남은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얼굴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변한 것은 그녀의 눈 빛이었다. 보통 때 그를 보는 그녀의 눈빛은 부드럽고 요염했으며 때론 장난끼마저 감돌았다. 하나 지금 그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 아 있었다. 그 차갑고 싸늘한 눈빛을 보는 진승남의 마음도 싸늘하게 식 어갔다. "당신....." 그가 무어라 입을 열려는 순간, 스윽! 그의 손안에 있던 그녀의 손이 기이하게 뒤틀려 빠져나오더 니 그의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다. 그 속도와 변화는 진승남 으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크윽!" 그는 목에 막대한 통증을 느끼고 두 눈을 부릅떴다. 그녀의 손은 어느새 그의 목을 바싹 움켜쥐고 있었다. "왜....왜 나를...." 진승남은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의 눈에서는 냉혹한 빛이 번뜩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 네가 할 일은 없다." "그...그래서 나를....?" "그래. 네 놈의 젖비린내나는 시중을 받는 것도 이젠 싫증이 났어." 그의 목을 움켜쥔 그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진승남은 그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을 쳤으나 그 가녀 린 손에 실린 힘은 그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진승남의 눈이 흰자위만 보 이도록 까뒤집혔다. 그의 몸은 몇 차례 가느다란 경련을 일으키다가 축 늘어졌 다. 그녀는 그의 숨이 완전하게 끊어진 것을 확인하고는 그의 몸 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마치 더러운 것을 만진 듯 그녀는 고운 아미를 찌푸리며 손을 탁탁 털어냈다. 그때 갑자기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하....참으로 매정한 여심(여심)이군. 그래도 한때나마 살을 맞대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렇게 잔인하게 죽이다니..." 그녀는 조금도 놀라지 않고 소리가 난 곳으로 고개를 돌렸 다. 언제 들어왔는지 방문의 입구쪽에 백의인 하나가 비스듬히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백의인은 그녀와 시선이 마주치자 입가에 미소를 띄우며 다 가왔다. "당신은 정말 전갈같은 여자요." 그는 바닥에 쓰러진 진승남의 시체를 발로 툭툭 걷어찼다. "그래도 이 놈은 제법 순진해서 당신이 좋아하는 취향인줄 알았었는데..." 그녀는 냉랭하게 코웃음쳤다. "흥. 누가 할 소릴. 자기 애까지 밴 여자를 병신으로 만들어 서 수굴(수굴)속에 쳐박은 자가 남에게 매정하단 말을 할 수 있어요?" 백의인은 입가에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하하...그래도 나는 그녀를 죽이지는 않았소." "아마 그녀는 차라리 죽는게 더 낫다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아이는 유산(유산)되고 다리 힘줄이 끊겨 평생 걷지도 못할테 니...그 애는 제법 귀엽던데 당신은 왜 그녀를 그렇게 대했지 요?" 백의인은 껄껄 소리내어 웃었다. "하하...나도 그런 젖비린내나는 계집애는 싫거든. 나는 당 신같이 경험이 풍부한 여자가 더 좋소." 그는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안으려 했다. 그녀는 차가운 얼굴로 그의 손길을 뿌리쳤다. 백의인의 얼굴에 의외라는 표정 이 떠올랐다. 그는 아직 그녀가 남자를 거절하는 것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왜 그러는거요? 어린 놈하고 놀더니 그새 내가 싫어졌소?" 그녀의 입에 냉랭한 미소가 감돌았다. "함부로 말하지 말아요. 그보다 당신은 일호(일호)가 지시한 일을 완수했나요?" "물론이오. 이미 준비는 완벽하게 해 놓았소. 이제 덫에 사 냥감이 걸려들기만 하면 되는거요." 백의인은 다시 그녀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 혹시 그 자 때문에 그러는거 아니오?" 그녀는 매서운 눈초리로 그를 돌아보았다. "그라니요?" 백의인은 묘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며 웃었다. "그 자. 천룡대협."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백의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으나 눈빛만큼은 차가운 것이었 다. "혹시 그 자 때문에 당신이 변한게 아니냔 말이오. 그 자 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한 번만 더 그런 쓸데없는 소릴 지껄인다면 용서하지 않겠 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