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39편 (39/87)
어쩌면 그는 이번에 자신이 패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 감을 느꼈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었다. 하나 그는 곧 마음을 가다듬고 심호흡을 했다. 조금전에 그는 거의 상대를 격패시키기 직전까지 가 있었다. 아마 조금만 운이 좋았다면 조자건은 이미 차디찬 시체가 되어 바닥에 쓰러져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는 조금전보다 더욱 무서운 살수(살수)가 세 가지나 남아 있었다. 그 삼대절초(삼대절초)라면 능히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을 것이다. 과자옥의 말대로 조자건은 결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할 것이 다. 이, 허 점 조자건은 비록 손중화의 살인적인 공세를 피했으나 그 바람 에 두건이 풀어져 머리가 흐트러졌다. 옷도 여기저기가 찢겨지 고 양쪽 소매자락은 갈라 터져 팔뚝까지 맨 살이 그대로 내보 이고 있었다. 실로 낭패스러운 모습이었다. 하나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내비치는 그의 두눈은 물처럼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여전히 오른손에 나무막대를 든 채 그걸 천천히 들어올 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기운이 구름처럼 일어났다. 손중화는 한 눈에 그것이 절정의 고수들에게서만 일어나는 무 형지기임을 알아 보았다. 상대가 무형지기를 일으키도록 가만히 방관하고 있으면 그 무형지기는 점점 커져 하나의 커다란 기세(기세)를 형성하게 된다. 그렇게 된다면 무공의 높고 낮음을 떠나 결코 그 기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손중화는 이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의 무형지기가 기 세화 되도록 보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는 수중의 풍운필을 풍차처럼 빙글빙글 돌리며 조자건의 왼쪽으로 다가갔다. 파라라락! 그의 손에서 회전하고 있는 풍운필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며 종내에는 마치 하나의 원반같은 형태가 되었다. 순간 손중화는 그 세차게 회전하고 있는 풍운필을 조자건의 옆구리를 향해 집 어던졌다. 파파파팍! 엄청난 강기( 기)가 폭풍치듯 일어났다. 그 강기의 폭풍에 걸렸다가는 설사 금강동인(금강동인)이라 해도 갈가리 찢겨지 고 말 것 같았다. 이것이 바로 손중화의 신룡풍운구절중에서 삼대절초중 하나 인 폭륜절(폭륜절)인 것이다. 폭륜절의 위력은 지금까지 보여 준 여타 초식과 비할 바가 아니었다. 비홍절과 회선절이 기병(기병)의 묘(묘)를 살린 초식인 반면 에 이 폭륜절은 순수한 본연의 위력으로 상대를 살상하는 무시 무시한 초식이었다. 이것은 폭퐁노도처럼 선회하며 다가들기 때문에 맞받았다가 는 제아무리 천하에 둘도 없는 호신강기를 가진 인물이라 할지 라도 몸이 그대로 관통당하고 만다. 피하는 것도 쉽지는 않았다. 손중화의 오른손목에 연결된 천 잠사가 미세한 조종을 하기 때문에 피한다 할지라도 계속 쫑아 가 결국은 상대를 쓰러뜨리고야 만다. 피할 수도 없고 맞받아 칠 수도 없는 공포의 폭륜절은 죽음 의 수레바퀴마냥 조자건의 옆구리를 향해 계속 다가서고 있었 다. 조자건은 산발한 머리카락사이로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풍운 필을 바라보고 있다가 벼락같은 호통을 내지르며 수중의 나무 막대로 태산압정(태산압정)의 식으로 풍차처럼 회전하는 풍운 필을 내리쳤다. "이얍!" 나무막대는 마치 허공에서 떨어지는 뇌전(뇌전)과도 같은 맹 렬한 기세로 회전하고 있는 풍운필에 부딛쳤다. 순간, 콰쾅! 폭발치는 듯한 음향이 터져나오며 그토록 가공할 속도로 회 전해 오던 풍운필이 기세를 잃고 땅에 떨어졌다. "윽!" 그와 함께 손중화는 풍운필과 연결했던 오른쪽 손목이 부러 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고 뒤로 주춤 한 걸음 물러섰다. 조자건 또한 완벽한 상태는 아니었다. 그는 비록 복마검법중의 태산압정으로 풍운필의 가공할 위세 를 중도에 차단시켰으나 그 여력에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나 그는 두 눈을 번뜩이며 손중화를 향해 날아들었다. 스윽! 그의 수중에 들린 나무막대에서 수십 가닥의 그림자가 허공 을 희뿌옇게 뒤덮었다. "지...지독한 놈...!" 손중화는 이를 부드득 갈아 붙이며 손목을 놀려 바닥에 떨어 진 풍운필을 회수해 세차게 옆으로 그어댔다. 쭈아악! 단천절(단천절)의 기세가 구름처럼 일어났다. 조자건은 피하지 않고 그 기세속으로 뛰어들었다. 파파팍! 사방으로 칼날같은 경기가 폭사해 나가며 손중화는 다시 세 걸음이나 격퇴당했다. 놀랍게도 단천절의 가공할 기세로도 조 자건의 나무막대에 실린 위력을 감당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손중화의 얼굴이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졌다. 조자건의 무공은 싸우면서 점점 더 강해지는 것 같았다. 단천절은 그 위력이 여타 초식보다 월등한데도 그는 아주 간 단하게 그 공세를 격퇴했던 것이다. 손중화의 마음에 상대에 대한 두려움이 솟구쳤다. 이 자의 초식은 단순한 것 같지만 그 안에는 현묘(현묘)한 기운이 담겨 있어 막아내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이 자는 체력과 기세가 남 달랐다. 그것은 공력(공력) 이전의 문제였다. 그 초인적인 체력과 남을 압도하는 기세에 손중화는 점차 약 세를 보이는 것이다. 손중화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기까지 온 이상 결말을 보아야 한다. 상대가 무서워 꽁무니를 뺀다면 그건 이미 용호풍운필이 아 니다. 그동안 쌓아올린 용호풍운필의 찬란한 명성을 무너뜨리지 않 기 위해서라도 이 자를 반드시 쓰러뜨려야만 한다! 그의 눈에서 괴이한 광망이 번뜩였다. 그와 함께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부르르... 그의 손에 있는 풍운필이 격하게 떨리며 저절로 움직였다. 그것은 마치 갓잡은 잉어가 팔딱팔딱 뛰놀고 있는 것 같았다. 동시에 그의 양 손은 백옥처럼 하얗게 변해갔다. 조자건은 두 눈을 별빛같이 반짝이며 손중화의 얼굴을 뚫어 지게 주시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손중화가 펼치려는 공격이 얼마나 가공한 것인지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다. 손중화의 손에서 뛰어놀고 있는 풍운 필의 형태는 그가 전설적인 기어필(기어필)의 수법을 쓰려고 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었다. 부르르... 손중화의 손위에서 팔딱거리고 있는 풍운필은 점점 그 속도 가 빨라지더니 나중에는 그 형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 다. 찰나, "이야압!" 손중화는 엄청난 호통을 내지르며 손에서 회전하고 있던 풍 운필을 앞으로 내던졌다. 파파파파.... 그것은 거대한 빛의 폭풍(폭풍)있었다. 주위 사방이 온통 새 하얀 빛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신룡풍운구절중의 최절초인 파천황절(파천황절) 인 것이다. 그 무지막지한 위력앞에는 천하의 어떤 것이라도 산산히 박 살나고 말 것 같았다. 순간 조자건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치더니 번개같이 나무막대 를 휘둘러 삼십 이검(삼십이검)을 격출해 냈다. 그의 손에 들린 나무막대가 어찌나 빠르게 움직이던지 일검 (일검)부터 서른 두 번째의 검까지가 마치 거의 동시에 펼쳐진 것 같았다. 그 폭포수같은 삼십이검은 창졸지간에 사방을 갈기갈기 찢으 며 다가들던 풍운필과 정면으로 격돌하고 말았다. 꽈꽈꽈꽝! 파파파파.... 천지를 개벽(개벽)하는 듯한 굉음과 함께 엄청난 기세가 사 방으로 뿜어나갔다. 손중화는 그토록 엄밀하고 살인적인 파천황절의 공세가 너무 도 가공할 압력에 짓눌려 제대로 펼쳐지지 않는 것을 깨달았 다. 조자건이 펼쳐낸 삼십 이검이 그물처럼 허공에 검막(검막)을 형성해 그의 공세를 짓눌러 버렸던 것이다. 순간 손중화는 정신이 아득해 지는 것 같았다. "크엑!" 그는 시뻘건 선혈을 뿜어내며 뒤로 비틀거리며 물러났다. 가슴이 빠개지고 온 몸이 으스러지는 듯한 통증 때문에 그는 정신이 가물가물해졌다. 하나 그 와중에도 그는 고통보다 오히려 경악을 느꼈다. (이...이럴수가...파천황절이 복마검법 따위에 깨어지다 니...) 조금전 조자건이 펼친 것은 복마검법중의 금강서벽(금강서 벽)이었다. 금강서벽! 복마검법중 하나로 빠르고 강맹한 맛은 있지만 공격하는 범 위는 기껏해야 여덟 곳 밖에 되지 않았다. 다시 말하면 제아무 리 금강서벽을 능수능란하게 시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팔검 (팔검)밖에는 발출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조금전 조자건은 분명 삼십 이검을 발출했지 않은가? 서른 두개의 검영을 뿌려대는 금강서벽은 더 이상 단순하지 가 않았다. "으...." 마침내 손중화는 무릎을 꿇었다. 그토록 찬연히 빛나던 그의 용호풍운필은 빛을 잃고 바닥에 떨어졌고, 그의 몸은 심각한 내상을 입어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중인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드디어 우내십대기문병기중의 하나가 꺾인 것이다. 그것도 몇 달전만 해도 강호에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인물에게 꺾인 것이다. 이제 우내십대기문병기의 찬란한 신화(신화)중 하나가 깨어 졌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신화가 깨어질 것이며 또 얼마나 많 은 새로운 신화가 탄생될 것인가? 신화를 깬 사나이, 조자건은 우뚝 선 채 묵묵히 바닥을 내려 다 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동안 주위에는 죽음같은 침묵이 이어졌다. 하나 침묵은 오 래가지 않았다. "우와....과연 일수풍운답다...!" "와아....우내십대기문병기마저 꺾이다니...!" 주위는 엄청난 환호성과 경탄의 물결로 뒤덮혀 버렸다. 환호 성은 일각 가까이나 계속되었다. 조자건은 그 함성소리가 들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의 시선은 줄곧 자신의 옆구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의 옆구리는 경기의 여파로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그리 고 그 사이로 가느다란 핏줄기가 살짝 내 보였다. 아마 조금전의 격돌때 파편 하나가 스친 모양이었다. 그것은 사실 상처라고 할 수도 없는 경미한 것이었다. 하나 조자건의 시선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것은 그가 출도한 이후 처음으로 당하는 부상이었다. "조형. 정말 최고요. 정말 멋졌소." 조자건이 대 아래로 내려오자 사마결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 는 표정으로 다가왔다. 그는 연신 입에 침을 튀기며 떠들어댔다. "사실 조형이 용호풍운필과 마주 쳤을때 걱정을 많이 했었 소. 한데 조형의 실력은 내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소. 나무막대기 하나로 용호풍운필을 꺾었다면 천하의 누구도 믿지 못할거요." 사마결은 히죽히죽 웃었다. "이제 머지않아 조형은 강호의 전설(전설)이 될거요." 조자건의 표정은 의외로 침울했다. 사마결은 그가 아무런 대꾸가 없자 그를 돌아보다 그의 안색 이 별로 밝지를 않자 물었다. "왜 그러는거요?" 조자건은 잠시 침음하다가 불쑥 물었다. "당신이 보기에 내 무공은 어떻소?" 사마결은 그가 묻는 의도를 몰랐으나 곧 엄지손가락을 내밀 었다. "조형의 무공은 내가 본 중에서 단연 최고요. 나는 아직까지 조형만큼 완벽한 무공초식을 펼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소." 의외로 조자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지 않소." 사마결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다니...?" 조자건은 문득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 무공은 당신이 생각한 것 만큼 완벽하지 않소. 적어도 열 여덟 군데의 허점(허점)이 있소." 사마결은 깜짝 놀랐다. "열 여덟 군데나 말이오?" "그렇소." 조자건은 무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내가 처음 내 무공에 헛점을 발견한 것은 중조산에서 강장 비환 현일립과 겨룰 때였소. 그때 나는 그의 미리혈옥수와 격 돌했는데 그때 처음으로 내 무공에 무언가 미흡한 구석이 있음 을 알았소." 조자건은 잠시 침음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는 확신을 할 수가 없었소. 그러다가 회수의 강위 에서 집마부의 고수들과 겨룰 때 확실히 알 수 있었소. 내 무 공에 몇 군데의 헛점이 있다는 것을..." 사마결은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래서 그때 그렇게 이상한 표정이 되었던 거로군."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이 보잘것 없는 고수들을 만날땐 그렇지 않지만 일정수 준 이상에 다다른 고수들과 격전을 할때면 반드시 헛점을 발견 할 수 있었소. 지금까지 나는 모두 열 여덟 개의 헛점을 발견 해 냈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까지 쭈욱 그들과 싸워 이겼지 않소?" "그건 그들이 내 무공에서 헛점을 발견할 만큼의 수준에 도 달해 있지 못햇기 때문이오." 조자건은 자신의 옆구리를 가리켰다. "조금전 나는 손중화와 겨루었을 때 하마터면 그 헛점중 하 나에 노출될 뻔 했소. 만약 그랬다면 패한 쪽은 그가 아니라 나였을거요." 사마결은 터진 그의 옷자락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갸우뚱했 다. "별로 대단한 것 같지는 않은데..." "그렇지 않소. 이번엔 운이 좋았지만 만약 내 무공의 헛점을 발견하는 사람이 있어 처음부터 그 헛점을 노리고 공격해 온다 면 나는 절대로 그 자를 이길 수 없소." 사마결은 다시 물었다. "당신이 자신의 무공에 헛점이 있다는걸 알았다면 왜 그 헛 점을 보완해서 없앨 생각을 하지 않소?" 조자건의 입가에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 "그처럼 일이 쉽다면 내가 걱정할 필요도 없을거요. 나는 비 록 내 무공에 열 여덟 군데의 헛점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 걸 없앨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소." "헛점이 있는걸 알면서도 그걸 없애지 못한다는 말이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무공의 헛점이란 것은 어떤 초식상의 미흡함이나 변화의 문제점 같은 것이 아니오. 이것은 내 내면(내면)에 관계된 것 이며 내가 무공을 전개하는 방식과 무공 자체의 흐름과 밀접한 관계가 있소." 사마결은 알듯 모를 듯한 표정이었다. 그래서 조자건은 다시 설명을 해주었다. "이것은 마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소. 대가(대가)의 그림 은 어떤 특정한 형식이 없어도 훌륭한 작품이 되는 반면 미숙 한 자는 아무리 기교를 부려도 어딘가 미흡한 곳이 나타나오. 그것은 그 자가 제아무리 좋은 붓으로 좋은 먹을 갈아서 그린 다 해도 없어지지 않소. 그것은 표현상이나 기법상의 문제가 아니라 본질적인 솜씨, 즉 화도(화도)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 오." 조자건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말을 계속했다. "내 경우도 마찬가지요. 이것은 무도(무도)에 관련된 헛점이 오.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면 단번에 헛점을 메꿀 수 있지 만 그렇지 못하면 다른 방법이 없소." 사마결은 그의 말을 음미하고 있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영원히 그 헛점을 메꾸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아 니오?" "그렇소." "그 헛점을 메꾸기가 쉽지 않다면 헛점을 메꿀 때까지 남과 싸우지 않으면 될 거 아니오?" "그게 또 그렇지 않소. 단순히 생각하는 것 만으로는 그 헛 점들을 메꿀 수 없소. 그건 오직 몸으로 체험하고 마음으로 느 껴야만 없애나갈 수 있는 거요. 마치 미숙한 자가 미숙함이 없 어질 때까지 끊임없이 그림을 그리는 것과 마찬가지요." 사마결은 갈라터져나간 그의 옆구리를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 다. "하나 만일 그러다가 당신의 헛점을 발견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어떻게 되는거요?" 조자건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한동안 묵묵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 히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나는 반드시 그 자의 손에 죽게 될거요." 제24장 참 가 목 적 일, 살 성 그 사나이는 오후해가 뉘엿뉘엿질때 불쑥 나타났다. 그런 다 음 술을 한 병 시켜놓고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별 이상한 놈 다 보겠군.) 우칠(우칠)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 사나이를 힐끔힐끔 쳐다 보았다. 통강집(통강집). 이곳은 장강을 사이에 두고 금릉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 마 을이었다. 평상시라면 이곳은 금릉을 가기 위해 장강을 건너려 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고 있었다. 하나 금릉에서 무림대회가 개최된 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금릉으로 갔기 때문에 통강집은 거의 텅 비다 시피했다. 우칠도 무림대회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았으나 빌어 먹을 장방(장방)이 그에게 가게를 맡기고는 자기 혼자만 낼름 금릉으로 가버렸기 때문에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혼자 주루를 지키고 있었다. 사실 주루라고 해봐야 겨우 탁자 너덧 개만 있고 의자도 다 합쳐서 스무개 남짓하는 조그만 곳이었다. 게다가 요 며칠 사 이에는 손님이라고는 그야말로 손가락으로 헤아릴 정도로 적어 서 그도 아예 문을 닫고 무림대회나 구경하러 갈까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낮선 사나이는 무림대회에는 관심도 없는지 벌써 몇 시진째 구석자리에 말없이 앉아 술잔만 기울이고 있었다. 그 사나이의 체구는 그리 크지 않았다. 하나 앉아 있는 그의 뒷모습을 본 우칠은 그가 몹시 건장한 체구의 사람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는 허름한 흑의를 입고 있었는데 머리를 대충 아무렇게나 뒤로 묶어 길다란 머리꼬리가 허리부근까지 내려와 있었다. 뒤 에서 본 목덜미와 등의 근육은 우칠이 보기에도 부러울 정도로 잘 발달되어 있었다. 한 가지 기이한 것은 그 자의 허리춤에 매어져 있는 칼인데 녹이 잔뜩 슬어 있어 그것으로는 무라도 자르지 못할 것 같았 다. 게다가 칼집마저 없어 그 녹이 슨 도신이 그대로 밖으로 드러나 보였다. (저 자도 무림인일까?) 우칠은 궁금하여 그에게 물어보려 했으나 왠지 그 자의 곁에 만 가면 가슴이 섬찝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어느덧 날은 저물어 하늘에는 붉은 황혼이 지기 시작했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어지자 씻은 듯이 푸르기만 했던 하늘 은 황홀하리만치 붉게 물들어졌다. 그때 갑자기 말없이 앉아 있던 흑의사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 어났다. 우칠은 깜짝놀라 자신도 모르게 덩달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흑의사내는 탁자위에 은화 두 냥을 올려놓더니 불쑥 입을 열 었다. "고가장(고가장)은 어디에 있느냐?" 그 음성을 듣자 우칠은 절로 가슴이 떨려왔다. 그 음성은 한 점의 감정도 담겨 있지 않은 아주 무감각한 것 이었기 때문이다. 우칠은 겁먹은 목소리로 조그맣게 더듬거렸다. "저...고...고가장으로 가시려면 ....밖으로 나가셔서 오른 쪽 길로 쭉 올라가시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흑의사내는 밖으로 성큼성큼 걸 어나갔다. 곧 그의 몸은 떨어지는 석양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 며 멀어져 갔다. 그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제서야 우칠은 한숨을 내쉬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았다. "휴우..." 우칠은 놀란 가슴을 쓸어 내리며 별 이상한 놈을 다 보겠다 고 생각했다. 하나 그는 자신이 방금 천하제일(천하제일)의 살성(살성)을 만났다는 것은 죽었다 깨어나도 알지 못할 것이다. 고가장은 통가집의 동쪽 이십 리쯤 되는 곳에 위치해 있었 다. 고가장의 장주는 고검령(고검령)이란 인물인데 그에 대해서 는 아무도 자세한 내력을 알지 못했다. 단지 주위 사람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가 십여년 전에 이곳 에 와서 고가장을 차렸으며 말투에 멀리 서북(서북)지방 사투 리가 심하게 섞여 있는 것을 보고 그쪽에서 오지 않았나 짐작 할 뿐이었다. 황혼무렵. 붉은 노을이 대지를 온통 물들이고 있을때 고가장의 정문앞 에 한 사나이가 나타났다. 그는 흑의를 입고 칼집도 없는 녹슨 칼을 허리춤에 찬 장발 의 사나이였다. 흑의사내는 고가장의 정문앞으로 가더니 문득 큰 소리로 외 쳤다. "신도비응(신도비응) 고검령!" 그 한 소리만을 외친 후 흑의사내는 다시 입을 굳게 다물었 다. 그는 정문앞에 우뚝 서서 우두커니 석양을 응시하고 있었 다. 잠시 후, 삐꺽! 굳게 닫혔던 고가장의 정문이 열리며 한 명의 인물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는 키가 훌쭉하게 크고 청의를 걸친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은 날카로운 눈으로 흑의사내를 살펴보았다. 한동안 그의 전신을 쓰윽 살피던 청의중년인은 불쑥 물었다. "귀하가 나를 불렀소?" 흑의사내는 오연히 석양을 올려다 본 채로 입을 열었다. "신도비응 고검령. 청해(청해)의 제일고수. 한 자루 연철금 도(연철금도)와 비응신법(비응신법)으로 한동안 적수를 만나지 못했음." 청의중년인, 고검령의 눈꼬리가 꿈틀거리며 예리한 안광이 뿜어나왔다. "용케도 내 정체를 알았구료. 귀하는 누구요?" 흑의사내는 말없이 자신의 칼을 두드렸다. 그것은 어찌보면 무의식적인 행동같기도 했고, 어찌보면 내 칼을 받아야만 대답해 주겠다는 무언(무언)의 시위같기도 했 다. 고검령은 눈쌀을 찌푸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지난 십여년간 청해를 떠나 이곳에 은거해 살았소. 귀 하가 내 과거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더 이상 무림인이 아니니 쓸데없는 시비를 일으키지 말고 이대로 돌아가시오." 흑의사내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이었다. 그는 떨어져 가는 석양을 응시한 채로 불쑥 말했다. "십여년전 당신은 친구를 죽이고 월영도(월영도)의 비급을 훔쳐 이곳으로 달아났소. 당신은 월영도법을 다 익혔소?" 고검령의 얼굴에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귀하가 어떻게 그걸...?" 그는 곧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는 입을 다물었다. 흑의사내는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 다. "당신이 내 일도(일도)를 받아낸다면 나는 이대로 돌아가겠 소." 고검령은 당혹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흑의사내의 진정한 의도를 알지 못해 그를 뚫어지게 주 시했으나 흑의사내는 여전히 석상처럼 서 있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