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무협지]태극문 - 32편 (32/87)

2026-09-23 18:02:56 조회 11
조자건은 그가 난데없이 곽회에 대해서 물어오자 내심 의아 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소.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시오?" 사공척은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곽회는 내가 제일 아끼는 수하였소. 헌데 내가 잠시 고향에 다녀온 사이 그는 배반자라는 낙인이 찍혀 철검백건대에서 추 방당한 신세가 되어 버렸소." 조자건은 묵묵히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곽회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남들의 말을 믿고 그 를 배반자로 인정했겠지만 곽회는 다르오. 나는 그를 잘 알고 있소. 그는 결코 남을 배반할 인물이 아니오." "........" "그래서 나는 곽회를 직접 만나 진실한 내막을 알고 싶었소. 그의 입으로 모든 사실을 듣고 싶었던 거요. 그런데 곽회는 종 남산에서 당신에게 구원을 받은 후 종적이 사라져 버렸소. 나 는 백방으로 그의 행방을 찾았으나 햇살을 받아 사라지는 아침 안개처럼 그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소." 조자건은 곽회가 실종되었다는 말을 듣고도 별반 놀라지 않 았다. 곽회와는 짧은 만남이었으나 그는 지금도 그의 모습을 생생 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곽회는 아주 사나이다운 인물이었다. 비록 무공은 그리 뛰어 나지 않았으나 용기있는 인물이었다. 조자건은 헤어질때의 곽 회의 모습과 왠지 그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 사공척의 음성은 그의 눈빛만큼이나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 다. "아마 곽회는 비극을 당했을지 모르지. 그래서 나는 그 일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알아야 하오. 그가 만약 누명을 썼다면 그 누명을 벗겨주고, 참변을 당했다면 당연히 그 복수를 해줄거 요. 이게 내가 당신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였소." 조자건은 사공척의 마음을 이해했다. 믿고 아끼던 수하가 어느날 갑자기 영문도 모르는채 배반자 라는 낙인이 찍히고, 그것을 해명할 기회도 없이 불의의 실종 을 당했다면 마땅히 그 진실을 파헤치고 싶을 것이다. 조자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그를 만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모르오. 하지만 헤어지기 직전 그가 당신에게 전하라고 한 말 이 있었소." 사공척은 급히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그는 당신에게 배반자는 당신 주위에 있으며 당신이 가장 믿는 인물이 바로 배반자라고 말했소. 그는 만약 자신이 죽었 다는 소문을 듣게 되면 이 말을 꼭 당신에게 전해달라고 했 소." 조자건의 말에 사공척의 안색이 가볍게 굳었다. "그 말외에 다른 말은 없었소?" "없었소." 사공척의 얼굴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곽회가 남긴 마지막 말은 그에게 숱한 의문을 가져다 주었 다. 자신이 가장 믿는 인물, 그가 과연 누구인가? 대체 그 주위의 누가 배반했단 말인가? 그리고 곽회는 그 사 실을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왜 곽회는 배반자의 이름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말하지 않고 그처럼 의혹에 가득찬 말을 했을까? 대체 배반자는 누구란 말인가? 사공척은 자신이 가장 믿는 사람이 누구인가 생각해 보았다. 몇 사람의 얼굴이 거의 동시에 떠올랐다. 그들중 한 사람이 배 반자라는 것은 절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상상만 해도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렇다면 곽회가 거짓말을 했단 말인가? 그것은 더더욱 믿기 지 않는 일이었다. 곽회는 생전 단 한 번도 허튼 소리를 한 적이 없는 인물이었 다. 과묵하고 맡은 일에는 최선을 다하는 사나이였다. 사공척 은 그의 그런 점을 높이 샀었다. 그렇다면 과연 자신의 측근중에 배반자가 있단 말인가? 자신이 믿고 아끼는 그 누군가가 맹을 배반하고 곽회에게 누 명을 씌우고...곽회를 제거했단 말인가? 의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지만 지금 당장은 어느 것 하나 정확한 해답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허나 사공척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일의 자세한 내막을 파헤쳐서 배반자가 누구인지 밝혀내리라고 결심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안위를 위한 일이었고, 무적검수맹을 위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미 지하에 잠들었을지도 모를 분양쾌검 곽회의 원 혼(원혼)을 위로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 월 광 조자건이 검풍각을 나왔을때는 이미 저녁때가 다 되어 있었 다. 서문금룡은 처음 이곳에 올때와 마찬가지로 조자건을 별관으 로 안내했다. 서쪽 하늘에 붉은 노을이 비끼자 드넓은 무적검수맹의 돌담 과 건물들은 흡사 누워있는 거대한 공룡처럼 석양에 긴 그림자 를 드리우고 있었다. 서문금룡과 조자건이 별관이 빤히 보이는 곳까지 왔을 때였 다. 멀지 않은 곳에서 돌연 여인들의 까르르하는 웃음소리가 들 리며 두 인영이 나타났다. 둘다 모두 여인들이었는데 자기들끼 리 웃고 떠드느라 서문금룡과 조자건이 지척으로 다가올때까지 도 모르는 것 같았다. 조자건은 그중 한 사람이 사공릉임을 알고 내심 쓴웃음이 흘 러나왔다. 사공릉도 마침 그를 발견하고는 미소가 가득하던 얼굴이 싸 늘하게 굳어졌다. 그녀의 옆에서 걷고 있던 여인은 그녀의 안 색이 갑자기 변하자 의아한 듯 물었다. "릉매(능매). 왜 그래? 어디 아파?" 사공릉은 조자건의 앞으로 걸어오더니 그의 앞을 가로막으며 양 손을 허리에 척 올려 놓았다. "흥!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이곳이 아무나 막 나다닐 수 있는 곳인줄 아나 보지?" 조자건은 이 입이 거칠고 성미가 급한 아가씨와 정말 아무런 시비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무 대꾸도 없이 자신 이 가던 길을 계속 가려 했다. 한데 이게 또 그녀의 비위를 더 욱 상하게 한 모양이었다. 그녀의 눈꼬리가 갑자기 쭈욱 치켜 올라가며 날카로운 호통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말 건방지기 짝이 없구나! 본 아가씨가 오늘 네 놈을 혼 내주지 않는다면 성을 갈아버리겠다!" 이어 그녀는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조자건에게 달려들며 양 손을 세차게 휘둘렀다. 파파팟! 손그림자가 장내를 뒤덮으며 조자건의 상체를 공격해 왔다. 조자건은 설마 그녀가 이토록 물불을 안가리고 손을 쓸 줄은 몰랐는지라 내심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세상물정을 모르는 말 괄량이라고 하지만 이건 좀 너무하다 싶기도 했다. 또 왜 그녀가 자신만 보면 이렇게 화를 내는지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공격을 해 왔으니 일단은 피할 수 밖에 없었다. 조자 건이 슬쩍 상체를 옆으로 움직이자 그녀의 매서운 일격은 헛되 이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녀는 일격이 빗나가자 더욱 분노가 치솟는지 입술을 꼬옥 깨물며 성난 암사자처럼 매섭게 공격해왔다. 눈깜박할새 십 여초가 지나갔다. 그동안 조자건은 단 한 번 도 반격을 하지 않고 피하기만 했다. 그녀는 맨 손으로는 도저 히 그를 상하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양 손을 등뒤 로 가져갔다. 챙! 채앵! 날카로운 검명(검명)이 울리며 그녀의 양 손에 쌍검이 쥐어 졌다. 그녀의 눈꼬리에 표독한 살기가 번뜩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 는 이번에 아예 사생결단을 낼 심산같았다. 때마침 서문금룡이 잽싸게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공격을 제지했다. "릉아야. 됐다. 이제 그만해라." "비키세요. 저 자를 요절내고야 말테에요." 서문금룡은 엄격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만해라." 사공릉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리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 리며 달려나갔다. "흐흑...흑..." "릉매!" 그녀와 동행했던 여인이 그녀를 불렀으나 이미 그녀의 몸은 노을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서문금룡은 그녀의 돌연한 행동에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멍 하니 그녀가 사라진 곳을 보고 있다가 조자건을 돌아보며 쓴웃 음을 날렸다. "이해하시오. 그녀는 너무 귀엽게만 자라 버릇이 없소." 조자건은 물론 이해를 했다. 그도 어렸을때는 다른 어떤 아이들보다도 더 개구장이에 천 방지축이었다. 하나 십 여년전에 인생의 목표를 정한 이후부터 그는 다른 아이들과 달라지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이 누렸던 어린이들만의 특권과 자유를 스스로 포 기해 버렸다. 비록 그때 일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가끔씩 아련히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사공릉과 동행했던 여인이 서문금룡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서문호법(서문호법)님. 이 분은..." 서문금룡은 그녀를 돌아보며 빙긋 미소지었다. "궁소저(궁소저)! 인사가 늦었읍니다. 이 사람은 요즘 한참 명성을 떨치고 있는 조자건이라고 합니다." "아...! 풍운을 몰고 다닌다는 그..." 그녀는 조자건의 이름을 들은 듯 가볍게 탄성을 터뜨렸다. 조자건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녀는 궁장을 한 이십대 초반의 미녀인데 한 눈에 보기에도 굉장한 미모의 소유자였다. 조자건은 섭보옥과 견주어도 별로 뒤떨어지지 않는 용모라고 생각했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그녀의 별빛처럼 반짝이는 두 눈이었 다. 그 눈빛은 지혜로운 빛이 가득해서 보고 있기만 해도 가슴 이 시원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서문금룡은 낮게 헛기침을 한 후 그녀를 그에게 소개했다. "인사하시오. 이 분은 본맹의 맹주이신 궁소천 대협의 따님 이신 궁아영 소저이시오." 조자건도 그녀의 이름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녀는 궁소천의 무남독녀 외동딸로 어려서 황산(황산)의 벽 운관(벽운관)에 가서 벽운사태(벽운사태)밑에서 사사(사사)를 했다고 한다. 벽운사태의 무공은 여인이 익히기에는 가장 적합 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녀는 거의 십 년동안 벽운사태에게서 무공을 배운 후 무림에 출도했다. 출도한 이후 그녀는 남앞에서 무공을 펼친 적이 거의 없어 누구도 그녀의 진실한 무공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지 못했 다. 하나 그녀의 재지(재지)가 절세적인 것만은 확연하게 드러 나 보였다. 그래서 많은 무림인들이 그녀를 신기옥녀(신기옥녀)라고 불 렀다. 어떤 사람들은 신수궁의 신주홍안과 그녀를 함께 무림쌍 염이라고도 했는데 미모는 신주홍안이, 지혜는 신기옥녀가 더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었다. 조자건은 담담한 표정으로 포권을 했다. "조자건이오." 궁아영은 그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아주 잠깐 허공에서 마주쳤다.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 별다른 말없이 몸을 돌려 갈길을 갔다. 조자 건은 서문금룡과 함께 별관으로 향했고 궁아영은 사공릉이 사 라진 내원(내원)쪽으로 갔다. 그들의 만남은 아주 짧았다. 허나 그 만남의 여파로 인해 천 하제일을 꿈꾸던 한 절세의 기재가 파멸의 나락으로 떨어질 줄 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술은 강남의 명주인 금존청(금존청)이었다. 노인은 자신의 술잔에 담겨진 그 무색투명한 금존청을 가만 히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셔버 렸다. 탁! 그가 술잔을 내려놓자 기다렸다는 듯 여인의 섬섬옥수가 다 시 술잔 가득 금존청을 따라 부었다. 노인의 시선은 이번에는 그 섬섬옥수에 고정되어 있었다. 그 손은 무척 아름다웠다. 노인은 수십 년간 세상을 살아오면서 수많은 여인들의 손을 보아왔다. 하나 이렇게 아름다운 손은 본 일이 없었다. 여자의 손은 사실 대부분이 아름답다. 그러나 제 아무리 아 름다운 손이라도 거기에는 약간의 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약간 크다거나, 아니면 약간 작다거나, 피부가 거칠다거나 손톱이 조금 클 수도 있고 피부가 거무스름할 수도 있다. 아무 리 아름다운 여인이라 할지라도 완전무결한 손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허나 지금 노인이 보고 있는 이 손만은 가히 완벽하여 결점 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볼 수가 없었다. 마치 백옥(백옥)으로 정교하게 조각된 것과 같았다. 노인은 한동안 그 손을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시선을 올려 손의 주인을 응시했다. 손의 주인은 그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 은 듯 나른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표정과 입가에 떠오른 미소는 무척 특이했다. 어찌보면 만사가 귀찮은 듯 권태로운 것 같기도 했고, 어찌 보면 세상일에 달관한 것처럼 초연(초연)해 보이기도 했다. 또 어찌보면 아무런 뜻도 없이 그저 웃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어찌되었건 그녀의 나른한 미소는 완벽한 아름다움을 자랑하 는 손과 전신에 걸친 착 달라붙는 흑의와 더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묘하게 움직이는 기이한 매력을 담고 있었다. 사람과 옷과 미소가 한데 어우러져 야릇한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노인은 문득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안타깝군." 여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엇이 안타깝다는거죠?" 노인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절세가인(절세가인)과 월하대작(월하대작)하건만 술잔속을 들여다보면 백발 성성한 늙은이의 모습만 보이니 어찌 한숨이 나오지 않겠소. 내 머리에 백발이 이렇게 많은줄을 예전에 미 처 몰랐으니 이또한 가슴 아픈 일이고..." 여인은 나직하게 웃었다. "호호...맹주(맹주)께서 스스로를 노인으로 자처하시나 제 눈에는 아직 젊음이 남아 있는 중년(중년)으로 보이는 군요. 안보이던 백발이 눈에 많이 띄는건 달빛이 너무 밝아서 일거에 요." 노인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의 말은 고마우나 사실 요즘들어 부쩍 나이먹은 것을 느끼고 있소. 아영이나 사공대장같은 젊은이들을 보고 있노라 면 문득 내가 물러날 때가 머지 않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곤 한다오." 그녀는 잠시 노인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은 결코 쉽게 늙지 않는 법이지요. 맹주 께서도 자신이 생각하신 것보다는 훨씬 더 건재하실 거에요." "내 가슴이 뜨겁다고 보오?" 여인은 노인의 물음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고 입가에 예 의 나른한 미소를 떠올렸다. 무심(무심)한 것 같기도 했고, 복잡한 뜻을 담고 있는 것 같 기도 한 야릇한 웃음이었다. "꿈이 있는 사람의 가슴은 항상 뜨겁지요." "꿈이라...." 노인은 잠시 괴이한 눈으로 여인을 응시하고 있다가 이내 껄 껄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꿈이 없는 사람은 없겠지. 당신의 말을 들으니 내 가 다시 젊어진 것 같소. 당신의 말은 알듯 모를듯 하지만 듣 는 사람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는 데가 있소." 허공을 올려보며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던 노인은 문득 시선 을 내려 어느 한 곳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은 어둠속에서 유 난히 번쩍거렸다. "사공대장이 오는구료." 여인은 천천히 노인의 시선이 향한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한 사람이 그들이 있는 누각을 향해 걸어 오고 있었다. 달빛이 그의 훤칠한 몸을 감싼 청의에 비추어 엷은 빛을 사 방으로 뿌려대고 있었다. 냉정하고 싸늘한 시선, 준수하면서도 날카로운 기상을 풍기는 얼굴. 바로 사공척이었다. 사공척은 누각으로 올라오자 두 사람을 향해 목례를 했다. "이토록 달밝은 밤에 호젓하게 술잔을 기울이시니 두 분의 풍취도 대단하시군요." 노인은 빙그레 웃었다. "허허...풍취는 무슨...달이 하도 밝아 잠도 오지 않던 참에 조낭자(조낭자)께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해서 나왔네. 자네야 말로 월광(월광)의 풍취에 젖은게 아닌가?" 사공척의 얼굴은 옥(옥)을 깎아 만든 듯 단정하고 고아했다. 허나 별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아 냉막해 보였다. 달빛속 에서 보니 그런 느낌이 더욱 강했다. "사실 저는 맹주님과 사고(사고)께서 여기 계시다는 말을 듣 고 왔읍니다." 노인은 무적검수맹의 맹주인 낙영신검 궁소천이었다. 긍소천은 삼 년전 무적검수맹을 세울때 주도적 역할을 한 인 물인데 비단 강호무림의 세 손가락안에 드는 절세의 검객(검 객)일 뿐 아니라 인품과 덕망이 탁월해서 많은 무림인들의 숭 앙을 받고 있었다. 무적검수맹이 불과 일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에 무림의 가장 거대한 세력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그의 실력과 개인적인 명망 (명망)이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여인은 사공척의 사문(사문)의 윗어른이었다. 그녀의 이름은 조추음(조추음)이라고 했는데 이름외에는 무 림에 알려진 것이 거의 없는 신비한 여인이었다. 사공척의 사문이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는 것 처럼 그녀의 무 공이나 진실한 내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심지어 사공척 조차도 그녀에 대해서는 많이 알고 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나 사공척은 그녀를 대할때 매우 공손하고 깎듯한 예절을 지켰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감히 그녀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 다. 궁소천은 사공척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나?" 사공척은 잠시 허공을 올려다 보았다. 교교히 빛나는 월광을 받으며 텅빈 허공을 응시하고 있는 그 의 모습은 몹시 고독해 보이면서도 칼날같은 예리함이 풍겨나 오고 있었다. 사공척은 한동안 그런 자세로 있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번 무림대회에 참석하려고 합니다." 궁소천의 눈에 흥미어린 표정이 떠올랐다. 사공척은 화군악에 대해 어떤 경의심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사공척이 경의심을 느끼는 유일한 인간이 화군 악일지 모른다. 따라서 그는 화군악의 상대자를 선발하는 이번 무림대회를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고 참석하지 않겠다는 뜻 을 밝혔었다. 궁소천은 무엇이 그의 생각을 바뀌게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가 참가한다면 이번 대회는 물론 더욱 빛이 날걸세. 그 런데 갑자기 생각이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 있겠나?" 사공척의 눈빛이 유난히 반짝거렸다. 사공척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가 짤막하게 말했다. "솜씨를 겨루어 보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단호한 데가 있었다. 궁소천이 보니 사공척의 눈빛은 어둠속에서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의 활활 타오르는 듯한 눈빛을 보자 궁소천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번뜩 떠올랐다. (그는 무언가에 자극되어 불같은 호승심(호승심)을 일으키고 있구나...대체 누가 그로 하여금 이런 마음을 일으키게 한 것 일까?) 궁소천이 강호무림에 혁혁한 명성을 떨치게 된 것은 물론 그 의 놀라운 검술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어떤 일을 당해도 절대 놀라지 않는 그의 침착함과 주도면밀한 성격 때문이었다. 그는 특히 사람을 보는 안목이 날카로워서 그의 앞에 서 있 으면 누구도 속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도 궁소천은 사공척의 눈빛만 보고도 그의 마음상태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지금 궁소천이 궁금한 것은 사공척 으로 하여금 솜씨를 겨뤄보고 싶은 욕망을 일게 한 사람이 누 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궁소천의 노련한 점이었다. 물어 보았어도 사공척은 대답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설사 대답해 준다 할지라도 궁소천은 자신이 그의 마음을 꿰뚫 어 보고 있다는 것을 사공척에게 알리고 싶지가 않았다. 물어보아야 할 때와 묻지 말아야 할 때를 그는 잘 알고 있었 던 것이다. 그때 지금까지 말없이 앉아 있던 조추음이 불쑥 입을 열었 다. "릉아한테 들으니 네가 오늘 어떤 사람을 데려 왔다고 하던 데..." 그녀의 나이는 사공척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허나 그녀는 사공척의 사부와 배분(배분)이 같기 때문에 그 에게 스스럼없이 반말을 했다. 사공척 또한 그녀에 대해서는 공손한 태도를 취했다. "조자건이란 사람입니다." 조추음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렇다고 들었다. 그는 아직 젊겠지?" 사공척은 그녀의 돌연한 질문에 짙은 검미를 꿈틀거렸다. 허 나 이내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조추음은 다시 입을 열었다. "듣자하니 그는 무공이 고강하고 괴이해서 아무도 진실한 무 공내력을 알지 못한다고 하더구나." 사공척은 그녀가 말을 하는 의도를 몰라 묵묵히 고개만 끄덕 이고 있었다. 그녀의 음성은 다시 이어졌다. "그는 또한 절정고수들을 찾아다니며 비무를 한다고 들었다. 통상적으로 비무행(비무행)을 하는 사람들은 무도(무도)를 추 구하는 무리들이다. 조자건이란 인물도 그렇겠지?" 사공척의 대답은 조금전과 동일했다. "그렇습니다." 조추음은 나른한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그렇다면 그는 너의 좋은 적수(적수)가 되겠구나." 그제서야 사공척은 그녀가 말하는 의도를 알아차렸다. 사공 척 뿐 아니라 궁소천 또한 그녀의 말속에 담은 뜻을 알아차렸 다. (그렇군. 사공척은 그를 만나고 나서 호승지심이 들었던 거 로군.) 궁소천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한 젊은 나이에 무도를 추구하는 고강한 무공을 지닌 청 년고수. 그런 인물을 만나게 된다면 사공척같은 성격의 소유자 라면 필시 자웅(자웅)을 겨뤄보고 싶었을 것이다. 고고하고 오만한 사공척으로 하여금 경쟁심을 느끼게 한 사 나이! 궁소천은 문득 조자건이란 인물에 대해 짙은 호기심을 느꼈 다. 하나 초조해 하지는 않았다. 그 자에 대해서는 가까운 시일 내에 좀더 자세하게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더구나 그 자가 무적검수맹 내에 있다면 머지않아 직접 자신 의 눈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일단 만나게 된다면 궁소천은 무슨 수를 쓰던 상대의 무공내력을 알아낼 자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