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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태극문 - 31편 (31/87)

2026-09-23 18:02:56 조회 10
그들은 각기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학들을 지니고 있어서 많은 사람 들은 이번 무림대회의 우승자가 그들중에 나올거라고 믿고 있 었다. 그런데 이 팔괘주의 모래사장에 천하를 떨쳐 울리는 우내십 대기문병기중에서 두 사람이 나타났으니 어찌 놀랍지 않겠는 가? 손중화의 시선은 곧 과자옥의 옆에 있는 사마결등에게로 향 했다. 그는 오만한 성격답게 자신이 먼저 누구냐고 묻지 않았 다. 과자옥은 곧 그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빙그레 웃으며 소개 해 주었다. "인사하시오. 이분은..." 과자옥이 사마결을 소개해 주려는데 손중화가 먼저 입을 열 었다. "알고 있소. 사마형은 일전에 만난 적이 있소." 사마결은 히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일 년전인가? 자네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군." 손중화의 입꼬리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귀하도 마찬가지요." 두 사람 사이에는 냉랭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일년전, 사마결은 우연히 강남에 갔다가 손중화를 만났는데 그때 그가 어찌나 오만방자하게 구는지 하마터면 손을 써서 싸 울 뻔 했다. 당시 주위사람들의 만류로 간신히 싸움은 면했지 만 두 사람 사이에는 그때의 묵은 감정들이 아직도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과자옥은 주위의 분위기가 경직되자 급히 다른 인물을 소개 했다. "자. 이쪽은 파금왕의 아드님인 정공자일세." 과자옥이 소개를 하자 정각은 손중화를 향해 멍청하게 웃으 며 포권을 했다. "헤헤...바...반갑소. 난 정각이오. 위명이 자자한 손형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 손중화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정대치로군. 난 당신의 형제가 아니니 손형이라고 부르 지 마오." 정각을 바라보는 손중화의 눈가에는 비웃음의 기색이 가득했 다. 정각은 그의 싸늘한 태도에 어쩔줄 몰라 더듬거렸다. "그...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손중화의 음성은 찬바람이 씽씽 불 정도로 차가운 것이었다. "남들처럼 손대협(손대협)이라고 부르란 말이오." "헤헤...손대협." 정각은 여전히 손을 맞잡고 헤헤거렸으나 옆에서 보고 있던 사마결은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스스로의 입으로 감히 대협운운 하다니 저 놈은 갈수록 광 오해지는군. 그나저나 정각, 저 자식은 배알도 없나...저토록 굽신거리다니 제 아비 명성에 먹칠을 하는군...) 그는 못마땅한 기색으로 아예 고개를 돌려 버렸다. 손중화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조자건을 향했다. 조자건은 담 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난 조자건이오." 손중화의 눈빛에 기광이 번득거렸다. 그는 조자건의 전신을 쓰윽 흙어보다가 거만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흠...당신이 요즘 제법 강호에 명성을 얻고 있는 조자건이 군. 듣자하니 당신이 나무막대기 하나로 집마부의 백운교를 물 리쳤다는데 그게 사실이오?" 조자건은 빙긋 웃었다. "운이 좋았오." 손중화의 눈이 날카로운 빛을 뿌렸다. "당신도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왔소?" "그럴 생각이오." 손중화의 입꼬리에 예의 싸늘한 미소가 그어졌다. "흐흐...백운교를 물리쳤다고 무림이 만만한 곳인줄 알는 모 양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라는걸 알게 될거요." 그의 시비를 거는 듯한 말투에도 조자건은 빙그레 웃을 뿐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그 미소를 보자 손중화는 기분이 나빠 졌다. (이 자식이 나를 우습게 보나?) 그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며 무어라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흥! 이곳에 숨어 있었구나!" 뾰쪽한 음성과 함께 갑자기 십 여명의 인물이 나타나 그들 주위를 에워싸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모두 청의무복(청의무복)을 입고 머리에는 백건을 질 끈 동여맨 검수들이었다. 그들의 중앙에는 등에 쌍검을 맨 청 의미소녀와 키가 커다란 청년이 나란히 서 있었다. "앗? 철검백건대의 인물들이다...!" 중인들 틈에서 그들을 알아보고 놀란 외침이 터져 나왔다. 조자건은 벌써 목소리만 듣고도 상대가 누구인지 짐작하고는 쓴웃음을 머금었다. 과연 청의검수들 중앙에 우뚝 선 채 그를 쏘아보고 있는 청의미소녀는 쌍검비연 사공릉이었다. 사공릉은 고운 아미를 잔뜩 치켜 올린 채 살기등등한 눈초리 로 조자건을 노려보고 있었다. "난 또 네가 이 아가씨가 무서워 어디로 꽁꽁 숨었나 했더니 여기 있었구나. 각오는 돼 있겠지?" 조자건은 고소만 머금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공릉은 그를 잔뜩 노려보다가 자신의 옆에 있는 키가 큰 청년을 돌아보며 말했다. "서문(서문)오빠! 저 자식이 바로 본 맹을 우습게 여기고 나 를 깔본 조자건이란 놈이에요. 어서 따끔한 맛을 보여 주세 요." 키가 큰 청년은 턱이 사각지고 이목구비가 뚜렷했는데 유달 리 짙은 눈썹을 하고 있어 개성이 강해 보였다. 그는 허리춤에 고색창연한 검을 매고 있었는데 그 검과 사람이 한데 어우러져 헌앙(헌앙)한 기상을 물씬 풍겨내고 있었다. 그는 그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조자건을 바라보더니 정중 하게 포권을 했다. "나는 철검백건대의 우호법(우호법)인 서문금룡(서문금룡)이 라 하오." 서문금룡이란 말에 중인들 틈에서 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소상검객(소상검객)이다!" "형산파(형산파)의 제일고수인 소상검객이 저 사람이었구 나!" 중인들이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소상검객이란 이름은 별로 특별한 데는 없었다. 유사이래 무 림에서는 거의 매 세대마다 소상검객이란 이름을 가진 검객이 등장하곤 했다. 하나 소상검객이라 불리워질 자격을 갖춘 사람은 절대 평범 한 사람이 아니었다. 매 세대에 등장한 소상검객의 검법은 한결같이 지극히 고강 했다. 또한 성품이 고아(고아)하고 풍류를 즐길 줄 알았다. 특히 현재의 소상검객인 서문금룡은 사람 자체가 인물됨이 광명정대했고 검법이 유룡(유룡)과도 같았다. 그는 비단 형산 파의 으뜸가는 고수일 뿐 아니라 당금 강호에서도 몇 손가락안 에 드는 검법의 대가였다. 철검백건대는 대장을 호위하는 좌우호법(좌우호법)이 있었는 데 당대의 소상검객인 서문금룡은 절정검 사공척과 평소 친분 이 두터워 그가 철검백건대의 대장으로 취임을 하자 스스로 신 분을 낮춰 그의 우호법이 되었다. 조자건 또한 상대와 같이 예의를 갖춰 포권을 했다. "낙양의 조자건이오." 조자건의 성격은 외유내강(외유내강)했다. 그는 상대가 거칠 게 나오면 제아무리 대단한 인물이라 해도 자신 또한 함부로 행동했다. 허나 상대가 예의바르게 나오면 아무리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상대에게 예의를 다했다. 그는 소상검객의 이름은 그동안 많이 들었지만 직접 만난 것 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처음 만난 소상검객은 소문처럼 공명한 인물인 것 같았다. 서문금룡은 형형한 안광이 번뜩이는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하 며 입을 열었다. "귀하에 대해서는 일전에 단리집법(단리집법)에게서 말을 들 었소. 그 뒤로 꼭 만나고 싶었는데 오늘 이렇게 뵙게 되니 기 쁘기 그지없소이다." 서문금룡이 말하는 단리집법이란 집형전의 고수인 용형검 단 리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사공릉은 서문금룡이 조자건을 대하는 태도가 정중하고 부드 럽자 내심 불만이 솟구쳐서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녀는 더 이 상 참지 못하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서문오빠. 저 놈은 아주 예의도 모르는 불한당같은 녀석이 니 그렇게 공손하게 대하지 않으셔도 되요." 서문금룡은 그녀의 친오빠인 사공척과 절친한 사이이므로 그 녀는 그를 오빠라고 부른 것이다. 서문금룡은 엄격한 눈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릉아야. 너는 가만 있거라." 사공릉은 입이 퉁퉁 부어올랐으나 서문금룡의 얼굴이 진지한 것을 보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서문금룡의 시선이 다시 조자건에게로 향했다. "귀하가 이번에 강남에 오신 것은 혹시 본맹에서 개최하는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가 아니오?" 조자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의향이오." 서문금룡의 안광에서 번쩍하는 빛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귀하와 본맹과의 일은 대회이후에 해결하도록 하 는게 어떻겠소?" 조자건은 솔직히 오늘 상대와 일전(일전)을 치루지 않으면 안될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가 이런 제안을 하자 조금 뜻 밖이었다. 하나 그로서는 거절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좋소." 조자건이 선뜻 승락을 하자 서문금룡의 네모진 얼굴에 엷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번 대회에는 본맹에서도 몇 분의 고수들이 참가할거요. 인연이 닿아 대회도중 만나게 된다면 좋은 승부를 하기 바라겠 소." "고맙소." "숙소를 정하지 않았다면 본맹에서 잠시 기거하는게 어떻겠 소?" 중인들은 서문금룡이 조자건에게 왜 이렇게 친절을 베푸는 지 몰라 어리둥절해졌다. 서문금룡은 인품이 고아하고 무공이 고강한 만큼이나 거만한 일면이 있었다. 그는 확실히 거만한 자세를 취할 만한 자격이 있어서 누구도 그것에 불만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소상검객이 오늘은 처음 본 조자건에게 과하다 싶을 정 도로 정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사공릉은 화가 나서 아예 입을 한 자나 내민 채 등을 돌리고 있었다. 조자건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폐가 되지 않는다면." "폐라니 당치 않소. 귀하가 본 맹에 머무른다면 사공대장(사 공대장)도 흡족해 할거요." 사공대장이란 물론 철검백건대의 대장이자 강호의 젊은 고수 들의 우상인 절정검 사공척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먼 발치에서 라도 얼굴 한 번 보기를 원하는 사공척을 만날 수 있다면 누구 라도 그런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이리하여 조자건일행은 서문금룡등 철검백건대의 고수들과 함께 무적검수맹으로 향하게 되었다. 가는 도중 사마결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조자건이 무적검수맹에 머무르는걸 왜 사공척이 흡족해할 까?) 알려진 바로는 사공척은 도도하고 성격이 차가워서 누구와도 쉽게 사귀는 인물이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그는 철검백건대의 수하들을 끔찍히 아껴 누가 그들을 건드리거나 모욕하는걸 참 지 않는다고 했다. 이치상으로 보자면 조자건은 철검백건대의 고수들과 시비가 붙었으므로 사공척이 그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질 리가 없었 다. 그런데 조자건을 대하는 서문금룡의 태도나 어조에서는 전 혀 그런 빛이 나타나지 않았다. 게다가 서문금룡은 사공척이 조자건을 반기고 있다는 투의 말까지 하지 않았는가?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더 이상 자세한 것은 제아무 리 아는 것이 많은 그일지라도 짐작할 수 없었다. 제19장 무 인 지 혼 일, 절 정 금릉(금릉). 금릉은 강소성(강소성)의 성도로서 양자강(양자강) 남안에 위치하고 있다. 삼국정립시대의 오(오)나라가 여기에 도읍하여 건업(건업)이라 불렀고, 동진(동진) 이후 남조(남조)의 제도 (제도)로서 건강(건강)이라고도 불리웠다. 그후 많은 변천을 거쳐 명(명)나라 초기의 제도였으나 영락 제(영락제)가 도읍을 북평(북평)으로 옮겼으므로 이 지방을 남 경(남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금릉의 종산(종산)은 신비스럽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종산은 금릉의 동쪽 장묘(장묘)근처에 있는 산이었다. 그곳 에는 아직도 예전 육조시대때 축성했던 궁전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집터의 흔적은 호화스럽고 번창했던 옛날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한데 언제부터인지 종산에는 과거 육조시대보다 더욱 거대하 고 호화스런 돌담이 쌓이기 시작했다. 돌담의 높이는 이 장에 달했고 그 길이는 거의 측량도 할 수 없을만큼 엄청났다. 돌담이 세워진 것은 삼 년전이었는데 많은 무림인들은 이 앞 을 지날때마다 호기심과 흥미, 그리고 외경(외경)의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다. 하나 어느 누구도 돌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볼 생각은 감히 하지 못했다. 그도 그럴것이 이 돌담이야 말로 강호무림의 중추적 세력이 며 무림인들의 꿈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무적검수맹(무적검 수맹)의 본거지였기 때문이다. 조자건일행이 무적검수맹의 총단(총단)으로 들어온 것은 미 시(미시)경 이었다. 그들을 안내한 사람은 서문금룡이었는데 사공릉은 화가 잔뜩 났는지 토라져서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서문금룡은 그들 을 무적검수맹의 서쪽 별관(별관)으로 데리고 갔다. 이곳은 전문적으로 무적검수맹에서 손님들을 접대하기 위해 서 만들어 놓은 건물인데 얼마전에 증축을 해서 더욱 크고 웅 장해 보였다. 며칠후에 시작될 무림대회에 인파들이 몰릴 것을 대비해서 확장공사를 했던 것이다. 서문금룡이 조자건일행을 데리고 별관으로 가자 별관에서 두 명의 시비들이 나왔다. "이분들을 이층으로 모셔라." 두 명의 시비는 공손하게 절을 하고 중인들을 별관의 이층으 로 안내를 했다. "따라 오십시오." 중인들이 그녀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갈때 서문금룡은 제일 마지막으로 올라가는 조자건을 슬쩍 불러 세웠다. "귀하. 잠깐만 시간을 내줄수 있겠소?" 조자건은 처음부터 서문금룡이 자신들을 이곳으로 초대한 것 에는 무언가 이유가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서문금룡이 자신을 따로 불렀을때도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 "좋소." 그는 중인들과 떨어져 서문금룡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서문금룡의 걸음은 별관밖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별관을 나 와 다시 우측으로 향했다. 조자건은 묵묵히 그의 뒤를 따라갔 다. 그동안 몇 번인가 숲속에서 호위무사들이 튀어 나왔으나 서 문금룡임을 알고는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사라지곤 했다. 조자 건은 대부분의 무사들이 철검에 백건을 한 것으로 보아 자신들 이 철검백건대의 본채(본채)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했 다. 얼마쯤가니 한 채의 정교한 누각이 나타났다. 검풍각(검풍각). 누각위에는 용이 날아가는 듯한 필체로 검풍각이라 씌여진 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이름처럼 전체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웅 후한 분위기를 풍겨내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검풍각의 앞에는 다른 장소와는 달리 아무런 호위무사도 서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서문유룡은 말없이 조자건을 데리고 검풍각의 안으로 들어갔 다. 검풍각의 문을 들어설때 조자건은 문득 전신에 따가운 기운 을 느꼈다. 그것은 절정의 경지에 다다른 고수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무형의 살기였다. 조자건은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무서운 실력을 지닌 고 수들이 이곳을 철통같이 경비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아차렸다. 검풍각 안은 생각했던대로 아주 단촐하면서도 고아했다. 별 다른 장식도 보이지 않았고, 집기는 꼭 필요한 것만 갖추어 놓 았다. 단 한가지, 대청의 중앙에 걸려있는 커다란 벽화만은 들어오 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웅대한 것이었다. 벽화는 다른 색을 전혀 쓰지 않고 오직 먹으로만 그린 것이 었는데 수직으로 떨어지는 거대한 폭포를 아주 생생하게 묘사 한 것이었다. 그 거대한 물줄기는 마치 실제로 살아 있는 것 같아서 그것 을 보고 있자니 보는 사람이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충 동을 느낄 지경이었다. 그 웅장한 벽화의 모습은 무언가 사람 으로 하여금 호연지기(호연지기)를 느끼게 하는 호탕한 것이 있었다. 조자건이 벽화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 서문유룡은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저것은 은하낙구천도(은하낙구천도)라는 것이오. 웅장하지 않소?"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구료. 누가 그린 것이오?" 서문금룡은 짤막하게 말했다. "화군악." 조자건은 의외의 사실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서문금룡은 잠시 침음하다가 말을 계속했다. "삼년전 무적검수맹이 창립할 때 화군악은 종산의 뒤쪽에 있 는 만화원(만화원)에 은거를 했소. 저 그림은 그가 은거하기 직전에 그린 것이오." 조자건은 새삼스런 눈으로 그림을 바라보았다. 서문금룡의 설명을 듣고 보니 확실히 그 그림은 단순히 떨어지는 폭포를 그린 것 같지 않았다. 마치 하늘에서 수많은 별들이 떨어지는 은하수를 연상케했다. 물방울 하나 하나는 곧 별들이었고, 거대한 폭포의 흐름은 은하(은하)의 그것과 다름이 없었다. 실로 그린 이의 웅혼(웅 혼)한 기상을 느끼게 하는 장관이었다. 조자건은 새삼 화군악이란 한 인간에 대해 어떤 경의를 느끼 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한 화폭에 거대한 은하의 흐름을 그려 넣는 다는 것은 일반인들이라면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조자건이 은하낙구천도를 바라보며 한동안 상념에 잠겨 있을 때였다. "이 그림은 비록 웅장하나 살기가 너무 짙은게 흠이오. 그 살기마저 다스렸다면 더욱 훌륭한 그림이 되었을거요." 그의 뒤에서 조용한 음성이 들려왔다. 조자건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사공척을 보았다. 사공척의 나이는 이십 칠세. 키는 조자건과 같았으나 체격은 조금더 호리호리했다. 푸른 청삼을 입었고 철검백건대의 다른 고수들과 마찬가지로 머리에 백색 두건을 매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철검을 차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신 에 금빛이 번쩍이는 허리띠를 매고 있었다. 눈이 날카로운 사 람이라면 그 허리띠가 단순한 요대가 아닌 연검(연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공척의 얼굴은 매를 닮았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우면서도 매서운 데가 있었다. 그것을 제외하고는 흠잡을데 없는 미남자 이기도 했다. 조자건의 시선을 제일 끄는 것은 사공척의 눈이었는데 사공 척의 눈은 물처럼 고요하게 정지되어 있었다. 하나 그 눈을 가 만히 들여다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등골에 냉기가 서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조자건은 그 냉기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것은 검도(검도)를 초상승으로 연마한 절정검수에게서 나 타나는 무형지기(무형지기)였다. 조자건은 출도한 이래 처음으 로 무형지기를 발출하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사공척은 뒷짐을 진채 천천히 조자건의 앞으로 다가왔다. "화군악이 이 그림을 그렸을때는 천하제일고수의 보좌(보좌) 에 앉은지 얼마되지 않아서였소. 나는 가끔 그가 지금 이 그림 을 다시 그린다면 어떤 모양이 될까하고 궁금해 하곤 했소. 당 신의 생각은 어떻소?" 조자건은 다시 그림으로 시선을 옮겨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글쎄...아마 그림을 찢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구 료." 사공척은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소?" "이 그림은 보는 사람을 충동질시키는 무엇이 있소. 화군악 이 다시 나와 이 그림을 보게 된다면 아마 스스로의 마음을 참 지 못하고 한 칼에 베어버리고 말 것이오." 사공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도 처음에 이 그림을 봤을때 몹시 흥 분해서 며칠간을 꼬박 뜬 눈으로 지샌 적이 있었소." "아마 이 그림에 무도(무도)를 향한 무인혼(무인혼)같은 게 서려 있어서 보는 사람을 들끓게 만드는 것일게요." "무인(무인)의 혼(혼)이라..." 사공척은 나직히 중얼거리다가 수정처럼 맑은 눈으로 조자건 을 힐끗 돌아보았다. "당신도 남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조자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말이오?" 사공척의 눈에서는 기이한 열기같은 것이 일렁거리고 있었 다. "당신에게서도 이 그림과 같은 무언가가 느껴지오. 무인의 혼이랄까...그런것 말이오. 다른 사람들은 못 느낄지 몰라도 무도를 추구하는 무인이라면 느낄 수 있소." "........!" "당신은 상대로 하여금 당신에게 도전하고 꺾고 싶은 충동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묘한 분위기가 있소. 즉 사람의 호승심을 자극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단 말이오." 조자건은 묵묵히 사공척의 말을 듣고 있었다. 사공척은 별빛같은 눈으로 조자건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나는 당신을 조금전 처음 보았을때 왠지 손속을 겨루고 싶 은 충동이 들었소. 그 이유를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당신은 모든 무림인들이 꿈꾸는 이상(이상)을 추구하고 있소. 바로 천 하제일고수요." 조자건은 그의 말을 시인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인도 하 지 않았다. 확실히 그는 무인들의 긍극적인 목표인 최고의 무도를 얻으 려 하고 있었다. 그가 태극문에 뛰어든 것도, 난데없이 비무행 을 시작한 것도 바로 진정한 무도를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 다. 그리고 그 진정한 무도를 얻으려는 목적은 화군악을 꺾기 위 함이었고, 그것은 곧 천하제일고수를 쟁취하는 것과 같은 뜻이 었다. 아홉살 때 천하제일고수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 그는 단 한 번도 그 소망을 잊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소망을 이 루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의 이런 최고의 무도를 향한 집념이 보는 사람들을 흥분시 키고 충동시키는 것이다. 그를 처음 봤던 위지혼이 대뜸 그에게 목검의 결투를 신청했 던 것도, 낮에 만난 손중화가 그에게 도전적인 태도를 보인 것 도 모두 그때문이었다. 무인이라면, 적어도 천하제일고수를 꿈꾸는 무림인이라면 그 에게 어떤 경쟁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공척의 칼날같던 시선이 점차 처음의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변했다. "내가 처음 당신을 만나려고 했던 것은 사실 당신에게 한 가 지 물어볼 말이 있어서였소." 조자건은 그에게 묻는 시선을 던졌다. "당신이 종남산에서 분양쾌검 곽회를 만났다고 들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