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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태극문 - 28편 (28/87)

2026-09-23 18:02:56 조회 7
백운교가 주춤거리며 당혹해 하고 있을 때 조자건의 손에 들 린 나무막대가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드디어 조자건이 출수(출 수)한 것이다. 백운교는 손목이 부러진 듯한 고통을 참고 황급히 품속에서 하나의 철필(철필)을 꺼내 맞서왔다. 그의 철필은 길이가 약 한 자가량 되었는데 기이하게도 붓모양의 끝부분이 알록달록한 오색(오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것은 백운교의 독문병기(독 문병기)인 환마채필(환마채필)이었다. 백운교는 좀처럼 이 환마채필을 꺼낸 적이 없었는데 오늘 조 자건에게 의외의 낭패를 당하자 어쩔 수 없이 이것을 꺼내든 것이다. 그의 구혼칠식(구혼칠식)은 마도에서 가장 유명한 필 법(필법)중 하나였다. 쐐쐐애액! 그는 처음부터 구혼칠식중의 유유잔혼(유유잔혼)과 추혼나백 (추혼나백)을 연거푸 펼쳐냈다. 그의 구혼칠식은 과연 위력이 대단해서 조금전의 저연이나 좌상의 공격에 비할 바가 아니었 다. 그 예리한 파공음과 주위를 질식시킬 듯 몰아치는 환마채필 의 변화무쌍함은 가히 상상을 불허할 정도였다. 조자건은 급히 내뻗던 검세를 거두고 허공으로 빙글 날아올랐다. 파파파팍! 그가 있던 자리가 완전히 파괴되며 부서진 나뭇조각들이 허 공을 자욱하게 뒤덮었다. 백운교는 조금도 숨쉴 틈도 주지 않 으려는 듯 바짝 다가서며 다시 오야경혼(오야경혼)과 이신탈혼 (이신탈혼)의 절초를 퍼부어댔다. 그 필을 휘두르는 속도와 초식의 변화는 가히 명불허전이었 다. 삽시간에 조자건의 전후좌우 사방이 완벽하게 채필의 그림자 로 뒤덮였다. 조자건은 눈을 빛내며 채필이 변하는 모양을 지 켜보고 있다가 쏜살같이 나무막대를 휘둘렀다. 팟! 그토록 삼엄했던 오야경혼과 이신탈혼의 공세가 반으로 쫘악 갈라지며 백운교의 창백한 얼굴이 드러났다. "선인지로(선인지로)구나!" 백운교는 탄성인지 신음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재빨리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조자건의 일검을 피한 후 다시 번개같은 세 초식을 줄기줄기 내뻗었다. 그가 이번에 사용한 초식은 구혼칠식중에서도 삼대절초인 혼 비백산(혼비백산)과 염왕초혼(염왕초혼), 그리고 겁백단혼(겁 백단혼)이었다. 이 삼대절초의 위력은 가히 놀라워서 단 한초 식만 펼쳐도 제대로 받아내는 사람이 없었다. 그걸 한꺼번에 펼친 것만 보아도 백운교가 지금 얼마나 초조 하고 다급한 심정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파팟! 조자건의 왼쪽 소매자락이 너무도 매서운 경기에 못이겨 찢 겨져 나갔다. 조자건은 유연하게 용협십이로의 신법을 밟으면 서 필영(필영)사이를 누비다가 나무막대를 기이하게 휘둘렀다. 횡강절두(횡강절두)와 팔방풍우의 초식이 연거푸 펼쳐나왔 다. 조자건이 한꺼번에 두 개의 초식을 펼친 것은 출도후 이번 이 처음이었다. 그만큼 지금 그의 전신을 압박해 들어오는 백운교의 공세가 거셌던 것이다. 콰쾅! 검초와 필영이 격돌했는데 어이없게도 폭음이 터져나왔다. 그와함께 한 사람이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갔다. 제16장 신 주 홍 안 일, 구 출 "크악!" 사마결이 깜짝 놀라 보니 그는 다름아닌 백면령관 백운교였 다. 백운교는 입으로 시커먼 피를 토한 채 삼 장이나 날아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크으...너....저...정말 무섭다...." 백운교는 피바다속에서 기를 쓰며 일어나려 했다. 그의 입가로 진한 선혈이 잘려진 내장조각과 함께 꾸역꾸역 흘러나오고 있었다. 백운교는 조자건을 가리키며 필사적으로 더듬거렸다. "하..하지만...너...너는 죽는다...본 부의 추살령이 내려진 이상...네 놈은...반드시...본 부의 손을 벗어날 수 없..." 말을 마치기도 전에 백운교의 고개는 푹 꺽이고 말았다. 실로 일세(일세)의 고수답지 않은 허망한 최후였다. 사마결은 멍하니 백운교의 싸늘하게 식어가는 시신을 바라보 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조자건을 돌아보았다. 조자건의 낮빛 또한 약간 파리해 있었다. "괜찮소?" 사마결이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다가오자 조자건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이오?" "그렇소." "그런데 안색이 왜 그렇게 좋지 않소?" 조자건은 잠시 침음했다. 그러다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 었다. "어디가 불편해서 그런건 아니오. 단지 무얼 좀 생각하고 있 었소." "무슨 생각을 했소?" 조자건은 사마결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저었다. 사마결은 의혹이 치밀었으나 그가 입을 열 생각이 없 자 묻는걸 포기해 버렸다. 조자건같은 사람은 스스로 대답하지 않는한 아무도 강요할 수 없는 법이다. 허나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조금전 저연과 좌상을 해치울때도 그는 무언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대체 그는 무엇이 못마땅해 저런 표정을 짓는단 말인가?) 사마결은 잠시 생각을 굴리다가 조자건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뭏든 조형은 대단한 사람이오. 단신으로 집마부의 절정고 수 세 사람을 쓰러뜨렸으니 이제 조형의 명성은 머지않아 천하 를 진동할 것이오." 조자건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 있었다. 사마결은 눈을 빛내며 그를 주시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조심해야 할거요. 집마부에서 오늘 일을 안다면 다음에는 더욱 무서운 고수들을 보낼게 뻔하니 말 이오. 그나저나..." 사마결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집마부에서 왜 조형에게 추살령을 내렸는지 혹시 짐작 이 가는 거라도 없소?"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없소." "그것 참 이상하구료." 조자건이 그에게 묻는 시선을 던지자 사마결은 메마른 얼굴 에 흥미어린 표정을 떠올렸다. "집마부의 추살령은 원래 집마부에서도 단지 다섯 사람만이 발동할 수 있소." "그들이 누구요?" "집마부의 두 명의 부주(부주)와 수석총관, 태상호법, 그리 고 총순찰(총순찰)이오. 혹시 당신은 이들중 아는 사람이 있 소?" "없소." "그러니 이상하지 않소? 당신은 그들을 전혀 모르는데 그들 이 어떻게 당신을 알고 추살령을 발동했단 말이오? 더구나 당 신은 출도한지 얼마되지도 않는데 그새 그들과 무슨 원한이 생 겼을리도 없지 않소?" 조자건도 그 점이 궁금했던 참이었다. 집마부의 추살령을 두려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이 일때문에 자신의 진도에 번거로움을 초래하는 것이 싫었던 것 이다. 사마결은 그답지 않게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든 이것으로 당신과 집마부는 서로 양립(양립)할 수 없 는 사이가 되었소. 그러니 앞으로 행로(행로)에 좀더 조심해야 할거요."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돌연 눈을 빛냈다. "잠깐." "무슨 일이시오?" "이 소리가 들리지 않소?" 조자건의 말에 사마결은 어리둥절하여 귀의 신경을 바짝 곤 두세웠다. 과연, 그는 어디선가 미약한 음성을 들을 수 있었 다. "사람살려...사람살려..." 그 음성은 금시라도 꺼질 듯 미약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사마결은 한동안 그 음성에 귀를 기울이다가 조자건을 돌아보 았다. "배 밑바닥쪽에서 나는 소리요." 이어 그는 조자건의 대답도 듣지 않고 선실속으로 들어갔다. 조자건도 따라들어가 보니 선실의 한쪽 구석에 밑으로 향하는 나무계단이 보였다. 사마결은 어느 새 그 계단을 내려가고 있 었다. 나무계단을 내려가자 그들은 범선의 제일 밑바닥에 도착했 다. 그곳에서는 쾌쾌한 곰팡이냄새가 풍겨오고 있었는데 제일 끝쪽에 굵은 쇠창살로 이루어진 밀실이 하나 있었다. "살려줘요....사람 살려요...." 희미한 신음소리는 그 밀실속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사마결은 조자건을 힐끗 돌아보다가 밀실로 다가가 쇠창살너 머를 바라보았다. 밀실안에는 한 명의 인영이 잔뜩 웅크린 자 세로 누워 있었다. 인영이 입었던 옷은 처음에는 아주 질좋은 금의(금의)임이 분명했는데 상당한 고초를 겪은 듯 지금은 여기저기가 찢어지 고 더럽혀져 있었다. 인영은 고개를 무릎사이에 쳐박은 채 조 그맣게 중얼거리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낀 듯 고개를 바짝 쳐들 고 그들을 올려다 보았다. 나이는 대략 이십 대 중반가량 되었을까? 얼굴이 네모지고 이목구비는 의외로 또렷했는데 눈빛이 조금 흐리멍텅해서 어딘지 모르게 멍청해 보였다. 금의청년은 그들 을 발견하자 눈을 크게 뜨고 겁먹은 표정이 되었다. "다...당신들은 누구요?" 사마결은 금의청년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쓴웃음을 흘렸다. "정각(정각), 자네로군." 금의청년은 더욱 놀라 가뜩이나 커다란 눈이 화등잔만 해졌 다. "귀...귀하는 누군데 본 공자(공자)를 아는거요?" 사마결은 고소를 금치 못하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가리켰 다. "날세. 정각. 나를 모르겠나?" 금의청년은 사마결의 얼굴을 자세히 살피다가 갑자기 안색이 환해졌다. "당신은...사마결...사마대협이시군요." "그렇다네. 자네 아버지하고 심심하면 내기를 두던 사마결이 네." 그제서야 조자건은 금의청년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관심있는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금의청년은 바로 조자건이 얼마전에 만났던 파금왕의 아들인 파금공자(파금공자) 정각(정각)이었던 것이다. 헌데 당당한 파 금궁의 소궁주(소궁주)가 어찌 이리도 초라한 몰골이란 말인 가? 파금공자 정각은 무림에서도 겁많고 소심하기로 유명한 인물 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뒤에서 그를 파금견자 정대치라 고 놀리곤 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파금왕은 그를 가르치 려도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결국은 그 멍청함을 견디다 못해 이 제는 아예 내놓은 자식 취급을 한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어디까지나 파금궁의 유일한 후계자이며 엄연한 소궁주였다. 사람들이 비록 그를 뒤에서 흉볼지는 모르지만 파 금왕이 살아 있는 한 그를 대놓고 욕보이는 사람은 감히 없었 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집마부의 범선 밑에 갇혀 있는 처량한 신세가 되었단 말인가? 사건의 발단은 조자건도 알고 있는 일이었다. 당시 파금왕은 항주장가(항주장가)의 인물의 부탁을 받고 절 강용호세가(절강용호세가)를 없애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파금 왕은 그 약속을 지켰고, 용호세가는 한 달전에 무림상에서 그 모습을 완전히 감춰 버렸다. 그러자 난처하게 된 것은 용호세가를 도와주었던 집마부의 처지였다. 특히 직접 용호세가를 도와 항주장가의 고수들을 살 해했던 혈수마번 좌상과 팔조앙신 저연은 크게 격노하여 파금 왕에게 복수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그들은 우선 파금왕의 약점이라 할 수 있는 정각을 사로잡아 그를 위협하는 무기로 쓰려했다. 그래서 정각을 붙잡아 집마부 로 호송하는 도중 추살령을 전달받고 조자건을 없애기 위해 이 곳까지 왔던 것이다. 사마결은 모든 사태의 추이를 짐작하고 조자건을 돌아보며 고소를 머금었다. "아무래도 우린 이 혹덩이 녀석을 당분간 데리고 있어야 겠 소." 정각을 이대로 풀어 주어봤자 멍청한 그가 무사히 파금궁까 지 돌아갈 확률은 거의 없었다. 사마결은 파금왕의 안면을 보 아서도 그가 다시 집마부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이 파금궁의 인물들을 만날 때까지 그를 보호할 수 밖에는 없지 않은가? 조자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괜찮소." 사마결은 일이 이상하게 꼬인다고 생각했다. 조자건도 집마부의 추살령을 받고 있는 마당에 집마부의 추 적을 받고 있는 정각마저 그들과 동행하게 되었으니 이것은 완 전히 집마부의 근심덩어리 두 개가 몰려다니는 형편 아닌가? (에라...어떻게 되겠지.) 사마결은 될데로 되라는 심정으로 쇠창살을 열고 정각을 풀 어주었다. "어서 나오게." 정각은 그동안 제법 고초를 겪은 듯 낑낑 거리며 한참동안 주절주절 거리다가 간신히 바닥에서 일어나 밀실밖으로 기어나 왔다. "어이구...너무 아파요..." 그 한심한 모습을 보자 사마결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 한숨이 새어나왔다. (정말 불가사의로군. 파금왕밑에서 어떻게 이런 아들이 나왔 지?) 정각은 연신 팔다리를 주물러대며 투덜거리다가 조자건과 시 선이 마주치자 계면쩍게 웃었다. "저...나는 정각인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조자건이라 하오." 조자건의 이름을 듣자 정각은 깜짝 놀라며 반가운 표정이 되 었다. "아...! 귀하가 바로 조자건이군요." 이번엔 오히려 조자건이 어리둥절해졌다. "나를 아시오?" 정각은 입을 헤벌리며 멍청하게 웃었다. "헤헤...아버님께서 말씀하셨지요. 귀하가 제법 비범한 인물 이라고요." 조자건은 빙그레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각은 그 의 눈치를 살피며 말을 이었다. "우리 아버님 칭찬을 받은 사람은 당신이 두 번째에요. 당신 은 자부심을 가져도 되요." 옆에서 듣고 있던 사마결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래 자네 아버님이 칭찬하신 첫 번째 인물이 누구인가?" 정각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건 바로 신수궁(신수궁)의 소궁주에요. 그녀는....정말 예쁘지요." 말을 하면서 그의 입은 반쯤 벌려지고 눈은 게슴츠레 해졌 다. 사마결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또한 신수궁의 소궁주에 대한 미모는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다. 알려진 바로는 그녀는 항상 천잠사(천잠사)로 된 망사를 쓰 고 다녀서 얼굴을 남에게 보인 적이 거의 없는데 우연히 망사 를 벗은 그녀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그야말로 완전히 그녀의 포로가 된다고 한다. 즉, 그녀의 너무도 뛰어난 미색(미색)에 홀려 그녀의 말이라면 불속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 는다는 것이다. 신수궁은 파금궁과 함께 오행신궁중의 하나로 원래 여인들만 의 집단이었다. 헌데 언제부터인지 신수궁에는 호화단(호화단) 이라고 하는 남자들로만 이루어진 무리들이 나타났다. 호화단. 바로 신수궁 소궁주의 미모에 반한 인물들이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주겠다고 만든 조직이었던 것이다. 허나 호화단의 인물중에는 의외로 강호무림에서 내노라하는 절정고수들이 상 당수 섞여 있어 그들의 힘은 누구도 무시못할 막강한 세력이 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한 여인의 미모가 능히 천하를 움직인다 하여 그녀 를 신주홍안(신주홍안)이라 불렀다. 신주홍안은 미모뿐만 아니라 문무(문무)에 고루 능해 일대기 녀(일대기녀)로 꼽히고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를 무적검 수맹의 재녀(재녀)인 신기옥녀(신기옥녀) 궁아영과 함께 무림 쌍염(무림쌍염)이라고도 불렀으나 호화단의 인물들은 그것을 용납치 않았다. 그들은 신주홍안만이 환우천하( 우천하)의 제일미인(제일미 인)이며 누구도 그녀에 필적할 수 없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 리고 그 의견에 반대하는 자들은 닥치는대로 주살하여 한때 강 호무림에는 여인으로 인한 혈풍(혈풍)이 그치질 않았었다. 사마결은 아직 한 번도 신주홍안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지만 내심으로 여인의 미모가 뛰어나면 얼마나 뛰어나길래 강호의 고수들이 그녀를 위해 피를 뿌리는 것일까 하고 어이없어 한 적도 있었다. 사마결은 정각의 풀어헤쳐진 눈을 보며 이런 밥통같은 녀석 도 신주홍안을 짝사랑하는군 하고 생각했다. 그는 잠시 한심스 런 눈으로 정각을 바라보다가 조자건에게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이제 어디로 가려 하오?" 조자건은 잠시 허공을 응시한 채 묵묵히 서 있었다. 그러다 수중의 나무막대를 가만히 쓰다듬으며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금릉(금릉)으로 가려 하오." "금릉이라..." 사마결은 나직히 뇌까리며 눈을 반짝였다. 금릉은 무적검수맹(무적검수맹)의 본거지였다. 그리고 얼마후 무림대회가 열리는 곳이기도 했다. 사마결은 물론 무림대회의 구경을 위해서라도 기꺼이 그곳으 로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조자건은? 그도 또한 단순히 구경을 위해서 그곳에 가려는 것일까? 아니면.... 조자건의 손은 여전히 나무막대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 다. 이, 철 면 한 사람의 이름이 갑자기 강호를 온통 시끄럽게 했다. 처음에 그는 종남산(종남산)의 어느 이름모를 계곡에서 불쑥 나타나 무적검수맹의 고수 몇 사람을 아주 가볍게 격파했다. 그중에는 집형전(집형전)소속의 십대집법(십대집법)중 하나인 용형검 단리건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 그는 파금궁(파금궁)의 집회에 불쑥 모습을 나타내어 파금왕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금사자(금사자)를 혼내주었다 고 한다. 믿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파금왕 조차 그에게 낭패를 당했다는 소문도 들려오고 있었다. 허나 그의 이름을 결정적으로 강호에 퍼뜨린 것은 회하에서 벌어진 한 가지 일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회하에서 그는 집마부의 절정고수 세 사람을 단신 으로 쓰러뜨렸던 것이다. 더구나 그의 손에 쓰러진 고수들중에 집마부의 삼총관인 백 면령관 백운교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세인들을 경악하게 만 들었다. 백운교는 집마부를 실질적으로 관장하는 수뇌인물중 하나로 심계가 깊고 잔인할 뿐 아니라 그 무공은 집마부 내에서도 몇 손가락안에 꼽히는 초절(초절)한 것이었다. 그런 백운교를 그 자는 나무막대로 단 몇 초만에 물리쳤다는 소문이 천하인을 전율케했다. 그로 인해 집마부가 벌컥 뒤집혔고, 전 무림이 경동(경동)했 다. 그는 별다른 무기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맨손과 볼품없는 나 무막대로 고수들을 연파(연파)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일수풍운(일수풍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가 한 번 손을 휘두르면 반드시 풍운이 일어난다는 뜻이었 다. 일수풍운 조자건! 이 이름은 삽시간에 천하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모든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주시하기 시작했고, 게중 성급한 사람들은 이번 무림대회에서 그가 무서운 돌풍을 일으킬 거라 고 떠들어댔다. 홀연히 일진광풍처럼 나타나 풍진천하를 휩쓸고 있는 풍운의 사나이!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나의 두툼한 손이 한 장의 하얀 배첩을 읽고 있었다. 칠호(칠호)에게. 청풍검객(청풍검객) 학일해( 일해)는 소호(소호)근처의 매 하(매하) 외곽에 살고 있다. 그를 제거하라. 일호(일호). 아주 짤막한 문장이었다. 손의 임자는 그 배첩을 가만히 접었다. 파스스... 별로 힘을 준 것 같지도 않았는데 배첩은 금새 먼지가 되어 바람속으로 흩날려졌다. 손의 임자는 한동안 허공을 응시한 채 무언가 생각에 잠기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사라져갔다. 사가점(사가점). 사가점은 안휘(안휘)에서 강소(강소)로 넘어가서 얼마되지 않는 곳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었다. 이곳은 양자강(양자강)을 사이에 두고 금릉과 마주보고 있기 때문에 강북(강북)지방에서 금릉으로 가려는 사람들이 주로 거쳐가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른 지방보다 유달리 객잔이나 주루가 눈에 많 이 띄기도 했다. 정오경. 사가점에서 가장 크고 호화스러운 열빈루(열빈루)의 이층 계 단에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는 청의를 입은 당당한 체구의 중년인이었다. 이목이 청수 하고 눈빛이 아주 맑으면서도 강렬했는데 날카로우면서도 강인 한 인상을 풍기고 있었다. 청의중년인은 이층으로 올라와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 직하게 혀를 찼다. "쯧...이곳에도 빈 자리가 없군." 열빈루는 사가점같은 작은 마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을 정 도로 크고 넓은 주루였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늘은 그 넓은 열 빈루의 구석구석까지 손님들로 들어차서 빈 곳이 보이지가 않 았다. 열빈루 뿐만이 아니었다. 사가점에 있는 크고 작은 수십 개 의 주루와 객잔들이 모두 인파로 넘치고 있었다.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며칠후면 이곳에서 멀지 않은 금릉에서 무림사상 보기 드문 성대한 무림대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그 무림대회의 열기는 대단해서 이미 금릉과 그 주변의 도시들은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 다. 그곳에서는 방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인접해 있는 이곳까지 밀려든 것이다. 청의중년인은 할 수 없이 다시 아래로 내려가려다가 무엇을 발견했는지 눈빛이 반짝 빛났다. (저 자는....!) 그의 시선은 우측으로 삼 장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탁자옆에 앉은 한 인물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탁자에는 모두 세 명이 앉 아 있었는데 백의를 입은 청년은 등을 돌리고 있어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고, 또 한 명은 질좋은 금의를 입고 조금 우둔 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마지막 한 인물은 화의를 입은 못생긴 사나이였는데 청의중 년인의 시선은 줄곧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화의사나이는 누군 가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음을 깨닫고 고개를 돌리다가 청의중 년인을 발견하자 눈을 크게 떴다. "이게 누군가? 담형(담형)아닌가?" 청의중년인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하하...어쩐지 자네 모습이 통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이곳 에 숨어 있었군 그래." 화의사나이는 사마결이었다. 사마결은 청의중년인을 보자 반 가운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흐흐...이런 신나는 구경거리를 내가 놓칠리가 있나? 그 보 다 자넨 혼자 왔나?" "글쎄...이 근처에서 누굴 만나기로 했는데 찾지 못하겠군." "자...어서 앉게." 청의중년인은 자리에 앉으려다 백의청년과 금의청년을 돌아 보며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