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무협지]태극문 - 83편 (83/87)

2026-09-23 17:59:50 조회 11
나는 신수 궁주(신수궁주)를 만나야겠소." 그녀들의 안색이 모두 홱 변했다. 남색궁장의 여인의 얼굴에는 얼음장같은 냉기(냉기)가 떠올 랐다. "귀하는 이곳이 신수궁(신수궁)이 있는 신수곡(신수곡)임을 알면서도 찾아오다니 간덩이가 부었군요." 그때 그녀의 옆에 서 있던 자삼궁장의 여인이 갑자기 뾰쪽 한 경악성을 내질렀다. "언니...저...저분은 소궁주님이 아니에요?" 그녀는 조자건이 옆구리에 끼고 있는 여인을 가리켰다. 남색궁장의 여인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다가 안색이 창백해졌다. 비록 옷이 찢어지고 상반신이 온통 피로 물들어 있었으나 그 녀는 바로 신수궁의 소궁주인 신주홍안 섭보옥이 아닌가? 섭보옥의 짚단같은 머리는 폭포수처럼 아래로 흘러내려 있어 처연함을 더해주었다. "이...이놈! 네 놈이 감히 소궁주님을...!" 그녀는 너무도 놀라고 분노하여 이를 부드득 갈았다. 그때 조자건의 냉정하면서도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녀는 지금 몹시 위험한 상태요. 그러니 빨리 궁주에게 데 려가지 않으면 천추(천추)의 한(한)을 남길지 모르오." 그녀의 몸이 움찔하며 굳어졌다. 참 이상한 음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음성을 듣자 그녀의 격앙되었던 마음이 급속도로 가라 앉으며 전후사정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녀는 힐끗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조자건의 얼굴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담담했다. 하나 그녀가 그의 마음속을 들여다 볼수만 있다면 그가 지금 얼마나 조급하고 초조해 하고 있는지를 알고 깜짝 놀랐을 것이 다. 단지 조자건은 서두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님을 알고 있기 때 문에 침착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잠시 그와 그의 팔에 안겨 있는 섭보옥을 바라보다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따라오세요." "어...언니.." 다른 세 명의 여인들이 화들짝 놀라 그녀를 쳐다보았다. 함 부로 외인을 불러 들였다가는 궁주의 준엄한 추궁을 면치 못한 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녀였기 때문에 그녀들은 더욱 뜻밖이었다. 그녀는 한결 차분해진 눈으로 그녀들을 돌아보았다. "우선은 소궁주님의 목숨을 구하는게 먼저다. 사정은 그 후 에 알아도 늦지 않다." 이어 그는 조자건에게 눈짓을 하고는 먼저 곡안으로 들어갔 다. 조자건은 축 늘어진 섭보옥을 안은 채 그녀의 뒤를 따라갔 다. 세명의 여인들은 놀라고 당황하여 어쩔줄을 몰라하다가 황급 히 그들의 뒤를 따랐다. 신수궁이 정확히 언제 세워졌는지는 확실치가 않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들의 기원을 곤륜(곤륜)의 서왕모(서왕 모)나 무산신녀(무산신녀)에서 찾기도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것은 알지 못했다. 아뭏든 강호의 역사가 시작된 오래전부터 신수궁은 존재했으 며 그들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가 무림인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들은 순수하게 여인(여인)들로만 조직된 문파(문파)라고 했다. 신수궁의 여인들은 하나같이 천하의 절색(절색)들일 뿐만 아 니라 뛰어난 무공들을 지니고 있어 일대재녀(일대재녀)들로 손 색이 없다고 했다. 그녀들은 절대로 남자와 결혼을 할 수 없으며 만약 부득이하 게 혼인을 하게 되면 스스로의 무공을 폐해서 영원히 궁에서 추방된다고 한다. 많은 강호의 고수들이 그녀들에 대한 신화같은 소문을 믿고 신수궁에 잠입하려 했으나 누구도 뜻을 이룬 사람은 없었다. 특히 신수궁주에 대한 소문은 모든 강호의 젊은 무사들에게 는 한 줄기 환상(환상)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대(대대)로 내려오는 신수궁의 궁주는 천하에서 으뜸가는 미녀일 뿐만 아니라 공력이 추측할 수도 없을만큼 고강하여 가 히 여중제일고수(여중제일고수)라고 했다. 당대의 신수궁주인 신수무영후 수선랑의 염명(염명)은 이미 오래전부터 강호무림에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전설로만 알려진 신수궁이 무림에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불과 삼 년전이었다. 그동안 어느 누구도 신화속의 여주인공인 수선랑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은 없었다. 그런 면에서 일단 조자건은 행운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외인으로는 수선랑을 직접 만난 첫번 째 남자(남자)였 다. 조자건은 세 시진동안을 그 자리에 꼼짝도 앉고 앉아 있었 다. 신수궁의 여인들이 그를 혼자 대청안에 남겨 놓은 채 축 늘 어진 섭보옥의 몸을 안고 안으로 사라진지 벌써 상당한 시간이 경과되었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와보는 사람이 없었다. 처음 대청에 왔을때 어린 소녀가 뜨거운 차 한 잔을 갖다준 후로는 아예 그에 대해 모두들 잊어 버린 것 같았다. 조자건은 텅빈 대청에 홀로 앉은 채 묵묵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어린 소녀가 갖다준 뜨거운 차는 이미 식은지 오래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른다. 갑자기 대청안에서 여인의 그윽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차를 들게." 그 음성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위엄이 충만되어 있었다. 조자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대청의 중앙에 있는 태사의위에 언제 나타났는지 한 명의 중 년미부(중년미부)가 단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두 눈은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빛보다도 더 영롱했다. 코밑으로는 망사에 가려져 있어 전체적인 용모는 확인할 수 가 없었다. 하지만 조자건은 그녀가 거의 섭보옥에 맞먹는 미모의 소유 자라는 것을 장담할 수 있었다. 단지 섭보옥과 다른 것은 그녀 의 나이가 훨씬 더 많다는 것 뿐이었다. 그녀는 서른 살로도 보이고 마흔 살로도 보였으나 아뭏든 섭 보옥보다는 많았다. 눈가에 희미하게 생겨난 잔주름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조자건은 찻잔을 들어올렸다. 조자건이 한 모금 마신 후 찻잔을 내려놓자 중년미부는 조용 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것이 무슨 차인지 알겠는가?" 조자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무이산(무이산)에서 나는 철관음(철관음)이로군요." 그녀는 웃는 것 같았다. 다만 망사에 가려 있어서 확인해 볼 수는 없었다. "차에 대한 안목이 대단하군." 조자건은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도 또한 조자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나직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정말 참을성이 강하군. 자네가 지금 그 아이의 안부 를 알고 싶어서 몹시 마음이 타는 것을 알고 있네. 그녀의 생 사(생사)가 궁금하지 않은가?" 조자건은 솔직히 시인을 했다. "궁금합니다." "그런데 왜 물어보지 않나?" 조자건은 잠시 침음했다. 그러다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 었다.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는 보다 자세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중년미부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죽었을까봐 두려웠기 때문에 묻지 못했다는 거로군. 하지만 어떻게 되었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 자네는 결과를 알아 야 하지 않겠나?" 조자건은 문득 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야 겠지요." 중년미부는 영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 었다. "그럼 이제 그녀의 생사에 대해서 말해 주겠네. 신주홍안 은...죽었네." 조자건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우두커니 그녀를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그녀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눈을 마주보고 있다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매 달았다. "하지만 섭보옥은 죽지 않았네." 그녀의 말은 기이하기 이를데 없었다. 신주홍안은 죽었는데 섭보옥은 죽지 않았다니.... 신주홍안은 곧 섭보옥의 별호(별호)가 아닌가? 어찌 같은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 죽지 않을 수도 있단 말인 가? 다행히 그녀는 곧 다시 말을 계속했다. "그녀는 무공이 전폐(전폐)되고 용모가 훼손되어 더 이상 신 주홍안이라고 불리울 수 없게 되었네. 하지만 기적적으로 목숨 만은 건졌네. 평범한 하나의 여인으로 돌아온거지." 조자건은 그녀의 말뜻을 이해했다. 무림에서 명성을 날렸던 신주홍안으로서의 섭보옥은 이미 죽 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무공이 없어지고 용모가 망가졌기 때 문이었다. 하지만 하나의 인간으로서의 섭보옥은 죽지 않았다. 조자건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 다. 중년미부는 그의 얼굴을 빤히 살피고 있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녀의 얼굴은 처참하게 훼손되어 야차(야차)와도 같이 변 했네. 그녀는 더이상 천하제일미녀가 아닐세. 자네는 그래도 그녀를 만날텐가?" 조자건은 한동안 우두커니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중년미부를 돌아보았을 때 그의 얼굴에는 담담 한 미소가 어려 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지금부터 사 년전이었소. 처음본 순간 부터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이 끌렸었소." 중년미부는 눈을 빛낸 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마음을 고백할 수가 없었소. 당시 우리는 목숨보다 귀중한 어떤 일에 몰두해 있었기 때문이오. 그녀가 떠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그녀를 뼈속 깊숙히 사 랑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소." 조자건의 음성에는 한 줄기 아련한 빛이 떠올라 있었다. "내 몸과 마음은 온통 무도에 빠져 있었지만 나는 단 한시도 그녀를 잊어본 적이 없었소. 얼마전에 다시 만났을때도 우리는 모른 척 하고 서로 뒤돌아 섰지만 내 마음속에는 이미 그녀가 가득 자리잡고 있었소. 그리고 얼마전에야 나는 겨우 깨달았 지. 내게 있어 그녀는 이미 내 자신보다 더 커져 있다는 것 을." 그는 중년미부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어제밤에야 비로소 나는 그녀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소. 내 가 사랑한 사람은 천하제일미녀도 아니고 신주홍안도 아닌 섭 보옥이란 한 여인이오. 그러니 내가 어찌 그녀를 만나지 않겠 소?" 조자건은 비록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으나 그의 말을 들은 중 년미부는 몹시 감동한 모습이었다. 조자건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를 그녀에게 데려다 주시오." 중년미부는 한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눈을 반짝 빛냈다. "자네의 생각이 그러하다면 물론 자네를 그녀와 만나게 해 주겠네. 하지만 그 대신에 조건이 하나 있네." 조자건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어떠한 일이 있어도 놀랄 것 같지 않았다. 설사 놀랐다 하더라도 그는 결코 놀란 내색을 하지 않을 것 이다. "무엇이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네는 정말 침착하군. 자네같이 젊은 나이에 그런 침착성 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네." 이어 그녀는 유심한 시선으로 그를 주시했다. "한 사람을 격파해 주게." 조자건은 그가 누구냐고 묻지 않았다. 단지 짤막하게 이렇게 물었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소?" 중년미부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더욱 강해졌다. "자네는 그렇다면 내 조건을 수락하겠다는 말인가?" "내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소." 의외로 중년미부는 조금 머뭇거렸다. "자네가 거절한다면 굳이 강요할 생각은 없네."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녀를 살려준 보답을 할 수 있다는게 나 로서는 오히려 고마울 뿐이오." 그녀는 그의 결심이 굳은 것을 알고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 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도 조금 편해지는군. 나는 자네에 대한 소문을 요즘들어 많이 들었네. 얼마전에 자네는 쌍마(쌍마)를 물리쳤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가?" "그렇소." 그녀의 입에서 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자네와 같은 나이에 그런 무공을 지닌 사람은 무림역사상 일찍이 없을걸세. 당년의 화군악도 천하제일고수에 올랐을 때 지금의 자네보다 열 살은 더 많았을걸세." 조자건은 그녀의 말을 정정해 주었다. "정확히 아홉 살이오." 그녀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자네는 화군악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조자건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자네라면 어쩌면 그 사람을 격파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조자건은 조금전에 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그 사람은 어디에 있소?"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윽고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말 했다. "그는 이 계곡 뒤의 이화동(이화동)에 있네." 조자건은 말없이 몸을 돌려 대청을 벗어났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등을 바라보는 중년미부의 입에서는 까 닭모를 한숨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 이화(이화) 동굴은 어른 세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다랬다. 조자건은 천천히 동굴속으로 들어갔다. 오랫동안 사람이 출입하지 않았는지 동굴의 벽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그런데 안으로 조금 들어가자 이끼가 점점 줄어들더니 마침 내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십 여장쯤 들어가자 동굴이 점점 넓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이한 열기(열기)가 공기를 타고 전해져왔다. 그 열기는 처음에는 거의 느낄 수 없을만큼 미약했으나 앞으 로 전진할 수록 점차 강렬해졌다. 다시 이십 여장쯤 가자 하나의 넓다란 공터가 나왔다. 공터는 사방이 막혀 있었다. 그리고 공터의 중앙에 하나의 괴인(괴인)이 앉아 있었다. 그는 무척 체구가 거대한 홍포인(홍포인)이었다. 홍포인이 입고 있는 옷은 분명 처음에는 질좋은 것이었음에 틀림없었으나 얼마나 오랫동안 입고 있었는지 지금은 거의 닳 고 헤어져 누더기나 다를 바가 없었다. 홍포인의 머리카락 또 한 기이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열기는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조자건은 홍포인의 앞에 가서 우뚝 섰다. 홍포인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는 얼굴이 대추처럼 붉고 위맹하게 생긴 중노인이었다. 특 이하게도 눈썹 또한 머리카락처럼 붉은 빛을 띄고 있었고 안광 마저 붉은 빛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그 붉은 안광을 보자 조자건은 갑자기 뜨거운 열옥(열옥)에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홍포노인은 화광(화광)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 가 불쑥 물었다. "너는 누구냐?" 그의 음성은 용모만큼이나 굉량한 것이었다. 조자건은 담담한 눈으로 그를 마주보았다. "당신을 격파하러 온 사람이오." 홍포노인의 안광이 더욱 짙어지더니 돌연 미친 듯한 광소가 터져나왔다. "크하하하...." 그 웃음소리에는 실로 막강한 공력이 실려 있어 동굴이 송두 리째 뒤흔들렸다. 우수수.... 동굴 천정에서 돌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그래도 조자건은 미동조차 하지 않은 채 냉정한 눈으로 홍포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홍포노인의 광소가 뚝 그치더니 그의 눈에서 무시무 시한 안광이 폭사해 나왔다. "수선랑이 보냈느냐?" 조자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홍포노인의 얼굴에 사나운 웃음이 떠올랐다. "흐흐...그녀의 지시를 받고 이곳에 들어오다니 미친 놈이로 군." 이어 그는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너는 노부가 누구인지 아느냐?"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홍포노인은 뜻밖의 말을 했다. "노부는 바로 그녀의 남편이다." 눈앞의 홍포노인이 바로 천하에 염명이 자자한 신수궁주의 남편일 줄이야.... 그것은 조자건으로서도 미처 상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녀는 대체 무엇때문에 조자건에게 자신의 남편을 격파하라 고 한 것일까? 홍포노인은 조자건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말을 계속했다. "노부는 몇 년전에 천하무적의 절학(절학)을 완성했다. 그래 서 화군악을 찾아가 진정한 천하제일고수가 누구인가 자웅을 겨루려고 했었지." 스스로의 입으로 천하무적의 절학을 완성했다고 큰소리치는 홍포노인의 모습은 광오하기 그지 없었으나 허언(허언)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가 도저히 그 자의 적수가 되지 않을거라며 나를 만류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말에 승복할 수가 없었지. 그래 서 우리는 하나의 내기를 걸었다." 홍포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는 화군악 말고도 노부를 꺾을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노부에게 보내겠다고 했다. 만약 그녀가 보낸 사람을 꺾는다면 노부가 화군악을 찾아가는 것을 더 이상 막지 않겠다는 것이 지. 노부는 물론 쾌히 승락을 했다. 그로부터 삼 년동안 노부 는 이곳에서 그녀가 보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홍포노인의 얼굴에 떠오른 웃음은 차가운 것이었으나 왠지 흥겨워 보이기도 했다. "노부는 올해까지도 그녀가 사람을 보내지 않으면 이곳을 나 가려 했다. 그런데 마침 네 놈이 온 것이다." 이어 그는 광오한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하...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너같은 애송이를 보냈는지 모르지만 이제 비로소 노부는 화군악과 겨룰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조자건은 묵묵히 그가 광소를 터뜨리는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은 영원히 그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될 것이오." 홍포노인의 광소가 뚝 그쳤다. 그의 눈에서 한 줄기 섬뜩한 안광이 뿜어나와 조자건의 얼굴 을 직시했다. "네 놈의 말은 노부가 네놈에게 패한단 말이냐?" 그의 안광은 가히 철판조차도 궤뚫어버릴 것 같은 가공할 것 이었다. 하나 조자건의 안색에는 털끝만한 움직임도 나타나지 않았 다. "의심나면 직접 확인해 보시오." 홍포노인의 전신에서 구름같은 열기가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가히 화신(화신)이 재림(재림)한 듯한 엄청난 광경이 었다. 그는 화광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조자건을 노려보며 살심이 가득찬 음성으로 말했다. "노부보다 더 광오한 놈이 있을 줄은 몰랐군. 네 놈은 곧 그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실수였는지를 뼈저리게 알게 될 것이다." 홍포노인은 천천히 양 손을 들어올렸다. 우우웅.... 마치 벌떼가 몰려오는 듯한 음향이 들리며 그의 양손이 시뻘 겋게 변했다. 동시에 쇠라도 녹일 듯한 후끈한 열기가 흘러나왔다. "이것은 열염홍심장(열염홍심장)이라는 것이다. 네 놈은 십 년만에 노부의 손에 죽게되는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홍포노인은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음성으로 외치며 붉게 물 든 양손을 휘둘렀다. 콰아아아... 마치 시뻘건 불기둥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았다. 동굴의 벽이 시커멓게 타들어가며 한 줄기 용암과도 같은 열 기가 조자건의 가슴을 향해 쏘아져왔다. 조자건은 피하지 않고 우뚝 서 있다가 그 열기가 지척으로 다가들자 번개같이 나무막대를 세차게 횡(횡)으로 그어댔다. 쫘악! 그토록 가공할 기세로 다가들던 열기가 반으로 갈라지며 짤 막한 경호성이 터져나왔다. "앗?" 찌익! 옷이 찢어지는 음향이 들리며 열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조자건은 눈을 빛낸 채 앞을 주시했다. 홍포노인은 양 손을 늘어뜨린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고 있었 다. 그의 가슴팍 옷은 길게 찢어진 채 속살이 그대로 드러나 보 였다. 그는 그것을 가릴 생각도 하지 않고 고리눈을 부릅뜬 채 조 자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의 얼굴이 실룩거렸다. "이...이 놈! 괴...굉장하구나...감히 일검으로 노부의 열염 홍심장을 뚫고 들어오다니." 조금전 조자건이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그는 큰 낭패 를 면치 못했을 것이다. 갑자기 홍포노인의 얼굴에 한 줄기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과연 그녀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는군. 내가 잠시 잘못 생각 했다." 그는 넋두리처럼 중얼거리더니 조자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네 놈의 무공은 나이를 초월한 것이다. 네 놈 정도라면 충 분히 노부의 복마수인지(복마수인지)를 상대할 자격이 있다." 복마수인지라는 말에 조자건의 눈이 번쩍 빛났다. 그가 알기로는 복마수인지는 강호무림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익히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홍포노인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바로 이화궁주(이화궁주)요?" 홍포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부가 바로 이화진군(이화진군) 위충양(위충양)이다." 조자건은 내심 침음했다. 이화진군 위충양은 비단 이화궁의 궁주일 뿐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는 오행신궁의 최고고수(최고고수)였다. 그의 복마수인 지는 강호무림사상 최고의 지법(지법)으로 알려진 전설적인 무 공이었다. 그가 신수궁의 궁주인 수선랑의 남편이라는 것은 무림에 전 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위충양은 화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조자건을 응시했다. "노부는 이 복마수인지를 익힌 후 한번도 이것을 펼칠만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노부가 화군악에게 도전하려고 했던 것 도 그라면 이 무공을 상대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복마수인지는 위충양의 회심의 절기였다. 그것을 익히기 위해서 그는 오랜시간동안 실로 엄청난 노력 을 기울였었다. 그런데 막상 그것을 익힌 후에 펼쳐볼 상대조 차 눈에 띄지 않았을 때 그의 마음은 극도로 허무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허무감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다. 조자건이 복마수인지를 격파하든 격파하지 못하든 이것을 펼 칠 만한 상대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위충양은 마음에 안정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수선랑이 바랐던 것은 이것이었을지 모른다. 그녀는 승패(승패)에 관계없이 위충양이 다시 자신의 곁으로 돌아와주기만을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조자건은 수중의 나무막대를 힘껏 움켜 잡았다. 그의 마음속에는 한 줄기 불같은 투지가 끓어 올랐다. 이화궁의 복마수인지는 그로서도 한 번쯤은 꼭 상대하고 싶 었던 절학이었다. 이런 기회가 온 것도 어찌 보면 그에게는 행 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