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80편 (80/87)
나는 이미 소 중한 친구를 잃었거든. 당신마저 잃게 내버려 둘 수는 없소." 그는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다음 어둠속을 미친 듯이 치달려 갔다. 제49장 결전지야(결전지야) 일, 혈야(혈야) 종산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한바탕 세찬 소나가기 지나간 후라 공기는 더할 나위없이 신 선했다. 모용수는 깊게 심호흡을 해서 신선한 밤공기를 가슴 깊숙히 들이마셨다. 그는 도저히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나 그는 일어나서 몸을 우뚝 세운 채 담담한 눈으로 주위 를 둘러보았다. "자. 모두들 내가 말하는 뜻을 알겠소?" 그의 주위에 둘러서 있는 사 오십 명의 인물들은 말없이 고 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모용수는 이들을 둘러보며 번우량은 참으로 든든한 수하들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이들은 소림외가의 고수들이었다. 소림외가는 번우량을 흠모해서 추종하는 무리들이었는데 번 우량은 이들을 취합해서 각각의 특성에 따라 세 개의 무리로 나누었다. 그런다음 그들중 제일가는 실력자를 골라 세 무리의 우두머 리로 삼았다. 그 세 무리는 냉혈대(냉혈대), 북성대(북성대), 그리고 두악 (두악대)라고 했다. 처음에는 모용수도 이 이름들이 갖는 특별한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다 곧 이것이 그들의 가장 첫 스승이었던 동곽선생 냉북 두의 이름에서 따온 것임을 알아차렸다. 그때 그의 마음에는 한 줄기 미묘한 파동이 스치고 지나갔 다. 번우량은 이런 식으로나마 스승인 냉북두에 대한 그리움을 나타냈던 것이다. 모용수가 거느린 세력은 이중 냉혈대였다. 냉혈대는 살성(살성)이 강한 인물들만을 모아 놓은 집단이었 다. 냉혈대의 대장은 강호에서도 마명(마명)이 자자한 옥마자(옥 마자) 남악(남악)이었다. 모용수는 남악같은 인물이 남의 밑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알았다. 남악 뿐만 아니라 북성대와 두악대의 대장들 또한 가히 강호 무림에서 최정상을 달리는 절정고수들이었다. 북성대의 대장은 오랫동안 섬서제일(섬서제일)의 고수로 불 리웠던 패검철담(패검철담) 두일해(두일해)였고, 두악대의 대 장은 강호무림에서 장법(장법)의 일인자로 공인된 일장개천지 (일장개천지) 좌광두(좌광두)였다. 이들 세 사람이 한 인물의 아래에 있다고 한다면 누구도 믿 지 못할 것이다. 그들외에도 소속된 인물들중 절정고수의 수는 부지기수였다. 그들은 한 대(대)에 약 오십 명씩의 인원들로 이루어져 있었 는데 이중 어느 누구도 강호무림에 나가면 한 지방을 주름잡을 수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단일세력으로는 소림외가는 이미 강호제일(강호제일)이었다. 모용수는 이 정도면 능히 무적검수맹과 하토궁, 집마부의 연 합세력과 자웅을 겨룰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용수는 자신을 대하는 냉혈대 인물들의 심정을 알고 있었 다. 그들은 절대로 모용수를 흠모하지 않는다. 단지 번우량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것 뿐이 다. 모용수도 그래서 그들에게 무리한 지시는 절대로 하지 않았 다. 그의 지시는 단 한 가지였다. 치고 빠지라는 것이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지시였기 때문에 냉혈대의 인물들로서도 불만이 있을 수가 없었다. 모용수는 자신의 옆에 우뚝 서 있는 옥마자 남악을 힐끗 쳐 다보았다. 남악은 삼십 대 중반의 인물이었는데 별호대로 인물됨이 관 옥과 같았다. 단지 얼굴 한 가운데 검상(검상)이 나 있어 차가 운 인상을 준다는 것이 옥의 티였다. "남대장. 그럼 시작합시다." 남악은 냉정한 눈으로 모용수를 바라보았다.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우리들중 누구도 당신을 돌보는 사람 은 없을거요. 당신은 혼자의 힘으로 자신을 지켜야하오." 그는 이미 모용수가 정상적인 몸상태가 아님을 알아차린 것 같았다. 모용수는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내가 부탁하고 싶었던 말이오. 당신들은 그저 할 일이 나 잘 하면 되오." 남악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손을 쳐들었다. 냉혈대의 고수들 오십 명의 눈초리가 모두 그의 손에 집중되 었다. 남악의 손이 내려졌다. 순간, 휘휘휙! 그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않고 종산의 어둠속으로 치달려갔 다. 옷자락 스치는 소리가 연거푸 터져나오며 그들은 눈깜짝할 사이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모용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고수들이군. 이런 고수들을 부릴 수 있다는건 분 명 행운이오." 남악의 눈에서 한 줄기 기광이 번뜩였다. "당신은 정말 혼자 따라올 수 있겠소?" 모용수는 피식 웃었다. "당신은 보기보단 정말 걱정이 많은 사람이로군. 나는 스스 로의 몸은 지킬 능력이 있소." 남악은 그를 싸늘한 눈으로 노려보더니 횅하니 몸을 돌려 자 신도 어둠속으로 날아갔다. 그의 몸이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서야 모용수는 입으로 나직 한 기침을 토해냈다. "쿨룩....쿨룩..." 기침을 할때마다 그의 입으로 검붉은 핏덩이가 쏟아져 나왔 다. 그는 아까부터 계속 기침을 참아왔던 것이다. 기침은 한참동 안 계속되었다. 한동안 객혈(객혈)을 하고 난 모용수는 품속에서 하나의 죽 통을 꺼내들었다. "설마 이 놈의 신세를 지게될 줄은 몰랐군...." 그의 파리한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꺼내들은 평범한 모양의 죽통은 폭우천심사(폭우천심 사)라는 것이었다. 예전에 그가 심심풀이로 만든 암기인데 그 위력이 너무 잔인해서 그는 만들었으면서도 한 번도 사용을 하 지 않았었다. 한 번 발출하면 반경 오 장 안에 있는 사람은 살아날 생각을 말아야 했다. 모용수는 폭우천심사를 손에 쥔 채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냉 혈대의 고수들이 사라진 어둠속으로 걸어갔다. 한 걸음 한 걸음 떼어 놓을때마다 심장이 터지는 듯 고통스 러웠으나 그는 결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서문금룡은 이런 그를 염려하여 그의 곁에서 떠나지 않으려 했으나 모용수는 그를 번우량과 함께 가도록 했다. 지금은 절정고수의 힘이 하나라도 필요할 때였다. 서문금룡 정도의 무공을 지닌 고수는 절대로 흔하지 않았다. 그가 모용수를 지키기 위해서 손이 묶여 있는 동안 다른 사 람들이 그만큼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그래서 모용수는 그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으면서도 그를 번우량에게 보냈던 것이다. 종산은 그리 가파르지 않은 산이었다. 하나 모용수에게는 천하의 어떤 험산준령(험산준령)보다도 더욱 험하게 느껴졌다. 얼마쯤 가니 하나의 시체가 나타났다. 그것은 무적검수맹 특 유의 청삼을 입은 무사의 시체였다. '이제 시작이로군.' 모용수는 씁쓸하게 중얼거리며 더욱 신중한 걸음으로 앞으로 전진했다. 시체는 갈수록 많아졌다. 처음에는 무적검수맹 인물들의 시체만 눈에 띄다가 백 여장 쯤 지나자 다른 무리의 시체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용수는 그들이 집마부의 고수들임을 알아차렸다. 다행히 여기까지 오는동안 냉혈대의 고수들은 한 사람도 죽 지 않았다. 이것은 그만큼 냉혈대 고수들의 무공이 탁월하다는 뜻이었 다. 하나 모용수는 조금도 형세(형세)를 낙관(낙관)하지 않았다. 진정한 싸움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음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아련하게 병장기의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차창! "아악!" 밤공기를 찢어놓을 듯한 처절한 비명소리가 꼬리를 물고 이 어졌다. 모용수는 느릿느릿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걸어갔다. 휘익! 갑자기 어둠속에서 검을 든 무사 하나가 나타나 그를 향해 매섭게 달려들었다. 청삼을 입은 것으로 보아 무적검수맹의 고 수같았다. 모용수는 거의 무의식적으로 수중에 들고 있는 폭우천심사의 단추를 눌렀다. 철컥! 순간, 파파파파팟! 무언가 빛살같은 쇠침들이 죽통을 통해 폭포수처럼 퍼부어졌 다. 그에게 달려들던 무사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크악!" 그는 몸이 고슴도치처럼 변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지고 말 았다. "이것으로 나도 오늘 밤 첫 살인(살인)을 한 셈인가?" 모용수는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싸늘하게 식어버린 무사의 시 체를 넘어 앞으로 전진해 갔다. 시체의 수가 갈수록 많아졌다. 그리고 모용수는 처음으로 냉혈대 고수의 시체를 발견했다. 그는 얼굴이 길다란 말상의 중년인이었다. 모용수는 그 중년 인이 냉혈대에 속해 있는 귀검(귀검) 이사(이사)라는 자임을 알고 있었다. 이사의 장검은 한 명의 고수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 리고 그 고수의 손에 들린 장창(장창)은 이사의 아랫배에 깊숙 히 꽂혀 있었다. 모용수는 그 장창을 든 고수의 시체를 내려보다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이자는 하토칠룡중의 창룡(창룡) 범수한(범수한)이로군." 창룡 범수한은 하토궁의 절정고수였는데 냉혈대의 인물 하나 를 당하지 못하고 양패구상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우두커니 범수한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을 때 다시 두 명의 인물이 나타나 그에게 덤벼들었다. 모용수는 말없이 폭우천심사를 발사했다. 슈슈슈슈! 밤하늘이 온통 솜털같은 암기의 그림자로 뒤덮힌 듯한 착각 이 들었다. 무서운 기세로 그에게 달려들던 두 명의 고수가 질겁을 하고 사력을 다해 뒤로 물러났다. 하나 그들의 몸은 어느새 그 폭우같이 퍼부어지는 암기의 세 례속에 휩쓸려 들어갔다. "크악!" "케에에...!" 처절한 비명이 밤공기를 뚫고 멀리까지 메아리쳤다. 모용수는 그들의 처참한 시신을 내려다보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이 암기는 정말 너무 악독하군. 마음에 안들어." 그때 갑자기 어둠속에서 한 사람이 불쑥 나오며 그의 말을 받았다. "확실히 마음에 안들군. 오늘밤은 너무 살생(살생)이 심한 것 같아." 모용수는 조금도 놀라지않고 담담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 다. "당신의 입에서 살생이 심하다는 말을 다 듣게 되는군. 그렇 게 많은 사람이 죽었소?" 나타난 인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싸움이 시작된 지 반시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백 여명이 넘은 사람이 죽었네. 오늘 밤이 지나면 시체가 얼마 나 될지 충분히 상상이 가지 않나?" 모용수는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그렇겠군. 하지만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오." 나타난 인물은 냉소를 날렸다. "자네는 두렵지 않나?" "단지 그 시체속에 내가 끼어 있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오." 그 인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자네는 반드시 그 시체속에 끼어 있을 걸세. 지금부 터 일각안에 말일세." 모용수는 빙긋 웃었다. "그럼 내가 당신 손에 죽기라도 한단 말이오?" 그 인물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떠올랐다. "바로 그렇네." 모용수는 문득 껄껄 웃었다. "하하...당신은 지금까지 내가 무서워서 집마부에 웅크린 채 나오지를 않았는데 감히 그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이오?" 나타난 인물은 집마부의 수석총관인 구두효 육진천이었다. 아니 이제는 새로운 집마부주(집마부주)라고 해야 옳을 것이 다. 육진천은 부인하지 않았다. "물론 자네가 멀쩡할때는 나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자네를 두 려워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네. 이제는 아무도 자 네를 두려워 하지 않는다네." 모용수는 빙긋 웃었다. "과연 그럴까?" 육진천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모용수의 침착한 태도는 전혀 그의 예상 밖이었다. 그는 모용수가 무공을 모두 상실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래 서 그가 자신을 만나게 되면 필시 꽁무니를 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그가 태연자약하게 나오자 그의 마음속에는 덜컥 의심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이 놈은 무공을 다시 회복한게 아닐까?' 그는 안광을 빛낸 채 모용수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했다. 하나 모용수의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아 도 무지 그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 다. 육진천의 마음속에 다시 그에 대한 두려움이 떠올랐다. 그가 구호당에 가입을 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무림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은 것은 모용수가 자신의 야심을 알아차리고 자신 을 제거할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두뇌가 제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결코 모용수의 발끝에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혹시 자신이 모용수의 흉계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하여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슬쩍 어둠속의 한곳을 향해 눈짓을 했다. 그러자 어둠속에서 다시 두 명의 인물이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들은 집마부의 오대호법중의 천지이흉이었다. 천지이흉은 비단 집마부 뿐만 아니라 강호무림에서도 최정상 에 있는 고수들이었다. 이들을 물리칠 수 있다면 모용수의 무공은 완벽하게 회복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천지이흉은 모용수의 이 장 앞에 가서 우뚝 섰다. 모용수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너무나 태연했기 때문에 천지이흉조차도 쉽사리 손을 쓰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들중 성격이 급한 위남해가 먼저 오른손을 휘두 르며 덤벼 들었다. 꽈르릉! 그의 손에서 엄청난 위력을 지닌 장력이 쏟아져나왔다. 막 그 장력이 모용수의 가슴을 강타하려는 순간, 쉬익! 갑자기 모용수의 뒤에서 날카로운 강기가 위남해의 미간을 향해 폭사되었다. 위남해는 자신이 이대로 손을 내뻗으면 비록 모용수의 가슴을 가격할 수 있지만 자신 또한 그 강기에 머리 통이 박살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제기랄...웬 놈이냐?" 그는 버럭 호통을 내지르며 장력을 거두고 뒤로 훌쩍 물러났 다. 모용수의 옆에 어느 새 한 명의 인물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옥마자 남악이었다. 모용수는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고맙소." 남악은 조금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조금전 그는 모용수가 절대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다고 생각 하고 전력을 다해 그를 구하기 위해서 날아왔다. 그런데 지금 보니 모용수의 얼굴표정은 담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는 모용수가 정말로 무공을 쓸 수 없는 상태인지 의아한 마음마저 들었다. 장내에는 어느 새 수십 명의 고수들이 나타나 있었다. 남악의 뒤에는 냉혈대의 인물들이 서 있었다. 모용수는 그들을 대충 훑어 보았다. 그들의 수는 삼십 명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이십 명에 가까운 고수들이 비명횡사했던 것이다. 육진천의 뒤에도 집마부와 무적검수맹의 고수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수는 거의 백 여명에 육박했다. 하나 그들을 둘러본 육진천의 안색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처음 그가 이곳에 왔을 때 집마부와 무적검수맹, 하토궁의 고수들의 수는 거의 이백명에 달해 있었다. 불과 한 시진도 안된 사이에 그들중 반이 목숨을 잃고만 것 이다. 육진천의 얼굴에 기이한 냉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그는 천천히 모용수를 돌아보았다. 모용수는 그를 본 채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과연 오늘 밤은 당신 말대로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날이로 군." 육진천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노려보다가 문득 입가에 차 가운 미소를 그려냈다. "나는 하마터면 네 놈에게 속을 뻔 했다. 하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았지." 모용수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육진천의 눈가에 진득한 살기가 피어올랐다. "나는 네 놈이 무공을 회복한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나 네 놈은 무공을 회복하지 못했다. 네놈은 과연 소문대로 폐인(폐 인)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모용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렇게 생각했소?" 육진천은 냉랭한 미소를 날렸다. "조금전 위남해가 장력을 날리다 말고 물러났을 때 네 놈의 몸은 한 차례 휘청거렸다. 그건 바로 네가 그 장력의 여파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네 놈 은 허허실실(허허실실)로 나를 속이려고 했지만 아쉽게도 들통 나고 말았다." 그는 모용수를 바라보며 자신만만한 음성으로 말했다. "네 놈이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상 오늘 네 놈은 반드시 이곳에서 죽는다." 이, 고사(고사) 암도는 끝없이 계속될 것 같았다. 하나 정신없이 암도속을 치달려가던 서문금룡의 몸이 어느 한 순간에 서서히 멈춰졌다. "다 왔소. 이제 십 여장만 더가면 비무대의 중앙으로 나올 수 있소." 번우량은 그의 말을 듣고 몸을 멈추었다. "이 암도는 정말 세밀하게 만들어졌군." 서문금룡은 그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모용수가 직접 설계한 거요. 모용수는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여 이 암도를 만들어 두었소." "그는 항상 모든 일에 완벽을 기하는 성미지." 번우량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하며 희미하게 드러나는 암도의 끝을 바라보았다. "밖의 상황을 설명해 주지 않겠소?" 서문금룡은 주저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비무대를 벗어나면 바로 무적검수맹의 정문(정문)이 나타나 오. 아마 그곳의 경비는 삼엄하지 않을거요. 그들은 모두 종산 쪽으로 신경이 집중되었을테니... 정문을 넘어서면서부터의 지 리는 당신도 잘 알고 있을거요."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론 잘 알고 있었다. 무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서 무적검수맹에 머무르는 동안 그 는 그곳의 지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파악해 두고 있었다. 번우량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에 늘어서 있는 소림외가의 인물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어둠속에서 눈을 빛낸 채 그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 수는 거의 백 여명이었다. 번우량은 그들을 둘러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제 이곳을 나가면 한 차례 혈겁(혈겁)을 피할 수 없을거 요. 죽음이 두려운 사람은 돌아가라는 따위의 말로 당신들을 모욕하지는 않겠소. 단지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되건 나를 믿 고 따라주어서 정말 고맙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소." 소림외가 고수들의 눈이 어둠속에서도 훤히 알수 있을만큼 반짝거렸다. 그들은 아무도 입을 열지 않은 채 기이한 열기가 일렁이는 눈으로 번우량을 바라보고 있었다. 번우량 또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 보았다. 마치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가슴속 깊숙히 새겨두려는 것 같았다. 그런다음 그는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떠올렸다. "이제 나쁜 놈들을 혼내주러 갑시다." 그들의 얼굴에도 씨익 미소가 번졌다. 그들은 한 마듸도 말을 하지 않았으나 그들 사이에는 뜨거운 교감(교감)같은 것이 흐르고 있었다. 번우량은 그들중 가장 앞에 서있는 두 명의 인물들에게로 시 선을 돌렸다. "두대장. 당신은 좌로(좌로)를 맡으시오." 북성대의 대장인 패검철담 두일해는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 다. "알겠습니다." 이어 번우량은 그의 옆에 서 있는 비쩍 마른 초로(초로)의 노인을 바라보았다. "좌노인(좌로인)은 우로(우로)를 맡아 주시오." 볼품없는 용모의 노인은 한 쌍의 육장(육장)으로 대강남북 (대강남북)을 뒤흔든다는 일장개천지 좌광두였다. 좌광두는 강팍한 얼굴에 한 줄기 결연한 빛을 떠올렸다. "자네의 우측은 전혀 걱정할 게 없네. 한 놈도 살려보내지 않을테니." 번우량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좌노인의 솜씨를 고대하겠소." 이어 그는 서문금룡과 조추음, 사공척을 둘러보았다. "당신들은 나와 함께 중앙을 맡읍시다." 그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 그럼 갑시다." 번우량이 소리치자 서문금룡을 필두로 중인들은 일제히 몸을 날렸다. 번우량도 거구를 솟구쳐 앞에 가는 조추음의 뒤로 바짝 따라 붙었다. "당신은 내 말을 기억하고 있소?" 그는 조추음을 향해 묵직한 음성으로 물었다. 조추음은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무엇을 말이에요?" 번우량은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신을 결코 다치거나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말 말이 오." 그녀의 얼굴에 방긋 미소가 그려졌다. "물론 잊지 않고 있어요." 번우량은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당신 뒤에는 항상 내가 버티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시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심하겠어요." 그제서야 번우량은 표정이 풀렸다. "그럼 됐소." 이어 그는 신형을 돋구어 중인들의 머리위를 지나 암도앞으 로 쏘아져 날아갔다. 그 모습은 마치 거대한 한 마리 붕새가 날아가는 듯한 장엄한 모습이었다. 암도의 끝이 나타나자 그의 커다란 손이 휘둘러졌다. 꽈르릉! 한 줄기 무지막지한 경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꽝!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암도의 끝이 통째로 없어져 버렸다. 그와 함께 서늘한 밤공기가 중인들의 코앞으로 화악 밀려왔 다. 번우량의 몸은 밤공기를 뚫고 허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육진천은 냉혹한 미소를 지은 채 모용수를 노려보았다. "이제 네 놈은 더 할 말이 있느냐?" 모용수는 우두커니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나직한 한숨을 내 쉬었다. "당신의 눈이 그렇게 날카로울지는 몰랐소. 확실히 나는 지 금 전혀 무공을 펼칠 수 없는 상태요." 남악을 비롯한 냉혈대 인물들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들은 설마설마하고 있다가 모용수가 스스로의 입으로 시인 을 하자 솔직히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보다 세 배나 많은 집마부의 고수들이 두렵지 는 않았다. 하지만 집마부의 수뇌인물들인 육진천과 갈홍립, 천지이흉에 필적할 만한 절정고수는 그들중 남악뿐이었다. 그래서 모용수 에게 한 가닥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