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75편 (75/87)
조자건은 허공에서 발을 교차로 움직였다. 스으읏! 그의 몸이 미끄러지듯 옆으로 이 장쯤 이동했다. 용협십이로 중의 화룡비월(화룡비월)이란 신법인데 빠르고 교묘하기가 말 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꽈릉! 악붕의 주먹은 이번에도 아슬아슬하게 조자건의 몸을 스치고 지나가며 석실의 천정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부스스... 단단한 석실의 천정이 움푹 파여지며 돌조각이 우수수 떨어 져 내렸다. 악붕의 공세는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조자건에게 반격할 틈을 주지 않으려는 듯 그의 신형이 멈춰서기도 전에 다시 두 주먹을 상하로 흔들었다. 쾌애액! 쌍뢰파황(쌍뢰파황)의 수법이 전개되며 두 가닥의 뇌전같은 권풍이 질풍같은 기세로 조자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는 조자건도 피하지 않고 나무막대를 휘두르며 맞서갔 다. 파아앗! 그의 나무막대가 기이하게 휘둘러지며 허공에 여섯 개의 작 은 고리가 생겨났다. 바로 복마검법중의 절초인 조운육환이 펼 쳐진 것이다. 허공을 수놓은 여섯 개의 고리는 거칠 것이 없다는 듯 다가 서는 두 개의 권풍과 정면으로 격돌했다. 꽝! 귀청이 떨어지는 듯한 음향이 울리며 두 사람의 몸이 비틀거 리며 물러났다. "음...!" 악붕은 답답한 신음을 흘리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그는 조자건을 쳐다보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조자건 또한 한걸음 물러서기는 했으나 그보다 훨씬 안정되 어 있었다. 악붕은 설마 조자건의 공력이 자신과 엇비슷할 정도로 막강 할 줄은 몰랐는지라 안색이 대변해 감히 조금전과같이 함부로 공격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조자건이 먼저 공격했다. 쉬아악! 그의 나무막대가 기이한 파공음을 내며 악붕의 왼쪽 관자놀 이를 향해 쏘아져왔다. 복마검법중의 일성엄월이란 수법이었는 데 악붕의 눈에는 마치 거대한 화살이 엄청난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악붕은 고리눈을 부릅뜬 채 우뚝 서 있다가 커다란 양손을 풍차처럼 마구 휘둘렀다. 콰아아아... 그의 손이 휘둘림에 따라 한 줄기 거대한 회오리바람이 거세 게 일어났다. 과거 악붕이 천하를 독보할때 명성을 떨쳤던 구절분뢰마권 (구절분뢰마권)중의 절초인 대뢰윤회(대뢰륜회)였다. 구절분뢰마권은 인간이 펼칠 수 있는 권법중에서 가장 강력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과연 대뢰윤회의 위력은 놀라워 반경 십여장에 달하는 석실 이 온통 권세속에 휘말려 버렸다. 파라라락... 가뜩이나 여기저기가 찢어져 볼품없던 조자건의 옷중 일부가 송두리째 사라져 버렸다. 하나 조자건의 나무막대는 그 가공할 권풍을 뚫고 계속적으로 악붕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악붕은 뒤로 물러서지 않고 휘두르던 손의 속도를 더욱 빨리 했다. 콰콰콰콰.... 마치 거대한 쇳덩이를 매달은 풍차가 질풍처럼 돌아가는 듯 한 착각이 들었다. 그 쇳덩이에 격중당했다가는 대라신선이 와 도 살아남지 못할 것 같았다. 조자건은 일성엄월의 초식을 계속 전개해 나가기가 점차 힘 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전신으로 가해지는 압력은 그야말 로 엄청난 것이어서 나무막대를 들고 서 있기조차 힘이 들 정 도였다. 조자건은 일성엄월의 식을 선인지로(선인지로)로 바꾸어 계 속적으로 악붕을 향해 다가갔다. 선인지로는 어느 한 곳을 집중적으로 노리기에는 가장 유용 한 초식이었다. 과연 나무막대는 조금전 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악붕의 미간을 향해 돌진해 들어갔다. 두 사람의 대결은 마치 창과 방패의 대결같았다. 세상의 어 떤 것이라도 뚫고 들어가는 무적의 창과 무엇이라도 막아낼 수 있는 공포의 방패! 콰콰쾅! 조자건의 나무막대와 악붕의 주먹이 허공에서 정면으로 부딪 치며 엄청난 폭음이 울렸다. "크윽!" 악붕은 나무막대에 부딪친 순간 자신의 손목이 부러지는 듯 한 통증을 느끼고 인상을 찡그리며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났 다. 더욱 놀라운 것은 격돌하는 순간 어느새 그의 권풍속을 헤집 고 검기(검기) 하나가 그의 가슴팍으로 날라왔다는 것이었다. 비록 그가 연성한 대철마공력(대철마공력)을 뚫지 못해 별다른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가슴 부위가 뽀개지는 듯한 통증이 전해졌다. 조자건은 두 걸음 물러나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는 전혀 부상을 입은 것 같지 않았다. 하나 자세히 보면 그의 왼쪽 어깨부근의 살이 시커멓게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금전의 격돌때 전귀의 칼에 맞았던 그의 왼쪽 팔이 미처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악붕의 권풍이 미약 하나마 격중되었던 것이다. 그의 왼쪽 팔은 쳐들 수도 없을만큼 상태가 심각해졌다. 조자건은 시간을 끌수록 자신이 불리해 진다는 것을 깨닫고 단번에 결판을 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는 악붕이 물러섰던 몸을 채 추스리기도 전에 그에게로 돌 진해 들어갔다. 쑤아앙! 그의 나무막대가 휘둘러지며 거의 사 장에 육박하는 엄청난 검기가 피어 올랐다. 이것을 본 악붕의 얼굴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는 두 주먹을 부서져라 움켜쥔 채 사력을 다해 아홉 번이 나 허공을 향해 내찔렀다. 쾌! 쾌액! 사방이 온통 아홉 가닥의 무시무시한 강기에 휩쓸려 버렸다. 구절분뢰마권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뢰현구로(뇌현구로)가 펼 쳐진 것이다. 뢰현구로의 아홉 가닥 강기는 장내를 그물처럼 뒤덮었다. 천 하의 어떤 것으로도 그 무시무시한 강기의 그물을 뚫을 수 없 을 것 같았다. 하나 조자건이 휘두른 사 장 길이의 검기에 닿는 순간 강기 의 그물은 그대로 찢겨져 나갔다. 치치칙! 마치 비단폭이 찢어지는 듯한 음향이 연거푸 터져나왔다. 동시에 그토록 무서운 기세로 허공을 가득 뒤덮던 뢰현구로 의 권세가 순식간에 허물어지고 말았다. 갑자기 주위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악붕은 두 주먹을 허공을 향해 내찌른 자세 그대로 우뚝 서 있었다. 그의 몸은 어떤 일이 있어도 쓰러지지 않는 철탑(철탑)과도 같아 보였다. 조자건은 그의 이 장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나무막대로 간신 히 쓰러지는 몸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낮빛이 유달리 창백해지더니 피를 게워냈다. "울컥...." 그는 한바탕의 피를 토해낸 다음에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 났다. 그의 몸이 일어서는 순간, 주르르.... 오연(오연)히 허공을 응시하고 있던 악붕의 턱밑으로 한 줄 기 선혈이 흘러내렸다. 그 선혈은 아래로 갈수록 더욱 많아지더니 가슴팍에 이르러 서는 거의 내(천)를 이루고 있었다. 문득 악붕의 입이 열리며 나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너...너는 당년(당년)의 화군악보다 더 강하구나. 그때도 이렇게 맥없이 패하지는 않았었는데..." 조자건은 입가에 묻은 선혈을 쓰윽 훔친 채 눈을 빛내며 그 를 바라보았다. "화군악과 겨룬 적이 있소?" 악붕의 턱 뿐만 아니라 입과 코밑으로도 선혈이 흘러 내렸 다. 하나 악붕은 꿈쩍도 않고 선 채 고개를 끄덕였다. "무림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 쌍마는 분명히 화군악과 겨루었다....그리고 패했지...우...우리는 단신(단신)으로는 절대로 화군악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집마부를 건설하게 된 것이다..." 그의 음성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으나 그의 표정만큼은 이상 하리만치 담담했다. "이...세상에서 화군악만한 고수가 또 있을줄은 몰랐다... 너...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조자건은 털로 뒤덮힌 그의 피부가 조금씩 갈라지며 핏물이 솟구치는 것을 보았다. 그는 묵묵히 악붕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문득 악붕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소리쳤다. "육총관...!" 구두효 육진천은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그의 부름에 흠칫 놀랐다. "예. 이부주님." 악붕은 이를 악물며 필사적인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노....노부가 했던 약속을 잊지 않았겠지...?" 육진천은 그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인지를 깨닫고 급히 고개 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꼭 저 자를 진표에게 데려다 주겠습니다." "노...노부를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졸장부로 만들지 마 라..." "명심하겠습니다." 그제서야 악붕의 눈가에 떠올랐던 안광이 서서히 사그라 들 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쿵! 바닥에 닿는 순간 그의 피부는 산산히 갈라진 채 사방으로 피분수를 뿌려대고 있었다. 그의 전신은 이미 조자건의 나무막 대에 의해 박살이 난 지 오래였다. 지금까지 참고 있었던 것도 악붕의 내공이 그만큼 막강했기 때문이었다. 조자건은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는 비록 내색하지 않았으나 왼쪽 어깨뼈는 이미 탈골(탈 골)되어 있었고 악붕의 가공할 권세에 심맥이 뒤흔들려 정상적 인 상태가 아니었다. 게다가 거듭된 절정고수들과의 격전으로 내공은 급격히 소모 되어 거의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도 그는 굳건히 서 있었다. 이런 곳에서 약세(약세)를 보였다가는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육진천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그는 한동안 조자건을 응시하고 있다가 철문근처로 다가갔 다. 그가 철문의 어느 한 구석을 만지자 나직한 굉음이 울려퍼졌 다. 쿠르릉! 그와 함께 철문의 반대편 석실 벽에 하나의 문이 나타났다. 문(문) 저쪽편에는 시커먼 암도(암도)가 입을 벌리고 있었 다. 육진천은 턱으로 그 암도를 가리켰다. "저곳을 곧장 나가면 진표를 만날 수 있을거요." 조자건은 그를 힐끗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속일 리는 없을 것이다. 설사 속인다 해도 지금의 조자건으로서는 그의 말을 믿고 따 르는 수 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조자건은 말없이 걸음을 옮겨 암도속으로 들어갔다. 그의 몸이 암도속으로 사라지자 문이 다시 굉음을 내면서 닫 혔다. 쿵! 문이 완전히 닫히자 갑자기 육진천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뭐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 없는 야릇한 미소였다. 그와 함께 그의 옆에 나란히 서 있던 갈홍립과 천지이흉의 얼굴에도 괴이한 미소가 그려지기 시작했다. "흐흐...." 갈홍립이 음산한 미소를 터뜨리며 육진천을 바라보았다. "이것으로 우리의 계획도 절반은 성공한 셈입니다." 육진천의 입가에는 미소가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여전히 싸늘 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아직 안심할 수는 없다. 그 놈이 대부주(대부주)마저 쓰러 뜨리지 않는한 우리의 계획은 성공했다고 할 수가 없다." "그 놈의 무공으로 보아 대부주도 그 놈의 적수는 되지 못할 게 틀림없습니다. 그 놈의 힘을 빌려 쌍마를 처치하겠다는 대 형(대형)의 생각은 전적으로 옳았습니다." 육진천의 얼굴에 떠오른 차가운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그는 질펀한 피바다속에 누워 있는 악붕의 시신을 힐끗 내려다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원래 이 일은 일호가 그 놈을 죽이지 않겠다는 걸 알았을때 즉흥적으로 세워졌다. 여소쌍을 그 놈에게 보내 그 놈을 이곳 으로 유인했을 때만해도 일이 이렇게 완벽하게 진행될 줄은 몰 랐다. 하지만 이제 놈의 실력을 안 이상 집마부는 내 수중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이 없다." 갈홍립은 그를 따라 웃다가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 놈이 대부주마저 물리친다면 나중에 그 놈을 어떻게 처 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육진천은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듯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이제 얼마후면 위불군이 돌아올 것이다. 위불군의 조마경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눈치가 빠른 갈홍립은 알았다는 듯 눈을 번쩍 빛냈다. "그렇다면 위불군에게 조자건을 해치우라고 말씀하실 생각이 십니까?" "나는 단지 쌍마가 조자건의 손에 죽었다고만 알려줄 것이 다. 나머지는 위불군이 알아서 하겠지." 갈홍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득의에 찬 미소를 날렸다. "흐흐...그렇다면 조자건, 그 놈은 우리를 위해 죽도로 고생 만 한 끝에 결국 비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겠군요." 육진천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바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다가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흐흐흐흐..." 석실안은 미친 듯이 웃어대는 네 사람의 웃음소리로 가득 차 버렸다. 제47장 살기무정(살기무정) 일, 수굴(수굴) 암도에 들어서자 쾌쾌한 이끼와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조자건은 자신이 암도에 들어선 순간 석문이 다시 닫히는 소 리를 들었으나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의 목적(목적)은 진표를 구출하는 것이며 이제 잠시후면 그 결과를 알게 될 것이다. 암도는 그리 길지 않았다. 이십 여장쯤 전진하자 암도가 끝나며 다시 하나의 석실이 나 타났다. 석실바닥은 무릎부근까지 물이 차 있었다. 조자건은 옷이 젖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석실안으로 들어섰 다. 그리고는 그대로 몸이 굳어지고 말았다. 인간(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비참)한 상황이란 어 떤 것을 가리키는 말일까? 만약 한 사람이 평생동안 심신(심신)을 다 바쳐 친 자식 보 다 더 정성을 대해 키운 동생들에게 배신을 당했다면....? 만약 한 사람이 하나뿐인 남동생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도 아 무런 손도 쓸 수 없었다면....? 만약 한 사람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만큼 사랑했던 열 일곱살짜리 막내여동생이 강제로 유산(유산)을 당하고 발목의 힘줄이 끊긴 채로 수굴(수굴)속에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면...? 만약 한 사람이 이 모든 것을 보고서도 자신의 두 눈이 멀고 양 팔과 두 다리가 모두 잘려나가 자신의 한 몸조차 주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상황에 빠져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이 삶에 대한 의욕을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희망) 조차 사라져 버렸을 테니까 말이다. 조자건은 진표를 바라볼 수가 없었다. 바라보고 있다가는 그대로 소리내어 울어버릴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는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대신에 어느 새 두 줄기 뜨거 운 눈물이 뺨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는 마침내 진표를 찾아냈다. 삼 개월만에 다시 만난 진표는 사람의 몰골을 하고 있지 않 았다. 바닥에 고여 있는 물은 조자건에게는 무릎까지밖에 올라오지 않았지만 진표에게는 턱밑에까지 가득 올라왔다. 진표는 팔다리가 없는 보기 흉한 몸뚱이를 물속에 잠기운 채 석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죽은 듯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두 눈이 멀고 두 다리가 마구 뒤틀린 소녀 하나가 그의 잘려진 어깨에 검은 머리를 기댄 채 비스듬히 누워 있었 다. 조자건은 차마 더 이상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나 그는 고개를 돌리는 대신에 물을 첨벙첨벙거리며 그들 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물이 튀기는 소리를 들었는지 한순간 몸을 움찔거 리더니 보이지 않는 눈으로 소리가 들려온 곳을 멍하니 응시했 다. 조자건은 말없이 진표의 몸뚱아리를 끌어안았다. 그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이 진표의 메마른 얼굴 위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진표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 느낌...이 피부의 감촉...그리고 이 체취... 진표의 얼굴이 마구 실룩거리며 몸에서 경련이 일어났다. "자...자건...자네로군..." 조자건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진표의 동공없는 뻥뚫린 구멍에서도 축축한 물기가 흘러나왔 다. "어...언제고 자네가 찾아올 줄 알았네...그래서 나..난 죽 을 수가 없었네....자네를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죽...죽을 수 가 없었지...." 진표는 떨리는 음성으로 중얼거리듯 말했다. 진표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있던 소녀도 몸을 가늘게 떤 채 소리죽여 오열하고 있었다. 조자건은 차마 그녀를 돌아보지 못했다. 예전에 자신이 알고 있던 그토록 예쁘고 사랑스러웠던 그녀 가 지금의 그녀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기만 해도 울음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대신에 그는 더욱 힘껏 진표를 끌어안았다. "진표...." 진표의 메마른 얼굴에 한 줄기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자네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정말 좋군....하마터 면 이 목소리를 영영...못 듣게 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 지.." 조자건은 목이 메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진표...미안하오." 그는 이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다른 어떤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진표는 고개를 저었다. "자...자네 잘못이 아닐세...워...원래 일이 이렇게 되도록 되어 있었던거지...결코 자네 때문이 아니야..." 조자건은 힘겹게 물었다. "누가 이런 짓을 했소?" 진표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얼굴에 쉴사이없는 경련이 일어 났다. "그...그 놈이 그랬네. 그 놈! 그 놈이 봉아를 저런 꼴로 만 들고 내 팔과 다리를 잘랐네...." "그가 누구요?" "과자옥." 순간 조자건은 이빨을 악깨물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분노에 찬 고함소리를 내지를 것 같았기 때 문이다. 과자옥! 바로 그 놈이다! 얼마전만 해도 자신의 옆에서 멀건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던 그 놈이 바로 진봉과 진결을 이런 꼴로 만들었다! 그 놈에게 자신이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뼈저리도록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이들에게 이런 짓을 한 것을 피눈물이 나도록 후회하게 만들 어 줄테다! 조자건은 간신히 목소리를 죽여 진표에게 말했다. "그는 내가 책임지겠소." 진표의 얼굴에 한 줄기 안도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는 조자건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가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이 억울함과 원한맺힌 처절한 고통을 몇 배, 몇 십배 되갚아 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지금까지 그는 이 한 마디를 듣기 위해서 기를 쓰고 살아있 었던 것이다. "고맙네...자건...봉아도 지하(지하)에서나마 자네에게... 고..고마워 할걸세..." 진표의 말에 조자건은 흠칫 놀라 그의 어깨에 기대어 있던 진봉을 바라보았다.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진봉의 몸은 이미 차갑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녀의 파리한 입술 사이로 한 줄기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 다. 그녀는 스스로 혀를 깨물어 자진(자진)했던 것이다. 진표는 이미 그 사실을 예상하고 있었던 듯 담담한 표정이 되었다. "그...그 아이는 진작에 죽으려고 했네...하...하지만 나.. 나를 살리기 위해서 죽지 않았지...자...자네도 보다시피 나 는...팔이 없어서 혼자서는 아무 것도 먹을 수가 없지 않 나..." 그의 표정은 차분했으나 눈가로는 어느 새 축축한 물기가 흘 러내리고 있었다. "그...그 아이는 자네를 볼 면목이 없었을걸세...하...하지 만 그 아이는 나쁜 아이가 아닐세....그 아이가 예전에 얼마 나...착하고 귀여운 아이였는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지 않 나...?" 조자건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있었다. 그는 그녀의 싸늘하게 식어버린 뺨을 어루만진 채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진표의 음성이 가늘게 떨렸다. "그...그 아이는 정말 착하고 귀여웠지..." 그의 얼굴에 한 줄기 남아 있던 생기(생기)가 급격하게 사라 졌다. "자...자건..." 진표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힘겹게 조자건을 불렀다. 조자건은 그의 몸을 힘차게 끌어안았다. "말하시오...." 진표는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댄 채 마구 부벼댔 다. 두 사람의 얼굴은 촉촉하게 젖어 있어 끈적끈적하기 조차 했다. 하나 조자건은 조금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얼굴을 더 욱 바짝 갖다대었다. 진표는 조자건의 귀에 대고 떨리는 목소리로 소근거렸다. "겨...결(결)이는 이곳에 없네...결이를 찾아주게..."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꼭 그렇게 하겠소." 진표의 얼굴에 한 줄기 아련한 그리움이 떠올랐다. "아....고향으로 돌아가고 싶군...그 시절이 정말 그립 네....자네와 꼭 고향에 가서 술을 한 잔 하고 싶었는데..." 진표는 영원히 그 술을 마실 수 없게 되었다. 조자건은 한동안 묵묵히 진표의 시신을 부둥켜 안은 채 미동 도 않고 있었다. 흡사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진표의 잠이 깰까봐 조심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의 몸을 진봉의 시신 옆에 나란히 뉘여 놓았다. 그런다음 바닥의 물을 퍼서 그들의 얼굴을 깨끗하게 닦아주 었다. 더러운 물속에 반쯤 잠긴 채 누워 있는 두 남매(남매)의 얼 굴은 왠지 평온해 보였다. 조자건은 한동안 두 사람의 시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그들의 얼굴 표정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가슴속에 새겨 놓으려는 듯 바라보고 또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입술을 깨물며 석실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는 허파가 터지도록 미친 듯이 어두운 암도속을 달려나갔 다. 달려가면서 그는 목이 터져라 소리내어 외쳐댔다. "진---표---!" 그 고함이 석실 벽에 메아리치며 다시 되돌아 왔을 때, 그의 눈가로 진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마인(마인) 콰콰쾅! 석실의 벽이 박살이 나며 돌조각이 사방을 뒤덮었다. 신문병은 거대한 석문이 통째로 부서지는 광경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