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71편 (71/87)
쿠아앙! 다시 굉음이 터져 나오며 파금왕의 금마인이 삼장(삼장)이나 날아왔다. 아마도 파금왕은 단번에 승부를 가를 작정인 것 같 았다. 위지혼의 두 눈에서 두 줄기 광망이 이글거렸다. 그는 수중의 칼을 힘껏 움켜 잡은 채 세 개의 거대한 금빛 섬광이 자신의 지척으로 다가올때까지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 가 전력을 다해 칼을 좌(좌)에서 우(우)로 그어댔다. 버--언--쩍! 무언가 괴이한 광채가 장내를 환하게 밝혔다가 사라졌다. 파금왕이 쳐낸 세 개의 금마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흡사 아침햇살을 받고 사라지는 안개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중인들은 무언지 모를 분위기에 짓눌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한 채 장내를 주시했다. 두 사람은 여전히 처음의 그 자세대로 서 있었다. 위지혼은 칼을 아래로 늘어 뜨린 채 몸을 휘청거리고 있었 다. 그의 안색은 유달리 창백했고 입가로는 실날같은 핏줄기 하 나가 살짝 내비쳤다. 하나.... 그의 녹슨 칼날아래로 떨어지는 한 줄기 진한 선혈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파금왕은 우뚝 선 채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채 반도 떠오르기 전에 그쳐졌다. 동시에 그의 몸은 벼락을 맞은 고목처럼 서서히 바닥으로 쓰 러졌다. "아악!" 마부석에 있던 시비들이 비명을 질러댔다. 파금왕의 아랫배가 쩌억 갈라지며 시뻘건 선혈이 뿜어져나오 는 것을 정면으로 보았던 것이다. 파금왕은 쓰러지면서도 필사적으로 갈라진 아랫배를 움켜잡 았다. 쿵! 마침내 그는 땅위에 몸을 뉘였다. 아랫배를 움켜잡은 손가락 사이로 검붉은 선혈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파금왕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떠올라 있 었다. 왠지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편안한 기색마저 내비치고 있었 다. 그때 돌연 수정주렴이 다시 열리며 하나의 인영이 뛰어나왔 다. "여보!"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파금왕에게로 날아간 인영은 바로 황금왕후 두응향이었다. 두응향은 자신이 흘린 피바다 속에 비스듬히 누워 있는 파금 왕을 바라본 채 전신에 경련을 일으켰다. 항상 냉정하게 가라 앉아 있던 그녀의 옥용(옥용)은 창백하게 질린 채 계속적으로 떨리고 있었다. "다...당신..." 그녀는 자신의 나삼에 피가 묻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파 금왕의 몸을 끌어안았다. "다....당신.." 그녀는 이 말 밖에는 하지 못했다. 파금왕은 그녀를 올려다보며 입가에 부드러운 웃음을 떠올렸 다. "내 모습이 몹시 보기 흉하겠군. 그렇지?"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를 내려 놓으시오, 응향. 당신은 손에 피가 묻는 것을 제 일 싫어하지 않았소?" 그녀는 계속 도리질을 했다. 그 도리질은 점점 거세지더니 마침내 그녀의 눈가에 진주같은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니에요....아니에요...." 파금왕은 손을 들어 그녀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 다. 그의 손은 자신이 흘린 피가 잔뜩 묻어 있어서 그 손으로 눈 물을 닦자 그녀의 얼굴에도 피가 묻었다. 하나 그녀는 아랑곳 하지 않고 그 손을 꼬옥 끌어안았다. "이런...당신의 예쁜 얼굴을 더럽혔군. 울지말아요. 귀염둥 이. 나는 당신이 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으나 계속적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파금왕은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기억나오? 오 년전에 우리가 결혼했을때 나는 당신의 눈에 서 절대로 눈물을 보이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었지. 나는 지금까지 그 약속을 잘 지켰는데 이제는 지키지 못하겠군." 그녀는 말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파금왕은 온화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항상 당신에게 더 잘 해주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고 있소. 미안하오." 그녀는 흐느끼며 소리쳤다.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내...내가 너무 사치를 부 리지 않았다면....다...당신은 결코 이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아니오. 당신은 천하에서 가장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오. 그러니 천하에서 가장 화려하게 치장한다고 해서 누가 뭐 라고 할 수 있겠소? 그걸 받쳐주지 못한 내가 못난거지." 그녀는 한동안 그의 얼굴을 어루만진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 렸다. 그녀는 사실 그동안 파금왕을 무척 고루한 사람이라고 은근 히 경멸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녀는 자신이 그 를 마음속 깊숙히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파금왕의 안색이 급격히 핼쓱해지며 그의 몸에서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났다. 하나 그는 얼굴에 떠있는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이제는 당신 얼굴도 잘 보이지 않는군. 나를 향해 웃어봐 요."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그에게 말했다. "다...당신에게 고백할게 있어요. 사실은..."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사...사실 나는 당신이 생각한 만큼 좋은 여자가 아니에요. 나...나는...." 파금왕은 담담하게 웃으며 두툼한 손으로 그녀의 흑단같은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 "아니오. 당신은 좋은 여자요. 그러니 나같은 사람과 오 년 동안이나 함께 살았던거요." "아...아니에요. 나는 부정(부정)한...." 파금왕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당신은 내게는 좋은 여자였소. 최고의 여자였지....항상 그 랬소." 그녀는 그를 내려보다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으며 오열했 다. "여보...." 파금왕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항상 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잠들고 싶었지...당신에게 선 정말 좋은 냄새가 나거든. 응향." 파금왕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 두응향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 보았다. 파금왕은 그녀를 내려보며 조용히 미소지었다. "그동안 정말 고마웠소." 그것이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응향은 그의 품에 얼굴을 파묻은 채 흐르는 오열을 삼키지 않았다. 어느 새 파금왕을 호위하던 팔대사자와 두 명의 시비 또한 바닥에 엎드려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다. 사마결의 메마른 얼굴에도 눈물자국이 가득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언제부터인지 장내가 빤히 내려다 보이는 커다란 나무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던 한 사람의 눈에도 뜨거운 눈물이 흘 러 내렸다. 파금공자 정각. 항상 남들에게 바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그의 얼굴도 눈물 로 젖어 있었다. 그는 굵은 눈물을 흘러내리면서도 얼굴 한 구석에는 환한 표 정을 떠올렸다. '아버님은 이제 비로소 진정한 아내를 얻으셨다. 그 분은 지 하에서나마 웃고 계실 것이다.' 그는 파금왕을 위해 복수하겠다는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았 다. 파금왕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었다. 비록 자신의 아내를 위해서 였다고는 하나 보수를 받고 청부 업을 하는 것은 그의 자존심을 무척이나 상하게 하는 것이었 다. 그때문에 그는 항상 심각한 고민에 빠져 있었고 때로는 자 괴감(자괴감)에 몸부림치기도 했다. 그런데도 남에게는 그 점을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혹시라도 황금왕후의 귀에 그런 소리가 들어가 그녀가 울적 해 할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는 청부업을 하면서 이런 날이 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는 비록 목숨을 잃었지만 대신에 자신의 문파에 대한 긍지 를 지켰고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애정을 얻었으므로 결코 억울 해 하지 않을 것이다. 지하에서나마 그는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것이다. 제45장 위기일발(위기일발) 일, 습격(습격) 정말 칠흑같은 밤이었다. 장님의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위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짙은 어둠속에 잠겨 있었다. 그 어둠속을 미친 듯이 치달려 가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 다. 그 무리들의 수는 거의 백 여명에 달했다. 휘휙! 그들의 옷자락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로 보아 모두 하나같이 뛰어난 무공을 지닌 고수들임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저기다!" 무리들중 가장 선두에 선 자가 문득 어느 한 곳을 바라보며 나직히 소리쳤다. 백 여명의 무리들은 일제히 그의 옆에 내려서서 그가 바라보 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둠속에서 하나의 커다란 건물이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바로 서하사였다. 선두에 선 인물이 서하사를 응시하며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 안에 신주홍안이 있다. 그녀는 반드시 생포해라. 그 외 에 나머지는 모두 죽여 없애야 한다." 백 여명의 무리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두의 인물은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가라!" 그의 외침이 나오자 백 여명의 무리들은 일제히 허공으로 신 형을 솟구쳐 서하사쪽으로 날아갔다. 백 여개의 신형이 어둠을 뚫고 한 곳으로 날아가는 광경은 그야말로 일대장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선두에 있던 인물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득의의 미소를 날렸 다. "흐흐....신주홍안! 감히 본 공자를 거역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였는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해 주겠다." 음산한 미소를 날리고 있는 인물은 바로 하토궁의 소궁주인 곽표요였다. 하토궁의 세력은 오행신궁중에서도 가장 방대했다. 그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무림패권(무림패권)의 야망을 품었 으며 오행신궁의 다른 네 궁(궁)이 칩거하고 있을 때 그들은 고수들을 포섭해서 세력을 확장했다. 당금무림의 사대세력중 구호당은 거의 와해(와해)되었고, 소 림사는 번우량의 일 때문에 자중지란(자중지란)이 일어나 그 본연의 힘을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집마부는 조자건에게 내린 추살령이 역효과를 내서 많 은 절정고수들을 잃은 바람에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다. 하나 하토궁은 아직 본격적으로 무림에 그 모습을 드려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막대한 세력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다. 이번에 하토살군 곽취봉이 궁소천의 제안을 받고 무림에 출 도한 이후 그들은 자신의 가공할 힘을 나타내기 위해 한 가지 엄청난 일을 계획했다. 그것은 바로 오행신궁의 다른 네 개 문파를 송두리째 멸망시 키고 오직 하토궁만이 오행신궁중 유일하게 독존(독존)한다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계획의 가장 첫번째 행동으로 그들은 신수궁의 소 궁주인 신주홍안을 생포하기로 결정했다. 때문에 오늘 일에 투입된 하토궁의 고수들은 가히 최절정의 인물들을 거의 망라하고 있었다. 하토궁의 절정고수들인 오성(오성)과 육웅(육웅), 칠룡(칠 용)뿐만 아니라 하토궁의 최고고수들인 삼로(삼로)와 사객(사 객)중에서도 몇 사람이 참가하였다. 그 세력은 실로 막강하여 그야말로 왠만한 문파(문파) 하나 쯤은 가볍게 없애버릴 정도로 엄청난 진용을 갖추고 있었다. 섭보옥은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자다가 말고 도중에 깨어나는 적은 극히 드물었다. 그녀도 자기가 왜 깨어났는지 한동안 어리둥절할 정도였다. 그때 돌연 그녀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어디선가 아득히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그녀는 그제서야 자신이 무엇때문에 잠에서 깨어났는지를 깨 달았다. 그것은 절정(절정)의 무도자(무도자)들 만이 느낄 수 있는 살기에 대한 직감적인 반응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옷을 줏어 입으며 머리에 비녀를 꽂았다. 일이 참 공교롭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번우량과 소림외가의 고수들은 무적검수맹에 잠입하기 위해 서 이미 모처(모처)로 떠난 상태였다. 만약 그들이 있었다면 어떤 암습이 와도 능히 물리칠 수 있 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 이곳에는 그녀와 호화단의 인물들 뿐이었다. 호화단의 인물들은 비록 뛰어난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떤 사명감이나 소속감을 가지고 있는 무리들이 아니었다. 오 직 그녀의 미색(미색)에 혹해서 가까이서나마 그녀를 지켜보고 싶은 마음에 가입한 인물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자들이 만약 어떤 심각한 위험에 맞닥뜨리게 된다면 어 떠한 행동을 취하겠는가? 그야말로 오합지졸(오합지졸)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무용지 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녀의 걱정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콰창! 그녀가 채 옷을 갖춰입기도 전에 창문이 박살나며 하나의 인 영이 뛰어들었다. 그녀는 슬쩍 궁장(궁장)의 윗도리를 어깨에 걸치며 왼손을 휘둘렀다. "크악!" 방안으로 뛰어들어왔던 인영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 에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미간에는 어느 사이에인지 하나의 조그마한 비도(비도) 가 꽂혀 있었다. 인영이 쓰러짐과 동시에 다시 하나의 시커먼 인영이 안으로 불쑥 날아들었다. 그녀는 다시 손을 떨치려다가 멈추었다. 이번에 들어온 인영은 흑의를 입은 중후한 인상의 중년인이 었다. 바로 호화단의 단주인 일월쌍극 하후태세였던 것이다. 하후태세의 얼굴은 무겁게 굳어 있었다. "아무래도 빨리 피해야 되겠소." 그녀는 침착하게 궁장의 단추를 채웠다. "상황이 안좋은가요?" 하후태세는 그녀가 조금도 조급한 표정을 짓지 않는 것을 보 고 역시 대단한 여자라고 생각했다. 왠만한 여자라면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비명소리와 병장기의 마찰음에 놀라 당황해서 어쩔줄을 몰랐을 것이다. "이미 호화단의 인물중 반 이상이 쓰러지거나 도망갔소. 아 마 나머지도 일각을 견디기 어려울거요." "상대는 어디인가요?" 하후태세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하토궁의 무리들이오. 곽표요인가 하는 놈이 그들을 지휘하 고 있소." 섭보옥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그들이로군요. 곽표요는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되요. 그보다 삼로나 사객중 이번에 온 사람이 있는지 모르겠군요." 하후태세의 눈이 번쩍 빛났다. "삼로중의 염왕적자(염왕적자) 마여비(마여비)와 사객중의 냉면인도(냉면인도) 사빙심(사빙심), 인향수사(인향수사) 백귀 향(백귀향) 등 세 사람을 보았소." 그녀는 단추를 모두 채우고 얼굴을 망사로 가렸다. "그들이 단단이 각오하고 온 모양이로군요. 삼로사객중에서 세 명씩이나 보낼 정도면."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망사로 가려지자 하후태세의 얼굴에 한 줄기 아쉬운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나 그는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내가 살아남은 몇 사람을 데리고 활로(활로)를 열테니 당신 은 내 뒤를 따라 오시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이어 그녀는 별빛같은 시선으로 하후태세를 응시했다. "그동안 당신이 내게 베풀어준 각별한 정은 잊지 않겠어요. 이제 그만 당신도 당신의 길을 가도록 하세요." 하후태세의 거구가 부르르 떨렸다. 그는 안색이 변한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나를 쫑지 않는다면 그들은 감히 당신을 막지 못할거에요. 그들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나일테니 일부러 출혈(출혈)을 감수 하면서 당신을 제지하려고 하지는 않을거에요." 하후태세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나보고 이대로 혼자서 몸을 피하라는거요?" 그의 음성은 격동에 가득 찬 것이었으나 그녀는 차분한 목소 리로 말했다. "당신이 빠져나간다면 나는 충분히 그들의 추적을 피해서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어요." 하후태세는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잘라 말했다. "나는 절대로 그렇게 못하겠소. 결코 당신을 혼자두고 떠나 지는 않을거요." 그녀는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부릅뜨며 그녀 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었 다. 그러다가 돌연 그녀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바보로군요. 당신이 이런다고 변하는 것은 아무 것 도 없는데." 하후태세의 얼굴에도 한 줄기 처연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나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며 결연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소. 당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하는 일은 절대 아니니까 말이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막지 않았다. "당신이 앞장서세요." 하후태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등뒤로 손을 가져갔다. 스릉! 등뒤에 매어져 있던 붉고 푸른 두 개의 일월쌍극이 어느 새 그의 양 손에 쥐어졌다. 일월쌍극을 쥐자 하후태세는 천하의 어느 것도 두렵지 않은 모습이었다. "이제 가겠소." 그는 그녀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그녀가 알았다는 표정을 짓자 그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밖 으로 뛰쳐나갔다. 그녀는 알듯 모를듯한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그의 뒤를 따라 몸을 날렸다. 주위는 이미 한 폭의 지옥도(지옥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사방이 온통 널려진 시체와 잘려다간 팔다리로 뒤덮혀 있었 다. 여기저기에 선혈이 낭자했고 간혹 간신히 목숨을 건진 부 상자들의 입에서는 고통에 가득찬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고요하고 한적하기만 했던 서하사는 오늘만은 완전한 아수라 장이 되어 있었다. 섭보옥은 주위를 한 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사태를 충분히 파악했다. 바닥에 널려진 시체들의 대부분은 호화단 고수들의 것이었 다. 간혹 하토궁 무리들의 것도 눈에 띄었으나 그 수는 불과 이 삼 십구를 넘지 않았다. 그녀는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호화단의 고수들은 비록 그녀가 내켜서 만든 조직은 아니었 으나 그녀를 위해 청춘(청춘)을 바치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집 단이었다. 그 집단의 고수들이 오직 그녀 하나로 인해 처참한 시체들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때 그녀의 마음속에는 난생 처 음으로 하토궁 무리들에 대한 진한 살심(살심)이 들끓고 있었 다. 그녀는 오늘 크게 살계(살계)를 어기리라 결심했다. 십 여장 밖에 하토궁의 무리들속을 맹렬하게 질주하며 질풍 처럼 일월쌍극을 휘두르고 있는 하후태세의 모습이 시야에 들 어왔다. 그녀의 신형은 미끄러지듯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다리힘을 기르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해온 끝에 신법(신법) 방면에 있어서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 하는 경이적인 경지에 올라 있었다. 태극문의 다섯 제자중에서도 신법 만큼은 그녀가 가장 탁월 했다. 그것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단숨에 십 여장을 날아 하후태세의 머리위로 떨어져 내리고 있는 그녀의 신법은 그야말로 환상적이라고 밖에 표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후태세는 하토칠룡중의 네 사람의 합공에 휩싸인 채 치열 한 격전을 벌이고 있다가 허공에서 난데없이 누군가가 떨어져 내리자 크게 놀랐다. "나에요." 짤막한 음성이 들려오자 그제서야 그는 섭보옥이 왔음을 깨 닫고 급히 허공으로 공격하려던 손길을 멈추었다. 섭보옥의 새햐얀 옥수가 허공을 스치듯 지나갔다. 쌔쌔쌕! 무언가 바람을 가르는 듯한 미약한 음향이 흘러나오며 네 가 닥의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을 뚫고 천공(천공)에 메아리쳤다. "크아악!" "케에엑!" 마치 합창하듯 터져나온 네 가닥의 비명은 바로 하후태세를 공격하던 하토칠룡중 네 사람의 입에서 나온 것이었다. 하후태세는 그들의 미간에 모두 하나씩의 작은 비도가 박혀 있는 것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저럴수가....' 그는 아직 이렇게 빠르고 위력적인 암기의 고수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멍하니 서 있을때, "빨리 가요. 서쪽이 조금 방비가 허술한 것 같아요." 그녀의 전음성이 그의 귓전에 울려왔다. 하후태세는 퍼뜩 정신이 들어 그녀를 한 번 힐끗 보고는 서 쪽으로 몸을 날려갔다. 그제서야 그는 조금전에 그녀가 말했던 것이 사실일지도 모 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와 같이 빠른 신법에 이토록 놀라운 암기술을 지녔다면 그녀 혼자 이곳을 뚫고 나가는 것이 더욱 수월할지도 몰랐다. '그녀에게 누(누)가 되지는 않겠다!' 하후태세는 안광을 번뜩이며 전력을 다해 서쪽으로 질풍처럼 치달려나갔다. 바로 그때 그의 앞으로 세 개의 인영이 비호처럼 달려들었 다. "멈춰라!" 우렁찬 호통소리가 들려오며 세 인영중 가운데의 인영이 강 력한 일장을 날려왔다. 꽈르릉! 시커먼 강기가 노도처럼 하후태세의 면전을 향해 쏘아져왔 다. "묵운장(묵운장)! 네 놈은 냉면인도 사빙심이구나!" 하후태세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멈추기는 커녕 더욱 빨리 앞 으로 달려가며 수중의 일월쌍극을 세차게 휘둘렀다. 슈파파파파... 그의 일월쌍극에서 각기 푸르고 붉은 두 가닥 섬광이 폭죽처 럼 피어올랐다. 시커먼 강기와 붉고 푸른 두 개의 섬광은 허공에서 정면으로 격돌했다. 콰콰쾅! 엄청난 폭음이 터져나오며 달려들던 사빙심의 몸이 뒤로 이 장이나 격퇴되었다. "큭!" 사빙심은 몸을 휘청거리다가 한 바탕 선혈을 토해냈다. 하나 하후태세 또한 완전히 무사하지는 못했다. 그는 뒤로 두 걸음 물러난 채 안색이 조금 창백하게 변해 있 었다. 그는 기혈(기혈)이 솟구쳐서 한동안 몸을 움직일 수 없 었다. 그 바람에 맹렬히 돌진하던 그의 몸이 제지당하게 되었다. 사빙심과 함께 그의 앞을 가로 막았던 두 인영은 하토육웅중 의 혈웅(혈웅)과 마웅(마웅)이었다. 두 사람은 하후태세가 움직일 기색도 없이 우두커니 서 있자 쾌재를 부르며 그를 향해 덤벼들었다. 그 순간 섭보옥이 그들의 중간으로 날아오며 양 손을 휘둘렀 다. 쐐애액! 무언가 차가운 두 개의 섬광이 그들의 미간을 향해 폭사되었 다. 그것은 너무도 갑작스럽고 신속했는지라 그들로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다. 파팟! "크윽!" "케에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