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70편 (70/87)
척아가 저렇게 된 이상 나라도 그의 복수를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거에요." 번우량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을 말릴 수는 없겠지. 하지만 당신은 반드시 당신 뒤에 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하오. 당신을 절대로 다 치거나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소."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을 꼭 기억해 두겠어요." 번우량은 곰곰히 무언가를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조추음은 유정(유정)이 충만한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고 있다 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물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요?" 번우량은 그녀를 돌아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언제 그곳으로 갈까하고 고민했소." 그녀는 눈을 반짝거렸다. "결정했나요?" 번우량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언제인가요?" "삼일 후요."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 그날을 선택했지요?" 번우량은 그녀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지었다. "그 날이 바로 내 생일이기 때문이오." 그는 결연한 음성으로 말을 맺었다. "내게 씌워진 오명(오명)을 벗고 사문의 배반자를 처단하기 에는 내 생일날이 가장 적합할거요." 암도(암도)는 끝없이 이어졌다. 서문금룡은 품속에 모용수를 안은채 질풍같이 어두운 암도속 을 달려가고 있었다. 모용수는 이미 숨이 끊어졌는지 그의 품속에 푹 늘어진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죽지 마라....수(수)야! 제발 죽지 마라...!" 암도속을 달려가면서 서문금룡은 이렇게 외치고 또 외쳤다. 그의 눈가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모용수와 그는 어렸을 때 부터의 둘도 없는 절친한 친구였 다. 모용수의 부친인 모용화린과 서문금룡의 부친인 낙척거사(낙 척거사) 서문유방(서문유방)은 평생을 친하게 지낸 백년지기 (백년지기)였기 때문에 두 사람 또한 어려서부터 형님,아우하 면서 허물없이 지내던 사이였다. 서문금룡이 모용수보다 세 살이 많아서 형님 소리를 들었고 모용수를 아우라고 불렀다. 두 사람은 모두 독자(독자)들이었기 때문에 친 형제처럼 사 이좋게 지냈다. 나중에 모용수가 천기노인의 문하(문하)로 들어간 후 구호당 을 조직했을때 비밀리 서문금룡을 찾아가 그에게 구호당의 가 장 비밀스러운 직책인 구호(구호)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서문금룡은 흔쾌히 이를 수락하고 그의 지시대로 무적검수맹 에 가입을 했다. 그 이후 그의 모든 행동은 철저히 모용수의 지시에 의한 것 이었다. 비무대를 만들겠다고 스스로 자원한 것도 모용수의 지시였으 며 비무대의 중앙에 언제 사용할지도 모를 비밀암도(비밀암도) 를 건설한 것도 그의 지시에 의해서 였다. 사공척의 처참한 말로(말로)를 보고도 그를 배반한 궁아영의 정부(정부) 노릇을 했으며 그녀와 함께 마지막 순간에 비무대 에 나타난 것도 모두 그의 지시였다. 모용수가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만약을 대비한 그의 철저한 조심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조심성이 그에게 한 가닥 살 수 있는 실날같은 기회를 제공했던 것이다. 얼마나 달려갔을까? 멀리 희미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서문금룡은 암도가 거의 끝나감을 느끼고 더욱 빨리 몸을 날 려 불빛이 흘러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암도는 곧 끝이 나고 그들은 하나의 석실(석실)속으로 들어 갔다. 석실은 크기가 사방으로 다섯 장 정도 되었으며 한 쪽에 돌 침상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탁자와 의자 몇개가 놓여져 있었 다. 탁자위에는 커다란 야명주(야명주)가 희미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한쪽 구석에는 마른 고기와 약재(약 재), 그리고 간단한 살림도구가 마련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모용수가 만약을 대비하여 준비한 것들로 그 것을 보고 서문금룡은 모용수의 선견지명(선견지명)에 새삼 감 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감탄만 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그는 급히 모용수를 돌침상위에 조심스럽게 올려 놓았다. 모용수의 얼굴은 시체처럼 창백했으며 상반신은 옆구리에서 흘러내린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서문금룡은 모용수의 맥문(맥문)을 움켜 잡았다. 한 줄기 실 날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하나 그것은 언제 꺼질지 모르게 미약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서문금룡은 황급히 모용수의 상의(상의)를 길게 찢었다. 찌익! 옷이 찢겨지며 그의 알몸이 드러났다. "으음..." 서문금룡의 낮빛이 무겁게 굳어지며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 다. 모용수의 가슴에는 시커먼 손자국 두 개가 선명하게 찍혀 있 었다. 서문금룡은 한 눈에 그것이 방문좌도의 십대장공중 서열 이 위(이위)에 올라있는 대마산수에 의한 것임을 알아보았다. "악독한 늙은이..." 서문금룡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대마산수는 하토살군 곽취봉의 독문절기였는데 곽취봉은 조 금전의 그 짧은 순간에 연달아 두 장의 대마산수를 모용수의 가슴에 작렬시켰던 것이다. 하나 더욱 위급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모용수의 왼쪽 옆구리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에 하나의 장검 이 관통당한 채 흔들거리고 있었다. 장검은 고색창연했으며 피가 잔뜩 묻어 있는데도 섬찝한 예 기를 흘리고 있었다. 천하에서 날카롭기로 세 손가락안에 든다는 궁소천의 절영검 이었다. 서문금룡은 차마 그 절영검을 뽑지 못했다. 잘못 뽑았다가는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다. 서문금룡은 한동안 모용수의 상처를 살피다가 그 상처들이 모두 자신이 손을 쓸 수 없는 위중한 것임을 알고 무거운 한숨 을 내쉬었다. 그는 품속에서 자색 빛이 감도는 영단(영단)을 꺼내 억지로 모용수의 창백한 입술을 열고 입안에 넣어 주었다. 그런 다음 양 손에 공력을 가득 돋구어 그의 몸을 추궁과혈 (추궁과혈)수법으로 주무르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안에 모용수의 차가운 피부가 느껴지자 그의 눈가 로 다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수야...수야...제발 죽지 마라...너는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 그는 소리없이 흐느끼며 계속 모용수의 혈맥을 주물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서문금룡은 지나친 공력을 소모해 자신의 내공이 급격히 바 닥을 드러냄을 알았다. 추궁과혈은 효과가 뛰어난 만큼이나 내 공의 소모 또한 막심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는 무려 세 시진이상이나 계속 추궁과혈을 해서 다 른 사람이었다면 진적에 나자빠지고 말았을 것이다. 하나 그는 손을 멈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항상 준수하고 헌앙하던 얼굴은 축축한 눈물로 흠뻑 젖 어 있었다. "수야...수야..."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며 두 눈을 감은 채 모용수의 전신을 추궁과혈하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하나의 차가운 손이 그의 얼굴에 닿았다. 그 손은 천천히 그의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서문금룡은 황급히 눈을 떴다. 모용수의 파리하면서도 힘없는 얼굴이 시야에 가득 들어왔 다. "수야!" 서문금룡은 모용수가 눈을 뜬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모용수의 눈가에도 희미한 물기가 번져 있었다. "혀....형님...저 때문에 너무 고생이 많으시군요..." 그의 음성은 금시라도 꺼질 듯 미약하기 그지 없었으나 서문 금룡의 귀에는 천하의 어떤 소리보다도 황홀하고 고귀하게만 들렸다. "사...살아났구나..." "모두 형님 덕입니다..." 서문금룡은 눈물을 훔치며 밝게 웃었다. "됐다...이제 됐다...네가 살았으니 난 이제 여한(여한)이 없다." 모용수의 창백한 얼굴에 한 줄기 감동의 빛이 스치고 지나갔 다. 하나 그는 고맙다는 소리는 끝내 하지 않았다. 그런 단순한 몇 마디의 말로 서문금룡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어찌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모용수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몸을 내려다 보았다. 그러다가 다시 서문금룡을 올려보며 힘없이 웃었다. "이번에는 저..정말 호되게 당했군요. 이 천하의 모용수가 그런 놈들에게 당하다니....정말 어이없는 일이에요." 서문금룡은 고개를 저었다. "너만 살아난다면 그 자들에게는 언제든지 복수할 수 있다. 그런 것에는 신경을 쓰지 마라." 모용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이대로는 저는 도저히 이틀 이상을 살지 못합니 다...." 서문금룡의 얼굴이 핼쓱하게 변했다. "그...그럴리가 있느냐?" "형님도 제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걸 아시지 않습니까?" "하...하지만..." 모용수의 음성은 너무도 가느다래서 서문금룡으로서도 신경 을 집중하지 않으면 제대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거...걱정하지 마십시오. 제 상처가 비록 위중하지만...저 를 살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서문금룡은 귀가 번쩍 뜨이는 모양이었다. "그가 누구냐?" "야...약성 난자림입니다." "난자림!" 서문금룡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나 이내 그의 얼굴에는 한 줄기 먹구름이 감돌았다. "난자림이라면 어쩌면 너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는 행적이 신비해서 아무도 그의 거처를 모를 뿐 아니라 성 격이 괴팍해서 친분이 두터운 사람이 아니면 결코 도와주려 하 지 않는다." 모용수의 입가에 다시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저...저는 그가 있는 곳을 알고 있습니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뿐만 아니라 저는 그로 하여금 저를 치료하게 끔 만드는 방법도 알고 있습니다." 서문금룡은 반색을 했다. "그게 무엇이냐?" 모용수는 너무 말을 많이 해서 몹시 힘이 드는 듯 이마에 식 은 땀이 가득했다. 그는 몇 차례 가쁜 숨을 몰아쉬다가 힘없는 음성으로 중얼거 리듯 말했다. "제가 그의 거처를 알려드릴테니 저를 그 자에게 데려 가십 시오. 그런 다음....그 자에게 제가 조자건의 친구라고 말하십 시오. 그러면 그는 저를 치료해 줄 겁니다." 서문금룡은 몸을 움찔했다. "조자건이라면....네가 일전에 함정에 빠뜨렸던 자가 아니 냐?" 모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너는 그를 함정에 빠뜨려서 하마터면 죽게할 뻔 했는데 난 자림이 너를 구해주려 하겠느냐?" "구...구해줄 겁니다. 저도 그를 한 번 살려줬거든요..." 서문금룡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모용수는 점차 고통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지 눈이 스르르 감겨왔다. "더...묻지 마시고 그렇게만 말씀하십시오...그러면 그 자가 저를 구해줄 겁니다..." 서문금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그렇게 하마." 그는 비록 전후사정은 자세히 몰랐으나 모용수에 대해서만은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가망없는 일을 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가 일단 그렇게 말한 이상 일은 반드시 그렇게 이루어 질 것이다. 이것은 오랜세월동안 모용수를 가까이서 지켜본 그에게 하나 의 신념(신념)같은 것이었다. 모용수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그 신념을 저버린 적이 없었 다. 이번에도 물론 그러할 것이다. 이, 일전(일전) 사마결은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심심하군." 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싱겁게 히죽 웃었다. "그를 따라갈걸 그랬나? 이거 정말 갑갑하군." 그때 그의 말을 듣기라도 했는지 돌연 방문이 벌컥 열리며 한 사람이 불쑥 들어왔다. 사마결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난데없이 들어온 침입자를 바라보았다. 기척도 없이 그의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칙칙한 흑의를 입고 체구가 건장한 청년이었다. 흑의청년은 머리를 뒤로 아무렇게나 쓸어 넘겼고 허리춤에는 녹이 잔뜩 슨 칼이 칼집도 없이 꽂혀 있었다. 사마결은 흑의청년과 눈이 마주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 르르 떨렸다. 그에게서 한 마리 야수와 같은 강렬하고 거친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귀하는 누구요?" 그는 절로 음성이 높아졌다. 흑의청년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대답 도 하지 않고 오히려 되물었다. "조자건은 어디에 있소?" 사마결은 어리둥절하여 우두커니 그를 쳐다보았다. "당신은 누군데 그를 찾는거요?" 흑의청년의 얼굴에 한 줄기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사마결은 그 미소를 보자 소름이 쭈욱 끼쳤다. 그것은 그야말로 야수적인 살기로 뭉쳐진 냉혹한 미소였던 것이다. "나는 그를 베러 왔소." 사마결은 안색이 약간 변했다. "집마부에서 왔소?" 흑의청년은 고개를 저었다. "난 그런 시렁잡배들은 모르오. 조자건은 어디에 있소?" 사마결은 마도를 석권한 집마부를 시렁잡배라고 부르는 사람 을 처음 보았다. 그는 멀거니 흑의청년을 바라보고 있다가 돌 연 히죽 웃었다. "당신은 한 발 늦었소. 그는 지금 이곳에 없소." 흑의청년의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없다고?" "그렇소. 그는 오늘 아침 일찍 이곳을 떠나갔소." "어디로 갔단 말이오?" 사마결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형산(형산)으로 갔소." 흑의청년은 다시 물었다. "그가 왜 형산으로 갔소?" 사마결은 다시 빙글빙글 웃었다. "당신이 말한 그 시렁잡배들을 때려잡으러 갔소." 흑의청년은 날카로운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집마부로 갔단 말이오?" "그렇소." 흑의청년은 그가 왜 집마부로 갔는지는 물어보지 않았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를 안 이상 그가 왜 그곳에 갔으며 그곳 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흑의청년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몸을 돌렸다. 사마결은 우두커니 서서 그의 강인한 뒷 등과 목덜미를 바라 보다가 그가 막 방문을 열고 나가려 하자 급히 불렀다. "잠깐만." 흑의청년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고 그 자리에 우뚝 섰다. 그의 전신에서 예의 그 사람으로 하여금 기가 질리도록 하는 야수적인 기운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사마결은 몸을 움찔하다가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요?" 흑의청년은 한동안 그 자리에 우뚝 서있다가 나직한 음성으 로 말했다. "위지혼(위지혼)." 이어 그는 그대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파란 하늘이 눈을 찔렀다. 위지혼은 잠시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끝없이 파란 하늘을 올 려다 보았다. '조자건. 너는 이번에도 나와 부딪치지 않았구나. 하지만 천 하가 제아무리 넓다한들 우리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될 것 이다.' 그는 한동안 묵묵히 서있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그곳을 떠 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히히힝! 요란한 말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돌연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 음이 들려왔다. 쿠르르릉! 그와 함께 그의 앞으로 하나의 마차가 나타났다. 그 마차는 그야말로 호화로움의 극치를 이루고 있었다. 마차는 모두 열 두필의 눈처럼 새하얀 백마(백마)들이 이끌 고 있었고 그 크기는 웬만한 집채를 능가할 정도였다. 게다가 전체가 거의 황금색으로 뒤덮혀 있어 보기만 해도 입 이 벌어질 만큼 호화찬란했다. 더욱 특이한 것은 마차를 끄는 마부들이 두 명의 아리따운 미녀들이라는 점이었다. 위지혼은 그 자리에 말없이 선 채 그 거대한 황금마차가 자 신의 앞으로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차는 그의 오 장 앞에 와서 멈춰섰다. 마부석에 앉은 두 명의 미녀중 오른쪽에 앉은 입가에 깨알만 한 점이 박힌 미녀가 위지혼을 바라보며 싸늘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바로 낙일도(낙일도)의 주인인가요?" 위지혼은 무표정한 눈으로 그녀를 빤히 응시했다. 그녀는 막 무어라고 쏘아 붙이려다가 그의 시선을 받자 갑자 기 안색이 창백해지며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서 한 줄기 무시무시한 기운을 느꼈던 것이다. 그녀는 그의 무서운 시선을 받자 뱀을 만난 쥐처럼 오들오들 떤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때 갑자기 그녀뒤의 자수정이 열리며 한 사람이 천천히 밖 으로 걸어나왔다. 마차밖을 나온 인물은 전신이 금빛 일색인 곤룡포를 걸친 당 당한 체구의 중년인이었다. 중년인의 부리부리한 눈에서는 횃 불같은 신광이 번뜩이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에는 하나의 고양이같이 생긴 하얀 괴수(괴수)가 빨간 눈동자를 굴리며 앉아 있었다. 그제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조아렸다. "천비가 대왕마마를 뵈옵니다." 곤룡포의 중년인은 파금궁의 궁주인 파금왕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파금왕의 오른팔위에 올라있던 하얀 색의 고양이를 닮은 괴수가 위지혼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캬아오...! 괴수는 털을 곤두세운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괴이한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파금왕은 왼손으로 괴수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그러자 괴수가 점차 얌전해지며 그의 왼손을 혓바닥으로 햐 았다. 파금왕은 시선을 돌려 위지혼을 바라보았다. "네가 요즘 강호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으며 천하제일의 살성(살성)으로 까지 불린다는 낙일도냐?" 위지혼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귀하는?" 이 세상에서 파금왕을 귀하라고 호칭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 파금왕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머금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본왕은 파금왕 정천양(정천양)이라 한다. 들어보았느냐?" 위지혼의 눈빛이 번쩍하고 빛났다. "당신이 내 뒤를 따라다닌다는 소문을 들었소." 파금왕은 빙그레 웃었다. "너는 왜 본왕이 네 뒤를 쫑았는지 아느냐?" "모르겠소." "본왕은 다른 사람에게 너의 무공을 파해하기로 약속을 했 다. 그래서 너를 만나려고 했던 것이다." 파금왕은 다른 사람에게 청부(청부)를 받았다는 말은 차마 하지 않았다. 비록 그는 사랑하는 부인인 황금왕후의 사치를 이기지 못하 고 남에게 보수를 받고 청부업을 하고 있을 지언정 엄연한 일 궁(일궁)의 주인이었다. 그러니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위해 서라도 그런 말은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위지혼 또한 그런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파금왕이 자신의 무공을 파해하기로 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눈에 이상한 빛을 번뜩였다. 그의 맹수처럼 반짝이는 눈을 보자 파금왕은 가슴 한 구석이 왠지 서늘해져왔다. '만만히 볼 놈이 아니로군.' 파금왕은 낙일도의 명성을 익히 듣고 있었다. 몇 달동안 그의 뒤를 추적하면서 그는 낙일도가 얼마나 무서 운 고수이며 그가 사용하는 도법이 얼마나 가공스러운 것인가 하는 것을 다른 누구보다도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나 그는 두렵지가 않았다. 그에게는 금마인(금마인)이란 절세의 무공이 있었으며 그는 자신의 금마인 수법에 절대적인 자신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 었다. 위지혼의 마음은 어느 새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조자건을 상대한다는 생각에 전신에 뜨거운 피가 용솟음치고 있었다. 그러다가 조자건이 없음을 알 자 그 피가 싸늘하게 식었는데 파금왕의 말을 듣는 순간 식었 던 피가 다시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강한 자와의 승부(승부)는 위지혼이 일생을 두고 추구해온 목표였다. 그는 아직 자신의 투쟁심을 극도로 유발시키는 인물을 오직 두 사람 만났을 뿐이었다. 하나는 화군악이었고 다른 하나는 조자건이었다. 그외의 다른 인물은 그의 눈에 차지 않았다. 그런데 파금왕을 만나자 그의 투쟁심(투쟁심)은 또 다시 강 하게 자극되었다. 위지혼은 말없이 파금왕의 앞으로 걸어가서 우뚝 섰다. 그 무언(무언)의 태도는 쓸데없는 말장난을 지극히 싫어하는 위지혼의 모습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파금왕 또한 말이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이미 자신의 의사를 상대에게 전달했고 상대의 대답 또 한 어떤 것인지 알았다. 그렇다면 주저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그는 등뒤에 두른 황금빛 피풍을 벗고는 위지혼을 바라본 채 몸을 우뚝 세웠다. 위지혼은 강인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지만 체구는 그리 큰 편 이 아니었다. 반면에 파금왕은 당당하고 우람한 체구를 지니고 있었다. 두 사람이 서로 이 장 간격을 사이에 두고 우뚝 서자 좋은 대조를 이루었다. 한쪽은 오랜세월동안 강호무림에 전설적인 명성을 날리고 있 는 오행신궁의 최고고수! 다른 한쪽은 혜성처럼 강호에 나타나 무림인들을 공포에 떨 게 하는 악마적인 도법의 소유자! 두 절대고수가 대치해 있자 중인들은 너무도 흥분되어 숨조 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사마결 또한 밖으로 나왔다가 이들을 보자 눈을 빛내며 두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다. 한동안 주위에는 죽음같은 침묵이 흘렀다. 바람조차 두 사람 주위를 지나가지 못하고 멈춰버린 것 같았 다. 먼저 몸을 움직인 사람은 파금왕이었다. 스읏! 그의 거구는 거의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연하게 위지혼의 옆으로 미끄러지듯 다가왔다. 동시에 그의 손이 쳐들리며 한 가닥 금빛이 중인들의 시선을 강하게 마비시켰다. 번쩍! 파금왕은 처음부터 자신의 독보적인 절기인 금마인을 전개해 낸 것이다. 위지혼의 낙일도법은 단숨에 승부를 가리는 것이기 때문에 파금왕으로서도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금왕의 금마인은 과연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위지혼이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무언가 빠르고 강력한 섬광 이 그의 코앞으로 밀어닥쳤다. 위지혼은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허리춤의 녹슨 칼을 번개같 이 뽑아서 휘둘렀다. 파앗! 무시무시한 속도로 쏘아져 오던 금빛 섬광이 반으로 갈라졌 다. 하나 위지혼은 그 경기의 여파에 못이겨 뒤로 한 걸음 물러 났다. 그의 양쪽 소맷자락은 반으로 갈라진 섬광이 스치고 지 나가며 먼지가 되어 흩날려서 그의 팔뚝이 송두리째 드러나 보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