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무협지]태극문 - 69편 (69/87)

2026-09-23 17:59:50 조회 12
텅빈 비무대위에서 모용수는 아직도 무릎을 꿇은 채 황혼(황 혼)에 길게 드리워진 자신의 그림자를 멍하니 바라다 보고 있 었다. 그는 꼬박 두 시진째 그 자리에 꼼짝도 않고 앉은 채 자신의 계획이 어디에서 틀어졌는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화군악의 무공이 제아무리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난 것 이라 해도 그는 환우멸절관을 뚫고 나올 수가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신선폐에 중독되어 내공이 급격히 감퇴되었기 때문이다. 신선폐는 마취제와 같아서 아무리 내공이 고강하거 나 백독불침(백독불침)의 고수라 할지라도 중독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화군악은 커다란 부상없이 환우멸절관을 뚫고 나와 그에게 도저히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맛보게 했다. 그의 천재적인 두뇌로 벌써 몇 시진이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 했으나 일이 어디에서 틀어진 것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 다. "어째서지...? 어째서 그가 그 안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던거 지?" 그는 독백처럼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때 문득 하나의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정말 그걸 알고 싶은가?" 모용수는 고개를 돌렸다. 언제 올라왔는지 그의 오른쪽 옆에 청수한 인상의 청의노인 하나가 우뚝 서서 그를 내려보고 있었다. 모용수는 청의노인을 올려다 보았다. "당신은 그 이유를 알고 있소?" 청의노인, 궁소천은 그에게 다가오며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 다. "물론 알고 있지. 자네는 정말 알고 싶은가?" 그는 다시 한 번 물었다. 모용수는 주저없이 고개를 끄덕였 다. "그렇소.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나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 할거요." 돌연 궁소천은 히죽 웃었다. "그렇다면 말해주지. 화군악이 화원안에서 살아나올 수 있었 던 이유는 아주 간단하네." "그게 무엇이오?" "그가 신선폐에 중독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네." 모용수는 흠칫 놀랐다. 하나 그는 곧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그럴리가 없소. 장손무기는 분명 화원에서 부채를 펼쳤었 소. 나는 그걸 확인했소." 궁소천의 눈에는 기이한 빛이 일렁거렸다. "물론 장손무기는 몇 번이고 화군악의 앞에서 부채를 펼쳤겠 지. 하지만 부채가 펼쳐졌다고 해서 그들이 꼭 중독되었으리란 법은 없네." "그렇지 않소. 장손무기의 부채는 내가 직접 신선폐를 뿌린 가짜와 바꿔치기를 했소. 일단 부채가 펼쳐지면 제아무리 대라 신선이 와도 중독을 피할 수 없소." "하지만 만일 그 부채가 바꿔지지 않았다면?" "그건 내가 직접 사람을 시켜 바꿔치기 했기 때문에 절대 틀 림이 없소." 궁소천의 입가에 야릇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네가 바꿔치기 했다고 다른 사람이 또 바꿔치기 하지 말 라는 법은 없지 않나?" 모용수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했다. 하나 그 는 절세의 천재답게 이내 그의 말뜻을 알아차리고 안색이 대변 했다. "당신의 말은 내가 장손무기의 부채를 바꿔치기한 다음 누군 가가 다시 그 부채를 원래의 것으로 바꿔치기 했다는 말이오?" "바로 그렇네. 과연 자네는 똑똑하군." 궁소천은 감탄했다는 듯 크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모용수의 낮빛은 오히려 딱딱하게 굳어졌다. "누가 대체 그런 짓을 했단 말이오?" 궁소천의 입가에 떠오른 미소가 조금 더 짙어졌다. "자네는 정말 몰라서 묻는건가?" 물론 모용수는 모를 리 없었다. 자신이 장손무기의 부채를 바꿔치기 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한 사람밖에는 없다. 그리고 장손무기의 부 채가 다시 원래의 것으로 재차 바꿔치기 당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도 한 사람뿐이다. 그는 두 눈을 번뜩이며 궁소천을 노려보았다. "그렇다면 당신이 그런 일을 했단 말이오?" 궁소천은 흔쾌히 시인을 했다. "그렇다네. 바로 노부라네." 모용수는 그를 노려보며 물었다. "당신은 왜 그런 일을 했소?" 궁소천은 껄껄 웃었다. "그래야 화군악의 손을 빌려 자네를 제거(제거)할 수 있으니 까." 모용수는 잠시 침음하다가 냉소를 날렸다. "당신 혼자의 힘으로 말이오?" 궁소천은 여전히 미소를 그치지 않았다. "평상시의 자네라면 물론 나 혼자 벅차겠지. 하지만 자네는 이미 화군악의 무형지기에 심한 내상을 입었네. 아마 자네는 지금 혼자서 일어나기도 힘에 벅찰걸. 그렇지 않나?" 모용수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확실히 궁소천이 말한대로였다. 그의 내상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해서 최소한 한 달이상은 요 양을 해야할 정도였다. 더구나 이것은 내공이나 외공에 의한 부상이 아니라 가공할 기세에 당한 것이기 때문에 심적(심적) 인 타격 또한 막대한 것이었다. 지금의 그는 도저히 남과 싸울 수 있을만한 기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모용수는 궁소천의 얼굴을 똑바로 주시했다. "물론 나는 심각한 내상을 입어서 당신 상대가 될지 모르오. 하지만 내게는 아직 당신과 함께 동귀어진(동귀어진)할 수 있 는 수법이 남아 있소. 당신이 나를 공격한다면 당신과 나는 함 께 저 세상으로 가버리게 될거요." 궁소천은 별로 당황하지 않았다. "물론 자네에게 한 수가 남았다는 것은 인정을 하네. 하지만 나외에 몇 사람이 더 자네를 공격한다면 자네의 그 수법도 물 거품이 되고 말걸세."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몇 사람의 모습이 비무대위에 나타 났다. 모용수는 그들을 둘러보다가 눈빛이 흐려졌다. 왼쪽에서 빙글빙글 미소지으며 다가오고 있는 백의청년은 그 가 구호당에 포섭한 팔호(팔호)인물인 조화무쌍혼원패 과자옥 이었고 정면에서 걸어오는 승려는 오호인 지금강 원령이었다. 원령의 옆에는 두 명의 미남미녀가 나란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궁아영과 서문금룡이었다. 모용수는 문득 등뒤에서도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돌려 보 았다.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 암담한 절망감이 떠올랐다. 그의 등뒤에는 머리에 관을 쓴 꼽추노인이 우뚝 선 채 냉혹 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호(사호)...당신까지..." 꼽추노인은 바로 하토살군 곽취봉이었다. 그는 모용수가 조직한 구호당에서 사호의 지위에 올라있는 인물이었다. 또한 모용수가 궁소천과 함께 가장 소중하게 생각 해온 인물이기도 했다. 궁소천은 모용수의 얼굴에 서린 절망감을 읽어내고는 짙은 미소를 떠올렸다. "어떤가? 이들 정도면 충분히 단 일격에 자네를 죽일 수 있 지 않겠나?" 모용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지금 그를 에워싸고 있는 여섯 명은 하나같이 당금 천하에서 내노라하는 절정고수들이었다. 그의 몸 상태로는 이들중 한 사람 조차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여섯 명의 절정고수들에게 완전히 포위되어 버렸으니 그는 결국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한단 말인가? 모용수는 나직한 탄식을 토해냈다. "나는 당신들을 서운하게 대접한 일이 없는데 왜 나를 배반 한거요?" 궁소천은 껄껄 웃었다. "하하...물론 자네는 잘못한게 없네. 있다면 노부가 남의 밑 에서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몰랐다는 점 뿐이지." 모용수는 멍하니 그를 올려다 보고 있다가 체념을 한 듯 오 히려 표정이 담담해졌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시켰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쉬웠네. 자네는 심모(심모)가 깊고 기계(기계)가 탁월하지만 행사가 너무 비밀스러워서 다른 사람 들을 두렵게 만들고 있네. 그들은 모두 자네의 천재적인 지략 은 경탄해 하지만 진정으로 자네에게 심복(심복)해 있지는 않 았네." 모용수는 천천히 자신을 에워싼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뚫어지게 주시하며 그들의 표정을 살폈다. 모용수의 시선은 그중 한 사람의 얼굴에 잠깐 더 머물러 있 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그에 대한 짙은 살기(살기)만이 감돌고 있었다. 모용수는 마침내 커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겠구료." 궁소천은 득의의 미소를 날렸다. "하하...자네의 뼈는 내가 좋은 자리에 묻어 주겠네. 자네가 그동안 힘들게 세운 구호당은 내가 접수해서 잘 사용하겠네. 그러니 편안히 눈을 감도록 하게." 모용수는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 다. 궁소천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으하하하....그럼 잘가게." 이어 그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갔다. 한데 그가 막 허리띠대신 착용하고 있던 연검(연검)을 뽑으 려는 순간, 파파파파.... 돌연 바닥에 죽은 듯 앉아 있던 모용수가 벌떡 일어나며 양 손을 질풍처럼 내갈기는 것이 아닌가? 그의 손목에서 수십 개의 고리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져 나왔 다. 궁소천은 고리눈을 부릅뜨며 호통을 내질렀다. "그깟 약은 수작에 속을줄 아느냐?" 동시에 그의 허리춤에서 하나의 시퍼런 검광이 폭죽처럼 피 어올랐다. 쾌액! 그 검광은 엄청난 속도로 모용수의 허리를 향해 폭사되었다. 다른 다섯 사람도 제각기 쌍장(쌍장)을 휘두르며 달려들었 다. 꽈르르릉....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십 여가닥의 무지막지한 경기가 모용수 한 사람을 향해서 휘몰아쳐왔다. 그것은 도저히 한 사람이 당 해낼 수 없는 가공할 위력이었다. 콰콰쾅! 모용수가 쳐낸 수십 개의 고리들이 사방으로 비산되며 그의 입에서 피분수가 폭포수처럼 뿜어나왔다. 그와 함께 궁소천이 쳐낸 일검(일검)은 그대로 그의 허리를 관통해 버렸다. "크악!" 그는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허공을 훌훌 날아갔다. 마침 그가 날아가는 방향은 서문금룡이 서 있는 위치였다. 서문금룡은 쾌재를 부른 채 수중의 장검을 뽑아들고 전력을 다해 휘둘렀다. 슈슈슈슈... 그는 이번이 자신의 이름을 날릴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자신 의 절학중 가장 뛰어난 태허구검(태허구검)중의 대천입밀(대천 입밀)을 전개했다. 대천입밀의 위력은 과연 놀라워 주위 사방이 온통 시퍼런 수 백 개의 검영으로 뒤덮혀 버렸다. 한데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모용수를 향해 휘두른 줄 알았던 서문금룡의 검영(검영)이 궁소천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퍼부어지는 것이 아닌가? 궁소천등은 모용수의 몸이 갈가리 찢겨지는 광경을 상상하고 우두커니 서있다가 그야말로 심장이 목구멍밖으로 튀어나올 정 도로 놀랐다. "앗? 이게 무슨 짓이냐?" "이런 제기랄..." 그들은 다급한 경호성을 내지르며 황급히 뒤로 몸을 날려 피 했다. 우연인지 때마침 모용수가 펼쳤다가 허공으로 튕겨졌던 고리 들이 그들의 머리위에서 우박처럼 떨어져 내려 그들은 더욱 사 력을 다해 몸을 피해야만 했다. 그 순간 서문금룡이 번개같이 피를 뿌리며 쓰러진 모용수의 몸을 안고 비무대의 중앙으로 달려가더니 어느 한 부분을 눌렀 다. 스르릉! 괴이한 음향과 함께 비무대의 중앙이 푹 꺼지며 사람 하나가 통과할 수 있을만한 구멍이 뻥 뚫렸다. 서문금룡의 몸은 비호 보다도 빨리 그 구멍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쪼...쫏아라!" 궁소천이 경악성을 날리며 구멍이 난 곳으로 날아갔다. 하나 그의 몸이 채 반도 날아가기 전, 탁! 매정하게도 구멍은 그대로 닫혀 버렸다. "에잇!" 궁소천은 분노에 찬 외침을 토하며 구멍이 있던 부위를 향해 맹렬한 일장을 날렸다. 꽝! 벼락같은 폭음이 터지며 궁소천은 눈쌀을 찌푸린 채 뒤로 정 신없이 물러났다. 바닥이 어찌나 단단한지 그의 강력한 일장으로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의 손바닥만 퉁퉁 부어 올랐다. "기관장치를 찾아봐요." 궁아영이 짧게 외치며 먼저 달려가 서문금룡이 눌렀던 장치 를 찾으려 했다. 중인들도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을 샅샅이 수색 했다. 하나 어찌된 영문인지 다섯 명의 절정고수들이 일각동안이나 뒤졌으나 비무대의 어디에도 기관장치는 커녕 그 흔적조차 보 이지 않았다. "이런 제기랄...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과자옥이 평소의 그답지 않게 욕설을 퍼부으며 눈썹을 곤두 세웠다. 그중 가장 빨리 냉정을 되찾은 사람은 지금강 원령이었다. 원령은 궁소천을 돌아보며 물었다. "이 비무대는 누가 만들었읍니까?" 궁소천의 얼굴에 쓴웃음이 떠올랐다. "바로 서문금룡이라네." 중인들의 안색이 대변했다. 궁소천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비무대를 만들때 서문금룡이 자꾸 철검백건대에서 이 일을 하겠다고 자원했네. 마침 마땅한 인물도 없었던지라 결국 서문 금룡이 철검백건대의 고수들을 이끌고 이 비무대를 만들었다 네." "그럼 그 장치는 그때 만들어진 것이로군요." "그렇네. 설마 그가 이곳에 이런 장치를 했을거라고는 상상 도 하지 못했네." 궁소천이 반쯤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하자 과자옥이 냉랭한 미소를 날렸다. "그럼 그 놈은 이런 일이 벌어질거라고 미리 예상하고 있었 단 말입니까?" 궁소천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건 노부의 짐작인데 아마도 모용수, 그 자가 만약을 대비 해서 서문금룡에게 지시를 한게 틀림없을걸세." 과자옥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이런 빌어먹을...기껏 고생고생해서 그 놈을 구석으로 몰았 는데 놓쳐 버리다니...대체 서문금룡, 그 놈이 모용수와 무슨 관계이길래 그런 짓을 했지요?" "글쎄...아마 그도 구호당의 인물인 것 같네." 궁소천은 낭패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구호당의 인물들중 삼호와 구호만은 내가 아무리 알아내려 해도 모용수가 알려주지 않았네. 아마 서문금룡은 삼호나 구 호, 둘중 한 사람이었을거네." 과자옥은 멍하니 있다가 자신도 모르게 씹어뱉듯이 말했다. "정말 못말릴 놈이로군. 이런 상태에서도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다니...어쩐지 아까 그 놈이 서문금룡을 쳐다볼 때의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니..." 궁아영이 앙칼진 음성으로 소리쳤다.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가만히 있었지요?" 과자옥은 그녀를 쳐다보며 냉소를 날렸다. "당신이 그놈옆에 착 달라 붙어 있어서 설마 그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릴 줄이야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소?" 궁아영의 고운 아미가 찌푸려지며 두 눈에서 매서운 빛이 흘 러나왔다. "당신은 지금 나를 탓하는거에요?" "그 놈을 이곳까지 데려오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거요. 누가 그 놈을 이곳까지 데려왔소?" 과자옥의 냉기어린 말에 궁아영은 얼굴이 창백하게 굳어진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문금룡을 이곳까지 데려온 사람은 물론 그녀였다. 왜냐하면 그녀는 얼마전부터 서문금룡과 뜨거운 사이가 되어 한 시라도 떨어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서문금룡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알고 그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단 말인 가? 그녀의 두 눈에서 악독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서문금룡....네 놈이 감히 나를 농락하다니...'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서문금룡을 저주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장내의 분위기가 극도로 침울해지자 궁소천이 짐짓 아무렇지 도 않은 음성으로 말했다. "설사 서문금룡이 모용수를 구해 도망갔다해도 모용수는 절 대로 살아날 수 없을걸세. 그는 이미 곽궁주의 대마산수(대마 산수)를 두 장이나 맞은데다 과소협의 혼원패에 가슴을 강타당 하고 내 절영검(절영검)에 허리가 관통당했으니 목숨을 부지하 기 어려울걸세." 중인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 좀처럼 얼굴이 펴지거나 웃는 사람이 없었다. 궁소천은 쾌활한 음성으로 재차 말했다. "만에 하나 설사 그가 살아난다 해도 폐인이나 다름없을걸 세. 게다가 구호당은 이미 우리가 접수했고 천하의 삼대세력이 우리 뒤를 받치고 있으니 제 아무리 모용수라 해도 우리를 어 쩔 수 없네." 중인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궁소천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때 과자옥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 다. "나도 당신 말을 믿고 싶소. 하지만 일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있는 이상 그의 시체를 직접 두 눈으로 보기 전에는 결코 두 발을 뻗고 잠을 잘 수가 없단 말이오." 궁소천은 말없이 그를 쳐다보았다. 과자옥의 중얼거림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 생각 을 대변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도 또한 불안했다. 하나 그것을 내색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말없는 한숨을 내쉬며 서문금룡이 모용수를 데리고 사 라진 비무대의 중앙을 원망스러운 듯 바라보았다. 모용수! 그는 과연 살아 있는가? 제44장 기사회생(기사회생) 일, 구원(구원) 그것은 하나의 처참한 시체였다. 시체는 처음에는 제법 질좋은 청의를 입었던 것 같았으나 그 옷은 이미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 다. 허리뼈가 완전히 으스러졌는지 축 바닥에 축 늘어져 있는 시 체의 모습은 마치 대장간에 널려 있는 고깃덩어리를 연상케 했 다. 또한 시체의 앞가슴은 움푹 파여 들어가 한 눈에 보기에도 가슴뼈가 송두리째 박살났음을 알 수 있었다. 기이하게도 앞가 슴부분의 옷자락에 하얗고 자그마한 손도장 같은 것이 희미하 게 새겨져 있었다. 그 손도장은 작고 귀여워서 여인의 것임을 짐작할 수 있었 다. 그때 갑자기 시체가 꿈틀거렸다. 이제보니 그것은 시체가 아니었다. 비록 미약하나마 가슴 부위가 들썩거리는 것으로 보아 엄연 히 숨을 쉬며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하나 이런 몰골로 간신히 숨만 쉬는 것을 진정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번우량은 그 처참한 몰골의 청의인을 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 쉬었다. "정말 이러고도 살아 있다니 기적같은 일이로군." 조추음은 예의 나른한 듯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번우량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불가능하오. 다른건 몰라도 등뼈가 완전히 박살이 나 서 설사 치유된다 해도 평생을 침상에 누워서 지내야 할거요." 그녀의 길다란 속눈썹이 가늘게 떨렸다. "그렇게 사느니 그는 차라리 죽는걸 더 원할 거에요." 번우량은 그답지 않게 깊은 탄식을 토해냈다. "어쩔 수 없소. 살아난 것만 해도 그에겐 큰 행운이오. 내게 마침 대환단(대환단) 두 알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 다면 그는 벌써 시체로 변해 있었을거요." "당신을 원망하는게 아니에요. 단지 하늘이 척아에게 너무도 커다란 고통을 안겨준 것 같아서 조금 슬펐어요." 번우량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지 않았다. 단지 항상 나른한 듯 하던 그녀의 눈가에 희미한 물기가 반 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번우량은 문득 그녀가 사랑스러워졌다. 가슴속의 고통을 내색하지 않은 채 슬픔을 마음속으로만 삭 이는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아울러 그녀의 차분하면서도 냉담한 목소리가 마음에 들었 다. "척아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오직 무공 밖에는 모르고 살았어요. 그의 사부는 그가 비록 천하의 기재(기재)이지만 세 상 물정에 어두워 남에게 속을 염려가 있다고 항상 걱정하셨어 요. 그래서 내가 그를 보호해 주려고 했던 것인데....결국 이 런 모습이 되고 말았어요." 그녀의 음성에는 자책하는 빛이 가득했다. 번우량은 그녀를 달래주고 싶었다. 하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칫 그녀에게 자신이 그녀를 쉽게 생각한다는 인 상을 줄 것이 염려되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와 궁아영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번우량이 솔직히 고백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번우량은 사공척이 저런 꼴이 된 것이 궁아영 때문임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모든 사정을 그에게 설명했기 때문이다.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이 쉽사리 상대 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번우량은 이런 일은 시간이 해결해 줄거라고 믿었다. 지금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체 무적검수맹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무적검수맹의 가장 촉망받는 고수가 하루아침에 폐인이 되어 나타나고, 간악하기로 유명한 하토궁의 궁주와 조화무쌍혼원패 과자옥이 그 안을 제 집 드나들듯 마음대로 출입하는 것은 대 체 무슨 일일까? 그들과 궁아영의 관계는? 그리고 그들과 모용수와의 관계는? 생각은 많았지만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 뿐이었다. 사공척과 조추음을 안전한 곳으로 보낸 후 소림외가의 고수 들을 이끌고 무적검수맹으로 잠입해 들어가는 수 밖에 없었다. 그 안에서 그들의 정체를 밝혀낸 후 건곤일척(건곤일척)의 승부를 가리는 것이 그로서는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그것만이 자신의 누명을 벗고 비명횡사한 백결대선사와 혜정 장문인의 원한을 갚을 수 있는 길이다. 아울러 사공척에 대한 복수도 될 것이다. 조추음은 의외에도 사공척과 함께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을 극구 반대했다. "나는 무적검수맹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어요. 그안은 비 록 용담호혈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곳의 지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되요. 그러니 당신은 나로 하여금 그곳으로 길안내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번우량은 별로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곳은 머지않아 강호에서 가장 흉험한 장소가 될거요. 당 신을 그런 위험한 곳으로 끌어들이고 싶지 않소." 조추음은 그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그녀다운 차분함과 여인의 성숙함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미소였다. "나는 당신의 그런 솔직함이 좋아요. 하지만 나는 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