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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지]태극문 - 65편 (65/87)

2026-09-23 17:59:50 조회 10
문득 궁소천은 생각난 듯 모용수를 바라보며 물었다. "참. 그 소식을 들었나?" "무슨 소식 말이오?" "육호에 대한 소식 말일세. 그와 그의 가문의 고수 서른 두 명이 모두 화신묘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하더군. 그 일 때 문에 이 일대가 한바탕 뒤집혀졌다네." 모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들었소." 궁소천의 낮빛은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처음 그 소식을 듣고 내 귀를 믿을 수가 없었네. 육호와 이 번에 죽은 서른 두 명의 고수는 그야말로 당문의 최정예들인데 그들이 하룻밤사이에 모두 전멸하다니 정말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일세." 모용수는 의외로 담담한 표정이었다. "나는 예상을 했소." 궁소천은 흠칫하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그렇게 될거라고 예상을 했다고?" 모용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래서 육호에게 이쪽으로 오지 말라고 했던거요. 그는 내 말을 듣지 않고 복수에 눈이 어두워 이리로 왔소. 그 래서 그런 꼴을 당한 거요." "그렇다면 그들을 살해한 것은 과연 그...." "물론 조자건이오. 그 외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소." 궁소천은 침음을 했다. "그 자의 무공이 그렇게도 대단하리라고는 생각치 않았었네. 설마하니 당문의 최절정고수 서른 세 명을 단신으로 쓰러뜨릴 줄이야..." 모용수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그려졌다. "육호는 내 말을 들었어야 했소. 그랬다면 대(대)가 끊어지 고 가문이 치욕을 당하는 일은 없었을거요." "하지만 조자건이 그렇게 무서운 인물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모용수의 음성은 나직했으나 강한 울림을 담고 있었다. "내 말을 명심하시오. 나외에 화군악을 쓰러뜨릴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은 이 넓은 천하에서도 오직 조자건, 한 사람뿐이오." 궁소천은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자네는 그를 잘 알고 있는 것 같군." 모용수는 그의 말을 보충해 주었다. "나는 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중 하나요." 궁소천은 눈을 번쩍 빛냈다. "일전에 천룡대협도 그런 말을 하더군. 자네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가?" "우리들은 서로 한 동문이었소." 궁소천은 깜짝 놀랐다. "그게 정말인가?" 모용수는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들의 장단점에 대해서 소상하게 파악 하고 있었던 거요." 궁소천은 뜻밖의 사실에 놀란 듯 잠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때 모용수가 한쪽을 힐끗 돌아보더니 희미하게 웃으며 손 을 흔들었다. "저기 당신 따님이 오는군. 그럼 공손늙은이를 잡는대로 연 락해 주시오." 이어 그는 슬쩍 신형을 날려 사라져갔다. 그의 신법은 무척 특이해서 두 발을 거의 움직이지 않았는데 도 눈깜빡할 사이에 삼 사십장을 날아 시야에서 멀어져갔다. 궁소천은 멀어지는 모용수의 뒷모습을 바라본 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때 사향냄새같은 향기가 풍기며 여인의 그윽한 음성이 들 려왔다. "일호가 무슨 일로 여기에 왔지요?" 궁소천은 고개를 돌렸다. 궁아영의 아름답고 화사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글쎄다. 자기 말로는 공손축이 화원에 설치했다는 기관매복 을 보고 싶어서 왔다고 했는데 진짜 그런지는 모르겠다." 궁소천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궁아영은 두 눈에 이채를 띄었 다. "그가 왜 갑자기 화원이 보고 싶었을까요?" "그의 마음속을 누가 알겠느냐?" 궁아영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 연 생긋 웃었다. "우리도 일호의 마음속을 알 수 없지만 일호도 우리의 마음 속은 알 수 없을 거에요." 궁소천은 정색을 했다. "그런 말은 함부로 하는게 아니다." 그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말했다. "아버님은 신중하신 것 까지는 좋은데 어떤 때는 너무 조심 스러워 하시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궁소천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이 애비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매사에 신중을 기할수 록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겠지요. 참...사호(사호)에게 연락이 왔어요." 궁소천의 눈에서 안광이 번뜩였다. "그래? 그렇게 버팅기더니 결국은 마음이 변했군." "사호는 야망이 큰 인물이기 때문에 아버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을거에요." 궁소천의 입가에 기이한 미소가 떠올랐다. "비단 야망이 클 뿐만 아니라 욕심꾸러기이기도 하지. 필시 노부마저 집어 삼키려고 할 것이다." 궁아영의 눈가에 이채가 떠올랐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는 너무도 큰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로군요." "흐음. 사호는 능히 그러고도 남을 인물이지. 어쨌든 일단 연락을 해온 이상 사호는 내 수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궁소천은 자신만만한 미소를 떠올렸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삼호(삼호)와 구호(구호)뿐이로군 요?" "그렇지. 그런데 그들이 도데체 누구인지 정체를 알 수 없으 니 그들에게 손을 쓰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호가 가르켜 주지 않던가요?" 궁소천의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 자는 꼬리를 아홉 개나 가지고 있는 늙은 여우처럼 조심 스러워서 절대로 구호당의 전모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 나도 몇 번 물어보았지만 별로 중요한 인물들이 아니라며 말하지 않 더구나." "그들이 있던 없던 계획은 차질없이 진행되겠지요?" "물론이다. 너는 이 애비가 어떤 사람인지 잊었느냐?" 궁아영은 활짝 웃었다. "물론 잊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삼일 후면 우리의 과 업도 완수되는 것이로군요?" 궁소천의 얼굴에도 득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렇지. 삼일 후면 우리는 명실상부하게 무림을 석권(석권) 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며 빙그레 웃었다. 제41장 폭풍전야(폭풍전야) 일, 준비(준비) 그들이 온 것은 막 새벽의 여명(여명)이 어렴풋이 밝아올 무 렵이었다. 쾅! 그들은 방문을 뚫고 들어와 아직 채 잠에서 깨어나지도 않은 그를 침상밖으로 끌어내렸다. "네가 초중산이냐?" 그들중 중앙에 선 인물이 냉혹한 음성으로 물었다. 초중산은 잠결에도 그들에게서 풍기는 무자비한 기운을 감지 하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그렇소만...당신들은...." 그가 채 뭐라고 하기도 전에 주먹이 날라왔다. 퍽! "쿠욱!" 초중산은 강철같은 주먹에 얼굴을 정면으로 강타당하고 입으 로 피를 뿌리며 쓰러졌다. 쓰러진 그의 몸위로 주먹과 발길질 이 우박처럼 퍼부어졌다. 그것은 무공의 무자도 모르는 그로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가혹한 것이었다. "끄응..." 마침내 초중산은 그대로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공손축은 손안에 들고 있는 편지를 바라본 채 몸을 격하게 떨고 있었다. 그의 눈은 찢어질 듯 부릅떠진 채 경악과 불신의 빛을 가득 담고 있었다. 인사말도 없이 시작된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유정의(유정의)는 죽지 않았소. 그녀는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있소. 당신이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다면 만나게 해주겠소. 한 가지 일만 해주면 되오. 그 일은 아주 간단하며 당신이나 그녀의 신상에 조금도 해가 되지 않는 것이오. 만약 당신이 이 제의를 거절한다해도 당신에게는 아무런 피 해가 가지 않소. 당신은 그저 그녀를 잊기만 하면 되는거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미 사십 년전에 그녀가 죽은 것 으로 믿고 그녀가 아직 살아있다는 따위의 말은 까맣게 잊으란 말이오. 그녀는 곧 그렇게 될테니까. 당신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겠소. 편지밑에는 하나의 서명이 있었다. 그것은 '육장홍(육장홍)의 지인(지인)'이라는 것이었다. 공손축은 그 편지의 내용과 그 밑에 있는 서명을 도저히 믿 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나 그의 불신에 찬 표정과는 달리 그의 마음은 한 가지 사 실로 인해 격동으로 요동치고 있었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이 편지와 밑에 적힌 서명은 결코 그 사실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녀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공손축의 노안(노안)은 어느 새 눈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 다. '악마(악마)에게 혼(혼)을 파는 일도 주저하지 않겠다...!' 공손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수중에 들고 있는 편지 를 힘껏 움켜 잡았다. 그것은 하나의 호화스런 부채였다. 부채의 살은 만년온옥(만년온옥)으로 만들었으며 그 수는 모 두 서른 여섯 개였다. 사용하는 천은 묘강(묘강)에서만 서식하 는 금사주왕(금사주왕)의 꼬리에서 나온 실로 짠 것이어서 휘 황찬란한 금빛을 띨 뿐만 아니라 질기기가 가히 천하제일이었 다. 게다가 부채의 전면에는 칠색봉황(칠색봉황)이 보는 이로 하 여금 절로 탄성을 내지르게 할만큼 멋지고 정교한 솜씨로 수놓 아져 있었다. 모용수는 두 눈을 반짝이며 유심한 시선으로 부채를 살펴 보 았다. 그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똑같군. 완벽해..." 그는 품속에서 하나의 약병을 꺼냈다. 약병속에는 물같이 생긴 무색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모용수는 약병의 마개를 연다음 그 안에 있는 액체를 부채위 에 부었다. 스스스... 액체는 부채에 닿자 곧 하얀 김을 내며 순식간에 증발해 버 렸다. 모용수는 꼼꼼한 손길로 부채살을 하나하나 접어나갔다. 부 채가 다 접혀지자 그는 그것을 하나의 봉지속에 넣었다. 그런다음 붓을 들고 봉지위에 깨알같은 글씨로 무어라고 썼 다. 그는 글을 다 쓰자 그것을 내려다 보며 잠시 낄낄거렸다. 그런다음 봉지를 들고 어디론가로 사라져갔다. 그날 밤. 화군악은 평소에는 좀처럼 하지 않던 일을 했다. 그는 지필묵을 꺼내 두 장의 편지를 썼다. 그는 그 편지들을 각각 한 마리씩의 전서구(전서구)의 다리 에 매어 달았다. 그런다음 전서구를 날려 보냈다. 두 마리의 전서구는 각기 반대방향으로 날아갔다. 화군악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전서구들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고 있다 가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밤 그는 유달리 깊은 잠을 잤다. 궁소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장손무기가 오늘 화군악을 찾아갈거라고 생각하나?" 모용수는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소." "왜 그렇게 확신하나?" 모용수의 입가에 빙긋 미소가 떠올랐다. "당신은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오?" 궁소천은 어리둥절하여 되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가?" "오늘은 바로 칠십 년전에 화씨세가가 혈겁을 당했던 날이 오. 그래서 매년 이 날이 되면 장손무기와 화군악은 서로 모여 서 조촐한 제사를 지내곤 하는 것이오." 궁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아! 그렇게 되었군." 모용수의 얼굴에는 그만이 지을 수 있는 특이한 미소가 떠올 랐다. "일단 그들이 만나게 되면 장손무기는 한 번이라도 부채를 펼치게 될 것이오. 그럼 그들은 영락없이 신선폐(신선폐)에 중 독되고 말 것이오." "하지만 장손무기가 부채가 바뀐 걸 알아차리지 않을까?" "그런 염려는 절대로 하지 마시오. 그건 내가 몇 번이고 직 접 확인을 했소. 장손무기가 제아무리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본 다 해도 절대로 부채가 바뀌었다는 것은 알아차리지 못할거 요." "만약 그가 부채를 한 번도 펼치지 않는다면?" 모용수는 낭랑한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과연 당신은 지나칠 정도로 꼼꼼하구료. 하지만 그 것도 기우(기우)일 뿐이오. 나는 이미 그 부채의 한쪽 끝에 여 왕벌의 정분(정분)을 살짝 묻혀 놓았소. 그곳은 화원이니 유달 리 벌들이 많을 것이오. 그러니 벌들이 그 부채로 모여들 것이 고 장손무기는 그 벌들을 쫑기 위해서라도 부채를 펼치지 않을 수 없을거요." 그제서야 궁소천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과연 자네다운 완벽한 계획이로군. 그렇다면 화군악은 중독 을 피할 수 없겠군?" "그렇소. 일단 신선폐에 중독되기만 하면 그의 내공은 쓰면 쓸수록 급격히 줄어들게 될거요. 그러니 그가 만화원에 펼쳐있 는 기관매복을 설사 뚫고 나온다 해도 그때는 이미 그의 내공 은 완전히 소멸되고난 후 일거요. 그리고 그때는..." 모용수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는 결코 나의 일격도 감당할 수 없을거요." 궁소천은 새삼 모용수의 절묘한 계략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 다. 신선폐는 몹시 특이한 것으로서 내공을 펼치기 전에는 전혀 중독된 기미를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 하나 일단 내공을 펼치 기만 하면 급속도로 독기(독기)가 발작되어 내공이 밑빠진 독 처럼 새어나가게 되고 결국에는 모든 내공이 사라지게 되는 것 이다. 이것은 인체에는 전혀 해가 없이 오직 내공만을 전문적으로 없애기 때문에 감염여부를 사전에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단 중독되면 달리 해독(해독)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내공을 사용하지 않거나 아니면 내공이 바닥나기만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군자산(군자산)과 마찬가지로 마취제의 일종이어서 엄격히 말하면 독(독)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단지 군자산이 아예 내공을 끌어올릴 수 없는 것임에 반해서 신선폐는 처음에는 괜찮다가 점차 사용할수록 내공이 줄어든다 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또한 군자산의 약효가 하루에 불과한 반면에 신선폐는 거의 한달간이나 지속되는 것이었다. 문득 궁소천은 생각난 듯 다시 물었다. "그런데 과연 공손축, 그 늙은이가 만화원의 기관매복을 발 동시키려고 하겠나?" 모용수의 입가에 냉랭한 미소가 감돌았다. "나를 믿으시오. 그 늙은이는 그러지 않을 수 없을거요." 궁소천은 의문을 참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대체 유정의라는 사람이 누구이길래 그 고집불통인 공손축 이 그토록 고분고분해졌단 말인가?" "유정의는 여자요." "그런데?" "그녀는 공손축의 전 마누라였소." 궁소천은 흠칫 놀랐다. "공손축에게 가정이 있었단 말인가?" 공손축은 지금까지 결혼을 하지 않고 평생 독신(독신)으로 늙어온 인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괴팍하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 모용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공손축은 사십 여년 전에 그녀와 결혼했었소. 하지만 그들 은 결혼한지 일 년만에 헤어지게 되었소." "그건 왜 그런가?" "공손축이 당시 천하무림을 휩쓸었던 태극문의 열풍(열풍)에 휘말려 태극문에 가입하고자 집을 뛰쳐나갔기 때문이오." 사십 년전의 그 열풍은 궁소천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때 그 열풍에 휘말린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고금무적의 고수인 태극천자 위지독고가 문파를 창립했다는 소식은 당시의 모든 무림인들의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 았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절대무공 을 배우기 위해서 태극문에 가입을 했다. 그 수는 가히 천문학적인 것이었다. 궁소천도 그때 약관의 젊은 나이에 태극문에 가입을 했으나 불과 일 년만에 탈퇴하고 말았다. 태극문의 훈련방법이 자신에 게 맞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공손축은 그때 아직 신혼(신혼)이었기 때문에 유정의는 그 를 적극적으로 말렸소. 더구나 그때 그녀는 임신한 몸이라서 더욱 그가 집을 떠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거요. 하지만 공 손축은 그녀의 만류를 뿌리치고 태극문으로 갔소. 그는 이 년 동안 태극문에 있다가 더 견디지 못하고 그곳을 박차고 나왔 소." 궁소천은 흥미있는 얼굴로 모용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 었다. "태극문을 나온 공손축은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아내인 유정 의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소. 주위사람의 말을 들은즉 그녀는 그가 떠난 후 하루하루를 눈물로 지새우다가 만삭이 다 된 몸으로 지난 해 겨울에 어디론가로 떠나버렸다는 것이었소. 그제서야 공손축은 회한(회한)의 눈물을 흘렸으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소." 모용수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때부터 공손축은 그녀를 찾기 위해 천하를 이잡듯 뒤지고 다녔으나 끝내 그녀의 행방을 찾을 수가 없었소. 그로부터 사 십 년이 흘렀지만 그에게는 그 일이 아직도 가장 가슴아프고 안타까운 기억이었소. 그러니 그녀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는 말에 어찌 그가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겠소?" 모용수는 빙긋 웃었다. "아마 그녀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그는 지옥의 불구덩으로 뛰어들라고 해도 주저하지 않을거요." "그녀는 그후 어떻게 되었나?" "그녀는 겨울에 눈속을 헤매다가 초일해(초일해)라는 나뭇꾼 에게 구원을 받았소. 허나 그때 그녀는 유산(유산)을 하고 말 았소. 그녀는 육개월후 초일해와 결혼했고 일 년후에 아들을 낳게 되었소." "아. 그렇다면...." "그렇소. 그 아들이 바로 초중산이오. 유정의는 바로 그의 어머니인 것이오." 궁소천은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일이 있었군. 그런데 자네는 그 일을 어떻게 그렇게 자세하게 알고 있나?" "공손축이 태극문에 있을때 그와 가장 가깝게 지낸 친구가 한 사람 있었소." "그가 누군가?" "육장홍(육장홍)이오." 궁소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육장홍? 무림에 그런 사람도 있었던가?" "그의 이름은 비록 아는 사람이 드물지만 그의 외호는 당신 도 들어보았을거요." 궁소천은 급히 물었다. "그의 외호가 무엇인가?" 모용수의 입가에 떠있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천기노인(천기로인)." 이, 혼검(혼검)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하늘은 끝없이 푸르렀고 두둥실 떠가는 뭉게구름은 보는 사 람의 마음을 한없이 들뜨게 만들었다. 이런 푸르른 날이라면 제아무리 마음속 고민이 많은 사람이 라 하더라도 얼마쯤 유쾌한 기분이 들 것이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공손축이 그러했다. 그는 만화원의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멀리 장손무기가 화원에서 나와 자신의 거처로 걸어가는 광 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장손무기의 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 제서야 그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왔다. 그의 안색은 음울한 빛으로 가라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모용수가 담담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란히 서 있었다. 모용수는 멀어져가는 장손무기의 손에 예의 부채가 쥐어져 있는 것을 직접 보았다. 또한 그의 날카로운 눈은 그 부채가 자신이 접었던 방식이 아닌 좀더 산만한 형태로 접혀져 있는 것도 놓치지 않았다. 그것은 곧 부채가 한 번 이상 펼쳐졌었다는 것을 뜻한다. 그의 마음은 푸른 하늘과 마찬가지로 유쾌하기 그지 없었다. 이제 공손축이 화원의 진세를 발동하기만 하면 절대로 화군 악은 이 안에서 살아나오지 못할 것이다. 설사 만에 하나 살아 나온다 해도 결코 자신을 상대할 힘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이번에야 말로 그는 사 년전 화군악의 손에 쓰러진 아버지의 복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미소를 머금은 채 공손축을 돌아보았다. "공손노인(공손로인). 이제 시작하는게 어떻겠소?" 공손축은 딱딱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약속은 지키는거요." "나는 거짓말은 하지 않소. 당신이 내 지시대로 따라준다면 잠시 후에 반드시 그녀를 만날 수 있을거요." 공손축은 모용수를 뚫어지게 쳐다보다가 납득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소. 기다리시오." 이어 그는 천천히 화원안으로 걸어들어갔다. 모용수는 그 자리에 서서 그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었다. 공손축은 화원의 한구석으로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장검을 꺼내 땅에 푹 꽂았다. 그런다음 근처에 있던 나무 두 그루를 장력을 날려 쓰러뜨렸다. 다시 반대쪽으로 가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 후 다시 화원밖 으로 걸어나왔다. 모용수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벌써 끝난거요?" 공손축은 차가운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그럼 얼마나 오래 걸릴줄 알았소?" 그는 자신의 대답이 너무 퉁명스럽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가 라앉은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원래 이곳에 설치한 기관매복은 거의 완성된 것이었소. 단 지 나무 두 그루를 양쪽에 심어서 미시(미시)에서 진시(진시) 사이에만 진세가 발동하지 않도록 억제했던 거요. 이제 그 나 무들을 없앴으니 진세는 이미 발동되었소. 미심쩍으면 직접 들 어가서 시험해 보시오." 물론 모용수는 그럴 정도로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빙긋 웃었다. "하하...공손노인의 기관매복술이 당대제일임은 나도 인정하 고 있소. 하지만 매사에 불여튼튼하자는게 나의 신조(신조)이 니 공손노인이 이해하시오." 이어 그는 슬쩍 오른손을 쳐들었다. 그러자 어디선가 세 마리의 눈같이 하얀 털을 가진 커다란 개가 나타났다. 언뜻 보기에 늑대를 연상시키는 그 개들은 백랑견(백랑견)이 었다. 백랑견은 튼튼한 몸과 빠른 발, 그리고 강한 턱을 지녀 맹수사냥을 하는데 사용하는 용맹스러운 사냥개였다. 컹! 컹! 세 마리의 백랑견은 잘 훈련된 듯 곧장 화원속으로 들어갔 다. 그들이 화원안으로 채 다섯 걸음도 달려가기 전, 고오오오.... 갑자기 화원전체에 괴이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마른 하늘에 먹구름이 밀려오는 듯 음산하고 싸늘한 기운 이었다. 동시에 질풍처럼 화원으로 들어갔던 세 마리의 백랑견이 들 어갈때보다 더욱 빠른 속도로 튕겨져 나왔다. 하나 들어갈때는 분명히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세 마리의 개 였건만 나올때는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세 개의 고깃덩어리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