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태극문 - 63편 (63/87)
조자건은 피하지 않고 그의 시선을 마주 받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언뜻 조자건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하후태세의 무뚝뚝 한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당신이 대단한 인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대단한 눈을 가진 것만은 사실이군." "내가 보기엔 당신의 눈이 더 대단한 것 같소." 잠시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빙그레 웃었다. 하후태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일 년전에 그녀를 처음 본 이후 내 자신의 모든 야망 과 무인(무인)으로서의 포부를 내던져 버렸소. 오직 그녀의 사 랑을 얻기만을 바랬지. 하지만 그녀는 나에게 관심조차 기울이 지 않았소." 그는 그답지 않게 피식 웃었다. 하나 그것은 기쁘다기 보다 는 쓸쓸한 웃음이었다. "나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나의 모든 노력을 기울 였으나 그것은 결국 부질없는 짓이 되고 말았소. 그녀는 내가 그녀의 곁에 머무는 것은 허락을 했으나 단 한 번도 내게 먼저 말을 걸거나 내게 따스한 눈길을 보낸 적이 없었소. 나는 나중 에야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다른 무엇으로 가득 차서 내가 들어갈 공간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았소." 조자건은 그녀의 마음속에 가득 찬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 다.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자신도 그녀와 똑같은 처 지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혼과 정신은 이미 무도(무도)에 팔려 있었다. 다른 무엇으로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하후태세는 무거운 탄식을 토해냈다. "결국 나는 이렇게 그녀의 곁에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으로만 만족을 해야 했소.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은 이런 나를 아녀자 의 치마폭에 휩싸인 한 마리 개가 되었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나는 결코 그들을 탓하지 않소. 어떤 때는 내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으니까 말이오. 하지만 지금은 나로서도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게 되었소. 그녀를 떠난 후의 내 인생 이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오." 그의 음성은 독백(독백)처럼 나직했다. 그런데도 조자건의 귀에는 아주 생생하게 들려왔다. 아마 그 음성에 실린 한 남자의 고뇌와 번민, 그리고 고독이 가슴에 와 닿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후태세는 문득 그를 보며 웃었다. "당신하고는 이제 겨우 두 번째 만나는데 이상한 친밀감이 드는구료. 나는 아직 어느 누구에게도 이런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소." 조자건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런 생각이 드오. 하지만 한 가지는 당신이 틀렸소." 하후태세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조자건은 그를 똑바로 주시하며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 다. "당신은 결코 개가 아니오. 당신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아 주 열정적인 사람일 뿐이오." 하후태세의 눈에서 번쩍하는 신광이 뿜어나왔다. 그는 한동안 조자건을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입가에 미소를 떠올렸다. "당신도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 말이 맞 소?" 조자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그런 것도 같군. 하지만 내 열정의 상대는 결코 그 녀가 아니오." 하후태세는 빙그레 웃었다. "그거야 상관없지. 단지 열정을 갖고 있기만 한다면 그 사람 의 인생은 타오를 수 있는거요." "뜨겁게 불타오른다는거요?" "그렇지. 바로 그렇게 되는거요."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웃었다. 비록 간단한 웃음이었으나 그들 사이에는 서로 같은 것을 공 유(공유)하는 사람들간에만 느낄 수 있는 기이한 친밀감이 형 성되었다. 그때 멀리 어둠속에서 하나의 시커먼 그림자가 나타났다. 하후태세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벌써 다 왔군. 그녀는 저 안에 있소." 조자건은 그 시커먼 그림자가 어둠속에 잠겨 있는 커다란 절 간임을 알 수 있었다. 조자건은 그 절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서하사(서하사)! 그 절은 금릉에서도 명승지로 유명한 서하사였다. 서하사는 서하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역사가 유구한 절 로서 남제(남제)의 명승인 소(소)가 창건하였다. 소는 원래 남제의 왕자인 명징군(명징군)이었는데 형제들간 의 추악한 왕권다툼에 혐오를 느끼고 속세를 떠나 중이 되었 다. 경내에는 당(당)의 고종(고종)이 명승 소를 기려 세운 명징 군비(명징군비)와 오대(오대) 남당(남당)의 고월(고월)이 건립 한 기단(기단)이 유명했다. 조자건은 서하사의 후원에 있는 은밀한 선방(선방)으로 안내 되었다. 선방으로 가는 도중 조자건은 넓다란 서하사의 구석구석에 절정고수들이 잠복해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조자건은 그들의 정체가 내심 궁금했다. 그들은 호화단의 인물들도 아니었고 소림사의 승려들도 아니 었다. 그런데도 그들의 잠복해 있는 기술과 은은히 풍겨나오는 기 운들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 무서운 고수들이 지키고 있는 서하사는 용담호혈(용담호혈)과 다를 바가 없었다. 선방으로 다가가자 조금 열린 방문 사이로 희미한 등불빛이 새어나왔다. 그 등불빛을 보자 조자건의 마음은 급격히 격앙되었다. 그는 천천히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중앙에 앉은 채 안으로 들어오는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 그들을 보자 조자건은 아련히 과거가 그리워졌다. 한동안 세 사람은 서로 마주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하고 싶은 말들이 많아 막상 입을 열려 하니 어느 말 부터 먼저 해야 할지를 몰랐다. 조자건은 마음이 나약한 사람이 아니었으나 번우량의 얼굴을 삼 년만에 보자 가슴이 뭉클해왔다. 번우량의 눈가에도 희미한 격동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삼 년 동안 번우량은 별로 변한 것 같지 않았다. 단지 달라 진 것이라고는 그의 전신에서 은연중에 풍겨나오는 어떤 위엄 이었다. 하나 그의 얼굴은 얼마전에 조자건이 먼 발치에서 보았을때 와 비교해서 약간 수척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뜨거운 눈으로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누 가 뭐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더 보고 있다가는 나 약한 모습을 비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섭보옥은 번우량의 옆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망사를 벗은 그녀의 얼굴은 등불에 비쳐 세상사람같지 않은 아름다움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녀는 정말 미치도록 아름다웠다. 그것은 조자건도 부인하 지 못했다.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은 인간의 본색(본색)이었다. 조자건은 비록 외모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부류의 인물 은 아니었으나 그녀는 겉과 속이 똑같이 완벽하게 아름다운 여 인이었다. 오늘 그녀를 다시 보게 되자 비로소 조자건은 자신이 그동안 보았던 여러 미녀들...두응향, 여소쌍, 궁아영, 조추음 등의 많은 여인들중 어느 누구도 그녀의 미모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자건은 차마 그녀의 눈빛만은 마주 보지 못했다. 그녀의 눈빛과 마주쳤다가는 도저히 자신의 마음을 억제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속에 숨은 또다른 자신을 발견한 것 같았다. 침착하고 냉정한 마음 깊숙한 곳에 숨겨진 뜨겁고 격정적인 열정을 지닌 자신을.... 그녀도 그를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녀의 옆 얼굴에 한 줄 기 애틋함이 스치고 지나갔다. 번우량의 나직한 탄식이 들려왔다. "마침내 우리들은 다시 만났군." 그렇다. 그들은 마침내 다시 만났다. 그것은 그들이 화산에서 헤어진지 실로 이년 칠개월만의 일 이었다. 이, 조마(조마) 조자건은 천천히 그들의 앞에 가서 앉았다. 그는 번우량을 쳐다보며 물었다. "어떤가?" 번우량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럭저럭 견딜만 하네. 이번에는 모용수에게 너무 호되게 당해 버렸네." "그래도 그는 약속을 지켰더군." "그래. 그는 자존심이 무척 강하기 때문에 스스로의 입으로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위인이지." 번우량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이번에는 조자건을 바라보며 물었다. "자네는 어떤가? 자네도 심상치 않은 일을 당한 것 같던데." 조자건은 양 팔을 벌려 보였다. "보다시피 이렇게 무사하네. 자네에 비하면 훨씬 양호한 셈 이지." 번우량은 피식 웃었다. "나도 몸은 멀쩡하네." "하지만 자네는 명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지. 나는 다행 히 뒤에서 욕을 얻어 먹을 정도로 심하게 당하지는 않았네." 조자건은 짐짓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번우량의 눈빛은 침울했 다. 하나 다시 입을 열었을때는 그도 어느 정도의 쾌활함을 되 찾고 있었다. "나는 이번에 명성이란 것이 얼마나 허울뿐인 빈 껍데기인지 여실히 깨달았네. 따라서 그런 명성이 훼손되었다 한들 조금도 가슴이 아프거나 아깝지 않네."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정말 다행이군.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가만히 있을 생각은 아니겠지?" 처음으로 번우량의 눈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것은 자신과 확신에 찬 미소였다. "물론 나도 모용수에게 당한 것 만큼 돌려줄 생각이네. 하지 만 그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할 일이 있네." "그것이 무엇인가?" 번우량의 눈은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속에는 강력한 살기가 내포되어 있었다. "사문(사문)을 배반한 배신자와 노조종을 살해한 흉수를 찾 아내는 것이지. 그들을 찾아내어 처단하기 전에는 모용수에 대 한 어떠한 보복도 그 의미가 없어지네." 번우량은 신의(신의)를 중요시하는 인물이었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남에게 신의를 저 버린 적이 없었다. 그런 사람일수록 자신을 배신한 사람에 대 한 증오심이 남달리 큰 법이다. "나는 몇 일동안 이번 일에 대해서 곰곰하게 생각해 보았네. 그 결과 사문에 배반자가 있지 않으면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없 다는 결론에 도달했지. 아마 노조종과 장문인을 살해한 흉수는 다른 인물일지 몰라도 사대금강중 한 사람은 반드시 그들에 동 조한 배반자임에 틀림없네." "그가 누군가?" 번우량은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기 전에는 누구인지 발설할 수 없네." 조자건은 번우량의 마음을 이해했다. 번우량은 원칙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니만큼 비록 심증(심증)이 있다해도 절대적인 확증을 잡 기 전에는 다른 사람을 배반자로 몰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그외에는?" 번우량은 조금 머뭇거렸다. 그러다가 이내 나직한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또 한 사람 의심이 가는 인물이 있네. 어쩌면 그 사람 이야말로 나를 그런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 을지도 모르지." "그가 누군가?" 번우량의 얼굴에 씁쓸한 고소가 떠올랐다. "그가 아니라 그녀일세." "여자란 말인가?" 조자건은 나직히 뇌까리더니 눈을 빛내며 번우량을 바라보았 다. "그렇다면 자네에게는 과연 여자가 있었군." 번우량의 눈에 흠칫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자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나?" "누군가에게서 자네에 대한 얘기를 들었네." "그가 누군가?" 조자건은 조금전 번우량이 했던 것과 똑같은 말을 했다. "그가 아니라 그녀일세." "그녀라니....?" "자네에게 다른 여자가 없었다면 그녀가 자네에게 관심이 있 다는 것을 몰랐을리가 없지. 그래서 나는 자네에게 따로 사귀 는 여자가 있을거라고 짐작한걸세." "그녀가 대체 누군가?" 조자건은 묘한 미소를 흘렸다. "자네가 한 번 생각해 보게. 자네 주변의 여자중에서 누가 자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 을걸세." 번우량은 그의 말을 듣고 곰곰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돌연 안광을 빛냈다. "혹시 그녀는...." 조자건은 그가 말하려는 것을 제지했다. "알았으면 됐네. 그녀는 어쩌면 조만간에 이곳으로 자네를 찾아올지 모르니 그때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 게." 번우량은 우두커니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다가 나직한 탄식을 토해냈다. "나는 정말 눈이 멀었군...나는 누가 정말 나를 사랑하고 누 가 올바른 여자인지를 전혀 판단하지 못했네." 조자건은 빙긋 웃었다. "자네는 아직 젊고 건장하니 여자의 유혹에 빠진 것도 무리 는 아니지. 단지 그걸 이용한 모용수의 계략이 탁월했을 뿐이 네." 번우량은 고소를 머금었다. "자네 말을 듣고 보니 조금 위안이 되는군." 조자건은 번우량이 착잡한 기분인 것을 보고 화제를 돌렸다. "이곳에 오면서 보니까 많은 고수들이 이곳을 지키고 있더 군. 그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외가(외가)의 고수들일세." "외가라면...소림외가 말인가?"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들은 나를 믿어 주었네. 그래서 나를 따라 이곳에 오게 된 걸세." 소림외가는 번우량을 추종하는 무리들로 이루어진 집단이었 다. 그들은 어떤 특정한 우두머리나 조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저 번우량을 흠모하고 그를 뒤따르는 고수들로 이루어져 있어 세력이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었다. 번우량은 그런 그들을 규합하여 세 개의 조직으로 나누고 그 들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인물로 우두머리를 삼아 그들을 하나 의 세력화했다. 소림외가에 포함된 고수들중에는 의외의 실력 을 지닌 자들도 상당해서 그들의 힘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거대한 것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온 천하인들이 번우량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데도 그의 무죄를 믿었고, 그를 뒤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조자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전부터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는데..." 번우량은 급히 물었다. "그게 무엇인가?" 조자건은 조용한 음성으로 뇌까리듯 말했다. "과연 모용수는 절대적인 자신이 있어서 그런 일을 한 것일 까 하는 것이네." 번우량은 조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절대적인 자신이라니?" "화군악을 상대할 자신 말일세." 조자건은 차분한 음성으로 설명했다. "자네도 알다시피 이번 무림대회의 우승자는 화군악과 겨루 게 되어 있네. 모용수가 우리 두 사람에게 함정을 파서 중도에 탈락시킨 것은 모두 자신이 우승하기 위해서인데 그는 과연 이 대회에서 우승한 후에 화군악을 물리칠 자신이 있는가 하는게 궁금했네." 번우량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아무리 모용수라도 그건 쉽지 않을걸. 아마 나름대 로의 자신은 있겠지. 하지만 화군악은 그런 자신만으로는 꺾을 수 없는 상대일세." 조자건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번우량은 다시 말을 계속했다. "더군다나 무림대회에서 그가 우승하리라는 보장도 없네. 위 불군도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거든." "위불군에 대해서 좀 알고 있나?" 번우량은 돌연 그답지 않게 히죽 웃었다. "그건 나보다 그녀에게 물어보게." 조자건은 고개를 돌려 섭보옥을 바라보았다. 섭보옥은 지금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번우량이 자신을 가리키자 그녀는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머금었다. 단지 살짝 웃기만 했는데도 조자건과 번우량은 아찔한 느낌 이 들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모두 자신의 감정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 들이었다. "사실은 그것때문에 당신을 보자고 한거에요." 그녀의 음성은 언제 들어도 사람의 마음을 매혹시키는 무언 가를 담고 있었다. 조자건은 담담해지려고 애를 썼다.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건 왜 그렇소?" 다행히 목소리가 떨리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녀 또한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 같았 다. "위불군은 조금 특이한 사람이에요. 특히 그가 사용하는 무 공이 그런데 그 점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 못하면 그에게 낭패 를 당하기가 쉽지요." "그 자의 무공은 나도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했소. 그런데 구 체적으로 어떻게 이상한지는 잘 모르겠구료." 그녀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엄밀히 따지면 특이한 것은 그 자의 무공이 아니라 그가 사 용하는 병기에요. 당신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조자건도 그 점이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위불군의 별호는 무형륜이었지만 조자건이 보는 견지에서 그 가 사용하는 것은 절대로 륜(윤)이 아니었다. "모르겠소." 조자건이 고개를 내젓자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은 혹시 조마경(조마경)이란 물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어요?" "없소. 그게 대체 무엇이오?" "조마경은 천하에서 가장 기이한 물건중의 하나에요. 그것은 엄밀히 말하면 천하무쌍(천하무쌍)의 위력을 지닌 살상병기(살 상병기)에요." 천하무쌍의 살상병기! 실로 말만 들어도 왠지 섬뜩해지는 단어였다. 섭보옥은 조마경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조마경은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거울이에요. 이 거울은 한 가지 특이한 성능이 있는데 거울 뒷면에 공력을 가하면 거 울에서 괴이한 광선(광선)이 발출되요. 그 광선은 인체에 치명 적인 것으로서 정면으로 격중당하면 심맥이 끊어져 그대로 즉 사해 버리는 가공할 위력을 담고 있어요." 조마경의 내력은 백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백 년전, 무림에는 청성연기사(청성연기사)라는 사람이 있었 다. 당시 그는 천하제일기인(천하제일기인)으로 이름이 높았는데 비단 무공의 제일가는 고수였을 뿐 아니라 연금술(연금술)에도 뛰어난 천하제일의 장인(장인)이기도 했다. 그는 오랜 세월동안 연금에 정성을 기울인 끝에 죽기 전에 두 개의 신기한 거울을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이 조마경이었다. 조마경은 남화찬(남화찬)이란 신비한 보석을 전설의 안신로 (안신로)에서 일 년동안 끓여 만든 특수한 거울이었다. 이 조마경의 뒷면에는 사람의 손가락모양의 부조가 있었는 데 이 부조에 다섯 손가락을 끼우고 공력을 일으키면 조마경의 앞면에서 괴이한 섬광이 폭사해 나온다. 그 섬광에는 보는 사람의 혼백을 그대로 앗아가는 기이한 섭 혼(섭혼)의 위력이 있을 뿐 아니라 시전하는 사람의 공력이 높 게 되면 끔찍한 살인광선(살인광선)으로도 변하게 된다. 그 살인광선의 위력은 인간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는 것이었 다. 조자건은 무거운 음성으로 물었다. "그렇다면 위불군이 사용하는 병기가 바로 조마경이란 말이 오?" "그래요. 하지만 그가 워낙 교묘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사람 들은 그것이 륜인줄로 잘못 알고 있던 거지요." 조자건은 낮게 침음했다. "만약 그렇다면 모용수가 그를 이기기도 수월하지는 않겠 군." "하지만 그는 위불군을 꺾을 방법을 알아낼 거에요." 섭보옥의 말에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림없이 그럴거요." 그들은 모용수에 대해서는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모용 수가 어떤 사람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신 조자건은 전혀 다른 것을 물어보았다. "그 청성연기사는 죽기 전에 두 개의 거울을 만들었다고 했 소?" 섭보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중 하나가 조마경이라면 다른 하나는 어떤 거요?" "그것의 이름은 수심경(수심경)이라고 해요." "수심경?" "청성연기사는 조마경을 만들었으나 그 위력이 너무 살인적 이어서 내심 그것이 악인(악인)의 손에 들어갈까봐 크게 고민 했어요. 그래서 조마경의 살인광선을 억제할 무언가를 만들어 야 겠다고 생각한 거지요. 그래서 만든 것이 수심경이에요." "그럼 수심경으로 조마경의 살인광선을 막을 수 있다는 말이 오?" 의외로 섭보옥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아무도 알 수 없어요." "그건 왜 그렇소?" "청성연기사는 비록 수심경을 만들었으나 그 위력을 실험해 보기도 전에 죽고 말았어요. 그 뒤로 조마경과 수심경은 서로 뿔뿔이 흩어져 무림에서 사라져 버렸죠. 그러니 조마경의 살인 광선을 수심경으로 과연 막을 수 있는지는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게 된 거에요." "하지만 청성연기사가 조마경을 억제할 목적으로 만들어 졌 다면 능히 조마경의 살인광선을 막을 수 있지 않겠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론상일 뿐이에요. 당년의 청성연기사 도 수심경으로 조마경을 막을 수 있을지는 장담하지 못했어요. 아마 그가 좀더 살았다면 조마경을 완벽하게 막을 수 있는 것 을 만들어 냈겠지만 그는 그럴 시간이 없었어요." 조자건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은 어떻게 그런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소?" 섭보옥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올랐다. "청성연기사가 죽고 난 후 조마경은 누가 얻었는지 모르지만 수심경은 한 명의 여고수(여고수)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그녀는 처음에는 그것이 단순한 손거울인줄로만 알았다가 그것 이 여느 거울과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그 내력을 추적하게 되 었던 거지요." 조자건은 내심 짐작이 갔다. "그럼 그 여고수가....." "바로 신수궁의 궁주이신 신수무영후(신수무영후) 수선랑(수 선낭)이에요. 그 분은 제게 의모(의모)가 되세요." 신수무영후 수선랑에 대한 소문은 조자건도 익히 들어서 알 고 있었다. 그녀는 이십 년전만 해도 누구나가 인정하는 천하제일미인 (천하제일미인)이었다. 신수궁은 대대로 여인들로만 이루어져 내려오는 집단이었는 데 수선랑은 신수궁의 역대궁주들 중에서도 그 미모와 무공이 가히 독보적(독보적)인 여인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무림고수들이 그녀의 얼굴을 한 번이라도 보기 위해 신수궁으로 몰래 잠입해 들어갔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