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무협지]태극문 - 56편 (56/87)

2026-09-23 17:59:50 조회 6
오백 여명의 소림문하들이 변복(변복)을 하고 숭산(숭산)을 내려왔으며 그들의 목적은 오직 천룡대협을 척살(척살)하는 것 뿐이라는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갔다. 천하의 어딜 가나 두 사람만 모이면 천룡대협에 대한 이야기 로 시끌벅적했다. 많은 사람들이 천룡대협을 희대(희대)의 사기꾼이라고 욕했 다. 또 다른 사람들은 그가 소림의 신공을 연마하다가 머리가 돌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그에게서 직접 사실을 듣기 전에는 아 무 것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그리고 소림외가(소림외가)에서는 그에 대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조자건이 그 소문을 들은 것은 아침 식사를 막 끝낸 후였다. 밖에서 소식을 줏어 듣고 부리나케 달려온 사마결이 핏대를 세우며 떠들어 댔으나 의외로 조자건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오히려 자기 일처럼 잔뜩 흥분해 있던 사마결이 맥이 풀릴 지경이었다. "어떤 때는 당신을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소." 자신이 아무리 떠들어도 조자건이 별반 표정이 없자 사마결 은 툴툴거리며 말을 내뱉었다. "당신은 어제까지만 해도 그렇게 걱정하더니 막상 일이 이렇 게 악화되었는데 오히려 태연자약하니 어떻게 된거요?" 조자건은 아무 대꾸도 없이 빙그레 웃기만 했다. 사마결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런 음성이 되었다. "그렇게 웃지만 말고 대답해 보시오. 당신은 정말 천룡대협 이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생각하오?" 그제서야 조자건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오." "그럼 그는 왜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지 않고 말없이 사라진 거요?" 조자건의 대답은 막힘이 없었다. "무죄를 증명할 수가 없었겠지."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당신이 말한대로 그렇게 떳떳한 인물이라면 어째서 자 신이 무죄라는 것을 입증하지 못한단 말이오?" "때로는 알면서도 행할 수 없을 때가 있는 법이오." 사마결은 어이가 없는지 히죽 웃었다. "정말 공자님 같은 말만 하는구료. 그가 정녕 자신의 무죄를 입증할 수 없다면 결국 평생 그 너울을 뒤집어 쓰고 살아야 할 텐데 당신은 그게 걱정도 되지 않소?" 조자건의 얼굴은 여전히 평온했다. "진실이란 주머니속의 송곳과 같아서 언제까지나 숨길 수는 없는 거요. 시간이 지나면 그가 나서서 말하지 않아도 그의 무 죄가 증명될거요." "당신의 말은 그럴듯 하군. 하지만 궁소천이나 사대금강의 언행(언행)을 보건데 그들은 천룡대협이 백결대선사와 소림장 문인을 살해한 흉수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소. 그들의 확신 을 깨기란 아마 쉽지 않을거요." "확신이란 절대적인 것이 아니오. 증거의 개연성(개연성)이 란 상대적인 것이어서 상황에 따라서는 같은 일을 가지고도 보 는 관점에 따라서 전혀 상반된 의견이 나올 수도 있소. 그들의 확신이란 것도 따지고 보면 상황을 너무 일방적인 측면으로만 보기 때문일 것이오." 사마결은 그의 말을 반박하려 했으나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 자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것 참...당신과 이야기를 하면 내가 꼭 바보가 된 것같은 기분이 든단 말이오." 조자건은 담담하게 웃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사마결은 한동안 우두커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자건을 바 라보며 입을 열었다. "당신 말은 천룡대협이 무죄일 것이라는 믿음을 전제로 하는 것 같은데 내 말이 맞소?" "그렇소." "그렇게 믿는 무슨 이유라도 있소?" 이번에는 조자건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러다가 입을 열었을때 그의 입에서는 나직하면서도 단호한 음성이 흘러 나왔다. "그건 내가 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오. 그는 절대로 그런 일을 할 인물이 아니오." 그 음성에는 어떤 절대적인 믿음과 신뢰의 빛이 담겨 있었 다. 사마결은 솔직히 조자건에게 그런 절대적인 신뢰를 받고 있 는 천룡대협이 부러워졌다. 아울러 번우량이란 인간에 대해 짙 은 호기심이 일어났다. 그는 천룡대협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그를 직접 만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사람이오?" 조자건은 언제나처럼 자신있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그에 대해서 나는 두 가지 점만은 확신할 수 있소." "그게 무엇이오?" "그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소."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에서도 말이오?" 조자건은 고개를 끄덕였다. "설사 그게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다 할지라도 그는 거짓 말을 하지 않소." 사마결은 다시 물었다. "다른 한 가지는 뭐요?" "그는 절대로 자신을 믿는 사람을 배반하지 않소." 조자건은 번우량에 대해 단지 두 가지만 말했을 뿐이다. 그 런데도 사마결은 번우량이란 인간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또한 더욱 더 그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어디서 그를 만날 수 있단 말인가? 사마결은 혹시나하여 조자건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고 있소?" 실망스럽게도 조자건은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짐작가는 곳이라도 없소?" "없소." 사마결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도 당신은 별로 걱정하는 것 같지 않구료?" 그말에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가 살아있기만 한다면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요." 사마결은 그의 유유자적한 대답에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이 었다. 하나 그때 문득 그의 마음속으로 한 가지 의문이 스치고 지 나갔다. 혹시 조자건은 비록 번우량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지 만 누가 그를 데려갔는지는 알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그는 번우량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누가 번우량을 데려 갔단 말인가? 그리고 조자건은 그가 누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르자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 어졌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속시원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없 었다. 사마결은 이런 의문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길은 한 가지 밖 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조자건을 계속 따라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번우량을 만날 것 이고 그때 비로소 그는 이 모든 의문에 대한 해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번우량이 눈을 떴을 때 가장 먼저 따가운 아침 햇살이 그의 눈을 찔렀다. 번우량은 몇 번 눈을 깜짝거린 후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위 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하나의 아담한 규방(규방)이었다. 사방의 벽에는 비록 호화롭지는 않지만 고아한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크고 작은 소품들이 모양새 좋게 걸려 있었고, 방 전 체에서는 심신을 상쾌하게 하는 그윽한 향기가 배어 있었다. 그가 누워 있는 곳은 휘장이 쳐진 침상이었는데 여인이 쓰던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번우량이 침상에서 일어났을 때 한 사람이 안으로 조용히 들 어왔다. 그 사람은 머리에 망사를 쓴 궁장여인이었다. 그녀를 보자 번우량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당신이었구료." 궁장망사녀는 망사속으로 그윽하게 웃었다. "내가 아니면 누가 그곳에서 당신을 빼내올 수 있었겠어요?" 번우량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사실이었다. 무적검수맹의 고수들의 철통같은 포위망을 뚫고 들어가 궁소 천과 사대금강이 두 눈을 뻔히 뜨고 있는 와중에 단숨에 열 군 데의 촛불을 모두 끄고, 숨 한 번 내쉬기도 어려운 짧은 순간 에 원령을 쓰러뜨린 후, 다시 번우량의 몸을 이끌고 그곳을 벗 어날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오직 그녀뿐일 것이다. 그녀는 천하에서 가장 빠른 신법(신법)의 소유자일 뿐 아니 라 단 일수(일수)에 열 두개의 암기를 발출할 수 있는 천하제 일의 암기(암기)의 고수였다. 게다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기도 했다. 신주홍안! 모든 강호인들이 꿈속에서라도 한 번 만나기를 원한다는 신 주홍안을 앞에 두고도 번우량의 얼굴은 딱딱하게 경직된 채 풀 어질 줄을 몰랐다. 그는 문득 장탄식을 토해냈다. "당신은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했소?" 신주홍안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는 짓이 아니에요. 당신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나서는 안되는 사람이에요." 번우량의 얼굴에 작은 경련이 일어났다. "하지만 나는....더 이상 살아갈 의욕을 잃어 버렸소." 망사너머로 비치는 그녀의 눈빛이 유달리 영롱하게 반짝거렸 다. "당신은 백결대선사와 혜정장문인을 살해한 진짜 흉수가 누 구인지 알고 싶지 않나요? 그 흉수를 찾아 내어 그들의 복수를 하고 싶지 않나요?" 그녀의 말을 듣자 번우량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격하게 떨 렸다. 그는 번쩍 고개를 쳐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신광이 줄기줄기 폭사되어 나 왔다. "당신은 누가 흉수인지 알고 있소?" 신주홍안은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몰라요. 하지만 알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그가 누구요?" 신주홍안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 다. "어제밤에 한 사람이 나를 찾아 왔어요. 그는 당신이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며 나 외에는 당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이 없 다고 했어요." 번우량은 자신도 모르게 목청이 높아졌다. "그가 대체 누구요?" "모용수(모용수)." 그 이름을 듣자 번우량의 얼굴에 갑자기 어떤 표정이 떠올랐 다. 그것은 밤새 길을 잃고 헤매던 어린 아이가 새벽이 되어서야 올바른 길을 찾았을때의 모습같기도 했고, 악몽에서 깨어나 보 니 외간남자가 자신의 배 위에 올라타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젊 은 아낙네의 표정같기도 했다. 또 어찌보면 오랜 세월동안 고민해오던 노승이 득도(득도)하 여 깨달음을 얻었을때의 모습인 듯도 했다. "그래...모용수로군...맞아! 그 밖에는 없지...그 외에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는 넋두리를 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내가 왜 그를 생각하지 못했지....?" 그가 머리를 움켜쥐며 고통스런 표정이 되자 신주홍안은 부 드러운 음성으로 그를 위로했다. "당신은 그렇게 자책할 필요가 없어요. 모용수가 개입한 일 이라면 당신이 아니라 천하의 누구라도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 을 거에요." "하지만 나는...."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당신이라고 전지전능(전지전능)할 수 는 없어요." 번우량은 아직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왜 나를...." "글쎄요. 정상적으로 겨루면 당신에게 승산이 없다고 생각한 걸까요?" "그럼 그가 노조종과 혜정사숙을 살해한 것일까?" 신주홍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닐거에요. 당신도 그의 성격을 알잖아요. 그는 자신 의 손에 피를 묻히는걸 몹시 싫어해요. 틀림없이 다른 하수인 이 있었을거에요." 번우량은 차츰 안정을 찾았다. 그는 한동안 바닥을 응시하고 있다가 나직한 한숨을 토해냈 다. "정말 우습군. 소림에서 나왔을때 나는 이제 천하에 나의 적 수는 화군악 뿐이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그의 근처에도 가보지 못하고 이런 꼴이 되고 말았군." "그건 당신 실력이 모자라서가 아니에요." 번우량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이것도 모두 실력부족이오. 무림에서의 일은 무공 이 삼(삼)이고 머리가 칠(칠)인데 나는 머리를 쓰는 것에서 절 대적으로 취약했던 것이오." 그의 음성에는 쓸쓸한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당신은 언제고 그에게 설욕할 기회가 있을거에요." 번우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주홍안은 그가 냉정을 되찾은 것을 보자 소매에서 하나의 밀봉된 봉투를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게 뭐요?" 번우량이 봉투를 받으며 묻자 그녀는 조용한 음성으로 말했 다. "모용수가 당신에게 전하라고 한 거에요." 번우량은 눈을 번득이며 황급히 봉투를 찢었다. 봉투속에는 하얀 백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번우량은 그 글을 읽다가 돌연 미친 듯한 광소(광소)를 터뜨 렸다. "우하하하...!" 그는 허리를 구부리며 정신없이 웃었다. 그의 손가락 사이에 있던 백지가 바닥에 흘러내리며 그 위에 적힌 글이 드러났다. 백지위에는 짤막한 문장 하나가 적혀 있을 뿐이었다. 나는 당신을 한 번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지켰소. 이, 여 심 무림대회의 결선오차전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끝이 났다. 천룡대협과 천기일환의 대결은 천룡대협이 사라져 버리는 바 람에 천기일환이 싸우지도 않고 올라갔고, 중인들이 관심을 가 지고 있던 두번째 대결인 무형륜 위불군과 구환도 철독행의 대 결마저 철독행이 출전(출전)하지 않음으로서 위불군의 승리로 끝이 났다. 누구도 철독행이 무슨 이유때문에 출전을 포기했는지 알지 못했다. 대체 철독행은 힘들게 사강전까지 올라와서 왜 최후의 순간 에 스스로 물러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의혹을 느꼈지만 철독행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무림대회의 우승자는 천기일환 과 무형륜 위불군의 대결로 판가름나게 되었다. 결승전(결승전)은 이틀 후 정오에 열리기로 확정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우내십대기문병기중에서도 일이위를 다투는 절세의 고수들이어서 불꽃튀는 승부가 예상되었다. 하나 누가 승리하든 무림대회의 흥미가 크게 줄어든 것은 사 실이었다. 그날 저녁. 조자건은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방문을 받았다. 조자건이 저녁식사를 한 후 침상에 누워 있을 때 밖에서 문 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 똑! 조자건은 침상에서 일어나 앉았다. "들어 오시오."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며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조자건을 보자 방긋 웃었다. "뜻밖인가요?" 조자건은 솔직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이 나를 찾아올줄은 몰랐소." 그 사람은 고운 아미를 살짝 찌푸렸다. "그 말은 꼭 내가 와서는 안된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조자건의 얼굴에 고소가 떠올랐다. "일부러 시비를 걸고 싶었으면 주변에도 상대가 많았을텐데 굳이 나한테까지 올 필요는 없지 않소?" 그녀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쳤다. "흥! 내가 당신이 보고 싶어서 온 줄 알았다면 그건 당신의 큰 착각이에요. 난 당신에게 물어볼게 있어서 들린 것 뿐이라 고요." 조자건은 피식 웃었다. "나도 그쯤은 알고 있소. 나같이 얼굴이 두껍고 비겁한 졸장 부에게 무얼 물어보려는거요?" 그녀는 사공척의 여동생인 사공릉이었다. 사공릉은 왠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당신은 혹시...오빠와 비무를 하기로 약속하지 않았나요?" 조자건은 눈을 반짝 빛내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건 무엇때문에 묻는거요?" "묻는 말에만 대답해요. 당신은 오빠와 겨루기로 했어요, 하 지 않았어요?" 조자건은 실소(실소)를 금치 못했다. "정말 막무가내로군. 난데없이 불쑥 찾아와서 그런걸 물어 보다니..." 그녀는 예의 톡톡 튀는 음성으로 앙칼지게 소리쳤다. "빨리 말해요. 했어요, 안했어요?" "아직 하지 않았소." 그녀의 얼굴에 한 줄기 안도의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하 나 다음 순간 그녀는 안색이 변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직 이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은 언젠가는 오빠와 비무를 하겠다는 말이에요?" "그렇소." "왜죠? 왜 당신은 오빠와 꼭 비무를 하려고 하는거죠?" 조자건은 초조한 표정으로 물어보는 사공릉의 얼굴을 주시하 고 있다가 조용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당신 오빠가 그걸 원하고 있기 때문이오." 그녀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오빠가 원하고 있다고요?" "그렇소. 그리고 나도 그걸 피할 생각은 없소." "오빠가 왜...." "그건 당신의 오빠와 나, 두 사람 다 무도를 추구하는 무인 (무인)들이기 때문이오." 그녀는 알쏭달쏭한 표정이었다. 그녀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최고의 무도를 위해서 무인혼(무인혼)을 불사르는 무인들의 세계를 아직 나이어린 그녀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는 골똘히 생각에 잠긴 표정이다가 어린 소녀답지 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 조이모가 당신과 오빠가 비무를 할 것이며 그렇게 되 면 둘중 한 사람은 반드시 부러지고 말 거라고 말했을때 나는 반신반의했었어요. 하지만 혹시나 하는 심정에서 당신에게 확 인해 보고 싶었어요." 그녀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오빠는 무척 외로운 사람이에요.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 람도 없고 여자도 오직 아영언니외에는 눈에 두고 있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데도 유독 오빠는 당신에게만은 많은 관심을 기울 였어요." 조자건은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오빠가 당신을 친구로 삼고 싶은가 보다하고 생각했어요. 당신도 오빠를 특별히 싫어하는 것 같지 않길래 나는 속으로 두 사람이 사귀면 서로 좋은 친구가 될수 있을거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배꽃같은 얼굴에는 안타까운 표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당신들은 서로가 검을 겨눈 채 상대를 쓰러뜨릴 궁 리만 하고 있었군요." 조자건은 담담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들은 처음 만났을때 부터 서로가 좋은 적수(적수)임을 알아차렸소. 그때부터 나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와 손속을 겨루 어야 한다는걸 깨달았소." 이번에는 사공릉이 입을 다문 채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당신은 그가 외로운 사람이라고 했지만 그는 결코 외로운 사람이 아니오. 그에게는 항상 그의 곁에 지켜서서 그와 함께 동고동락을 같이 하고 말벗이 되어 주는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 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불쑥 물었다. "그게 무엇인가요?" "바로 검(검)이오. 검이야 말로 그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이 고 연인(연인)이며 또한 분신(분신)이오. 검과 함께 있는 한 그는 결코 외롭지 않소." 그녀는 안색이 변한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싸늘한 코웃 음을 쳤다. "흥! 당신은 그와 적수라면서 그에 대해 잘도 알고 있는 것 처럼 말하는군요." 조자건은 빙그레 웃었다. "원래 좋은 적수란 좋은 친구와 같아서 상대에 대해 많은걸 이해할 수 있는 법이오." 그녀는 귀여운 코끝을 쫑긋거렸다. "그렇게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다면서 굳이 꼭 싸워야 되겠 어요?" "어쩔 수 없소. 무도의 길을 걸을 때부터 우리들은 그런 운 명(운명)을 가지게 된 것이오. 좋은 상대를 만나면 꼭 승부를 내야만 하는 ..." 그녀는 눈가를 실룩거리다가 빽 소리를 질렀다. "그런 운명론(운명론)따윈 듣고 싶지 않아요!" 조자건은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쩌겠소. 그게 사실인걸." 그녀는 갑자기 살기등등해진 채 등뒤에 메고 있던 쌍검을 뽑 아들었다. "당신이 진정 오빠와 겨뤄야 한다면 그 전에 내가 먼저 당신 을 죽여버리겠어요." 차창! 좁은 방안에 날카로운 검광이 번뜩이며 살기가 충천했다. 하나 조자건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당신이 이런다고 달라지는건 아무 것도 없소. 당신 오빠도 결코 그걸 바라지 않을거요." 그녀의 얼굴이 핼쓱해진 채 몸에 가느다란 경련이 일어났다. 그녀는 양손에 검을 든 채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돌연 울 음을 터뜨리며 문밖으로 달려나갔다. "흑흑...나쁜 자식...." 그녀는 구슬픈 울음소리를 남긴 채 밖으로 사라졌다. 하나 조자건은 떠나기 직전 그녀가 그를 바라볼 때의 그 눈빛을 잊 을 수가 없었다. 그녀의 눈물방울 가득한 커다란 눈에 고여있는 유정(유정)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진주같은 소녀의 눈물과 유정어 린 눈동자가 잠시 그의 뇌리를 어지럽혔다. 하나 그때 방문이 열리며 다시 한 사람이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 들어온 사람도 여자였다. 그것도 보기만 해도 아찔할 것같은 절세의 미녀였다. 그녀는 들어오자마자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과연 릉매도 당신의 마음을 돌리지는 못했군요." 들어온 사람은 궁아영이었다. 조자건은 그녀를 보고 담담하게 물었다. "당신도 나를 설득하러 왔소?" 의외에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나 사공가가(사공가가)같은 사람들은 결코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걸 알아요. 그래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우리들이 어떤 사람들이오?" 그녀의 음성은 옥구슬이 굴러가는 듯 영롱해서 듣는 사람으 로 하여금 시원하고 청량한 느낌을 갖게 만들었다. "당신들은 모두 장부(장부)들이에요. 진정한 장부라면 결코 자신이 품은 뜻을 중도에 꺾지 않을 거에요." 조자건은 빙긋 웃었다. "그 말은 칭찬처럼 들리는구료." 그녀의 입가에도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조이모는 당신들이 아주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너무나 개성이 강해서 그것이 충돌하면 어느 한 쪽이 부러지고 말 거라고 했어요." "사공릉도 조금전에 그런 말을 하더군." "그래서 조이모는 당신들의 강한 개성을 붙들어 둘수 없다면 차라리 그 개성이 마음껏 격돌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른다고 말했어요." 조자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또 왜 그렇소?" "강한 개성이 충돌하면 물론 불똥이 튀겠지만 그 불똥이 상 대를 비추고 나를 비추면 당신들은 서로를 좀더 자세히 볼 수 있을거에요." 조자건의 눈빛이 번쩍 빛났다. "그건 무슨 뜻이오?" 궁아영은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