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28편 (28/36)

2026-09-22 08:27:13 조회 28
무류흔은 웃으며 말했다. "소수환녀와 혈편신이었다. 하나 이들은 꼭꼭 숨어서 머리카락도 안 비쳐 나머지 십육 인은 찾을 수가 없었다." "바로 그거야. 독불장군은 없는 법이지. 너를 받쳐줄 수족들이 필요해. 그들이 세상을 샅샅이 뒤지고 너는 없애기만 하면 되는 거야." 추상이 말했다. "그런 인재들이 어디 흔한가요?" 금적해는 신비롭게 웃었다. 웃으며 그는 말했다. "내가 한 군데 알고 있어. 그곳에 있는 놈들이야말로 이 일의 적임자들이지……." 제 23 장 효웅(梟雄)의 야심(野心) -------------------------------- 내가 필요한 자들은 그리 많은 수가 아니었다. 십인 안팎, 그것이면 충분했다. 중원 남북을 단숨에 꿰뚫을 수 있는 기동력……, 추적, 미행, 교란의 달인들, 이들은 모두……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명령해도 팥을 삶으면서 어떤 모양의 메주를 원하느냐고 물어오는 자들이어야 했다. 그런 동일과 단결력이 없이는 이 일은 불가능했다. 나의 적들은 너무 강한 자들이었으니까……. * * * 낙양 (洛陽), 이 천고의 고도에도 예로부터 기이한 곳이 하나 있었다. 낙양 에서도 가장 허름한 빈민가, 옆에 사방이 온통 냄새나고 지저분하고 더러운 판자집으로 둘러싸인 한 개의 성채(城寨), 그 성안의 사람들은 세인들을 악인방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필요악의 장소였다. 이곳엔 창녀굴, 도박장, 환락의 술집이 있었으며…… 일백을 헤아리는 그런 집을 끼고 근 천 명이 넘는 악인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점쟁이, 광대, 포주, 도둑 등의 온갖 직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하나, 이들이 악인이라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었다. 그들의 증거인멸 수법은 가히 신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낙양 에 거지부터 지부대인(支釜大人)까지 한번씩 안 가본 사람이 없을 정도의 명소인 악인방, 온갖 쾌락과 부도덕과 거짓의 대명사인 악인방. 햇살도 어스름한 어느 늦겨울 하루 악인방으로 들어서는 진흙탕 길엔 세사람이 긴 그림자를 끌고 나타났다. 범용(梵用), 화약제조술의 달인인 그는 닷세동안 계속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술에서 깨어난 지 겨우 반 각 만에 취국의 불사방(不死幇)에 투신하기로 결심했다. 나이 서른여섯, 진주언가권 (晋州言家拳) 출신의 그는 늘씬한 키의 중년인이었다. 그는 금적해의 제안을 듣자마자 그것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사실 그는 취국이 지금까지 행한 큰 싸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제까지 삼십삼겁이란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들어 낸 환상일 따름이라고 생각해 왔었다. "아니, 그럼 삼십삼겁이라는 게 정말 있단 말이오?" 이것은 그가 제안을 받고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따라서 그가 불사방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것은 무슨 사명감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최근까지 부호의 집에 경비를 서주는 호위(護衛武士)의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한데 어느 날, 갑자기 창녀이던 아내가 그를 버리고 달아났고 그래서 그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직업도 버린 채 거의 두달 동안 술이나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무력감, 이것이 그의 불사방 투신의 동기였다. 범용은 화약을 다루는 솜씨를 금적해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또한 그 동안 자신을 지배해 온 무력감을 때려부수기 위해 자기의 집을 제물로 내놓았다. "빚쟁이들이 이 집을 빼앗으러 오기로 했단 말이오. 그놈들의 더러운 낯짝 앞에서 터뜨리려고 미리 준비해 두었었소." 무류흔은 범용의 기술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는 이 사람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과거 황궁에서 황금수인(黃金手人)이란 별호로 불리고 있었으며 무림에 큰 분규 때도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으로 이름나 있었다. 불사방에 투신하는 대가로 범용은 황금천냥을 받았다. 도백(賭白), 이 사람은 악인방의 한 도박장에서 찾아졌다. 무류흔 등이 그 도박장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의 반 나체의 여자들이 술과 골패를 들고 바쁘게 오가는 모습이 제일 먼저 눈에 띄었다. 도백은 그 곳에서 장방(帳房)을 맡아보고 있었다. 배교 (拜敎) 출신인 그는 작은 체구였지만 조무래기 건달패와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의 육체는 온통 근육으로 뭉쳐져 있어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는 병기 주조술의 명인이었다. 이십 년 전, 사천 당가(四川唐家)와 진주 배교 (晋州拜敎)의 큰 싸움이 있을 때였다. 사천 당가의 고수들은 그들이 자랑하는 암기 로 대공세를 펴 왔었다. 그때 그는 자신이 만든 도륜(刀輪)이란 암기 로 당가의 고수들을 스무 명이나 죽였다. 만약 술 중독이 아니었다면 그는 지금 암기 의 제 일인자로 명성을 날리고 있을 것이다. "술병은 고칠 수 있어." 도백은 주의 깊게 불사방에 대한 얘기를 경청하였다. 삼십삼겁이란 말이 나올 때마다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러다, 금적해가 황금 천 냥 을 내놓자 그것을 움켜잡으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아닌 게 아니라 소생도 이 생활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소!" 모사일(毛邪一), 그는 추적의 전문가이자 경공 의 달인이었다. 그는 십 년 전, 원나라와의 추격전에서 그 신기를 유감없이 발휘한 인물이었다. 몽고 의 군사들은 숨고 또 숨어도 그들을 기어코 찾아내는 모사일의 재간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원나라 군사 속을 종횡무진 누비며 제 일급의 전공(戰功)을 올렸다. 만약 역적의 자식이라고 몰리지만 않았더라도 그는 지금 대명병부(大明兵部)의 손 꼽히는 무장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추상은 이 사람을 알고 있었다. 과거 그녀의 아버지 추대장군은 몇 번이고 이 모사일의 이름을 입에 올렸던 것이다. -- 추적, 미행, 탐지의 제 일인자는 바로 모사일이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드는 주루에 근무하고 있던 모사일은 진작부터 취국과 삼십삼겁의 결을 소문으로 알고 있었다. 한 호젓한 방에 안내되기 무섭게 그는 그 자리에 넙죽 엎드리며 무류흔을 향해 대례를 올렸다. "취국대협님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소생은 은근히 대협의 이름을 흠모하고 혹시나 소생의 솜씨가 쓸모있을까 상상도 해보았습니다. 십 년 동안 술손님 꽁무니만 쫓고 있었던 소생이오. 넓은 천하로 나가고 싶소!" 세 사람, 화약제조술의 달인 범용, 병기주조술의 명인 도백, 추적의 달인 모사일,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세 기인(奇人), 이들을 찾아낸 것은 큰 수확이었다. 무류흔 등은 또한 이 세 기인을 추종하던 무리 십여 명을 데리고 삼십일후장으로 돌아왔다. 추상의 수하이며 과거, 황궁의 무장들이던 이기, 육천 등도 이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무류흔의 또 하나의 정녀(情女)인 곡운(谷雲)과…… 그 와중에서 이 대열에 우연히 합류하게 된 늙고 젊은 거지 주육신개와 신풍미걸(神風美乞)의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천하 유랑민과 거지들의 대단체인 개방 의 두 고수인 이들은, 악인방으로 우연히 들어왔다가 금적해의 얘기를 엿듣고는 그 즉시 무류흔의 수하를 자처하고 나섰던 것다. "취국은 온 천하 선의 최후보루이오! 그분을 돕는다는 것은 무인의 자랑이오!" 주육신개는 개방 오장로의 일 인이요, 신풍미걸은 그의 유일한 제자였다. 어쨌든, 이날 삼십일후장의 금적해의 처소에는 푸짐한 잔치가 벌어졌다. 그는 두 번째 방의 정체인 주방을 활짝 열고 사람들을 대접했다. 중인들은 그의 주방 규모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지하 삼층으로 이루어진 그 주방에는 백 인이 일 년 동안 먹고도 남을 음식이 저장돼 있었던 것이다. * * * 혈편장(血鞭莊), 이곳은 삼십삼겁의 일 인인 혈편신 갈유종의 거처였다. 이 검은 하늘의 이름에 누가 감히 도전을 할까마는 혈편장에선 요 며칠 들어 기이한 일이 연속으로 터지고 있었다. 그 최초 발단은, 혈편심 갈유종의 아버지인 갈위의 방에서부터 비롯되었다. 갈위는 분명히 평온한 잠을 자고 있었다. 한데, 아침에 일어나니 온 방안의 물건이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이 증발해 버리고 없었다. 희귀한 서역 (西域)의 금불상을 비롯하여, 하다못해 갈위의 곰방대며 흑포까지도 모조리 다 없어졌던 것이다. 또한, 갈위의 베개는 한 자루의 단검 이 꽂혀 있었고 그 끝에는 하나의 쪽지가 매달려 있었으니……. <당신의 똑똑한 아들은 어디로 숨었는가? 그 친구 혼자서 갈씨가문의 망신을 다 시키고 있구려.> 혈편신의 부친인 갈위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그런 그를 비웃기라도 하듯 다음 날 밤에는 아녀자들의 방에 있는 물건들이 모조리 없어졌으며, 그 다음 날은 식량과 가재도구 등이 모조리 바닥이 나버렸다.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소용없었다. 감쪽같이 물건이 없어지고 난 뒤엔 한 장의 쪽지. 뿐인가? 나흘째 되던 날부터 장원의 이곳 저곳이 마구 무너지기 시작했다. 꽝! 정문이 날아가고…… 꾸꽝! 가산(假山)이 일시에 무너졌으며…… 쿠쿠쿵! 창고와 헛간이 잿더미로 변했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자는 동안 그 방이 터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보장하겠는가? 하인들은 도망가고 시녀들은 달아났다. 위세당당하던 혈편장은 순식간에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다. "알겠소? 난리란 말이오!" 개의 조그만 소축(小築), 혈편신 갈유종은 날벼락 같은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내 부모님은 지금 이 추운 겨울에 이불 한 장 없이 쫄쫄 굶으며 들판에 나 앉아 계시오! 거기다가 또 이 쪽지들을 보란 말이오!" 소수환녀 능연은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우유부단한 갈유종이 저토록 화내는 것을 처음 보았다. 이 일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이미 이곳에서 지난 두 달 동안 잘 피해 있었어요. 조금만 더 참으면 되는데 그걸 못 참는단 말이에요?" "그 조금만이 이미 두 달이오! 또 두 달이 지나지 않는다고 누가 보장하오? 그 동안 나의 부모님은 백골로 변해 있을 것이오?" "그러나…… 유종, 이 일은 취국의 함정일지도……." "취국! 취국! 그놈의 취국! 나는 갈가(葛家)의 명예를 걸고 그 놈의 주리를 틀고 말겠소!" 흥분한 자는 앞뒤를 가리지 않는 법이다. 세상에 보이는 게 없는 법이다. 갈유종이 그랬다. 그는 무섭게 내뱉자마자 홱 몸을 돌렸다. "당신이 가지 않겠다면 혼자라도 가겠소!" 소수환녀 능연은 다급히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의 몸을 껴안으며 볼에다 입을 맞추고 조용히 속삭였다. "제발……, 당신이 그러시니 내가 살피고 오겠어요. 올 때까지만 조용히 있어줘요. 네?" "이번이 마지막이오!" "그래요. 여보……." 이 여보란 말에 갈유종의 화난 기색은 반이나 풀렸다. * * * 어둠 속에서…… 흰 여체가 옷을 벗었다. 만지면 분가루라도 묻어날 듯 하얗고 달콤한 이 여체는 이내 이불을 들추고 이불 안으로 스르르 들어섰다. 철제는 우악스럽게 이 여체를 다루었다. 그의 강철 같은 손은 으스러져라고 여체를 쥐어뜯었으며 그의 남성은 보다 거칠게 능연의 속을 파고들었다. 끈적한 정욕의 바람, 물고 뜯고 할퀴는 한차례의 열풍이 지난 후, 능연은 철제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속삭였다. "도대체…… 취국은 언제 죽여줄 거죠……?" "아직 때가 안됐어." "무슨 때……?" "넌 몰라도 된다." 능연은 몸을 교태롭게 뒤틀며 말했다. "그런 말투는 싫어. 혹시…… 혈편장에 대해서 알고 계시나요?" "혈편신의……?" "그래요. 그곳에서 요즘 괴사(怪事)가 벌어지고 있다는데……." 철제는 차갑게 웃었다. "내가 보고 있는 천하다. 그런 애송이의 일은 몰라……." 능연은 더 물어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교구(嬌軀)를 일으켰다. "알았어요……. 그럼 다음에……." 능연의 몸이 방 밖으로 사라지고 나자 철제는 가면 같은 얼굴을 창밖으로 던졌다. 어둠. 문득, 한 줄기 유성이 어둠을 가르고 지났다. 순간, 유성은 밤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가 되었다. "저 유성이 바로 취국이다. 유성이 밤하늘을 어지럽히듯 취국도 세상을 계속 흔들어 줘야해……. 태평시대는 안 되지……. 혼란과 혼란 속에서 당분간 나와 취국은 공존한다. 그리고 때가 되었을 때……, 흐흐…… 취국은 죽고 나는 산다……." * * * "이 도둑은 아마 미친 자가 아니면 그와 비슷한 처지에 이른 위인일 거예요. 여자의 속옷까지 훔쳐 가다니……." 바람부는 언덕, 두 사람이 폐허가 되다시피 한 혈편장의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갈유종과 능연이었다. 갈유종은 분노로 온몸의 모발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고, 능연은 부서진 기와 조각을 주워들고 무엇인가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때다. 돌연, 갈유종의 두 시선이 번뜩 빛을 발했다. "저…… 자……!" 능연이 바라본 곳엔 한 회의인(灰衣人)이 어정쩡거리며 이쪽을 힐끗거리고 있었다. 그는 갈유종이 날벼락처럼 몸을 날려오자 황급히 몸을 돌려 도망가기 시작했다. "거기 서랏!" 능연은 미친 듯이 회의인을 쫓고 있는 갈유종을 바라보며 탄식을 터뜨렸다. "저 바보……."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할 수 없다는 듯 번쩍 몸을 날렸다. 자신의 옆으로 따라붙는 능연을 바라보며 갈유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범인은 바로 저놈이야. 흉수들은 자신의 범죄 현장에 와 보고 싶어하거든?" 기이하도록 빠른 회의인의 신법 (身法)을 힐끗 보고 난 능연은 어두운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몰라요……." 능연은 한 가닥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회의인의 신법 은 지나치게 빨랐다. 삼십삼겁을 능가하는 신법 을 지닌 자가 한낱 도둑이랴? 그녀는 갈수록 불길한 예감이 짙어지는 것을 느꼈다. 이때, 그들의 시선 속으로 하나의 다리가 쏘아왔다. 조양교(朝陽橋)란 이름의 그 돌다리 위엔 한 대의 마차가 서 있었다. 회의인은 그 마차 속으로 바람처럼 뛰어들었다. 두두두……. 마차는 앞으로 마구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하나, 갈유종은 그보다 한걸음 더 빨랐다. 그는 공중에서 장풍을 흩뿌려 말을 즉사시킨 다음, 급정거 하는 마차의 문 옆으로 휙 내려섰다. "핫하……. 쥐새끼가 독 속으로 숨었구나!" 그는 마차의 문고리를 잡았다. 능연이 미친 듯 교갈을 터뜨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조심해요!" 갈유종은 그녀쪽을 힐끗 바라본 다음 득의한 심정으로 문을 왈칵 열었다. 발칵! 안, 어두웠다. 그리고 한 사람, 어둠 탓으로 잘 분간할 수 없으나…… 그의 손엔 한 송이 영롱한 취국이 들려 있었다. 갈유종의 두 눈이 부릅떠지고 모발이 곤두섰다. "취……." 그러나, 그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갈유종은 목에 꽂힌 한 자루 검을 부여안고 주춤 뒤로 물러났다. 휘익! 능연이 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의 몸을 다급히 부축했다. "여보!" "능연……, 도망해라……. 취…… 국……." 오오…… 능연은 순간, 자신이 이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다. 그것은 무서운 충격이었다. "대…… 가……." 가슴이 찢어지고…… 하늘이 무너져 내렸다. 사랑! 사랑이라니……? 그녀의 시선 속으로 한 사람의 모습이 쏘아져 들어왔다. 긴 머리를 바람결에 휘날리며…… 한 송이 취국을 손에 든 얼음조각 같은 사내……. "아아악----!" 능연은 미친 듯이 그를 향해 덮쳐갔다. 사내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덮쳐오는 능연을 바라본 그의 시선은 무표정했다. 악인들도 사랑을 하나 보다. 살고……, 사랑하며……, 그들도 속삭일 줄 아나 보다…… 그러나. "악인은 죽어야 한다……." 그는 가장 훌륭한 살수 였다. 그는 이 살업이 한 순간 살인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느 무표정하게 손가락 끝에 집약시킨 공력을 발출했다. 슈욱---! 픽---! 피……, 이마에 사발만한 구멍이 뚫린 채…… 능연은 신불맞은 멧돼지처럼 펄쩍 뛰어 오르더니 쓰러졌다. 이어, 그녀는 사력을 다해 쓰러진 갈유종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스윽…… 슥……. 보기 안타까울 정도로, 회개하듯 처절하게 그의 옆으로 기어간 그녀는 갈유종의 한 손을 꼬옥 부여잡으며 배시시 웃었다. "그 동안…… 미안했어요. 사랑…… 해요……, 여보……." 웃음은 아름다웠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꼭 얽힌 두 손 위로 한 송이 취국이 뚝 떨어져 내렸다. * * * 돌풍! 충격! 三月 四日, 제삼십일겁(第三十一劫) 혈조신마(血爪神魔) 양백수, 화산 (華山) 천운봉(天雲峯)에서 피살. 三月 九日, 제이십육겁(第二十六劫) 건곤마존(乾坤魔尊) 필진평(筆眞平), 귀주 (貴州) 귀양(貴陽)에서 격살. 三月 三十日, 제십오겁(第十五劫) 파풍유룡(破風遊龍) 상관공(上官公), 광서 (廣西) 대명산(大明山)에서 피살. 三月 三十日, 제십일겁(第十一劫) 미염옥랑 나화운(羅花雲), 강서 (江西) 파양호 에서 투신자살. 四月 五日, 제십칠겁(第十七劫) 천마귀후(天魔鬼侯) 황웅관(黃雄關), 절강 (浙江) 괄창산(括蒼山)에서 격살. 五月 三日, 제구겁(第九劫) 악여래(惡如來) 금천영(琴天英), 광동 (廣東) 구룡산(九龍山)에서 피살. 여섯! 여섯 개의 검은 하늘이 석 달 사이에 죽어갔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사람들은 경악했다. 이들 육 인은 전혀 세상에 알려져 있지 않던 자들이었다. 심산유곡, 한처(閑處)에 은거하던 자들이었다. 그러나 그 입김은 오히려 드러나 있던 자들보다 더더욱 무서운 자들이었다. 하나 하나 쓰러져 간다. 피묻은 취국을 끌어 안고 악마들은 쓰러져 가고 있었다. 작년 봄에서 가을 사이에 다섯, 동굴 살인축제에서 아홉, 작년 겨울 셋, 올 봄부터 여름 사이 여섯! 도합 이십삼 인, 남아 있는 검은 하늘은 불과 십 인이었다. 사람들은 믿었다. 이들 또한 그들의 동료들처럼 쓰러져 갈 것이라고, 결코 오래지 않아 무림은 삼십삼겁의 긴 겨울을 끝내고 평화의 봄을 맞으리라고! 불사(不死)----! 불사취국(不死翠菊)----! 선(善)의 심판자여----! 그대에게 영광 있으라----! 때는 오월하고도 하순, 여름은 저 멀리서 손짓하고 있었다. 그 푸른 녹음의 계절은 마치 무림의 미래를 축복해 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때의 사천 천불사당 팻말은 불과 백 일 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으아악----!" 한 사람, 제팔겁(第八劫) 패황신도(覇皇神刀) 마중견(馬重堅), 그가 피를 쏟으며 그는 허무하게 무너져 가고 있었다. 순간, 범용(梵用), 모사일(毛邪一)을 비롯한 불사방의 고수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환호를 내질렀다. "해냈다!" 또 하나의 쾌거, 五月 三日 악여래(惡如來) 이후 보름 만의 쾌거였다. 불사방의 일원으로서…… 무림제일종(武林第一從)이라 칭송받고 있는 모사일은 씩 웃었다. "어때? 나는 이자를 찾기 위해 보름 동안 신발을 다섯 켤레나 바꿔 신었다구." 범용은 점점 웃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핫하…… 추귀(追鬼)야. 네 그 알량한 자랑은 이 악마의 소굴부터 부수어 놓고 다시 얘기하자." 쿠쾅! 콰르르……. 패황신도 마중견의 장원은 한줌 잿더미가 되고 있었다. 그 동안 여기저기서 합세하여 일기당천의 세력으로 불어난 불사당의 고수들은 패황신도의 졸개들을 모조리 도륙하고 난 뒤였다. 추상은 웃으며 무류흔에게 다가섰다. "최고였어요. 당신의 무예는 이제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예요. 도대체 그 무궁무진한 장력은 어디서 나오는 거죠?" 이때다. 웃으며 말을 잇던 그녀의 안색이 돌연 싹 변했다. "당신…… 왜 그래요?" 무류흔, 그의 얼굴은 지금 얼음처럼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그는 힘없이 추상을 향해 웃어 보였다. "모르겠다……, 갑자기 어지럽군……." 쨍그랑! 자청신검(紫靑神劍),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이 무적의 신검(神劍)이 무력하게 떨어져 내렸다. 사람들의 놀란 시선을 끌어안고 그의 신형은 추상의 품으로 푹 쓰러졌다. "류흔----!" "이유를 알 수 없어요. 패황신도는 이이의 단 일검에 쓰러졌어요. 이이는 부상을 입을 틈도 없었단 말이에요." 한 개의 아름다운 방, 금적해가 삼십일후장 내에 무류흔을 위해 새로 지어놓은 거처였다. 하나의 인공호수 위에 떠 있으며…… 구름 같은 운교(雲橋)로 땅과 이어지고, 호수 주위에는 취국이 만발한 아름다운 거처였다. 방안엔 지금 금적해와 추상이 있었다. 무류흔은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의문의 혼수상태, 벌써 사흘째였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심지어는 눈 한번 뜨지 않고 저 모양이에요. 이게 도대체 어찌된 거죠?" 금적해는 탄식을 터뜨렸다. "난다, 긴다하는 의생들조차 모르겠다는 병이다. 한 가지 짚이는 것은…… 저 녀석은 도가 지나칠 정도로 강했어. 삼십삼겁들이 일초(一招)를 넘기지 못했어. 모조리 다…… 나는 이것을 인간의 힘이라고 생각지 않아." "그게 어쨌다는 거죠?" 금적해는 우울한 표저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인간이 인간의 한계를 얻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 이유가 바로 저 괴이한 병의 원인이다. 지금 우리가 할 일은……." "……." "고작…… 저 녀석의 병을 대외로 발설하지 않는 것뿐이다……." 추상은 눈물을 글썽이며 침상으로 다가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