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24편 (24/36)

2026-09-22 08:27:13 조회 28
그것이 사람이 살아간다는 의미일 수도 있네. 친구, 나의 검이 자네를 찌른 것은 그러한 바탕이 있어서일세. 나는 이 사실을 비로소 확연히 깨달았네. 잘 가게나……. * * * 툭! 세 사람, 일성검왕 단목천궁, 냉판관 항자명, 만음요희 양추련의 앞으로 느닷없이 떨어져 내린 것은 하나의 닭구이였다. 순간, 무기력하던 세 사람의 시선이 번쩍 빛을 발했다. 도대체 얼마의 시간이 걸린 걸까? 알 수 없었다. 동혈은 이미 막혀 있었고 세 사람은 죽음 같은 어둠 속에서 이미 아득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이다. 사실, 시간의 흐름 따위는 어쨌든 좋았다. 중요한 것은 배고픔이었다. 굶주림, 아아! 무서운 고통이여……. 이 하늘 아래 가장 무서운 고통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세 사람은 서슴없이 말할 것이다. 굶주림! 바로 굶주림이라고……. 배가 고프니 모든 것은 무기력했다. 동굴을 나가야 한다거나 무엇을 해 보겠다는 의지 따위는 이미 사라진 지 오래…… 다만, 굶주림과 끝 없는 공포만이 그들의 정신과 육체를 한없이 괴롭히고 있었다. 그런데 닭구이라니……, 씹기만 해도 녹아버릴 듯 부드러워 보이는 저 살이라니……. 일성검왕과 냉판관의 손이 동시에 닭고기를 향했다가 주춤 멈췄다. 그들이 시선이 허공에서 불꽃 튀듯 얽혔다. 한 사람이 먹어도 모자를 분량이다. 먹음직스런 닭고기는 두 사람의 손 사이에서 파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순간, 두 사람은 분명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이 닭고기는 바로 취국이 그들을 이간질시키기 위해 던져 놓은 것임을……. 그러나 그런 것까지 미루어 생각하기에는 우선 육체의 굶주림이 너무 절박했다. '저것은 나 혼자 먹어야 한다!' 일성검왕과 냉판관은 느릿하게 서로의 눈을 쏘아보며 몸을 일으켰다. 일측즉발의 위기가 장내에 팽만해졌다. 만음요희는 긴장된 눈길로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자다. 자연, 체력적으로 남자를 따르지 못한다. 그녀는 자신이 취해야 할 행동을 빠르게 생각해 보았다. 두 사람 중 하나, 누구든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의 살 길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양쪽으로 빠르게 구르기 시작했다. 일성검왕의 얼굴과 냉판관의 얼굴…… 일성검왕의 검과 냉판관의 쌍필(雙筆), 쌍방이 지니고 있는 장점과 단점이 빠르게 그녀의 뇌리 속에서 교차했다. 무공을 배우던 시절과 무림에서의 활동, 그리고 미래, 한 순간 여인의 본능은 결정을 내렸다. 그녀는 조용히 몸을 일으켰다. 팽팽히 대치하고 있던 두 사람이 그녀를 힐끗 바라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그녀가 어느쪽으로 가세해 줄 것인가? 만음요희의 꽃신을 신은 발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은 긴박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삶과 죽음의 교차점이었으므로……. 꽃신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신과 신발의 임자는 말없이 일성검왕의 옆으로 가 섰다. 일성검왕의 얼굴에 웃음이 떠오른 것과 냉판관의 표정이 시체처럼 창백해진 것은 거의 동시의 일, 순간 냉판관은 짐승 같은 울부짖음을 터뜨리며 닭고기를 향해 덮쳐들었다. 슈파앗! 광채, 그의 손은 끝내 닭고기를 집지 못하고 말았다. 그 손은 정확히 반으로 잘려 나갔으며, 손에 이어 머리와 몸이 수박처럼 갈라져 버렸다. "으아악----!" 일성검왕은 닭고기를 들고 오만한 표정으로 만음요희를 바라보았다. 만음요희는 세상에서 가장 다소곳한 요조숙녀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이 굶주린 사내의 비위를 맞추지 못한다면 돌아오는 것은 닭고기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을……. 일성검왕은 흡족하게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는 닭고기의 가장 여린 부분을 혀로 쓰윽 핥으며 자신의 발을 쑤욱 내밀었다. "핥아." 만음요희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신발을 벗겨 내기 무섭게 입술을 그의 발에다 갖다댔다. 이어, 곧 발바닥을 예민하게 핥기 시작했다. 일성검왕은 대소를 터뜨렸다. "핫하……." 그는 닭고기의 계륵 부분을 떼어 만음요희의 앞으로 툭 던져주었다. 계륵, 보기에는 먹음직스러워도 가장 먹을 것이 없는 부분이다. 하나 만음요희는 감지덕지하다는 듯 그것을 두 손으로 감아 안고는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그녀는 아예 뼈까지 마구 씹어대고 있었다. 그 충실한 연기 탓으로 그녀는 나중에 약간의 살고기를 조금 더 얻을 수 있었다. 이윽고, 한 마리의 닭고기가 게눈 감추듯 없어지고 나자 만음요희는 조용히 일어나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는 일성검왕의 타는 듯한 시선을 본 것이다. 적이 지켜보고 있건 말건 두 사람에겐 아득히 먼 문제였다. 그들은 닭고기에 삶을 걸었듯 이번에는 끈끈한 정욕에 모든 것을 내던지기 시작했다. 탐스러운 여인의 둔부가 눈앞에 자태를 드러내자 일성검왕은 미친 듯 그것을 끌어안았다. "하아……." 여인의 손은 날이 선 과도 같았다. 그것은 익숙하게 껍질을 벗겨 내리듯 단숨에 사내의 옷을 끌어내렸다. 몸과 몸이 겹치고…… 숨막히는 교성(嬌聲)과 사나운 신음이 동혈 속을 메아리치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그림자가 조용히 한쪽에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 그는 말없이 엉켜 있는 두 나신을 바라보더니 묵묵히 몸을 돌렸다. "사냥은…… 끝났다……." 그의 그림자가 동굴 밖으로 천천히 사라져갔다. 두 나신은 격렬했다. 그들은 미칠 듯 부딪치고 얼키더니, 일순 사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정의 쾌감이 그렇게 만든 것이다. 여인은 밑에 누운 채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까지의 뜨겁던 교성의 임자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싸늘한 시선. 그 시선에 답하기라도 하듯 사내는 또다시 몸을 주르르 떨었다. 그러나 이번의 떨림은 아까와는 틀렸다. 그는 부릅떠진 두 눈을 밑의 만음요희에게 던졌다. "네년이…… 채양보음대법(採陽補陰大法)…… 을……?" 오오…… 채양보음대법! 남자의 양기를 빨아들여 공력을 늘이는 사공(邪功)이 아닌가? 여자는 큰 내공 을 얻게 되고 사내는 피골이 상접하여 죽게 되는 이것! 일성검왕의 피부가 급속도로 푸들푸들 해져갔다. 그는 입술 새로 주르르 핏물을 내쏟으며 사력을 다해 만음요희의 머리채를 나꿔챘다. "깔깔…… 네 몸에 힘이 남아 있겠니? 나 요희를 얕본 자들은 다 이렇게 죽는단다. 못된 아이야." 그러나 그녀의 말은 다 이어지지 않았다. 우드득---. 머리가 목 속으로 파묻히는 사람이 말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다운 옥용(玉容)에 떠오른 공포의 기색! "흐흐…… 혼자는…… 못 죽어……." 우득---. 우드득---. 잠시 후, 동굴에는 두 구의 시체가 썰렁하게 남게 되었다. 하나는 껍데기만 남은 채 칠공(七孔)에서 피를 토하고 죽은 남자, 또 하나는 머리가 목 속으로 파묻혀 버린 여자……. 글쎄, 애초에 한 마리의 닭을 셋이 나란히 나누어 먹었다면 이들은 좀더 오래 살 수 있었을 것이다. 또 그때에 어떤 기적이 벌어져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죽은 자는…… 일체의 말이 없다. 슈우욱! 막 동굴을 나서던 무류흔에게 쏘아온 것은 섬뜩한 세 자루의 검이었다. 뜻밖의 일이었으나 무류흔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금나수 (擒拿手)로 하나의 검을 채어 두 개의 검을 막은 뒤 허공을 박차고 오르며 두 사람을 걷어찼다. 이어, 나머지 한 명의 몸도 한 발길 걷어차 버리니……. 마치 애초에 대본이라도 꾸며 놓은 듯 완벽한 동작, 사뿐히 옆으로 떨어져 내리는 그의 시선 속으로 건너편 벼랑 위에 도도히 선 세 인영이 보였다. 바로 소수환녀 능연, 혈편신 갈유증, 혈선공 냉자기의 삼 인이 아닌가? 무류흔을 보자 혈선공 냉자기는 대소를 터뜨렸다. "핫하……, 당신은 과연 취국이었군. 이제 어디로 갈 텐가?" 무류흔은 일견하는 순간 사내를 파악해 냈다. 삼 인 외에도 그 위로는 수백의 무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햇살 아래 번뜩이는 창검의 날들……, 격돌은 명호했다. 건너편으로 건너 간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것, 그렇다면? 무류흔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핫하……." 낭랑한 대소를 터뜨리며 그는 백 길 벼랑 아래로 몸을 날렸다. 시커먼 파도가 용솟음치는 그 속으로……. 죽음 속에서 배운 두 번째 교훈. 一, 彼强自保 達危順奪. 저편이 강하면 스스로 보충하고…… 위태롭게 되면 과감히 버린다……. "저…… 저런……! 혈편신이 안타깝다는 듯한 외침에 냉자기는 씨익 웃었다." "위도 죽고 아래도 죽소……, 갈형은 혹시 해전(海戰)에 가장 능한 자들이 누구인지 아시오?" 소수환녀 능연이 생긋 웃으며 말을 받았다. "한 사람이 한 개의 개를 대적한다는 사해천용방(四海天龍幇)의 친구들이 아닌가요?" "핫하…… 그렇소. 저 파도 속에는 무서운 수인(水人)들이 천명이나 우글거리고 있소……." 그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제 곧 불사취국(不死翠菊)의 시체를 보게 되는 행운아들이 될 것이요." 무류흔은 잠에서 깨어났다. 햇빛이 눈부셨다. 어깨가 마치 악마가 춤을 추고 있는 듯 화끈거렸다. 눈앞에는 곡운의 맑은 눈동자가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무류흔이 눈을 뜨자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늘 어깨에 화살을 하나씩 매달고 오시더군요. 이번 화살은 너무 커서 뽑기 힘들었어요. 당신은 활쏘는 사람들 하고만 싸우는 가요?" 무류흔은 어깨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좌측 어깨에 횐 비단이 곱게 감겨 있었고 통증은 그곳으로부터 오는 것이었다.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물귀신들이었지. 천 명쯤 됐을 거야. 하마터면 나도 물귀신이 될 뻔했지. 그런데 나는 어떻게 이곳까지 왔지?" 곡운은 목을 숙이며 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배 아래서 저를 부르고는 정신을 잃었어요. 생각 안나세요?" "워낙 진드기 같은 자들이라……, 죽여도 죽여도 한이 없었지. 난 힘이 빠지고 고통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었어." 곡운은 그의 이마를 살짝이 짚어 보더니 탄성을 터뜨렸다. "열이 다 내렸어요. 정말 당신은 강철 같은 사람이군요. 어제는 그 이마에 날달걀을 올려 놓으면 그냥 쩌버릴 것 같았어요." 곡운의 눈자 위에는 눈물 흔적이 있었다. 무류흔은 씩 웃으며 그녀의 팔을 잡아 끌었다. 곡운은 그의 다친 어깨를 건드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의 옆에 누워 얼굴을 그의 얼굴에 갖다대고는 조용히 속삭였다. "정말……, 엄청난 일을 해내셨군요……. 세상이 온통 떠들썩한 것을 알아요……?" "왜?" "취국, 이 이름 때문이에요……. 이 이름은 이제 무림의 영웅이요, 신화가 되었어요……. 누구든 당신을 얘기하고 누구든 당신을 엄지손가락으로 꼽아요……." 여인의 손가락이 무류흔의 가슴을 살짝살짝 건드리고 있었다. 무류흔은 다치지 않은 팔로 힘껏 껴안았다. 문득, 가슴 깊숙한 곳으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너는…… 해냈다……. "취국을 보고 사람들은 말해요. 그는 검은 신화에 의연히 도전한 가장 인간다운 사람이라고요. 그들은 이제 당신을 이해하고 당신에게 찬사를 보내고 있어요." 무류흔은 담담하게 웃었다. "남자란 어떤 관념을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야……." 곡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무류흔의 목에 두 팔을 감고는 힘주어 끌어안았다. 그녀의 두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왜 울지?" "당신 같은 사람에게 안겨 있어서 그런가 봐요…… 류혼" "음?" "이젠 혼자 싸우는 건 그만 하세요……." 무류흔의 시선이 그녀를 향했다. "무슨 뜻이지?" "세상에 독불장군이란 없어요……. 당신은 그 동안 혼자 힘으로 잘해 내셨지만 동지들을 구하세요. 당신의 신념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을 거예요." "안돼." "왜죠?"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야. 그것도 끊임없이 죽여야해. 상처는 나 혼자로 충분해." "왜 혼자 그런 것을 다 희생하는 거죠? 당신 자신의 삶은 없나요? 당신도 당신자신을 위해 무슨 일인가 해 볼 수는 없나요?" 곡운의 큰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정인(情人)은 세상의 악과 혼자 싸우고 그 고통마저 혼자 가지려 한다. 이 생각만 하면 그녀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 "제발……." 무류흔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씨익 웃으며 그녀의 작은 볼을 감싸 주었다. "널 사랑하고 있다……. 이 한 가지 사실만 가지고도 나는 내 자신을 위해 가장 큰 일을 한 거야……." 그가 팔을 당기자 곡운의 몸은 스르르 딸려 들어왔다. "그러나 네 생각은 참고해 보도록 하지……." 정녀(情女)의 입술만큼 달콤한 것이 또 있을까? 무류흔은 그녀를 안기 위해 두 팔을 다 뻗다가 다친 왼쪽 어깨가 시큰한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상관 않고 곡운의 부드러운 몸을 지그시 파고들었다. 제 20 장 천하제일지(天下第一智)와 천하제일의(天下第一醫) -------------------------------------------------------- 한편, 이곳은 심저(深底)의 신비지대인 무저빙궁(無底氷宮). 천 년의 신비를 끌어안고 지내온 이 신비처는 오늘도 엷은 안개 속에 가리워진 채 도도히 서 있었는데……. 궁의 한 내실(內室), 얼음을 조각해 놓았나? 이를 데 없이 차고……, 그러나 또한 이를 데 없이 아름다운 한 명의 미녀. 그녀는 조용히 창밖으로 비치는 아득한 산봉을 바라보고 있었다. 흰 눈으로 뒤덮인 산봉이 이고 있는 하늘이 베면 피라도 밸 듯 짙푸르다. 백유군(白柔君), 얼음처럼 투명한 피부로 하여 그 입술은 꽃잎처럼 붉은 이 미녀는 바로 무저빙궁주 백유군이었다. 그녀의 옆에는 궁의 호병인 자태랑(紫太랑)이 용두괴장을 짚고 서 있었다. 자태랑은 이따금씩 백유군의 눈치를 살핀다. 백유군의 시선이 산봉에서 거두어지더니, 문득 탁자의 화병에 꽂힌 국화를 향했다. 순간, 무표정하고 차갑던 그녀의 시선에 한 줄기 그윽한 정념(情念)의 빛이 떠올랐다. 자태랑은 가벼운 탄식을 터뜨리며 시선을 돌렸다. '정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 일 년이 지났는데도 그의 생각이다……. 국화는 서리를 이겨내는 꽃……, 바로 그의 꽃…….' 이때 돌연, 무심히 돌려지던 그녀의 두 눈이 놀람으로 부릅떠졌다. 저 멀리 정원의 한 곳, 그 끝에서부터 소담스럽게 가꾸어진 국화를 마구 짓밟고 오는 붉은 구름덩이 같은 인영이 보였던 것이다. '고얀…….' 궁주 백유군이 생명처럼 아끼는 정원이다. 자태랑은 흰 백미를 곤두세우며 벌떡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하나 그 분노의 표정은 이내 놀람의 빛으로 헝클어지고 말았다. "요요(妖妖)……?" 이 목소리는 고함처럼 컸다. 백유군의 고요한 시선이 앞을 향해 던져진 것과 불타듯 진한 구름덩이가 창가에 사르르 내려앉은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안녕? 언니……." 요요…… 일 년 전, 무류흔이 고련도로 들어가며 천풍장(天風莊)의 위호해(魏胡海)에게 맡겼던 그녀. 그녀는 일 년 사이에 몰라볼 만큼 성숙해져 있었다. 귀여운 얼굴은 더더욱 아름다와졌고, 가슴이며, 엉덩이 등이 벌써 성숙한 소녀의 매력을 한껏 풍기고 있었다. 다만 그 몸에서 풍기는 채색독사의 독기 같은 요기만은 조금도 사라지질 않고 오히려 일신에 걸친 붉은 옷처럼 현란한 매력을 더하고 있었으니……. 자태랑의 놀람과는 달리, 백유군은 고요한 눈빛 한 번 흔들림 없이 요요를 바라보며 조용히 웃었다. "오랜만이구나. 요요, 찻물을 많이 데우라고 시켰더니 네가 오느라고 그랬던 모양이다." 요요는 까르르 흐트러진 웃음을 터뜨리며 휙 백유군이 품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백유군도 마주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그녀는 이 아이가 이토록 아름다워진 것이 진심으로 기뻤다. 한데 바로 그 순간, 자태랑의 두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저…… 저……." 어찌나 놀랐던지, 말도 제대로 못하는 그녀. 그럴 수밖에……백유군의 품에 안기려던 요요의 몸에서 돌연 한 줄기 독사의 혓바닥 같은 검강 이 솟구쳐 나왔으니까! 슈욱---! 이 검강 은 너무 빠르고 강했다. 자태랑이 눈을 한 번 끔뻑이고 있을 땐 이미 검날은 백유군의 옷자락을 꿰뚫고 난 뒤였다. '끝장이다!' 자태랑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치치직……. 한데, 소리. 이 소리는 너무 엉뚱한 것이 아닌가? 다시 눈을 뜨고 자태랑의 시선 속으로, 그 자리에 여전히 고요히 서 있는 백유군의 모습과…… 뒤로 풍차처럼 맴돌며 퉁겨나가는 요요의 모습이 쏘아져 들어왔다. 요요는 다시 창가로 날아가 앉으며 아미를 깊이 찌푸렸다. '못 보던 무공인데? 나는 아직도 저 여자의 상대가 안 되나?' 하나 겉으로는 잔잔한 백유군도 놀라기는 마찬가지, 그녀가 펼친 것은 빙궁의 고유무예인 빙강이었다. 빙강, 강(剛), 유(柔), 탄(彈)의 세 겹만으로 펼쳐지는 절대 강기 (絶對剛氣)! 하나 방금 요요의 일검에 빙강은 탄(彈), 유(柔)의 두 개의 막이 일시에 베어져 나갔던 것이다. 비록 마지막 하나인 유막은 뚫지 못했지만……. '앞으로 반 년이 지나면 반드시 나를 능가할 것이다…….' 요요는 이내 찌푸렸던 미간을 펴서 깔깔 웃었다. "역시 언니는 내게 계속 숨겨온 무예가 있었구려? 이는 바로 이 요요를 차별한다는 얘기……." 그녀의 우수가 쑥 들렸다. 순간, 손가락 끝으로부터 쭈욱 뽑혀져 나오는 혈 지력 (血指力)! 와장창! 탁자의 꽃병이 부서져 나갔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언니에게 하나 묻고 싶은 게 있어요." 말과 함께 그녀는 다시 벽을 향해 손을 쳐들었다. 슈슉! 팍! 이번에는 고화(古畵) 한 점이 뻥 구멍이 뚫렸다. 자태랑이 부르르 노구를 떨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하나 백유군의 소맷자락이 막아서는 바람에 나서지 못했다. 요요는 아랑곳없이 계속 내실의 우아한 기물들을 부수어대며 붉은 입술을 나풀거렸다. "무류흔 오빠의 종적을 언니는 알고 있지요? 나는 오빠와 일 년 전에 헤어졌어. 그러나 오빠는 분명히 반 년 만에 오겠다고 했거든. 언니는 그가 간 곳을 알고 있지?" 순간, 백유군의 안색이 처음으로 변했다. 무류흔, 오오…… 무류흔……. 얼음처럼 차고 정결한 마음에 그는 대지를 가르는 폭풍이 되어 휩쓸고 지나갔으려니……. 그녀의 몸이 휘청했다. "나도…… 모른다……." "거짓말!" 와장창! 쿵---! "……." "거짓말이야!" 이때, 시녀 하나가 두 개의 찻잔을 들고 안으로 들어서려다 멈칫했다. 요요의 요사스런 시선과 마주쳤기 때문이다. "오호호……." 요요는 웃고……. 퍽---! 시녀는 이마에 구멍이 뚫려 피를 쏟으며 뒤로 넘어져 갔다. "오호호……." 순간, 백유군의 창백한 얼굴이 분노로 파르르 떨렸다. "요요! 네가…… 사람을 죽이는 법까지……?" 휙! 그녀의 몸이 환상처럼 허공을 갈랐다. 하나, 요요는 더 빨랐다. 그녀는 이미 창 밖을 날고 있었다. "호호……." 바로 그ㄸ다. 슈팍! 팍---! 불꽃, 청(靑), 홍(紅), 녹(綠), 백(白)의 신호탄이 연속으로 빙궁의 하늘을 밝혔다. 순간, 백유군의 두 눈에 한 줄기 의혹의 빛이 떠올랐다. 신호탄은 관문(關門)을 얘기한다. 하나, 빙궁의 주위로 둘린 사대관문(四大關門)을 저렇게 파죽지세로 뚫어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인가? 요요는 이미 사라졌다. 쿵! 쿵! 대신, 지축을 쩌렁쩌렁 울리는 발자국 소리가 퍼지더니, 이어 산처럼 우람한 몸집의 사내가 나타났다. 그의 몸이 어찌나 큰지 뒷쪽의 산맥을 일시에 가리고 있었다. "그 쥐방울만한 계집은 어디 갔느냐? 어서 나오지 못할까?" 세 사람,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거대하고 우람한 몸집의 사내와 유난히 요염한 몸매를 지닌 여인 하나, 그리고 천사처럼 순수하고 청초해 보이는 백의소녀(白衣少女). 사내와 여인이 앞서고 소녀는 뒤를 걷고 있었는데…… 이들의 옆으로는 또다시 한 마리의 흑호(黑虎)와 혈학(血鶴)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이들이 주위로는 무저빙궁의 소녀들이 장창 을 겨누고 주춤주춤 따르고 있었다. 이미 한 번 혼이 난 것인지, 그녀들은 세 사람을 향해 함부로 덤벼들지 못하고 있었다. 백유군의 뒤로 네 명의 중년미부가 스르르 내려앉았다. 빙궁의 사대전주(四大殿主)들. 그 중, 한 명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무서운 고수들입니다. 그 문파를 알 수 없는데 선두의 거한도 혼자서 사대관문을 격파했습니다." 백유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 사람은 단숨에 그녀의 앞까지 다가섰다. 선두에 서 있던 대한이 날벼락 같은 고함을 질렀다. "이곳의 주인은 어디 있느냐? 그 빨간 옷을 입은 요물을 빨리 내놓으란 말이다!" 거한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냉엄한 목소리 하나가 귓전을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그대는 너무 무례한 것 같지 않소?" 거한은 너 잘 만났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는 말소리의 임자를 향해 빽 고함을 지르려다 순간, 부르르 몸을 떨며 꿀꺽 말을 삼키고 말았다. 여인, 백의녀(白衣女). 아름답다. 북극의 빙점에 오연히 버티고 선 여왕처럼…… 그 냉엄한 기질은 가히 보는 이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으니……. "그……, 그게 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