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23편 (23/36)

2026-09-22 08:27:13 조회 28
그는 철문 근처이 돌벽을 만져보고 난 뒤였다. "이미 문의 기관 은 망가졌소. 이것은 누군가의 고의적인 술책이오." 무류흔은 어둠의 한구석에서 석벽에 몸을 기대고 있다가 천장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드디어 왔는가……. 구 인이여……, 문을 부순 그대들을 죽이지 않고는 살아 맹세코 이곳을 나가지 않겠다는 뜻……, 그렇다. 사냥은 시작되었다." 그는 담담히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어디론가 유령처럼 사라졌다. * * * "함정이었소." 구 인의 안색은 침통했다. 문득 요염한 홍의를 걸친 만음요희가 앞으로 나섰다. "이곳은 광운의 비급 이 있다는 곳이에요. 어쩌면 이 일이 단순한 전설의 안배인지도……." 바로 그때다. 돌연 아무 소리도 느낌도 없이 그녀의 틀어올린 머리에 하나의 화살이 팍, 하고 꽂혔다. 한 자의 길이, 깃의 끝엔 정교한 혈화가 새겨진 화살. 순간 만음요희의 안색은 잿빛으로 변하고, 구 인들의 입에선 놀람에 찬 외침이 터져 나왔다. "표화전(飄花箭)……?" 다음 순간 여유를 주지 않겠다는 듯, 이번엔 다섯 개의 혈광이 가까운 다섯 사람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져 왔다. 일성검왕을 비롯한 오 인은 다급히 몸을 날렸다. 귀신이 곡할 정도의 빠른 신법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옷자락을 하나씩 꿰뚫고 지난 엄지손가락만한 비수! "혈리인(血狸刃)……?" 오……, 표화전과 혈리인! 마계이대절기(魔界二大絶器), 그 빠름은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고, 뿜어내면 피를 본다하여 혈견휴(血見休)라는 이름이 붙은 두 개의 암기 . 오백 년 전, 사황(邪皇)이라는 희대의 마인(魔人) 이래 사라졌던 이 마기들이 느닷없이 이런 곳에서 모습을 나타낼 줄이야! 휘휘휘……. 무엇인가가 오는 듯한 예감으로 또 사력을 다해 몸을 날리고 보니 이번에는 다섯 개의 (血狸刃)의 두 자루의 표화전(飄花箭)이 그들의 몸을 스쳐 지났다. 그리고 주위는 차디찬 정적에 잠겼다. 표화전을 피하느라고 바닥을 뒹굴었던 만음요희는 넘어지다 치마가 말려올라 필시 드러난 허벅지를 감출 생각도 않고 절규하듯 침묵 속을 향해 외쳤다. "뭐야? 이 따위 것으로 우리가 맞을 줄 아나? 모습도 보일 줄 모르는 겁장이 녀석아!? 윙…… 윙……. 그녀의 절박한 목소리는 오랫동안 깊은 동혈을 메아리쳤다. 무거운 침묵, 문득 혈응공자 사마공이 무거운 절식을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혈리인이나 표화전은 과연 우리를 맞출 수 없소.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을 때이고 만약 방심하고 있을 때라면 마의 병기 아래 결코 살아 남지 못하오." "……." "적은 우리에게 쉴 틈을 주지 않으려는 계략이오.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조금만 쉬려고 하면 이 암기 들은 계속 날아들게 될 것이오." 금마혈수 용운이 부르르 몸을 떨더니 다급히 말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놈이 노리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오?"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냉판관(冷判官) 항자명이 싸늘한 냉소를 터뜨리며 입을 열었다. "이건 심리전이오. 우리들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갖고 놀려는 게요." 혈응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는 우리들에게 극도의 공포감을 심어 주려고 하고 있소. 우리들 속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대로 부수고 죽이고 신출귀몰하는 모습을 보여 주려는 게요." 구 인은 동시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보통 사람이라면 모습만 봐도 천 리 밖으로 도망가는 우리를 이토록 희롱하려 하는가? 일순간 그들의 뇌리 속으로 동시에 한 가지의 이름이 빠르게 스쳐 지났다. '취국……!'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하지 못했다. 입 밖에 내는 순간 그것은 사실이 될랐으므……. 이윽고 일성검왕 단목천궁이 긴 한숨을 내쉬며 침중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우선 앞으로 나가보는 수밖에 없소. 단 절대로 뭉쳐야 하오……. 흩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이오." * * * 우리에겐 사흘의 식량이 있었다. 그 사흘이 지나고 나면 섬 아래의 수하들이 무슨 조치든 취해 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은 어두운 곳에 있고 우리는 밝은 곳에 있다. 우리는 어떤 형태로든 적이 공격해 오는 것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것은 무서운 기다림이었다. 이런 순간을 우리는 일찍이 경험한 적이 없다. 첫째날, 화력의 소모을 막기 위해 그들은 모든 가지고 있던 화력을 껐다. 동굴은 지독하게 어두웠다. 마치 어둠마저도 흡수하고 있는 것 같았다. 선두를 나아가던 잔혈극마(殘血極魔) 표학의 몸이 멈칫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무엇인가가 있소……. 석벽 같은데……?"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또 중얼거렸다. "불을 좀 켜 보시오. 이곳에는 무엇인가가 쓰여 있소." 혈응공자가 화섭자를 꺼내 주었다. 잔혈극마는 그것을 무심히 받아들고는 불을 붙여 석벽에 갖다 댔다. 순간,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들었다. "이것은……?"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말한 마지막 말이요, 행동이 되었다. 사람들은 물론 밝은 빛 속에 둘러싸여 있고 잔혈극마의 이마에 하나의 검이 관통되는 것을 보았다. 이마를 뚫고 뒤통수로 튀어나온 검, 석벽 속에서 검이 나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였겠는가? 찢어질 듯 부릅뜬 잔혈극마의 두 눈에 표화전이 박혔다. 이어 그의 목과 가슴, 허리, 배, 허벅지에 미친 듯 혈리인이 파고 들었다. "어…… 어……." 석벽에는 이런 글귀가 쓰여 있었다. 쿵---! 잔혈극마의 몸이 사납게 뒤로 쓰러졌다. 그 둔음은 넋을 잃고 있던 팔 인의 정신을 확 일깨워 주었다. "타앗!" 순간 그들은 일제히 미친 듯이 석벽을 향해 쌍장을 퍼부어나갔다. 슈파앗----! 꽝! 꽈르르----! 츄츄ㅊ! 바로 그 순간, 한쪽의 돌벽으로부터 무수히 많은 화살들이 그들을 향해 폭사되어 나왔다. 천장에선 시꺼먼 독수가 쏟아져 내렸으며 바닥에선 날이 시퍼렇게 선 검날들이 수백 개나 튀어올랐다. 팔 인은 심장이 떨어질 듯 놀라, 앞뒤 가릴 것도 없이 아직도 먼지가 피어오르고 있는 부서진 석벽 속으로 몸을 날렸다. 팍---! 투퉁! 도대체 몇 바퀴나 구른 걸까? 허리가 뻐근히 저려올 때까지 구르고 난 팔 인은 바짝 엎드린 채 그들이 몸을 날렸던 곳을 바라보았다. 먼지는 가라앉고, 그 속에 고슴도치가 된 채 누워 있는 잔혈극마의 시신이 있었다. 혹시 그는 가장 많은 무기를 안고 죽은 자로 기록되는 것이나 아닐까? 혈응공자가 돌연 주먹으로 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당했어!" 그렇다. 보기좋게 당했다.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한 줄기 공포가 궁인들의 어깨 위로 내려앉고 있었다. 둘째날, 비화도 팽천기는 언뜻 소피가 마려워졌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으슥한 곳을 향해 다가갔다. "어딜 가오?" "아아…… 잠깐." 마음이 좀 켕기긴 했지만 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바지를 까내릴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는 동굴벽을 마주보고 허리춤을 풀었다. 그가 딛고 선 땅이 꺼져버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욱---!" 공중 구십구 회전! 비화도수가 자랑하는 구십구륜의 절기였다. 나는 어디로 떨어지는 겐가? 문득, 밑을 내려다보던 패언기의 안색이 돌연 흑빛으로 변했다. "헉!" 용암, 그의 발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은 분명히 무쇠도 녹여 낸다는 용암이었다. 그 용암연의 위로는 한 가닥의 쇠줄이 가로 쳐져 있었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팽천기는 그 쇠줄 위로 사뿐히 몸을 내려앉았다. 그래도 뜨겁다. 정신이 몽롱할 정도로 치솟아오르는 무서운 열기 속에 팽천기는 하나의 시선이 자신을 집요하게 노려보고 있음을 느꼈다. 시선 속으로 일신에 먹물 같은 흑의를 걸치고, 그래서 더 창백한 얼굴의 미장부가 하나 쇠줄의 저쪽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희고 긴 손가락엔 하나의 취색 국화, 순간 팽천기는 비명 같은 신음을 터뜨렸다. 제 19 장 살인(殺人)의 도리(道理) -------------------------------- "취국!" 흑의인의 얼굴이 조용히 웃는 것이 보였다. "이곳의 모습이 어떤가? 시체를 치우기 위해 걱정할 필요도 없다." 팽천기는 타는 듯한 안광으로 흑의인을 쏘아보며 등의 칼자루를 잡았다. "너일 것으로 짐작했지." 도(刀), 몹시 얇은…… 그러나 폭은 한 뼘이나 되며 도신엔 여덟 개의 구멍이 뚫려 있는 비화도. 팽천기는 문득 놀라움이 일시에 사라지고 대신 한 줄기 용기가 치솟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비화도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너의 용기가 가상하구나. 중요고 뭐고 이것이나 받아라!" 푸르릉! 한 줄기 기음을 돋아내며 자색도기(刀氣)가 날벼락처럼 뽑혀 나왔다. 공간을 그물처럼 뒤덮어 버리는 수천 개의 꽃잎 같은 도광(刀光). 동시에 귀청을 찢을 예리한 소음이 도신에 ㄷ린 구멍으로부터 터져 나왔다. 혈화(血花)의 환상은 상대의 눈을 밀치고, 혈공(血孔)의 소리는 상대의 넋을 뺐는다. 저주의 비화도법(飛花刀法)! 악마의 도초가 펼쳐지는 순간이었다. 한데 팽천기는 문득 자신의 도포가 제삼변식부터 꽉 막혀 버리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마치 고무공 속에 칼이 박혀 버린 것 같았다. 동시에 일시에 생긴 큰 허점을 뚫고 쇠사슬 하나가 촤르르 뻗어나왔다. "헉!" 쇠사슬이 목을 감는 바람에 숨이 턱 막혀버렸다. 흑의인은 환상처럼 그의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퍽---! 그의 손이 팽천기의 늑골을 뚫고 들어왔다. "으윽!" 팽천기는 주춤 가슴을 싸안고 물러나며 말했다. "네가 비화도법을…… 알았느냐……?" 말은 더 이어지지 않았다. 그의 몸은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하나 목에 감긴 쇠사슬 때문에 그의 몸은 용암의 바로 위에서 턱 멈춰지는가 싶더니 이내, 발목부터 스르르 녹아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셋째날, 금마혈수(金魔血手)는 짐승 같은 부르짖음을 토하며 근처의 돌벽에 쾅 내리쳤다. 혈수(血手),그의 손은 혈수다. 이 가공할 손은 단숨에 석벽을 한 자나 파고 들어갔다. 금마혈수의 옆에는 비화도가 서 있었다. 소피를 보고 온 후 줄곧 말이 없던 그가 문득 얄팍한 입술을 열어 말한다. "정말 좋은 손이오." "으윽! 손과 무예가 좋으면 뭘하겠소? 단 한 놈에게 이토록 희롱을 당하고 있는데……." "그럼 필요없는 손이구려……." "그렇소, 정말 필요없는……." 금마혈수는 문득, 기이한 예감으로 번쩍 고개를 들었다. "왜 그런 말을……?" 다음 순간, 그의 말은 꿀꺽 삼켜지고 말았다. 오오……, 하나의 예리한 비수, 혈리인(血狸刃)! 이것은 어느 샌가 석벽에 박힌 자신의 혈수를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다. 금마혈수는 자신의 손목이 팔목부터 싹둑 잘려 나가고 있는 것도 보았다. 피! 그가 이것을 알고 주춤 물러나려 했을 때, 그의 입 속으론 이미 두 개의 혈리인이 박히고 만 뒤였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인들은 금마혈수가 주춤주춤 물러나고 있자 의혹의 빛을 떠올렸다. "저 사람은 왜……?" 반월검혼(半月劍魂) 오충은 그런 그를 뒤에서 부축하려 했다. "용형……" 바로 그 순간, 배를 뚫고 들어오는 섬뜩한 감촉, 그것은 불에 데인 듯한 통증이었다. 반월금혼은 회의에 찬 시선으로 자신의 배를 내려다보았다. 도(刀), 자색 도기가 영롱한 이 도는 앞선 금마혈수와 자신의 배를 동시에 뚫고 있었다. 반월검혼의 입에서 꾸르륵, 가래끓는 소리가 실낱 같은 핏물과 함께 흘러나왔다. "왜……?" 남아 있던 오 인의 안색이 싹 변했다. 그들은 일제히 용수철처럼 퉁겨 일어나며 외쳤다. "비화도, 너는?" "핫하……." 순간, 비화도의 몸으로부터 햇살 같은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광채! 그것은 다름아닌 수백 개의 표화전과 혈리인이었다. 오 인이 그것을 피하느라 이리저리 몸을 굴리고 났을 땐…… 이어, 비화도의 몸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난 후였다. 문득, 한 줄기 정적이 또다시 죽은 두 사람 금마혈수와 반월검혼의 몸으로 스르르 내려 앉았다. "무서운 놈……." 일성검왕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우리를 죽이려면 일시에 죽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한데 이 놈은 고양이가 쥐를 놀리듯……, 서서히…… 보이지 않게…… 우리를 극도의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순간, 만음요희가 두 귀를 미친 듯이 틀어막으며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아악----! 그만해요! 제발 그만----!" * * * 넷째날, 적면수(赤面獸)와 혈응공자(血鷹公子), 이들은 조용히 앉아 무슨 얘긴가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놈은 비화도로 가장했던 게 틀림없다." "그렇게 쉽게 사라진 것으로 보아 어딘가에 분명히 통로가 있을 것이오……." 적면수는 각종 짐승을 다루는 신기의 소유자이며, 혈응공자는 기문진학(奇門陣學)의 대가였다. "나는 그 틈을 찾아볼 테니……." "나는 친구들을 모아 협조하겠소……." 적면수는 말을 마치고 나더니 그 자리에 단정히 정좌하고 앉아 무엇인가를 중얼중얼 외우기 시작했다. 순간 그의 몸에선 자국한 황연이 번져 나오더니 사방으로 퍼져갔다. 그 황연에선 기이한 냄새가 나고 있었다. 찍찍……. 잠시 후, 어디선가 쥐울음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돌연 수십 마리의 작은 쥐들이 줄지어 적면수의 앞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그가 말한 친구란 바로 이것들이었던 게다. 선천적으로 이런 미물에 약한 여자의 하나인 만음요희가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주춤 일성검왕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적면수는 주문 외우기를 그치더니 가장 앞장선 쥐를 향해 친구에게 하듯 다저하게 입을 열었다. "통로를 찾으려 한다……. 너는 어느 곳으로부터 나왔느냐?" 순간, 쥐는 그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했다는 듯 찍 울음을 터뜨리더니 몸을 돌렸다. 적면수와 혈응공자가 앞장서고 내판관, 일성검왕, 만음요희가 그 뒤를 따랐다. 쥐는 어던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말고 문득, 한곳의 으슥한 석벽으로 다가서더니 그 아래의 조그만 구멍으로 주르르 기어 들어갔다. 그는 타는 듯한 시선으로 이곳 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조그만 돌출부 하나, 미세한 구멍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주인들은 손에 땀을 쥐며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기필코 찾아내야 한다. 그것이 이제까지의 전세(戰勢)를 역전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였다. 이때 돌연, 돌벽의 맨 밑부분을 세심하게 살피던 혈응공자의 얼굴에 씨익 웃음이 피어올랐다. "찾았소." 이어, 그는 세 군데의 돌출부를 차례대로 누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이다. 그르릉……. 느닷없이 돌벽이 마찰음을 일으키며 양쪽으로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가장 앞쪽에 위치하고 있던 혈응공자와 적면수가 가장 먼저 안으로 뛰어들었다. 이어, 그 다음 차례의 냉판관이 몸을 날리려는 순간이었다. 오오……. 꽝---! 느닷없이 돌벽은 다시 닫히고 마는 것이 아닌가? 냉판관은 크게 놀라 쌍수를 쭈욱 뻗었다. 쿠쿵! 그러나 돌벽은 끄떡도 하지 않고……. "비켜 보시오." 일성검왕이 다급히 아까 혈응공자가 만지던 부분을 살펴보았으나 이미 돌출부 따윈 사라져 버린 지 오래였다. 허탈…… 세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혈응공자는 다급히 몸을 돌려 벽면을 살펴보았다. 하나, 아무래도 기관 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 것이니……, 두 사람도 서로의 시선을 힐끗 마주친 후 각자의 무기를 빼어 들었다. 혈응공자는 하나의 간, 그것은 통 형상의 무기로써 상대의 병기를 낚아채고 반격하는 묘미가 있었다. 적면수는 쌍추(雙鎚), 문사들의 끝에 매어달린 쌍추에는 강철가시가 섬뜩하게 돋아나 있었다. 주위는 막힌 석벽이었다. 전면에는 또 하나의 문이 있었다. 두 사람은 돌처럼 굳은 얼굴로 서서히 그 문을 향해 다가섰다. 한 걸음…… 두 걸음……. 그그응……. 석문을 힘주어 밀으니 즉시 열렸다. 순간, 빗살 같은 광채가 두 사람을 향해 자국이 뻗어왔다. 안의 광경, 사방 이십여 장 크기의 석실이었다. 석실의 중앙벽에는 붉은 바탕에 금색글씨의 불(佛)자가 쓰인 천이 길게 드리워져 있었고 그 앞에는 금빛이 휘황찬란한 하나의 불상이 서 있었다. 불상의 앞에는 또다시 하나의 제단(祭壇), 그곳에는 지금 단향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상의 중간에 모셔진 하나의 연화부(蓮花符)가 영롱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한곳에서 시선을 마주쳤다. 불가(佛家),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불가란 그다지 탐탁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무예가 바로 불가로부터 나온 것이며, 그들은 바로 그 불가를 배신하고 지금의 위치를 얻은 것이었으므로……. 한데,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빌어먹을 불가의 흔적과 만나게 되다니……. 적면수 냉구의 얼굴에 한 줄기 흉측한 웃음이 걷혔다. 그는 자신의 성명병기(盛名兵器)인 흡혈쌍추(吸血雙鎚)를 비스듬히 꼬나잡으며 천천히 불상을 향해 걸어갔다. 불상과 이 장여의 거리를 두었을 때, 돌연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쌍추가 무섭게 불상을 향해 날았다. 바로 그때다. 누구도 예측못한 일이 벌어졌다. 불상이 갑자기 스르르 옆으로 물러나더니, 다시 쾌속하게 앞으로 전진해 오는 것이 아닌가? 꽝---! 엉겹결에 벽을 후려치고 만 적면수, 크게 놀란 그는 황급히 쌍추를 거두어 들이며 흡혈추법의 제이초를 펼쳤다. "천혈만폭(天血萬暴)!" 그러나, 공간을 아득하게 뒤덮은 추와 그림자는 헛되이 공간을 가르고……. 적면수는 불상의 쌍수가 자신이 목을 노리고 무섭게 찔러오는 것을 보았다. 찔러온다고 느꼈을 뿐 피할 방도가 없다. 불상의 단조로운 동작은 그가 펼친 초식의 단점을 정확히 파고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두둑……. 목뼈가 부러져 나가는 섬뜩한 둔음이 울려퍼졌다. 불상은 단숨에 적면수의 목을 부러뜨리고도 멈출 줄을 몰랐다. 그것은 이어 시체로 변한 적면수의 몸을 띄운 채로 한쪽의 석벽을 향해 맹렬히 부딪혀 갔다. 꽝---! 한쪽의 혈응공자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는 이 무서운 괴사(怪事)를 도저히 풀어낼 방도가 없었다. 불상이 어찌 적면수가 펼치는 초식의 파해법(破解法)을 안단 말인가? "그 대답은 내가 말해 주지……." 불 자가 쓰인 휘장이 스르르 걷히는가 싶더니 한 사람이 무표정한 얼굴로 나타났다. 순간, 그쪽을 힐끗 바라본 혈응공자는 비명 같은 외침을 터뜨려냈다. "무류흔?" 무류흔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뿐만 아니라 소림 밀교 의 대법사이기도 하지." "대법사……?" "문파의 이단자를 처벌하는 권한을 가지게 되었다." 혈응공자의 얼굴이 짧은 시간 동안에 여러 차례 변해갔다. 그것은 놀람, 이어 분노와 체념……, 그리고 절망(絶望)……. 그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을 터뜨렸다. "알지……, 너는 과거부터 무엇이든지 나보다 뛰어났으니까…… 지금도 나보다 강할 것이다……." 순간, 그의 두 눈이 불길을 토하며 무류흔을 향했다. "그러나…… 류흔! 나는 가거니와…… 너 또한 언젠가는 나처럼 누군가의 손에 의해 절망하며 죽게 되리라! 크핫하하…… 그것이 손에 검을 쥐었던 자들의 최후! 나는 다만 한 발 먼저 갈 뿐이다……!" 푹---! 다음 순간, 그의 철간이 스스로 자신의 목을 맹렬하게 찔렀다. 수급이 튀어 피를 흩뿌리며 옆으로 떨어져 갔다. 그 수급은 여전히 두 눈을 부릅뜬 채였다. 무류흔은 무심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자리에 조용히 쭈그리고 앉아 혈응공자의 눈을 감겨준 후 들고 있던 취국을 그의 옆에다 놓았다. 툴툴……. 메마른 웃음, 그의 몸이 천천히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석실 밖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봐 친구, 세상에는 본래 선과 악의 두 힘이 있는 걸세. 지금까지의 선은 결코 행동적이지 못하고 보다 약했지……. 나는 그 선을 힘으로 대결하려는 사람이야. 난 단지 행동하는 사람일세. 고귀한 사상이나 철학을 지니고 있는 것을 결코 아니야. 온 세상의 바보 같은 친구들이 다 나를 적으로 삼게 될지라도 나는 내가 선택한 길을 갈 수밖엔 없네. 내게 보통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 인생에 도전하는 것을 나에게 주어진 임무로 여기고 행해 간다는 점일세. 내가 해야 하는 살인이나 싸움을 남이 대신 해 주길 바라지는 않기 때문이야. 필연적인 싸움이라면 꼭 싸워야 하네. 피를 흘려야 한다면 나 스스로가 흘릴 것일세……. 어쩌면 나는 이 시대의 여타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유형의 동물일지도 모르겠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내게 용납될 수 있는 악이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투쟁이 생존의 수단이 되는 한, 강한 힘이야말로 세계를 다스릴 수 있는 법칙인 걸세. 폭력이 없는 곳에 평화란 있을 수 없네……. 어떤 하나가 살아나는 순간, 다른 하나는 죽어가게 마련이니까. 나는 건전하지 못한 인간이 아닐까……? 그러나 그렇다고 나 자신을 책망하고 싶진 않네. 인생이란 그 본질부터가 건전한 것은 아니기 때문일세. 인생이란 결국 산처럼 쌓여가는 시체 위에서 이룩되는 것일세. 모든 사람의 육체란 살아 있는 죽음의 비(碑)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