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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객 - 21편 (21/36)

2026-09-22 08:27:13 조회 24
사내는 무류흔의 손이 목을 바짝 죄어오자 얼굴이 돼지간처럼 붉게 변했다. "우욱……!" 무류흔의 주먹이 말없이 그의 옆구리에 틀어박혔다. 우드득……. 갈비뼈가 부서져 나가는 섬뜩한 둔음. "나는 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의 주먹의 위력을 시험해 보는 것이니 이해해 주도록……." 말과 함께 이번에는 좌측 옆구리가 움푹 패여 들어갔다. 우두둑……. "으윽!" 사내는 아픔보다도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그는 이토록 완벽하도록 잔인한 사람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무류흔이 손을 놓자 그는 피를 토하며 부르짖었다. "말하겠소! 말해요!" 무류흔은 고통으로 줄줄 눈물을 흘리는 그를 냉혹하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왜 나를 죽이려 했지?" "명, 명령이었소." "그자가 누군가?" "귀역오가(鬼域五家)……." 슈슉! 바로 그때, 두 줄기 무서운 한망이 사내를 향해 덮쳐들었다. 이 수법은 그 각도가 놀랍도록 기이하고 돌발적이었다. 그러나 무류흔은 싸늘한 냉소를 흘렸다. 어떤 놀라운 살수든 그의 앞에서 펼쳐진다는 것은 공자 앞에서 문장을 자랑하는 것과 같았다. 한망이 이는 순간 그의 몸은 그쪽으로 펼쳐가고 있었고, 곧이어 사람의 뼈가 부서지는 섬뜩한 음향이 울려퍼졌다. 두드득……. 뿌드득……. 덮쳐온 두 검수는 순식간에 목이 꺾인 채 근처의 우물로 쳐넣어졌다. 그들의 검마저 그 속으로 집어넣은 무류흔은 탁탁 손을 털며 몸을 돌렸다. 그의 냉혹한 시선은 덜덜 몸을 떨고 있는 사내를 향해 가 박혔다. "네 수뇌에게 가서 말해라. 취국은 빚을 지면 이자까지 갚아야 직성이 풀리는 이상한 사람이더라고……." 휘이잉……. 차가운 바람을 등에 지고 사라져가는 그의 뒷모습, 사내의 몸은 그제서야 스르르 쓰러져 가고 있었다. 그는 너무 공포스러운 나머지 쓰러져야 한다는 사실까지 잊고 있었던 것이다. * * * 귀역오가(鬼域五家), 이 신비살인가문(神秘殺人家門)에서 손을 뻗쳐 왔다는 것은 무류흔에게 중대한 고민을 안겨 주었다. 이 일은 그의 행동반경이 그만큼 위축되고 제약을 받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것을 삼십삼겁의 사주라고 단정했다. 어떤 식으로든 대응해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이 신속함은 그가 짐작하던 것보다 두 배는 빨랐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한부 인생…… 그러나 아직도 적은 스물여덟 명이나 남아 있다. 그들을 제거하는 일 또한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그가 무공의 약점을 쥐고 있는 십육 명은 그렇다 쳐도 그렇지 않는 십이 인은 아직도 대처방안을 못 세워놓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가 또 그 중 십 인은 이미 있는지조차 모르는 터가 아닌가? 제 17 장 장계취계(將計就計) --------------------------- 묵묵히 언덕에 앉아 아련히 터 오는 먼동을 바라보던 무류흔,순간 그는 중대한 결심을 했다. "한꺼번에 모아놓고 치자…….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스물여덟, 그 중에 신성천불 계열로써 남아 있는 자들은 열하나, 그들을 한군데로 모아 깨뜨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엄청난 모험이었다. 아무리 무예의 약점을 알고 있다 해도 셋 이상이 모이면 승산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해내야 한다……." 무류흔은 생살부를 꺼내어 십일 인의 명단을 확인했다. -- 소수환녀(素手幻女) 능연(稜燕) -- 혈편신(血鞭神) 갈유종(葛有宗) -- 일성검왕(一星劍王) 단목천궁(端木天宮) -- 비화도(飛花刀) 팽천기(彭天基) -- 금마혈수(金魔血手) 용운(龍雲) -- 반월검혼(半月劍魂) 오충(吳沖) -- 적면수(赤面獸) 냉구(冷九) -- 냉판관(冷判官) 항자명(恒子明) -- 만음요희(萬淫妖姬) 양추련(揚秋戀) -- 잔월극마(殘月戟魔) 표학(飄鶴) -- 혈응공자(血鷹公子) 사마공(司馬公) 동녘은 이제 눈부시게 환해지고 있었다. 그런 것이 아닐까? 어차피 인생은 삶과 죽음의 반의 승부를 가진 도박인 게다. 양휘(楊輝), 그는 장인(匠人)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는 조각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달인이었다. 어느 날 그의 앞으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유명한 조각의 달인에게 한 사람이 찾아온 것이 무어 그리 기이할까만은 이 사람은 여러모로 그 동안 양휘를 찾아온 손님과 틀렸다. 양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ㄸ의 일을 이렇게 회상했다. -- 먹물처럼 검은 옷이었소. 그 얼굴은 어찌나 창백한지 마치 얼음조각 같았는데, 또한 눈부시게 빛나는 아름다움으로 정면으로 쳐다보지도 못할 정도였소. 한 손에 그윽한 취국을 들고 그는 말했소. "잠깐 가 볼 곳이 있소, 양술사(楊術士)." 나는 가지 않을 수 없었소. 어리석게도 나의 마누라는 며칠 전에 익명의 사람이 보내 온 거액을 이미 축내었기 ㄸ문이오. 나는 이 사람이 바로 그 돈을 보내온 사람이라고 생각했소. 그러나 솔직히 말한다면 호기심쪽이 더 컸다고 해도 좋소. 그에겐 사람을 정신없이 빨아들이는 기이한 매력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의 몸에선 알지 못할 성취욕이 활화산처럼 이글거리고 있었소……. 그와 때를 같이 하여 당시 진법 진식 (陣法陣式)의 대가였던 함주(咸州) 궁노야(弓老爺)와, 기관 매복(機關埋伏)의 기인이었던 정주 (鄭州) 천기노인(天機老人)이 동시에 증발했다. 그러나 이 삼 인의 실종에 대해서 문제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꼭 보름의 시간 만에 돌아왔으며 그 동안 무슨 일을 어떻게 하였는지 집안 친지들에게까지도 굳게 입을 봉하였기 때문이다. 다만 그들 삼 인은 다음과 같은 말을 똑같이 했다. -- 인생을 통해 가장 보람된 일이었다. 소문! 이 한 가지 소문은 너무 느닷없었다. 그러나 이 소문은 느닷없었던 만큼 폭발적인 반항을 불러 일으켰다. 그 소문의 발단은 황하 (黃河)의 어부들로부터 시작되었다. -- 오오……. 그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그렇소. 세상에서 처음보는 희귀한 옥미인상(玉美人像)이었소……. 한가로운 장강 (長江)의 수면 위로 떠내려온 물체, 높이 반 장에 사람의 크기만한…… 그것은 바로 황홀하도록 아름다운 옥으로 조각된 하나의 여인상이었으니……. 정교하게 엮인 뗏목 위에 얹힌 채, 잔잔한 수면을 가르고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했던 그 옥미인상은 무림에 엄청난 돌풍을 일으키게 되었다. -- 그 옥미인상은 천옥혼(天玉魂)이라는 것이다! -- 천옥혼(天玉魂)! 그 속에는 과거 천 년 전, 광운상인의 비급 이 있는 곳을 가리키는 장보도(藏寶圖)가 숨어 있다! -- 그것을 얻는 자는 천하제일인이 된다! 왁자지껄! 그럴 수밖에……. 이미 천 년 전에 제일의 고수로 군림했던 달마 의 제자 광운상인의 비급 이라니, 온 무림은 아우성을 치며 들고 일어나고…… 최초에 그것을 습득했던 신주패검(神州覇劍)이란 자는 그로부터 하루가 못 가 아홉 토막이 나는 비운을 맞았다. 그 후로도 상강 일웅(湘江一雄) 왕자헌(王子軒), 한혈제마(恨血帝魔) 곡장(谷長),마중지혼(魔中之魂) 학륜(鶴輪)…… 등의 고수들이 그것을 얻었다는 이유만으로도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이 천옥혼은 그로부터 한 달 동안 무려 백여 명이 죽고 다치는 아귀 다툼의 쟁탈전을 벌여냈다. 그러다가 이 천옥혼을 가장 마지막으로 습득한 사람은 바로 일성검왕(一星劍王) 단목천궁(端木天宮). 그로부터 피의 쟁탈전은 깨끗이 종식되고 말았다. 그럴 수밖에……. 일성검왕 단목천궁은 바로 삼십삼겁의 일 인이었으니까! * * * "핫하…… 이게 도대체 얼마 만이오? 이렇게 다같이 모여 본 것이……?" "그렇소. 화 북평 야의 혈투 이후 근 일 년 만에 이렇게 다 모인 것 같소." 하나의 대청, 그야말로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대청이었다. 하다 못해, 창문의 문고리까지 금각이 되어 있었으니까! 이곳의 주인은 필시 화려하고 맛을 좋아하는 사람이리라. 그렇다. -- 일성검왕(一星劍王) 단목천궁(端木天宮) 호북 (湖北)의 영주(領主), 호북 제일맹이라는 구호연문방(九豪蓮門幇)의 수뇌이며, 삼십삼겁에서도 검의 명인으로 꼽히는 위인. 그의 또 다른 별명은 흑군자(黑君子)였다. 대청의 안에는 그 말고도 모두 열한 사람이 빙 둘러앉았다. 상하의 구분이 없는 자리이니…… 이 하늘 아래 단목천궁과 이렇게 앉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바로 또 다른 삼십삼 겁뿐……. 소수환녀(素手幻女)가 보이고 혈편신(血鞭神)이 보인다. 그밖에도, 비화도(飛花刀), 금마혈수(金魔血手), 반월검혼(半月劍魂), 적면수(赤面獸), 냉판관(冷判官), 만음요희(萬淫妖姬), 잔월극마(殘月戟魔), 혈응공자(血鷹公子) 등의 인물들이 장내에 있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일신에는 하늘빛 유삼을 걸치고, 장내의 왁자지껄함과는 아무 상관업싱 창밖을 우두커니 내다보고 있는 그……. 단아한 기품과 더불어 우수에 든 한 자루 섭선(攝扇)이 더욱 돋보인다. 혈선공(血扇公) 냉자기(冷子奇), 그는 삼십삼겁 중에서도 가장 심계(心計)가 깊은 인물로 알려지고 있었다. 문득 가장 상석에 있는 부리부리한 눈매의 미청년이 입을 열었다. "자자……, 우리가 이렇게 모인데 대한 회포는 잠시 후에 풀기로 하고…… 소생은 이제 형제들에게 몹시 진귀한 물건을 하나 보여 드릴까 하오." 일성검왕 단목천궁, 그의 말에 순간 좌중은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단목천궁은 호탕하게 웃더니 손뼉을 가볍게 두드렸다. 방 한쪽의 휘장이 스르르 열리고…… 홀연, 황홀한 서기(瑞氣)가 일순 온 대청을 환하게 밝혔다. 두 명의 대한이 조심스럽게 받쳐들고 온 물건, 높이 반 장가량에 그리고 엷은 나삼(裸衫) 하나만을 두른……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듯 생생하고 아름다운 하나의 옥미인상(玉美人像)…… 순간, 좌중엔 감탄이 피어올랐다. "오오…… 과연……." 주위의 일에 전혀 무심하던 혈선공의 시선도 힐끗 이 아름다운 물체를 향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이내 돌려지고 말았다. 단목천궁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천옥혼(天玉魂)이오. 오늘 소생은 이것을 형제들과 함꼐 감상해 보기 위해……." "과연……." "자 이것을 좀 보아 주시오." 단목천궁은 웃으며 옥미인상의 허리 부분을 잡고 가볍게 올렸다. 끼끼익……. 순간, 소리와 더불어 천옥혼의 배가 스르르 열리더니 하나의 양피지가 툭 튀어나왔다. 일견해 보아도 몹시 희귀하고 오래되어 보이는 양피지였다. "핫하……. 소제는 본래 형제들 중 거처를 아는 스물셋의 형제들을 모두 초청했으나 모종의 일로 우리들 열둘만이 모이게 되었소." "……." "소제는 이미 천옥혼과 이 양피지의 검사를 골동품 식별의 권위자에게 의뢰했었소이다. 결과 이것들은 모두 진짜로 판명되었소." "오오……." 비화도 팽천기가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양피지의 지명(地名)은?" "핫하……. 놀라지들 마시오. 이것은 바로 소생의 거처에서도 얼마 되지 않은 동정호 (洞庭湖) 군산 (君山)에 위치한 것이오." " 군산 ……?" "그렇소. 그래서 소제는 생각컨데 이 위치로 우리들이 다 함꼐 떠나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오. 비급 이 있다면 공동연구를 해 보도록 하고…… 설사 없다 해도 그곳을 우리의 모임장소로 삼아 통쾌하게 놀아보면 될 게 아니오?" "핫하……. 그렇구려." "좋소. 대찬성이오." 단목천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반대하시는 분은 없으신 것 같구려." 이때다. 소수환녀 능연이 돌연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혈편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단목방주 대단히 죄송하오나 갈대협과 소녀는 좀 빠져야겠어요. 약간의 볼 일이 있는지라……." "그래요? 그거 섭섭하구려." 이때, 무심히 창밖만 바라보고 있던 혈선공 냉자기도 고개를 저었다. "소제는 본래 보물 따위에는 흥미가 없으니 빠지도록 하겠소." "허어……. 그렇다면 할 수 없지요. 세 분을 제외한 나머지 분들은?" 나머지 고수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우리는 찬성이오." "좋소, 그럼 우선 소제의 집에서 닷새 동안 실컷 놀아 보도록 합시다. 연후, 멋진 보물찾기를 해 보는 것이오. 핫하……." 연후 단목천궁은 밖을 향하여 손뼉을 크게 두드렸다. 이내 아름다운 소녀들이 날라온 진미가효(珍味佳肴)로 하여 장내는 왁작한 잔치 분위기로 변해 버렸다. 한쪽의 혈편신 갈유종은 미간을 찌푸리며, 문득 소수환녀를 향해 퉁명스런 어조로 전음 을 펼쳤다. "당신은 왜 안 가겠다고 했소? 나는 저 보물찾기가 매우 흥미로운데……." 소수환녀는 아미(蛾眉)를 상큼 치켜올리며 말했다. "바보……, 단목천궁은 심계가 깊은 위인이에요. 그가 이런 제의를 한 것은 자신이 천옥혼을 얻은 것을 세상이 다 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취한 조처란 말예요. 저자는 정말 보물을 얻는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는 위인이에요……." "……." "흥! 그리고 이 일은 좀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어쨌든 우리는 빠지는 게 좋아요." 이때다. 돌연 신나게 술을 들이키던 금마혈수 용운이 무슨 신기한 것이라도 발견했다는 듯 큰소리로 외쳤다. "가만! 그러고 보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혈선공 냉형만 제외하고는 모두 신성천불의 계열이 아니오?" * * * "냉대협은 왜 보물찾기에서 빠졌지요?" 구호연문방(九豪蓮門幇)을 세 필의 말이 빠져 나오고 있었다. 소수환녀가 묻자 혈선공 냉자기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저……." "혹시 취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아닌가요?" 정곡을 찔리자 냉자기는 흠칫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나는 그저 싫었을 뿐이오. 그럴 리도 없지만 만약 이 일을 정말 취국이 꾸민 것이라면 그는 미친 자이거나 적어도 그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일 것이오." "왜죠?" 냉자기는 구호연문방을 힐끗 바라보더니 극심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저 안에 모인 구 인의 힘은 완벽하오. 황제의 팔십만금군이 온다 해도 저들을 이길 순 없을 것이오……." 살수 (殺手), 한 명의 살수 , 살수 번호 구백칠호, 별호 인검주(忍劍蛛). 별호로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그가 속한 살수 집단에서도 가장 인내심이 강한 위인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맡겨지는 살업은 늘 고도의 인내를 필요로 하는 그런 일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이미 흙구덩이 속에 이레 동안이나 파묻혀 있었다. 이번에 그가 죽여야 할 인물은 몹시 까다로운 인물이었다. 도패천(刀覇天) 우곡(尤谷), 그는 상인이었다. 그것도 악독한 고리대금업자였다. 그래서 그에게는 늘 적이 많았으며 자신을 노리는 독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도패천은 가능한한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었다. 즉, 그의 주위에는 늘 두 겹의 호위무사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 수는 무려 이십사 명. 도패천이 잠잘 때도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들은 스물네 개의 방위를 갈라 완벽하게 그를 호위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도패천은 십만 명에 이르는 광활한 자신의 집에서도 늘 길을 바꾸고 있었다. 그는 절대 일정한 길로는 지나지 않았으며, 그 길이 얼마나 많은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검수는 기다려야 했다. 자신이 파묻혀 있는 이곳은 분명히 그 길 중의 한 곳이었다. 언제 올지는 모르나 그 올 때를 기다리며 그는 이렇게 하염없이 파묻혀 있는 것이다. 저벅저벅……. 이때 돌연,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패천……!' 인검주는 황급히 귀와 입을 위해 대놓고 있던 대롱을 거두어 들였다. 그는 지그시 검을 꼬나들었다. '다섯…… 넷…… 셋…… 하나…… 지금이다!' 슈파앗! 검, 이 검은 정확히 도패천의 사각(死角)을 찔렀다. 그의 사타구니를 뚫고 검은 머리 꼭대기로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십사인의 호위무사들이 경악으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이, 인검주의 몸은 이미 이십 장 밖을 날고 있었다. '해 냈다!' 인검주는 싱긋 웃으며 땅을 힘껏 박찼다. 이미 봐 둔 도주로인지라 그의 동작은 조금도 거침이 없었다. 이때 돌연, 또 한 곳의 땅을 차고 위로 솟아 오르려던 순간, 인검주는 주춤 몸을 멈추고 말았다. 아니 멈추어야만 했다. 한 자루의 검, 이 검은 정확히 그의 사타구니에 닿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수가……?' 검은 땅속에서 솟아 나온 것이었다. 벌레를 씹은 얼굴을 하고 있는 인검주의 시선 속으로, 한 사람이 느릿하게 흙을 털며 일어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입에 물고 있던 대롱을 뱉으며 싱긋 웃었다. "이레란 역시 지루한 시간이다……." 오오…… 이레! 그렇다면 이 사람 또한 인검주처럼 땅속에 이레 동안 파묻혀 있었단 말인가? 인검주는 이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불과 백 장의 거리, 만약 이레 전에 이 사람이 이곳에 숨고자 했다면 자신의 이목을 속일 수 있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이 자는 또 자기의 도주로까지 완벽하게 예측하고 있는 것이니…… 결론은 하나다. 눈앞의 이 사내는 자신보다 더 가혹하고 완벽한 살수 수련을 거친 사람일 것이라는 것! "내가 이곳에 두더지처럼 숨어 있었던 이유는 한 가지 일세……. 자네는 귀역오가 중 반의담(反義潭)의 사람이지? 그곳의 거처를 좀 가르쳐 주겠나?" "……." "물론 말을 하고 싶진 않겠지……. 그러나 나는 이렇게 숨는 것도 좋아하지만 누구의 입에서 말을 나오게 하는 데는 더 자신있는 사람이라는 것……. 나는 우리가 그런 일로 시간을 소비하지 않게 되길 바라네." 말과 함께 인영은 씨익 웃었다. 순간 인검주는 그의 웃음에 가슴이 서늘해짐과 동시에 난생 처음 공포를 느꼈다. 거기다가 또 그런 가운데 몸서리쳐지는 살기가 담긴 어투……, 인검주는 탄식을 터뜨렸다. 이 사람은 그로선 도저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반의담을……." * * * 휘익---! 한 사람의 눈이 어둠 속에서 살괭이처럼 번뜩였다. 그의 몸이 한 그루의 고목 뒤로 스르르 달라붙었다. 번뜩이는 시선이 발하는 곳은 전면 십 장 밖의 한 채의 오두막집. "반의담의 여덟 번째 분타 (分陀)……. 총타를 알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고목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 그림자는 몸이 작고 협소했지만 인영의 몸은 땅바닥에 찰싹 엎드린 채 그곳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두막엔 불이 밝혀져 있었다. 주위로는 보초를 선 흑의인의 모습들이 보인다. 인영은 땅에 귀를 대고 나직한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넷…… 안에는 열둘이다…….' 그는 속전속결을 결심했다. 오두막 속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고도의 살법을 터득한 고수들…… 허점을 보였다간 위험한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번쩍! 생각이 끝나는 순간, 그의 몸은 환영(幻影)처럼 허공을 갈랐다. 첫 번째 보초, 그는 영문도 모른 채 목이 허공으로 퉁겨올라갔다. '하나!' 인영의 몸이 오두막을 바람처럼 맴돌았다. 놀랍게도, 첫 번째 보초의 목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이었다. '둘! 셋! 넷!' 십 장 간격으로 나누어 선 채 세 방향을 지키던 세 보초의 목 또한 모조리 허공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 네 개의 목은 오두막의 창을 꿰뚫고 쏘아져 들어갔다. 와장창! 앉은 채 검을 닦고 있던 자, 책을 보거나 바둑을 두는 자, 사색에 잠겨 있던 자……, 이들은 창이 박살나는 소리에 흠칫 시선들을 돌렸다. 그들의 시선 속으로 바둑을 두고 있다가 느닷없이 쏘아져 들어 온 인두(人頭)에 맞아 머리가 박살나고 있는 동료의 모습이 언뜻 비쳤다. "갈!" 순간, 검을 닦고 있던 살수 의 몸이 무섭게 문을 박차고 나갔다. "누구냐?" 그러나 그의 몸은 피투성이가 된 채 나갈 때보다 더욱 빠르게 되퉁겨 들어왔다. 동시에 서쪽 창문으로 두 개의 쌍륜이 무서운 기세로 쏘아져 들어왔다. 위이잉! 이어 동쪽 창문으론 세 자루의 비도(飛刀)! 슈우욱! 북쪽과 남쪽으로 각기 한 자루의 검과 비침! 파파팍! 한 흑의인이 사납게 외쳤다. "적은 많은 숫자다! 흩어져 응전하라!" 그러나 그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얼마나 헛된 것인지 이내 깨달았다. 한마디를 할 때 자신의 동료가 피를 흩뿌리더니, 말이 끝났을 땐 그 혼자 서 있었으므로……. 그는 상대의 무서운 살수에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때, 문으로 한 사람이 조용히 들어섰다. 흑의인은 그의 유난히 희고 긴 손가락에 끼인 물체를 보는 순간 비명처럼 외쳤다. "취국!" 무류흔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으니 됐다." 퍽---! 무류흔의 손가락 끝을 따라 흑의인은 이마를 움켜잡으며 쓰러져갔다. 그의 이마에는 한 송이 취국이 요염하게 꽂혀 있었다. 쓰러지는 순간에도 그의 얼굴에는 불신(不信)의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최소한 다섯의 사람들이 공격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빠를 줄이야……." 쿵! 와르르……. 무류흔은 무심히 사방으로 흩어진 병기를 주워 모으더니, 이어 우수를 가볍게 휘저었다. 푹---! 순간, 한 흑의인의 몸에서 피가 솟구쳐 흐르며 오두막의 벽에다 섬뜩한 글자를 새겨갔다. 귀역오가가 그의 일을 방해한 데 대한 경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