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객 - 15편 (15/36)
부드득! 그 나무토막이 부서져 나가는가 싶더니, 소년은 비명을 지르며 항아리 속의 손을 빼 올렸다. 동시에, 건조한 목소리 하나가 석실을 쩌렁하게 울렸다. "제육십이번 삼관통관 실패!" 제 12 장 화옥(華玉)과 본초(本草) -------------------------------- 하나의 비실이었다. 희미한 유등 불빛 아래 원탁을 마주하고 앉은 일곱 사람, 그들은 바로 소림 밀교 의 불문칠신이었다. 괴괴한 침묵이 흐르고 있더니, 문득 가장 상석의 신성천불이 나직한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수련을 시작한 지 백구십 일째……. 지금까지의 상황은 어떻소?" 냉막한 표정의 혈의법승이 말을 받았다. "현재 구 인이 제이단계 지옥관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십이 인이 제일단계 오관 이상을 통과했으며, 오십칠 인이 이관 이상을 나머지는 이관 아래입니다." "지옥관의 구 인은 분포가 어찌되오?" "먼저 와 있던 오십 인 중 육 인이, 그리고 나중에 온 사십구 인 중 삼 인입니다. 특히 추상, 검우, 금적해, 이 삼 인은 그 성취도가 가공할 정도입니다." 신성천불은 가볍게 백염을 쓰다듬으며 침중한 목소리를 토해 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너무 늦다. 우리가 원하는 삼십육 인이 지옥관으로 다 입관하려면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걸려야 할지…… 애초에 백팔십 일로 예정했던 수련이 늦어지는 이유는 분석해 보았소?" 온 얼굴에 검상 투성이인 몽화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미타…… 그것은 일종의 기괴한 큰 위기입니다. 불만이라고나 할까? 여하튼 묘한 분위기가 소년들 사이에 흐르고 있지요." 주육대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데 소승은 줄곧 기이한 것이 하나 있는데……." "흐흠, 그게 무엇인가?" "나중에 온 사십구 인 중 다섯 아이…… 즉 화옥, 유혜, 무비, 공족, 천맹, 이 아이들은 본래 그 바탕이 몹시 뛰어 나외다. 생사시험 때 추상 등과 더불어 높은 점수를 받은 인재들이지요." "……." "한데, 추상, 검우,금적해가 들어간 지옥관을 아직도 이들이 못 들어가고 있다는 것이……." 환상성니가 말했다. "재질의 차이일 수도 있잖아요?" "허어……, 화옥은 무류흔 다음의 고점자이오……. 유혜 또한 생사시험 서열 삼위…… 이 일엔 석연치 않은 점이 있소……." 주위가 약간 소란스러워지자 신성천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우리는 지금까지보다 배전(倍前)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소……. 무림은 갈수록 어지러워지고 있으니…… 그리고 성니……." 환상성니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 "사상자의 근황은 어떠하오?" "현재 세 소년이 거동을 못하고 있을 뿐……, 대체적으로 좋아요." "아미타불…… 되도록이면 단 한 명의 희생자도 없도록 각별히 노력을 기울여 주오……." "명심하겠어요." "또 한 가지……, 우리가 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무류흔은 어찌되었소?" 순간, 중인들은 일제히 환상성니를 바라보았다. 무류흔, 생사시험을 만점으로 통과한 희대의 기재……, 환상성니는 배시시 웃었다. 웃으며 그녀는 말했다. "지금쯤…… 오고 있을 거예요……." 불문칠신이 연석회의를 하고 있는 바로 그 시각, 성의 한 곳에서는 이미 야심한 시각인데도 한적한 해변가에 다섯 명의 소년들이 조용히 모여 앉아 있었다. 모닥불도 없고 말도 없다. 별빛은 바다 위에 무한대의 은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이따금씩 야조가 울부짖는 소리가 밤의 정적을 가르고 지나는 시각, 문득 일신에 화의를 걸친 준수한 소년이 우측 소맷자락을 걷어올렸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두 다리가 없는 소년이 역시 우측 소맷자락을 걷어올렸다. 그 동작은 조용히 나머지 세 소년에게도 파급되었다. 두 눈이 먼 소년이 소맷자락을 걷자 두 팔이 없는 소년이 우측 다리를 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의 별빛조차 넋을 잃어버릴 듯한 아름다운 미소녀가 옥같이 흰 팔뚝을 내놓았다. 별빛 아래, 교차된 팔과 팔뚝들…… 한데 보라! 그 팔뚝에는 하나같이 기이한 문양의 글들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 귀강(鬼江), 귀루(鬼樓), 귀해(鬼海), 귀곡(鬼谷), 귀담(鬼潭)-- 그것은 전자체의 글씨, 문득 최초로 팔뚝을 걷었던 준수한 소년의 입가에 사악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우리는 한 울타리요……, 친구들……." 아름다운 소녀가 말을 받았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운명, 이 알 수 없는 괴물이 각각 화옥, 유혜, 무비, 공족, 천맹이라 이름붙여 놓은 이들, 이들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쏟아져 내리던 별빛 하나가 미소년 화옥의 치아를 흰 빛으로 물들였다. "그 동안 수고들이 많았다. 이제 우리의 임무를 수행할 때가 되었다." 미소녀 유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중들이 우릴 의심하고 있는 것 같아요." "흐흥! 우리는 어차피 그들의 의도를 훼방놓기 위해 투입된 정예들이야. 약간의 의심은 할 수 없어. 무비는 무엇을 좀 알아냈나?" 양팔이 없는 무비가 침통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보 일, 불문칠신이 최종적으로 추리려는 인원은 삼십육 인이요." "응? 그럼 육십사 인이 탈락인가?" "그렇소." "공족은?" 두 다리가 없는 공족이 말했다. "지시한 대로 염탐했으나 무류흔이란 자는 아예 이 섬에 오지도 않았소." "그래? 그자가 골칫거리였는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화옥이 다시 입을 열었다. "어쨌든 좋아, 내일부터 전면 행동개시다. 의견들은 없나?" 유혜가 웃으며 말했다. "수업자들 중에 서서히 불만이 일고 있는 것 같아요." 천맹이 말을 이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 수업자들과 불문칠신을 이간시키는 것이 우리 일에 좋을 것 같소." 화옥의 입가에 씩 웃음이 번졌다. "맞았어. 그게 해결점이야. 우리가 해야 할 첫째 목표는 불신감 조성이다. 수업자들에게 의심이 없도록 그들을 선동해야 해. 공족은 어떤가?" 의문을 던져 놓고 말을 시키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중인들을 유도해 나간다. 화옥, 그에게선 냉철한 지도자의 기질이 풍겼다. 공족이 말했다. "몇 명을 죽여야겠소. 그리고 그 죽음의 원인을 불문칠신에게 전가시키는 것이오." "훌륭하군. 그러나 거기에는 난점이 있다. 불문칠신이 그 일을 눈치챌 수 없게 해야 해" 물 흐르는 듯하던 토론이 뚝 막혔다. 중인들은 난처한 기색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죽여서 전가시킨다면 이간질은 간단하다. 하나, 불문칠신은 하루도 못가 그 사실을 알아차릴 것이 아닌가? 화옥의 입가에 신비로운 웃음이 번졌다. "그 해답은 바로 응혈 강시 에 있지. 그들을 죽여 응혈 강시 로 만들면 되는 거야" 순간, 네 소년의 얼굴에 공포의 기색이 번졌다. --응혈 강시 ! 사람이 죽으면 그 명이 끊어진다. 그리고, 그 명 대신 시체에다 주문을 불어넣어 하나의 도구를 만드는 것이 강시 술일진대 그 중에서도, 응혈 강시 란 가장 완벽한 강시 였다. 즉, 강시 의 흔적이 완벽하게 나지 않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한 사람이되 속은 죽은 꼭두각시, 그밖에도 이 응혈 강시 에는 한 가지 무서운 능력이 있다고 했다. 하나, 그 무서운 능력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 응혈 강시 술은 천 년 전 혈의마시(血醫魔屍)이후로 철저히 절전(絶傳)됐던 것이기 때문이다. 한데…… 바로 그 응혈 강시 라니……. "그 방법을 아시오?" 중인들의 놀란 외침에 화옥은 빙그레 웃었다. "심심풀이로 익혀 둔 적이 있지……." 웃음, 그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일순 가슴이 섬뜩해지는 것을 느꼈다. '악마……!' 화옥은 중인들이야 섬뜩하든 말든 아랑곳 않고 조용히 말을 이어 나갔다. "즉 지옥관의 구 인과 우리 오 인, 그리고 성적이 뛰어난 이십이 인, 도합 삼십육 인을 제외한 육십인사 인을 일시에 그리고 몰래 죽여 응혈 강시 로 만들어 버린다……." "……." "연후, 멀쩡한 사람의 탈을 쓴 강시 들을 하나씩 죽여 나가는 거다. 마치 불의의 사고가 난 것처럼 강시 들은 죽으라고 말만 해도 죽게 되니까." "삼십육 인은 왜 살리오?" "그들은 막대한 이용가치가 있지……. 나중에 알게 된다……." "……." "불문칠신은 허둥대다 결국 원인을 알게 되겠지……. 하나 그때는 이미 늦는다. 그들은 불신과 증오에 불탄 삼십육 인의 칼에 난도질당하는 거야. 핫하…… 그리고……." 화옥은 신비롭게 웃으며 말했다. "나도 무심히 하나의 큰 비밀을 듣게 됐지……." "그게 무엇이오, 화옥?" "금마경(禁魔經)의 얘기를 아나? 그것이 바로 불문칠신의 수중에 있어." 순간, 네 소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금마경?" 오오…… 금마경, 금마경이라니? 이는 바로 팔백 년 전 광운상인이 환우오천마를 제압하기 위해 만들었던 전설의 기서가 아닌가? 네 소년들은 할말을 잃었다. 그들의 시선은 너무 큰 놀람으로 초점마저 흐려져 있었다. 화옥은 그런 그들의 얼굴을 하나씩 둘러보며 씩 웃었다. "우리는 애초에 오가연합(五家聯合)의 정예들로서 이곳에 왔다. 그저 이곳을 헤집어 놓는 게 우리의 주어진 임무였어. 한데 나는 지금 생각이 바뀌었다." "……." "이 임무를 마치고 돌아가봐야 우리에게 떨어지는 것은 몇 마디의 칭찬, 그리고 약간의 휴식뿐이야. 꿈도 미래도 없는 살수 의 생활을 앞으로도 또 해야만 한다." "……." "그러나 금마경은 달라. 그것은 우리에게 천하를 줄 수도 있어. 뿐인가? 막대한 권력, 부…… 모두 우리 것이 되는 거야……." 천하, 화옥의 말투는 마치 천하를 자기 집 안방처럼 말하고 있었다. "마침내 기회가 온 거야……." 그의 말은 너무 쉬워서 마치 빈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소년은 창망한 시선으로 서로의 얼굴들을 마주보았다. 화옥의 뜻을 모르겠다는 듯……. 화옥은 담담하게 웃었다. "믿어지지 않나?" 말과 함께 그는 주머니 속으로 손을 집어넣었다가 꺼냈는데 그 손 위에 들린 것은 바로 명패(名牌), 산산이 조각 난 하나의 취옥명패였다. 순간, 네 소년은 호흡을 멈추었다. "그것은……?" 어찌 모르랴. 제각기 모양은 틀리나 그들도 저런 것을 하나씩 지니고 있다. 그것은 바로 각자의 방파에서 사용하는 자신들의 성명패였으며 만약, 저것을 부수거나 잃어버린다면 죽음이라는 무서운 계율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화옥의 뜻은 분명했다. 그는 이미 소속방파에서 탈피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기회는 두 번 오는 게 아냐. 두 번이나 기회가 온다고 믿는 놈은 바보지. 두 번째 기회란 바로 죽음이야." 이때 돌연, 유혜가 베시시 웃으며 목에 걸고 있던 하나의 홍옥패를 풀어냈다. 그녀는 그것을 막 움켜쥐어 산산조각으로 부숴냈다. "어차피 당신은 우리 오가연합정예의 수하였어요. 나는 당신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없어요." 무비와 공족, 천맹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더니 다음 순간, 맹렬히 고개들을 끄덕였다. "우리도 따르겠소!" 화옥은 단아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한마디로 결정했다. 나는 여러분들이 현명한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어. 아니었다면 조금 불쾌해졌을 테지……." 말을 잇던 그의 두 눈에서 돌연 무서운 섬광이 피어올랐다. "미래의 무림이 놀랄 일은 드디어 시작되었다! 바로 이 순간부터……." 이ㄸ다. 돌연, 나직한 웃음이 허공에 피어올랐다. "핫하…… 그 말은 좀 이른데……?" 순간, 다섯 소년은 안색이 싹 변했다. 이목을 피하기 위해 택한 바닷가가 아닌가? 한데, 감히 그 누가 자신들의 청각을 속이고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말을 한단 말인가? 그들의 시선이 불똥튀듯 바다로 향했다. 말은 바로 그곳에서 들려 왔기 때문이다. 쏴아…… 철썩……. 쿠르릉……. 파도, 그 위에 흰 점 하나가 둥둥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이어, 그 점은 스르르 몸을 일으켰는데 그는 바로 구십구 인의 수업자 중 본초가 아닌가? 본초, 생사시험 때 가장 많이 말을 한 소년 웅변가, 그리고 여섯 번째의 고점자. 그는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왜 그러고들 있나? 헤엄치는 사람을 처음 봤나?" 천맹이 으르릉대듯 외쳤다. "너는 이곳의 말을 다 들었나?" "물론, 귀는 들으라고 뚫려 있는 것이니까." 순간, 천맹의 우수가 번쩍 허공을 갈랐다. 파파팟---! 그의 손끝에선 부서진 성명패의 조각들이 유성처럼 와르르 쏟아져 나왔다. 실로 가공할 기세! 하나, 본초는 담담하게 웃으며 손으로 둥근 원을 한 바퀴 그렸다. 파파팟! 무심한 동작이었으나 다음 순간, 성명패의 조각들은 모조리 그의 소맷자락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는 소맷자락을 툭툭 두들기며 말했다. "좋은 증거물이군……. 귀역오가에선 이것을 몹시 비싸게 사려할 것이나……." 화옥의 얼굴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이목을 숨기기 위해 송장처럼 바다에 떠온 솜씨, 그리고, 저 일수의 금나수 , 그리고…… 여유로운 태도…… 실로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염두에 두지 않은 것은 아니나…… 생각보다 훨씬 뛰어난 자다……. 실수를 했군…….' 그는 설레설레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웃었다. "본초,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 본초는 큰 입을 버리며 껄껄 웃었다. "과연 인물이다. 그 냉정한 성품은 위(魏)의 조조 를 능가하는 걸? 나는 아까 당신이 말한 권력이며 부에 관심이 좀 있소." "다 된 잔치집에 와서 식객 노릇인가?" "섭섭한 말씀, 나는 따지고 보면 쓸모가 많은 사람이지. 이것을 보면 아마도 마음이 바뀔걸?" 그는 말이 끝나자 마자 품속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치솟는 하나의 은빛 단검 . 순간, 공족이 싹 안색이 변하더니 자신의 허리춤을 더듬었다. 없다. 자신의 단검 은 분명히 저 입큰 놈의 손에 있었다. 이어, 하나의 비녀가 나왔다. '내 옥잠!' 유혜가 황망히 머리를 더듬고, 연이어 무비와 천맹은 자신의 돈주머니와 병기가 사라진 것을 벌레 씹은 표정으로 확인해야만 했다. 화옥은 냉랭하게 웃었다. "도둑이 청하대세를 논하겠다는 건가?" "허어…… 도둑의 삼대여건이 무엇이오? 좋은 시력과 빠른 솜씨와 번개같은 발이 아니오? 나는 도주에 일가견이 있소. 귀역오가의 추적자 따위는 콧김만 불어도 백 리 밖으로 따돌릴 수 있소." "큰소리는 지나치면 자신의 무덤을 판다." "제 무덤은 못 파니까." "본초, 당신은 혼자, 우리는 다섯, 우리는 당신 하나쯤 응혈 강시 로 만드는 것은 조금도 망설이고 싶지 않소." 본초는 씩 웃으며 자신의 입을 가리켰다. "문제는 이 큰 입이오. 내 목소리는 워낙 커서 십 리 밖에서도 들리고 또, 불문칠신인가 하는 땡중들은 나이가 많아서 귀들도 밝다는 것이 문제지." "당신은 왜 그렇게 하지 않고 있소." "기회는 한 번 뿐이잖소." 시선과 시선이 허공에서 불꽃 튀듯 얽혔다. 한치의 양보도 없는 설전이었다. 화옥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를 끄는 사람이오. 이리 와서 대화를 좀 해 봅시다." "진작 그러실 일이지……." 본초는 싱글벙글 웃으며 첨벙첨벙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발이 막 모래를 딛는 순간이었다. 슈슉---! 돌연 소리도 없이 유혜, 무비, 공족, 천맹이 그를 향해 덮쳐 들었다. 파파팟! 그물 같은 장영(掌影), 휘몰아치는 경기(勁氣), 대라신선이라도 죽음을 면치 못할 가공할 공세! 하나, 이들 사 인의 행동은 이내 얼음처럼 뚝 굳어 버리고 말았다. 그들의 얼굴은 한 곳을 향한 채 묘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벽력탄(霹靂彈), 본초가 손바닥에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은 바로 십 장 방원을 초토로 만들 수 있는 벽력탄이었던 것이다. "화형의 말이 맞았소. 이들 네 분은 몹시 현명한 분들이시군……." 화옥의 얼굴이 묘하게 변했다. 그것은 바로 웃음을 참지 못하겠다는 표정, 이어 그의 입에선 낭랑한 대소가 터져 나왔다. "핫하!" 본초도 웃었다. "핫하……." 하나 그것도 잠시,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일시에 뚝 웃음을 그치더니 서로의 시선을 마주쳤다. 화옥이 말했다. "만나서 반갑소." 본초는 싱긋 웃으며 무릎에 들고 있던 벽력탄을 휙 버렸다. 기겁할 듯 놀라 벽력탄을 향해 몸을 던지는 공족과 무비, 그런 그들의 귓전으로 본초의 투박한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화형은 저 벽력탄이 가짜임을 알고 계셨겠지?' 밤, 밤이 깊어 간다. 찰랑찰랑……. 별빛, 파도, 참으로 좋은 밤인데…… 동녘으로 새벽 미명이 부옇게 떠올 때에야 육 인은 엉덩이에서 모래를 털었다. * * * 수련 제 이백일 째, 도합 사십육 명이 제이단계 지옥관으로 들어갔다. 그 속에는 화옥 등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이 오지에는 무서운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포관(布關), 폭포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관문. 사십이의 숫자를 새긴 소년이 막 폭포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었다. 파파팍! 폭포의 힘에 휩쓸리면 안 된다. 그는 그 안에서 다 떨어져 내리기 전까지 하나의 초식을 완벽히 펼쳐 내야만 했다. 그에게 주어진 초식은 선인지로(仙人指路)였다. 소년은 떨어지며 사력을 다해 초식을 펼치기 시작했다. 제일변식(第一變式)에 이어 제이변식……. "으윽!" 그의 입에서 숨막히는 비명이 터져 나온 것은 바로 그때, 소년은 두 눈을 부릅떴다. 느닷없이 폭포 속에서 날카로운 돌멩이 하나가 튀어나와 그의 복부를 갈랐던 것이다. 그는 이것이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길도 없이 밑으로 곤두박질쳤다. 풍덩! 처음에 소년들은 그가 힘이 딸려 떨어진 것인 줄 알았다. 그러나, 잠시 후 폭포 아래의 연못에 붉은 피가 번지고 소년의 시체가 떠올랐을 때에야 다른 소년들은 다급히 외쳤다. "사십이법이 죽었다!" 웅성웅성……. 소년들은 구름 ㄸ처럼 모여들었다. 사람이 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사(沙)…… 사관(沙關)에……." 한 소년이 울부짖듯 뛰어왔다. 소년들은 의아한 시선을 던졌다. 사관이 어찌됐단 말인가? 하나, 결과는 너무 끔찍했다. 사관, 밟기만 해도 데이는 열사(熱沙) 속에 목만 내놓고 파묻히는 관문이었다. 다섯 명의 소년, 그들은 그 목 위의 머리들이 박살이 난 채 죽어 있었던 것이다. 포관, 사관을 필두로 하여 수관의 급류를 헤치던 소년의 몸이 조각났다. 충관의 독을 시험하던 소년이 피를 토하며 죽고. 임관의 숲을 달리던 소년이 영원히 그 속에서 나오지 못했다. 사흘, 불과 사흘의 시간 동안 삼십 명도 넘는 소년들이 무더기로 죽어 갔다. 불문칠신은 크게 당황했다. 그들은 사고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 어지러이 뛰어다니고 연신 회의를 열었으나, 그런 그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시 이틀 동안 이십 명의 소년들이 목숨을 잃었다. 어둠, 한 소년이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시체 하나가 푸줏간의 고기처럼 매달려 있었다. 소년의 검은 시체의 온몸 혈도 를 하나하나 정확하게 베어 나가고 있었다. 이곳은 제이 단계의 지옥관. 어떠한 가혹한 짓이든, 어떠한 비정한 짓이든 웃으며 해내야 하는 절대악의 장소. 시체를 베는 것은 그 중에서도 가장 초보적인 일이었다. 그래서인가 소년의 몸에서는 푸른 인광(燐光)이 번뜩이고 있는 것 같았다. 이때 돌연, 미친 듯 검을 휘두르는 인영의 옆으로 한 사람이 슬그머니 다가섰다. 그는 바로 화옥이었다. 화옥은 말없이 소년의 옆에 있는 시체를 베기 시작했다. 팍! 팍! 위에서 아래로, 좌에서 우로……. 한참의 시각이 지나도록 검을 휘둘러 대던 화옥이 문득, 시선을 시체에 고정시킨 채 입을 열었다. "어떻게 생각하시오?" 소년의 검이 뚝 멈췄다. 하나, 그는 이내 다시 시체를 베어 나가며 말을 받았다. "무엇을 말이오?" 화옥은 연신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 "내 검이 당신을 찌를지도 모른다고 생각지 않소?' 순간, 소년은 흠칫 놀랐으나 곧 무심하게 말을 받으며 검을 휘둘렀다. "왜?" "요즈음 우리는 참으로 많이 죽고 있소……." "……!" "한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구려. 우리는 살수 도 뭣도 아닌 것이라고 말이오." "……!" "의사들은 새로운 약을 만들어선 짐승에게 먼저 시험하지요……. 나는 우리가 바로 그 실험용 짐승이 아닌가 생각하오." 소년의 검이 툭 땅으로 떨어졌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소?" "핫하…… 우리가 수련이라고 베고 있는 이 시체도 어쩌면 우리보다 먼저 이곳에 왔었던 선배의 것일지도 모르는 것 아니오?" 화옥은 비로소 검을 거두었다. 그는 웃으며 소년에게 포권지레를 해 보였다. "용서하시오. 수련을 방해할 의도는 아니었소. 다만 가슴이 좀 답답하여……." 화옥은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망연히 바라보던 소년, 그의 손은 다시는 검을 잡지 못했다. 대신, 그의 양손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 "실험용이라…… 고……?" 살수 란 죽이는 일도 잘해야 하지만, 죽인 후의 뒷처리도 깨끗해야 한다. 지옥관 제이단계. 시체 분해! 시체를 불로 태우거나 토막을 내거나 흔적없이 감추는 방법의 수련을 하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