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객 - 14편 (14/36)
천하는 뒤숭숭했다. 끝이 없도록 넓은 이 중원의 광토(廣土) 위로 그것도 한 줄기의 끈적한 피의 예감……. 쓸쓸한 가을이 저물어 가고 그 해 첫 눈이 내리던 어느 하루! 소문, 그렇다. 그 소문은 무엇인가 끈끈한 예감에 사로잡혀 있던 사람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살(殺)! 돈을 받고 사람을 죽여주는 청부살인집단. 왜?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그 숫자는 다섯…… 그리고, 이 공포의 집단을 사람들은 귀역오가(鬼域五家)라 불렀다. --귀역오가(鬼域五家)……. 천전강(天錢江), 우리는 비싸다. 황금 만 냥 이하의 청부는 받지 않는다. 외상은 불허한다. 대금은 현찰, 단 죽일 자는 확실히 죽여준다. 무루(武樓), 강자만 죽인다. 강자가 아니라면 청부를 하지도 말라. 무술에 강한 자, 죽음에 강한 자, 색(色)에 강한 자, 가 난한 사람에게 강한 자…… 토막토막 죽여준다. 색해(色海), 옥수(玉手)가 뻗쳐지는 순간 허공에는 환상 같은 피보라가 일리라. 돈은 필요 없지……. 당신은 혹시 한 개의 훌륭한 초식을 가지고 계시나요? 초식 하나에 한 사람을 죽여 드립니다. 걸곡(乞谷), 목숨을 구걸하오. 누군가 당신을 죽여 달라 했으니…… 그리고, 찬 밥덩이를 던져 받았으니, 할 수 없이 당신의 목숨을 구걸하오……. 그렇소. 조용히 목숨을 끊어 그 목을 적선해 주시구려, 나리……. 반의담(反義潭), 착한 사람은 죽이지 않아. 우리는 불충불효불의를 사랑하오. 폭력을 숭배하고 도덕을 증오하오……. 세상의 악인이라 낙인찍힌 사람들은 절대 죽이지 않소.선한 척하는 사람만 죽이오. 우리는 위선을 베는 것이오……. 귀역오가(鬼域五家), 결코 같은 무리들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을 죽이고 그 돈을 받는 데서 이들은 같은 맥을 지닌다. 이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몰랐다. 결코 몰랐다. 어딘지, 누군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것은 단 하나, 이제는 섬서 (陝西)의 전설적인 검도의 달인 오해무적 미검혼이 덧없이 죽어 가더니, 오늘 아침엔 종남 (終南)의 명숙(名宿) 천절우사(天絶羽士)가 목이 잘리고…… 같은 날 저녁엔, 사천대협(四川大俠), 이십육수난피풍검(二十六手亂皮風劍)으로 일세를 풍미하던 기검천룡(奇劍天龍)이 침상에서 두 눈을 부릅뜨고 죽었다는 것뿐……. 태평세대에 느닷없이 피의 혈풍을 휘몰고 나타난 오대살인가문(五大殺人家門), 이것은 빙산의 일각인지도 몰랐다. 대혈풍의 전주에 불과한지도 몰랐다. 인세의 추악함을 비웃기라도 하듯,말없이 한 해의 마지막 계절은 시작되고 있었다. * * * 문득, 길을 가던 무류흔은 가벼운 허기를 느꼈다. 광동 (廣東)의 한 관도(官道)였다. 북쪽의 차가운 기후와는 아랑곳없이 이곳은 여전히 남국의 햇살이 따갑기만 한데…… 불문칠신이 있는 고련도(苦練島)까지는 앞으로 열흘 길, 무류흔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한 개의 나무 그늘 아래 두 사람의 유상(遊商)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한 사람은 만두를 팔고, 한 사람은 물을 팔고 있었다. 대저, 중국 남부지방에는 물이 몹시 귀하여 이러한 수상(水商)은 흔히 볼 수 있는 터, 무류흔은 그쪽으로 다가가 약간의 만두와 물을 시켰다. 만두는 맛있었다. 무류흔은 어른 주먹만한 만두 세 개를 단숨에 먹어 치운 후 또 하나를 집어들었다. 삿갓을 깊이 눌러 쓴 만두상이 말했다. "식욕이 좋으시구려." "핫하…… 배가 고팠지요." 무류흔은 시원하게 웃으며 만두를 베어 물었다. 딱! 이때, 무엇인가 딱딱한 물체 하나가 이에 씹혔다. 황급히 뱉아 낸 물체, 씹힌 만두조각 속에 든 것은 기이하게 조각난 여자의 비녀가 아닌가? 순간, 무류흔의 안색이 눈에 띄도록 홱 돌변했다. 그는 어찌나 놀랐던지 주춤 뒤로 물러나기조차 했다. "이것은……?" 오오! 비녀, 눈에 익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요요가 즐겨 꽂던 옥잠이었던 것이다. 무류흔의 몸이 붕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는 이 장 뒤로 사뿐 내려서며 안색을 싸늘하게 굳혔다. "당신은 누군가……?" 사람을 죽여 그것으로 만두를 빚고 정육점에 태연히 사람고기를 내거는 무법이 횡행하던 시절……. 무류흔은 말을 하면서도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제발…… 이자가 요요를 죽인 것이 아니기를…….' 만두상은 태연하게 말했다. "비녀 쪼가리가 무엇이 그리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만들다 보면 실수로 그런 것이 들어갈 수도 있지 않소?" "그 비녀의 임자를 본 적이 있나? 이 말이 끝날 때까지도 올바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그땐 각오하라!" 일찍이 무류흔으로선 내뱉아 본 적이 없는 험악한 말투였다. "호오…… 그 미녀의 임자를 아시오? 그녀에게 관심이 있소?" 무류흔의 검미가 곤두섰다. 섰다 싶은 순간 그의 우수가 섬광처럼 작렬했다. 슈욱---! 손이로되 오히려 검보다 더 날카로운 수검(手劍)! 순간, 만두상의 종적이 그 자리에서 퍽 꺼지고 말았다. 애꿎은 나무 하나만 밑동이 무우처럼 잘려 나가고, 옆에 있던 수상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쳤다. 두두두……. 쾅---! 풀썩 일어 오르는 먼지. '공중이다!' 무류흔의 몸이 허공으로 무섭게 치솟아 올랐다. 오르며 그의 우수는 천외성전의 천룡대검무를 흩뿌려 내고 있었다. "천룡박토(天龍撲土)!" 만두상은 그의 동작이 이토록 신속할 줄은 몰랐던 듯 짤막한 기염을 토하며 일장을 맞받아 쳤다. 슈슉---! 꽈꽝---! 두 사람의 몸이 퉁기듯 뒤로 나누어졌다. 쿠쿠쿵! 신형을 세우는 무류흔의 앞에 패인 발자국은 똑같이 세 개. '무서운 고수…….' 반면에, 만두상은 세 걸음을 물러 나오고도 한 바퀴 더 몸을 돌리고서야 간신히 멈춰 섰다. 그의 공력이 약간 딸리는 듯, 무류흔은 냉소를 지으며 재차 공력의 채비를 차렸다. "오호호……." 하나 순간, 이게 무슨 소리인가? 만두상의 삿갓 속으로부터 느닷없이 흘러나온 교소(嬌笑)! 무류흔의 몸이 주춤했다. 그는 온몸의 힘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그 웃음은 바로 요요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짐작대로 삿갓 속에서 옥같이 투명하고 맑은 요요의 얼굴이 나타났다. "요요……." 요요는 냉랭히 코웃음치며 말했다. "흥! 그래도 내가 누군지는 알아보는군요?" "요요……, 너는……." 무류흔은 말을 이으려다 한 줄기 탄식을 터뜨리고 말았다. 요요는 그를 따라 나온 것이다. 그 엄청나고 무서운 마종의 재질을 지닌 채 온갖 사악이 난무하는 이 세상으로……. * * * 한 사람은 걷고 한 사람은 따른다. 앞서 가던 사람이 멈추면 뒤를 따르던 자도 멈추고, 전자가 다시 걸으면 후자도 따라 걸으니……. 논둑길, 광활한 평야의 저편으론 붉은 노을이 핏빛 막을 드리우고 있는데……. 두 사람, 삼 장여의 거리를 두고 걷는 그들의 뒤로 긴 그림자가 조용히 따르고 있었다. 무류흔은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 순간, 요요도 멈칫 걸음을 멈추더니 입을 삐죽 내민 채 길가의 애꿎은 나무 등걸을 툭툭 찬다. 무류흔이 시선을 거두고 다시 걸으면 요요도 조용히 따르고……. 무류흔은 탄식을 터뜨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쩌랴! 저 아이는 이미 세상으로 나와 버렸다. 그러나, 내가 가는 곳은 시련의 장소…….' 무류흔은 일시 마땅한 대응책이 떠오르질 않았다. 바로 그때다. 그의 시선이 문득 한곳을 향했다. 밀밭, 그 한쪽을 피로 물들이며 쓰러져 있는 한 사람,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광경이었다. 그는 목이 잘려 있었다. 목을 떨군 동체에선 아직도 더운 김이 무럭무럭 나는 피가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무류흔은 시체의 옆 땅에 꽂힌 한 자루의 장검 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노란 수실의 손잡이에 새겨진 문각. 조주 이가(趙州李家) > " 조주 이가라면 검의 사대명문 중 하나가 아닌가……?" 시체의 가슴에는 하나의 핏빛 혈화(血花)가 놓여 있었다. 또한 잘린 목은 남자인데도 짙은 화장을 하고 있었다. 무류흔은 다만 괴이하게 여겼을 뿐이었지만, 이는 바로 근자에 살명(殺名)을 떨치고 있는 귀역오가 중 색해의 살인식이었던 것이다. 색해(色海), 그들은 꼭 사람의 목을 잘라 죽였다. 그리고, 그 얼굴은 곱게 화장을 시키고 가슴엔 하나의 혈화를 꽂아 두는 것이다. 이때다. 문득, 무류흔은 요요가 기이한 시선으로 이 시체를 바라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시선 속에 깃든 것이 욕망임을 아는 순간, 무류흔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있었다. '이 아이는 시체를 처음 보는 것일까?' 요요는 무엇이든 흉내를 내고 싶어한다. 이 아이는 정말 사람의 목을 자르고 싶어할지도 몰랐다. 무류흔은 황급히 땅을 팠다. 이어, 시체의 목을 인체에 정갈스럽게 붙인 후, 그 손을 가지런히 가슴에 모아 주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요요……. 이 한 사람의 죽음으로 하여 주위의 여러 사람들은 커다란 슬픔에 잠기게 된다……." "왜 슬퍼해요?" "영원히 헤어지기 때문이다……." 요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또한 헤어짐의 아픔을 바로 며칠 전에 경험했으므로……. "인간이 인간을 죽일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다……. 어떤 생명이든 태어난 이상 고귀한 것이다. 너는 이 도리를 잊지 않도록 해라……." 무류흔이 무덤을 향해 정중히 대례를 올리자 요요도 그를 따라 절을 올렸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운 시선 속 깊숙이 반짝인 혈광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황야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곳의 주인은 위호해(魏好海)라는 사람으로써 본래 식객을 맞아들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성읍과 멀리 떨어져 있는 데도 그의 장원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위호해는 발랄하고 수업자차림의 한 미소년과 흑백이 유난히 분명한 앙증맞도록 예쁜 미소녀를 매우 반가이 맞아들였다. 위호해는 아름다운 소년 소녀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는 나이 육십에도 아직 무자(無子)였기 때문이다. 신객이 오면 주인은 얼굴만 비친 후 총관(總官)이나 집사는 식객을 접대했었다. 그러나, 위호해는 예를 깨고 이 미소년, 소녀를 자신이 직접 대접했다. 식사 때 그의 태도는 매우 은근한 것이었다. 그는 특히 미소녀의 분홍빛 뺨을 어루만지며 이만한 딸이 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고 겸연쩍은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날 밤, 무류흔은 요요와 마주 앉았다. 그는 요요의 고사리 같은 손을 어루만지며 입을 열었다. "요요, 이 오빠는 할 일이 있다……." 저녁 내내 기분이 좋던 요요는 이 말에 돌연 시무룩해졌다. 무류흔은 온화하게 웃으며 그녀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남자란 다 그렇다. 세상에서 하나의 집을 세우고 살기 위해선 일정한 배움을 거쳐야 한단다……" "……" "마침 이 집의 주인은 몹시 다정한 사람이다. 너는 이곳에서 나를 기다려 주지 않겠느냐? 오빠는 육 개월 후에 반드시 온다." "육 개월……?" "그래, 너를 데리러 오지. 그때는 요요와 떨어지지 않을 것을 맹세하마." 그녀는 자신이 고집을 부려 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녀는 이윽고, 고개를 끄덕이며 하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무류흔은 손가락을 마주 걸며 그녀를 조용히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 "반드시…… 온다……" 날이 밝자 무류흔은 떠났다. 그는 몇 번이고 위호해부부와 함께 문가에 선 요요를 돌아보며 떠났다. 요요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하나, 무류흔의 모습이 아득히 평원 너머로 사라지자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던 웃음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로부터 그녀는 다시는 웃지 않았다. 요요, 이 귀엽고 아름다운 소녀에 대해 위호해 부부는 극진한 정성을 다했다. 그러나 위호해 부부는 웃음기 사라진 그녀를 늘 안타까워했다. 그들은 온갖 비단으로 아름다운 옷을 지어 주고, 북경 의 요리사를 초청하여 맛깔진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왕도 금릉 의 광대를 특별 초빙하여 연극을 벌이기도 했으나 모든 사람들이 포복절도하며 웃는데도 요요만은 끝내 웃지 않았다. "애가 너무 차갑구려……." "핫하……. 방정맞은 것보다야 백 배 낫지 않소? 환경에 적응을 하면 나아질 테니 노력해 봅시다……." 그러던 어느 날 희대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이 벌어진 것은 남국의 태양도 유난히 무덥던 어느 오후였다. 한 사람, 시체! 끔찍했다. 말할 수 없이 처참했다. 맹수에게 찢김이라도 당한 것인지 온몸은 난자 당해 창자가 튀어나온 데다가 그 목이 뎅강 잘려 나간 목불인견의 시체였다. 이 시체를 제일 먼저 발견한 사람은 장의 청지기 노인이었다. 시체는 화원 속에 있었다. 장원의 식객 중에는 무림인들도 꽤 있었다. 그들은 살인의 흉수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목이 잘려 나간 부분이 예리한 것으로 보아 이는 무림고수의 짓이요, 시체의 두 손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반항할 틈도 없이 당했다는 것이 그들이 지닌 단서였다. 그러나, 흉수는 끝내 찾아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서, 제이, 제삼의 살인은 거듭됐다. 죽은 자의 모습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사람들은 치를 떨며 외쳤다. 도대체 누가……? 왜? 진풍(陳風), 그의 호는 팔비사(八臂蛇)이다. 외호를 보아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몹시 민감한 후각에 전문적인 추적술을 갖춘 위인이였다. 그는 장원에서 거듭 벌어지는 살인사건에 깊은 의혹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죽은 자는 한결같이 이 장원 내의 사람들이다. 밖에선 전혀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흉수가 이 장원 내의 사람이란 뜻이고…….' 둘째, 죽은 시체의 모습이 한결같다는 것이다. '이는 흉수가 하나의 살인 수법밖에 모르는 자일 터…….' 셋째, 그는 장소에 착안했다. 죽은 자들의 거처는 언뜻 보기엔 동서남북으로 무질서하게 난립되어 있었다. 하나, 전체를 연관지어 볼 때 그 중간지점을 압축시킬 수 있었다. '중간지점, 그곳에 범인이 있을 것이다. 그는 애써 장소를 바꾸고 있지만 무의식중에 자신의 거처를 노출시킨 것이다……. 도대체 어떤 놈인가……? 나는 이 자가 지금 재미로 살인을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팔비사 진풍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사냥개처럼 주위의 도표를 짚으며 이곳까지 왔다. 그가 서 있는 곳은 대충 중간지점이었다. 그는 눈앞에 있는 누각을 노려보았다. 정교한 누각이었다. '이곳은……?' 언뜻 지형을 떠올려 보던 그의 얼굴이 그만 딱 굳어 들고 말았다. '제기랄! 그녀의 처소가 아닌가? 이게 어찌된 거야?' 이때 돌연, 그의 두 눈이 열 배로 확대됐다. "헉!" 믿을 수 없다는 듯 주춤 뒤로 물러나는 몸, 그 몸은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다…… 당신은……?" 애석하게도 그의 말은 다 이어지지 못했다. 빛! 이 극렬한 광채들은 그의 몸을 난자하고 있었다. 맹수의 발톱처럼 마귀의 저주처럼, 그리고……. 푸욱---! 피를 흩뿌리며 솟아오른 팔비사의 목은 하나의 정교하고 고운 손이 사뿐히 받아 들었다. * * * 밀실, 어둡고 축축하다. 한 소녀가 방글방글 웃으며 무슨 일엔가 열중하고 있었다. 예쁜 양손에 들린 것은 화장도구, 이 야밤에 그녀는 화장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연지와 분이 발려지고 있는 것은 그녀의 얼굴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의 목이었다. 토닥토닥……. 정성들여 인두에 화장을 하고 난 소녀, 배시시 웃으며 만족스러운 듯 이리저리 목을 돌려보더니 그것을 밀실 한쪽의 선반 위에다 올려놓았다. 선반 위에는 이미 다섯 개의 목이 더 올려져 있었다. 미소녀는 꿈결 같은 눈빛으로 놓인 목의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여섯…… 후훗…… 육 일이 지났다……. 앞으로 일백칠십사 일 만 지나면 오빠가 돌아오신다……." * * * 무류흔은 망망대해를 마주하고 우뚝 섰다. 바다는 쉴새없이 흰 포말을 일으키며 부서지고 조각나고 있었다. 그는 하나의 쪽배로 가볍게 뛰어들었다. 청명한 하늘, 갈매기와 파도 소리……. 무류흔은 싱긋 웃으며 힘차게 노를 밀었다. 배는 스르르 바다 한가운데를 향해 밀려 나가기 시작했다. * * * 고련도(苦練島), 목탁 대신 힘을! 불경 대신 검을! 소림 밀교 가 힘의 불교를 부르짖으며 전무후무한 불문 살수 를 키워 내기 위해 선택한 절대의 오지(奧地), 이곳은 지형적으로 매우 우수한 곳이었다. 밟기만 해도 발바닥이 타 버리는 열사(熱砂)의 해변과 독충, 맹수가 우글거리는 대밀림, 그리고 장엄한 폭포와 계곡, 험산 등……. 소림 밀교 는 수련과정에 다섯 가지의 원칙을 세웠다. -- 첫째, 도태하는 자는 죽는다. -- 둘째, 살려고 하는 자는 죽는다. -- 셋째, 악하지 않은 자는 죽는다. -- 넷째, 자기를 고집하는 자는 죽는다. -- 다섯째, 규율을 엄수하지 않는 자는 죽는다. 불생오칙(不生五則)! 이 가혹한 원칙 아래 하나의 살수 가 탄생하는 과정은 실로 말로는 표현 못할 처참한 것이었으니……. 제일단계 육체고련, 이것은 다시 십관으로 나누어진다. 그 십관이란 사관(沙關), 포관(布關), 충관(蟲關), 수관(水關), 암관(岩關), 임관(林關), 육관(肉關), 문관(文關), 무관(武關), 생사관(生死關)을 말하는 것이며, 육체적인 고련을 통해 체력을 키우고 정신을 단련하는 것을 말한다. 제이단계 지옥관(地獄關), 이곳에선 전문살인법을 배운다. 殺! 어떠한 가혹한 것도 어떠한 비정한 것도 웃으며 해내야 하는 마(魔)의 단계인 것이다. 제삼단계 무공관(無空關), 모든 살법고련을 끝낸 살수 들은 이곳에서 심오한 인생의 도리를 연구한다. 생과 사, 살려야 할 자와 죽여야 할 자……, 살인이란 단순히 검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 비추어 묻고 부끄럼이 없는 마음으로 행할 때 진정한 살도의 길이 열리는 것……. 이상의 십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그는 소림 살수 의 이름을 얻게 되는 것이니 백 명,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먼저 와 있던 오십 인과 나중에 온 사십구 인의 구십구 인의 소년들, 중원 천하에서 선발된 이 인재들은 섬에 발을 딛던 첫날, 최초이자 마지막인 선택을 강요받았다. --죽고자 하는 자는, 그리하여 참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섬으로 오르라! 죽음이 두려운 자는 지금 즉시 육지로 돌아간다!-- 아무도 육지로 돌아가고자 한 소년들은 없었다. 그들은 극한의 생사시험을 통과한 인재들이었으며 소림 밀교 가 부르짖는 어력멸사(御力滅邪)의 도리에 이미 삶을 걸고 있었으므로……. 소림 살수 ! 정의로운 죽음의 심판자! 그 하나의 명예를 위해……. 헛허……. 절대선(絶對善), 이것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는 절대악(絶對惡)의 극복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들에게 인간으로선 도저히 해볼 수 없는 가혹한 수련과 정신적인 고통을 강요했다. 먼저 악해지고……. 나중에 선을 찾아라! 한데 오오…… 천추지한(千秋之恨)이여……. 그것이, 우리의 천년대업을 망치게 할 줄이야…….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잊고 있었다. 선보다는 악이 훨씬 더 물들기 쉽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국 살수 를 키워냈다. 그러나, 그들은 정의로운 죽음의 심판자가 아니라 잘 길들여진 맹수의 떼에 불과했다. 우리는 만고의 죄인이 되고 만 것이다……. * * * 쏴아아……. 엄청난 급류! 상상도 할 수 없는 소용돌이와 물거품에 가려 보이지도 않는 흉맹한 암초! 가슴에 사십사의 수자를 새긴 한 소년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고 있었다. 아무것도 의지하는 것이 없다. 그는 맨몸으로 저 급류와 싸우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 비단 맨몸일 뿐 아니라 십 리의 계곡을 떠내려가는 동안 몸에 단 하나의 상처도 없어야만 했다. 이것이 육체고련 제사관인 수관을 통과하는 방법이었다. 소년은 보기에도 아슬아슬할 정도로 암초들을 비켜 가고 있었다. 고도의 반사신경, 적응력, 그리고 힘! 계류는 그냥 흐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구십도로 꺾어져 흐르기도 했다. 또한 익숙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암초의 위치는 매일 바뀌고 있었다. 이러한 물굽이가 제일 어렵다. 소년은 다섯 번째 물굽이가 닥쳐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황급히 몸을 비스듬히 눕히고 시력을 바짝 돋우었다. "으윽!" 그러나 다음 순간, 자국한 핏물이 번졌다. 소년의 옆구리는 암초에 베여 흉측스럽게 패이고 있었다. 짤막하고 건조한 음성이 허공을 갈랐다. "제사십사법, 사관통관 실패!" 쉬익…… 쉭……. 크크읏……. 뱀,독충, 온갖 독물이 득실거리는 하나의 항아리. 가슴에 육십이 자를 새긴 소년이 그 항아리 속에 두 손을 담그고 있었다.그의 이마에는 바짝 힘줄이 돋아 있었다. 육체고련 제삼관 충관, 하나의 해약을 먹는다. 그 해약은 어떤 독도 막아낼 수 있는 해독단이다. 연후 독물 항아리에 쌍수를 넣고 일종의 득공을 연마하는 단계이다. 해독단으로 하여 죽음의 위험은 없으나 독물들이 사정없이 깨물어오는 손의 고통은 극심하기 이를 데 없는 것, 한 번 시작하면 십 일을 버티어야 한다. 이 소년은 제구일째였다. 고통을 이기기 위해 입에 하나의 나무토막까지 물고 있었으나 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