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13편 (13/36)

2026-09-22 08:27:13 조회 31
그녀를 찾기 위해 시선을 더듬던 무류흔, 돌연 어느 한 곳에 시선이 이르자 해연히 놀란 표정을 떠올렸다. 동굴, 그러나 동굴이라기보다는 무너진 석조건물이라는 말이 맞으리라. 이미 허물어질 대로 허물어져 빠끔히 동굴처럼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그것은 유황연 속에 도도히 웅크리고 있었다. 무류흔은 홀린듯 그 앞으로 다가섰다. 이런 곳에 건물이라니……. 건물의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대신 하나의 돌계단이 아득하게 어둠 속으로 뻗어 있는 것이 보였다. 요요는 틀림없이 이 안으로 들어갔을 것이다. 무류흔은 빨리듯 안으로 몸을 날렸다. 끔찍하게 긴 계단이었다. 그리고 추웠다. 빙궁도 추위라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곳이지만 이곳의 추위와 비교하자면 마치 반딧불과 달을 비교하는 것 같았다. 만쇄동의 한빙마동도 춥지 않던 무류흔조차 가벼운 추위를 느끼고 있으니까……. 뚜벅…… 뚜벅……. 계단은 얼음으로 뒤덮여 몹시 미끄러웠다. 그리고, 얼음 위로는 새하얀 이끼들이 돋아나 있었다. 무류흔은 자신이 마치 지옥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돌연, 무류흔은 자신의 발이 허공을 걷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몸은 사정없이 밑으로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쿵---! "아이쿠!"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일이라 엉덩이가 얼얼했다. 무류흔은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너무 어둡다. 이곳은 도대체 어디일까? 그는 손을 내밀어 앞을 더듬어 보았다. 무엇인가가 만져졌다. 그것은 하나의 얼음벽이었다. 무심히 그것을 조금씩 더듬어 가는 순간이었다. 그그긍……. 돌연, 손앞이 허전해지더니 강렬한 빛이 눈으로 쏘아져 왔다. 무류흔은 주춤 뒤로 물러나다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거대한 공간, 사방 일천 장은 족히 되어 보인다. 그 한쪽, 얼음층이 다섯 자도 넘게 언 그곳엔 실로 기이한 일이 벌어져 있었다. 사람들, 그 얼음벽 속엔 다섯 명의 사람들이 화석처럼 굳어 있었던 것이다. 무류흔은 잠시 망설이다 그곳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기이하게도 오 인(人)은 하나같이 수당(隨唐) 시대의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들은 최소한 팔백 년 전의 사람들이란 말인가? 사남일녀, 최초의 사람은 중년수사였는데 청수한 면모에 흑의, 그리고 우수에는 한 자루 섭선을 들고 있었다. 그 다음 사람은 팔십 근 달마대부를 든 구 척의 거한, 세 번 째 사람은 라마 의 복장을 한 노승이요, 네 번째 사람은 한 마리 백호를 올라탄 구릿빛 얼굴의 청년이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여인으로서 이 여인은 유일하게 나체였다. 나체는 마치 살아있듯 생생했다. 또한, 그녀의 얼굴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무류흔은 다섯 사람을 살펴보는 동안 이들에 대해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이들은 왜……? 이 깊은 오지에 저렇듯 한꺼번에 갇혔단 말인가? 주위를 둘러보던 무류흔의 시선이 번쩍 빛을 발했다. 얼음벽의 한 귀퉁이, 그곳이 미묘하게 돌출되어 있었던 것이다. 본래 기관 진학(機關陣學)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는 급히 그것을 눌러보았다. 그그긍……. 순간, 한소리 마찰음과 함께 바닥으로부터 하나의 석탑이 솟구쳐 올라왔다. 석탑, 그것은 약 다섯 자의 크기로써 붉은 혈서가 빽빽하게 쓰여 있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대당 건천십년이라면 꼭 팔백 년 전이 아닌가! 순간, 무류흔은 읽다 말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오…… 환우오천마라니? 천 년 전, 달마 조사가 이 땅에 불법의 부리를 내릴 때 오 인의 사악한 소년들이 있었다. 이들은 당시 오대마종(五大魔宗)의 직계후예들이었으나, 간교하게도 달마 조사의 강성함을 알고 그 뿌리를 감춘 채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달마 조사가 좌화하기 무섭게 이들은 세상 밖으로 뛰쳐나와 한바탕 아귀 지옥을 연출했으니…… 오오, 그때의 피의 통곡을 뉘라서 모르랴! 시체는 산을 넘고 피는 바다를 이루었다. 통곡의 시대, 혹자는 혈루천하(血淚天下)라고도 하였다. 바로 그때, 달마 조사의 둘째 제자인 광운상인의 눈부신 출현이 없었다면 무림은 그로써 종말을 고했는지도 몰랐다. 광운상인은 한을 부르짖으며 피의 세상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환우오천마와 광운상인은 섣불리 싸우지 않았다. 그들의 무예는 거의 백중지세였다. 뿐만 아니라, 광운상인에게는 환우오천마의 무예의 결점이 수록된 금마경(禁魔經)이란 책자가 하나 있었다. 그것도 그가 은밀히 오천마의 격전지를 찾아다니며 근 삼 년 동안 만들어 낸 비서였다. 환우오천마는 그 금마경을 뺏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으나, 결국, 그것을 뺏을 수 없음을 알자 일제히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하나, 그 후로도 그들은 마종의 오대신으로 추앙을 받았다. 그들은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마종의 신들이 이런 오지에서 죽어 있을 줄이야……. < 우리는 광운상인이 금마경을 지니고 있는 한 절대 그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은거를 결심했다. 그리고, 마종의 최대숙원인 마인천신공(魔人天神功)을 익히기로 했다. 그러다 찾아낸 곳이 이곳……, 이 땅은 천하에서 가장 극음(極陰)한 곳이다. 본래 음을 위주로 하는 마종무예에는 최고의 보토(寶土)였다. 마인천신공, 이것을 익히는 도중 우리는 그 동안 우리의 무예가 얼마나 치졸한 것이었던가를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엄청난 성취를 보았다. 우리는 이 새로운 무예로 그들의 무릎을 꿇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의 무상함이여, 삶은 이토록 짧은 것인가! 우리는 무예를 완성하고 난 뒤 우리의 수명이 다했음을 깨닫고 말았다. 물이 바다로 흐르고 흙이 그 영을 벗어나지 못하듯…… 극도의 하수에 사로잡혀 있던 우리는 그때 마침, 우연히 다섯 명의 아이들을 이곳으로 불러들이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자질이 극히 우수하여 우리들은 잔심부름을 시키며 우선 우리의 가진 기초적인 무예를 익히게 했다. 바로 광운상인에게 결점을 잡혔던 그 무예들이다. 한데, 그 우매한 아이들은 그것이 우리가 지닌 무예의 전부인 줄 알고 우리를 배신했다. 통로를 무너뜨리고 우리를 생매장시킨 후 도망갔던 것이다. 허무는 또 허무를 불렀다. 그리고 복수……. 한이 사무친 우리는 즉시 복수 작업을 개시했다. 즉, 이 석실의 안에다 우리의 마예(魔藝)를 기운으로 바꾸어 갈무리시켜 놓은 것이다. 만약, 누구든 이 석실의 안으로 최초로 들어선다면 우리의 종합무예를 저절로 흡입할 것이니, 이를 우리는 마종오살기(魔宗五煞氣)라고 이름붙였다…….> 여기까지 읽고 난 무류흔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하나의 추리가 성립되고 있었다. 요요, 그녀는 갓난아이의 몸으로 이곳으로 떨어졌다. 그것은 어쩌면 최초였을 것이며, 결국 요요가 지니게 된 그러한 신비체질은 바로 이 마종오살기에 의한 것일지도 모르는……. 그것은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었다. 석탑의 글은 계속됐다. <하나, 하늘이 결국 우리를 버리심인가……. 나는 다시 백 년이 지난 후에야 우리의 마종오살기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을 알았다. 위치, 유마와 혼마, 불마는 좌화한 위치를 잘못 잡았던 것이다. 석실의 기운이 급속도로 떨어지고 우리의 몸 위로 얼음이 뒤덮이고 있을 때에야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의 삼살기(三煞氣)는 한 자의 얼음에 더 덮임으로 인해 효력을 상실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전인은 수마와 나의 이살기(二煞氣)밖에 전수 못 받게 되니 그 위력엔 천지의 차이가 생기는 것이다…….> 무류흔은 힐끗 환우오천마를 바라보았다. 과연, 오 인 중에서 중년무사 구척거한 라마 불승은 한 자 정도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는 신선한 놀라움이 가슴속을 스치는 것을 느꼈다. 만약, 요요가 이들의 마종오살기를 이어받은 것이라면……, 그 중 이살기만 이어 받았는데도 그처럼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무류흔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환우오천마, 이들이 얘기하고 있는 무예는 그의 차원으로도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 이것도 운명이다……. 나 화마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이 글을 남기나니, 연자(緣者)는 참고하여 이 얘기를 후대에 남기도록 하라……. 지금까지 화마가 썼다…….> 장문의 비문은 여기에서 끝났다. 무류흔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환우오천마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덮는 무예를 익혔던 이들도 결국은 한줌의 부토(腐土)…… 그는 천천히 빙벽의 앞으로 다가섰다. 이때다. 그는 문득 유마의 앞 빙벽이 미세한 균열이 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무심히 손가락을 그 안으로 집어넣어 보았다. 손의 미세한 온기가 빙벽에 닿는 순간, 오오---- 이게 무슨 일일까? 느닷없이 빙벽이 두 쪽으로 쩌억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무류흔은 크게 놀라 다급히 뒤로 물러섰다. 파파팟! 이때 돌연, 청, 홍, 백의 삼색기류가 환상처럼 피어 오르는가 싶더니, 피하고 어쩌고 할 새도 없이 무류흔의 몸을 뒤덮고 말았다. 순간, 무류흔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운이 온몸을 소름처럼 줄달음치는 것을 느꼈다. '마기(魔氣)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마인(魔人)! 마기에 뒤덮임은 곧 환우오천마의 복수를 위한 꼭두각시 마인이 됨을 말하는 것이니, 무류흔은 바닥을 수십 바퀴나 굴러 물러난 후,그 자리에 털썩 정좌하고 앉았다. '마기를 몰아내야 한다!' 하나, 이미 신(神)의 공력을 연마했던 환우오천마들이다. 아마도, 얼음에 가려 버렸다는 나머지 마종삼살기이리라. 세 줄기의 서늘한 기운은 단숨에 무류흔의 몸 속 삼백육십 대혈 을 점거하고 말았다. 한데 바로 이때, 무류흔의 몸 속 깊은 곳으로부터 기이한 반력(反力)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천하극강의 체력! 혈액의 흐름과 근육의 수축이 자유자재인 만류귀종 체! 이 만류귀종 체의 반력은 최초에는 서서히, 그러나 이내 거대한 흐름으로 변해 낯선 침입자, 마종삼살기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기이한 두 기운의 밀고 당기는 대접전! 무류흔은 한 차례의 접기(接氣)때마다 혈관이 침에 찔리듯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입술을 짓깨물며 마종삼살기를 밖으로 몰아냈다. 가슴에서 어깨……, 그리고 좌측 팔 끝까지……. 하나, 팔에 이르렀을 때 마종삼살기는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았다. 또한, 위로 솟구치려는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무류흔은 이마의 땀을 씻으며 자신의 왼손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의 시선이 가볍게 흔들렸다. 보라! 그의 흰 장심(掌心)엔 어느샌가 선명한 청홍백의 세 반점이 피어 있지 아니한가? 그것들은 황홀한 광채로 빛나고 있었다. 무류흔은 무심히 그 손을 밖으로 내뻗었다. 바로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의 왼손은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초식을 뻗어냈던 것이다. 위이잉! 소름끼치는 경기! 파파팟! 오오…… 이십 장 밖의 빙벽이 무우조각처럼 베어져 나가고 있었다. "파라수혼 강기 (破羅囚魂剛氣)……." 무심코 새어나온 중얼거림, 무류흔은 깜짝 놀랐다. 이 명칭은 자신도 모르게 외운 것이었으며, 또한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몹시 익숙했던 것이다. 마종삼살기! 마종삼살기의 가공할 마력이었다. 무류흔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살인병기가 된 왼손을 바라보며 피식 실소를 흘렸다. "끝내 나는…… 그들의 진전을 이어받고 만 것인가……?" 그는 왼손을 호주머니에다 깊숙이 넣었다. 어차피 쫓아낼 수 없는 것이라면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이 왼손은 쓰지 않기로 마음을 굳혔다. 빙벽, 환우오천마의 시신은 그 빙벽이 갈라지는 바람에 급속도로 부패해 가고 있었다. 무류흔은 묵묵히 선 채 이 마종지신들의 종말을 지켜보았다. 그렇다. 화마의 말처럼 어차피 인생은 허무로운 게다……. 그는 자신의 시한부 생명을 떠올렸다. 일찍 죽고 늦게 죽는 차이일 뿐. "문제는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이때 돌연, 무류흔은 자기처럼 마종지신의 종말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사라졌던 요요였다. 무류흔은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이리 오너라, 요요." 요요는 더 이상 도망가거나 하지 않고 빤히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문득, 무류흔의 장심에 피어올라 있던 삼색의 광휘가 눈부신 빛을 피워 올렸다. 순간, 요요의 두 눈에 기광(奇光)이 반짝 서렸다. 이어, 그녀는 무엇인가에 홀리듯 주춤주춤 무류흔을 향해 다가서기 시작했다. 몸에 감돌던 요기 대신 그 얼굴에 피어 오르는 것은 한 줄기의 친근감, 무류흔은 내민 손을 조금 더 내밀었다. 손, 마치 여인의 것처럼 곱고 수려하지만 엄연히 남자의 손이다. 줄곧, 섬세한 여인들의 손만을 보아온 요요가 어찌 신기하지 않을까? 그녀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을 내밀어 무류흔의 손끝을 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얼른 움츠러 들였다. 무류흔은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너는 그렇게 흉측한 탈을 늘 쓰고 다니느냐?" 요요는 힐끗 무류흔을 바라보더니 돌연, 그 자리에서 빙글 몸을 돌렸다. 순간 보라! 무류흔은 눈 앞이 환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치 구름 속에서 햇살이 스며 나오듯, 어둠 속에서 불꽃이 피어 오르듯 눈부신 얼굴, 살결은 백옥처럼맑고 희고 두 눈은 물빛처럼 잔잔하고 고요하다. 아무 상념도, 악념도 깃들이지 않은 천진무구한 소녀의 얼굴……. 무류흔은 껄껄 웃으며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무류흔이다." 요요가 말했다. "알아요." 구슬이 구르듯 해맑은 음성. "이리 와서 앉지 않겠니? 나는 요요와 친구가 되고 싶구나." "친구?" "그래. 서로 아껴 주고 위해 주는 친구 말이다." "그게 친군가요?" 말은 의문을 물으면서도 어느새 요요는 쪼르르 달려와 무류흔의 옆자리에 앉고 있었다. "핫하……. 나는 네가 옷을 갈아 입으로 올 줄 알았다." "요요는 다른 곳에도 옷이 많아." 요요의 천진한 눈빛이 무류흔의 가슴을 향했다가 다시 자신의 가슴을 향했다. 아마도, 자신을 비롯한 빙궁의 여인들과는 다른 무류흔의 가슴에 호기심을 느낀 것이리라. 그녀의 손이 무심결에 무류흔의 가슴을 향해 왔다. 순간, 무류흔은 상체를 비스듬히 젖히며 우수를 비스듬히 그었다. 초식! 그것은 바로 천연탑의 유성탈명(流星奪命)의 초식이었다. 하나, 요요는 아까처럼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담담히 우수를 뻗어 똑같은 초식으로 무류흔의 손을 막았을 뿐……. 파팍! 무류흔은 웃으며 손을 거두었다. 아까 자신도 무심코 이 초식을 펼친 후, 초식의 묘리(妙理)를 곰곰이 따져 보지 않았던가? 유성탈명, 이 초식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막아낼 방도가 없었다. 다만, 똑같은 식을 펼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요요는 이미 그것을 깨달은 것이 틀림없었다. '이 소녀는 마종의 후예이다……. 어떻게 해야 깃들인 마성을 순화시킬 수 있을까……. 그 마성은 언제 격발하는 것일까…….' 이때 돌연, 무류흔은 가슴속으로부터 단내가 울컥 치미는 것을 느꼈다. "콜록…… 콜록……." 순간 그의 입 밖으로 격렬한 기침이 터져 나왔다. 신인(神人)의 능력을 얻는 대신 고스란히 가지고 남게 된 고질병……. 그가 입을 막으며 괴로워하자, 요요는 얼굴에 한 줄기 걱정스러운 빛이 피어 올랐다. 놀라운 일, 이것은 그녀가 누군가를 위해 해 본 최초의 걱정이었다. "무류흔, 많이 아파……?" 무류흔은 그 와중에서도 웃었다. 웃으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요요가 나를 그렇게 부르는 것이 싫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오빠." 요요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오므렸다. "오…… 빠……?" 무류흔은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눈앞의 요요가 참을 수 없이 귀여웠다. 요요의 어린 몸을 무류흔이 끌자 비맞은 참새처럼 안겨 들어왔다. 남녀의 욕망이 아니다. 밤하늘의 빛이 길을 잃고 품으로 안겨 왔을 뿐…… 무엇인가 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내 무류흔은 청포도처럼 싱그러운 숨결이 자신의 목덜미를 간질이고 있는 것을 느꼈다. 요요는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무류흔은 싱긋 웃으며 웃옷을 벗어서 그녀의 어깨에 덮어 주었다. 바깥 세상엔 소리없이 달빛이 내려앉고 있을…… 그렇다. 정말 좋은 밤이다……. 마인요협편(魔人妖俠篇) ====================== 제 11 장 귀여운 마녀(魔女) -------------------------- "하하하……." "호호……." 무저빙궁의 여인들은 빙그레 웃음을 떠올렸다. 무류흔과 요요, 마치 천사같이 아름다운 한 쌍……, 친남매라도 저토록 다정하진 못할 것이다. 그들이 눈싸움을 하고 있는 모습은 어디서든지 볼 수 있었다. 요요를 번쩍 올려들고 웃는 무류흔과 그의 팔에 매달린 채 까르르 흐드러지게 웃고 있는 요요의 웃음과……. 여인들은 요요의 웃음이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처음 알았다. 한 소녀의 웃음이 주위를 그토록 밝게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러나, 세상에 끝나지 않는 잔치가 없고……, 헤어지지 않는 만남이없는 법. 이별의 순간은 어느 땐가 모두에게 다가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 이별이 향후 무림에 번질 대혈겁의 첫 번째 서곡일 줄이야 그 누가 짐작인들 하였으랴……. 바깥 세상엔 어느덧 낙엽이 지고 있었고 천불사당의 팻말은 칠백삼십 일 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무류흔은 보따리를 등에 챙겼다. 그는 그 동안 자신이 지내 오던 방을 쭉 휘둘러보았다. 추억, 그리고 정념들…… 하나, 무류흔은 빙글 몸을 돌리고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가야…… 한다……." 열흘 전 이던가? 빙궁의 앞에서 한 알의 염주를 주웠다. 그것은 바로 주육대사의 것이었으며, 순간 그 염주는 무류흔의 뇌리를 철퇴 처럼 두들기지 않았던가? 나는 도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가……? 사치와 평안에 빠져 세상을 잊어버렸다. 부끄럽게도 목숨을 걸고 자신을 이곳까지 데려다 주었던 환상성니와 주육대사의 얼굴을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었다. 그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세상에는 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별을 말했을 때 백유군은 쓸쓸하게 웃고, 요요는 울며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리고 백유군은 말했다. "열흘……, 열흘만 기다려 주시면…… 꼭 드릴 것이 있으니……." 무류흔은 씁쓸하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 바로 그때다. 왈칵! 돌연 방문이 열리더니 열흘 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던 백유군이 바람처럼 들어섰다. 늘 단정하던 그녀, 그러나 지금 그녀의 의복은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고 머리는 산발된 채 두 눈만 충혈되어 있었다. 무류흔은 크게 놀라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유군!" 백유군은 쓰러질 듯 휘청 그의 몸에 기대더니 힘없이 웃어 보였다. 이어, 수중에 들고 있던 갈색의 병 하나를 내밀었다. "급하게 만드느라고…… 백 알밖에 못 만들었어요……." "유군, 이것은……?" "그대의 몸은 갈수록 쇠약해집니다…… 그때마다 한 알씩 잡수세요…… 고통이 가라앉을 거예요……." 순간, 무류흔의 두 눈 깊숙이 격정의 물결이 일었다. 그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아아, 女人이여……. 무슨 말이 필요할까? 무슨 행동이 필요할까? 다음 순간, 사내는 여인을 안고 여인은 파묻히듯 그 품에 안겼다. 촉촉이 젖은 입술, 여인의 입술은 감미로웠다. 사내는 자신의 영혼을 부어 넣기라도 하듯 입술에 입술을 열고, 깊이 깊이 영혼처럼 속삭였다. * * * 사랑…… 한다……. * * * 그래…… 그대와 나,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요. 순간의 편견과 아집이 우리 파릇한 심장에 짙푸른 멍되어 남을지라도, 비수 같은 독설과 모욕이 우리 여린 살갗을 찢고 지날지라도, 그대와 나, 아무것도 두려워 말아요. 그대와 나, 아무것도 슬퍼하지 말아요. 산보다 더 높은 절망과 바다보다 깊은 고통이 우리 걷는 발길을 막고, 우리 보는 눈을 가리어, 숱한 밤 번민 속에 몸부림치게 될지라도, 그대와 나, 아무것도 슬퍼하지 말아요. 그대와 나, 아무것도 탓하지 말아요. 우리 걷는 길에 숱한 편견과 아집, 독설과 모욕, 고통과 절망이, 불길처럼 타오를지라도, 그대와 나, 아무것도 탓하지 말아요. 설사, 그 불에 타 재가 될지라도, 그대와 나, 그냥 웃어 버려요. 그대와 나, 이것만은 믿어요. 내 눈이 멀고, 그대 눈이 멀고, 내 가슴이 찢기우고, 그대 가슴이 찢기우고, 내 육신이 조각나고, 그대 육신이 조각나도, 난 그대를 볼 수 있어요. 그댄 날 볼 수 있어요. 그대를 사랑하는 영혼의 한 조각은, 내 토막난 육신의 마디 마다, 깃발처럼 나부끼니라. 그대와 나, 이것만은 믿어요……. * * * 요요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무류흔은 반나절 동안 궁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다가 몸을 돌렸다. 세상! 그를 기다리는 저 바깥 세상으로! 그날 밤, 무저빙궁의 주방에서는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며칠 분의 마른 식량이 한꺼번에 증발해 버렸던 것이다. 이 일은 가벼운 소동을 일으켰으나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