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9편 (9/36)

2026-09-22 08:27:13 조회 33
얼마나 온 것일까? 하루 낮밤이라고 짐작되었으나 느낌으로는 엄청나게 많은 시간들이 지난 것 같았다. 쪽배의 한쪽에는 한 동이의 술과 일주일 정도 먹을 수 있는 건량이 준비되어 있었다. "동동북이라……." 시작도 끝도 없는 이 아득한 여정에 무류흔은 쓴웃음을 흘리며 마른 건포를 씹었다. 그는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느꼈다. 하루 낮밤을 긴장으로 지새운 피곤이 몰려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무류흔은 배의 방향을 확인했다. 서풍에 같은 방향의 해류, 비록 틀림없다곤 할 수 없으나 엇비슷한 방향이다. 무류흔은 상의를 벗어 얼굴에 덮었다. 살인적인 폭광 아래 그는 이내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우르릉! 꽝! 쿠쿵---! 돌연, 자욱한 멀미를 느끼며 무류흔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순간,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말았다. 이곳이 도대체 어디인가? 지옥인가, 생시인가? 온요로운 남국의 햇살은 간데 없고 하늘에는 그 하늘을 사정없이 찢는 분홍빛 뇌전. 우르릉! 꽈꽝----! 바다는 광란하고 있었다. 시야를 온통 가로막는 거대한 묵청빛 파도가 온 공간을 뒤덮고 있었다. '폭풍우!' 쏴아아----! 조그마한 배를 천 길 높이로 휘말아 올리는 노도 속에서 무류흔은 황급히 노를 잡았다. 우르릉……. 그러나, 이 거대한 자연의 변화 앞에서 인간의 힘은 너무 무력하고……. 드높이 솟았다 내려앉기 두세 번, 그리고, 배는 산산조각이 나고 있었다.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는 배의 조각처럼 무류흔의 몸 또한 격랑 속으로 휩쓸리고 있었다. 바다, 그 무한대의 깊이가 주는 아득한 공포를 느끼며 무류흔은 깊숙이…… 그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햇살, 언제 폭풍우가 휘몰아쳤을까 싶을 정도로 이 햇살은 온묘로웠다. 망망대해에는 문득 한 점 섬, 그것은 바로 하나의 섬이었다. 연초록으로 뒤덮인 섬을 배경으로 한 척의 배가 떠 있다. 배 위엔 두 사람, 석상인가? 마치, 인간이 호흡을 하고 있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의 승려. 좌측의 술호로를 들고 있는 딸기코의 승려는 바로 소림사 에 나타났던 폐포노승이요, 그 옆에는 언뜻 보기에 승포자락을 헤집고 튀어나온 불룩한 배밖엔 보이지 않는 뚱보승인이었다. 그의 얼굴엔 훈훈한 웃음이 감돌고 있었으며, 큰 입을 잔뜩 벌리고 있는 그 웃음은 잠시도 다물어지지 않고 있었다. 이때다. 문득, 아득한 바다 한쪽에 흑점 하나가 나타났다. 뚱보승인의 얼굴에 걸쳐 있던 웃음이 조금 더 짙어졌다. 비로소 그는 인간처럼 보였다. "또 한 놈 오는군. 오십 번째 녀석이다." 누가 젓는 것도 아닌데 배는 스르르 흑점을 향해 다가가고…… 뚱보승인은 흑점에 거의 이르자 수중에 들고 있던 흑점을 홱 던져 냈다. 흑점, 배 위로 끌어올려진 그것은 바로 사람이었다. 죽은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창백한 안색은 아예 물빛으로 변해 있었고 코 끝으론 한올의 숨결도 없다. 한쪽의 폐포승인이 무심히 이쪽을 바라보다가 돌연 흥분한 어조로 외쳤다. "바로 이 녀석이다! 생사시험에서 팔십 점을 기록한 경이적인 놈이야!" "주귀(酒鬼)야, 만점은 팔십일 점이 아니었던가?" 폐포승인은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너무 완벽했지. 그 일 점은 내가 깎은 걸세. 나는 삼십 일 만에야 이 놈의 결점 하나를 발견한 게지." "그 결점이란 게 뭔가?" "여자가 너무 많이 따르는 게야. 오십 명 중에는 네 명의 계집들이 있었는데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살상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이놈은 계집들의 타는 눈빛으로 하여 한줌 재가 되고 말았을 걸세. 그 여자가 결국 일 점을 깎게 된 거지……. 흐흐……." * * * 니승(尼僧), 파르라니 깎은 머리가 함초롭다. 하나, 그 외에 이 니승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특히, 무심하되 성결하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그대로 별빛이라 해도 좋았다. 단정하게 걸친 흑의승포 뒤로…… 방안. 온통 약냄새로 자욱한 곳이며, 사방 벽의 선반에는 이름도 알지 못할 진귀한 약초가 그득 그득 쌓여 있는데, 한쪽의 화로로부터는 맡기만 해도 마음이 상쾌해지는 향연이 피어 오르고 있었다. 문득, 흑의니승의 시선이 우측 선반 위의 한 송이 환화(環花)로 향했다.탄식과 더불어 붉은 입술 새로 나오는 것은 망연한 중얼거림. "하늘이…… 인간의 능력을 시기하였다……." 꽃의 아래에는 하나의 침상이 놓여 있었고, 침상 위엔 한 소년이 누워 있었다. 의식을 잃은 듯, 하나 잠자듯 누운 그 얼굴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투명하고 해맑았다. "저 훌륭한 재질에 시한부 생명이라니……." 흑의니승은 물끄러미 소년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방을 나섰다. 한 그루의 소나무 아래, 단정히 둘러앉아 있는 사람들. 이들은 바로 천불사당 내에 새겨져 있던 불문칠신(佛門七神)……. 즉, 좌로부터 신성천불(神聖天佛), 혈의법승(血衣法僧), 소신승(笑神僧), 주육대사(酒肉大師), 몽화상(夢和尙), 금전타불(金錢陀佛) 등의 괴승들이 아닌가? 아름다운 흑의 니승은 바로 서열 일곱번째의 환상성니(幻想聖尼)였다. 이들 육 인은 환상성니가 나서자 일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중, 가장 성질이 급한 주육대사가 술호로를 흔들며 말했다. "칠매! 그 녀석은 어찌되었소?" 환상성니는 풀밭 위로 몸을 앉히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해수 속에 섞인 염분과 부기가 본래 그의 몸에 있던 고질을 악화시켰어요." "그럼 깨어나지도 못한단 말인가?" "약을 투입했으니 사흘 뒤면 의식을 찾을 수 있으리라. 그러나 깨어난다고 해 봐야 그의 남은 생명은 불과 팔백 일 정도……." "도대체 무슨 병인가?" "서서히 전신의 맥이 굳어지고 피가 마르다……. 일정한 시간에 달하면 죽게 되는 몹시 희귀한 선천적 고질이에요……. 화타 가 살아난다 해도 그의 꺼져가는 생명은 구할 수 없어요. 더더구나 무공은 생각할 수도 없어요." "제기랄! 그놈은 중원제일의 인재가 아닌가?" 얼굴에 웃음이 만발한 소신승이 볼멘 목소리로 외쳤다. "이게 다 주귀, 네놈 탓이다! 오십 척의 쪽배며 풍랑 같은 것은 다 네놈의 각본이 아니냐?" 화난 목소리인데도 얼굴은 웃고, 보아하니 그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위인 같았다. 주육대사는 소신승의 말에 불끈했다. "이곳의 위치를 알리지 말자고 한 것은 네놈이 아니냐? 네 말이 아니었다면 어찌 그런 치졸한 방법이 생겨났겠냐?" "네 놈은……." "그렇게 말하는 너는……." 이때다. 가장 상석에 앉아 잇던 백염백미의 신성천불이 조용히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그는 나무람이 깃들인 시선으로 다투는 주육대사와 소신승을 바라본 후 침중한 어조로 환상성니를 향해 말했다. "의독(醫毒)의 대행가(大行家)인 칠매가 어쩔 수 없는 병이라면……, 아미타불…… 우리는 가장 중요한 인재를 잃는 셈이 아닌가……?" 환상성니는 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더니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에요." "오오…… 방법이라면……?"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큰 기대를 담고 환상성니를 향했다. "말해 보라, 칠매!" 환상성니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짤막하게 대답했다. "무저빙궁(無底氷宮)." 순간, 중인들은 입 밖으로 다급한 경악성을 토해 냈다. "무저빙궁?" 무저빙궁. 그것은 하나의 신화였다. 이 하늘아래 고치지 못할 병이 없고, 치료하지 못할 환이 없다는 전설의 장소……. 그러나 아무도 이 무저빙궁의 장소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다. 십만의 환상진(幻想陣)으로 싸여 있는 그곳……. "그…… 그곳을 칠매가 안단 말인가?" 환상성니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가 싶더니 이내 탄식을 터뜨렸다. "과거에 스승과 같이 한 번 가 보았지요. 그러나 이 일에는 세 가지 난제가 있어요……." "그게 무엇인가?" "첫째는 무저빙궁의 의술이 과연 무류흔의 난치병을 완전히 치료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에요.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에게 일종의 신력(神力)을 키울 수 있는 바탕 정도는 주리라는 것일 뿐……." "……!" "둘째는 괴팍하기 이를 데 없는 무저빙궁주가 과연 무류흔에게 선뜻 손을 대려 할까 하는 것이에요. 만약 그가 치료를 거부한다면 이상혹한의 그곳 기후로 보아 무류흔은 십중팔구 죽게 될 것이니…… 그만한 모험의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고……." "……!" "아미타불…… 마지막 문제는 그곳까지의 여정이 너무 험하다는 데 있어요. 또한 이 일로 하여 우리의 계획에 조금의 지장이라도 생긴다면……." 이때다. 아무 말 없이 묵묵히 앉아 있기만 하던 냉막한 표정의 혈의법승이 입을 열었다. "기존의 오십 명과, 새로 받아들인 오십 명 중에서 십관을 통과한 삼십육 인을 가려내는 기한은 백팔십 일이다. 그 안에 칠매가 다녀올 수 있다면 큰 지장은 없게 되리라." 순간, 주육대사가 분연히 들고 있던 술호로와 닭다리를 버리더니 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일은 나로부터 비롯된 것이니 내가 책임지겠소! 가자, 칠매! 지옥 끝까지라도 그놈을 데리고 가겠다!" 늘 얼굴에 감돌던 해학적인 표정은 어느새 사라졌다. 대신, 말을 잇는 주육대사의 얼굴은 장엄일색이었으며, 전신에선 성스러운 붉은 서광과 더불어 은은한 단향 내음이 풍겨 나오고 있었다. 환상성니의 얼굴에 배시시 웃음이 피어올랐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명쾌하게 몸을 일으켰다. * * * "맙소사! 수백 길의 해저라고?" 바다, 한 척의 쪽배와 두 사람, 한 사람은 흑의승포의 미여승이요, 또 한 사람은 엄마가 아기를 업듯 한 사람을 등에 걸쳐 십자의 끈을 두른 노승, 이들은 바로 환상성니와 주육대사였다. 환상성니는 뱃전의 물건들을 하나씩 챙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로로 가자면 일만 개의 기관 과 십만 개의 환상진을 거쳐야 해요. 이 해로는 육로보다 백 배는 험해요." "그럼 챙기고 있는 그 물건들은?" "아미타불…… 보시다시피 수백 길의 해저를 헤치자면……." 그녀가 챙기는 물건들은 매우 가짓수가 많았다. 먼저, 소량의 밀랍과 낙타가죽으로 만든 둥근 주머니, 그리고, 적색을 띤 기이한 기름을 묻힌 솜방망이와 소도(小刀), 철편(鐵片) 등의 작은 연장들도 다수 있었다. 환상성니는 묵묵히 밀랍을 잘개 쪼개어서, 그것을 주육대사의 등에 업힌 채 의식을 잃고 있는 무류흔의 귀와 코에 틀어막았다. "심해로 들어가면 압력이 거세집니다. 사형도 밀랍으로 귀와 코를 막으세요." 이어, 그녀는 낙타가죽의 공기주머니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무류흔을 앞으로 업고 그에게 이것을 하나 물리세요. 사형도 하나를 소지합니다. 이것으로는 반 시진 정도를 견딜 수 있어요." 일단의 준비가 끝나고 나자 환상성니는 도구들을 허리에 꿰어차고는 초롱한 눈빛으로 주육대사를 바라보았다. "반 시진 내로 출구를 찾지 못하면 우리는 모두 죽습니다. 시작한 일이니 이젠 물러설 수도 없어요." 주육대사는 울상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헤엄을 못친다, 사매!" "뒤를 따라오세요." 환상성니는 주육대사의 말을 묵살한 채 들고 있던 솜방망이에 불을 붙였다. 연후, 연기처럼 몸을 날려 바닷속으로 깊숙이 침수해 들어갔다. 주육대사는 망연한 눈빛으로 시커먼 심해를 바라보다가 문득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한 번 죽지, 두 번 죽으랴. 주육타불…… 주육타불…… 가자! 무류흔!" 슉---! 풍덩! 무엇을 묻힌 것인지, 환상성니가 들고 있는 화섭자는 물 속에서도 꺼지지 않았다. 그것을 든 채 아득한 심연 속으로 잠수해 들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하나의 요정 같았다. 주육대사는 뛰어들기 무섭게 세 모금의 짠물을 마셨다. "푸…… 푸……." 머릿속이 띵하고 어찔어찔해 왔다. 하나 그는 일대의 고수, 낙타가죽 주머니를 입에 틀어막는 그 바람으로 한 모금의 진기 를 끌어올리니……. '허허…… 이것 보게?' 몸은 신기하게도 밑으로 쑤욱 내려가 주는 것이다. 물 속…… 환상의 세계였다. 세 사람의 몸이 일으키는 거품으로 소스라친 어군이 오색의 잔영을 흩뿌리며 사위로 흩어져 가고, 엷은 채광이 기둥처럼 드리워진 심연의 기경을 무슨 말로 다 형용하랴……. 조금의 시간이 지나자 주위는 차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는, 내민 다섯 손가락도 안 보일 정도의 암흑으로 변했다. 그것은 무서운 공포였다. 일장(一掌)으로 산악을 뒤엎는 주육대사도 그 순간만은 신선한 두려움을 느끼고 말았으니까. 이때 돌연, 앞서가던 환상성니의 불빛이 주춤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주육대사는 다급히 몸을 멈추려 했으나 그땐 이미 이마를 사정없이 바닥에 부딪치고 난 후였다. '욱!' 그 와중에서도 공기주머니를 안 놓친 것이 다행이랄까?" 얼얼한 이마를 어루만지는 그의 귓전으로 환상성니의 전음 이 파고 들어왔다. "다치지 않았어요?" "바위가 다쳤을 게다. 다 온 거냐?" "이 근처 같기는 한데……, 몇십 년 전에 와본 길이라 어리둥절하군요……." 불빛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더니……. 돌연, 너비 삼 장은 족히 될 거대한 동혈(洞穴)하나를 비춰냈다. "여기예요!" 한데 바로 그 순간, 동혈 속으로부터 소름끼치는 괴음 하나가 터져 나왔다. 끼아악-----! 동시에 혈광(血光)! 이제까지 지상에서 본 어떤 핏빛보다도 더욱 강렬한 두 개의 혈광이 무서운 속도로 두 사람을 향해 짓쳐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끼아아악----! 도대체가 상상해 볼 수도 없는 일을 만나면 사람은 몸이 굳어지는 법이다. 뱀---? 맙소사 뱀이라니……. 인간이 사물을 표현하는 단어에 얼마나 한계를 느끼는 가는 이런 곳에서 알 수 있다. 두 개의 혈광, 그것은 마치 뱀처럼 생긴, 생겼다뿐이지 온 세상의 뱀을 다 모아다가 반죽을 만들어 다시 빚어낸 것 같은 엄청난 거망의 눈이었다. 이 소름끼치는 괴물의 눈빛은 단숨에 상대를 핏빛으로 물들였다. 또한 황급히 몸을 날린 두 사람의 시선 속으로는, 두께 이 장(丈)여에 어찌나 긴지 독혈 속으로부터 밑도 끝도 없이 꾸역꾸역 밀려나오는 괴망의 몸통이 으스스하게 쏘아져 들어왔다. 끼아아악----! 괴망이 한 번 몸을 비틀자 두 사람의 몸은 저만큼 파동으로 밀려나고 만다. "맙소사! 이게 뭔가? 사매." "심해에서 기형적으로 커 버린 바닷뱀 같아요." 환상성니는 예리한 시선으로 괴망을 살폈다. 괴망의 몸을 덮고 있는 비늘은 일견해 보기에도 강철보다도 더 단단해 보였다. 표피를 공격해서는 승산이 없다. 저 눈은 어떨까? 환상성니는 일시간에 괴망의 눈을 승부처로 정하고 허리춤에서 두 개의 철편을 꺼내어 손속에 갈무리했다. 바로 그때다. 잠시 먹이감의 강약을 판가름하듯 주춤하던 괴망은 두 사람이 멀찌막이 떨어져 있기만 하자, 돌연 입을 쩍 벌리고 무서운 기세로 바닷물을 흡입해 들였다. 위이이잉----! 그러자 심해의 물은 그 흡력으로 하여 지친 듯이 요동을 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환상성니와 주육대사가 그 흡력에 항거하기 위해 주춤하고, 그 와중에서, 대사의 등에 업혀 있던 무류흔의 몸이 괴망의 입을 향해 빨려들어간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헉----!" "억!" 슈우욱! 괴망의 입은 엄청나게 컸다. 그것은 마치 또 하나의 동굴 같았다. 그리하여 무류흔의 몸이 그 속으로 덧없이 자취를 감출 찰나 였다. "아얏!" "헛!" 공기주머니고 뭐고 내뱉아 팽기친 두 사람의 몸이 풍차처럼 맴돌며 괴망의 입 속으로 날아들었다. 주육대사는 무류흔의 발끝을 잡아 뒤로 내침과 동시에, 양팔과 양발로 괴망의 입 아래로 귀를 밀고 우뚝 섰다. 환상성니는 뒤를 이어 괴망의 입 안으로 날아든 뒤 온 공력을 주입시켜 괴망의 입천장을 향해 부딪쳐 가고 동시에, 주육대사는 십성(十成)의 천근추 공력을 운용하니…… 사전에 연습이라도 해둔 듯 완벽한 합공(合功)! 찌이익……. 다음 순간, 듣기 거북한 소리가 심해를 울렸다. 조각, 두 조각. 두 희대의 고수가 위아래로 잡아당긴 거망의 몸은 입어귀로부터 그대로 두 조각으로 갈라지고 있었다. 내친 김이다. 환상성니와 주육대사는 몸을 공중으로 선회시킨 뒤 아예 꼬리까지 괴망의 몸을 찢어 냈다. 찌이익……. 옛날, 주왕(周王)의 애첩이었던 포사가 마음의 우울증을 달래기 위해 비단을 찢게 하고 그 소리를 즐겼다던가……. 생전 웃지를 않았다던 그녀도 지금 두 사람이 벌인 묘기를 보았다면 그 영롱한 웃음을 선 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련만…… 어쨌든 잠시 후, 환상성니와 주육대사는 조각난 괴망의 몸을 한 조각씩 들고 있게 되었다. 한데, 돌연 캄캄한 심해를 환히 밝히는 삼색의 영롱한 광휘가 피어올랐다. 청(靑), 황(黃), 자(紫). 홀린 듯이 그쪽으로 다가선 두 사람의 시선 속으로 괴망의 투명한 창자 속에 웅크린 세 개의 구슬이 쏘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그 구슬의 일 장 방원으로는 물이 전혀 밀려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잖아도 숨이 막혀 오던 주육대사는 냉큼 그 속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환상성니는 조심스럽게 세 개의 비둘기알만한 삼색주를 주어 들었다. "이것은 전설의 삼신주(三神珠), 피수(避水), 피독(避毒), 피사(避邪)예요. 오오…… 이 귀한 것이……." 삼신주! 혹은 천계삼령(天界三靈)이라고도 한다. 피수(避水)는 물을 막고, 피독(避毒)은 독을 막으며, 피사(避邪)는 액겁을 물리치니, 이 세 개의 구슬이 한데 모이면 능히 심마(心魔) 또한 물리친다는 것! 전설의 구슬, 한낱 물뱀이 그토록 거대해지고 영성을 지니게 된 것도 바로 이 삼신주 탓이었으리라……. 잠시, 심해 속의 이 절세기연(絶世奇緣)에 넋을 잃고 있던 두 사람, 이내 한쪽에 쓰러진 무류흔을 안아들고 그의 품속에다 삼신주를 소중하게 갈무리해 준 후 이어, 물을 박차고 동혈 속으로 몸을 날렸다. * * *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세계였다. 유부(幽府)라고나 할까? 동혈을 반 시진 가량 달려나가자 주위의 경색은 일변했다. 길은 조금씩 위로 뻗어 있되, 느닷없이 소름끼치는 추위가 밀려오더니 이내 온통 얼음으로 뒤덮인 하나의 세계가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위로 뻗은 동굴의 벽엔 엷은 빙층이 깔려 있었다. 세 사람이 헤쳐 나가는 물은 얼어 있지 않았으나 오히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차가워졌다. 그 물 속에는 간혹 깨어진 얼음덩이가 떠다니고 있었다. 주육대사는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창백한 표정의 무류흔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정신을 잃은 중에도 몸을 가늘게 떨고 있는 것이, 극도의 추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리라. "아직 멀었는가, 사매?" "다 온 것 같아요." 문답이 채 끝나기도 전이다. 푸우---! 주육대사는 자신의 몸이 하나의 수면 밖으로 솟구쳐 나온 것을 알았다. 그는 허공을 세 차례나 곤두박질 친 후 가볍게 땅 위로 내려서다가 그만 부르르 몸을 떨고 말았다. 그가 딛은 곳은 얼음 땅이었다. 게다가, 주위의 기후는 말할 수 없이 차가웠다. 하나, 주육대사가 놀란 것은 딛은 곳이 얼음 땅이라거나 주위의 기후가 말할 수 없이 차다는 것 따위가 아니었다. 궁(宮)! 오오…… 눈앞에 펼쳐진 온통 얼음으로 빚어진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하나의 궁. 지하 수백 길의 땅속에 이토록 차고 한랭한 신비의 기후와 얼음으로 빚어진 궁이 있으리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하였으랴! 그러나, 이것은 꿈이 아니었다. 분명히 현실 속에, 이 얼음궁은 환상처럼 서 있었다. "이, 이곳은……." "무저빙궁이에요. 우리는 마침내 이곳까지 왔어요." 억겁 의 신비가 벗겨진 데 대한 시새움의 발로일까? 무저빙궁은 시린 은빛 광채를 사위로 햇살처럼 뿜어내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주위는 포악하도록 괴괴한 정적 속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육대사는 아까부터 아득하도록 높은 궁문과 벽을 어루만져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정말 얼음이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서리처럼 굳어 버리는 이런 추위가 아니라면 이 궁은 녹아도 벌써 녹았을 것이다. 환상성니는 굳게 닫힌 궁문의 앞에서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눈치더니 이윽고, 우수를 궁벽에 바짝 갖다 붙이고 좌우로 크게 십자를 그었다. 순간 보라! 우우웅……. 거대한 문이 양쪽으로 그르릉 밀려나는 것이 아닌가? "옛날 사부님이 하던 방식을 따라 해보았는데 정말 열리는군요." 궁 안, 그것은 기이하게도 하나의 통로였다. 사면은 얼음, 높이 일 장여의 천장엔 희귀한 구슬이 박혀 극히 신비로운 채광을 그려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다. 두 사람이 안으로 막 발을 들여놓기 무섭게 돌연 공중에 희미한 은빛 광채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것들은 마치 반딧불 같은 모양으로서 앞으로 걸아나가는 두 사람의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기 시작하는 것이다. 주육대사는 크게 놀라 경기를 일으키려고 했다. 순간, 환상성니의 다급한 말이 크게 귓전을 쏘아져 왔다. "안돼요! 이것들은 얼음의 전령이며 무저빙궁의 수호신들이예요, 이것들을 하나라도 건드리는 순간 우리는 무저빙궁의 적이 돼요!" 소스라쳐 놀란 주육대사, 황망히 내치려던 손을 거두어 들이다 그 힘에 못 이겨 얼음바닥을 뒹굴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