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객 - 7편 (7/36)
그리고 세 사람, 물에 빠진 생쥐꼴로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사람은 아까 물로 뛰어들었던 재상이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두 사람이 탁자를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둘다 뚱뚱하다. 마치 두 개의 공이 앉아 있는 것 같다. 굳이 다른 점이라면 크고 작은 차이일까? 큰 뚱보가 말했다. "돈은 어떻게 번다고 했느냐?" 작은 뚱보가 대답했다. "목숨을 걸고 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목숨을 거느냐?" "돈을 버는 것처럼 겁니다." "흐흠! 재산을 간수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냐?" "바다입니다." "재산은 어떻게 간수하느냐?" "되도록 많은 자식을 낳아 그들에게 분산시킵니다." "돈을 버는 세 가지 원칙을 말해 보아라." "첫째, 수중에 들어온 돈은 다시는 내보내지 않고, 둘째, 남의 돈을 내 돈처럼 여길 것이며, 셋째 위험을 만나면 즉시 버리는 것입니다." 큰 뚱보는 빙그레 웃었다. "너는 태어난 후 이 아비의 돈을 얼마나 썼느냐?" "식대(食貸), 의류(衣類), 서책, 처소비용을 합하여 은자 일만 냥 입니다." "너의 힘으로 얼마나 갚았느냐?" "구천 냥 을 갚았습니다." "나머지 천 냥 을 언제 갚겠느냐?" 은 뚱보는 씩 웃었다. "이미 갚아졌습니다. 이 사흘 동안 아버님이 저를 묶어두셨으니 상담비용으로 저는 천 냥 만 받도록 하겠습니다. 큰 뚱보는 어이가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떴다. 그러다 말고 돌연, 그는 대소를 터뜨렸다. "핫하……. 그만하면 이 금대야의 정실 아들로 부끄럼이 없다, 그러나……." 큰 뚱보는 뚝 웃음을 멈추더니 말했다. "사흘 동안의 식대와 처소비용이 오십 냥 이니 너는 나중에라도 꼭 갚도록 해라." 기이한 일, 이를 어찌 부자간의 대화라 하랴? 이때다. 의식을 잃고 있던 재상이 몸을 꿈틀하는가 싶더니 홍망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큰 뚱보에게 시선이 가 닿자 다급히 정중한 포권지례를 취해 보였다. "금대야를 뵈오." 그러나 큰 뚱보는 재상쪽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그는 작은 뚱보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너는 지금 갈 생각이냐?" 작은 뚱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순 없으니까요." "그렇다, 네가 소림사 에 가 있는다면 그 기한을 삼 년만 잡아도 네 밥값을 오백 냥 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너는 참으로 좋은 생각을 했다." 작은 뚱보는 씩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절약이 아닙니다. 돈벌이지요." 재상이 큰 뚱보를 향해 황제가 급히 쓸 돈이 있으니 어쩌니 하는 소리를 들으며 작은 뚱보는 선실 밖으로 걸어나왔다. 햇살은 눈부셨다. 하늘을 힐끔 올려다보고 난 작은 뚱보는 품속에서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들었다. 두루마리, 그것은 바로 소림 의 파화편지였다. "첫 발이다……. 세상은 이제 나 금적해(金積海)가 어떤 사람인가를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말의 여운은 아직도 감도는데 그의 몸은 이미 바다 속으로 자취를 감추고 없었다. 풍덩--! * * * 네 사람, 시한부 생명의 소년 무류흔, 팔십남금군교두의 딸 추상, 백정의 아들 검우, 거부의 아들 금적해……. 언젠가 같은 날 태어났던 이들은 마침내 세상으로 그 모습을 나타냈다. 사성출도(四星出道)! 하나, 대륙의 네 곳에서 벌어진 이 일들이 바로…… 후세인들이 삼십육겁(三十六劫)이라 이름붙인 대혈검의 서막임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 * * 숭산 , 동서천리에 휘하 칠십이 봉을 거느린 거산, 그러기에 예로부터 사람들은 숭산 을 중악이라 칭하며 일대신산으로 여겨 오지 않았던가? 솟은 거암괴석은 칼날 같고 아득히 덮인 수해는 그대로 구름바다 같은데, 그 중에서도 무림대파 소림사 가 있는 소실봉을 일편백운처럼 아득히 날아오르는 인영이 있었다. 슈욱--! 환상인가? 단숨에 산 중턱까지 날아오른 인영, 먼지 한 점 일지 않는 초극상승의 경공 절학! 이는 바로 불문의 실전비기인 천류뇌전(天流雷電)이 아닌가! 노승, 소림사 로 통하는 천팔백 화강제단에 휘청 몸을 세운 사람은 바로 한 명의 노승이었다. 다 떨어진 누더기 같은 승포, 그 나이는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고, 한 쌍의 귀는 어깨 위까지 늘어졌으며, 양손은 무릎에 닿을 듯 길었다. 길고 긴 백미는 어찌나 긴지 발끝까지 늘어졌는데, 왠지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머금어지는 용모였다. 바람이 불자 헤진 가사 틈 새로 앙상한 늑골이 보였다. 하나, 손에 든 선장 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단지 닿기만 했을 뿐인데도 돌계단을 움푹 파고들고 있었다. 폐포노승은 계단에 내려서기 무섭게 앙상한 부젓가락 같은 팔로 허리를 콩콩 두들겼다. "에고고…… 이제 나도 늙었구나. 백 년 전만 해도 태산 에서 조식공양을 하고 운남 에서 점심차를 들었건만 고작 천릿길을 달렸다고 온몸 삭신이 쑤시는 도다……. 나무주육타불(羅無酒肉陀佛)……." 그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근처의 뾰족한 바위에 더 뽀족한 몸을 앉혔다. 온요로운 햇살이 노승의 몸 위로 내려앉는다. 무심히 그 하늘을 올려다보고 난 노승은 돌연 몸을 움찔하더니 재빠르게 손을 장삼 속으로 집어넣었다가 꺼냈다. 한데, 그 손에 매달려 있는 것은 꼼지락거리는 이 한 마리가 아닌가? "허어…… 양광수려한 이 시각에 내 맘은 어찌하여 미경(美景)에 취하지 못하고 한낱 미물벌레에 쏠리게 되느뇨……?" 그는 이를 이리저리 돌려 가며 살피더니, "요놈, 요놈! 구천지옥의 흡혈귀도 중의 피는 못 먹거늘 괘씸하기 짝이 없구나. 네 놈이 무엇을 믿고 내 피를 빨았느냐? 허허, 그놈 토실토실한 게 때깔도 좋다. 이게 다 내 몸의 살과 피를 취한 것이로구나. 하나, 이 몸은 불승의 몸. 어찌 살생을 하랴. 그래, 다만 쫓아낼 뿐이니 이제부터 하는 불존의 말을 잘 듣고 부디 개과천선하여 잘 살도록 하라." 이어, 노승은 한 마리 이를 향해 본격적으로 강론을 할 채비를 차렸다. 저벅저벅…… 이때 돌연, 심산의 정적을 깨고 울려오는 발자국 소리. 노승의 귀가 쫑긋 세워졌다. 그는 밑을 향해 잠시 귀를 기울여 보더니 씩 웃으며 수중의 이를 바라보았다. "네 놈은 운도 좋다. 너 대신 강론을 들은 놈이 오고 있으니 너는 그냥 가도록 해라." 산굽이에 새로 두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 인(二人), 단지 나타날 뿐이련만, 일시에 주위는 환해지는 듯했다. 한 사람은 백의를, 한 사람은 화의를 걸쳤다. 둘다 나이는 십오륙 세 정도. 한데 그 용모가 도저히 인세의 것이 아니다. 좌측의 백의소년은 말할 수 없이 단아한 기풍에 장대한 귀골을 지녔으며, 우측의 화의소년은 옥으로 깎아 만든 듯한 용모에 주사처럼 붉은 입술을 지닌 미소년이었다. 이들이 마주 걸으니 해와 달이 걷는 듯 그 용모의 우열을 분간치 못할 정도였다. 다만, 좌측의 백의소년은 그렇게 보아서인지 조금 창백한 안색을 지니고 있었다. 폐포노승은 돌계단을 걸어 오르는 그들을 힐끗 바라보더니 씩 웃으며 돌연 징 깨지는 듯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중은 늙어 서럽고……." --이는 먹이를 잃어 서럽다. 피차 서럽기는 마찬가지인데, 아서라 어찌 내가 너를 해할 것이냐……. 이 우스꽝스런 노래에 두 소년은 마주보더니 피식 웃었다. 폐포노승의 미간이 찡그려졌다. "허어…… 이 아이들 좀 봐라. 불존의 노래에 감히 비웃음이라니……." 단아한 기풍의 백의소년이 폐포노승을 향해 정중히 손을 맞잡았다. "이 길이 소림사 로 가는 길이 맞소이까. 스님?" "맞는다고 보면 그렇고, 아니라면 아닐 터이니 중생은 그리 알라." 백의 소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 말씀은……?" "내가 가면 소림사 이고 아니면 아니니 무엇이 이상한고?" 듣기에 따라선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하나, 백의소년은 그 말을 무심히 넘기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보니 대 소림 에 계신 스님이로군요." "대 소림 이고 소 소림 이고, 중생은 나를 좀 업도록 하라, 에고에고…… 나이가 들고 보니 그저 보이는 것은 액겁뿐이로다……." 한쪽에 서 있던 화의 소년의 검미가 쫑긋 치켜 올라갔다. 난생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를 업으라니……. 그러나 백의소년은 눈짓으로 발끈하려는 그를 제지시키고 나서 고개를 끄덕였다. "노인을 공경함은 인지상정의 도리……, 스님은 어서 소생의 등에 업히시오." 분명히 뼈에 가죽만 붙어 있는 앙상한 노승이었다. 한데 이토록 무거울 줄이야. 무류흔은 자신이 돌덩이를 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한 계단 한 계단을 오르는 것이 태산 을 오르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 한편 화의소년, 팔십만금군교두의 딸 추상은 그 뒤를 쫓으며 곰곰이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무류흔이 노승을 업기가 무섭게 그것을 못마땅해 하는 자신의 귓전으로 파고 들어온 말. "계집애야, 잠자코 있지 않으면 네 정체를 소림사 돌중들에게 폭로시키고 말겠다." 전음 이었으며 그것은 노승이 보낸 것임에 틀림없었다. 그런데 저 노승이 어찌 자신의 정체를 눈 깜짝할 새에 알아봤을까? 자신의 역용이 그토록 허술한 것이란 말인가? 과연, 그녀는 생각에 잠겨 무류흔의 어려움을 알아보지 못했다. 노승의 몸은 갈수록 더 무거워졌다. 무류흔은 휘청대는 중에도 문득 한 줄기 기이한 감이 솟는 것을 느꼈다. 노승의 몸은 일정하게 무거운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좌측이 무겁다가 때로는 우측이 무거웠으며, 그럴 때마다 자신의 발 또한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아가거나 멈춰서고, 심지어는 뒤로 물러나기까지 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았으나, 자꾸 그런 일이 반복됨에 따라 무류흔은 자신도 모르게 발자국을 세어 보게 되었다. '좌삼(左三)…… 우이(右二)…… 그리고는 정확히 후일, 연후 전진 일보다…… 이것이 역으로 또는 좌우의 순서를 바꾸어 계속되는 구나…….' 멀리 소림사 의 산문이 아득히 올려다 보이고 있었다. 무류흔은 이때쯤 완전히 노승의 무게에 적응할 수 있었다. 즉, 내딛는 보보(步步)를 미리 파악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때, 그의 등을 툭 치며 낄낄 웃는 노승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잘 알았느냐? 이 천류뇌전은 노납의 가장 큰 밑천이다……. 노인을 공경하는 중생에 대한 선물이니 그리 알도록 하라……." 목소리가 끝나고 추상의 비명에 찬 외침이 들려 온 것은 동시의 일. "노승이……?" 무류흔은 다급히 등뒤의 노승을 내려놓고 돌아보았다. 순간, 그는 해연히 놀란 눈빛으로 그 자리에 멍하니 서고 말았다. 노승, 그는 하나의 석상으로 변해 있었다. 노승의 모습과 한 치의 어김도 없었으나 이 석상은 양손에 각각 닭다리와 술호로를 하나씩 들고 있었다. * * * 같은 시각, 사천 백제성 의 천불사당(天佛祠堂). 조각과 경고문과 팻말의 신비로 지난 백년 간 무림을 놀라게 해오던 이 신비로운 곳을 지나던 무림인 하나는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일곱 개의 불승조각상, 그 중 네 번째에 서 있던 주육대사의 석상이 연기처럼 증발해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사천 무림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던 신비괴진(神秘怪陣)이 아니었던가? 설마하니 그 석상이 저절로 증발해 버렸단 말인가? 이 일엔 사천 당가의 노보주(老堡主)까지 직접 나왔으나 아무런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흐지부지되고 말았으며, 그때 사당 앞의 대리석 팻말은 팔백오십 일 후를 가리키고 있었다. * * * 석상은 소림사 의 것이 아니었다. 마중 나온 승려의 어리둥절한 표정이 그것을 말해 준다. "아미타불…… 그냥 두시고 어서 거처로 가시길……." 산문의 옆 아담한 정자에서 간단한 의식이 있었다. 파화편지를 건네주고 서명을 한 후 무인을 찍는 것이다. "정식 입문절차는 오십 일 후에 거행됩니다. 두분 시주는 이번 집제(集弟)엔 마지막으로 오셨습니다." * * * 거처, 이 말만 듣고도 그 거처란 곳에 대해 매우 안온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러나 무류흔과 추상은 이 거처를 찾기 위해 만 하루를 꼬박 숭산 을 헤매고 있었다. -- 절의 뒷길로 올라가면 하나부터 열까지의 숫자로 표시된 화살표가 있습니다. 아미타불…… 마지막 열 번째의 끝에 거처가 있소이다.-- 제기랄! 그런데 그 화살표라는 것이 이 리 지나서 하나, 산을 몇 개 넘어서야 하나……, 이런 식으로 배열이 되어 있는지라, 이미 열두 시진을 산에서 보낸 무류흔과 추상은 이제 겨우 아홉 번째의 화살표를 지나왔던 것이다. "이건 장난이에요. 소림사 의 중들이 미친 거예요." 성질이 급한 추상은 몇 번씩이나 칼을 뽑아 들고 산 아래 소림사 로 뛰어내려갈 뻔했다. 무류흔이 말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소림사 의 불상 몇 개는 부서져 버렸을 것이다. " 소림 은 명문대파요, 그들이 장난 같은 것을 할 리가 없소," 성난 망아지처럼 길길이 날뛰는 추상을 겨우 달래어 찾아낸 열 번째 화살표시. 한데, 그 앞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마주보며 쓴 웃음을 흘려야만 했다. 벼랑, 깊은 운무가 감도는 수천 길의 낭떠러지. 끝도 보이지 않는 그 심연 속을 열 번째 화살표식은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래도 장난이 아니라고 하겠어요?" 무류흔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은 일종의 시험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스슥……. 츠릿! 미끄러진다. 벼랑은 사암이었다. 무류흔이 본래 무예를 익힌 체질이 아니었다면 이미 떨어져도 골백 번은 떨어졌을 것이다. 추상은 대무가 출신답게 날렵하게 벼랑을 타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밑을 내려가는 무류흔을 향해 걱정스런 시선을 던졌다. "내가 밑에 있을 걸……." 소중한 사내……, 권모술수의 이 세상을 밟고 건전한 심성 하나로 살아가는 그이기에 이미, 무엇이라 형용할 수도 없으리만큼 자신의 가슴을 모조리 차지해 버린 무류흔을 향하는 추상의 근심은 더 큰지도 몰랐다. 그런 그녀의 근심을 입증이라도 하듯……. "억!" 무류흔이 밟으려던 돌출부가 하나 부서져 나가는 것이 보였다. 동시에 한 줄기 환상처럼 그의 몸은 밑으로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추상은 부릅뜬 동공으로 붉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잡고 있던 암벽을 미련없이 놓았다. 무류흔, 이 하나의 이름을 쫓아……. "이게 뭐야……? 차라리 처음부터 같이 뛰어내리자고 할 것이지……." 슈우욱--! 심산의 운해는 깊고도 깊었다. 떨어져 내리는 두 사람의 모습을 이내 삼켜 버리고 말았으므로……. * * * "굶기는 것으로……." "어떻게?" "계곡의 바닥엔 소금이 깔려 있습니다……. 아미타불…… 사시사철 어둠이 가시지 않는 곳이며 습지에 사는 독충 또한 우글대는 곳이지요……. 그 속에서 모인 천 명의 승려들은 아무 이유 없이 굶게 됩니다……." 두 사람, 상석에 앉은 사람은 깡마른 노승이다. 우수에 주(酒)자가 새겨진 술호로를 들고 있는 그는 바로 산 아래서 무류흔이 업고 왔던 그 괴노승이었는데 그의 앞에는 소림 방장 각오선사가 단정히 앉아 조용히 말을 잇고 있었다. "기한은 삼십 일……, 아홉 명의 장로단이 은밀한 곳에 숨어 그들의 적응도를 채점하게 되며 사상자나 부상자에겐 즉시 조처가 가해집니다." "조처…… 라……?" "그들은 은밀히 밖으로 구출된 뒤, 소정의 약물치료를 받고 침성곡 내에서 있었던 일은 기억에서 지워진 채 귀가하게 됩니다." 폐포노승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런 훈련을 생각하게 되었소?" 각오선사는 폐포노승의 옷자락 한쪽에 새겨진 연적연화인(軟赤蓮花印)을 힐끗 바라본 후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불형께서 하명하셨던 생사훈련의 취지를 들었을 때, 소승은 강력한 적응력을 지닌 인재들을 원한다고 생각했지요……. 아미타불…… 굶주림이란 한 인간의 내면을 가장 잘 표출시킬 수 있는 방법이니……." 생사훈련, 오오…… 그렇다면 이 폐포노승이 바로 정체불명의 연적연화인을 발송했던 장본인이란 말인가? 그는 왜 소림 에게 인재를 구할 것을 명했으며 그 속에서 또 오십 명을 추리는 생사훈련을 지시했을까? 폐포노승은 술을 한 모금 들이킨 후 툴툴 웃으며 말했다. "각오……, 당신은 과연 일파의 장문인 으로 부끄럼이 없구먼." 말을 하는 노승의 안광은 실처럼 가늘고 거세었다. 칠십 년의 수양을 가진 각오선사조차 그 눈빛과 마주치면 가슴 떨릴 정도다. 각오선사는 궁금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불형께선 어느 유파에 계시는 분인지……?" "나? 나는 소림 ." 소림 이라니, 장문인 이 모르는 제자가 어찌 있을손가? "아미타불…… 그러나 뵈온 적이 없으니……." "크ㅋ……." 폐포노승은 미묘하게 웃더니 느닷없이 방장 실 밖을 가리켰다. 그의 손끝은 작은 인공연못에 뜬 연화를 가리키고 있었다. "……." "만약 저 꽃을 누군가 꺾으려 한다면 어찌할 텐가?" 각오선사는 거침없이 말했다. "아미타불…… 말리오이다." "크ㅋ…… 무엇으로 말리나? 불경쪼가리로? 염불로? 어림없는 일……, 장문인 은 이런 무공을 본 적이 있는가?" 폐포노승은 돌연, 소맷자락 속에서 닭다리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닭다리는 창졸간에 허공에 수천 개의 초식을 쏟아 냈다. 직선, 곡선……, 그리고 사선! 현란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변식도 없고 조화도 없다. 다만, 빠르고 그 수천 개의 초식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쏘아져 가고 있었다. 각오선사의 수양 깊은 얼굴이 홱 돌변했다. 살인검초(殺人劍招)! 그는 일찍이 이토록 완벽하며 실용적인 살인검초를 보기는커녕 살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무릇, 검초란 식이 있으며 길이 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일종의 예의이며 그래서 무공을 예(藝)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오오…… 그러나, 이 파격적인 검초는 도대체 무엇인가? 예의도 없으며, 형식을 무시하고, 그저 잔악하고 비도덕적인 살생의 내음으로 가득한 이 검초는……. 각오선사는 이 미치광이 같은 검초에 소름이 왈칵 끼치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의 뇌리로는 한 이름이 스쳐 지났으며, 순간 각오선사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체면도 잊어 버린 채 부르짖고 말ㅎ다. " 밀교 (密敎), 소림 밀교 (少林密敎)!" 제 6 장 소림밀교(少林密敎) -------------------------- 밀교 (密敎), 소림 밀교 (少林密敎). 이 얼마나 엄청난 이름인가? 그것은 하나의 전설로, 신화로 이 땅에 내려오는 얘기였으니……. 천 년 전, 달마 대조종(達磨大祖宗), 이 땅에 선종(禪宗)의 뿌리를 내린 그는 일찍이 두 제자를 두었다. 광원(廣圓), 광운(廣雲)이 바로 그들이다. 이 중, 광원대선사는 소림 칠십이예를 집대성한 일대의 무승이었으며, 그 사제인 광운상인 또한 밀교 의 기재(奇才). 한데, 그 어느 날 하루 광운상인은 가슴속에 한 줄기의 회의를 품게 되었다. 불법(佛法), 심오하며 만고의 도리이긴 하나, 그것으로 몇 사람의 성인은 만들 수 있으되, 그 도를 방해하는 악만은 멸할 수 없지 아니한가? 악은 많고도 많았다. 승려들이 목탁을 두드리는 바로 그 시간에도 세속에선 살인과 투도와 간음이 그치지 않으며, 고승의 높은 법력도 한 자루 살생무기 앞에선 무기력한 것이 아닌가? 악(惡)! 이것을 멸할 수는 없는가? 광운상인은 십년면벽에 들어갔다. 그는 자신의 마음속에 일고 있는 회의를 없애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그러나, 결국 면벽을 끝내고 동굴을 나서며 그는 외치게 되었으니……. --불법은 무기력하다! 악은 강하다! 악은 힘으로 멸해야 하느니……, 한 사람의 악인을 죽이는 것이 바로 백사람의 선인을 구하는 길이다!-- 힘! 바로 힘으로써 악을 멸한다는 도리! 광운상인은 즉시 극비리에 어력멸악(御力滅惡)의 도리에 호응하는 승인들을 모아 하나의 무리를 만드니, 스스로 이 무리를 소림 밀교 라 칭하였다. 또한, 전래해 오던 심오하며 익히기 힘든 불가무예를 버리고 가장 실용적인 살상무예를 만들기 시작하니,만약 이 일이 제대로 성사만 되었다면 후세의 무림은 또 다른 판도를 형성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리라. 그러나, 스승 달마 조사와 광원대선사는 그의 이러한 만용을 이해하지 않으셨다. 광운상인은 스승 달마 조사에 의해 지하 수천 길의 무저갱에 갇히게 되었다. 갱을 들어가며 스승과 제자는 이러한 문답을 남겼다고 하니……. "스승이여……, 광운의 생각이 진정 틀린 것이오이까?" "아미타불…… 피는 피를 부르고 싸움은 싸움을 낳는다. 너의 생각은 궁극적으로 이 세상을 피비린내가 그치지 않는 아귀 옥으로 만드는 것이니라……." "스승이여, 스승이여……. 진정 악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오이까?" "악이 있으매 또한 선이 존재하는 것……, 있을 것이 있을 곳에 있는 만유의 도리를 너는 거역지 말라……." 광운상인은 처절하게 웃으며 이렇게 부르짖었다. "나를 키워 주신 스승의 말씀을 어찌 거역하랴? 지옥이라도 들어가자. 광운아! 하나 스승과 한 땅 위에 서 있지 않게 되는 날…… 소림 밀교 는 이 땅 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리라……!" 그로부터 백 년 후, 달마 조사가 좌화한 지 꼭 삼 년 되던 해, 아귀 같이 쏟아지던 대폭풍우를 뚫고 하나의 불기둥이 숭산 의 지하로부터 솟구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