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신객 - 1편 (1/36)

2026-09-22 08:30:47 조회 49
-------------------------------------------------------------------------- --- 사룡출해편(四龍出海篇) ====================== 서장 ---- 첫 번째 이야기, 전설(傳說). 서른여섯 사람, 서른여섯 자루의 병기(兵器), 서른여섯 명의 청춘(靑春), 서른여섯 자루의 살인병기(殺人兵器). 그렇다, 서른여섯 명의 살수 (殺手). 후세인들이 삼십육겁(三十六劫)이라 표현했던 한 시대의 엄청난 피의 대축제, 도덕도 없고, 인륜도 없으며 아무런 희망도, 절망도 할 수조차 없는 절망의 능선에서 천하는 몸부림쳤다. 삼십육 인, 그들은 너무 무서웠다고 전설은 말한다. 이 이야기는 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어떻게 탄생되었는가? 왜 그들은 살수 가 되었는가? 정(情)과 비정(非情), 울고 탄식하며, 유성(流星)처럼, 떨어지는 꽃잎처럼 난세를 살다간 그들……. 그렇다. 그때까지 아무도 상상해 보지 못했던 삼십육겁의 대혈운(大血雲)은 어느 괴상한 하루, 폭우가 퍼붓더니 신비로운 무지개가 피고, 광풍이 휘몰아치더니 천상처럼 고요해진 어느 여름날……. 네 아이가 태어난 바로 그 시각부터 죽음처럼 고요하게 시작되었다. * * * 두 번째 이야기, 탄생(誕生). 비, 폭우……. 쏴아아---. 마치 온 세상의 종말이라도 몰고 올 듯 굉렬한 폭우, 그것은 단 하루를 퍼부어 온 세상을 홍수로 뒤덮었으며, 그 아수라장 같은 대혼란 속에서 첫째 아이가 태어났다. "으앙……." 남아(男兒), 그러나 그는 불행했다. 그가 태어나는 그 시각에도 그의 아버지는 그들 부모의 잔치를 위해 소를 잡고 있어야 했으며, 아이가 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에 아버지는 소의 골통을 까고 피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며칠을 굶은 몸으로 난산(難産)한 아이의 어머니는 힘없이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실…… 것이다……. 네 아버님이 이제 곧…… 오실 것이다." 그러나 그 머리를 쓰다듬던 손이 힘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도, 질퍽하게 방바닥에 깔린 것이 난산으로 인한 피라는 것도 아이는 알지 못했다. 다만 자신이 안겨 있는 몸의 체온이 싸늘하게 식어 가자 미친 듯한 울음을 터뜨렸을 뿐이다. "으아앙……." 빗속에서 태어난 아이, 검우(劍雨). 그는 백정의 아들이었다. * * * 비가 그치자 무지개가 피어올랐다. 일곱 가지 색깔의 보석이 아롱져 빛나듯……. 온 누리에 흩어져 뿌려지는 화려하고도 영롱한 빛무리, 사람들은 넋을 잃고 그 아름다운 무지개를 바라보았다. 그 찬란한 빛 속에서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으아앙……." "핫하……." 거구(巨軀)의 중년인, 대명(大明) 팔십만금군을 호령하는 총교두(總敎頭)이자, 대내 제일의 무술인인 그. 그가 안고 기뻐하는 아이는 여아(女兒)였다. "비록…… 여아이긴 하나, 나는 너를 장부로 키우리라……. 그것도 온천하의 사내들 중 가장 뛰어난 사내로 키우리라! 너는 남자다. 대무가(大武家)를 이어갈 장군이다!" "으아앙……." 무지개 속에서 태어난 아이, 여아이면서도 남아로 클 운명의 아이, 추상(秋霜). 그녀는 팔십만금군교두의 딸이었다. * * * "아들입니다!" "으핫하하……." 중년인, 대거부(大巨富), 그의 부는 한 나라를 송두리째 사고 무너뜨릴 수 있었다. 그는 돈으로 이루어진 또 한 명의 황제였다. "백칠 종의 보석으로 아이의 요람을 만들라! 진주로 드리운 주렴과 황금이불, 비취와 산호로 아이의 옷을 만들라! 일천만 상인을 다스릴 소황제의 탄생이다!" 광풍(狂風), 미친 듯한 바람, 온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는 대풍사(大風砂) 속에서 태어난 세 번째 아이, 금적해(金積海), 그는 일천만 거상대부(巨商大夫)의 아들이었다. * * * 폭우, 무지개, 광풍……. 사람들은 세상이 멸망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토록 엄청난 폭우와 그토록 영롱한 무지개와 그토록 광란하는 바람을 그들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으므로……. 그리고 황혼(黃昏), 노을 속에서 세상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괴괴한 정적에 사로잡혔다. 태고 이전이 그러했을까? 질식할 듯 고요한 정적과 그 허공을 떠도는 신비로운 서기(瑞氣)……. 사람들의 마음은 성스럽고 경건한 빛으로 물들여졌다. 모든 이들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성스러움으로 가득 찬 그 성결한 시각에……. "으아앙……." 마지막 아이가 태어났다. "축하합니다. 공주님!" 허공을 감도는 서기만큼이나 아름다운 한 채의 궁(宮), 마치 만화가 피어 오르듯 수백의 그윽한 미녀들 속에서 태어난 남아(男兒), 서기 속에서 탄생한 아이……. "지상의 제왕으로…… 아무도 넘볼 수 없는 기품의 귀인으로 키우자……." 무류흔(舞流痕), 그는 천하에서 가장 지혜로운 여인의 아들이었다. * * * 태어나고 죽고, 살고 사랑하며……. 소용돌이! 운명의 소용돌이, 세월은 유수라더니 탄생의 신비로움과 더불어 십오 년의 세월이 무심히 흘러갔다. 매일처럼 강가에서 흐르는 물을 보고 인생의 덧업음을 생각하며, 가는 봄 아쉬워하기 바쁘게 다시금 가을을 슬퍼한다. 고향 산속 옛집에 돌아가 사는 사람이 못된 채, 속사에 분주한 사이 서로 흰머리가 되고 말았구려……. 제 1 장 찾아야 한다 ------------------- 혹자는 십오 년 전부터라고 했다. 혹자는 이십 년쯤 됐을 것이라고 했으며, 혹자는 십 년쯤이라고 말했다. -- 사천 (四川) 땅 백제성 (白帝城). 그 황량한 풍사의 땅에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사당(詞堂)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기이하게도 그 안에는 일곱 개의 조각상이 있었다. 마치 살아 있는 듯 생생한 이 조각상들은 하나같이 승려들을 조각해 놓은 것이었다. 제일상(第一像), 백염백미백의(白髥白眉白衣)에 홍안자소(紅顔慈笑)의 성스러운 노승, 신성천불(神聖天佛)……. 제이상(第二像), 핏빛 혈의승포(血衣僧袍)에 분을 바른 듯 창백한 얼굴의 음산한 중년승인, 혈의법승(血衣法僧)……. 제삼상(第三像), 승포자락을 제치고 불쑥 튀어나온 거대한 배에 만면에는 함박 같은 웃음을 머금은 뚱보승인, 소신승(笑神僧)……. 제사상(第四像), 너덜너덜한 폐의승포(弊衣僧袍)에 한 손에는 닭다리를, 한 손에는 술호로를 든 거지승려, 주육대사(酒肉大師)……. 제오상(第五像), 얼굴에는 온통 검상(劍傷), 온몸에는 도합 일백 군데의 찢기고 뜯긴 상처가 있는 백치승인(白痴僧人) 몽화상(夢和尙)……. 제육상(第六像), 전(錢)자가 쓰여진 거대한 포대를 메고 목이며 사지에 엽전꾸러미를 장식처럼 둘러맨 승려, 금전타불(金錢陀佛)……. 제칠상(第七像), 옥같이 뽀얀 절색의 용모에 먹물처럼 검은 흑포가사(黑袍袈裟)를 걸친 아름다운 니승(尼僧), 환상성니(幻想聖尼)……. 도합 일곱 개의 조각상,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사당이 있다거나 그 안에 일곱 개의 조각상이 있다는 사실 따위가 아니었다. 일곱 개의 조각상 위에 붙여진 하나의 포고문(布告文)! 그것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색 하나 변하지 않았고, 분홍빛 광채가 은은한 그 천에는 다음과 같이 기이한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一惡制法 百善求也 奪經培力 惡善詛呪 七神之劍 嗚呼良時 佛門一繼 誕生之日 日卽到來 한 명의 악인을 죽임으로써 백 명의 선인을 구한다. 불경을 버리고 힘을 키우나니, 악업의 저주로 세워진 불문칠신의 검……. 때가 이르고 있다. 불문 제일후계자가 탄생할 날이……. 비로소 머지 않았다.> 알 수 없는 해괴한 글귀, 말의 뜻인 즉 일곱 승인은 구제의 도(道)를 불경보다는 힘에 두고 있다는 얘기인데……. 포고문의 아래엔 한 개의 기광이 일렁이는 강옥(剛玉)이 놓여 있었고, 그 강옥에는 보랏빛 수실의 기검(奇劍) 하나가 꽂혀 있었다. 검이라곤 하나 꼬챙이처럼 길쭉한 모양에 크기는 고작 한 자, 검의 앞에는 만년온옥(萬年溫玉)으로 만든 분홍빛 연화부(蓮花符)가 놓여 있는 것이니……. 그러나, 사다의 주위에는 괴이한 진(陣)이 쳐져 있있다. 밖에서는 보이나, 접근만 하면 진에서 홀려 빠져 나오질 못하는 것이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무림인 중, 기문진학(奇門陣學)으로 명성을 떨친 진주 배교 (晋州拜敎)의 삼십육 고수가 진을 파훼하려다 한 달이나 그 속에서 헤매다 탈진하여 기어 나온 일은 무림의 유명한 얘깃거리가 되기도 했었다. 더 더욱 기이한 것은 사당의 문 앞에 세워져 있는 팻말이었다. 대리석을 정교하게 깎아 만든 그것은 날짜를 알리고 있었는데, 괴이하게도 매일매일 날짜가 바뀌는 것이다. 오천사백 일 후……. 삼천육백 일 후……. 당금에 이르러선 꼭 구백 일 후를 가리키고 있는 팻말, 천 명의 사람이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그 팻말의 날짜는 매일 하루씩 앞당겨지고 있었으며, 지금 이 시각에도 바뀌고 있을 것이다. 무슨 뜻일까? 구백 일 후에는 하늘의 심판이라도 시작된다는 말일까? 구백 일…… 꼭 삼 년이 남았다. * * * 휘이익! 새, 한 마리의 거대한 붕조 (鵬鳥). 날개폭만 해도 십여 장이 넘으며 두 눈에선 핏빛 혈광이 넘실대는 영조(靈鳥)이다. 새의 목에는 가는 은사슬이 이어져 있고, 그 사슬은 마치 말고삐처럼 뒤로 늘어졌는데, 그 사슬을 움켜쥐고 있는 손 하나, 구릿빛 피부에 바위처럼 탄탄해 보이는 근육의 팔, 벗어 젖힌 웃통에 맺힌 땀이 사막의 양광(陽光) 아래 기름처럼 번들거린다. 소년, 그는 장공(長空)을 나는 붕조 의 위에 우뚝 몸을 세운 채 타는 듯한 시선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돌연, 열사(熱砂) 위를 날던 붕조 가 갑자기 몸을 급강하시켰다. 슈욱! 동시에 거대한 돌산 하나가 빠르게 청년의 눈속으로 쏘아져 들어왔다. 모래와 모래가 쌓이고 쌓여 억겁 의 세월이 흐른 후, 이미 강철보다도 더 단단하게 굳은 모래산! 붕조 의 속도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필시 산과 부딪쳐 박살이 날 터, 바로 그때 소년의 두툼한 손이 자신의 허리춤으로 돌아갔다. 돌아갔다 싶은 순간, 우이잉! 무서운 소음을 휘몰고 일직선의 광채를 흩뿌리며 쏘아져 나가는 도끼 하나, 이는 바로 검술상의 최상상 절기라는 이기 어검술 (以氣御劍術)의 도리! 그 이기 어검술 이 다섯 배의 무거운 도끼로 펼쳐지고 잇는 것이 아닌가? 파파팟! 금속과 돌이 맞닿아 눈부신 불꽃을 사위로 피워 올렸다. 하나, 그것도 잠시……. 콰쾅---! 무서운 진기 의 폭풍에 휩싸여 산은 단숨에 두 조각으로 갈라지니…… 붕조 와 소년은 처음과 똑같은 속도로 갈라진 균열 속으로 날아들었다. 화악---! 이것이 무슨 일인가 채 알아차릴 여유도 없이, 이미 새와 사람은 아득한 창공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작열하는 태양 속으로 빨리듯……. 후두두둑……. 공중으로 날아올랐던 바위조각들은 그제야 떨어져 내렸다. 바로 그때, 무쇠처럼 장중한 목소리 하나가 열사 위로 울려 퍼졌다. "제오급 관문 통과! 제육급 수련 인가(認可)!" 소년, 또 한 명의 소년, 그는 미친 듯이 숲속을 치달리고 있었다. 그는 마치 바람 같았으며 연기 같았다. 바싹 마른 나뭇잎이 그의 발에 정통으로 밟혀도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일 장 밖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나무도 그의 달리는 속도를 줄이진 못했다. 그는 마치 형체없는 유령 같았다. 독사(毒蛇), 하나만 틀어박혀도 촌각에 코끼리를 죽여 내는 맹독의 독사였다. 숲은 어두웠고, 아무 광채도 없는 독사는 그래서 더욱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소년은 중얼거렸다. "하나, 둘…… 여섯…… 열둘…… 모두 열다섯!" 오오…… 설마하니 그는 날아오는 독사의 수를 세고 있단 말인가? 달리던 자세 그대로 그의 발이 땅을 가볍게 차 올렸다. 슈슉---! 순간 사위로 뻗어 오르는 마른 나뭇잎들, 나뭇잎 하나에 모래 하나, 모두 열다섯 개의 나뭇잎에 독사가 박혔다. 그리고 그 나뭇잎들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소년의 모습은 이미 그곳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한 괴목에 매어달린 모래시계는 마지막 하나의 모래를 떨구고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 "제구급 관문 통과! 제십급 수련인가!" 눈동자, 두 쌍의 눈동자가 숲의 한 곳에서 반짝 광채를 드러냈다. "아미타불…… 어떻게 생각하나?" 나직한 불호에 이어 가래끓는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아흔아홉의 아이 중 십관의 수련자격을 받은 아이는 불과 셋이다. 그 셋도 황(皇), 천(天), 지(地), 인(人)의 사품(四品)에는 어림도 없어……. 삼십육위(三十六位) 중 말단 서열에나 끼일 자질이다…….' 놀랍게도, 이들의 말이 한 번씩 뱉어질 때마다 주위의 나무와 수목은 폭풍이라도 만난 듯 휘어지거나 굽혀지고 있었다. 숲, 말하며 토하는 숨결로 천 년 거목들을 휘게 만드는 공력의 소유자라니 도대체……? 말은 계속 이어졌다. "저 정도면 훌륭한데…….? "육귀(肉鬼), 너는 술이나 먹을 줄 알지 무예에는 깜깜이야. 우리는 단순히 무림의 고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악을 자를 신인(神人)들을 만드는 것이란 말이다." "아미주육타불(阿彌酒肉陀佛)…… 제길랄! 그럼 또 아이들을 모아야 한단 말인가?" "흐흠!" 잠시의 침묵 후, "육귀, 너는 잘도 돌아다녔지만 정작 십오 년 전의 그 날에 태어난 아이들은 하나도 모아오지 못했다." "천하는 넓다. 그리고 그날 네 아이가 태어났으리란 복귀(卜鬼)의 말도 믿을 건 못돼. 개나 원숭이로 태어났을지도 몰라." "개든, 원숭이든 그날 태어난 아이들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십관(十關) 후의 지옥관(地獄關)을 통과할 자질이 못돼!" "빌어먹을! 그날 태어난 놈들은 옥황상제의 아들들이라도 된단 말인가?" "조화천일(造化天日)도 모른단 말인가? 일천 년에 단 한번 하늘과 땅이 열리는 날! 네 가지 징후를 안고 태어난 그들은 곧 천지의 정화(精華)로 뭉쳐진 놈들이야!" "알게 뭔가?" 나른한 하품소리 들리는가 싶더니……. "다섯 독의 술독을 비운 후……. 내키면 가 보도록 하지……. 소림 의 손자들이나 득달해 볼까?" 무슨 말일까? 알 수 없는 대화……. 그리고 주위는 정적에 휩싸였다.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 * * 똑똑……. 목탁소리, 딸랑딸랑……. 풍경(風磬) 소리. 절, 절밤은 좋다. 그윽한 단향(壇香) 속에 승려들의 나직한 법창이 있어서 좋고, 소슬한 바람 속에 소나무 향기가 있어서 좋다. 소림사 ! 천년 무예의 발상지이며, 중원불문(中原佛門)의 일대성지(一代聖地)인 이곳, 한 잎 갈대잎을 타고 바다를 건너왔던 달마 조사(達磨祖師)의 위엄처럼 이 천년고찰(千年古刹)은 오늘도 도도히 숭산 (崇山) 산평(山坪) 위에 그 웅자를 뽐내고 있다. 뎅…… 뎅…… 뎅……. 어디선가 삼경 을 알리는 종소리, 각오선사(覺悟禪師), 십만불승(十萬佛僧) 위에 우뚝 선 대 장문인 (掌門人)인 일대의 고승은, 왠지 모르게 가볍게 설레는 가슴을 안고 승방의 앞을 서성이고 있었다. 무념무사(無念無想) 해탈 의 지경에 이른 지 오래인 수양이건만, 이토록 번잡한 심사란 웬 말인가? 달빛은 교교했다. 각오선사는 무심히 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각오선사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저것은?" 암천장공(暗天長空), 그 위를 표표히 날아 떨어지고 있는 하나의 물체, 일견해 보기에도 그것은 봉합된 서찰이었다. 각오선사는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한낱 종이에 불과한 저것이 저절로 허공을 날리는 만무한 일, 도대체 이 하늘아래 어떤 고수가 있어 저토록 엄청난 진기 로 봉서를 허공에 날렸단 말인가? 타앗---! 다음 순간, 각오선사의 장대한 신형이 땅을 박차고 허공을 날았다. 그는 단숨에 삼십여 장을 뛰어 오른 후, 일수(一手)를 쭈욱 내뻗어 봉서를 채어 잡았다. 그러나 순간, 그는 봉서에 실린 공력을 채 다 감당하지 못하고 허공을 아홉 바퀴나 퉁기듯 곤두박질쳤다. 이어 열다섯 번 몸을 회전시킨 후에야 간신히 땅에 내려선 그는 뛰는 가슴을 억누르고 봉서로 시선을 던지다가 돌연 부르르 흰 수염을 떨고 말았다. "윽!" 그의 부릅떠진 시선이 한치의 어김도 없이 박힌 곳, 봉서의 아래쪽에는 야밤에도 투명한 광채로 빛나는 분홍빛 연화인(蓮花印)이 찍혀 있었다. "연적연화인(軟赤蓮花印)……?" 그의 뇌리를 망치로 두들기듯 한소리 외침이 스쳐 지났다. --연적연화인을 만나거든 어떠한 상황일지라도 그 지시를 따르라……. 선대 장문인 이 그에게 내린 유시이며, 천년의 세월 동안 장문인 과 장문인 에게만 계승되어 온 그 한마디. 수양 깊은 이 노스님은 가볍게 떨리는 손으로 봉서를 펴 들었다. 그곳에는 아무 서명도, 날인도 없었다. 다만 극히 딱 한 문구의 글귀가 적혀 있을 뿐. 묘시 (卯時)부터 유시 (酉時)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을 찾아라. 무가(武家)든, 아니든 상관하지 말 것이며 그들 모두를 무조건 소림 속가제자 (少林俗家弟子)로 삼아라.> 밑도 끝도 없다.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한다는 구절조차 없다. 가가오선사는 봉서를 든 채 한동안 망연히 서 있기만 했다. 조사(祖師), 역대 조사들은 무슨 까닭으로 이러한 유시를 남긴 걸까? 화르륵……. 삼매진화 (三昧眞火), 각오선사의 손끝에서 봉서가 한 줄기 불꽃으로 변했다. 연후, 그는 조용히 장로원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십오 년 전…… 하유월 초닷새입니까?" 각오선사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장로원주(長老院主) 임오선사(臨悟禪師)는 조용히 밤하늘의 성좌와 마주 앉았다. "왜 그 날을 말씀하십니까?" "이유는…… 말할 수 없네." "그 날은……." 임오선사의 내리감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엄청난 정기(正氣)와 사기(邪氣)가 엇갈린 날입니다. 폭우와 광풍은 마의 기운이오, 무지개와 노을은 정의 기운이었을지니……. 그렇습니다. 그 속에서 네 개의 생명이 탄생했습니다. 아미타불……." "노납이 찾는 것은 바로 그들일세." "그러나…… 그 방향은 알 수 없지요……. 그 두 기운의 정기(正氣)는 워낙 드세어 소제의 천학(賤學)으로는 따라잡을 수가 없었으니……." 임오선사는 무림제일의 점성가(占星家)였다. 그가 모르는 것은 하늘도 알 수 없다. 각오선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 * * 사각…… 사각……. 먹을 가는 소리, 먹은 보통 먹이 아니었다. 그 두께는 두 자요, 높이는 키를 넘는 거대한 먹. 웃통을 벌거벗은 두 승인(僧人)이 땀을 뻘뻘 흘리며 그것을 갈고 있었고, 옥그릇으로 먹물을 퍼 옥주발에 담는 또 다른 승인의 옆으로 각오선사는 자줏빛 포단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다. 그가 앉은 삼 장 밖, 너비 두 자의 두루마리를 든 수십 명의 승인들이 일렬로 정좌하고 있었다. 각오선사의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신광(神光)이 번뜩이는 그 시선은 대청의 한쪽을 향했다. 그곳엔 이미 완전한 행장을 갖춘 백팔 명의 승인들이 단정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미타불…… 듣거라……." 각오선사의 우수가 가볍게 쳐들려졌다. 순간, 커다란 옥주발 속의 먹물이 돌연 용솟음치듯 솟구쳐 오르는 것이 아닌가? "너희들은 지금부터 각기 스무 통씩의 서신을 들고 내 방향으로 길을 떠난다." 각오선사의 우수가 쫙 펴지는 것과 동시에, 솟구쳐 올랐던 먹물이 삼장 밖의 두루마리들을 향해 흑우처럼 흩뿌려져 갔다. 파파팍! "편지를 전달할 곳은 나이 십오 세가 되었으며 하유월 초닷새를 생일로 하는 아이, 천하를 모두 뒤져 찾아야 하느니……." 승인들은 두루마리에 글씨가 새겨지고 나자 재빨리 다른 두루마리로 바꿔 들었다. 그곳으로 또다시 솟구쳐 가는 먹물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도록 할 것이며……. 사방 백팔 처를 뒤져 모든 서신을 다 전달한 연후에야 너희들은 다시 절로 돌아올 수 있다……." 잠깐 사이에 이천 통의 서신이 만들어졌다. 각오선사는 백염을 쓰다듬으며 느릿하게 몸을 일으켰다. "대 소림 의 명예를 걸고 일을 완수하도록……. 아미타불……." "존명(尊命)!" 대전이 무너져 내릴 듯한 외침이었다. 연후 백팔 명의 승인들은 할당된 봉서를 품속에 갈무리하기가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몸을 날렸다. 슈슈슉! 각오선사는 침중한 시선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두 눈을 감으며 불호를 외웠다. "아미타불……. 이것은 어쩌면 이 무림에 불어올 풍운(風雲)의 첫 번째 조짐이 아닌지……." * * * 유운화상(流雲和尙). 그는 소림 의 제삼대제자였다. 또한 그는 이번 봉서 전달 백팔 인의 일 인이기도 했다. 그는 이번 임무를 몹시 기이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우선 뽑힌 백팔 인은 하나같이 소림 의 정예들이었다. 이것은 소림 이 일을 얼마나 중요시하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둘째, 봉서는 놀랍게도 파화편지(破畵便紙)였다. 파화편지란, 토막난 채 연결되지 않는 그림자 부호로 이루어진 일종의 암호로써 이것은 소림 이 이 일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유운화상은 이미 열아홉 통의 봉서를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