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14편 (14/79)
"죽엇!" 싸늘한 교갈이 터지며 그녀의 나신이 허공에서 기쾌한 회전을 일으 켰다. 동시에 그녀의 금발이 영활한 독사같이 무서운 기세로 금소천 의 전신 대혈을 격타해 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한 쌍의 옥수가 풍차 돌듯이 그의 양쪽 가슴을 휘감아들었다. '헉! 피할 틈이 없다.' 금소천은 그물처럼 얽혀드는 나체 미소녀의 공세에 신음성을 터뜨 렸다. 그는 다급히 쌍장을 치켜들었다. '구천마존 중 서열 이 위인 혈화독존(血花毒尊)의 최고 절기인 홍 화마혼(紅花魔痕)을…….' 그의 쌍장에서는 각기 한 송이씩 핏빛 기류로 된 혈화가 피어 올랐 다 "홍화마흔!" 그는 짤막한 대갈 호통성을 터뜨렸다. 그러자 두 송이 붉은 꽃이 선렬하도록 요염한 자태를 보이며 나체 미소녀의 공세에 부딪쳐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나체 미소녀의 눈썹 사이에 자리한 그 기이한 붉은 점. 바로 그 곳에서 은은하게 붉은 색의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 다. 그리고 뿜어진 것은 붉은 광채뿐만이 아니었다. '향기…….' 금소천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붉은 점에서 향기가?' 향기의 원인을 알았을 때는 이미 늦은 후였다. 그는 이미 그 괴이 한 향기를 가슴 깊숙이까지 호흡하고 말았다. 그 순간 강렬한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도저히 정신을 수습할 수 없 을 정도로 급져한 현기증이었다. '미혼향이야. 빠져들면 안된다!' 그는 내공을 전력으로 끌어올렸다. 그러자 쌍장에서 발출된 강기가 가공할 속도로 짓쳐 들어갔다. "아앗!" 소녀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그녀는 도저히 자신이 막을 수 없는 공격임을 직감했다. 그러나 금소천의 공격은 그녀를 적중시키지 못했다. 그가 소녀의 젖가슴에서 무언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금발 소녀의 젖가슴 사이. 그곳에는 기이하게도 두 송이의 핏멎 꽃송이가 나타나 있었다. 원 래부터 있던 것인지. 나중에 생긴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보다 확실한 것은 금소천의 반옹이었다. '으응? 저것은……?' 그는 다급한 신옴성을 발하며 공력을 회수했다. 간발의 차이로 강 기는 소녀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우욱!" 금소천은 한 모금의 선혈을 내뱉었다. 너무도 다급하게 공력을 억 제한 여파였다. 동시에 급격히 정신이 어지러워졌다. 조금 전에 맡은 미혼향이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쿵! 결국 그의 신형은 맥없이 눈 위로 나꿩굴고 말았다. 눈송이가 나풀거리며 그의 둥을 덮기 시작했다. "으음……." 나체 미소녀는 망연하게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화르르르……. 금발이 제자리를 찾아 가슴과 하체의 은밀한 부분을 가렸다. 안 그래도 창백하던 안색이 더욱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문제의 붉은 꽃은 이 순간 금발에 가려 있었다. '이 자는 분명히 나보다 강했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를 능히 제압할 수도 있었다. 헌데 왜…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꾸었을까?' 그랬다. 만일 금소천이 마지막 순간에 내력을 현저히 감소시키지 않았다면 그녀는 큰 낭패를 면치 못했음이 분명했다. 울컥! 그녀는 한 모금의 선혈을 뿜었다. 차가운 그녀가 내뿜은 피라곤 느껴지지 않을 만큼 뜨거운 진홍의 선혈. '천하에 천빙마공과 금혼천라지망술(禁魂天羅之網術)을 동시에 뱉 수 있는 사람이 있었다니…….' 그녀는 재차 한 모금 선혈을 뿜었다. 젖가슴에 은은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녀는 쓰러진 금소천을 착잡한 시선으로 웅시했다. 신비한 눈빛 속에는 웬지 기이한 격랑이 물결치고 있었다. 이윽고 소녀는 혼절한 금소천을 조심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금모천록의 등 위에 조심스럽게 얹어 놓았다. "됐다. 천록아, 가자." 그녀는 익숙하게 금모천록의 등에 올랐다. 금모천록은 알았다는 듯 힘찬 푸레질을 했다. 이어 금모천록은 바 람과 같이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휘익--! 이 곳은 신비의 대설산이었다. < 제1부 제1권 끝 > 십대천왕 제1부 제2권 11장 대설산에 도착하다 금소천은 서서히 깊은 혼절에서 깨어났다. 순간 전신이 얼어붙는 듯한 지독한 한기가 밀려들었다. 사위를 돌아보며 고개를 저었다. '사방이 얼음 천지군.' 그는 지금 얼음으로 된 침상 위에 누워 있었다. 방 전체는 물론이요. 탁자, 벽, 심지어 빙탁 위의 찻잔까지도 얼음 으로 되어 있었다. '으… 뻣골까지 시리구나.' 금소천은 너무도 극심한 추위에 진저리를 쳤다. 문득 그의 입가에 한 조각 쓴 고소가 머금어졌다. '벌거벗은 그 괴상한 계집애가 궁인지 무엇인지 하는 곳으로 끌고 온 모양이군.' 그는 천천히 얼음 침상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금소천아. 너는 아직 멀었다. 그 계집을 능히 제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순간에 손속을 거두다니…….' 저절로 웃음이 터졌다. "후후!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했거늘……." 그는 괴이한 모습의 나체 미소녀를 뇌리 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래. 내가 손속을 거둔 것에는 이유가 있었어.' 이제 그 까닭이 확실하게 잡혔다. '그 계집애의 미는 정말 독특해. 하나의 예술품과 같아 차마 망가 뜨릴 수 없었다. 게다가 그 가슴에 새겨진 두 송이 혈화. 내 생각이 맞다면 그건 아마도…….' 그는 생각을 하다말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너무도 지독한 추위가 생각조차 끊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그나저나 그 계집애는 무슨 이유로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까?" 그때였다. 얼음으로 된 문이 열리며 예의 눈부신 나체의 미소녀가 모습을 나 타냈다. 싸늘하던 공기가 더욱 차갑게 변했다. 그녀는 바로 금소천과 일전을 벌였던 금발의 나체 미소녀였다. "깨어나셨나요?" 그녀는 시리도록 차가운 음성으로 말문을 열었다. 금소천은 짐짓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해보였다. 그러나 내심으로는 연신 탄성을 터뜨렸다. '볼수록 기이한 매 력이다.' 감탄성이 끊이지를 않았다. 눈부신 투명한 피부에 화려한 금발은 기모한 대조를 이루며 숨막히는 황홀함을 보였다. 나체 미소녀는 문득 방긋 웃었다. 차가운 가운데 그려지는 미소가 너무도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발걸음도 사뿐하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금소천 곁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았다. 그러자 숨막힐 정도로 무서운 한기가 금소천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으… 만일 이 여인을 품는다면?' 생각만 해도 저절로 어금니가 딱딱 부딪쳤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이란 요사스런 것이다. 금소천은 기이한 오기가 솟구침을 느꼈다. '반항만 않는다면… 까짓것 얼음 귀신이 된들 어떠냐?' 일순 금소천은 눈앞이 아껄해졌다. 나체 미소녀가 얼음 침상에 걸 터앉으며 금발이 살짝 밀려났기 때문이다. 비록 차갑고 투명한 빛깔의 차디찬 젖가슴이었지만 숨이 막히도록 황흘한 유혹을 던진다 간신히 한줌의 금발이 하체의 은밀한 부분을 가쩐 늘씬한 그녀의 각선미 또한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기는 마찬가지 였다. 나체 미소녀는 신비한 빙옥의 시선을 금소천에게 주었다. "당신은 왜 나를 죽일 수 있었음에도 죽이지 않았지요?" 금소천은 내심 아찔한 심정을 평정시키며 괴소부터 터뜨렸다. "크ㅋ, 나는 아름다운 미녀만 보면 마음이 약해진다오." 순간 나체 미소녀의 두 눈이 반짝 유리알처럼 빛났다. "당신은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나요?" "크크크, 아름답소. 그러나……." 그는 슬쩍 말꼬리를 흘렸다. 나체 미소녀는 자못 궁금하다는 듯 다급히 물었다. "왜 계속 말을 못하죠?" 금소천은 대답 없이 나체 미소녀를 뚫어지게 주시했다. 나체 미소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만 보는 거예요?" 금소천은 그녀를 자세히 살피며 오히려 물었다. "당신… 진짜 인간이 맞소?" 그것이 그의 가장 궁금한 의문이었다. "진짜… 인간?" 순간 나체 미소녀의 눈빛이 급속히 흐릿하게 변했다. "후우……." 그녀는 곧이어 가슴이 무너지는 듯한 무거운 탄식성을 발했다. "소녀의 모습이 당신과는 너무 다르게 생겨서인가요?"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나체 미소녀는 잠시 침묵을 지킨 후 결심을 한 듯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당신은 혹시 설족(雪族)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순간 금소천은 흐릿하게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역시 그랬었군.' 설족. 눈 덮인 설산에서만 산다는 신비의 종족이다. 가슴에 두 송 이 혈화가 새겨져 있다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하는데, 어느 누구도 아 직 확인을 한 적은 없었다. "원래 우리는 북해의 사랍호족(沙拉湖族)으로서 천년 전에 대설산 으로 이주햇어요. 그 후 대설산에서 살아오며 이곳의 기후에 맞게끔 신체의 특성들이 이렇게 변한 것이에요." 금소천은 멍하니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실로 꿈과 같은 비화가 아닐 수 없었다. "피부는 이제 추위에 견딜 수 있게끔 얼음처럼 변하고, 맹추위와 눈비에 견디기 위해 두 눈이 이렇게 투명하게 변했어요." 금소천은 내심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천년의 세월… 결국 인간은 세월 속에 얼마든지 많은 변화를 가져 올 수도 있단 뜻이 아닌가?' 그는 신비의 변화를 직접 목격하며 나체 미소녀에게 물었다. "헌데 왜 옷을 입고 있지 않는 것이오?" 풋!" 그녀는 투명한 눈을 깜빡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영원히 옷을 입을 수 없어요." 금소천의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했다. 그것은 마치 '왜' 라고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미소녀의 눈빛이 잔잔하게 그늘진 떨림을 보였다. "옷가지가 우리의 이 차디찬 피부에 닿으면 한기에 의해 완전히 얼 어 버려요. 그리하여 한 발자국만 움직여도 조각조각 부서지고 말지 요." 금소천은 그녀의 말에 경악성조차 잊었다. 그제야 옷을 입지 못하 는 이유를 이해할 수도 있었다. '진정… 천하기사(天下奇事)로다.' 그는 천지가 빚어낸 천년의 오묘한 조화에 차라리 엄숙한 기분을 느끼고 말았다. 돌연 금소천이 신광을 번뜩였다. "그렇다면… 당신이 말하던 설궁이 바로 이곳이오?" 미소녀는 투명한 눈및에 그윽한 기운을 깔며 고개를 끄덕였다. 금발이 출렁거리며 살짝 얼음빛 젖가슴이 완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금소천을 응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본궁에 대해 무척 궁금한 모양이군요?"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지금 나는 흡사 꿈을 꾸고 있는 기분이오." "좋아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설궁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본궁에는 약 삼백 명의 설족이 살고 있어요. 그리고 소녀는 설궁 의 총호법(總護法)을 맡고 있지요." 문득 그녀는 말을 끊고 빤히 금소천을 주시했다. "헌데 당신의 이름은?" "금소천이라 하오." "금소천… 소녀는 하란미(河蘭美)라 해요." 그녀의 얼음같이 차가운 빙옥 피부에 얼핏 환상 같은 홍조가 스치 고 지나갔다. "사실 소녀는 당신을 왜 이곳에 데려왔는지 스스로도 알 수가 없어 요 본궁에서는 결코 외인을 들지 못하게 금하고 있거든요. 외 인에게 는 본능적으로 무서운 적대감을 가지고 있어요." 파르르……. 돌연 그녀의 황금빛 머릿결이 얼음벚 투명의 나신 위에서 햇살 같 은 움직임을 보였다 봉긋한 두 개의 젖가슴은 크게 기복을 일으키며 정상의 유실들이 상큼 분흥빛으로 여물었다. "헌데 나는 당신을 대하고 꿴지 마음이 이상하게 변했어요." 고백. 이 차디찬 설녀의 뜨겁도록 짜릿한 고백이었다. '몸은 차가워도 마음은 뜨거운 여인이라…….' 금소천은 그녀의 고백에 가슴이 진탕됨을 느꼈다. 하란미는 금소천에게 바싹 가까이 다가들었다 "저는… 당신을 안아보고 싶어요." 그녁가 게슴츠레히 눈을 감으며 다가왔다. 순간 그녀의 어깨가 먼 저 금소천에게 부딪쳤다. '우웃!' 금소천은 대경하여 황급히 옆으로 비켰다. '세상에! 어깨가 떨어지는 것 같다.' 한기 때문이었다. 하란미의 어깨가 땋는 순간 그는 닿은 부위가 예 리한 비수로 도려내는 듯한 무서운 한기를 느린 것이다. 미소녀, 하란미는 일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 미안해요. 당신의 몸은 더운 몸인 것을 잊었어요." 그녀는 진정 미안하다는 듯 살짝 수줍게 웃었다. 차가운 미녀의 수줍은 미소는 진정 뇌쇄적이었다. "아… 당신과 나는 몸이 너무도 달라요." 그녀는 안타깝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게다가 당신이 본궁에 든 사실을 궁주님이 아시면……." 그녀는 두려운 듯 가볍게 전신을 떨었다. "반드시 당신을 해치고 말 거예요." 금소천의 검미가 꿈틀하며 움직였다 "궁… 주?" "그래요. 무척이나 엄하신 궁주님이지요. 그분은 설산성녀(雪山聖 女) 냉한빙이라는 분이에요." 금소천은 무겁게 고개를 덕였다. '으음… 하란미의 표정으로 미루어 보아 대단한 인물임에 분명하 다.' 그는 하란미의 지금 표정에서 설산성녀 냉한빙이란 존재를 어렴풋 이 느낄 수 있었다. 그녀가 설산성녀 냉한빙의 이야기에 이르러 존경 과 두려움이 층만한 표정을 짓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나이는 소녀와 비슷하나 일신 절기는 신의 경지에 이르렀 고, 그분의 미모는 천지개벽을 시킬 수 있을 정도예요." 금소천은 내심으로 설산성녀 냉한빙에 대해 무한한 호기심이 일었 다. 그러나 동상이몽이라. 하란미는 이미 두려운 설산성녀의 존재를 잊 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금소천의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해요. 당신만 보고 있으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안아보 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남과 여. 그 원초적인 사랑의 본능이 하란미의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한 번 단 한 번만이라도……." 하란미는 미끈한 두 팔을 벌려 금소천을 안으려 했다. 그러나 금소천은 급히 몇 걸음 뒤로 물러났다. '잡히면 얼음 귀신이다.' 하란미의 눈빚이 급속히 어둡게 변했다. "왜……?" 금소천은 가벼운 한숨을 토해냈다 "하소저, 당신의 마음은 뜨겁지만 품속은 너무도 차갑소." 그제야 하란미는 자신의 처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소녀가 또……." 그녀는 한없이 서러운 눈빛으로 나직하게 말올 이었다. "궁주님 몰래 빙극천령액(氷極天靈液)을 구하면… 당신을 안올 수 도 있을 텐데…… 빙극천령액을 복용하면 어떤 한기도 이길 수 있어 요." 그녀는 입술을 잘끈 깨물었다. 강렬한 의지가 눈동자를 빛나게 했다 "소녀 어떡하든 그것을 구해 당신을 안고 싶……." 바로 그때였다. "하란미. 그대는 실로 단단히 간이 부었구나." 지독히 차가운 음성이었다. 하늘과 땅을 동시에 얼리고도 남을 엄청난 한기였다. 휘이이잉--! 무시무시한 한풍이 빙실 안으로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구, 궁주……." 하란미의 입에서 대경실색의 경악성이 터졌다. 그와 동시에 그녀는 이미 공포의 전율과 함께 무릎을 끓고 있었다. "총호법 하란미가… 여. 영험하신 궁주님을 뵈옵니다." 그녀의 음성은 극도의 공포감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금소천 역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궁주라고?' 그는 전신의 내력을 끌어올려 엄습해 드는 지독한 한풍에 대항하며 빙실 문 쪽을 주시했다. 모두 다섯 명의 여인이 보였다. 한결같이 나체와 금발로 하란미의 모습과 근본적으로 같았다. 다만 미간 사이에 붉은 점이 없다는 게 다른 점일 뿐이다. 오 인의 여인을 옳어보던 금소천의 모습이 그 자리에 만년화석과도 갈이 굳어 버렸다. '신… 미의 여신이다.' 다섞 명의 여인 중 제일 중앙의 여인. 지금 금소천의 시선은 그 여인에게 꽂혀 있었다. 스스로의 눈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한 미녀였다. 나신에서 은 은한 금빛의 광채가 발산되어 현란합이 더해졌다. 금소천의 말대로 미의 화신이라 할 수밖에 언는 여인이었다. 금소천은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천하에 이 여인보다 더 아름다운 미녀가 어디에 있겠는가?' 나녀(裸女). 천하의 그 어떤 형용사도 따를 수 없을 만큼의 절색미녀. 나이는 대략 십칠 세 정도. 조화옹(造化翁)이라 해도 감히 이 미소 녀의 아름다움은 형용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오뚝 솟은 콧날과 도톰한 입술은 미의 극치였으며. 반듯한 이마에 뻗은 수려한 아미와 그 밑으로 부쳇살 같은 속눈썹. 그리고 가장 증요한 한 쌍의 눈은 금빛 현란의 신비한 금안(金眼) 이 아닌가? 몸매 또한 긴말이 필요 없었다 넋이 달아날 정도로 미끈하게 잘 빠 진 육감적인 육체였다. 은은한 황금멎 노을 같은 신비한 금빛의 피부 와 폭포수 같은 부드러운 금발. 신비의 금발은 하란미와 마찬가지로 봉긋한 젖무덤과 하체의 은밀 한 부분을 가리며 허벅지 깊은 곳에 홀러 있었다. 그야말로 천하의 그 누구라 할지라도 매료되지 않을 수 없는 마력의 자태였다. 그러나 외모와는 달리 그녀의 기운은 전혀 다른 양상이었다. 그녀의 전신에서는 심장을 동결시키고도 남을 표현 불가의 가공할 한기만이 서릿발처럼 뿜어지고 있었다. 금소천은 잠시 넋을 놓아야만 했다. '저 여인이 바로 설산성녀 냉한빙인가?' 그의 짐작은 정확했다. 눈앞의 신비 미소녀는 설궁의 궁주인 설산성녀 냉한빙이었다. 그녀는 금소천을 아예 무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금빛 투명한 눈길 은 오직 하란미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하란미는 극도의 당황 속에 빠져 있었다.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냉한빙의 얼음 조각으로 빚은 듯한 금빛 은은한 입술이 살짝 열렸다. "하총호법!" 한 점의 온기나 감정도 찾을 길 없는 그저 차기 만한 음성이다. 그 러나 그 한마디에 하란미의 혼백은 일순간 반이나 얼어붙고 말았다. "구, 궁주님……." 당연히 냉한빙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총호법! 너는 총호법의 신분으로 본궁의 최대 금기를 어기고 외 인을 끌어들였다." "궁주님……." "게다가 방약무도하게도 본궁의 무가지보인 빙극천령액을 넘보려 하기까지 했다." "궁주님……!" 설산성녀 냉한빙의 차디찬 음성에 비하면 하란미의 떨리는 음성은 너무도 인간적인 음성이었다. "하란미. 너의 대죄를 인정하느냐?" 순간 하란미의 유리알 같은 빙신(氷身)이 희미하게 잿빛으로 변볐 다. "구… 궁주님……." 털썩! 그녀는 전율과 함께 떨리는 나신을 설산성녀 냉한빙의 정면에 깊숙 이 부복시켰다. 그러자 냉한빙의 그저 차갑기 만한 음성이 떨리는 하 란미의 목덜미에 절망의 그늘로 내려앉았다. "하총호법, 네 스스로 죄를 씻거라!" 음성은 냉혹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하란미는 눈앞에 엄습해 드는 죽음의 냉흑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녀는 한 올 애원의 시선을 설산성녀 냉한빙에게 주었다. 그러나 냉한빙에게서는 한 치의 정흔도 발견할 길이 없었다. "아……." 하란미는 절망의 탄식성을 발하며 본능적으로 금소천에게 시선을 주었다. 유리알같이 투명한 그녀의 눈길과 그저 신비하기 만한 금소천의 눈 길이 허공 중에 얽혔다. 금소천은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목전의 죽음에 대한 공포만이 아니 었다. 그보다 몇 배는 더 진한 안타까운 정의 갈증이었다. 찰나의 짧은 시간에 하란미는 자신의 모든 심어(心語)를 얼음빛 투 명의 눈길에 담았다 그 심어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는 오직 그녀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저 계집이 아직도……?' 설산성녀 냉한빙의 금빛 신비한 눈길은 결코 하란미의 그런 모습을 놓치지 않았다. 일순 그녀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한 조각 기이한 냉 기가 뿜어졌다. 그녀의 시선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란미는 떨리는 나신의 전율을 그 치며 잘끈 입술을 깨물었다. "속하 하란미. 궁의 율법에 따라 죽어 대죄를 씻겠습니다." 그녀의 결정은 오직 하나, 죽음뿐이었다. 그녀는 천천히 한쪽 손을 자신의 천령혈 쪽으로 치켜들었다. 이어 '휙' 하는 소리와 함께 치켜들었던 그녀의 손이 그대로 자신의 천령 혈을 가격해 들었다. 그때였다. "잠깐!" 한 소리 나직한 외침이 터졌다. 동시에 금소천의 신쾌한 손속이 그 녀의 완맥을 제압시켰다. '으음…….' 냉한빙의 눈길이 의외라는 듯 금소천에게 향했다. 그녀의 눈 깊숙 한 곳에는 금빛의 유성 같은 이채가 스치고 있었다. 금소천은 그녀의 시선을 맞받으며 돌연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으핫핫핫!" 그의 대소성이 빙실을 진동시키며 한동안 계속되었다. 이어 그는 얇은 입술을 살짝 비틀어 올리며 대소를 그쳤다. "그야말로 돼먹지 못한 계집이군." 그는 대뜸 그렇게 소리켰다 순간 설산성녀 냉한빙의 급빛 나신이 홈칫했다. 그녀가 무어라 입 을 메기도 전에 금소천의 말문이 계속 이어졌다. "설궁의 지존이라기에 예의를 표할까 했더니… 이제 보니 못생긴 얼음덩이 광녀(狂女)에 불과하군." 아예 능멸을 해 버리는 말투였다. 당연히 냉한빙의 전신에서 가공할 한기가 서릿발 되어 뻗쳤다. 휘리리릭……. 내뻗친 한기는 한 덩이 한풍의 소용돌이가 되어 빙실을 빙옥(氷獄) 의 전율 속으로 몰아붙였다. 명백한 분노의 표식이었다. 그러나 금소천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는 오히려 눈을 가늘게 뜨 며 거듭 경멸의 말을 퍼부었다. "냉한빙. 그대는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심장이 없는 얼음귀신에 불과하다." 실로 지독한 독성이었다. 그러나 웬일인지 냉한빙은 전신에서 씻은 듯 분노를 감추었다. 문득 그녀의 입가에 미묘한 한 조각 차가운 웃음이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