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13편 (13/79)
밀려드는 새벽을 휘젓는 가공할 괴소성이 들판을 울렸다. 허공이었다. 네 개의 검은 신형이 유령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의 품속에는 자그마한 소동이 안겨 있었다. "카카카! 야율노격 꼬마 놈 포달랍궁이 이대로 종말을 고하지는 않 는다." 또 다른 종류의 음성이 이어졌다. "보아라……. 십년! 십년 안에 반드시 이 피의 대가를 치를 것이 다. 크카카카카……!" 항차 중원천하를 진동시킬 일대비사의 서막. 그것은 바로 이 천산의 대혈겁에서 시작되었다. 10장 여인들을 만나다 표향산(飄香山). 청해성(靑海省)과 감숙성(甘肅省) 사이에 우뚝 솟은 험산. 지금 성큼 다가선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온 산을 뒤덮고 있다. 그 상큼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으며 한 사람이 걷고 있었다. 금소천이다. 그는 표향산의 동쪽 기슭에 간신히 생겨난 폭 좁은 협로를 걷는 중 이었다. '이제 사흘 후면 곤륜산(崑崙山)에 닿을 수 있겠구나.' 그는 시선을 사방으로 던지며 생각했다. 햇살은 조금씩 오후로 치닫고 있었다. 그때였다. 두두두둑……. 돌연 협로를 울리는 말발굽 소리가 일었다. "난데없이 이게 무슨 소리지?" 금소천은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난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십장 밖 굽이진 협로. 막 한 대의 마차가 모습을 나타내고 있었다. 놀랍게도 온통 눈부신 황금으로 이루어진 황금아차였다. 마차 전체에는 봉황의 모습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흡사 수백마리의 황금 봉황이 날개를 편 또습과도 같았다 실로 보는 이의 눈이 핑핑 돌 정도로 화려한 황금마차다. 마부도 기이했다. 엉뚱하게도 면사로 얼굴을 가건 한 명의 여인이 마부석에 앉아 네 필의 백마를 몰고 있었다. '크ㅋ!' 금소천은 내심 배알이 뒤틀리는 괴소를 흘렸다. '얼마나 돈이 많기에 황금으로 마차를 꾸민단 말인가?' 그 사이 신비의 황금마차는 사 장 거리까지 다가들어 있었다. 초여름 햇살이 황금마차에 부딪쳐 빛의 잔치를 벌였다. 푸르르……. 황금마차는 금소천의 전면에 이르러 전진을 멈추었다. "소협, 실례지만 이곳이 표향산이 틀림없나요?" 사람의 혼백을 일시에 앗아 버릴 만큼 지독하게 아름다운 음성이었 다 그것은 바로 마차 안에서 흘러나온 옥음이었다. 금소천의 한 쌍 용목이 기이한 빛올 뿌렸다. 그러나 그는 이내 잔뜩 볼멘 음성으로 퉁명하게 대꾸했다. "이름까지 알면서 채 묻소?" 그의 대답이 너무도 퉁명스러웠는지 마차 안에서 잠시 멈칫하는 침 묵이 있었다. 금소천은 한 차례 마차를 쏘아본 뒤 발길을 떼어놓았다. 그러나 예의 그 황흘한 옥음이 그의 발길을 묶었다. "저어… 실례 좀 해도 될까요?" 금소천은 이번에도 통명하게 쏘아붙이듯 대답했다. "실례든 무례든 마음대로 하시오." 마차 안에서는 더욱 화려한 옥음이 터져 나왔다. "결례가 아니라면… 마차 안으로 드실 수 있을까요?" 순간 금소천은 쭉 뻗은 검미를 괴이롭게 꿈틀거렸다. '이것 봐라? 유혹이라는 말인가?' 그는 일단 편한 대로 생각을 끌어갔다. 그리고 행동 역시 편한 대 로 행했다. "좋소. 당신이 실례를 했으니 나는 결례를 하겠소." 마차 안은 겉과 마찬가지로 화려함의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나 화려함 속에서도 담담한 기운이 은은하게 엿보였다. 금소천의 전면에는 취의여인 하나가 보였다. 그녀는 횐 면사로 눈 아래 부분을 가리고 있었는데, 단아한 이마와 흑보석 같은 한 쌍의 눈만으로도 감히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미색이 었다 또한 전신의 신비가 미색에 어울려 더욱 뇌쇄적인 분위기를 풍 겼다. 면사여인의 절염(絶艶)한 별빛 눈이 그윽하게 금소천을 주시했다. 금소천은 자신의 모든 것이 그 한 쌍의 눈으로 깊숙이 빨려드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ㅋ. 이건 눈이 아니라 아예 유혹의 수렁이군.' 한동안 괴이한 정적이 흘렀다. 문득 취의여인워 면사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저어……." 금소천은 여전히 퉁명스러웠다. "마음놓고 실례하시오." 취의면사 여인은 고흑적인 눈빛을 하며 물었다. "후후, 그러지요. 소덥의 존함은?" "존함? ㅋㅋ. 나에게 존함이라고?" 금소천은 고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이름은 금소천이오, 그리고 나는 이미 결례키로 했으니, 이후 그 결례에 대해 반항치 마시오." "풋!" 면사여인은 면사에 숨은 입을 가리며 옷음을 터뜨렸다. 옥 같은 섬섬옥수가 시야를 어지럽혔다. "소녀의 천명은 화예미(花藝美)에요." 금소천은 그녀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고소를 흘렸다. "크크크!" 화예미는 의혹의 눈빛을 발했다. "금소협, 왜 웃으시나요?" 금소천은 화예미의 눈올 응시하며 연신 킥킥거렸다. "으음……." 화예미는 금소천의 눈멎이 야릇함을 발견하고 수줍게 고개를 숙였 다. "화소저. 무척 궁금한 것이 있소." 화예미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나는 소저의 면사를 벗겨 보고 싶소." 순간 화예미는 흠칫하며 다급히 말했다 "아니에요. 소. 소녀는 너무도 추하게 생겨 소협의 눈을 욕되게 할 까 걱정이 됩니다." "ㅋㅋ. 별 걱정을 다 하시는군 내 눈은 이미 천하에서 안본 게 없 을 정도로 다양한 경험을 했으니 걱정 마시오." 금소천은 조금 크게 괴소를 날렸다. 화예미의 고운 눈이 몇 차례 깜빡거렸다. "소협… 진정 소녀의 얼굴을 보시고 싶나요?" 입보다는 코로 더 말을 많이 하는 듯 야룻한 비음이었다. 금소천은 얇은 입술 꼬리에 신비한 미소를 담았다. "그건 아니오. 하지만 당신이 보여주고 싶어할 것 같소." 실로 족히 사흘을 생각케 하는 기묘한 대답이었다. 화예미의 면사가 흠칫 진동을 일으켰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는 듯하더니. 이윽고 자신의 손을 면사에 갖 다댔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녀의 손길이 천천히 면사를 벗어났다. 그러자 면사는 꽃잎이 떨 어지듯 화예미의 얼굴을 벗어났다. 순간 마차 안의 화려한 장식들이 및을 잃었다. 그야말로 미의 화신이라 할 수밖에 없는 절색의 미녀가 눈앞에 모 습을 드러냈다. 금소천의 가슴이 크게 소리내며 요동쳤다. '설마 했더니… 실로 대단한 미색이다.' 금소천은 이 순간 인간에게 눈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받은 일 인가를 절감하고 있었다. 화예미. 그녀는 금소천의 이글거리는 눈빛 앞에서 은은하게 수줍은 홍조를 띠고 있었다. "으음……." 금소천의 입에서 극히 무거운 침음성이 터졌다. "이거야말로 비극이로군." 그는 설레설레 고개까지 저었다. 돌연 그의 말에 화예미는 의아하여 물었다. "비극이라니요?" "화소저는 이후 절대로 면사를 벗지 마시오." 화예미의 커다란 봉목이 더욱 커졌다. "만일 다른 여인들이 소저의 진면목을 대한다면 자신의 추함을 비 관하여 살아 있기를 싫어할 테니 말이오. 또한 사내들은 심장이 파열 되어 죽기 싫어도 죽고 말 것이오." 화예미의 눈동자에서 의흑이 사라졌다. 대신 달콤한 눈웃음이 번져 갔다. "호호호… 소협의 칭찬은 듣기 싫진 않군요. 헌데 왜 당신은 심장 이 파열되지 않아요?" 금소천은 재차 칭음성을 홀렸다. "그것은 나의 심장이 이미 파열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오." 화예미의 아미가 상큼 치켜져 올라갔다. "나는 지금까지 그녀가 제일 미녀인 줄 알고 있었는데……." 화예미는 기이하게도 바싹 긴장의 표정을 했다. 그녀는 독이 마른 듯 급히 물었다. "소협의 심장을 파열시킨… 그녀는 누군가요?" 금소천은 짐짓 두 눈에 아련한 추억의 그늘을 깔았다, "그런 여인이 있었소. 그녀는… 취접향이라는 이름을 가진 미녀였 소." 순간 화예미의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기이한 탄성이 터졌다. "아……!" 영롱한 두 눈이 더욱 화려한 빛의 축제를 일으켰다. "소협… 그 낭자는 무척 아름다웠나요?" "그렇소. 내 심장을 최초로 파열시킨 여인이오. 그러나 당신만큼 뛰어난 미색은 아니었소." 화예미의 반짝이는 눈빛은 점점 더 금소천 가까이로 숨가쁘게 뛰어 오고 있었다. "그 낭자를… 좋아하셨나요?" 금소천은 기이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도……." "얼마나 좋아했나요?" "글쌔… 그녀의 마음을 알 수 없었으니, 단정하기는 힘드오. 손바 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니까." 일순 달려들던 화예미의 눈길이 주춤거렸다. '그녀의 마음?' 금소천은 힐끔 화예미의 표정을 살피며 덧붙였다. "크ㅋ. 하지만 그 계집은 꽤 나를 좋아한 듯했소 해서… 나의 심장 은 그녀에게 상처를 남길까 근심이 되어 미리 파열이 되었다오." 화예미의 전신에 내밀하게 가득 실망의 기운이 스쳤다. '당신이 그녀를 좋아한 것이 아니고… 그녀가 당신을 좋아했다고?' 금소천은 화예미의 실망한 모습을 지켜보며 고소를 터뜨렸다. "ㅋ. 사실 나도 그녀가 마음에 없는 것은 아니었소." 찰나지간 화예미의 전신에 생기가 되살아났다. "오… 당신도 그녀를 사랑하셨다고요?" "사랑? ㅋㅋ!" 금소천은 실소를 터뜨렸다. 화예미는 그의 태도에 재차 실망의 표정을 했다. '대체 당신의 마음은…….' 그러나 이내 그녀는 숨이 탁 막혀 버렸다. 금소천이 지금 그녀를 향해 신비한 눈웃음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의 모습은 지금까지의 그것이 아니었다. 일체의 장난기도, 멍청 할 정도로 혜픈 웃음도 없었다. 그는 한 사람의 당당한 남자의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화예미는 그의 신비한 매력 앞에 숨을 죽였다. 천천히 금소천이 일어났다. 그는 화예미의 두 눈에 자신의 신비한 눈웃음을 아프게 자리시키며 다가들었다. "아……!" 화예미는 가슴이 떨려 부지중 홈칫 뒤로 물러서고 말았다. 그는 다가들고, 그녀는 물러섰다. '가까이 오지 마세요… 터질 것 같아요… 무서워요.'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러기에는 마차안이 너 무도 좁았다. "소… 소협… 무슨?" 그녀는 겁먹은 시선으로 금소천에게 물었다. 금소천은 빙긋 환하게 웃어주었다. "나는 이미 말했소. 당신은 결코 결례에 대해 반항치 말라고……." "으음……." 그 순칸부터 그녀는 반항치 뭇하고 말았다. 금소천의 두 손이 그녀의 동그랗고 섬세한 어깨에 올려졌다. 바르르르……. 그녀의 어깨가 그의 손안에서 야릇하게 떨렸다. '아! 반항할 수 없어… 피할 수 없어…….' 그녀는 보았다. 금소천의 환한 웃음이 자신의 얼굴 위로 황홀하게 겹쳐 오고 있음을……. 먼저 숨결이 느껴졌다. 사내의 숨결이었다. '몰라. 몰라…….' 그녀는 그 숨결이 전신을 옭아매고. 그러면서도 터질 듯 부푼 가슴 을 뜨겁게 안아듦을 느꼈다. 숨이 막혔다. 저절로 두 눈이 감겨졌다. 그의 환한 모습이 사라지고 분홍빛 아른한 열기가 그녀의 감은 두 눈에 은밀하게 자리해 들었다. 그녀는 여인이다. 때문에 본능적으로 금소천의 다음 행동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반항하지 못해.'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며 상아빛 치아가 나타났다. 너무도 깨끗 한 치아는 매력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자신도 모르게 가슴속의 모닥불 같은 열기가 치아를 혜집고 입술 끝으로 흘렀다. 그러나 그녀의 입술은 여전히 혼자만의 입술이었다. 아무런 감촉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 그녀는 가만히 감았던 두 눈을 살며시 떴다. '이… 짓궂은 사람.' 그녀는 보았다. 금소천은 코끝 가까이에서 기묘한 미소만 짓고 있 음을……. 그녀의 살짝 벌어졌던 입술이 악물리며 목덜미에서부터 수치와 모 멸의 기운이 급속도로 퍼졌다. "당신이……." 섬섬옥수가 치켜들리며 그의 가슴을 두들기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할 수가 없었다. 전신의 맥이 풀려 버렸다. 금소천 의 입술이 그녀의 꽃잎 입술을 빈틈없이 정복했기 때문이다. 휘청! 그녀의 둥이 활처럼 휘며 그의 품안에 녹아들었다. 동시에 자연스 럽게 그녀의 치켜들었던 두 손은 그의 목에 걸쳐졌다. "아아……." 금소천의 한 손이 그녀의 허리를 떠나 가슴 쪽으로 향했다. 그의 한 손에 알맞게 잡히는 귀여운 가슴이었다. 그녀는 금소천의 입술 안에서 황홀한 신음성을 홀렸다. 입맞춤은 그녀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그의 손길은 그녀를 천상으 로 끌어올렸다. '아흡……!' 그녀의 전신이 파르르 크게 떨렸다. 금소천의 손이 웃깃을 헤집고 젖가리개 속으로 쑥 들어와 그녀의 속 젖가슴을 덮었다. '모, 몰라…….' 그 순칸 금소천의 두 눈이 기이한 빛을 뿌렸다. '후후… 역시 예상대로군.' 다음 순간 난데없이 상쾌한 격타음이 터졌다. 찰싹! 금소천의 손이 그녀위 가슴에서 빠짐과 동시에 그녀의 풍만한 둔부 를 후려친 것이었다. "어멋!" 화예미는 기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정신을 수습했을 때. 금소천의 꼬습은 이미 마차에서 사라 지고 있었다. "크ㅋ. 그대 엉덩이의 촉감은 항주성 취접향의 그것과 어쩌면 그리 똑같단 말인가?" 그 한마디를 남기고 그의 모습과 음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화예미는 아연하고 말았다. 잠시 후 그롤는 입술을 악물며 약이 올라 외켰다. "소, 소천… 또……." 그녀는 약이 올라 죽겠 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소천. 이미 알고 있으면서 나를 회롱하다니……?" 화예미 그녀는 바로 항주성의 제일명기였던 취접향이었던 것이다. 아니. 그녀는 취접향으로 변신했던 화예미였다. 그녀는 한동안 금소천이 사라진 마차의 문을 멍하니 응시했다. 이윽고 자리를 찾아 앉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금연, 마차를 몰아라." 마차 밖에서 공손한 대답이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아씨." 그 공손한 대답 속에는 꾹꾹 눌러 참는 폭소가 숨어 있었다. 화예미는 다소 크게 중얼거렸다. "소천, 당신은 영원히 나 화예미의 품을 벗어나지 못해요," 그녀의 상의에는 약간 혜쳐진 채 귀엽고 은밀한 젖가슴이 반쯤 얼 굴을 내밀고 있었다. 다음 번에는 과연 반항할 수 있을까? * * * 대설산(大雪山). 높이 일천오백 척의 대설산은 일만의 거봉과 사방 이만 리에 달하 는 거맥을 지닌 대산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항시 눈이 많아 쌓여 있는 탓에 대설산으로 불 린다. 그 대설산의 기슭에는 초여름의 녹음이 흐드러져 있었다. 그럼에도 중턱부터는 온통 눈투성이다. 매몰찬 바람이 백설의 난무 를 일으키며 대설산의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휙--! 인영 하나가 난분분(亂粉粉)의 폭설을 뚫고 바람같이 대설산의 한 봉우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금소천이었다. 그는 답설무흔(踏雪無痕)의 비행술로 질주를 계속했다. 갈수록 눈보라가 심해 사위를 분간키가 힘들었다. '빌어먹을… 빨리 가려고 지름길인 대설산을 넘으려다 고생만 착실 히 하는군.' 그는 투덜거리며 계속하여 신형을 날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하군 단리영감 때문에 이 무슨 팔자에도 없 는 고생인가?' 그러나 그의 투덜거림은 오래 계속되지 않았다. 시야에 무언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것은?' 그의 두 눈이 홀연 번쩍 이채를 발했다. 황금빛 물체 하나가 빛보다 더 빠르게 건너편 봉우리를 달리고 있 었다. 금소천의 입에서 나직한 외침이 터졌다. "금모천록(金毛天鹿)이다." 그는 다급히 염두를 굴렸다. '금모천록은 대설산에서만 서식한다는 전설상의 영물이 아닌가. 전 신이 황금빛 털이요, 뿔 역시 황금빚인 사슴.' 그의 눈동자가 점점 커져갔다. '어디 그뿐인가? 전신은 도검불침이고 하루에 수천 리를 달린다. 게다가 금모천록의 뿔은 신묘한 영효를 지니고 있어 복용하면 족히 백년의 내력을 얻을 수도 있지.' 금모천록. 이 황금빛 사슴은 빛과 갚이 금소천의 시야에서 사라지 고 있었다. 금소천은 한차례 손바닥을 쳤다. "금모천록을 보고 그냥 지나친다면 내가 금소천이 아니지." 휙--! 말올 마치자마자 그의 신형이 무서운 속도로 한 가닥 빛이되어 기 쾌하게 쏘아졌다. '네놈이 아무리 빠르다지만 무영마존의 분광회선풍(分光廻旋風)의 비행술을 감당치는 못할 것이다.' 순식간에 금소천과 금모천록은 십수 개의 봉우리를 넘었다. 금모천록도 금소천의 추적을 눈치챈 듯 더욱 빠른 속도로 질주를 계속했다. "이놈아! 헛고생 말고 그냥 서라. 분광회선풍으로 말할 것 같으면 멎보다 더 빠른 천하 최고의 경공술이란 말이다." 과연 금소천과 금모천록과의 거리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크크크! 네놈을 잡지 못한다면 무영마존이 지하에서 통곡을 할 것 이다." 그는 한 모금 진기를 더 끌어올렸다. 번-- 쩍! 빛이 무색할 정도로 금소천의 신형이 번쩍 하는 순간, 그는 금모천 록의 전면에 내려서고 있었다. 푸르륵……. 금모천록은 대경하여 주춤거렸다. 금소천은 득의의 웃음을 날렸다. 동시에 그의 한 손이 금모천록을 잡아갔다. 싸늘한 한마디 교갈이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느 놈이 감히 방자하게 구느냐?" 차갑기 이를 데 없는 싸늘한 음성이었다. '으잉? 이게 무슨 소리야? 얼음 귀신인가?' 금소천은 심장이 어는 듯한 한기를 느끼며 교갈이 들린 곳으로 시 선을 주었다. 그는 두 눈 가득 경악의 기색을 떠올리며 흠칫하고 말았다. 황당하게도 그의 시야에는 발가벗은 알몸의 소녀 한 명이 모습을 보였다. 십육 세 가량 되었을까? 막 성숙하기 시작한 신비의 여체가 폭설 속에 환상처럼 자리했다 얼음장같이 투명한 피부를 지닌 상당한 미색 의 절색소녀였다. 또한 눈동자는 반짝이는 얼음 조각을 박은 듯 빙옥 으로 투명한 빛을 뿌렸다. 기이한 것은 두 눈썹 사이에 자리한 콩알만한 붉은 점과 머리카락 이었다. 소녀의 머리카락은 마치 변방의 여인처럼 부드러운 금발이었 다. 그녀의 긴 금발은 어깨를 거쳐 두 젖가슴을 가리고 살짝 하체의 은 밀한 부위에 걸쳐 있었다. '세상에! 이런 기이한 여인이 있었다니…….' 금소천은 너무도 경악하여 할 말을 잊고 말았다 '폭설 속에 발가벗고 있으면서도 조금의 추위도 느끼지 않는 것 같 구나. 혹 전설의 빙인인가?' 그는 경악 속에 신비의 나녀를 상세히 살펴보았다. '쯧쯧, 그래도 가릴 곳은 다 가렸구나.' 그는 경악을 추스르며 신비의 나체소녀에게 물었다. "실례하오만 소저께서 금모천록의 주인이오?" 나체소녀는 빙옥 같은 두 눈에서 가공할 한기를 뿜었다. "너는 본궁의 영물을 함부로 취하려고 했고. 또한 본궁의 영역을 허락 없이 무단 침입했다." 눈빛만큼이나 싸늘한 음성이었다. "너는 대죄를 범했다. 이에 대한 대가는 오직……." 주위의 모든 공기들이 더욱 차가운 얼음 지옥으로 변했다. 금소천은 어리둥절하고 말았다. '본궁이라고? 대설산에 있는 문파라면 설산파(雪山派)뿐인데… 궁 이라니?' 그가 내심 염두를 굴리고 있는 사이였다. "죽음뿐이다." 나체소녀의 입에서 싸늘한 죽음의 선고가 뱉어졌다. 이어 금소천이 무어라 변명할 틈도 없이 그녀의 옥수가 서서히 치 켜들려졌다. 옥수는 어느새 눈부신 백색 투명의 한광을 번뜩이고 있 었다. "죽엇!" 교갈과 함께 한 쌍의 옥수가 경쾌하게 뒤집어졌다. 츄우웃--! 두 가닥 지독한 한기를 품은 가공할 장력이 금소천의 전신을 얼음 덩이로 만들었다. 금소천의 입에서 나직한 경악성이 터졌다. "헉! 천빙마장(天氷魔掌)?" 천빙마장은 오백 년 전 무림사 이래 최대 마녀인 천빙파파(天氷婆 婆)의 독문절초 중 하나였다. 금소천은 경악성에 이어 황급히 나녀의 공세에 대응했다. 두 사람의 강기가 맹렬하게 부딪쳤다. 콰쾅! 꽈르르--! 방월 십수 장 내의 모든 것들이 허공으로 회오리쳐 솟구쳤다. 금소천과 나녀는 각기 한 걸음씩 뒤로 물러섰다. 일순 나체 미소녀의 투명한 눈동자가 미미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적이 경악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허공으로 솟구쳤던 눈들이 내려앉으며 사위는 제 모습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어느새 눈보라는 그치고 탐스런 눈송이가 쏟아지고 있었다. "호호호호……." 문득 나체 미소녀의 입에서 교소성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교소에 눈송이들이 얼음덩이로 변해 떨어졌다. 주위의 공기들도 급속도록 얼 어붙었다 "천빙마장을 알아보다니 펑범한 작자는 아니로군." 그녀는 미끄러지듯 금소천의 전면으로 다가들었다. 차르르르……. 홀연 그녀의 나신을 감고 있던 금발의 긴 머리가 춤추듯 그녀의 몸 을 떠났다. 그러자 오묘신비한 여인의 나체가 완연히 드러났다. 금소천은 부지중 전신을 흠칫 떨었다. '아이고… 흘라당 다 보이는구나.' 이제 그는 여인의 모든 신비를 다 보았다. 빙옥나신(氷玉裸身). 하늘거리는 해초 갈은 금발. 나풀나풀 떨어지 는 눈송이 속에 그것은 환상의 세계를 이루었다. "호호호……." 나체 미소녀의 교소는 시간이 흐르며 더욱 고조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환상 같은 웃음이 아니었다. '으윽!' 금소천은 귓전으로부터 시작되는 극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다. "오호호호--!" 나체 미소녀의 교소는 송곳이 되어 금소천의 고막을 무섭게 파고들 었다. 교소가 고조됨에 따라 주위의 공기들이 무섭게 진탕되며 회오리치 는 눈보라를 이루었다. 동시에 만년빙굴의 한기를 능가하는 가공할 한기가 방원 십수 장올 그대로 동결시켜 들었다. 휘이이-- 잉! 교소는 갈수록 더 높이 고조되었다. 금소천의 안색이 침중하게 변했다. '마음(魔音)이다.' 그는 급히 내력을 끌어올려 마음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 체의 미소녀의 신형이 허공으로 퉁기듯 솟구쳐올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