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9편 (9/79)
"이십 년 전 지옥참마도를 처음 얻었을 때, 나는 이 도로 나의 왼 팔을 잘라내 버렸소." 순간 무량선사의 신형이 크게 휘청거렸다. "아미타불… 아미타불……." 그의 입에서는 본능적인 불호성만이 터져 나올 뿐이었다 궁사는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지옥참마도에 인과응보가 있다면… 그 업보는 나의 피와 팔 하나 가 대신하게 될 것이오." 무량선사는 신음조차 흘릴 수가 없었다. 궁사의 입가에 문득 기괴한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크흐흐, 어떻소? 선사가 받들어 모시는 불존이 말한 인과응보를 나는 이미 치러 버린 것이오." 기괴한 미소는 점점 확대되더니 결국 앙천광소로 변했다. "이 렇게 되면 이후 지옥참마도에 수억의 피를 뿌린다 해도 마도의 저주가 나를 죽이지는 못할 것이 아니겠소? 크하하하--!" "아미타불… 아미타불……." 무량선사의 입술은 꽁꽁 얼어붙었다. 한동안 궁사의 광소가 혈무를 뒤혼들었다. "이십 년!" 궁사는 돌연 광소를 멈추었다. "정말 지옥과도 같은 세월이었소." 빠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둥줄기를 오싹하게 만들었다. "잡초와 벌레로 배를 채우고, 떨어지는 빗물을 받아 갈증을 달래었 소." 그의 전신에 어린 혈무가 점점 짙게 이글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똑같은 핏및 안광으로 무량선사를 노려보았다. "헌데… 그런 나에게 지옥참마도를 버리라고?" 무량선사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궁사는 다시금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도를 버리라고? 이십 년의 한이 새겨진 지옥참마도를 버리라고? 크하하하--!" 궁사는 미친 듯이 웃었다. 더불어 광소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아미타불……." 무량선사는 창백해진 안색으로 궁사의 앙천광소가 그치기를 기다렸 다. 어느덧 한참을 웃던 궁사의 광소가 잦아들었다. "아미타불… 궁시주. 용서하시오." 궁사는 완전히 웃음을 멈추었다. 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리며 무량선사를 바라보았다. "노납은 궁시주가 이곳을 벗어나도록 묵과할 수가 없소이다." 무량선사의 전신은 결연한 의지로 가득 찼다. 그 강렬한 의지를 느꼈는지 궁사의 표정도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는 표정만큼이나 딱딱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무량선사. 당신은 누구보다 천하를 사랑하는 불문의 고승이오. 하 지만 나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일신 무학이 정순하지는 않소 이다." 무량선사의 백미가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미타불… 알고 있소. 그러나 노납은 막을 것이외다. 설사 이 한 목숨을 여기에 묻는다 할지라도……." 말올 줄이는 무량선사의 전신에 은은한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그것은 청량감이 느껴지는 성스러운 기운이었다. 문득 궁사의 눈빛에 기광이 서렸다. "불문의 보리정해신공?" 얇은 입술이 비틀어지며 괴소는 곧 고소로 뒤바껀다. "무량선사. 나는 당신을 천하에서 오직 하나뿐인 지기로 알고 있었 소이다." 무량선사의 대답은 없었다. 다만 전신의 서광이 더욱 빛을 뿌렸을 뿐이다. 스르릉……! 궁사는 천천히 지옥참마도를 뽑아 들었다 순간 무량선사는 내심 헛바람을 집어삼켜야 했다. 궁사의 지옥참마 도가 뽑히는 순간 천지간의 모든 사기(邪氣)가 빛살처럼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으으음…….' 지옥참마도의 사기는 아수라의 형상으로 무량선사의 전신을 발기발 기 찢어 들었다. '화… 환상이…….' 무량선사는 혼신의 전력을 다해 외쳤다. "아미타불--!" 그러자 기적처럼 환상이 사라졌다. 그리고는 귀신위 이빨같은 지옥 참마도의 모습이 나타났다. 무량선사의 전신은 진땀으로 인해 푹 젖어 있었다. '지, 진정 가공하구나 저 사악한 도기만으로도 평범한 고수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절명하고 말 것이다 궁사! 그는 분명 지옥참마도법 을 십이성 성취하고 말았구나.' 궁사의 싸늘한 호통이 터진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서 비켜서시오! 번-- 쩍! 무량선사는 단지 가공할 도광만 보았을 뿐이다. 피하거나 막겠다는 생라은 아예 해 보지도 못했다. 스슥! 얇은 면도의 소음이 일었다. 무량선사는 천천히 고개를 숙여 보았다. 자신의 흰 수염이 절반이 나 싹둑 잘려나가 있었다. 당황스럽다 못해 어이가 없었다. 궁사의 담담한 음성이 터져 나왔다. "이것이 지옥참마도법의 제일초인 산혼도(散混刀)였소." 무량선사는 신음성을 터뜨렸다. 그는 멍하니 서 있는 채로 지옥참 마도의 위력을 견식한 셈이었다. 궁사가 발길을 천천히 옮겼다. "만약 그래도 비키지 않겠다면 제이초 쾌락성(快落星)의 진정한 정 화를 견식케 될 것이오!" 무량선사는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제야 조금 전 당한 일초의 위 력이 가슴에 와 땋았다. 궁사의 전신이 손에 잡힐 듯 가까이 다가든 후에야 정신을 수습했다. 그의 눈동자에 비장함이 감돌았다. '내가 여기서 물러서면 천하는 혈수에 윙굴게 된다!' 그는 이를 악 물었다. 그리고는 흔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그의 양손이 솥뚜껑만큼 크게 확대되며 전신에서 서광이 발산 되기 시작했다. 궁사의 입꼬리에 예의 고소가 피어 올랐다. "대불수(大佛手)를 쓰려는 것이오? 하지만 그 정도로는 지옥참마도 의 일초식도 막을 수 없을 텐데……?" 그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지옥참마도를 끌어올렸다. 무량선사는 한층 긴장했다. '설사 나에게 죽음이 온다 할지라도… 막아야 한다.' 삶올 포기하자 묘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쩌면 지옥참마도의 저주를 막을 수도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겼다. 바로 그 순간 궁사의 지옥참마도가 기쾌한 움직임을 보였다. 번쩍--! 츠츠츳! 가공할 지옥참마도의 도기가 무량선사의 전신을 무섭게 난도질해 왔다. "헉!"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실제의 공격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무량선사의 전신에 펼쳐 있던 호신강기가 무기력하게 깨져 버렸다. '안돼!' 무량선사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어 그의 쌍장이 마지막 움직임 처럼 허공을 휘저었다. 두 개의 강기가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금방이라도 대폭발이 일 어날 것만 갚았다. 그때였다. "크ㅋ! 이건 너무 잔인한 대결이로군." 허공에서 돌연 괴이한 외침이 터겼다. 동시에 괴영 하나가 빛살같 이 전권(戰圈)안으로 날아들었다. 꽝--! 천지괴멸의 엄청난 굉음이 터지며 방원 십 장 이내의 모든 물체가 박살나 버렸다. 천혈곡이 무너질 듯 진동을 일으키며 시뻘건 혈무들 이 뒤엉켜 진탕질을 일으켯다. "으음……." 답답한 신음성이 터지며 무량선사의 신형이 십수 장 밖에서 비틀거 렸다. 다행으로 목숨에는 지장이 없는 것 같았다. 단지 몇 모금의 선 혈을 토했을 뿐, 그는 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놈이 감히?" 상대적으로 기회를 잃은 궁사가 분노의 일성을 내뱉었다. 그는 혈안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훑어보았다. "후후후……." 흙먼지와 혈무 등이 진탕질을 멈추자 서서히 한 사람의 모습이 시 야에 잡혔다. "셋째의 말이 옳았어. 천혈곡은 확실히 재미있는 곳이야." 흙먼지를 뒤집어쓰고는 낄낄대는 인물. 금소천이다. 궁사는 굳어진 얼굴로 금소천을 주시했다. '저놈이 나의 쾌락성을 정확하게 받아냈다.' 그는 놀란 가슴을 추스르며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네놈은?" 금소천은 궁사에게 다가들며 예의 괴소를 홀렸다. "후후. 정말 팔이 뻐근하군 쾌락성이라고 하셨나? 정말 무시무시한 초식이었소." 궁사는 슬며시 인상을 컹그겼다 새파랗게 어린 금소천이지만 눈앞 에서 그의 위력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네놈은 누구냐?" 금소천은 궁사의 이 장 거리에 우뚝 자리했다. 그는 히죽 웃으며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크큭! 당신은 항주성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말해 주어도 나를 모 를 것이요. 하지만 당신의 도법을 찬양하는 의미에서 이름을 말해 주 도록 하겠소." 궁사의 성질대로라면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건방짐이었다. 그러나 금소천은 섣불리 대할 수 없는 거부감을 느끼게 했다. "나의 이름은 금소천이라 하오." 궁사는 기억을 더듬는 듯 몇 차례 입 속으로 되뇌었다. "금소천……?" 아무리 생각해도 들은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그러나 한 흰에 서 있던 무량선사는 흠칫 경악하고 있엇다. "어린 나이에 실로 놀라운 정기로다! 궁사의 사기가 점차 사라지고 있지를 않은가?" 그는 알 수 있었다. 궁사의 가공할 전신 사기가 금소천의 출현으로 점차 사라지고 있음을……. 그러나 궁사 본인은 그러한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 금소천 네가 나의 일을 방해한 이유는?" 그의 급격하게 이성을 되찾고 있었다. 금소천은 신비한 용목(龍目)을 들어 무량선사를 가리켰다. "짐작컨대 당신은 저분 노화상과 친구가 아니오?" 일순 궁사의 두 눈에 기광이 스며들었다. "친구? 흐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이내 그는 자신의 현 상황을 깨달았다. 그의 전신 가득히 음산무비한 사기가 피어 올랐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은 아니다." 그는 냉랭한 말 소리와 함께 천천히 지옥참마도를 끌어올렸다. 명 백한 살기가 전신에서 뻗어나왔다. 금소천은 짐짓 경악의 표정을 지으며 소리켰다. "아, 아! 초면에 이건 너무 급하지 않소? 당신은 대체 무슨 한이 많기에 그렇게 사람을 겁 주시는 거요?" 금소천은 두 손을 휘휘 내저었다. "이거야 원 사람뿐 아니라 귀신조차 겁먹겠소." 금소천에게서는 도저히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이지 않았다. 결 국 궁사는 들어올리던 도를 멈추어야 했다. 금소천은 뻔뻔할 정도로 당당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 당신을 지켜보았었소. 해서 당신의 한이 어떤 것인지도 알고 있소. 당신의 한… 그것은 바로 아내와 임신중이던 자 식을 잃은 한이 아니오?" 순간 궁사의 두 눈과 전신에서 하늘조차 녹일 듯한 분노의 불꽃이 확 피어 올랐다. 기억조차 떠올리기 싫은 과거에 대한 본능적인 반응 이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그의 처절한 음성은 금소천의 괴소에 의해 뚝 끊겨 버렸다. "크크크, 그게 과연 뼈에 맺힌 철천지 한이오? 유일한 지기를 베 고. 천하에 저주를 퍼부을 정도로?" 궁사의 검미가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가 입을 열 틈은 없었다. 금소천이 선수치듯 잇달아 괴소 를 터뜨렸기 때문이다. "오래 전에 한 아이가 있었소." 금소천의 입술 꼬리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마치 극도의 고통을 참 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 모친과 가족을 모조리 잃어야 했소. 그 러고도 모자라 한 자루 장검에 부친과 함께 생선 꿰듯 심장을 관통당 하고 말았소." 궁사는 연신 검미를 꿈틀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입을 열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금소천의 얼굴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장검을 박은 채 죽어가는 부친의 죽음을 구 년간이나 지켜 보아야 했소. 쿡! 빌어먹을 놈의 장검은 갈수록 투명해졌다오, 부친 의 몸뚱이는 녹이 슬어가는데……." 금소천의 눈빛은 여전히 담담했다. 입 꼬리의 비틀림만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후후후. 그런데도 빌어먹을 아들놈은 단지 한 방울의 눈물만을 흘 릴 뿐이었소." 어느새 궁사의 치켜들었던 지옥참마도는 자꾸만 밑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어떻소?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 아니오?" 궁사의 전신이 미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는 뱉어내듯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대의… 한인가?" 금소천은 웃었다. "글쎄… 만약 내가 그 빌어먹을 녀석이라면 당신보다 더 구겨진 얼 굴을 하고 다녔겠지. 하지만 나는 이렇게 미친놈처럼 웃고 있지 않 소? 큭큭큭!" 궁사는 눈빛을 급변시키며 지그시 금소천을 응시했다. 그는 금소천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이라 도 터질 듯한 저 역설적인 괴소를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으음……." 문득 그들의 시선이 허공 중에 부딪쳤다. "크ㅋ!" 문득 괴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금소천의 웃음이 아니었다. 엉뚱하게도 궁사의 창백한 입술이 벌어지며 나는 웃음이었다. "아내가 죽었을 때 뱃속에 있던 자식이 딸이었다면… 내 반드시 너 를 사위로 삼았을 것이다." 금소천은 웃었다. 조금 전까지 나오던 역설의 괴소가 아닌 진실한 웃음이었다. "후후후, 당신처럼 귀신 사흘 굶은 우거지상을 하고 있는 장인이라 면… 나는 반드시 사양할 것이오." 두 사람의 시선이 다시 한 번 부딪쳤다 이어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통쾌한 대소성을 터뜨렸다. "와하하핫!" "으하하하……!" 그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가슴 후련한 가가대소를 터뜨렸다. 그렇게 한참을 웃던 궁사는 지옥참마도를 허리춤에 꽂았다 "이름이 소천이라 했던가?"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기억하기 아주 좋은 이름일 것이오." 궁사는 이채로운 시선을 금소천에게서 떼지 않았다. "좋다! 그대의 빌어먹을 충고는 고맙게 받아들이겠다." 금소천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당신이 그러리라 짐작했소이다." 궁사는 한동안 금소천을 응시한 후 힘주어 말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솟구쳤다. 눈 깜 짝할 사이에 그의 신형은 가물거리며 멀어졌다. "무량선사! 후일에 또 뵙겠소이다. 으하하하!" 길게 여운을 끄는 대소성에는 회미하게 온기가 스며 있었다. "아미타불……." 한숨 갈은 불호성이 흘러나왔다. 무량선사는 이 순간까지도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는 기이한 눈 멎으로 금소천을 웅시했다. "노납의 백년불득(百年佛得)이 저분 어린 소시주에게도 미치지 못 하는구나." 노승의 창백한 입가에는 그래도 안도의 미소가 피었다. '비록 궁사를 놓쳤으나 어쨌든 잘된 일이다. 어차피 나의 힘으로는 그의 마기조차 제압하지 못했을 터이니…….' 무량선사는 자애스러운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시선에 잡힌 금소천은 아직도 궁사가 사라진 방향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중얼거림이 무량선사의 귓전을 울렸다. "궁사라… 정말 썩 마음에 드는 사람이야." * * * 석양. 금소천은 내려앉은 석양을 밟으며 터벅터벅 걷고 있었다. "그 노화상이 무엇 때문에 굳이 유시(酉時)경에 나를 보자고 한 것 일까?" 그는 무량선사의 부탁에 의해 금강사로 향하고 있었다. <금강사.> 현판을 대한 금소천은 홈칫하고 말았다. 그의 시야에 잡힌것은 금 강사가 아니라 악마의 태풍이 할퀴고 간 초토뿐이기 때문이었다. 모 든 것이 흔적도 없이 박살나 버렸다. '쯧! 이것을 보이려고 오라고 한 건 아닐 텐데.' 금소천은 박살이 난 금강사 안으로 들어섰다. 혼적뿐인 금강사의 방장실. 그 안에 역시 명목뿐인 주지 무량선사의 모습이 있었다. "이, 이런!" 금소천의 길게 뻗은 검미가 꿈틀대며 얇은 입술 사이로 희미한 신 음성이 터졌다. "정말 지독하게 당했군." 그의 시선 속에 잡힌 무량선사. 양다리는 흔적도 없이 짓이겨져 있고, 심장 부근에는 커다란 핏구 멍이 뚫려 있었다. 물론 의식이 없어진 지는 이미 오래였다. "대사!" 금소천은 무량선사의 명문혈에 내력을 주입시켰다. 잠시 후 무량선사는 두 눈을 힘겹게 떴다. "소, 소시주……."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 무량선사는 자신의 죽음이 목전에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 다. 때문에 금소천이 말할 여유를 주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잇기 시작 했다. "구 궁사에게 전해 주시오, 지옥전의 삼 인이 그의 뒤를 쫓고 있다 고… 나는 그들에게 당한 것……." 숨이 가쁜지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금소천은 다급하게 내력을 올렸다. 그러자 무량선사의 입술이 다시 금 벌어지기 시작했다. "흑풍과 사혼… 그리고 구령! 그들은 아직 죽지 않았다고 전해… …." 음성은 점차 희미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 그들 삼 인으로 인해… 궁사의 막힌 마성이 터지면 무림은… 무림은… 헉! 바, 반드시 궁사의 마성을 막아야… 막아야……." 그는 부들거리며 떨리는 손을 품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무언가 를 꺼내 금소천에게 건네주었다. "소시주… 부탁이… 이, 이것을 소림사… 적미천불(赤眉天佛)에게 … 꼭……." 옥잠(玉簪)! 그것은 부러진 옥잠이었다. "소… 소시주… 부탁……."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무량선사의 고개가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으음……." 금소천은 무량선사의 명문혈에서 장심을 떼었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무량선사의 부탁을 어찌 해 야 할지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죽음이야 안타깝지만 자신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빌어먹을! 나란 놈은 왜 이리도 할 일이 많다지?"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_ =는 한차레 갸잎한 눈빚을 뿌렸다. 이어 시선을 무량선사의 시신에 주었다. "승려는 태우되 묻지 않는 법이지." 그는 우수를 가볍게 치켜들었다. 곧 어둠을 사르는 화광이 일었다. 화르르르……. 초토화된 금강사는 무량선사의 시신을 시작으로 잿더미가 되어가고 있었다. * * * 낙양성(洛陽城). 개봉부(開封府)와 더불어 하남성(河南省)의 거도(巨都)이자 중원 굴지의 대시진(大市鎭)이다. 새벽 아직도 밤의 잔해가 뻣골처럼 윙굴고 있는 낙양성의 새벽이었 다. 그 새벽 기운을 타고 인영 하나가 낙양섭의 막 열린 동문을 들어섰 다. 금소천이었다. "쯧! 예의가 없는 도시로군. 천하의 금소천이 이곳에 왔음에도 황 견 한 놈 마증 나오지 않는구나." 금소천은 연신 루덜거리며 잠들어 있는 낙양성을 걸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야단났다." 그의 입 꼬리에 고소가 서렸다. "취접향! 그 계집애에게 가진 돈을 몽땅 털어서 수중에는 땡전 한 푼 없지 않은가?" 장금방에게 얻어낸 금자 만 냥짜리 전표를 항주제일명기인 취접향 에게 꼬두 주지 않았던가? "잠은 아무 데서나 잔다 해도 이렇게 텅빈 배로 어찌 곤륜산까지 간다?" 다행히도 그의 고민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는 두 눈이 괴광을 번뜩이며 어느 한 곳에 시선을 주었다. 낙양 성의 한 골목이었다. 취객 하나가 게트겁을 터뜨리며 비틀비틀 걸어오고 있었다. 술이 고주망태가 된 듯 족히 십 장 밖까지 역겨운 술내음이 물씬물씬 풍겼 다. "끄윽… 월향(月香)이년, 줄 듯 말 듯 하면서… 결국 술만… 크윽! 빌어먹을! 줄래면 몽땅 주지 가슴만……." 불만이 상당히 많은 취객이엇다. "빌어먹을 년… 가슴만 보여주고… 술만 스무 근을 팔아먹어……. 끄윽!" 금소천은 눈빛을 반짝이며 내심 쾌재를 불렀다. '좋아. 취해도 단단히 취했군.'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천천히 취객에게 다가들었다. "어! 이거 장노형 아니시오?" 그는 취객의 어깨를 얼싸안으며 반색의 와침을 터뜨렸다. "세상에! 반갑소이다, 반가워!" 취객은 거슴츠레한 시선으로 금소천을 바라보았다. "크윽! 누… 누구야?" 금소천은 나직한 대소를 날리며 취객의 어깨를 두드렸다. "하하… 장노형, 취해도 너무 취했구려! 나 소천조차 몰라보시다 니!" "소… 천? 크윽!" 취객은 아직도 벌건 시선으로 금소천을 주시했다. 그의 눈동자에는 금소천의 모습이 적어도 열두 개 이상으로 겹쳐져 있었다. "크윽! 그래도 많이… 깼군. 계집년의 젖가슴은 적어도… 백 개는 되어 보였는데." 취해도 지독하게 취했다. "그나저나 소천이라… 어디서 한번 들은 것 같기도 한데… 크윽! 하지만 나는… 장씨가 아니라… 방씨야… 방삼칠(方三七)……." 그러자 금소천은 뭣바닥부터 찼다 "쯧쯧! 방형도… 너무 취했소. 내 언제 방형더러 장씨라 했소? 얼 마나 마셨으면 귀까지 취했소?" 방삼칠은 취기를 깨우려는 듯 두어 차례 고개를 혼들었다. "윽… 취하긴… 취했네." 금소천은 방삼칠의 양쪽 어캐를 두드렸다. "그건 그렇고… 이렇게 퍼 마실 정도면 주머니 사정이 좋으신가 본 데…… 도대체 꿔 간 돈은 언제 갚으실 작정이시오?" "돈? 꿔 간……돈이라니?" 아무리 취해도 돈 애기가 나오자 정신이 드는 모양이었다. 금소천이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몰아붙였다. "아! 얼마 전에 분명히 빌려가지 않았소?" 방삼칠은 정색을 한 금소천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무슨 말… 크윽! 나는 오직 상노인(尙老人)에게만 돈을 빌릴 뿐인데……." 일순 금소천의 두 눈이 반짝 기광을 뿌렸다. "하핫… 바로 그거요. 내가 바로 상노인 댁에 있는 소천이 아니 오?" 방삼칠은 애써 두 눈올 가늘게 좁히며 금소천을 바라보았다. 여전 히 열두 개 이상의 모습이 흐릿하게 겹쳐 있었다. "그, 그랬던가? 빌어먹을…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금소천은 짜증스럽다는 듯 불쑥 손부터 내밀었다. "방형! 어서 돈이나 주쇼!" "젠장… 노랭이 영감… 새벽부터 돈을 받으러 사람을 보내다니… …." 그는 품속으로 손을 디밀었다. "자! 여기 있네. 분명히 한 냥… 일세." 방삼칠은 정확하게 한 냥의 엽전을 금소천에게 건네주었다. '한 냥?' 금소천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젠장할… 한 냥이… 크윽! 꼭 열두 냥갈이 보이는군." 방삼칠은 투덜거리며 비틀비틀 사라졌다. 어디선가 똥개가 짖었다. "겨우 한 냥 젠장 만두 한 개 값에 그 중노동을 하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