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6편 (6/79)
이윽고 금소천은 천천히 신형을 일으켰다. "술값이오." 그는 품속에서 예의 일만 냥짜리 전표를 건네주었다. 순간 취접향은 적이 경악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일만 냥! 소천… 이것은?" 금소천은 한쪽 눈을 껑긋 하며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항주제일 명기 취접향의 술값이 일만 냥도 되지 못한단 말이오?" 취접향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건 너무……." "하하하. 아무 말 말고 받아두시오! 정히 술값으론 큰 액수라 생각 한다면……." 그는 성큼 취접향에게 다가들었다. "무, 무슨?" 취접향은 괜스레 옥용을 붉히며 가까이 다가든 금소천을 바라보았 다. 가슴이 두근거리며 전신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아아……." 그녁는 자신도 모르게 두 눈을 감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의 기대감은 기대감으로 끝나고 말았다. 철썩! 돌연 경쾌한 격타음이 일었다. 어느새 금소천의 한 손이 취접향의 풍만한 둔부를 후려친 것이었다. 취접향은 당황하여 뾰족한 비명을 터뜨렸다. "소, 소천… 너… 또!" 그러나 금소천은 어느새 정실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하하! 향누이의 엉덩이 촉감은 언제 만져도 일품이오." 대소성과 함께 연기같이 모습을 감추었다. 취접향은 금소천이 사라진 곳을 향해 기이한 시선을 주었다. 절절 한 안타까움이었다. "소천." 그녀는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금소천의 손이 닿은 엉덩이 부분에서 아직도 야릇한 기운이 아물거렸다. 문득 그녀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그래……." 이어 그녀의 입에서는 나직한 외침이 터졌다. "삼비연(三飛燕)!" 평소의 그녀답지 않은 냉엄한 목소리다. 휙! 휙! 휙! 허공 어디선가 세 개의 인영이 유령같이 내려섰다. 한결갈이 십칠 세 정도의 미녀들로서 극히 냉막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취접향은 그녀들을 향해 결연한 어조로 말했다, "오늘밤 안으로 취훨루를 모두 정리한다." 일순 삼비연이라 불린 여인들이 움쩔하여 의아한 표정을 지어 보였 다. "이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의 결심은 단호했다. 삼비연들은 더 이상 생각할 필요가 없옴을 직감했다. "알았습니다." 대답과 동시에 그음들의 꼬습은 나타날 때와 마찬가지로 귀신같이 사라졌다. 취접향은 신광을 반짝이며 입술을 지그시 물었다. "소천! 당신이 떠나리라는 것을 알아요. 하지만 그대는 나의… 나 의……." 그녀는 떨리는 손길로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녀의 모습이 완전한 변화를 일으켰다. 또 다른 변화를 일으킨 그녀의 모습. 본래 취접향의 옥용도 항주제일 명기라 할 수 있을 만큼 절세였다. 그러나 지금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전 취접향의 오습이 차라리 천해 보이리만치 황홀한 경천지색이 었다. 또한 전신에서 풍기는 그 고귀한 풍도는 하늘의 달이 고개 숙 일 정도였다. 취접향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회복한 뒤 의미심장한 눈빚을 발했 다. "과연 언니의 안목은 높아. 천하에서 오직 소천만이 언니의 짝이 될 수 있어." 잘근! 그녀는 꽃잎 입술을 물었다 "하지만 언니도 한 가지 모르고 있는 것이 있어." 그녀의 별빛 눈동자가 화려한 광채를 뿌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마음… 아마도 그것만큼은 절대 모를 것이야." 그녀는 나직한 탄식성을 토해내며 발길을 돌렸다. 그러더니 그녀의 모습이 연기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스스슷! 취접향. 그녀는 결코 평범한 항주제일 명기가 아니었다. 항주성 밖. 야천에는 반딧불 갈은 별빛들이 축제를 벌였다. 금소천은 한가한 모습으로 폐찰로 향하고 있었다. "후후후, 장금방도 놀라운 인물이지만… 취접향은 더욱 놀랍지." 그의 입가에는 연신 신비한 미소가 흘렀다. "취접향. 그녀의 본 면목은 어떻게 생겼올까? 정말 궁금한 일이야. 크ㅋ! 행여 내가 반해 버릴까 참았지만……." 그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빛들이 아우성을 치며 반짝거렸다. "하하하핫……." 그의 모습이 천천히 어둠 속 저쪽으로 사라졌다. "하하! 이제 항주성은 두 명물을 한꺼번에 잃게 되었구나……. 아 하하하하!" 대소성이 길게 여운을 끌며 사라져간다. 이제 항주성의 무법자 금소천은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가 가는 곳은 중원! 대중원이었다. * * * 휘이잉! 흐드러진 봄이지만 밤바람은 아직 차다. 바람은 한가닥 음산한 기운마저 내포하고 있다. 그 바람은 적막한 들판을 휘감아 어느 한 곳에 다다른다. 황폐할 대로 황폐해 있는 한 채의 사당(祠堂)이다. 사당의 지하에는 한 판 정갈하고 깨끗한 석부가 마련되어 있다. 지 극히 화려한 태사의가 하나 놓여져 있고. 그 위에는 지금 한 노인이 앉아 있다. 백의를 입은 오순(五旬) 가량의 노인이다. 백의노인의 용모는 매우 청수했다 눈썹과 머리칼은 반백이고. 두 눈은 투명하리만치 맑았다. 그야말로 한구석도 모난 구석이 없는 노 인이다. 노인은 품에 한 명의 여아를 안고 있었다. 말 못하는 나무나 돌 둥도 경탄성을 터뜨릴 만큼 극히 귀엽고 사랑 스러운 십 세 가량의 여아였다 살짝 패인 양쪽 볼우물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럽다. 백의노인은 여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문득 품에 안긴 여아가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백의노인을 바라보았 다. "할아버지!" 백의노인은 여아의 말을 못들었는지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 다. 여아는 앙증맞은 손을 뻗어 길게 늘어진 백의노인의 수염을 잡았 다. "아이… 할아버지!" 수엽을 잡아당기며 재차 불렀다. 일순 노인은 퍼뜩 깊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어! 소옥(少玉)아. 무슨 일이냐?" 소옥이라 불린 여아는 토라진 듯 작은 몸을 흔들며 코방귀를 날렸 다. "흥! 할아버진 거짓말쟁이야! 좋은 구경 시켜 주신다고 해놓고… 들쥐 마냥 냄새나는 사당 지하에서 머물러만 계실 거예요?" 백의노인은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들쥐라고?" 소옥은 앵돌아져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래요 할아버지 들쥐… 그것도 소녀 들쥐예요!" "허허! 이녀석, 그동안 구경을 많이 하지 않았느냐?" "흥! 까짓거 재미라곤 하나도 없어요." 소옥은 재차 백의노인의 수염을 잡아당겼다. "할아버진 거짓말쟁이! 수염을 다 잡아 뽑아 버릴 거야!" 백의노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소를 터뜨렸다, "허허! 녀석. 그러다 정말 할아비 수염이 다 뽑히겠다." 짐짓 엄살을 부리는 그의 눈과 음성은 한없이 자애로움이 넘치듯 담겨 있었다. "좋다! 이녀석… 그래 원하는 게 무엇이냐?" 그러자 소옥의 두 눈이 반짝 빛을 뿌렸다. "항주는 이제 재미없으니 우리 낙양(洛陽)으로 가봐요. 네?" 눈보다 더 빨리 양보조개를 깊게 패이며 애교를 부렸다. 노인은 금지옥엽 손녀의 귀여운 모습에 미소부터 흘리며 말문을 열 려 했다. 그러나 막 입을 열려는 순간 노인의 두 눈이 반짝 기광을 토해냈 다. '으음… 왔군.' 노인은 번개같이 소윽의 멎 군데 혈도를 점했다. 그러자 소옥은 금 방 두 눈을 사르르 감으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아함! 할아버지… 갑자기 졸음이 와요." 노인은 빙긋 웃으며 소옥을 끌어안았다. "그래. 잠시 눈을 붙이거라." 소옥은 이미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와 동시에 노인의 전면에 홀연 한 인영이 소리 없이 솟아 올랐 다. 그야말로 가공할 신법이었다, 나타난 인영은 창백한 꼬습의 중년문사였다. 안색이 창백하다 못해 은은하게 시퍼런 청면(靑面)을 보일 정도였다. 그는 수중에 보기에도 섬뜩한 핏빚 혈선(血扇)을 들고 있었다. "천존(天尊)을 배알합니다." 중년문사는 노인을 향해 깊숙한 부복의 예를 올렸다. 더없이 공손 한 태도였으나, 음성은 차가운 한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노인은 담담한 시선으로 말문을 열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중년문사는 부복한 채 답했다. "놈은 조금 전에 항주를 떠났습니다. 예상대로 놈은 곤륜산을 향하 고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 시도는 해 보았느냐?" 중년문사는 더욱 깊숙이 머리를 조아렸다. "죄송하오나 속하는 시도해 보지도 못하엿습니다." 노인의 무심하던 두 눈에 기이한 광채가 떠올랐다. "왜?" 중년문사의 음성은 여전히 싸늘했다. "필승의 자신이 없었습니다. 봉명소와 서자고가 물러난 것도 무리 는 아니었습니다." 싸늘한 음성 속엔 희미하게 복잡한 경탄의 기색이 내포되어 있었 다. 노인의 두 눈에 번쩍이는 기광이 더욱 짙어졌다. "으음… 녀석이 그토록 강하단 말이냐?" 중년문사는 미미한 경련을 보였다. "놈의 일신재간은 심해(深海)와 같아 도저히 추측할 수가 없었습니 다." 노인의 안색이 침중하게 굳어졌다. 심유무심하던 유리알 같은 두 눈에 얼핏 먹구름이 덮였다. "단리운극! 나는 그 자를 죽일 수 있음에도 죽이지 않고 놈에게 보 냈다." 비천성존 단리운극을 죽일 수 있었다는 광오한 발언을 서슴지 않는 노인. 그의 정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는 순간이다. "봉명소와 서자고의 일신재간은 본교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다. 그들로 하여금 그를 쫓게 한 것은 금소천 그 아이를 시험해 보기 위 함이었다." 노인은 안색을 더욱 침중하게 굳혔다. "예상대로 실패했다. 천왕(天王)의 맥이 놈의 몸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지." 그의 품속에는 여전히 소옥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항차 놈은 나의 제자 단금성(段金成)의 가장 큰 적수가 될 것이 다." 천마황(天魔皇) 단금성. 사람들은 천마교의 당금 교주를 일컬어 단금성이라 한다. 약관 이십삼 세 나이로 사도제일의 방파인 천마교를 이끌고 있는 사도대종사(邪道大宗師)! 그러한 천마교주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노인. 이제야 노인의 정체가 확실해졌다. 그는 바로 전대 천마교주인 불 사천존 냉운형인 것이다. 당금 강호의 양대 산맥 중 하나인 불사천존 냉운형. 현재 그는 제자인 단금성에게 천마교주의 자리를 물려주고 스스로 를 천존이라 칭하고 있다. "금소천! 놈은 단금성의 가장 큰 적수이다." 냉운형은 그렇게 단정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 결연한 기색이 떠올랐다. "확실히 놈은 위험하다. 놈이 더 크기 전에 제거해야만 한다. 그러 자면……." 그는 별안간 고개를 돌렸다. "혈선무정(血扇無情) 천우헌(千尤軒)!" 중년문사는 황급히 대답했다. "하명을 기다럽니다." 불사천존 냉운형은 신광을 번뜩이며 영을 내렸다. "금소천보다 먼저 곤륜산 야은애(野隱崖)로 가거라. 그리하여 단리 운극의 사형인 야은초자(野隱草子) 교천승(交天勝)을 죽이도록!" 한 발 앞선 살인지령이었다. 혈선무정 천우헌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존명!" 스스슷! 나타날 때와 같이 연기처럼 그의 신형이 꺼져 버렸다. 불사천존 냉운형은 전신 가득 지독한 한기를 내뿜었다. "노부가 이백 년을 살아오는 동안 이토록 기괴한 느낌을 받은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그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소옥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가락 끝이 기이하게 메말라 있는 손이었다. "일푼이라도 꺼림칙한 것이 있다면… 아예 없애는 게 최선의 바업 이다." 으스스한 한기가지 느껴지는 음성이다. 그것으로 그의 마음은 결정되었다. "은형삼립(隱形三笠)!' 순간 기척도 없이 세 개의 그림자가 불사천존 냉운형의 전면에 내 려섰다. 그들은 각각 핏빛, 묵빛, 백색의 장삼에 삿갓을 쓰고 있었 다. 특이한 것은 그들의 기세였다. 무(無)! 그들의 전신에서는 기괴하게도 어떠한 기운도 흐르고 있지 않았다. 불사천존 냉운형은 세 명의 삿갓고인, 은형삼립을 지켜보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모두 듣고 있었겠지?" 대답은 없었다. 희미하게 끄덕이는 고개가 모든 답을 대신하고 있 었다. 그러나 냉운형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의 두 눈이 유리알처럼 빛을 뿌렸다. "금소천! 놈을 오늘 밤 안으로 제거하거라. 가라!" 마지막 영이 떨어졌을 때 이미 삼 인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 다. 언제 그들이 있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무(無)! 모든 것이 무(無)였다. 불사천존 냉운형의 눈빛이 더욱 투명하게 변했다, "단리운극! 그대가 죽어가면서까지 해 놓은 안배가 물거품이 될 지 경이로군." 그는 여전히 소옥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메말랐던 손끝에 손녀에 대한 정감이 되살아났다. "미안하오. 하지만 그대만이 천하에서 유일한 노부의 적수였음을 인정하겠소." 유일한 적수의 죽음을 애도하려 함인가? 그는 눈을 감으며 한동안 깊은 생라에 젖어 있었다. 잠시 후. 불사천존 냉운형은 감았던 두 눈을 뜨며 나직하게 중얼거 렸다. "금소천, 어디 놈의 운명을 점쳐 볼까?" 그는 허공섭물의 절기로 한 켠에 쌓여 있던 동전을 끌어 들였다. 이어 탁자 위에 몇 넣 동전이 굴렀다. 차르르르… 탁! 마지막 동전 한 닙이 탁자 위에 곤두박질켰다. 냉운형의 투명한 시선이 탁자 위의 동전들을 살폈다. 순간 그의 투명한 시선이 급박하게 변화를 일으켰다. 동전들은 음(陰)의 뒷면보다 양(陽)의 앞면이 더 많았다. "이럴 수가?" 그는 자리에서 벌떡 꼼을 일으키며 경악했다 하마터면 품 속의 소 옥을 떨어뜨릴 뻔했다. 그의 가슴 일각이 '쿵' 하고 무너져내렸다. * * *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 같은 고찰(古刹)이다, 바람 소리조차 고찰에 이르러 을씨년스럽게 부딪쳤다. 때는 아직 초경 무럽이었다. 문득 고찰 앞에 인영 하나가 자리했다. 대략 이십 삼사 세 가량 되었을까? 일신에 은의(銀衣)를 걸친 네모 진 얼굴의 준수미청년이었다 더구나 짙은 눈썹과 우뚝 솟은 코가 한 층 강렬한 인상을 던졌다. 휘리리링……. 밤의 들판을 거칠게 몰아든 야풍이 청년 곁에 이르러 한결같이 숨 을 죽였다. 순간 청년의 전신에선 야신(夜神)조차 감히 범접치 못할 막강한 기 상이 발산되었다 그것은 절로 숨조차 죽이게 만드는 패도적인 기운이 었다. 청년은 고찰의 주위를 한차례 살핀 뒤 천천히 안으로 들어서기 시 작했다. 끼이이익! 괴기로운 마찰음이 일며 낡을 대로 낡은 고찰 문이 몸부림치며 열 렸다. 청년의 신형이 막 문안으로 들어선 순간. 그의 짙은 눈썹이 미미하 게 꿈틀거림을 보였다. "천공마라진(天空魔羅陣)?" 그의 눈앞에 자욱한 운무가 보였다. 그러자 천하명필의 일 획인 듯한 청년의 입술에 한 조각 차가운 냉 소가 머금어졌다. "이 정도로 나의 발길을 막겠나?" 그는 조소를 날리며 성큼 운무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청년의 판단은 성급했다. 운무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그는 내심 다급성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음? 매복이 있었군." 돌연 수천 수만의 검귀(劍鬼)들이 날이 시퍼런 장검을 청년의 전신 에 박아 넣으려 했다 "차아-- 앗!" 청년은 기래무비하게 지면을 박차며 허공에서 한 바퀴 회전을 일으 켰다. 동시에 그의 쌍장이 무섭게 정면으로 내뻗었다. 츠츠츠-- 츠츠! 두 가닥 노도와 같은 장력이 짓쳐드는 급습을 상대했다. 그러자 천 지박살의 굉음이 일며 전면의 모든 물체가 무참하게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비명 소리가 없었다. 사방이 부서져 나가는 순간에도 사람 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환상이었군. 쯧!" 청년은 바닥으로 내려서며 내심 실소를 날렸다. 그의 짐작대로였다. 수천 수만의 검귀들은 씻은 듯 사라지고 없었 던 것이다. 청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발걸음을 이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의 입에서 외마디의 신음성이 튀어나왔다. "잔혈이시(殘血二屍)!" 두 구의 시신이 피곤죽으로 나뒹굴고 있었다. 이미 죽은 지 상당 시간이 지난 듯한 시신이었다. 그때였다. 투투투툭! 무엇인가 청년의 전신으로 우박 퍼부어지듯 떨어져내렸다. 수백 개 의 은빛 광채가 번뜩이는 은침들이었다. 청년의 안색이 무겁게 굳어졌다. "이제 보니 은망산화침(銀芒散化針)이었군." 잔혈이시의 시신들엔 전신대혈(全身大穴)마다 무수한 은침들이 박 혀 있었다. "어떤 인물인지 놀람구나. 은망산화침으로 이렇듯 신묘한 살인진식 을 안배할 수 있었다니……." 청년은 급변하던 눈빛을 월래대로 회복시켰다. 그는 유람이라도 하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렇게 해서 단리운극은 살아났고, 나는 이 진식을 안배한 자를 평생 기억해야 한다는 것인가?" 그는 한일자의 입가에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감히 나를 속일 수 있는 자라… 아무래도 나 단금성이 평생의 호 적수를 만난 것 같구나." 그는 천천히 신형을 돌려 세웠다. 몸을 돌리는 순간 그의 신형은 연기처럼 고찰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금소천만 해도 부담이 가는 인물이거늘. 후후… 사부님께서 조금 골치가 아프시겠군." 그의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이 야풍 속에 묻혔다. 휘리리리링…….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소천 등이 머물렀던 고찰에는 으스스한 바람 소리만이 번져갔다. * * * 스스스슷……. 풀잎 스치는 극히 미세한 음향이 있었다. 초경이 막 지난 무렵, 세 줄기 인영이 야사(夜蛇)인 양 무성히 자 란 잡초들 사이를 미끄러지듯 달리고 있었다. 은형삼림, 바로 그들이었다. 휙! 홀연 한 줄기 백광이 기쾌하게 은형삼립을 향해 쏘아져 왔다. 흡사 참새와 같이 조그만 체구의 백색 괴조. 모습은 영락없는 한 마리 백 응(白鷹)이다. 백응은 은형삼립 중 혈립괴인의 수중으로 날아들었다. 혈립은 백응을 받아 다리에 묶인 서찰을 살펴보았다. "초우현(草雨顯)이라고 하는군." 목구멍에서 쏟아진 음성은 바삭 마른 화강암과도 같았다. 이어 백립의 음성이 터졌다. "조심해야 한다. 상대는 서자고와 봉명소도 실패한 무서운 놈이 다." 그 음성 역시 혈립의 그것과 같아 도저히 산 인간의 음성이 아닌 것 같았다.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최선책은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높이 보는 것이다." 이번에는 누구의 목소리인지 구별도 가지 않는다. 어쨌든 그들은 입올 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인간에 가까웠다. "허나 자신을 경시해서도 상대를 두려워해저도 안된다!" 다음 순간 그들은 기쾌한 속도로 방향을 바꾸어 신형을 날리기 시 작했다. 빛! 그들의 움직임은 빚의 빠르기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얼마나 몸을 날렸올까? 돌연 은형삼럽의 전면에서 나직한 대갈성이 터졌다. "모두 멈춰라!" 웅후한 목소리와 합께 무형의 기이한 경력이 은형삼립의 전진을 저 지시켰다. '고수다!' 은형삼립은 내심 똑같은 목소리로 외켰다. 그리고 똑같은 목소리로 반응했다. "웬놈이 감히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느냐!" 그들은 일제히 쌍장을 내뻗었다. 그들의 동작은 갓난아기가 엄마 젖을 찾듯, 지극히 본능적이고 자 연스러웠다. 펑! 콰쾅! 은형삼립의 장력과 전면의 흘연한 경력이 벼락치듯 부딪쳤다. 은은 한 충격이 다가왔지만 참을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놈에게는 살기가 없다.' 은형삼럽은 똑같은 생각을 하며 찰나지간에 품자형을 이루어 상대 를 둘러쌌다. 그들의 중앙에는 한 명 은의인이 태산 같은 웅자를 보이고 있었다. 포위를 당했음에도 극히 척유로운 모습이었다 순간 은의인의 얼굴을 알아본 은형삼럽이 흠칫하며 일제히 부복을 했다. "교주님!" 급작스레 나타난 은의인. 그는 바로 천마교주인 천마황 단금성이었던 것이다. 천마황 단금성은 은형삼럼에게 시선을 주며 나직하게 영을 내렸다. "은형삼립, 돌아가거라!" 순간 은형삼립들은 홈칫하고 말았다. 그들 중 혈컵이 황급히 말문을 열었다, "천존의 영이십니다." 그는 불사천존 냉운형을 상기시켰다. 음성은 여전히 입을 떼지 않 는 것이 좋을 만큼 듣기 역겨운 것이었다. 천마황 단금성의 우뚝 솟은 콧날이 한차례 꿈틀거렸다. "부딪치면 너희들만 죽는다." "하오나 이는 천존의……." 순간 단금성의 두 눈에서 무서운 신광이 폭사되었다. 주위의 모든 공기들이 그 눈빛에 진저리를 칠 정도였다. '으으…….' 은형삼립은 보지 않아도 천마황 단금성의 막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저절로 어금니가 딱딱 부딪쳤다. 천마황 단금성은 은형삼럽을 향해 차갑게 물었다. "본좌가 누구더냐?" 은형삼립은 부르르 전신을 떨며 황급히 답했다. "지존(至尊)이십니다." "돌아가라!" 그것은 지존의 영이었다. 은형삼립은 더 이상 고집을 부리지 못했다. 그것만이 사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존명!" 한마디 대답과 함께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 바람같이 사라졌다. 세 사람을 바라보던 천마황 단금성은 기이한 눈빛으로 내심 중얼거 렸다. '금소천! 그대를 한번 살려주마. 그대는 나 단금성을 대적키엔 아 직 어리다. 오년! 이 후 오년을 기다리도록 하마. 그대가 천왕지맥이 듯 나 역시 천왕지맥이니까!' 천마황 단금성. 그 역시 천왕지맥이었던가? 진정 경천동지할 비사(秘事)가 아닐 수 없었다. '어차피 조만간 전설의 십대천왕은 꼬두 등장한다.' -- 천년무림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열 개의 하늘이 있으니 이를 일컬어 곧 십대천왕이라 한다. 천마황 단금성의 눈동자가 엄청난 신광을 뿌렸다. '십대천왕! 그들 증 과연 누가 가장 뛰어난 천왕지존(天王至尊)이 될 것인가?' 그는 야천을 우러러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핫… 바로 나다! 천왕지존. 나 단금성이 아니면 그 누가 천왕 지존이 될 것인가? 으하하하하!" 앙천광소성이 길게 여운을 끌며 탄금성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