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객 - 32편 (32/36)
휘휙! 휙! 그러던 중, 검우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외쳤다. "꼬마야, 나는 이미 많이 참고 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을지도 몰라!" 요요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마음대로 해보시지. 나는 이대로 두 시진은 자신 있어. 그 두 시진이면 무류흔이 죽는시간으로 충분해." 말끝마다 무류흔이고, 죽음이다. 이 영악한 소녀는 그의 힘으로 두 사람을 분노케 하고 그것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추상이 살옥수(殺玉手)를 쳐가며 말했다. "요요, 너는 그이를 오빠라고 부르며 따르지 않았던가?" 요요는 혈풍파뢰(血風破雷)의 일식으로 그녀의 살옥수를 쳐내며 싸늘한 코웃음을 터뜨렸다. "흥 나는 그를 미워해! 죽도록 미워해!" 요요의 경력(勁力)이 거세지는 바람에 추상은 하마터면 그녀의 일장을 맞을 뻔 했다. "왜 그렇게 미워하지?" "그는 나보다 다른 여자를 더 좋아했어! 백유군도 그렇고 너도 그래." 추상은 탄식을 터뜨렸다. "사랑은…… 그래,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구속시키는 게 아니야. 자기가 상대에게 스스로 구속이 되어서…… 그리고 주는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야? 사랑은 받아야 해!" 쌔앵! 요요의 지력 이 추상의 귓전을 스쳐 지났다. "요요, 너는 아직 어리다." "그렇지 않아……." 화가 치밀었던지……, 요요의 공격이 갑자기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쌍수에선 자룡혈장(紫龍血掌), 마혼분광(魔魂分光) 같은 독수(毒水)가 마구 뿜어져 나왔다. 추상은 혜운보(慧雲步)의 구결을 밟아가며 영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조금 더 크게 되면 네 가슴속에 문득 자리잡은 그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지 알게 된단다. 그땐 무한대의 사랑을 베풀고 싶어지지……. 사랑은 주는 거다, 요요." "그런 소리는 지나가는 개나 줘버려!" 이때 돌연, 추상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녀는 모종의 결심을 한듯 명랑하게 웃으며 말했다. "요요, 사랑은 주는 것이란 걸 보여줄까?" "믿지 않아!" 그녀는 혈사비룡(血蛇飛龍)의 초식을 펼치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공격이 소용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시 탈혼마혈(奪魂魔血)로 검식을 바꾸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푹! 요요……, 이 일검은 그냥 추상의 배를 뚫고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놀람의 외침은 오히려 요요의 입에서 나왔다. "악!" 추상은 섬연한 아미를 가볍게 찌푸렸으나 이내 옥수로 검을 휘어잡았다. 맨손으로 잡은 것이다. 그녀의 손바닥으론 이내 섬뜩한 칼날이 파고들었다. 요요는 검을 빼려해도 빼지지 않자 일시 멍하니 서 버렸다. 휙! 그때 돌연, 무서운 청광이 요요의 목을 갈라왔다. 추상이 찔리는 것을 본 검우의 필사지검(必死之劍)이었다. "그만둬요!" 추상의 외침과 날아들던 검이 뚝 멈춘 것은 바로 그때, 검우는 석상처럼 굳은 채 추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은 왜라고 묻고 있었다. 추상은 배시시 웃으며 요요를 바라보았다. "네게 보여 주려고 한 것은 아니야. 다만 나는 지금 마음이 몹시 급하단다. 내가 이렇게 너를 봉쇄하면 검우가 달려가 줄 테니 설사 내가 이렇게 죽어도 나는 마음이 기쁘다. 그를 위해서 무엇을 해 주었기 때문이야." "기뻐……?" 요요의 얼굴이 불신과 회의로 물들여진 채 주춤 물러났다. 오오, 그러나 믿지 않을 수 없다. 추상의 얼굴은 마냥 빛나고 있었다. 마치 사람이 아니라 성스러운 석상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요요의 안색이 짧은 시간 동안 차디차게 변해갔다. 다음 순간, "호호호……." 미친 듯한 웃음과 함께 그녀의 몸은 붉은 구름덩이로 화하여 번쩍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가 사라지자 추상의 옥용엔 비로소 고통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의 몸이 휘청거리자 검우가 다급히 그녀를 부축했다. "추상!" "괜찮아요, 검우……." "피가 많이 흐른다." "지혈을 했으니……, 나…… 나를 좀 업어줘요. 업힌 채로 운공을 좀 하면 나아질 거예요. 빨리…… 빨리 가요, 검우……." * * * "으아악! 으악!" "아악!" 도대체…… 무비, 공족, 천맹의 삼 인은 병기를 늘어뜨린 채 망연히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들판의 전쟁터를 보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고 천맹은 쫑긋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믿을 수 없다……." "믿을 수 없어…… 어찌 이럴 수가……." 유계(幽界)의 불빛을 향해 몰려드는 아수라처럼…… 빽빽히 온 들판을 메우고 있는 혈교(血敎)의 문인들, 그 사이에 홀로 선 사내, 사내는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에 그것은 마치 춤을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일검이 허공을 가를 때마다…… . "으악! 악!" "으윽!" 목과 가슴을 부둥켜 안으며 쓰러지는 사람, 또 사람들, 피보라가 튀고…… 비명이 산야를 진동했으나……, 그것은 마치 검에 베여 죽는 것이 아니라 사내의 춤에 취해 쓰러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다. 사내는 무아지경에서 홀로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는 철저한 자유인이었다. 그는 더 이상 죽여야 할 목표가 없었다. 삶과 죽음을 초월하여…… 그는 자신이 창조해 낸 공간 속에서 홀로 말없이 춤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미 천 명이 쓰러졌다. 하나 사내는 앞으로도 그 열 배는 더 죽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그때다. "멈춰라----!" 온 산야를 쩌렁 울리는 엄청난 외침, 사내의 휘두르던 검이 멈칫하고, 마졸들의 몸이 흠칫하였으며…… 무비, 공족의 눈과 천맹의 귀는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했다. 순간 무비는 분명히 보았다. 하늘, 그 아득한 곳을 유성처럼 날아 떨어지고 있는 두 남녀들, 그 모습이 시선에 쏘아져 들어온다 싶은 순간, 그는 목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이 그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느낄 수 있었던 감정……. 그의 몸이 마상에서 굴러 떨어진 것과 검우, 추상의 몸이 땅에 내려선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검우는 자신이 무심히 내려 꽂은 일검이 무비 같은 거물을 죽였다는 사실에 잠시 얼떨떨해 하다가, 자신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 한 시선과 마주쳤다. "무류흔!" 뼈만 앙상하게 남은 청년은 조용히 웃어 보였다. "자네가 와 주었군. 추상은……." 추상은 주위에 빽빽히 늘어 선 시체와 마졸들을 쓸어보고 난 후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늦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마졸들은 갑작스런 두 사람의 출현에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다. "쳐라!" 그러다 천맹이 미친 듯 부르짖는 소리에 번뜻 정신을 차리고는 이에 노도처럼 세 사람을 향해 덮쳐들었다. "와아----!" 검우는 빙글빙글 검을 돌렸다. 슈슉----! 이어, 그들을 향해 마주쳐 나가며 무류흔을 향해 외쳤다. "빨리 갈 길이나 가라! 이 미친 놈아! 넌 중원의 명예를 한 어깨에 걸머진 놈이야!" 추상은 검을 움켜잡았다. 그녀는 영롱한 시선으로 무류흔을 올려다 보았다. "몸조심하세요……." 무류흔은 씩 웃었다. "당신도……." 추상은 아련히 저려오는 복부의 상처를 움켜잡으며 휙 몸을 날렸다. "나중에!" 그녀가 몸을 덮쳐간 곳은 천맹쪽이었다. 공족은 미친 듯 검우의 뒤를 쫓고 있었으며……, 검우는 이리저리 그를 피해 다니며 애궂은 마졸들만 무우 베듯 마구 잡아 죽였다. "으아악!" "악!" 무류흔의 시선이 잠시 추상을 쫓았다. 그녀는 천맹과 맹렬히 검을 부딪치고 있었다. 그 섬연한 몸의 굴곡……, 무류흔은 한 줄기 불길한 예감이 가슴을 사로잡는 것을 느꼈으나, 이내 긴 휘파람을 불어내며 포위망을 뚫기 시작했다. 하늘엔 노을이 지고…… 그렇다. 황산 의 약속은 시간이 조급했다. * * * 요요, 그녀는 절벽의 중간쯤에 무릎을 세운 채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밤이다. 중원평의 혈투, 그것은 아직도 맹렬히 이어지고 있었다. 하나 그녀는 안다. 이제, 추상과 검우가 얼마 못 버티고 곧 쓰러지리라는 것을, 추상의 복부 근처는 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아마 요요에게 찔린 상처가 터진 것이리라. 상처는 쓰리고 아팠다. 또한 빠질 대로 빠진 힘은 수중에 들고 있는 검조차 무겁다고 아우성치고 있었다. 그녀는 희미하게 웃었다. 맹렬히 검을 쳐오는 천맹의 검을 거의 무의식적으로 막으며, 바로 그때다. 문득 그녀의 등에 한 사람의 몸이 닿아온 것을 느꼈다. "검우?" "그렇소. 배의 상처는 좀 어떤가?" "제멋대로 터져서 날뛰고 있어요." "버틸만 하오?" "아직은, 당신은?" "괜찮아." 등과 등을 맞대니 한결 적을 상대하기가 쉽다.한 면의 부담은 덜었기 때문일 게다. 휙---! 천맹의 검이 무섭게 내리찍어 오고 있었다. 추상은 검을 머리 위로 올려 막았다. 깡! 그때 문득 추상은 밤하늘이 너무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 무수한 성좌가 은가루처럼 덮여 있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그녀는 또다시 배를 찔릴 뻔했다. "하앗!" 추상은 맹렬히 연환삼검(連還三劍)을 쳐내어 천맹을 물리친 후, 옥용(玉容)에 배시시 웃음을 떠올렸다. "밤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요……." "……." 하나 검우는 묵묵부답, 추상은 일검을 찔러내며 또 물었다. "왜 대답이 없지요?" 한참 만에야 검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미녀를 이렇게 가까이 두고 그런 낭만적인 말은 난생 처음 들어보기 때문이다." "후훗…… 오늘밤은 정말 운치가 있군요." "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지?" "당신은 왜?" "나는…… 그냥…… 좋다고나 할까?" "후훗…… 저도 그래요……." "그가 보고 싶지 않은가?" "보고 싶어요." "그런데?" 추상은 한껏 검을 쳐낸다. 쳐내는 그녀의 두 눈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그래서…… 아까 많이 봐 두었어요……. 계속 그이만 보았거든요……." 별빛인가……, 이슬인가……. "행복해……." "누가요?" "무류흔, 그놈 말이야." "후훗……." "세상에는 그토록 여러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는 자가 있는가 하면 마음속의 사랑을 못내 담아둔 채 말을 못하는 사람도 있지…… 기다리면 된다는 보장도 없이 말이야……." 순간, 추상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천맹의 검이 독사처럼 그녀의 우측 어깨를 찢고 지나갔다. 파아앗! "다쳤나?" "아아니……." 추상은 마음이 아팠다. 자기는 왜 이토록 가까운 사람의 마음조차 눈치채지 못했을까……. 검우, 공족을 놀리듯 검을 휘두르는 그의 눈에는 이슬이 맺히고 있었다. 그는 피식 웃었다. "정말 좋은 날이로군……." "그래요……." "마으속의 말을 할 수 있어서 기뻤다. 영원히 못할 줄 알았으므로…… 하나, 이……이상 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니야……." "……." "한데…… 그렇군. 이 싸움은 내가 생전 처음 남을 위해 해 보는 싸움이로군……." 추상은 팔이 지쳐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제 자신은 단 몇 초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검우……." "왜?" "말해 줘서 고마와요……." 쨍! 한 순간, 분명히 막았는데…… 그 막은 검을 밀치고 들어오는 새파란 독사의 혓바닥을 보았다. 그 혓바닥은 정확히 그녀의 심장을 찢고 있었다. "웃!" "훅!" 비명은 두 사람의 입에서 동시에 터져 나왔다. 천맹의 검은 추상의 심장을 뚫고 검우의 등까지 관통했던 것이다. "핫하…… 한 검에 두 꼬치라! 최고로군!" 그러나 공족의 득의한 웃음은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는 도저히 항의할 수 없는 빛의 광채가 자신의 온몸을 향해 쏘아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으아아악!" 온몸이 순식간에 여덟 조각으로 잘리워 나가는 그 순간, 반대쪽의 천맹은 이마에 한 자루의 검을 꽂고 있었다. 추상의 검이었다. "실수다……. 공족의 비명 때문에 이 검의 소리를…… 못 들었다……." 오오…… 삼십삼겁! 삼십삼겁의 두 생존자가 또 사라져 가는 순간이었다. 쿵! 쿵! 두 거물이 쓰러지고…… 나란히 검에 꿰뚫린 검우와 추상도 그 자리에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추상, 내려 뜬 실눈 새로 별빛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온다. 그 별빛은 미친 듯 회오리치며…… 수많은 영상들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검우의 손이 추상의 손을 잡아왔다. 추상은 그 손을 꼭 마주쥐어 주었다. 별무리 속에서 무류흔이 웃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추상은 의식이 흐려져 오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웃었다. 해맑게 웃었다. 그녀는 한 사람을 사랑했고…… 그 사랑은 행복했다. 그러므로 된 것이다. 안녕…… 내 슬픈 사랑이여……. 두 사람, 백정의 아들 검우, 팔십만금군교두의 딸 추상, 풍진세상을 그들 나름대로의 희망을 걸고 꿋꿋이 살아가던 두 청춘은 이렇게 죽었다. 별빛은 말이 없고……, 밤은 무심히 깊어가던 그 시각에……. 요요는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왜 죽음을 저토록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문득, 그녀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절벽의 낮은 귀퉁이에 엎드린 채 속삭이고 있었다. "악독한 놈들이다. 무려 이만 근의 화약이야?" "화귀야, 너는 또 무슨 생각을 했지?" "보아하니 이놈들은 지금 이쪽으로 오고 있는 귀역오가를 몰살시키려고 한 모양이야. 이 악마 같은 놈들에게 선물을 주자." "그렇게 말하는 네 놈은 악마가 아니냐?" 두 사람 범용과 모사일, 요요가 보기엔 이들도 죽음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다. 왜냐하면…… 범용은 화약의 도화선을 끌어내어 저쪽 절벽까지 이으려 하고 있었고 모사일은 그 뜻을 받아 이미 몸이 날아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것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저들도 이곳에 있어야 한다. 그럼 결국 그들도 죽을 게 아닌가? 그러나 화약제조의 달인인 범용은 연신 킬킬대고 있었고, 경공 의 달인인 모사일은 희희낙락하며 산지사방을 누비고 있었다. 범용의 기술은 몹시 치밀했다. 그는 귀역오가가 오는 곳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었고, 어디 쯤에서 터뜨려야 그 귀역오가를 몰살시키려는 혈교의 친구들까지 한데 싸잡는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화약의 도화선을 설치하고 모사일이 그에게로 다가가는 것을 보며 요요는 천천히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혈교의 고수들은 아직도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우두두……. 이때, 아득한 먼지를 일으키며 평원을 향해 질주해 오고 있는 한 떼의 인마가 보였다. 흑백회홍청(黑白灰紅靑)의 각기 다른 옷, 그리고 다른 병기……. 귀역오가가 틀림없었다.요요는 혈교 쪽을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은 크게 당황하여 제각기 절벽 아래로들 몸을 숨기고 있었다. 요요에겐 그들이 마치 불 속으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였다. 화약을 설치하고 있는 그 아래로 뛰어 들다니, 인간은 어째서 저토록 한치 앞도 모를까? 우우우……. 귀역오가는 순식간에 평원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평원에 가득 널린 시체를 보더니 급히 대열을 멈추었다. 바로 그 순간, 요요는 범용이 껄껄 웃으며 화약의 도화선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치치직……. 그녀는 땅을 박차고 하늘 높이 몸을 날렸다. 도화선이 타들어가는 모습이 불꽃처럼 영롱해 보였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 번쩍 치솟는 섬광! 우르르……. 이어, 미친 듯이 터지는 이만 근 화약의 위력을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집채만한 바위가 튀어 오르고 두 개의 절벽이 얼음처럼 조각나고 있는 것도 그녀는 보았다. 그리고 비명. "으아아아악!" 화약폭풍의 여력을 빌어 더 높은 곳으로 치솟아 오르며 요요는 중얼거렸다. "미쳤어……, 모두 미친 바보들 뿐이야……." 제 27 장 대결(對決) ------------------- 馬斯白日暮 劍鳴秋氣來 我心測無祭 河上空徘徊 말은 울어 하루 해 저물고, 허리의 칼은 가을 기운에 철컥거린다. 내 마음은 이 끝없는 길과 같아서 그저 황하 근방을 헛되이 배회한다. 七月 三十日! 유사 이래, 七月 三十日은 자주 오랫동안 있어 왔다. 그것이 사람들에게 주는 느낌은 만하(滿夏)로 들어간다는 정도……. 글쎄……, 이날 아내가 아기를 낳기 위해 진통을 시작했다거나, 온 집안이 일시에몰살했다거나 지구가 멸망해 버린다면 얘기는 또 틀려 지겠지만, 어쨌든 七月 三十日! 이날, 아침에 일어난 사람들은 일제히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황산 (黃山), 그곳에서 무림의 한 대(代)를 가름하는 무서운 결전이 벌어진다. 그리고, 이미 황산 천도봉의 아래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북적거리고 있었다. 삼십삼겁의 압제에서 풀려난 무리정예 문파에선, 황산 천도봉의 아래에 수백 수천 개의 차일을 치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접대하고 있었으며 그 모든 접대질서의 총책은 소림사 가 도맡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취국 무류흔은 자랑스럽게도 소림 출신이었으니까……. 사람들은 웅성거리고 있었다. "중원평의 폭사사건을 아나? 귀역오가 오천의 정예와 혈교 일만이 그곳에서 몰살했다는구먼." "하늘이 도우신 게야. 이제 세상은 비로소 광명을 되찾았네." "그게 다 취국 대형의 덕이 아니고 뭔가? 그 어른이 겪어오신 세월이야말로 만세에 이어 칭송해야 할 하나의 신화일세." "암, 그렇고 말고." 세상에 절대적인 비밀은 없는 법이다. 삼십삼겁과 무류흔, 추상, 금적해, 검우의 얘기는 이미 온 천하가 다 알고 있었다. 소림 밀교 가 제자를 모집하여 그 삼십 육인들이 오늘의 무림풍운을 일으킨 장본인들이며, 그들 개개인이 걸어온 길들은 모두가 엄청난 신화로 사람들의 입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한데 사천 천불사당 말일세." "오, 그곳?" "그 앞의 푯말이 불과 이일 후를 가리키고 있다는 것 아나?" "오오…… 이 일(日)……?" "그렇다네, 마침내 내일 모레면 그 신비가 풀리게 되겠구먼" 이때다. 갑자기 산 아래의 길이 떠들썩해졌다. "온다!" 사람들이 갈라지며 하나의 통로가 나타났다. 그 통로로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불사방의 기인들이구나!" "저쪽은 무저빙궁주 백유군이오, 이쪽은 보타암의 근지다." "저기 좀 보게, 소림 밀교 의 살아 남은 금적해 공(公)일세." 백유군, 근지, 금적해, 야래향, 탑우, 곡운, 도백, 그리고 이들을 수행하는 일만의 불사방 고수들, 그들은 침착하게 산길을 걸어 오르고 있었다. 하나 어딘지 모르게 이들의 모습에서는 힘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천축 고수들은 먼저 올라갔으니……." "한데 취국 대형과 묵도, 야화가 안 보이는구먼? 이들이 불사방의 절대고수들일 텐데?" 산정(山頂), 이미 이곳에는 하나의 비무대(比武臺)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양쪽으로는 청홍의 차일이 쳐진 계단식의 대가 또 만들어져 있었다. 망아대활불을 위시한 천축 의 고수들은 동쪽 청색차일 아래에 있었다. 망아대활불과 그들의 세 제자들은 입정한 고승처럼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천축 지옥 아나타만이 두 눈을 뜬 채 신기하다는 듯 이곳 저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유군 일행은 홍색차일의 아래에 앉았다. 그녀는 비무대 아래에 공중석에 있는 오대문파의 장문인 들을 힐끗 바라보고 난 뒤 근지에게 시선을 던졌다. "도대체가 이 양반과 검우, 추상은 하늘로 솟았나……, 땅으로 꺼졌나……. 아무데도 흔적이 없으니……." 근지는 심각한 안색으로 말을 받았다. "중원평의 폭사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아요. 이것 큰일이로군요. 대회는 벌어지는데 선수들이 없으니……." 금적해, 곡운, 탑우 등의 안색도 침울했다. "제기랄! 정오는 이제 불과 반 시진이다!" 금적해가 중얼거리자 곡운은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몸이나 푸세요. 직접 나가셔야 할지도 몰라요." "내가? 맙소사! 나는 주판을 하도 만져서 손이 굳어 버렸어!" 시간, 기다리는 사람들의 가슴이야 바짝바짝 타건 말건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만 가고 이윽고 해는 드디어 정오에 걸렸다. 묵묵히 앉아 있던 장문인 들 중에서 소림 의 각오선사가 느릿하게 대 위로 올라갔다. 그는 하늘을 언뜻 바라보더니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지금부터 천축 대 중원, 중원대 천축 의 비무회(比武會)를 시작하겠소이다!" 순간 망아대활불과 그의 세 제자들은 번쩍번쩍 두 눈을 떴고, 불사방의 군웅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아낙네는 무심히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온몸이 피로 물든 혈인 하나가 불쑥 나타났기 때문이다. "에그머니나!" "쿨룩…… 쿨룩……." 혈인은 미친 듯 기침을 하며 우물의 난간을 붙잡고 물을 긷기 시작했다. 긴 흑발 새로 그의 용모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악!" 아낙네는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실신하고 말았다. 무류흔은 두레박을 우물 속으로 던져 넣었다. 바로 그때, 우물 속에서 세 자루의 검이 무섭게 솟구쳐 나왔다. 슈파앗! 실로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무서운 공세. "쿨룩…… 쿨룩……." 기침을 하면서도 무류흔은 수중에 든 두레박을 힘껏 휘저었다. 퍽! 퍽! 퍽! 순간 수박 깨지는 소리와 함께 피를 퉁기며 세 명의 검수는 다시 밑으로 떨어져 내렸다. 피가 섞인 물은 먹지 못한다. "쿨룩…… 쿨룩……." 무류흔은 기침을 쉴새없이 터뜨리며 시선을 앞으로 던졌다. 하나의 넓은 갈대밭, 그리고 갈대밭의 뒤로는 높은 산봉 하나가 의연히 버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