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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객 - 30편 (30/36)

2026-09-22 08:27:13 조회 30
폭풍에 휩쓸리는 나무처럼 사태는 분명해졌다. 저 야수의 눈빛을 가진 죽립인은 무류흔을 공격할 마음을 굳히고 있는 것이다. 무류흔의 이마도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그는 일생 동안 많은 싸움을 해보았지만 시작도 해 보기 전에 이토록 힘든 싸움은 처음이었다. 상대는 너무 강했다. 저것이 강함의 극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몸이 젖혀지고 있는 동안, 티끌만한 빈틈이라도 생긴다면 죽립인의 목도는 사정없이 그 빈틈을 파고들어 주인에게 완벽한 승리를 안겨 주게 될 것이다. 땀은 이마뿐 아니라 등, 손바닥까지 났다. 무류흔은 절망적인 마음에 휩싸이고 말았다. 땀……, 땀이라니…… 끝장이었다. 설사 자신이 검을 잡을 수 있게 된다 해도…… 이 땀이 그 검자루를 미끄러뜨리는 미세한 오차는 도저히 만회할 길이 없었다. 시간, 시간이 흘러갔다. 사공은 아무것도 모르고 콧노래를 부르며 배를 저어갔다. 아침식사를 못하게 된 것도 잊어버린 듯 그의 태도는 몹시 한가로워 보였다. 바로 그 순간, 무류흔의 두 눈이 번쩍 빛을 발했다. '바로 저것이다……!'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그는 즉시 생각의 실천으로 들어갔다. 죽립인의 이글거리던 두 눈에 문득, 한 줄기 의혹의 빛이 스쳐지났다. '저게 무슨 자세일까?' 무류흔은 지금 몸이 젖혀지고 있는 절대위급의 와중에서 엉뚱하게도 몹시 편안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두 손은 뒤로 한껏 뱃전을 짚고 한쪽 다리를 태연히 다른쪽 발 위로 올린 자세…… 편안한 자세란 빈틈이 많다. 보라! 단숨에 우측 옆구리와 좌측 허벅지, 좌측 겨드랑이가 텅 비고 말았다. 아득바득 빈틈을 보이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해도 모자랄 판에 저건 아예 빈틈의 홍수가 아닌가? 죽립인의 두 눈에 싸늘하고 냉혹한 광채가 스쳐 지났다. '포기란 말이지? 좋아……, 어느 쪽을 찔러 줄까……. 좌측 겨드랑이가 좋겠군. 아니야, 우측 옆구리……, 그곳보다는 좌측 허벅지가 어떨까……?' 하나 죽립인은 이내 곤혹에 빠지고 말았다. 아아…… 허점은 너무 많았다. 한 개의 허점만 있었다면 그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허점은 오히려 그에게 극도의 망설임을 안겨주고 말았다. 무류흔, 그는 새삼스레 이 이름의 의미를 깨닫는 느낌이었다. 사공은 무심히 뱃전으로 내려섰다. 그는 선미에 말리고 있었던 오징어 생각이 난 것이다. '배가 고프니 그거라도 먹어야겠다……. ' 그는 두 손님이 서로를 마주본 채 팽팽히 대치하고 있는 것도 보았다. 다만 그는 그것이 세상에 보기 드문 험악한 결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뿐이다. 무류흔의 안색이 대변했다. 사공이 지금 그들의 가운데로 들어온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 만약 두 사람의 내공 을 합친 것보다 높은 내공 을 지닌 사람이라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것은 그것이 무쇠든 돌이든 사정없이 부서져 나가고 말 것이다. '말려야 한다!' 목숨보다 먼저 이 생각이 든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공이 막 그들의 사이로 한 발을 들여 놓고……, 무류흔의 몸이 허공을 가른 것은 거의 동시의 일, 찰나의 차이를 두고 죽립인의 허리춤에 매달려 있던 검은 목도가 독사의 혓바닥처럼 쏟아져 나왔다. 쐐애액! 무류흔은 우수로 사공의 몸을 밀었다. 그리고 그는 순식간에 자신의 옷자락을 꿰뚫고 있는 가공할 쾌도를 보았다. 죽립인의 두 눈에 회심의 미소가 스쳐 지났다. 끝났다. 중원제일인 취국의 몸이 꿰뚫리는 순간이었다. 한데 이때, 죽립인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을 보았다. 좌수(左手), 무류흔의 좌수, 돌연 그것이 빛살 같은 속도로 뻗어 나왔다. 손바닥에 떠올라 있던 청, 홍, 백의 광채가 두 눈을 극명하게 쏘아오고 속도가 퉁겨 오르며……. 펑! 펑! 펑! 죽립인은 순식간에 삼장을 얻어맞고 주르르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그는 입으로 벌컥 피를 토하면서도 이것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몰라 망연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것은 무류흔도 마찬가지, 그는 자신의 좌수를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었다. 이 손은 분명히 그의 몸에 매달려 있으면서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멋대로 움직였던 것이다. 문득 그의 얼굴에 한 줄기 씁쓸한 웃음이 피어 올랐다. '마종삼살기(魔宗三殺氣)…….' 마종삼살기! 그렇다. 환우오천마가 그의 몸에 실은 가중한 세 개의 기운, 그 마의 기운들이 무류흔을 죽음에서 살려낸 것이다. 무류흔 참으로 기이한 인간, 그는 마치 영원히 패할 수 없는 사람같았다. 시한부 생명으로 인한 무한한 경력자, 보면 보는 대로 자신의 것으로 응용해 내는 무서운 지혜, 그리고 일신에 익힌 바다보다도 더 깊은 무예. 한 줄기 해풍이 두 사람과 느닷없이 펼쳐진 사공의 옷자락을 휩쓸고 지나갔다. 문득 죽립인의 두 눈에 미미한 정염의 빛이 떠올랐다. 그것은 존경의 빛, 이것이 그가 바로 요 몇 년 내로 처음 떠올린 인간다운 감정이었다. 그리고 말. "류흔, 훌륭하다." 무류흔의 두 눈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 이 사람은 누구기에 자신의 이름을 아는 건가? 죽립인이 천천히 쓰고 있던 죽립을 벗었다. 순간 드러나는 얼굴, 얼키설키 붉고 푸른 반점이 제멋대로 난립한 추악한 얼굴, 무류흔이 외쳤다. "너는 검우(劍雨)?" 검우, 이는 바로 소림 밀교 의 가장 우수한 제자의 하나였던 검우가 아닌가? 검우는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어 왔다. "백일곱을 싸워서 마침내 한 번은 졌다. 너에게 진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무류흔의 얼굴에도 씩 웃음이 번졌다. "나는 이제야 네가 누구인지 알았다, 검우." "누군가?" "무적묵도(無敵墨刀)" 오오…… 묵도, 서장 천축 의 백여 고수를 연패시켜 수업자의 신화를 창조했던 극강의 고수, 서로의 손이 뜨겁게 얽혔다. 사공은 이들이 싸우다 웃는 이유를 몰라 망연히 애궂은 노만 저어 대는데 묵묵히 아득한 수평선을 바라보며 묵도가 말했다. "너와 겨루고자 마음 먹었던 것은 하나의 뜻이 있었다. 류흔." "그게 무엇인가?" " 천축 에서 고수들이 왔다. 과거에 내가 그들의 땅에다 벌였던 짓을 앙갚음하기 위해서 말이야." 무류흔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멋진 일이었어." "아름다운 친구여,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지 마라. 이 대열에는 천축 제일고수 망아대활불(忘我大活佛)과 속가제일인(俗家第一人) 부타의 딸 아나타(娥那陀)도 있었다." "……." "그들은 나를 찾아왔지. 나는 솔직히 겨루어 보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내가 중원제일인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에게 중원의 이름을 먹칠할까봐……." "그래서 나를 찾아왔나?" "그렇네, 친구." 무류흔은 아름답게 웃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나는 싸움꾼이야. 싸움꾼이 싸움을 마다할 리가 없지." "승낙인가?" "지옥끝이라도 달려 가겠네." 무류흔의 손을 잡은 검우의 손에 힘이 주어졌다. "됐어!" "시간은?" "한 달쯤 뒤로……." "장소는?" " 황산 (黃山) 천도봉(天都峯)." "좋아." 검우는 껄껄 웃으며 몸을 휙 뱃전으로 날렸다. "나는 자네가 승낙치 않을까봐 걱정을 많이 했었지." "육지로 가는가?" "암, 지금 자네가 섬으로 들어가는 것은 말리지 않겠네. 그러나 육지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나는 자네가 측간가는 것도 간섭하게 될지 몰라." "왜?" 검우는 파도 위로 번쩍 내려서며 씩 웃었다. "자네는 중원의 보물이니까." * * * "이중산(李中山)? 혹시…… 이소야(李少爺)를 말씀하심인지?" 촌노는 경외에 찬 시선으로 무류흔을 바라보며 말했다. 무류흔은 그의 눈빛에서 한 가지 사실을 느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말하면서조차 그에 대한 존경의 염(念)을 보이게 하니……. 그것은 이 사람이 이소야란 인물을 얼마나 존경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 이어, 오 인의 입으로부터 흘러 나온 이소야의 내력은 그가 천애검군 이중신 임이 틀림없다는 확신을 갖게 하였다. 그의 나이와 섬에 들어온 시간 등은 여타 상황과 부합되었으므로……. "그는 지금 어디에 있소?" 촌로는 돌연 고개를 푹 떨구며 주르르 눈물을 흘렸다. "그분은 신인(神人)이시오……. 아아…… 이 섬은 그분의 은혜를 백골이 진토되어도 갚지 못하려니……, 따라 오시구려……. 안내해 드리리다……." 파도가 휘몰아친다. 철썩…… 쏴아……. 해변, 이 섬은 가운데를 거대한 산이 하나 가로 막고 있었다. 섬의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려 해도 바다로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바다에는 산의 유흔이 무수한 암초들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산을 넘는 것은 더 힘들었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와 맹수, 폭풍들이 득실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섬의 동쪽마을과 서쪽마을은 늘상 분규가 끊이지 않았다. 어쩌다 바다 가운데서 만나도 그들은 서로 원수처럼 으르렁거리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쌍의 부부가 이 섬에 나타났다. 남녀 모두 하늘에서 내려온 천인천녀인 양 아름다운 두 사람…… . 이씨 성의 사내는 늘 우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아름다운 부인은 그런 그의 곁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며 보살펴주었다. 그 어느 하루, 이씨 사내는 우연히 마을 노인들이 탄식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동쪽 하늘과 같이 사이좋게 고기를 잡게 된다면 우리는 두 배의 수확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으리라. 그날 밤, 이씨 성의 사내 이소야는 밤새도록 섬을 동서로 가르고 있는 운산을 바라보고 있있다. 그의 얼굴에 모종의 결심이 떠오른 것은 아침 여명이 아득히 떠올 때였다. "내 영혼이 지은 죄를 속죄하라는 뜻……, 나는 이 산을 뚫어 두 마을을 화해시키리라." 그 아무도 믿지 않았다. 누구도 곧이 듣지 않았다. 그러나 이소야는 그날부터 그 일에 미친 듯이 몰두하기 시작했다. 바람이 불고 있었다. 촌로는 무류흔을 힐끗 바라보고 난 후 한쪽을 가리켰다. 촌로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 산을 반쯤 동강낸 듯 기이한 길의 끝에 한 사람이 있었다. 한데 사람? 글쎄 그것도 몰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오…… 실로 참혹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얼굴에 온통 구레나룻이 잔뜩 덮여 있었다. 몸은 앉은 자세였는데 그 자리는 기이하게도 쪼글쪼글 말라붙어 있었으며……, 옆구리엔 앙상한 갈비뼈가 툭툭 불거져 나와 있었다. 이 기형인의 몸 중에서 유일하게 사람다운 곳은 두 손과 두 눈 뿐이었다. 두 눈, 정면의 바위를 향하고 있는 두 눈은 무쇠라도 녹일 듯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손은 붉게 달아오른 채 정면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 바짝 밀착되어 있었다. 치지직……. 바위와 손이 맞닿은 곳에선 쉴새없이 푸른 연기와 기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지금 본신의 진기 로 바위를 부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길, 아니 산을 뚫기 위해서……. 무류흔의 두 눈에 기광이 스쳐 지났다. '산을 반이나 파들어 갔다. 인간이 산을…… 진기 로 바위를 깨뜨리는 저 무모한 짓으로 거대한 자연과 싸우고 있다……. 그의 다리는 무리한 진기 운용으로 주화입마 (走火入魔)가 된 것이다. 오오…… 신이여…….' 사내는 멀리서 두 사람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알았다 해도 그는 시선을 돌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의 영혼을 뺏고 있는 것은…… 대화합(大和合)의 숭고한 의지와……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뿐이었다. "이 부인께선 매일 아침 이소야를 업고 저곳에 데려다 주신 뒤 다시 저녁 때 업고 내려 가시지요……. 이소야가 건강한 모습이었을 땐 두 분은 천생배필이셨소……." 촌부(村婦), 아니 촌부라기엔 지나치도록 아름다운…… 두 눈매가 유난히 고운 미녀는 무심히 빨래를 하고 있다가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그림자에 놀라 화들짝 시선을 들었다. 무류흔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물을 한 대접 주시겠소. 부인?" 여인은 동그랗게 뜬 눈으로 이 긴 장발의 사내를 바라보다가, 문득 얼굴을 가볍게 붉히며 주방으로 들어가 물을 떠왔다. 대접에다 한 잎의 버들잎을 띄움은 나그네가 급히 마시다 체할까봐 불어 마시라는 무언의 얘기, 무류흔은 물을 마시며 여인의 뒤에 있는 한 채의 목옥을 가볍게 살펴보았다. 집, 정갈하고 깨끗했다. 울타리는 옥지화로 둘려 있고 마당에는 정성들인 흔적이 역력한 예쁜 정원, 정원의 옆에는 약간의 채소가 가꾸어진 작은 밭이 있고…… 마당은 자갈로 곱게 덮여 있으니……. 그렇다. 이 여자는 현숙하고 정숙했다. 이런 여자와 있는 남자는 누구든 행복할 것이다. 무류흔은 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 사발을 건네 주었다. "뉘신지…… 좋은 부인을 두셨소……." 그는 조용히 몸을 돌렸다. 하늘은 눈부시도록 맑고 깨끗했다. 무류흔은 자신이 잘못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곳엔 삼십삼겁도 살수 도,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가장 남자다운 의인과…… 그 의인에 어울리는 아내가 있을 뿐이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며 툴툴 웃었다. 그는 웃으며 천애검군 이중산의 이름이 쓰인 쪽지를 찢었다. "한 사람의 악인을 죽여 백 사람의 선인을 구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한 사람의 영을 구해 백 사람을 구하게 하는 것은 더 좋다……. 헛허…… 이 도리는 너무 어렵구나……." 그날 밤, 한 척의 배가 조용히 섬을 떠나 갔으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난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떠야만 했다. 산, 이 거대한 바위 산이 통째로 잘려 있었던 것이다. 제 25 장 대음모(大陰謀) ----------------------- 소문(所聞)! 그것은 두 개의 엄청난 소문이었다. 혈교(血敎), 하나의 신흥방파(新興幇派), 한데 이 혈교는 나타나자마자 모든 이들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었다. 소속인원 십만, 일주이공삼전사당구단이십팔문(一主二公三殿四堂九檀二十八門)으로 나누어지는 이 엄청난 조직은 그 휘하에 놀랍게도 마계(魔界) 서열 백팔위(百八位) 안에 드는 거물급 마두들은 모조리 거느리고 있었다. 뿐인가? 이들의 수뇌부인 일주이공삼전(一主二公三殿)의 전체가 밝혀지는 순간, 사람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실신할 뻔했다. 일주(一主), 마중지황(魔中之皇) 화옥(華玉). 이공(二公), 천강공(天剛公) 본초(本草), 수라혈녀(修羅血女) 유혜(劉惠). 삼전(三殿), 잔인극마(殘忍極魔) 무비(無臂), 혈수독마(血手毒魔) 공족(空足), 맹황(盲皇) 천맹(天盲). 오오…… 일주이공삼전! 이들은 바로 삼십삼겁, 그 중에서도 가장 잔인하고 독랄했으며 무자비했던 육 인을 일컫는 것이 아닌가? 이들이 한데 모여…… 그것도 백팔위의 대마두들을 거느리고 나타날 줄이야! 십만 마방(魔幇)의 소용돌이! 그것은 엄청난 피의 폭풍우였다. 마중지황 화옥이 부르짖은 한마디는 천하를 얼음구덩이로 만들어 버렸다. --천년무림사, 진정으로 마의 대통을 이어받은 나 마중지왕은 고하노라! 금후 일 년을 마의 정토 (淨土) 기한으로 삼노니…… 이에 응하는 자 삶을 얻고, 응치 않는 자 무자비한 살육의 제물이 되리라! 피의 예감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혈교가 최고로 붕기한 사천 (四川) 땅에선 아예 일찌감치 중원으로 이주하는 자도 생겨났다. 화옥! 그는 드디어 껍질을 벗고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두 번째 소문. 천축 --, 이 신비지역으로부터 다섯 명의 고수가 도전해 왔다 했다. 그 시각은 七月 三十日, 장소는 황산 (黃山) 천도봉(天都峯), 천축 고수들의 내역을 보면, 천축 제일고수이자 새외 제일승(塞外第一僧)인 망아대활불(忘我大活佛), 서역 속사제일인(西域俗家第一人)인 뇌공(雷公) 부타(部陀)의 딸, 천축 지옥(天竺之玉) 아나타(娥那陀), 망아대활불의 세 제자 수미존자(須彌尊者), 미륵존자(彌勒尊者), 가탑존자(袈塔尊者). 이들이 최초로 도전한 사람은 귀역오가의 철제도, 혈교의 화옥도 아니었다. 그들에게 철천지 한을 심어준 묵도도 아니요, 그들은 바로 불사취국(不死翠菊)을 지목했다. --이 천하에…… 우리의 진정한 적수는 오직 그 하나뿐이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를 확인하겠다는 듯, 온천하에 일천 개의 팻말을 박고 천하무림인들을 천도봉으로 초빙하는 서찰을 보냈다. 아아…… 풍운천하(風雲天下), 어찌될 것인가? 삼십삼겁에 이은 또 한차례의 혈풍이 무림을 휩쓸 것인가? 모든 사람들의 무기력한 시선은…… 그들이 추종하는 유일한 선의 신, 취국을 향했다. 취국, 취국이여……! 이 악의 신들을 어찌 하오리까? * * * 철제, 차갑고 냉혹한 이 철의 화신은 조용히 한 마리의 흰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귀역오가의 제이인자인 표향귀혼(飄香鬼魂) 구양인이 묵묵히 부복하고 있었다. 질식할 듯한 침묵…… 돌연, 철제의 주먹이 가볍게 쳐들렸다. 그 주먹은 무자비하게 품에 안겨 있던 고양이를 내리쳤다. 퍽---! 야옹----! 피가 튀고…… 흰 털에 그 피가 점점이 스며드는 것을 바라보며…… 철제는 무심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때가 되었다……. 공존의 시대는 끝났다……, 구양!" "하명 기다리오!" "전가(全家)의 고수들을 모조리 동원시킨다. 특명제일호……." "……." 무쇠 같은 외침! "취국 척살(擲殺)!" "존명!" 구양인이 밖으로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며 철제는 가면 같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취국이 죽고 그의 역할을 내가 대신한다……. 천축 의 쥐새끼들에 이어……, 배신자 화옥까지 짓밟고 나면 모든 승부는 끝이다." 그날 밤, 천하의 오대지역으로부터 다섯 대(隊)의 엄청난 행렬이 조용히 떠나기 시작했다. 귀주 (貴州) 금정산(金頂山), 천전강(天錢江), 금색 각기의 금병마(金甁馬)에 홍색수실의 금색 장창 을 꼰아쥔 살수 들. 그 수는 일천. 사천 (四川) 공래산, 무루(武樓), 백색무복에 백색피풍(白色被風)…… 푸른 수실의 백옥검(白玉劍)을 쥔 구 백의 살수 . 동해 (東海) 숭명도 (崇明島),반의담(反義潭)…… 검은 외투에 검은 장갑을 끼고 목금처럼 어두운 묵궁(墨弓)을 든 일천의 살수 . 안휘 (安徽) 소호 (巢湖), 색해(色海)…… 핏빛 혈의에 핏빛 단화(端靴), 혈홍쌍검(血紅雙劍)을 양어깨에 나누어 맨 일천의 미녀 살수 들……. 산동 (山東) 태산 (泰山), 걸곡(乞谷)…… 회색 폐포(弊袍)에 회색 폐낭을 아홉 개씩 둘러매고……, 아홉 가닥으로 끊긴 구절편(九節鞭)을 허리에 두른 걸인 살수 들……. 귀역오가! 한 명만 가지고도 일류고수 하나를 능히 척살해 낼 수 있는 희대의 살수 들, 그러나 무려 오천이나…… 이들은 죽음처럼 은밀하게 한 사람을 척살 추적하기 시작했다. * * * "때는 이때다……, 아주 좋아." 화옥은 호피 태사의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었다. 붉은 곤옥으로 만든 둥근 원형의 옥탁, 옥탁의 저편에는 입 큰 사내 본초가 앉아 있었고……, 옥탁 위에는 지금 산하를 축소시켜 놓은 모형이 자리하고 있었다. 화옥은 긴 지휘봉으로 그 중 한 개의 산을 짚으며 말했다. "내가 보기에 무류흔이 이곳 황산 으로 출발하는 시각은 결전을 사흘 앞둔…… 즉 七月 二十七日이 될 것이다." 지휘봉은 다시 황산 아래의 벌판을 향했다. "이 중원평(中原坪)에 도착하는 시각은 七月 二十九日, 바로 이곳에서 그를 죽이는 거다." 본초가 심각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불사방(不邪幇)의 친구들은 건들기 힘든데……." "허허…… 이 친구, 아직도 무류흔의 성격을 모르나? 그는 필시 먼저 출발한다. 그의 수하들은 은밀히 따라오게 될 거야. 우리가 무류흔을 가로막은 후 뒤에 오는 그들은 다른 길로해서 황산 으로 보내면 돼." " 황산 으로?" " 서역 의 망령든 노인네와 먼저 싸움을 붙여놓는 거지. 불사방의 유능한 수하들은 그를 골탕 꽤나 먹이게 될 거다." "연후, 우리가 공(功)을 가로채는군." "이제야 머리가 도는군. 본초, 요즘 너 둔해졌어." 화옥이 의미심장하게 노려보자 본초는 히죽 웃었다. "그렇게 됐군……." "뿐만 아니라 이번 기회에 아예 철가 늙은이까지 소탕해 버리는 거야." 본초의 시선이 번쩍 빛을 발했다. "그럴 수 있나?" "물론, 이 늙은이는 조급해서 이미 오천 명의 밑천을 싹 덜고 있다. 중원평으로 유린해 들이면 돼……." 지휘봉이 다시 중원평을 가리켰다. 그것은 평야의 양쪽에 늘어선 절벽을 툭툭 두드렸다. "바로 이것이지. 수하들을 풀어서 무류흔의 뒤를 쫓고 있는 그들을 이리 유인한 후에 터뜨려 버리는 거야." "화약?" 화옥은 사악하게 웃었다. "운이 좋으면 오천 명이 바위에 깔리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몰라……." 본초는 소름이 오싹 끼치는 것을 느꼈다. 화옥, 한다면 하는 위인이다. 그는 정말 오천 명을 바위 아래 암장시키고도 남을 위인이었다. "좋은 계획이군……." "물론 세상의 바보들은 나, 화옥 좋은 일만 시켜주고 있는 거야……." 이때다. "까르르……." 돌연, 섬뜩한 요소가 대전의 안에 가득 울려퍼졌다. 순간 화옥과 본초의 안색이 싹 변했다. 대전, 그들이 있는 이곳은 혈교 내에서도 가장 구중심처였다. 이곳까지 오자면 일흔 일곱의 기관 과 매복, 그리고 오천의 수교무사(守敎武士)들의 눈을 속여야만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