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64편 (64/79)
"수랑(秀郞), 당신은 여인의 감정을 너무도 모르시군요." 그녀는 곱게 눈까지 흘겼다.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고 그 누가 과거 천마교의 수만 고수들을 지휘하던 천마교 군사 천봉 단희 진을 연상할 수 있겠는가? 남궁수는 그녀의 모습에 고소를 지었다. "희진, 대단히 미안하오만 내가 배운 책에는 여인에 대해 수록된 것이 없었소." 단희진은 앙증맞은 손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아이…… 얄밉게 둘러대긴……." 그러나 그녀의 손짓은 무의미했다. 그녀는 달려가던 속도 그대로 남궁수의 목을 감싸안았다. "허어…… 희진, 이러다가는 내가 쓰러지고 말겠소." 남궁수는 짐짓 힘들다는 듯 엄살을 부렸다. 그러자 단희진은 다시 한 번 곱게 눈을 흘겼다. "아이! 정말 끝까지 이러실 거예요?" 그녀의 모습이 너무도 귀여워 남궁수는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허허허…… 희진……." 두 사람은 한동안 그윽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이대로 영원히 시간 이 멈추기를 바라는 건 서로가 마찬가지였다. 문득 단희진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지금 무엇을 쓰고 계시나요?" 남궁수는 빙그레 미소를 보였다. "나 남궁수의 모든 것에 대해 쓰고 있는 중이요." "수랑의 모든 것이요?" 남궁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나의 과거, 나만의 비밀, 나의 사랑까지도……." 순간 단희진의 한 쌍 봉목에 짙은 의혹이 스쳤다, 그러나 그녀는 현명한 여인. 그녀는 곧 남궁수의 진의를 파악할 수 있었다. '수랑…… 당신은…….' 마음이 억만겹으로 찢어지는 것 같았다. 불현듯 눈물이 치솟아 올 랐다. 그러나 그녀는 참아내야 했다. 자신마저 슬픈 미래만을 연상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수랑, 당신은 정말…… 정말…… 흐흑!" 그러나 더 이상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수랑……." 아렸다. "힘들겠습니다. 아마도……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자 금소천의 안색은 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그, 그럴 리가……." 단희진도 애써 참고 있던 진한 오열을 터뜨렸다. "흐흐흑……!" 그때였다. 죽은 듯 누워 있던 남궁수의 입에서 희미한 신음성이 새었다. 그는 힘겹게 두 눈을 떠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은 누구보다 먼저 창백하게 굳어 있는 금소천에게 향했 다. "대…… 대형……." 오직 그에게는 대형 금소천뿐이었다. 금소천은 황급히 남궁수의 손을 잡았다. "셋째, 나 여기 있다." 남궁수는 미미하게 눈살을 찌푸렸다. "대형…… 손이 차갑습니다." 금소천은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셋째, 네 손이 뜨거운 탓이다." 남궁수는 메마른 입술에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대형…… 그런 표정 짓지 마십시요. 소제는 대형의 슬픈 얼굴을 도저히…… 보지 못합니다." "셋째……." 금소천은 목이 메는지 제대로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대형. 인간이란 언제나 마지막으로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그 것은 소제 역시 마찬가지이고…… 단지 그것이 얼마나 빠르고 늦고가 …… 문제일 뿐입니다," 순간 지켜보던 관천패가 버럭 대갈성을 터뜨렸다. "이 빌어먹을 셋째야! 그 무슨 헛소리냐? 이 관천패가 네 마지막 길을 허락할 것 같으냐?" 그의 대갈성은 차라리 피를 토하는 통곡이었다. "다, 당장 네놈을 흠씬하게 두들겨 주겠다. 이 바보 같은 놈아… …." 눈물이 솟았다. 천하의 관천패가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남궁수는 희미한 미소를 보였다. "둘째 형님…… 형님은…… 그래서 이 남궁수의…… 너무도 좋은 형님입니다." 급기야 관천패의 눈물은 대성통곡으로 변하고 말았다. "으허엉…… 바보 같은 놈! 내가 네놈의 동생을 할 테니 제발…… 훌훌 털고 일어나라…… 셋째야…… 엉엉……." 관천패의 뜨거운 울음에 중인들은 모두들 따라 눈물을 흘렸다. 금소천. 그의 안색은 차리리 남궁수보다 더 창백하게 변했다. "남궁 셋째…… 몸이 좀 어떠느냐?" "대형……." 남궁수는 금소천의 창백한 신색을 살피며 말했다. "대형…… 소제 걱정은 마십시오." 이어 그는 신기수사 백리호와 와룡선생 하후주에게 차례로 시선을 주었다. "하후당주, 백리당주…… 뒷일을 부탁하오." "군사……." 하후주와 백리호는 눈물을 글썽이며 남궁수를 바라보았다. 남궁수는 그들을 깊숙이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가거들랑, 마지막으로 남겨둔 두루마리…… 그것을 읽고 그 대로 실행에 옮겨 주시오." 남궁수는 자신의 서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는 그가 사흘 동안 작성한 두루마리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 다. "군사--!" 백리호와 하후주는 비통한 외침을 터뜨렸다. 순간 금소천은 나직하게 외쳤다. "안돼--!" 그는 침상 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그는 희미한 신광을 발하며 다짐하듯 물었다. "분명…… 당신이 해낼 수 있겠소?" 만독노조 영호독은 음산한 괴소를 터뜨렸다. "흐흐…… 노부의 독술은 천하무쌍(天下無雙)이오. 또한…… 흐흐 …… 천하인들은 모르고 있지만 노부의 의술 또한…… 감히 천하제일 이라 할 수 있소." "으음……." 금소천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성을 발했다. 영호독의 자신감에 찬 음성이 다시 한 번 터져 나왔다. "이틀…… 단 이틀이면 남궁수는 소생시킬 수 있소." 금소천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영호독, 본인이 원하는 것은 남궁수의 상세를 치료해줌은 물론, 완전히 타인과 진배 없는 건강을 얻게 하는 것이오." 만독노조 영호독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장담했다. "그야 물론이오." 이어 그는 안색을 엄중히 하여 모종의 다짐을 받고자 했다. "대신…… 그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하오." 금소천은 신광을 번쩍이며 대답했다. "염려 마시오. 내 비록 군자는 아니나, 사내 대장부임에는 틀림없 소." 금소천은 굳은 음성으로 자신의 말을 확신했다. 그러나 만독노조 영호독은 다시 한 번 다짐을 받고자 했다. "그래도……." 순간 금소천은 은은한 노기를 보이며 냉갈을 터뜨렸다. "영호독! 당신이 믿을 수 없다면 약속을 취소해도 좋소." 그러자 만독노조 영호독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그는 한동안 갈등을 하며 망설였다. '일이 끝난 후에 이 자가 발뺌을 해도 나는 아무런 대책이 없다. 잘해야 원수를 갚기 위해 이 자를 죽이는 것일 테지. 그러한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과연 나는…….' 그의 이마에 패인 주름살이 더욱 깊어졌다. 그러나 그도 명색이 십대천왕 중의 일인이었다. 그는 크게 고개를 덕이며 소리쳤다. "좋소! 결정했소! 오늘 밤 남궁수를 치료해 주겠소." 합의는 이렇게 맺어졌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서로 다른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한 의지만은 똑같이 뜨거운 불 길을 내뿜고 있었다. 과연 만독노조 영호독은 남궁수의 병세를 치료하고 건강까지 회복 시킬 수 있을 것인가? 49장 남궁수를 치료하다 밤. 밤이 찾아들었다. 천기서생 남궁수. 그는 죽음보다 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그가 누운 침상 주위에는 만금성의 주요 고수들이 남궁수를 지켜보 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바로 마군자 금소천이었다. 그는 밤이 들면서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만금성 고수들은 혼절해 있는 남궁수를 안타깝게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남궁수의 확정된 죽음을 지켜보고 있다는 게 더 옳은 표현이었 다. 그때였다. 돌연 괴변이 일었다. "으음……!" "아……!" 나직한 신음성이 일며 천도왕 여풍 등을 위시한 뭇 고수들이 돌연 깊은 혼절 속에 빠지고 말았다. 실로 혼백이 나갈 정도로 놀라운 일 이 아닐 수 없었다. 스스스슷--! 고수들이 혼절한 순간 소리 없이 한 괴영이 남궁수 침상 앞에 유령 같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는 바로 만독노조 영호독이었다. "흐흐…… 역시 정확하군. 노부의 미혼약은 염라대왕조차 잠재울 수 있지……!" 그는 혼절한 고수들을 돌아보며 득의의 괴소를 흘렸다. 그의 말은 방금 일어난 실내의 기경을 설명해 주었다. 천도왕 여풍 등은 바로 만독노조 영호독의 미혼약에 의될 수 있지." 영호독은 이어 품속에서 몇 개의 옥병을 꺼내 들었다. "먼저…… 남궁수를 독인으로 만들어 전신 혈맥과 기를 완전히 바 꾸어 버려야 한다," 남궁수를 완전히 독인으로 만들겠다! 그는 도저히 일반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치료법을 시전하려는 것 같았다. 영호독. 그는 자신이 말한 대로 치료를 하기 시작했다. 먼저 그는 무려 수십 가지의 천하지맹독(天下之猛毒)을 남궁수에게 복용시켰다. 흡사 맹물을 먹이듯 조금도 주저가 없었다. 남궁수는 꼼짝없이 혼절 속에서 독인으로 변하고 말았다. 전신 피부가 완전히 시커옇게 변하고, 심지어 치아까지 흑색으로 변했다. 끄르륵…… 끄르륵…… 끄륵. 그의 내부에서는 쉬지 않고 괴이한 음향이 일었다. 우두둑…… 우둑. 전신 뻣골이 멋대로 뒤틀리며 남궁수의 전신이 흡사 악귀의 소름끼 치는 형상을 이루었다. 이런 지독한 변화는 약 한 시진 동안 계속되 었다. "그나마 기식을 잃어 고통이각도 느끼지 못하는 게 다행인 줄 알아 야 할 것이다." 영호독은 수중에 족히 백수십 개는 되어 보이는 금침을 집어들었 다. "남궁수…… 그대는 진정 훌륭한 의형을 두었다." 남궁수는 온통 전신이 시커옇게 변한 채, 이미 죽은 듯 누워있었 다. 영호독은 정색을 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제…… 그대는 그대 의형으로 인해 진정한 생을 얻게 될것이니 말이다." 다음 순간 영호독의 수중에서 금침들이 기쾌하게 발출되었다. 파파파파팟! 금침들은 정확하게 남궁수의 전신 전면 혈도에 깊숙이 박혔다. 금침들 반 정도가 모두 박혀들자 영호독은 번개 같은 수법으로 남 궁수의 전신을 뒤집었다. 파파파팟팟……. 영호독은 남궁수의 후면 혈도에 역시 빈틈없이 금침을 꽂았다. 이윽고 옥함 속 금침이 완전히 바닥났다. 영호독의 이마에는 송글송글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자…… 이번에는 세독술(洗毒術)이다.' 영호독은 쌍장을 들어 남궁수의 등뒤 명문혈(命門穴)에 밀착시켰 다. 이어 전신 모든 내력을 주입시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영호독의 전신과 남궁수의 전신에서 시커먼 독무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독무는 급기야 완전히 그들의 모습을 가려 버렸다. 그런 상태로 덧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창 밖으로 아주 조금씩 새벽이 찾아오고 있었다. 영호독과 남궁수를 가리고 있던 짙은 독무가 엷어졌다. 휘리리릭! 독무는 모두 영호독의 콧속으로 회수되었다. 그제야 영호독은 남궁수의 명문혈에서 쌍장을 예었다. 동시에 남궁 수의 전신에 박혔던 금침들이 저절로 빠져 나왔다. 빠져 나온 금침은 이제 더 이상 금침이 아니었다. 전신이 온통 시커옇게 변한 독침. 바로 그것이었다. "서…… 성공이다!" 영호독은 나직한 희열의 외침을 터뜨렸다. 그의 안색은 지금 극도로 창백해져 있었다. 어려운 치료를 하느라 내공과 심기가 엄청난 손실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표정만은 넘치는 희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남궁수. 변화를 한 것은 그도 마찬가지였다.이 순간의 그의 모습은 완전히 변화를 보이고 있었다. 우선 전신의 모든 독기가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다음으로 불규칙적이던 호흄이 매우 편안한 가운데 규칙적으로 일 고 있었다. "흐흐흐…… 독인으로 만들어 전신 혈맥과 근골을 모두 바꾼 뒤, 그 독을 제거했으니…… 남궁수! 그대는 이제 새롭게 탄생한 것이 다." 영호독은 만족한 시선으로 남궁수를 지켜보았다. "남궁수. 그대는 내가 의술로 살린 첫번째 인물이다." 표현 못할 감개가 그의 음성에 진하게 내포되어 있었다. 비록 무시무시한 독중지왕이지만, 한 생명을 새롭게 탄생시킨 엄숙 한 감격을 느끼고 있는 것일까? 영호독은 천천히 신형을 일으키며 옥함과 금침을 갈무리했다. "그리고 나의 사랑하는 딸 운령…… 너도 이제 남궁수와 같이 새로 운 생명을 얻게 되겠지." 영호독. 그는 새벽이 터 오는 만금성을 비틀거리며 소리 없이 떠났다. 그리고 급속도로 새벽이 시작되었다, 아침. 천도왕 여풍 등은 원인 모를 잠에서 길게 기지개를 켜며 깨어났다. "아함…… 이게 뭐야?" "내가 왜 여기서 잠이 든 거지?" 그들은 어리둥절해 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순간 그들은 일제히 환성을 터뜨렸다. "와아--!" 이유는 너무도 간단했다. 천봉 단희진이 하늘에까지 닿을 목소리로 소리를 쳤다. "수랑--!" 그녀는 나비처럼 신형을 날렸다. 천기서생 남궁수. 바로 그가 몸을 자리에서 털며 일어난 것이었다. 그는 결코 죽지 않았다. 천봉 단희진 등은 그의 임종을 지키다가 이제 새롭게 탄생한 천기 서생 남궁수를 맞은 것이다. 게다가 남궁수는 완전한 기력까지 회복한 상태였다. 그의 안색은 더 이상 창백하지 않았고 붉은 혈색이 감돌았다. 정신 또한 더욱 맑아져 천외천(天外天)의 싱득(心得)을 헤아릴 정 도였다. 천기서생 남궁수는 이렇게 새로운 탄생의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이다. "허어…… 이게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이보게, 군사. 몸은 괜찮은 컨가?" 중인들이 분분히 남궁수 곁으로 다가왔다. "아, 예…… 저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만……." 그는 자신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문득 그의 얼굴 표정에 다급한 기색이 그려졌다. "대형은……?" 순간 중인들은 그제야 금소천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러나 금소천의 모습은 그 어디에고 없었다. "그, 글쎄…… 어젯밤부터 통 보이시지를 않던데……." 누군가가 곤란한 음성으로 말했다. 중인들이 금소천을 떠올렸을 때. 두 명의 인물이 황망한 신색으로 나타났다. 바로 지옥혈도 궁사와 일지겁천 구유명이었다. 그들의 안색은 몹시 창백하게 질려 있었으나 그들 역시 남궁수의 완쾌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보다 더 다급한 일이 있는지 전신에 미미한 경련까지 일으 키고 있었다. "궁노사…… 구노인……." 남궁수는 그들의 모습에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불길한 예감을 느 꼈다. 궁사는 천천히 남궁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었이 한 통의 서 찰을 그에게 내밀었다. <남궁셋째. 너의 건강 회복을 축하한다. 내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시간이 없구나.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 만독노조 영호독과 함께 떠난다. 보름 후면 돌아올 것이다. 그 동안 셋째 네가 성의 일을 잘 처리해 주리라 믿는다, 보름 후 건강한 너의 모습을 대하게 되겠지. 대형 금소천 서(書).> 파르르……. 서찰을 든 남궁수의 손끝이 무섭게 떨렸다. '만독노조와 함께? 그렇다면…… 내가 일어선 것은 바로 만독노조 가…….' 천하제일뇌인 남궁수인지라 찰나지간에 모든 경과를 짐작할 수 있 었다. -- 남궁셋째. 너의 죽음은 내가 막는다. -- 내가 너를 살리겠다. 금소천이 했던 말들이 남궁수의 전신을 벼락치듯 덮쳤다. "대형--!" 남궁수는 심장이 터지는 듯한 격동의 외침을 터뜨겼다 "이, 이런 바보 같은 대형……." 목이 메어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금소천의 배려에 뜨거운 오열을 금치 못했다. 그제야 중인들은 모든 일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궁수의 새로운 탄생! 그것은 하늘의 도움이 아니고 금소천의 안배였음을……. 목숨과도 같은 피를 담보로 남궁수가 살아났음을……. 그들은 거센 격동 속에서 금소천의 뜨거운 정을 실감했다. 잠시 후 궁사는 격동하고 있는 남궁수를 향해 번쩍이는 시선을 주 었다. "남궁군사. 나와 구노인은 지금 떠나겠네." 뿌드득! 그는 무섭게 이를 갈아붙였다. "영호독! 만일 그놈이 금성주에게 단 한 점의 해라도 끼쳤다면…… 놈을 천참만륙(千斬萬戮)시키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는 신형을 돌려 세웠다. "갑시다, 구노인!" 일지겁천 구유명도 이글거리는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분기탱천한 태풍이 되어 만금성을 빠져 나갔다, 드디어 두 명 천왕이 분노한 것이다. 일의 파급은 그뿐만이 아니었 다. 방 밖에서 문득 한 소리 음침한 외침이 터졌다. "본좌 역시 본교의 고수들을 동원하여 영호독을 추적하겠소." 천마황 단금성이었다. 천왕 단금성까지 소맷자락을 걷어붙인 것이었다. 만금성의 인물들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적웅한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다. 그저 묵묵히 전신만 경련시킬 뿐이었 다. 무어라 대답할 수 있겠는가? 냉한빙은 자신의 형수이자. 만삭의 임 산부가 아니던가? 문득 그녀는 남궁수가 움켜쥐고 있는 서찰을 발견했다. 그녀는 남궁수에게서 뺏다시피 했다. "혀, 형수…… 그것은……." 그러나 냉한빙의 태도는 너무도 완강했다. "남궁군사가 나를 정말 형수로 생각한다면…… 더 이상 나를 만류 하지 마세요." 남궁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서찰을 읽어가는 그녀의 표정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개뎬. "호호호호……." 울음인지 웃음인지 모를 괴음이 그녀의 입을 떠났다. 전일 대설산 설궁에서 금소천을 찾으러 강호를 떠날 때처럼, 그녀 의 마음에는 온통 이글거리는 복수심뿐이었다. 금소천의 희생으로 인한 남궁수의 회생! 드디어 일은 벌어졌다. 과연 이 일은 어떤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될 것인가? * * * 모옥. 조금만 세찬 바람이 불어도 허공으로 날아가 버릴 것 같은 낡은 모 옥이었다. 방안에 두 인물이 마주 대좌하고 있었다. 바로 마군자 금소천과 만독노조 영호독이었다. 방안 한켠에는 침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침상 위에는 병색이 완연한 이십 이삼 세 가량의 한 여인이 누북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여인. 월궁의 항아가 무색해 할 천하절색의 절륜미녀였다. 그녀가 바로 만독노조 영호독의 다른 한 목숨이나 진배없는 그의 금지옥엽 무남독녀 영호운령이었다. 만독노조 영호독은 엄중한 신색으로 금소천에게 말했다. "금성주. 이번 일에 신의를 지켜주어서, 노부 무어라 감사해야 할 지 모르겠소." 진정으로 그는 감사하고 있었다. 확연하게 달라진 말투가 그것을 증명했다. 금소천은 담담한 신색으로 답례했다. "당신이 남궁셋째를 살려주었으니 본인 또한 당연히 약속을 지켜야 하지 않겠소?" 일순 만독노조 영호독은 꼬집어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격을 받았 다. 그는 설마 금소천이 이처럼 손쉽게 스스로의 희생을 각오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인간이란 누구나 자신의 소유물에 집착을 가지는 법이 아닌가? 더 구나 금소천은 모든 것을 소유한 당금 천하의 몇 안되는 인물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한 모든 것을 버리기란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한 것이다. 영호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노부가 칠십 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금성주 같은 분은 처음이오. 금성주야말로 진정한 천인군자(天人君子)외다." 만독노조 영호독은 지금에 이르러 진정한 금소천의 위대함을 깨달 은 것 같았다. 그의 말과 표정에는 단 한 점의 가식도 엿보이지 않았다. 금소천은 담담한 신색으로 회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문득 만독노조 영호독은 시선을 침상의 영호운령에게 주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영호독의 두 눈에는 부정이 충만한 자애로운 빛이 넘쳤다. "노부는 젊어서부터 독에만 빠져 있었소. 가정? 흐으…… 나는 독 에 미친지라 결코 자상한 가장이 될 수 없었소." 그의 표정은 결코 만독의 조종이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아비요, 자상한 부친일 뿐이었다. "노부의 아내는 독에 미친 가장과 더불어 사느라…… 오직 불행한 일생을 살 수밖에 없었소이다." 영호독의 노안에 뿌연 안개가 서렸다. "아내는 결국 나를 원망하며 죽었고…… 그때 남긴 핏덩이가 바로 저 아이…… 운령이오." 본능적으로 금소천의 시선이 영호운령을 향했다. 잠들어 있는 그녀 의 모습은 창백했지만, 더없이 아름다웠다. "노부는 아내가 죽은 후에야 후회를 했으나…… 이미 때는 늦은 것 이 아니겠소?" 영호독은 가볍게 떨리는 손으로 딸 영호운령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떨리는 그의 손끝은 지난 가슴 아픈 세월을 대변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태어나서부터 한 번도 남들같이 뛰어놀지 못했소. 항시 병마에 시달렸던 것이오." 그의 노안에 서린 뿌연 안개가 축축한 물기로 맺혔다. "비록 천하제일의 의술을 지녔으나 딸 아이 병 하나 고치질 못하니 …… 나는 차라리 내가 지닌 의술이 원망스러웠다오." 하늘은 그에게 천하제일의 의술을 주었다. 그러나 하늘은 그 딸에게 천하불치의 병을 주었다. 영호독은 결코 하늘을 원망치는 않았다. 그저 자신, 자신만을 원망 하고 있을 뿐이었다. 문득 영호독은 신형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금소천 앞에 털썩 무릎 을 끓었다. "금성주! 노부를 이기적이라 해도 좋소." 금소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영호노인……." 그는 다급하게 영호독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영호독은 손을 내저어 오히려 그를 만류했다. "일이 끝난 후, 금성주께서 노부를 죽인다 해도 노부는 할 말이 없 소이다." 주르르……. 눈물이 얼굴의 주름살을 타고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