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52편 (52/79)
콰콰쾅! 꽈르르르--! 천지가 일시에 박살이 나 버리는 엄청난 폭음이 터졌다. 주위 수십 장은 천지종말의 진통 속에 몸부림을 쳤다. 천지가 부서 져나간 먼지의 회오리로 가려졌다. 그 엄청난 결과에도 궁사와 사대마신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저 없이 천지를 더욱 격렬하게 부수어 들고 있었다. "혈망탈(血芒奪)--!" 눈부신 도광이 벼락으로 내리 쩍혔다. 궁사의 신형은 이미 육안으로 분간하지 못할 빠르기로 움직이고 있 었다. "으하하핫!" 대소와 함께 궁사의 신형이 진저리치고 있는 허공으로 퉁겨졌다. 이어 지옥참마도를 곤결(坤訣)을 향해 무섭게 내뻗쳤다. "천심도(穿心道)--!" 궁사의 전신은 한 가닥 무시무시한 도광이 되어 사대마신을 짓이겨 버릴 듯 달려들었다. 천하제일도(天下第一刀)인 천도왕(天刀王)조차도 받아내지 못한 지 옥참마도법 중 제 오 초식 천심도! "도, 도신합일이다." 누군가가 경악성으로 소리쳤다. 사대마신은 이를 악물고 궁사의 공세에 기세도 격렬하게 맞부딪쳐 들었다. "죽어라! 태양멸천(太陽滅天)!" "뒈져 버려! 은린만폭(銀鱗萬瀑)!" 번쩍! 천하에서 가장 눈부신 빗과 열기들, 폭우같이 발출되는 은편들, 벼 락같이 날아드는 맹독의 청강침들, 악마의 가공할 숨결같이 회오리쳐 짓쳐드는 사륜(四輪)들……. 태고 이래로 이토록 완벽하고 가공무비한 합공이 있었던가? 사대마신의 절학은 그야말로 가공 지경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입고 있는 갑의들은 더욱 가공했다. 그들의 갑의는 지옥혈도 궁사의 지독 한 도기의 대부분을 감당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옥참마도는 용서가 없었다. 수백 개 방위의 섬뜩한 도광 이 갑의의 전신을 난타했다. 같은 부위만도 수섭 번이나 얻어맞자 무 적의 갑의도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콰콰쾅! 연이어 천지종말의 박살이 났다. 금갑마신의 외침이 그 천지흔돈의 와중을 뚫엇다. "놈의 도법은 강하다! 그러나 강한 만큼 그 피로가 심하다. 최대한 방어에 주력하라." 그들은 작전을 바꾸기로 했다. 이제 궁사의 모든 내력을 소모시키 기로 한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도 늦은 선택이었다. 금갑마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오장육부를 쇠갈고리로 긁어내 는 듯한 비명성이 터졌다. 비명의 원천은 철갑마신이었다. 그의 얼굴이 천참으로 난도질당해 선렬한 지보라를 일으키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죽지는 않았다. 철갑마신은 뿌드득 핏물 고인 이빨을 갈아붙였다. "궁사!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 이어 그는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쳤다. 동시에 그의 전신이 둥근 쇠 공처럼 뭉쳤다. 우우우웅--! 그의 쇳덩이 몸에서 십팔의 사륜이 무섭게 회전을 일으켰다. "죽어랏--!" 그가 선택한 길은 동귀어진이었다. 자신의 죽옴을 불사한 일체의 공격 일변도. 철갑마신은 전신을 그대로 궁사에게 부덧쳐들었다, 순간 지옥혈도 궁사의 입가에 회미한 조소가 스쳤다. 그는 느릿하게 손올 치켜들었다. 그러자 수중의 지옥참마도가 번갯 불같이 기이한 형상으로 뿌려졌다. "피가 폭우처럼 쏟아져 하늘을 피로 물들인다. 낙(落)-- 혈(血)-- 비(飛)--!" 낙혈비. 지옥참마도법 중 제 칠 초식! 엄청난 도광이 수천 개 태양이 일시에 작렬하는 듯한 가공할 빛을 뿌렸다. 그 엄청난 빛의 무리는 허공에 떠 있는 철갑마신을 향해 몰 려들었다. 이를 보고 있던 금갑마신의 입에서 대경실썩한 외침이 터졌다. "넷째! 안된다. 물러가라." 그의 외침을 들은 철갑마신의 고개가 본능적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 떠오른 표정은 바로 절망이었다. 째째째쨍! 하늘과 땅의 모든 고막을 일제히 찢어놓을 듯한 엄청난 금속성이 터졌다. 동시에 숨가쁘게 죽음의 문턱을 타고 넘는 단말마의 비명이 터졌다. "크아아악--! 비명과 함께 뻣골 얼리는 가공할 참경이 벌어졌다. 철갑마신의 전신이 허공에서 수십 토막으로 변해 낙엽같이 뿌려지 고 있는 것이었다. 무적을 자랑하던 철갑도 지옥참마도 앞에서는 두 부와 같았다. 촤아아--! 철갑마신의 피가 폭우 쏟아지듯 퍼부어졌다. 죽음이라고 하기조차 끔찍한 최후였다. 이지 사대마신은 삼대마신 으로 줄어든 것이었다. 일순 싸늘한 침묵이 다가왔다. 그 묘한 침묵을 먼저 깨트린 사람은 동갑마신이었다. 그는 동료의 죽음에 원독에 찬 폭갈을 터뜨렸다. "궁사--!" 은갑마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은편들이 폭풍을 만난 듯 푸르르 경련을 일으켰다. "이놈 궁사! 네놈을 천하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여주겠다." 동시에 은갑마신과 동갑마신은 좌우에서 궁사를 노도갈이 짓쳐들었 다. 맏이인 금갑마신은 황급히 외쳤다. "아우들! 침착해야 한다." 목젖이 갈라져라 외치며 그 역시 허공으로 신형을 솟구쳐 발악적인 공세를 발동시켰다. 궁사의 눈빛은 이 급한 순간에 더욱 깊게 가라앉았다. '이제…… 끝낼 때가 되었구나.' 그의 직감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피가 흐르는 지옥참마도를 치켜들었다. 이어 사자후와 도 같은 대갈성이 터졌다. "천(天)-- 살(殺)-- 낙(落)-- 뢰(雷)--!" 한 번도 펼쳐진 적이 없는 지옥참마도법 중 제 팔 초가 드디어 모 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지옥참마도가 궁사의 수중을 떠났다. 쐐애액--! 지옥참마도는 무섭게 허공을 회전하며 시퍼런 도광을 섬전(閃電)같 이 뻗쳤다. 방원 수십 장이 순식간에 작렬하는 섬전의 굴레속에 휩싸 였다. 순간 허공에 떠 있던 금갑마신의 대경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도…… 도강이닷!" 그는 급급히 신형을 뒤로 젖혔다. 기다렸다는 듯 수십 개의 강기가 아슬아슬하게 전신을 스쳐갔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귓구멍을 후벼파는 두 가닥 비명을 들을 수 있 었다. "크아아아악!" "쾌애-- 액!" 그는 보았다. 그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끔찍한 광경을. 은갑마신과 동잡마신. 그들의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져 걸레 조각같 이 허공 중에 홉어지고 잇었다. 투툭…… 투두두둑! 육편, 골편, 혈편들이 지면으로 환상처럼 내려앉앗다, "아, 악마…… 악마의 도법이다." 금갑마신은 부들부들 치를 떨었다. 순식간에 세 명의 동료들이 죽어갔다. 이제 그 혼자만이 살아남았 을 뿐이었다. 한편 궁사 역시 온전치만은 않았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연신 시뻘컨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극히 엄 중한 내상을 입었음이 분명했다. "으……." 금갑마신은 원독의 이를 갈아붙였다. 그는 눈앞에서 일어난 비통한 죽음을 결코 인정할 수 없었다. "궁사…… 죽이갰다." 그는 전신의 모든 내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엄청난 빛과 열기가 금갑마신의 전신에서 해일같이 뻗쳐들었다. 그러나 궁사는 지금 금갑마신의 모습을 자세히 볼 수도 없었다. 눈 빛은 한참 풀려 잇고 손아귀의 힘이라는 힘은 모두 빠져나간 상태였 다. '이제…… 나도…… 끝인가?' 그는 억지로 공력을 모아 보았다. 그러나 소용 없는 일이었다. 고통만 가중될 뿐 수증의 도를 치켜들 단 한점의 내력도 모을 수가 없었다. "궁사! 죽어랏!" 금갑마신은 절규에 가까운 원독의 폭갈을 터뜨리며 비틀거리고 있 는 궁사를 짓쳐들었다. 궁사는 무기력하게 쳐다볼 뿐이었다.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끝이군.' 입꼬리가 말리며 슬쩍 실소가 터져 나왔다. 별다른 감정은 없었다. 남궁수와의 약속을 지키지 뭇한 것이 못내 안타까울 뿐이었다. 콱! 그는 지옥참마도를 지면에 쑤셔 박았다. 그 정도의 힘이나마 남아 있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 눈을 감았다. 전신을 지탱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기다렸다. 코앞으로 다가오는 금갑마신의 기운이 느껴졌다. 아무런 생각도 떠 오르질 않았다. "아아악--!" 비명이 터졌다. 그러나 그것은 궁사 자신의 비명이 아니었다. 궁사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눈앞의 상황이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순간 그는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세 줄기 묵광(墨光)이 금갑마신의 목, 가슴, 배 세 곳을 꿰뚫고 지 나고 있었다. 그는 세 가닥의 피뚜지개를 화려하게 뿜어냈다. 눈동자는 이미 풀 릴 대로 풀려 있었다. 그 비어 버린 동공 속으로 강한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믿을 수 없어! 금갑마신은 마치 그떻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쿵--! 금갑마신의 거대한 몸똥이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즉사였다. 휘이이이잉……. 여지껏 숨죽이고 있던 바람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었다. 궁사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분명…… 천묵마정(天墨魔釘)이었다.' 그는 금갑마신을 죽인 세 가닥 묵광의 존재를 기억했다. 또각! 또각! 기이한 소음이 바닥을 두드렸다. 그리고 금속성과 함께 한 흑포괴인이 나타났다. 궁사를 향해 다가오는 철다리(鐵足)의 흑포괴인. 그는 바로 십대천 왕 중 한 명인 일지접천 구유명이었다. 휘이잉……. 바람이 불며 일지겁천의 적발이 휘날렸다. 궁사는 나직하게 말문을 열었다. "구 노인……." 일지겁천 구유명은 녹광을 번뜩이며 걸음을 멈추었다. "궁사, 꽤 늙었군."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혀들었다. 그들은 무당산 풍운 이래 사년 만에 만나고 있는 것이었다. "세월이 흘렀으니까." 불현듯 반가움이 치솟았다. 두 사람은 손을 뻘었다. 그들은 포옹했다. 두 명의 십대천왕. 그들은 유난히 공통점이 많았다. 천하에 남은 사람 하나 없는 외로 운 존재요, 하늘도 통곡할 분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 세월이 흘렀지." 구유명이 중얼거리듯 말했다. 두 사람 사이의 대화는 그것이 끝이었다. 그들의 마주친 가슴들이 말을 대신했다. 뜨거운 가슴들은 우정을 대신 말하고 있었다. 하루가 저물고 있었다. * * * 사흘. 아수마궁이 만금성을 공략한 지 사흘이 지났다. 남궁수와 하후주가 안배한 천하 최고의 절진은 아수마궁 제일현자 인 호극천에 의해 기어코 파괴되었다. 이후의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성난 노도와 해일이 밀어닥겼다. 아수마궁의 삼만 고수들은 밀물이 밀리듯이 만금성으로 진입해 들어갔다. 대혈전! 무림사 최고의 대접전이 시작된 것이었다. 아수마궁은 호극천의 지휘 아래 일사불란하게 만금성을 파상공략 (波狀攻略)해 들어갔다, 만금성은 와룡선생 하후주의 지휘 아래 아수마궁의 대공세를 맞아 막상막하의 대접전을 벌였다. 본래는 천기서생 남궁수가 나서려 했으나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는 악화된 건강으로 인해 내성 깊숙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하제일 기관진학의 대가(大家)이며 용병술의 제 일인자인 와룡선생 하후주. 그의 전락과 용병술은 천기서생 남궁수에 비해 단 한치의 손색도 보이지 않았다. 때문에 호극천으로서는 예상치도 못한 또 하나의 가 공할 적수가 나타난 셈이었다. 혈전에 혈전이 이어졌다. 피아가 한데 뒤엉켜 피 튀기는 전대미문 의 대혈전을 벌였다. 그 와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활약을 보이고 있는 인물은 거력천군 관천패였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가공 그 자체였다. 엄청난 외가기공(外家奇 功)에 의해 이미 수백 명 상대가 피곤죽으로 변할 정도였다. 진정 그는 타고난 천살성(天殺星)이었다. 그리고 철삭묵도 탁무영, 동심삼재, 녹림수로맹주, 낙남신검 감사 립 등의 활약도 눈부신 것이었다.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모두들의 활약으로 만금성은 압도적안 숫자 의 열세를 만회하고 있었다. 호극천. 그는 혜광 가득한 시선으로 뒤엉켜 돌아가고 있는 전황(戰況)을 자 세히 주시했다. 양미간에 희미하게 그려진 잔주름이 그의 고뇌를 웅 변하고 있었다. 문득 그의 두 눈이 반짝 기광을 발했다. 이어 우렁찬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반오행(正反五行)으로 병진을 바꾸어라." 순간 파상적으로 변공을 가하던 아수마궁의 공세가 일제히 전면적 인 대공세를 펼쳤다.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아수마궁 고수들의 변진이 었다. 그러자 맞대응을 하듯 만금성 쪽에서 낭랑한 외침이 터졌다. "출운삼재진(出雲三才陳)을 펼쳐라!" 와룡선생 하후주의 외침이었다.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만금성 고수들의 병진은 흡사 구름과도 같이 흩어졌다. 덕분에 아수마궁의 전면적인 대공세는 그야말로 구름 밭을 혜매는 격이 되고 말았다. 대체로 싸움은 이런 식이었다. 불꽃 튀는 대전과 기진의 일대접전 이었다. 그러나 아수마궁은 결코 만금성을 가볍게 무너뜨릴 수 없었다. 호극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중원에 든 이래 최대의 난관에 부딪힌 셈이었다. "대체 누구인가? 대체 저놈은 누구이길래 번번이 노부의 생각을 앞 지른단 말인가?" 그러자 호극천 곁에 있던 한 인물이 급히 대답했다. "저 자는 와룡선생 하후주란 인물로 만금성 내당 총당주이며, 서천 목산(西天目山) 출신으로 천하제일의 용병대가입니다." "으음……." 호극천은 먼발치에서 와룡선생 하후주를 유심히 주시했다. "만금성…… 천외천부, 무림맹과는 확실히 현격한 차이를 지닌 무 서운 존재들이다." 그는 새삼 만금성의 가공할 위력에 감탄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감탄만 하고 있을 여유는 없었다. 와룡선생 하후주를 위시 해 생각지도 못한 기인이사들이 부담으로 작용한 탓이었다. 문득 그의 눈동자에 회미한 살기가 떠올랐다. "저 자를 집증적으로 공략하여 반드시 죽여라. 그렇지 않으면 이번 대전은 결코 낙관할 수 없다." 결국 살기등둥한 추살령이 떨어졌다.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의 아수마궁 절정고수들이 와룡선생 하 후주를 향해 벼락갈이 짖쳐들었다. 그러나 와룡선생 하후주는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만금성의 절정고 수들이 수십 겹의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어 그의 솜털 하나 건드릴 수 가 없었다. 한편 만금성의 천보비천탑(天寶飛天塔). 그 정상에 한 인영이 우뚝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마군자 금소천이 었다. 그는 전황을 살피며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다. "하후당주. 과연 대단하다. 하마터면 남궁 셋째의 빛에 가려 진정 한 인재를 몰라볼 뻔했구나." 그는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용병지술만 따지자면 오히려 남궁 셋째보다 한 수 위라고 할 수도 있겠다." 문득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어느 한 곳에 이르러 반짝 빛을 뿌렸다. 그의 시선이 머문 곳은 한 채 교자였다. 교자 위에는 유유히 학익선을 부치고 있는 출중한 신태의 한 인물 의 모습이 보였다. "흐음, 저 자가 바로 아수마궁의 지존인 야율노격이군." 금소천의 눈동자가 기광을 뿌렸다. 본능적으로 한 가지 생각이 뇌 리를 스친 탓이었다. "그렇다면 궁사는……?" 그는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야율노격이 저렇듯 멀쩡하다면 상대 적으로 궁사가 위험하다는 뜻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겠지. 천하의 십대천왕 중 하나인 지옥혈도 궁사를 그 누가 위혐한단 말인가?" 그의 중얼거림에는 확신이 있었다. 그것은 궁사에 대한 강한 믿음 이요, 신념이었다. 생각을 고친 그는 잠시 야율노격을 주시했다. "야율노격…… 적어도 그대만큼은 나 금소천이 친히 대결해야 할 상대이겠지?" 말소리와 함께 그의 신형이 허공을 박찼다. 휙--! 그의 신형은 한 마리 대붕(大鵬)이 하강하듯 야율노격을 향해 날아 갔다. 야율노격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허공 수십 장에서 표표히 내려서는 금소천의 가공할 경세신법 을 대하고 희미한 경악을 보였다. 그러나 이내 그는 신색을 평정시키며 금소천을 주시했다. "웬놈이냐?" 폭갈과 함께 근처의 십수 명의 아수마궁 고수들이 무서운 기세로 금소천을 향해 짓쳐들엇다. "건방진 잡졸들이 감히 누구 앞을 가로막느냐!" 금소천은 가볍게 우수(右手)를 뒤집었다. 그러자 기다렷다는 듯 무 형, 무성의 경력이 뿜어졌다. 아무런 기척도 느낄 수 없는 지극히 부 드러운 경력이었다. 그러나 그 무형의 기운이 발산하는 기세는 엄청난 것이었다. "으악--!" "크악--!" 처절한 단말마가 잇달아 꼬리를 물었다. 동시에 금소천을 짓치던 아수마궁인들은 모조리 실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졌다. 쿵! 털썩! 지면을 강하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아수마궁 고수들의 칠공에서는 가는 선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들은 금소천의 가벼운 손짓 한번에 그대로 즉사해 버리고 만 것이었 다. "으음……." 교자 위에 있던 야율노격의 두 눈에 경악의 기운이 스쳤다. 그러나 그것은 타인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미세한 변화에 불과했 다. 그는 수중의 학익선을 접으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귀하가 만금성주인 금소천이오?" 금소천은 그의 정면 삼 장 거리에 완전히 내려서 있었다.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귀하는 야율노격, 아수마궁의 지존이겠지?" 야율노격 역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보셨소." 금소천과 야을노격의 시선이 허공에서 무섭게 뒤엉켰다. 천년 아수마궁의 절대패존인 야율노격. 천왕지맥을 타고난 고금 제일기재인 만금성주 금소천. 그들은 결국 숙명적인 대면을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주위에 있던 무수한 아수마궁의 고수들이 금소천을 향해 벌떼같이 덮쳐들었다. "와아--!" "만금성주를 잡아라!" 그러나 그들의 발걸음은 금소천의 주위에도 얼씬하지 못했다. 야율 노격의 준엄한 호통이 터진 탓이었다. "멈추어라!" 그는 사위를 돌아보며 엄숙한 음성을 이었다. "무례를 범치 마라. 이분은 너희들이 상대할 분이 아니다." 아수마궁의 인물들은 움찔하여 원위치로 돌아왔다. 야율노격은 교자를 내려놓게 하여 천천히 지면을 밞았다. "본인은 원래 영웅을 좋아하오." 이윽고 금소천과 마주 선 그는 정중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야율노격이 중원에 나온 이래 최고의 영웅을 만났으니……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소." 그의 눈동자에는 일점의 가식도 없었다. 그는 금소천을 향해 정중한 포권지례로써 예를 표했다. "천축의 미천한 인물 야율노격이 중원 제일의 영웅이신 금성주께 최고의 경의를 표하는 바이오!" 진정 영웅지도(英雄之道)가 물씬 풍기는 정중한 태도가 아닐 수 없 었다. 금소천 역시 이때 포권을 취하며 답례의 말을 했다. "야율궁주의 명성은 귀가 따갑도록 들었소. 자리는 마땅치 않으나 주인된 입장으로 찾아오신 손님께 최대의 환영을 표하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 날카로운 가시가 숨겨진 한마디였다. 그러자 야율노격이 호쾌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매우 의미 있는 말씀이오." 촤르르륵! 그는 수중의 학익선을 펼쳤다. "나 야율노격의 포부는 두 가지오." 다소 엉뚱한 말이었다. 금소천의 미간에 작은 잔주름이 생겨났다. 그러나 야율노격은 개의치 않는 듯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첫번째는 천년 전 야율탑연 선조의 원한을 갖는 것이고, 둘째로는 …… 중원을 정복하는 것이오!" 단도직입적인 명쾌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금소천은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는 무심담백한 시선을 말없이 주고 있을 뿐이었다. 야율노격의 투명한 눈빛이 그와 똑바로 마주쳤다 "금성주께서는 비천제황문의 무공을 이으셨고, 또한 중원 제일의 영웅이니, 본인의 두 가지 목적을 달성키 위해서는…… 만부득이 금 성주를 제거해야 하오." 노골적으로 죽이겠다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일체의 살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야율노격의 눈동자는 점점 살기를 띠고 있었다. "이는 매우 불행한 일이나…… 본인으로서는 따땅히 행해야 하는 것이니 금성주께서 널리 양해하시기 바라오." 야율노격은 거리낌없이 심중의 말을 토했다. 그의 음성에는 강한 자신감이 심어져 있었다, 금소천은 야룻한 미소를 피워 올리며 대꾸했다. "불행이라…… 야율궁주, 이미 불행은 시작되었소." 역시 묘한 의미가 담긴 대답이었다. 야율노격이 대소성을 터뜨렸다. "하하하핫…… 금성주! 나 야율노격이 비록 부족하나 금성주와 일 만 초를 겨루고 싶소." 금소천은 혼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본인도 원하는 바이오." 두 사람의 대화는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마치 오랜 지기를 마주 대 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그러나 그 속에는 무서운 살기가 내재되어 있었다. 사위는 긴장 속에 호흡마저 죽인 채 두 사람을 주시했다. 일순 야율노격이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무기를 가져오너라!" 그러자 한 인물이 다급하게 움직였다. 그 자는 교자에서 하나의 병 기를 꺼내 왔다. 무척이나 괴이하게 생긴 병기였다. 그것은 한 자루의 도였으나 피이하게도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은 백색 기형도였다. 게다가 세 가닥 칼날은 극히 얇은 면도로 마치 버 들가지처럼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야율노격은 기형도를 천천히 들어올리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병기로군.' 금소천은 내심 염두를 굴리며 그 역시 품에서 대적할 무기를 꺼냈 다. 그가 꺼낸 것은 엉뚱하게도 핏빛 채찍이었다. 길이는 일 장 가량에 끝이 살모사의 핏빛 헛바닥처럼 두 갈래로 나 뉘어진 혈편이었다, 그 혈편을 보는 순간 야율노격의 얼굴에 흠칫 경악이 스쳤다. "으음…… 제황삼군 중의 둘째인 천문의 독문병기, 적혈룡(赤血龍) 이로군." 금소천은 가타부타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야율노격의 표정이 변화했다. 그는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의아스러운 듯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