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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29편 (29/79)

2026-09-22 08:20:08 조회 15
이렇게 해서 죽은 제대로 맞아 돌아갔다. 금소천은 품속에서 왕밤만한 금덩이 하나를 꺼내 중년여인에게 건 넸다. "그럼 제일 조용한 방 하나 마련해 주게." '세상에! 완전히 금덩어리로구나……?' 중년여인의 입이 적어도 한꺼번에 쥐새끼 열 마리는 먹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찢어졌다. '신년 초의 왕운이다.' 그녀의 하체 어느 한 곳에서 화려한 폭죽이 터졌다. 청춘이 되살아났는가? 분명한 것은. 그날 밤 그녀는 점찍어 두었던 주방의 젊은 떠꺼머리 총각 전이팔을 밤새 못 견디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꽃(花). 하나같이 화려한 성장(盛裝)을 하고 있는 꽃들. 바로 밤의 꽃, 야화(夜花)들이었다. 금소천은 할 말을 잊었다. 지금 그는 중년여인의 안내로 청하루에 들어서 있었다. 긴 회랑을 사이에 두고 족히 백억 명은 됨직한 여인들이 꽃처럼 피 어 있었다. 꽃마다 향기가 다르다. 꽃마다 미색이 다르다. 그러나 이 화려하게 핀 야화들이 일순간 제 빛들을 잃어버렸다. "아……." 저절로 가슴 진탕되는 탄성이 터진다. 금소천. 이 천하에서 가장 멋들어진 미청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 이다. 야화들은 넋을 놓고 꿈속같이 몽롱한 상태에 빠져들었다. '음… 그야말로 색활림(色活林)이군.' 금소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평정을 회복할 수 있었다. 지금 눈앞의 화녀들이 아무리 어여쁜들 화예미나 냉한빙. 하란미, 아사공주 등의 발치에나 따를 수 있겠는가? 금소천은 화모의 안내를 받아 회랑을 걸었다. "아……." 화애들은 저마다 혼신의 힘을 다해 추과를 던졌다, '한 번만 안겼으면…….' 평생에 한 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 그녀들은 그 기회를 잡기 위해 안타깝게 교태를 부렸다. 그러나 금소천은 그저 담담한 신색으로 야화들을 스쳐 버렸다. '안돼, 이대로 놓칠 순 없어."' 한 미녀가 내심 목젖이 터져라 외치며 금소천을 향해 달콤한 유혹 을 던졌다. "공자니임, 소녀 추월(秋月)이와 하룻밤 가연을 맺으심이 어떻겠어 요?" 금소천은 빙긋 웃었다. "추월이라… 지금은 겨울이니 올해 가을달이 휘영청 밝을 때 내 자 네를 찾겠다." 추월은 더욱 달콤하게 비옴을 발했다. "호호… 그러시다면 지금부터 소녀는 설매(雪梅)예요." 그녀의 대답은 청루에서 닳고닳은 조약돌이었다. 금소천은 껄껄 대소를 날렸다. "설매라… 이름은 운치가 있으나 눈 속의 매화는 너꾸 차가워서 실 다." 그러는 한편 그는 내심 침음성을 홀려야 했다. '돈으로 육신을… 더욱이 청백해야 할 여인의 정조를 팔다니… 이 여인들은 삶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웬지 그는 씁쓸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태양이 부러워 밤에 피는 꽃. 그 무엇이 그녀들로 하여금 태양을 부러워하게 만들었는가? 밤. 어쨌든 청하루의 밤은 깊어갔다. 매우 화려한 방이었다. 그러나 어딘지 또르게 진한 속기(俗氣)가 흔적처럼 덮여 있는 방이 기도 했다. 휘장이 쳐진 침상엔 금소천이 누워 있었다. '봉명소… 그 자는 지금쯤 황견하고 숨바꼭질에 열중이겠군.' 그는 길게 기지개를 켜며 잠을 청했다. 이윽고 그가 막 잠이 들려고 할 때였다. 사르르……. 조용히 침실 문이 열리며 섬세한 인영 하나가 들어섰다. 인영은 침상 곁에 이르러 다소곳이 큰절을 올렸다. 금소천은 의아하여 침상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그대는 누구요?" 한 명의 섬세한 교신(嬌身)을 지닌 여인이 보였다. 그녀는 오히려 의아한 듯 살며시 고개를 들었다. "나으리께서는 천녀(賤女)를 부르지 않으셨습니까?" 순간 금소천은 눈이 환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실로… 경국지색(傾國之色)이다.' 앞에는 금소천이 탄성을 터뜨릴 만한 절색의 미녁가 있었다. 대략 이십삼 세 가량 되었올까? 반월의 눈썹과 수려한 콧날이 인상적인 절색의 미녀였다. 특이하게도 한쪽 눈썹 속에 은은히 자리한 붉은 점이 인상적이었 다. 전신에는 그저 심산유곡을 휘감아 흐르는 극허 맑은 옥수(玉手) 같 은 청순미가 서려 있고, 깊은 두 눈엔 한 가닥 짙은 애수가 갈무리되 어 있었다. '실로 대단한 미녀… 도대체 이런 곳에 있을 여인이 아니다.' 금소천은 미녀에게서 범상치 않은 그 어떤 기운을 느꼈다. 그는 헛기침을 하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그대를 부른 적이 없으니 그대는 방을 잘못 알고 들어온 것 이 아니오?" 미녀는 살래살래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화모께저 직접 천녀를 방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녀는 재차 나긋나긋하게 머리를 숙였다. "천녀는 홍앵(紅鶯)이라 합니다. 오늘밤 나으리를 모시게 되어 일 생의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음성은 결코 기쁜 및이 아니었다. 더구나 보다 큰 문제가 있었다. 홍앵, 여인은 분명 자신을 그렇게 불렀다. 그 이름은 바로 과거 청학진에서 청학자 주유탁으로 행세하던 지옥 전의 고수 사혼(邪魂)과 같이 있던 여인 흥앵이 아닌가? 주대인이라 불리던 사혼과 같이 생활하던 그의 의녀. 홍앵. 그녀가 이런 곳에서 몸올 꽈는 야화가 되다니 이 무슨 일인가? 홍앵은 다른 여인들과 달랐다. 금소천을 대하고도 나직한 탄성조차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몸올 일으켰다. 나풀나풀……. 신비가 풀리며 여인의 속살이 드러난다. 홍앵. 그녀가 스스로 옷올 벗는다. 겉옷이 떨어지며 그녀는 금세 나신이 되었다. 너무도 깨끗해 차마 지켜보기가 눈이 시린 신비한 그녀의 기막힌 나신이다. 문득 금소천은 가볍게 눈살을 찌푸렸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옷을 벗는다. 이 여인 역시 이 청루의 범녀 (凡女)와 같단 말인가?' 그는 흡사 배신을 당한 기분이었다. 그만큼 지금 흥앵은 무엇에 쫓기듯 자신의 알몸을 남김없이 드러내 고 있는 것이었다. 봉긋한 젖가슴. 아랫배. 은밀한 신비지(神秘地)……. 어느 한 곳 유혹의 손짓을 하지 않는 곳이 없다. 특이한 것은 그녀의 가슴이었다. 유연한 목덜미에서부터 가슴에까지 걸쳐 한 개 옥패가 달려 있었 다. 붉은 앵무새 한 마리가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 옥패였다. 홍앵은 두 눈에 잔 떨림을 일으키며 침상에 올랐다. "천녀. 나으리를 모십니다." 금소천은 잠시 그녀를 주시한 후 물었다. "그대는 무엇 때문에 몸을 파는 것이오?" 홍앵은 입가에 한 조각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어쩌면 소리 없는 통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천녀는 천애고아라서 죽기 전에 어느 한 분을 뵙는 것이 소월이에 요. 그래서 그분을 찾기 위해 천하를 혜매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지요… 저는 그분을 뵙기 위해선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유한과 가슴 해치는 심원(心願)이 구구절절이 배어 있었다.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듭 물었다. "그대가 찾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홍앵은 그 말엔 대답 않고 소리 없는 탄식성만 발했다. 금소천은 진중한 신색으로 부드럽게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말못할 사연이 있는 모양이군." 일순 흥앵은 잘끈 입술을 물며 결심한 듯 대답했다. "그분은 천하에서 가장 인자한 대인이십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홍앵은 더 이상 자신의 처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금소천은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갸륵한 것인 지를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까지 팔아야 할 사연이라면? 어쨌든 이 여인은 어딘가 보통의 여인과는 다르다.' 그는 침상 위에서 신형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품속에서 한 장 전표(錢票)를 꺼내 그녀의 수중에 쥐어 주었다. "이것을 받으시오." 홍앵은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황금 천 냥(黃金千兩)이라는 액수가 시야에 들어왔다. "나, 나으리… 이. 이것은?" 홍앵은 대경하여 금소천을 바라보았다. 금소천은 부드럽게 웃어 주었다. "그대가 찾고자 하는 분을 꼭 만나게 되길 빌겠소. 그리고 이런 곳 은 빨리 떠나는 것이 좋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휙! 그의 신형이 빚과 같이 침실을 떠났다. 멍하니 있는 그녀의 귀로 금소천의 유쾌한 대소성이 터졌다. "하하하하. 낭자 덕분에 오늘 밤은 아무래도 이슬을 맞아야 할 것 갈소. 하하하……." 홍앵은 자신이 아직도 나신인 것조차 잊었다. 그녀는 넋을 잃고 수중의 전표에 시선을 뭇박았다. 툭! 한 방울 눈물이 떨어진 것은 한참이 지난 후였다. 그 한 방울 눈물은 가장 값진 것이었고…… 지금은 밤이다. 22장 은원에 말려들다 밤의 한가운데인 자시(子時). 너무 은은해 슬픈 월광(月光)이 쏟아지는 백과성(白果城). 성은 깊어가는 밤에 정적만 쌓여가고 있었다. 성의 후미진 곳에 자리한 객잔. 밤이 야심한 이 시판에도 희미한 불빛이 새고 있었다. 객잔에는 아래 위 층이 모두 텅텅 비어 있었다. 아니. 딱 한 명의 손님이 이층 구석 자리에 앉아 술잔을 대하고 있 었다. 괴인. 이 표현이 제대로 어울릴 괴이한 행색의 인물이었다. 일신에는 밤의 멎깔과 같은 짙은 흑색의 장포를 걸치고. 머리는 붉 은 적멎으로 어깨까지 길게 기르고 잇었다. 약간 헤쳐진 흑색 장포 사이로… 한쪽 다리가 철로 된 쇠다리(鐵 足), 외족이 보였다. 얼굴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붉은 머리카락이 치렁치렁 늘어진 탓이었다. 다만 머리카락 사이로 간간이 진녹색의 안광이 언뜻 비쳤다. 한마디로 무섭도록 무심한 기운이 전신을 휘감고 있는 괴인. 그는 바로 십대천왕 중 한 명인 일지겁천이었다. 탁! 술병 하나가 그의 입에서 탁자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는 이미 수십 병의 술병을 비우고 있었다. 지금 그가 마시고 있는 술은 천하에서 독하기로 이름난 여아몽환주 (女兒夢幻酒)다. 그것을 족히 백 근 이상을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조금 도 취한 모습이 아니었다.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이기에 일지겁천은 이토록 독주를 퍼마셔대고 있는가? 계단 한쪽에선 점소이 한 명이 아예 나직하게 코까지 곪아가며 잠 에 빠져들고 있었다. 일지겁천은 또 한 병의 빈 술병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가 새로운 술병에서 또 한 잔을 따랐을 때였다. 문득 기척이 일며 새로운 인물 하나가 객잔에 들어섰다. 그는 멈칫거리지도 않고 곧바로 불빛이 가물거리는 이층으로 올라 섰다. 점소이는 그것도 모른 채 수건을 껴안고 여전히 깊은 잠에 빠져 있 었다. 일지겁천은 술잔을 들다 말고 그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새로운 인물도 느낌이 이상했는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일지겁천과 새로 나타난 인물은 동시에 희미한 경악의 눈빛을 맞부딪쳤다. 일지겁천의 산발한 머리카락 사이로 이채로운 괴소가 터졌다. "흐흐흐! 적적하던 참에 잘 나타났군 천하에서 가장 기이한 젊은 친구……." 무섭도록 무심한 음성이었다. 나타난 인물은 일지겹천의 말대로 천하에서 가장 기이한 청년, 마 군자 금소천이었다. 그는 진고성을 떠난 즉시 만 하루를 달려 무당산의 이곳 백과성에 방금 도착한 것이었다. 금소천은 빙긋 기이한 미소를 머금었다. "아니. 노인장! 무슨 심사가 그리 괴롭기에 이 야심한 밤에 홀로 술독에 빠져 있소이까?" 일지겁천은 나직한 괴소로 답했다. "흐흐… 떠들지 말고 이리로 와 술이나 한잔 받게." 금소천은 일지겁천의 말보다 더 빨리 철퍼덕 일지겁천의 앞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그렇지 않아도 본인 역시 한잔 술이 생각났는데… 마침 잘되었소 이다." 그는 일지겁천이 껀하기도 전에 한 잔 술을 들이켰다. "크으… 여아몽환주라? 오늘 밤에 마시기 딱 좋은 술이오." 그는 아예 술병을 들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일지겁천의 적발(赤髮) 사이로 이채의 녹색 안광이 희미하게 반짝 거렸다. "자네는 정말 보면 볼수록 기이한 젊은이야." 이어 그도 술병째 들이켰다. 일지겁천은 술병을 거듭 비우며 무심하게 물었다. "젊은 친구! 사 년 동안 소식 없이 어디에 박혀 있었는가?" 금소천은 히죽 웃었다. "그동안 도를 닦았소이다." "도(道)?" "그렇소이다. 주도(酒道)와 색도(色道) 등… 낄빌." 순간 일지겁천은 한바탕 대소를 터뜨렸다. "주도와 색도? 크하하하하--!" 그러나 이내 그는 대소를 그치며 녹색 안광을 번쩍 내뿜었다. "자네의 말은 언제나 장난 같고 웃음 속에 잠겨 있지. 그러나 자네 의 두 눈은 무서운 야망에 불타고 있어." 그는 새로운 술병 하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 좋다!" 그는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무심한 기운을 보였다. 문득 그는 기이한 시선으로 금소천을 주시했다. "젊은 친구! 천왕지존을 원하는가?" 순간 금소천은 술병을 입에 박은 채 흠칫거렸다. "커컥! 노. 노인장. 술에 체하게 그 무슨 말이오?" 일순 일지겁천의 두 눈이 적발 사이에서 무섭도록 무심하게 가라앉 았다. 그러나 그 두 눈 깊숙이에는 표현할 길 없는 가슴 아픈 수심(愁心) 의 앙금이 내려 있었다. "십대천왕(十代天王)? 천왕지존(天王至尊)? 클클… 모두 부질없는 짓이야, 부질없는 짓… 자네! 왜 노부의 한쪽 발이 달아났는지 알고 있나?" 금소천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일지겁천은 남의 일을 말하듯 담담하게 말했다. "노부 스스로 잘랐네." 그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한 병의 술을 쉬지 않고 들이켰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적발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잠시 후. 일지겁천은 새로운 술병의 주둥이를 한차례 빙 돌리며 말 문을 열었다. "자네, 혹 독심사희(毒心邪姬) 화빈(華斌)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나?" 금소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들은 적이 있소이다. 정사십팔대고인 중 한 명인 색요랑부(色妖 婦)의 제자로, 사부를 죽이고 천하의 사내들을 사타구니속에 끼고 희 롱한 천하음녀(天下淫女)가 아니오?" 일순 일지겁천의 녹안에 얼핏 진한 괴로움의 빛이 스쳤다. "그렇지. 그 천하의 요부가 바로 화빈이고… 동시에 그녀는 노부의 아내였다네." 순간 금소천은 대경하고 말았다. "그럴… 수가?"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입지겁천은 술병을 들어 목젖을 울리며 단숨에 들이켰다. "크으!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 이어 그는 천천히 자신의 과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십 년 전 화빈에게 크게 당한 적이 있었던 정파 십 인의 고수들 이 그녀와 나를 찾아왔었네. 당시 화빈은 과거를 청산하고 강호의 무 명인이던 노부와 맺어졌지. 노부는 화빈의 과거를 용서하고 우리는 여느 부부들과 같이 단란한 가정을 꾸떴다네." 일지겁천은 잠시 회열에 젖은 듯 감회로운 눈빛을 보였다. "우린 행복한 가운데 귀여운 딸도 하나 가질 수 있엇다네 헌데 홀 연 그 정파 십 인의 고수들이 들이닥친 것이지. 그들은 몹시 분노해 있었고, 화빈은 이미 스스로 모든 공력을 폐쇄한 상태였네. 노부 또 한 당시에는 그저 평범한 무인이었을 뿐……." 그는 연신 술을 들이켰다 무어라 형용하기 힘든 서러움이 그의 전신을 감싸고돌았다. "우린 반항 같은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고 있었지. 빌었네. 우리는 그뜰을 향해 무릎을 끓고 눈물을 흘리며 빌었지. 노부는 스스로 한쪽 발을 잘라 그녀가 저지른 과거를 보상 받으러 했지. 그러나 그들 십 인의 고수들은 결코 용서치 않았네. 노부가 보는 앞에서 화빈의 의복 을 벗긴 뒤, 벗긴 뒤… 노부와… 노부의 갓난 딸이 보는 앞에서였 지." 그의 음성이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발가벗긴 뒤 그들은 심판을 내렸다네. 그녀를 발기발기 찢 어 죽이고는… 늑대밥을 만들었지 심판… 그것을 그들은 심판이라고 불렀네." 무수한 격동이 억눌려 미친 듯 튀고 있었다. 그러나 갈수록 일지겁천은 더욱 무심한 기운을 보였다. 그것은 차라리 소리 없는 처절한 절규와도 같은 것이었다. "노부는 끝까지 그들의 심판을 지켜본 뒤 혼절하고 말았다네. 그리 고 흔절에서 깨어난 노부의 입과 전신에는 온통 똥물이 끼얹어 있었 다네." 파르르르……. 그의 수중에 들려 있던 술병이 미세한 떨림을 보였다. "으흐흐… 그것은 똥 같은 계집파 산 노부에 대한 그들의 심판이었 지 거기에다가 그 사이 막 젖을 뗀 딸아이는 어디론가 실종되어 버리 고……." 착각인가? 일지겁천의 진녹색 녹안에 문득 희뿌연 안개 같은 것이 서렸다고 금소천은 생각했다. "이십 년이 흘렀어… 노부는 가공할 무공을 지니게 되었고. 흐흐… 이번에는 노부가 심판자가 되었지. 복수를 하는 한편 노부는 실종된 딸아이를 찾아 천하를 헤매고. 또 혜매고 있다네. 그러나 그 아이의 종적은 그 어디에서고 찾을 수 없었어." 그 말이 마지막이었다. 일지겁천은 입을 다물고 연신 술병만 기울였다. 금소천도 무어라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일지겹천과 같이 무거운 침묵을 지키며 술병만 기울였다. 잠시 후 일지겁천은 이제 격동이 가라앉았는지 허망한 어조로 말문 을 열었다. "노부가 딸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오직 하나! 그 아이의 목에 는 붉은 색의 앵무새가 새겨진 옥패가 걸려 있고. 한쪽 눈썹에 있는 콩알만한 붉은 점이 있다는……." 그때였다. 금소천의 전신이 불에 덴 듯 흠칫거렸다. '붉은 앵무새가 새겨진 옥패. 그리고 눈썹 사이의 붉은 점?' 그는 부지중 나직한 경악의 외침을 터뜨렸다. "호, 홍앵!" 순간 일지겁천의 전신이 찰나지간에 굳어 버렸다. 그는 급히 외쳤다. "그래, 홍앵! 그게 노부 딸아이의 어릴 때 이름이었다." 다음 순간 일지겁천은 녹광을 번뜩이며 황급히 물었다. "자, 자네가 어찌 앵아를 아는가?" 금소천은 안색을 무접게 굳혔다. "음. 지금 그녀는……." 청루에서 몸올 파는 여인. 그 사실을 어떻게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일지겁천의 딸이 문제의 홍앵이란 이 숨막히도록 기이한 인연 앞에 금소천은 입을 다물고 말았다. 일지겁천은 금소천이 주춤 입을 다물자 미칠 지경이었다. "이, 이놈! 어서, 어서… 모든 것을 이야기하지 뭇하겠느냐?" 그는 이미 더 이상 무심할 수 없었다. "이… 이놈아… 제발……." 그는 간절하게 금소천을 향해 애원의 시선까지 보냈다. "으음!" 금소천은 더 이상 함구하고 있을 수가 었었다. 혈육이 혈육을 찾고자 하는 이 안타까운 염원. 금소천은 무거운 탄식성과 합께 홍앵에 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이야기의 끝올 맺을 수는 없었다. 그의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일지겁천은 부들부들 무겁게 전신 을 떨기 시작했다. "호, 흥앵… 내 딸이… 내 딸이……." 그는 발악처럼 중얼거렸다. 다음 순간 일지겁천은 처절한 외침을 발하며 그대로 객점 밖으로 벼락같이 쏘아갔다. "앵아--!" 금소천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땅이 꺼져라 무거운 탄식성을 터뜨릴 뿐이었다. "후우……." 진정 너무도 가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였다. 딸아이 흥앵은 몸올 귀는 화녀(花女)이고, 아내 독심사회 화빈 역 시 수많은 뭇 사내에게 육체를 바친 회대의 색녀. 운명의 흐름은 흥앵으로 하여금 생모와 같이 수많은 사내들에게 육 체를 제공하고 있었으니……. '으음! 지독하게 소용돌이치는 짓궂은 운명의 안배다.' 금소천은 지금 능히 일지겁천의 심정을 이헤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따라가 보자. 자칫하면 또 다른 비극이 생길 지도 모른다.' 다음 순간 그의 신형은 바람과 같이 객잔을 떠나고 있었다. 빈 술병과 점소이의 코 고는 소리만이 빈 술병 위에 앙금처럼 내려 앉고 있었다. * * * 청화루. "으악--!" 한 소리 단말마의 비명이 처절하게 울려 퍼졌다. 청화루는 온통 혈해처럼 변해 있었다. '아뿔싸! 늦었구나.' 금소천은 내심 침음성을 터뜨리며 일지겁천을 찾앗다. 일지겁천의 붉은 머리털은 꼿꼿이 일어서고 일신의 흑색 장포는 태 풍을 만난 듯 무겹게 펄럭거렸다. 그의 쇠다리는 지금 중년여인의 배 위에서 부들거리고 있었다. "네년이 이곳의 주인이냐?" 분노의 폭갈이었다. 중년여인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 그렇습니다." 너무도 공포에 질려 그녀의 눈자위는 이미 허옇게 까뒤집어져 있었 다. "체, 제발 뭐든지… 다 드릴 테니 모. 목숨만……." 일지겁천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홍앵,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처, 천녀는 모릅니다. 그 아이는 어젯밤… 홀연히 어디론가 떠나 버렸습니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금소천이 건네준 전표를 가지고 그녀는 사혼을 찾아 떠난 것이었 다. 덕분에 일지겁천은 청화루를 이 잡듯 뒤졌지만 흥앵의 흔적은 발견 할 길이 없었다. "그 아인 언제부터 이곳에서 일을 하였느냐?" "두, 두 달 전쯤……." 일지겁천의 전신의 털이란 털은 모두 곤두서 분노와 격동의 떨림을 일으켰다. "그, 그동안 그 아이는 몇 명의 사내를… 받았느냐?" 지금 그의 음성에는 모종의 안타까운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어떤 기대인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그는 과연 무엇을 바라는가? 진정 안타까운 아비의 마음이었다. 그러나 중년여인은 눈치도 없었다. 그녀는 있는 그대로 줄줄 내불었다. "열, 아니 스. 스물쯤……." 순간 숨죽이며 기다리고 있던 일지겁천의 기대가 일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으아아아……!" 일지겁천은 처절한 외침을 발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