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27편 (27/79)
순간 그의 안색이 바싹 굳어져 버렸다. 그들 전면 삼 장 거리에 박혀 있는 암석 하나. 놀랍게도 그 암석은 서서히 소리 없이 시뻘건 핏빛으로 변하고 있 었다. 그와 동시에 바위 중앙에 어떤 하나의 형상이 뚜렷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핏빛으로 형성된 모습. 그것은 보기만 해도 어금니가 뒤흔들릴 핏 빛 인간의 얼굴이었다. 온통 천하의 모든 사악한 기운이 뭉쳐진 듯한 핏빛의 얼굴이었다. 금소천은 내신 가슴 서늘한 경악성을 터뜨려야 했다. '혈의환사…….' 그의 눈동자가 이글거리며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가 본대로 바위의 얼굴은 바로 십대천왕 중 한 명인 혈의환사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크카카카……." 혈의환사의 얼굴은 핏빛의 입을 쩍 벌리며 심장을 휘저어버리는 천 하만악(天下萬惡)의 괴소를 터뜨렸다. 아사공주의 어금니가 소리나게 딱딱 부딪쳤다. "으으… 악마, 악마야!" 금소천이 황급히 경악을 추스르며 공포에 질려 있는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아사! 물러나시오." "소, 소천……." 아사공주는 진저리를 치며 더욱 그에게 바싹 매달려 들었다. 금소천은 그녀에게 재차 외쳤다. "아사. 놈은 악마가 아니라 강호 고수요! 옆으로 비켜나시오." 그제야 아사공주는 황망히 한 켠으로 물러났다. 금소천은 혈의환사를 향해 눈썹을 꿈틀거렸다. "혈의환사. 무슨 일로 내 앞을 가로막는 것이오?" 혈의환사는 재차 소름끼치는 괴소를 터뜨렸다. 그리고는 웃음소리 와 똑같이 징그러운 괴성을 발했다. "크카카! 나는 천왕의 지존을 원한다." 금소천은 홈칫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혈의환사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때문에 나머지 구 인의 천왕. 그들의 피를 원한다. 그 첫번째 목 표가… 바로 네놈이다." 첫번째 목표를 금소천으로 잡았다. 그 말이 끝나자마자 거대한 폭음이 일었다. 꽝! 암석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나갔다. 이어 핏멎의 회오리가 일고 혈의환사가 핏멎 장포를 휘날리며 우뚝 자리했다. 금소천은 내심 대경하고 말았다. '천왕지존? 그렇다면 저 자도 십대천왕 중 하나란 말인가?' 그는 당사자의 입을 통해 혈의환사가 십대천왕 중 하나임을 알 수 있었다. 놀랄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헌데 저 자가 어찌 내가 천왕지맥의 몸임을 알 수 있었다는 말인 가?' 그가 내심 염두를 굴리고 있는 사이. 혈의환사는 연이어 소름끼치 는 괴소를 터뜨렸다. "크카카카! 금소천, 그대는 당금에 모습을 보인 십대천왕이 누구누 구인지 알고 있느냐?" 마치 금소천의 속마음을 읽고 있다는 듯한 태도였다. "모른다." 금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신기하게도 그는 천년 호수 같은 고요함을 회복하고 있었다. "크카캇! 그럴 테지." 혈의환사는 한동안 괴소를 터뜨렸다. 그러더니 자신이 알고 있는 십대천왕에 대해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자칭 마군자라는 너 금소천, 천마교주 천마황 단금성, 무림사상 최강의 도법을 연성한 지옥혈도 궁사, 외다리 귀신인 일지겁천(一指 劫天) 구유명(丘有命), 무당의 뇌천우사, 소림의 적미천불(赤眉天 佛), 만독의 제황인 만독노조(萬毒老祖) 영호독(令狐獨), 그리고 나 혈의환사 담사우이다."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혈의환사는 거침이 없었다. 금소천은 하나 하나의 이름을 깊이 새겨 보았다. "담사우. 아직 두 명이 남아 있지 않느냐?" 혈의환사는 핏빛 장포를 펄럭이며 괴소부터 터뜨렸다 "크카캇! 그렇다. 아직 나머지 두 명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물 론 조만간 그들도 나타날 것이다." 으스스……. 그의 전신에서 가공할 살기가 피었다. "그러나 구 인의 천왕들은 나 혈의환사 담사우에 의해 차례차례로 꺾일 것이다. 우선 너 마군자 금소천부터 이 천마산에서 최초로 나 혈의환사 담사우의 제물이 될 것이다." 뼛골을 저리게 하는 가공무비의 살광이 뿜어졌다. 순간 금소천은 특유의 괴소를 터뜨렸다. "담사우, 그대가 나 금소천을 이길 수 있다고 생귀하는가?" 그는 가소롭다는 듯 입꼬리에 조소를 머금었다. 혈의환사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크카카캇!" 혈의환사는 소름을 쏟아붓는 괴소를 터뜨렸다. "어리석은 놈! 나 담사우가 익힌 절학은 사(邪)의 모든 정화가 모 인 혈사환마문(血邪幻魔門)의 무학이다. 혈사환마문의 무학은 무림 사상 가장 극강한 것으로 그 누구도 깰 수 없다." 순간 태연하던 금소천의 안색이 큰 변화를 일으켰다. "혈사환마문?" 그 외침은 차라리 신음성과 같았다. 그는 내심 연이어 신음성을 흘렸다. '그것을 잊고 있었다. 혈사환마문. 그 죽음의 사술을 사용하는 혈 사환마문을 진작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혈사환마문. 그 어떤 공포의 신비를 지니고 있기에 금소천이 이토 록 경악해야 한단 말인가? 혈의환사는 금소천의 안색을 살피텨 득의의 괴소를 터뜨렸다. "카카캇! 일천 년 혈사환마문에서 내려오는 십팔만 가지의 사술을 꼬두 익힌 나를 천하에서 그 누가 당할 수 있겠는가?" 그는 갈수록 기고만장이었다. "으음." 그러나 금소천은 그저 무서운 침음성만 홀릴 뿐이었다. 혈의환사의 괴소가 더욱 고조되었다. "십팔만 가지의 사술 중 단 세 가지만 시전해도 네놈 정도는 가볍 게 요리할 수 있지." 그는 말과 함께 핏빛 장포를 활짝 펼쳤다. "카카캇! 자, 보아라." 이어 혈의환사는 어두워진 밤의 대지를 향해 외쳤다. "땅의 영(靈)이여… 나의 몸을 받아라." 지금까지의 음성은 천상의 옥음일 정도로 기괴한 소리가 새어나왔 다. 그리고 소리가 일자마자 경악할 일이 눈앞에 일어났다. 녹았다. 그의 몸과 심지어 핏멎 장포까지 스르르 녹아들고 있었다. 금소천은 아연하여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그, 그때와 똑같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의 몸이 녹아 내리다니…….' 그는 전일 황산에서 혈의환사의 몸이 녹아 버리는 모습을 숨어 엿 볼 수 있었다. 바로 귀문장도 막여사 등과 대치했던 장소에서였다.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혈의환사는 계속해서 녹아내리고 있었다. 어 느덧 거의 다 녹아든 혈의환사의 전신은 얼굴만이 지면에 달랑 놓여 있었다. "크카카캇! 금소천. 보아라. 이것이 역천(逆天)의 사술이다." 사술은 계속되었다. 머리가 녹고, 눈이 녹고. 입이 녹고, 완전히 녹아 버렸다. 녹아 버린 혈의환사의 모습이 완전히 땅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땅 속에서 혈의환사의 가공할 외침이 터졌다. "이제 땅의 영이 나의 사심(邪心)과 붙었으니. 방원 이십 장은 나 의 영역이다." 순간 금소천의 안색이 찰나지간에 변화를 일으켰다. "위험하다!" 그는 다급성과 함께 한 켠에 질려 있는 아사공주에게 일장의 장력 을 내뿜었다. 아사공주는 공포에 질려 있다가 느닷없이 금소천의 장력이 날아들 자 대경하여 외쳤다. "소천……." 펑! 금소천의 장력이 그대로 아사공주를 후려쳤다. "아앗! 다. 당신이……." 아사공주는 장력에 의해 이십 장 밖으로 날았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의 상처도 입지 않았다. 금소천의 경력은 단지 그녀를 이십 장 밖까지 날렸을 뿐이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사공주가 이십 장 밖으로 벗어나자마자 실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 다. 이십 장 방원의 모든 것들이 형체도 없이 녹아 버리는 것이었다. 순식간에 방원 이십 장 주위는 그저 시뻘건 혈토로 변해 있을 뿐이었 다. 금소천은 허공 세 치 가량에 둥실 떠 있었다. '지. 지독한 사공(邪功)이다.' 금소천은 지면을 내려다보며 치를 떨었다. 한 걸음만 늦었어도 저 꼴을 면치 못했으리라 생각하니 끔찍하기조차 했다. 그는 혈의환사 담사우의 모든 말이 결코 헛소리가 아님을 실감했 다. '이놈 앞에서는 결코 펑범한 무학으로는 상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이다.' 그의 두 눈이 번쩍 신광을 뿜었다. '적어도 천왕지존이 되겠다고 다짐한 나 금소천이다.' 그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어 그의 모습이 찬연한 신위를 내 뿜기 시작했다. 가히 일대종사(一代宗師)의 풍도가 전신으로 뿜어져 나왔다. 천천히 전신의 백삼이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한 쌍 몽목에서 이글이글 눈부신 신광이 불타 올랐다. 한 켠에서 지켜보는 아사공주는 공포와 블안에 휘감겨 있었다. '아, 정말 무서운 마인인데… 과연 소천이 저 악마 같은 놈을 처리 할 수 있을까?' 그녀의 가슴은 태어난 이래 가장 조그맣게 오그라들었다. 그때였다. 시뻘겋게 변한 지면에서 가공할 핏빛의 혈류(血流)들이 분수처럼 솟구쳤다. 파파꽈파팟! 시뻘건 혈류들은 무섭게 허공의 금소천을 맹타해 들었다. "어딜!" 금소천의 눈빛이 빛을 뿌리며 쌍수(雙手)가 폭사해드는 혈류들을 후려켰다. 꽝! 꽈르르르! 그의 쌍수는 수천 갈래로 짓쳐드는 혈류들을 정통으로 맞이해야 했 다. 혈류들이 산산조각나며 주위를 완전 핏빛 일색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금소천은 혈류의 공세를 완전히 막아내지 못했다. 눈부신 한 가닥 혈류가 빠져나와 금소천의 어깨를 맹타했다. "으읏!" 금소천은 회미한 고통성을 발했다. 주르르……. 혈류가 격타한 어깨 부분의 옷이 순식간에 녹아 버렸다. '으… 만약 내가 금갑천체공(金鉀天體功)을 익히지 않았다면 이 팔 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등줄기에 손마디만한 굵은 전율이 느껴졌다. 순칸 땅 속으로 녹아들었던 혈의환사의 모습이 유령처럼 되살아났 다. "대단한 놈 나의 두 가지 사술을 가볍게 받아내다니……." 금소천은 짐짓 호기롭게 웃었다 "후후후. 겨우 그따위 잡스러운 사술로는 나 금소천을 어쩌지 못할 것이다." "크카카! 그렇다면 나 담사우의 진정한 절학을 맛보여 주마." 혈의환산는 웃고 있던 입을 그대로 확대시켰다. 그러자 입에서 하 늘을 단숨에 꿰뚫고도 남을 엄청난 위력의 혈기가 뿜어졌다. 콰르르르……. 금소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그는 즉시 쌍장을 무섭게 내뻗었다. 꽝! 콰콰쾅! 지면 수십 겹이 벗겨져 허공 중에 흙탕을 이루었다. 분분한 흙먼지 속에서 그들은 각기 일 보씩 뒤로 물러났다. "음……." "큭! 썩어도 준치라더니, 과연 천왕지맥을 이은 놀랍구나." 그러나 그들은 이내 재차 무시무시한 격돌 속으로 치달렸다. 꽝! 꽈르르릉! 하늘이 눈을 감고 땅이 귀를 막을 공전절후의 일대 격돌이 아닐 수 없었다. 관전하고 있는 아사공주는 입과 눈을 있는 대로 크게 벌렸다. '정말 믿기지 않는 무공이야.' 그녀는 이런 대격돌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었다. 일순 금소천의 쌍장이 눈부신 금빛의 광채를 보였다. "금불장!" 황교의 최고 비전절학이 시전된 것이었다. 꽈꽝! 금불장이 혈의환사의 혈기에 무섭게 격돌을 일으켰다. 혈의환사의 전신이 충격에 의해 미미하게 비틀거렸다. 그러나 금소천은 결코 한 치의 틈도 주지 않았다. "다라십팔검(陀羅十八劍) 중 최절초 색혈나라(索血陀羅)!" 그는 이어 사정없이 자신의 오른손을 휘둘렀다. 전신의 모든 내력 이 담긴 수강(手 )은 혈의환사의 좌측 어깨를 내려쳤다. 그러나 내려치는 순칸, 오히려 금소천은 내심 전율의 당혹성을 터 뜨리고 말았다. '이럴 수가?' 분명히 그의 오른손은 혈의환사의 왼쪽 어깨를 내려쳤지만, 그것은 흄사 안개 속을 강다한 듯 조금의 격타감도 주질 않았다. 그가 당황한 순간, 혈의환사는 입으로 가공할 혈기를 내뿜었다. 혈 기는 그대로 금소천의 가슴을 정통으로 후려치고 말았다. "으윽!" 금소천은 피화살을 뿜으며 뒤로 주르르 사장이나 밀려났다. 혈의환사는 득의양양의 괴소를 터뜨렸다. "크카카캇! 혈환마공(血幻魔功)은 천하의 그 어떤 공세나 무기로도 파괴할 수 없다." 금소천은 들끓는 기혈을 추스르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그는 뿌드득 한차례 이를 갈아붙였다. "큰 소리치기엔 아직 이르다." 그는 무겁게 쌍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기이하게도 푸르스름한 선 이 마치 거미줄처럼 나타나기 시작했다. 순간 혈의환사는 흠칫하며 경악성을 발했다. "마교(魔敎)의 청살지주공(靑殺蜘蛛功)!" 그는 자신도 모르게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바로 그때 선 하나하나가 가공할 경력이 되어 혈의환사의 전신을 얽어들었다. 그러나 혈의환사의 사술은 역시 놀라웠다. 그는 조금의 방비도 않 고 금소천의 공세를 고스란히 받아들였다. 마치 생을 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의외의 것이었다. 금소천의 공세는 혈의환사의 전신을 뚫고 조금의 타격도 주지 못한 채 무위로 끝나 버린 젓이다. 그의 장담 그대로 그 어떤 공세든 아무 런 소득을 얻을 수 없었다. "크카카캇! 금소천. 이제 네놈의 목올 비틀어주겠다." 혈의환사는 천천히 금소천을 향해 다가들었다. 지독한 살광이 무섭게 금소천의 숨통을 조여들었다. 금소천은 그 자리에 우뚝 서서 장중한 신색을 보였다. "좋다, 담사우! 지금부터 나 금소천의 진면목을 인식시켜 주도록 하마." 그는 품속에서 하나의 금빛 환을 꺼내 들었다. 아홉 마리의 용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는 환이었다. 그 금빛 환올 대한 순간. 혈의환사의 핏빛 전신이 경악과 전율을 일으켰다. "제, 제황삼군 증 용군(龍君)의 구천용환(九天龍環)?" 제황삼군(帝皇三君). 천년 전의 파천고인(破天高人)들. 그 위대한 신위가 금소천을 통해 일천 년 만에 다시 나타나는 순칸 이었다. 금소천은 비천석부에서 얻은 제황삼군 중 용군의 독문병기 구천용 환을 꺼내든 것이었다. 그는 구천용환을 치켜들며 장엄한 외침을 터뜨렸다, "구천용환은 만사(萬邪)의 극성(克性)이다. 네놈의 사술은 결코 통 하지 못할 것이다." "으……." 혈의환사는 부지중 가슴 저린 신음성을 흘렸다. 정통의 무공이 아 닌만치 기를 제압하는 병장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는 탓이었다. 그러나 그는 천왕지존의 야망을 불태우는 천왕지맥이었다. 그의 경악은 일순 더욱 가공할 살기로 뒤바뀌었다. "크카카카핫! 구천용환이 만사(萬邪)의 극성이나 혈사환마문의 사 공(邪功)은 만사(萬邪)의 제황이다." 동시에 그는 천천히 핏빛의 장포를 꽉 펼치기 시작했다. 스스스슷……. 그의 모습이 찰나지간에 다시금 핏빛 안개와 같이 변해 버렸다. 이 어 하늘과 땅을 단숨에 죽이고도 남을 무시무시한 사기(邪氣)가 방월 수십 장을 진저리치게 만들었다. 휘류르르릉! 엄청난 사의 폭풍이 회오리치는 전율의 격탕을 이룬다. 금소천의 안색은 입정한 노승의 그것처럼 변해 있었다. 그는 수중의 구천용환을 천중결(天中訣)로 끌어올렸다. 번쩍! 번쩍! 구천용환이 눈부신 금광을 무지개처럼 번쩍였다. "구천용환 삼식 중 마지막 초식인 용후천(龍吼天)!" 천신(天神)의 외침인가? 금소천의 외침이 밤의 천마산을 장엄하게 뒤흔들었다. 우우우웅……. 창룡음(蒼龍音). 만악(萬惡)을 경복시키는 용음이 터졌다. 그리고 놀랍게도 아홉 마리의 눈부신 금룡이 구천용환에서 용트림 을 일으키며 벗어났다. 구룡은 혈의환사를 향해 뇌성벽력같이 휘몰아쳐 들었다. 혈의환사의 전신은 더욱 짙은 혈무로 변했다. "우우우… 나는 만사의 제황이다. 만사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천지 에 가득한 사의 정화는 내 몸에 모여라. 우우……." 다음 순간, 혈의환사의 혈무가 가공무비할 대폭발을 일으켰다. 츄우으으와와와! 핏빛 혈무가 무섭게 확장되며 금소천의 전신으로 밀려들었다. 아홉 마리의 금빛 용과 가공할 핏빛의 장막이 한데 뒤엉켰다. 무엇으로도 형용할 수 없는 일대 폭음이 터졌다. 콰콰쾅! 콰르르르르……! "으윽!" "크윽……." 뒤엉켜 요동치는 격돌의 와중에서 두 마디 비명이 터졌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가? 허공 중에 흩어졌던 혈무들이 서서히 엷어졌다. 금소천의 모습만이 보일 뿐 혈의환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금소천은 수중의 구천용환을 든 채 태산같이 우뚝 서 있었다. 문득 땅 속에서 한 소리 비통한 외침이 터졌다. "금소천. 이번에는 네 죽음을 미루마. 그러나 두고 보아라." 목소리는 점점 작아지고 있었다. 이는 곧 혈의환사가 급속도로 멀 어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으음… 땅 속에서도 저런 속도가 나온다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대단한 재간이 아닐 수 없었다. 일반적인 토행술과는 그 차원이 다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나 담사우는 이 순간부터 맹세한다. 십대천왕 중 너 금소천을 가 장 큰 적수로 여길 것이다, 크카카컷! 두고 보아라. 너 금소천 곁췌 는 알게 모르게 나 담사우가 있을 것이다. 조심하거라 크카카캉--!" 혈의환사의 처절한 괴소성이 길게 여운을 끌며 사라졌다. 금소천은 여전히 그림같이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을 뿐이었다. 마음 한구석에 육중한 부담감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혈의환사와의 격돌은 정신만이 아니라. 육체적으로도 막대한 충격 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 결과는 곧 드러났다. 한편 아사공주는 숨죽여 지켜보다 환성을 터뜨렸다. "소천! 다, 당신이 이겼어요." 그녀의 기쁨에 차 그대로 금소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금소천의 다급한 외침을 터졌다. "나를 건드리지 마시오! 금소천의 안색이 돌연 백짓장으로 변했다. 그는 이어 울컥 하며 선혈을 내뿜었다. "과, 과연 십대천왕 중 일 인이다. 아수마궁을 괴멸시킨 구천용환 으로도 놈을 이기지 못하다니……." 전신에 극도의 떨림이 일었다. 극도의 내상을 입은 탓이었다. "으… 구천용환 삼식을 완전 익히지 못한 상태에서 시전한 것이 실 책이었다. 차라리 완전히 익힌 다른 절초로 동수(同手)를 이루는 것 인데……" 쿵! 금소천의 신형이 무겁게 지면으로 침몰되었다. 소천--! 아사공주는 대경다급하여 황급히 쓰러진 금소천을 끌어안았다. "소천……." 그녀는 안타깝게 불러 보았다. 그러나 금소천은 이미 깊은 혼절에 빠져들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식는다.' 아사공주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의 체온은 급속도로 식어가고 있었다. "소천. 제발 눈을… 눈을 떠 봐요. 제발…… 그러나 금소천의 몸은 차갑게 식어갈 뿐만 아니라 뻣뻣하게 굳어가 기 시작했다. 마치 시체가 된 후, 사후 경직이 일어나는 것 같온 현 상이었다. '안돼!' 아사공주는 대경다급하여 금소천의 명문혈에 자신외 모든 내력을 주입시키려 했다. 그때였다. 돌연 차디찬 한 소리 외침이 터졌다. "그분의 몸에 내력을 주입시키면 안돼요!" 아사공주는 크게 놀라 옴성이 인 곳으로 시선을 주었다. 휘리리리릭! 홀연 그녀의 전면에 가공할 한기의 회오리바람이 일었다. 그리고 일신에 백의를 걸친 금발의 미녀가 모습을 나타냈다. 순간 아사공주는 내심으로 부지증 탄성을 터뜨렸다. 부드러운 금발에 빙결의 피부. 신비한 빙정(氷精)의 두 눈, 게다가 미간 사이에 회미할 붉은 점이 있어 더욱 신비한 절색미녀. 그녀는 바로 설궁 총호법인 하란미였다. '그때 복우산에서 본 여인들과 같은 꼬습이다. 하지만 그녀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은 것 같았는데…….' 설산성녀 냉한빙 등을 연상한 것이다. 하란미는 혼절한 금소천에게 시선을 못박고 있었다. 잘게 떨리는 그녀의 눈길은 아프도록 애잔한 기운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녀는 흔잣말을 하듯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저분은 지금 스스로 내력을 운기하고 있어요. 만일 타인의 내력이 주입된다면. 주화입마를 당해요. 내상이 너무 심해 내력은 모이지 않 고 전신의 피가 모두 굳어지고 있는 거예요." 아사공주는 하란미의 지적에 다급히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하란미는 시선을 아사공주에게 똑바로 주었다. "방법은 단 하나… 당신의 뜨거운 몸으로 저분의 굳고 있는 피를 녹이는 수밖에 없어요." 순간 아사공주는 순식간에 전신을 빨갛게 상기시켰다. 물론 하란미 가 뜻하는 하나의 방법 때문이었다. "음양조화(陰陽造化)에 의한 치료. 바로 그것만이 가능해요." 하란미는 금소천에게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제 모든 것은 당신이 결정한 문제예요." 금소천을 주시하는 그녀의 얼음같이 차가운 두 눈에 문득 뽀얀 안 개가 서렸다. '소천…….' 만 가지 마음 아픈 감회가 그 한마디에 함축되어 있었다. 몸은 차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뜨거운 여인 하란미였다. 그녀의 시선이 아사공주에게 향했다. "당신이 부럽군요." 그 한마디에는 그녀의 운명 같은 진한 안타까움이 역력히 들어 있 었다. '내 몸은 차다… 때문에 저분을 구할 수 없어.' 그녀는 더 이상 격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신형을 돌려 세웠다. "저분이 깨어나면 전해 주세요. 절대 궁주님과 부딪쳐선 안된다고 … 궁주님은 이미 명옥신공을 십이성 넘득했기에. 부딪치면 낭패뿐이 라고 전해 주세요." 이어 그녀는 무거운 탄식성을 발했다. "호오… 차라리 저분이 대설산에 들리시지 않았다면. 아무일도 없 었을 것을……." 한번 신형을 돌리자 그녀는 결코 금소천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주체할 길 없이 흐르는 눈물을 보이기 싫은 탓이었다. 아사공주는 하란미에게 물었다. "당신은?" 하란미는 이미 신형을 날려 사라지고 있었다. "하… 란… 미……." 그녀는 떠났다. 아사공주는 그녀의 흔적을 살피며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어 보 았다. "하란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