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26편 (26/79)
검왕 낙가유는 급히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주모님의 영을 받듭니다." 그는 고개를 돌려 금소천에게 정중허 말했다. "소협 안으로 드십시오." 금소천은 도저히 눈앞의 사실을 믿올 수 없었다. '대체 누군가? 누구기에 검왕의 지고한 신분으로 조금도 거리낌없 이 노복의 일을 수행하다니…….' 그는 신비의 여인에게 경악에 이어 짙은 호기심을 느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검왕 낙가유의 안내로 모옥에 들었다. 지극히 담백한 기운에 몹시 정갈한 한 칸 정실이었다. 속기(俗氣)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혼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금소천은 그 자리에서 한 덩이 만년화석이 되고 말았다. '천하에 이런 미녀가 있었단 말인가?' 지금 그의 뇌리 속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 최대의 찬사뿐이 었다. 그의 생각대로 전면에는 한 천하미녀가 자리하고 있었다. 나이는 대략 이십 세 가량 되었올까? 두 눈은 볼수록 신비로운 깊이를 지니고 있었으며, 오똑한 콧날은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의 흐름을 보이는 여인이다. 또한 붉고 도톰한 입술이 아리도록 시린 신선함을 품었고, 신학(神 鶴)의 그 선이 무색할 눈부신 목선의 흐름을 보인다. '으음… 도대체가 인간의 미(美)가 아니다.' 충격. 그것은 금소천에게 있어서 난생 처음 대하는 거센 충격이었다. 그는 여태껏 몇 명의 눈부신 절색미녀를 대할 수 있었다. 항주제일 명기인 취접향. 중원제일 거부인 장금방의 딸 장아영, 설 산성녀 냉한빙과 하란미. 그리고 아사공주……. 저마다 빼어난 미색의 천하미색들이다. '그러나 다 합쳐도 이 미녀만큼은 아름답지 못하다.' 그는 태심 신음성을 발했다, 미녀라는 말조차 오히려 누를 끼칠 만큼의 미녀. 전신 하나하나 모든 것이 사람의 심장을 쥐어짜고도 남을 천상천하 제일미녀. 결코 화려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 어떤 화려함도 이 미녀 앞에서는 손색이 있다. 살아 있었다 이 여인의 모든 아름다움은 볼수록 화려하고 눈부시게 살아나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사람의 마음을 잡아는 매력… 그렇다. 이 여인은 바 로 내미지상(內美之像)의 미녀다.' 내미지상(內美之像)! 문자 그대로 일신의 아름다움이 안으로 갈무리된 여인미상(女人美 像)을 일컬음이다. 내미지상의 특징은 한 번 보면 영원히 잊지 못할 강렬한 아름다움 을 퐁긴다는 것에 있었다. 천년에 한 명 날까말까 한 극히 희귀한 여인의 절미(絶美)였다. 금소천은 언제까지고 이 내미지상의 미녀 앞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 다. 그리고 보고 잇는 사이에도 그녀의 아름다움은 갈수록 은은하게 살아나고 있었다. 문득 그 미녀의 입술이 열리며 천향(天香) 같은 신비의 옥음이 터 졌다. "소협, 앉으세요" 일순 금소천은 그제야 빠져나간 넋을 불러들였다. 그는 여태껏 멍청하게 서 있었던 것이었다. '이 무슨 추태인가?' 그는 내심 씁쓸하게 고개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고맙소." 그는 짐짓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털쌕 의자에 걸터앉았다. 그의 모습에 내미지상의 미녀는 살포시 신비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이 또한 아쩔하도록 눈부신 충격을 주었다. "소녀의 천명(賤名)은 화예랑이라고 합니다 " 일순 금소천의 두 눈이 반짝 이채를 발했다. '화예랑……?' 그것은 마치 자신이 익히 알고 있는 이름을 들었다는 듯한 눈빛이 었다. 그러나 그것은 화예랑이 발견치도 못할 순간에 스쳐 지나갔다. 금소천은 서서히 자신의 진면목을 회복해 나갔다. "나는 금소천이라 하오." 화예랑은 고개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끄덕였다. "금소협에 대해선 진작부터 약간은 알고 있었어요." 그녀의 말에 금소천은 흠칫했다. 화예랑은 눈을 사르르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아마 금소협께선 소녀의 동생을 대하신 적이 있으실 거예요." "동생?" 금소천은 무슨 말이냐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화예랑은 잠시 그윽한 시선을 금소천에게 주었다. 이어 그녀는 희 미한 탄식성을 발했다. 천지가 같이 탄식을 해 버릴 만큼 극히 신비한 탄식성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에게는 그것마저도 표현 못할 매력이었다. "호오… 세월이 인간을 변하게 하는지, 아니면 환경이 인간을 변화 시키는지……." 순간 웬일인지 금소천은 뜨끔한 표정을 보였다. 화예랑은 의미심장한 중얼거림을 흘린 후, 이어 나직한 교소를 터 뜨렸다. "호호! 소녀이 동생은 화예미… 항주성에 잠시 머물면서 취접향이 라 불리기도 했지요." 순간 금소천은 짐짓 크게 경악한 모습을 보였다. "취접향, 그녀가 바로 화소저의 동생이었단 말씀이오?" 화예랑은 방긋 황홀한 미소를 보였다. "동생이 그랬어요. 천하에서 자신의 배우자가 될 분은 오직 한 분, 금소협뿐이라고." 그러자 금소천은 난색의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것이……." 화예랑은 달콤한 웃음을 홀렸다. "소녀는 대체 금소천이란 분이 어떤 사람이기에 동생의 마음을 사 로잡았나 몹시 궁금했어요 헌데 지금 뵙고 보니 동생이 제대로 사람 을 보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말을 마치고 미간에 살짝 그늘을 깔았다. "예미, 그 아이의 뜻이 이루어졌으면 좋겠지만……."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방긋 웃으며 금소천을 그윽이 주시했다. 금소천은 화예랑의 자꾸만 살아나는 신비로운 아름다움에 달아나는 정신을 간신히 수습해야 했다 그가 이럴 정도이니 만일 다른 사람들 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화예랑은 방긋 웃으며 옥음올 발했다. "금소협. 소려를 도와주실 수 있나요? 금소협에게는 아주 쉬운 일 이에요." 그녀는 눈으로 금소천의 의향을 물었다. 금소천은 그녀의 미색을 벗어나기 위해 크게 심호흡을 했다. "그 부탁이 무엇인지부터 알아봅시다. 난 손해 나는 장사는 딱 질 색이니까." 화예랑의 신비영롱한 봉목에 반짝 이채가 스ㅊ다. 그러나 그 이채 뒤에는 다소 그늘진 암영이 내려앉았다. 금소협은 너무도 심기가 깊어요. 천하에서 소협의 심기를 당할 자 는 그 누구도 없을 거예요. 금소천은 어깨를 으쓱했다. "크ㅋ! 예쁜 입으로 말조차 예쁘게 하시는군." 화예랑은 그의 말투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계속 말했다. "그러나 심기가 너무 뛰어나면 언젠가는 자신의 심기에 자신이 당 할 경우도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에요." 깊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말이었다. 금소천은 거북한 표정을 하며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 정도로 평가받을 능력은 없소 이다." 화예랑은 그 문제에 대해선 더 이상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본론을 꺼냈다. "알겠어요. 그 문제에 관해서는 그만하도록 하지요. 혹시 금소협께 선 현 무당의 장문인이 누군지 아시나요?" 금소천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자하진인(紫霞眞人)." 화예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현 무당파의 장문인은 자하진인이지요." 그녀는 정색을 하며 말을 이었다. 이 순간 그녀의 전신에서는 표현하기 힘든 고아함파 신비한 위엄이 은은히 풍겨나고 있었다. "소녀의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라 바로 그 자하진인과 관련이 있어 요. 음… 무당파에는 상청궁(常靑宮) 궁주로 있는 뇌천우사(雷天雨 師)란 분이 있지요." 순간 금소천은 내심 한 소리 경악을 발했다. '뇌천우사!' 그로서도 익히 듣고 있는 인물이 아니었던가? 정사쌍존 보다도 한 수 앞서는 손속을 지녔다는 신비의 인물.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금소천은 그가 십대천왕 중 한 명인 천왕 지맥의 인물임을 알고 있었다. 화예랑의 말이 계속되었다. "그분은 무당개파 천년 이래 가장 뛰어난 인재예요. 무당의 모든 비전절예를 터득하고 게다가 도문(道門)의 모든 절예를 한몸에 지녔 어요. 어쩌면 천년 전 무당의 개파조사인 천무진인(天武眞人) 장삼봉 (張三峯) 조사보다도 더 뛰어나신 분일지도 모를 일이에요. 그분은 백년 전 단 한차례 강호에 출도하신 적이 있어요 그분은 당시 정사십 팔대고인 중 천살화각(天殺火角), 식인혈마. 고루마군( 魔君) 등의 합공을 받아 십 초내에 그들을 제압했어요." 정사십팔대고인 중 삼 인의 합공이 십초지적(十招之敵)이 되지 못 했다. 그것은 실로 믿을 수 없는 가공할 비사(秘史)였다. 금소천이 놀랄 틈도 없이. 화예랑은 말을 이었다. 그분은 천성적으로 악올 너무도 증오하신 탓에 악인이라면 인정 사 정 없이 무조건 살수를 펼쳤어요. 그로 인해 당시 장문이시던 능허자 (陵虛子)께서 장문령(長門令)으로 뇌천우사를 영원히 상청궁을 떠나 시지 못하도록 절대금령을 내리셨어요. 현 무당장문인인 자하진인은 사형의 인재됨을 아껴 뇌천우사를 백년금령(百年禁令)에서 풀어 드리 려 하지만……." 화예랑은 잠시 말을 끊은 후 계속 말을 이었다. "이미 돌아가신 선사(先師)가 내리신 영을 제자의 신분으로 감히 해제시킬 수 없는지라, 뇌천우사는 작금에 이르기까지 절대금령에 묶 여 있는 것이지요." 문득 그녀의 두 눈이 반짝 기광을 뿌렸다. "헌데. 능허자의 절대금령을 풀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있어요. 그것은 능허자께서 마련한 세 가지 문제를 푸는 것이에요." 그러자 금소천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가지 문제?" 화예랑은 눈빛을 반짝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하지만 그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난제(難題)들이에요. 무 당 백년 이래로 그 난제를 푼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헌데 이십 년 전 능허자의 막내제자인 한 분이 세 가지 난제 중 두 가지를 푸실 수 있었어요." 일순 금소천은 무척 호기심이 동한다는 듯 다급히 물었다. "그가 누구요?" 화예랑은 입술을 지그시 물며 한 자 한 자 힘주어 대답했다. "그분은 진정 일세의 기인… 정사십팔대고인 중 한 분이시며 천하 제일성의 성주이신 정도무림맹주 용천제군 금화성이에요." 순간 금소천의 전신이 거센 충격으로 인해 굳어 버렸다. 용천제군 금화성. 그는 바로 금소천의 부친이 아닌가? 화예랑의 입을 통해 쏟아잔 말은 금소천을 벼락치듯 충격속에 몰아 넣었다. 자신의 부친이 정사십팔대고인 증 한 명이며 무당파 능허자 의 속가제자였다니! '그, 그럴 수가…….' 한편 화예랑은 금소천의 경악을 지켜보았다. 그녀의 전신에 이해 못할 짙은 슬픔의 기운이 파문처럼 번졌다. 왜? 무엇 때문에? 화예랑은 계속 말했다. "그분은 정사십팔대고인 중 가장 연치(年齒)가 어리신 분이었으나 정도에선 비천제황문주 단리운극 노선배를 제외하고는 최강의 고인이 셨어요." 금소천은 이제 타인의 입을 통해 부친의 생애를 회고하고 있는 것 이었다. 화예랑은 흔들리는 눈벚으로 말을 이었다. "그분이 두 가지 난제를 푼 후 마지막 난제를 풀려고 하는데. 천하 제일성에서 통보가 날아들었어요. 그분의 부인께서 해산(解産)의 조 짐이 보인다고… 해서 그분은 난제 풀기를 뒤로 미루고 성으로 달려 가셨어요. 그리고 그분이 성에 돌아가신 날 천하제일성은 붕괴되고 말았어요." 금소천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래. 그날은 꼽시도 뇌성벽력이 치던 날이었다지…….' 가슴이 아팠다. 부친과 함께 흥수의 검에 의해 관통당한 가슴이 아팠다. 화예랑의 전신이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천하제일성의 봉괴는 아직까지도 무림의 수수께끼로 남아있어요. 용천제군 금화성, 그분의 성품은 너무도 순후하고 인자하여 누구와 깊은 원한을 가질 분이 아님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 사실이에요. 그분의 평생은 강호 평화를 위해 바쳐진 것이라 할 수 있어요." 화예랑은 잘끈 입술을 물었다 "이것은 분명 누군가 그분이 뇌천우사를 위해 세 가지 난제를 푸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일 것이에요. 그것을 막기 위해 살수를 쩔쳤음 이 분명해요." 금소천은 미미하게 전신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알 수 있어. ㅋ! 아버지는 대심(大心) 의 인물이었어.'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오직 금소천만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화예랑은 정색을 하여 말했다. "부탁이란 다름이 아니고 뇌천우사를 묶고 있는 절대금령의 마지막 난제를 풀어주십사 하는 것이에요." 순간 금소천의 긴 검미가 꿈틀 요동을 일으켰다. "마지막 절대금령이라……." 그는 고심에라도 빠지는 듯 미간을 쩡그겄다 이어 그의 눈동자가 날카로운 기광을 발하며 화예랑에게 향했다. "그보다 대체 소저의 진정한 신분은 무엇이오?" 화예랑은 신비영롱한 봉목 가득 희미한 암영을 담았다. "그, 그것은……." 그녀는 한동안 깊은 망설임을 보였다. 이어 그녀는 모종의 결심을 굳힌 듯 잘끈 입술을 깨물었다. "소녀가 밝힐 수 있는 것은 소녀의 사문뿐이에요. 소녀의 사문은… 천외천부(天外天府)라는 곳입니다." 순간 금소천의 눈꼬리에 파르르 진한 경련이 일었다. "천외천부?" 그의 얇은 입술이 더욱 얇아지며 입술 주름 착나하나가 벼락치듯 충격의 여운을 보였다. 천외천부. 그 한마디에 금소천은 엄청난 격동을 보이고 있었다. 입술 꼬리가 말려들며 그의 눈멎은 새파갈 섬광을 뿌린다. 어찌 보면 경멸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조소 같기도 했다. 도무지 그의 심사를 짐작할 수 없는 격동의 파문이었다. 한참을 그런 식으로 복잡 미묘한 표정을 보이던 금소천의 안색이 점차 무겁게 굳어졌다. 그의 눈 깊은 곳에선 끊임없이 새파란 섬광이 터지며 화예랑을 무 섭게 노려보았다. 화예랑은 화려한 속눈썹을 파르르 떨면서도 결코 금소천의 무서운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잠시 숨막히는 무거운 정적이 지났다. 문득 금소천의 한 쌍 용목(龍目)에서 가공할 신광이 폭사되었다. "그래. 이제야 생각이 났어… 그대가 누군지 알 것 같소." 금소천은 화예랑의 동그갈 두 어깨를 무섭게 잡았다. 그의 두 눈은 화예랑의 눈에 고정된 채 용광로같이 타올랐다. '아…….' 화예랑은 자신의 모든 심혼이 전율 속에 금소천의 눈 안으로 회오 리치며 빨려드는 기분을 느꼈다. 금소천은 입술을 기이하게 비틀며 괴소를 흘렸다. "흐흐, 선(宣) 누님.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할 필요가 있겠소?" 화예랑은 창백하게 질린 안색으로 전신을 떨었다. 금소천은 분명히 그녀를 향해 선(宣)누님이라 불렀다. 그것은 곧 두 사람이 익히 알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구장로(九長老)에 대한 복수는 이미 잊은 지 오래요……. 십이 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의 시신 앞에서 무릎을 끓고 통렬한 울음을 터뜨 렸을 때… 나 금소천은 복수 따위를 잊기로 했었소. 나의 아버지. 그 잘나신 양반은 나에게 복수 따윈 결코 물려주시지 않았단 말이오." 그의 음성은 오열에 가까웠다. -- 모든 일을 네 뜻대로 해라. 선친 용천제군 금화성의 음성이 생생하게 귓전을 때렸다. "소천……." 화예랑의 음성이 잔잔한 경련을 일으켰다. 이는 금소천의 말을 인 정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금소천은 꽉 움켜쥐었던 화예랑의 어깨를 놓았다. "ㅋ! 어쩐지 이상했어 항주성의 취접향… 아니 화예미. 그 계집이 이유도 없이 접근을 하고……." 그는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핫핫핫! 선 아니 화누님, 염려 마시오.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 으로도 복수는 없을 것이니……." 금소천의 앙천대소가 그치며 대신 무서운 신광이 폭사되었다. "뇌천우사의 문제는… 아버님한테서 들은 적은 없지만 반드시 나 금소천이 해결하겠소." 금소천은 전신 가득 무섭도록 차가운 냉기를 피웠다, 부탁을 승낙 하면서도 그의 태도는 냉랭하기 이를 데가 없엇다. 무언가 복잡 미묘 한 문제가 두 사람 사이에 있음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명심하시오.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내 눈앞 에 나타나지 마시오. 화예미, 그 계집도 또한 마찬가지요." "소. 소천……." 화예랑은 가슴 무너지는 당혹성을 발했다. 그러나 금소천은 이미 신형을 일으키고 있었다. "백상검이오. 이것을 검왕 낙가유에게 돌려주시오. 그리고 이것은 ……." 그는 품속에서 탄 핀 책자를 꺼내 던졌다. "포달랍궁에서 실전된 천단비급(天丹秘 )이오. 포달람궁의 사존자 에게 전해 주시면 되오. 향후 아수마궁을 상대하는데 있어서 도움이 클 것이오." 그는 비천석부에서 얻은 포달랍궁 최고의 비전비급인 천단비급을 간단하게 넘겨주었다. "으하핫핫! 세월이 인간을 변하게 만들고. 환경이 인간을 변하게 한다고?" 앙천대소와 함께 금소천은 모윽의 방을 떠나고 말았다. 화예랑이 멈칫하며 말리려 했으나, 이미 그의 신형은 방을 벗어난 후였다. "으하핫. 두 번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시오. 으하하하!" 앙천대소성이 중극봉을 흔들며 그의 모습은 여운 속에 사라져 버렸 다. 화예랑은 망연자실하여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소, 소천. 그게 아니야……." 그녀의 서늘한 봉목 가득 핑그르 수정 같은 눈물이 솟아났다. "바. 바보같이…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이렇게 가 버리면… 난 어떡하란 말이야?" 눈둘은 뺨을 타고 턱 끝에 이슬처럼 맺혔다. 그것은 소리 없는 통곡의 눈물이었다. 그때였다. 그녀의 전면에 두 개의 인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검왕 낙가유와 또 다른 인물. 놀랍게도 그는 바로 항주성이 갑부 장금방(張金方)이었다. 과거 금소천에게 조건 없이 수많은 거액의 돈을 내주었던 인물. 장 금방.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인과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장금방은 화예랑을 향해 다급히 물었다. "화소저.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화예랑은 턱 끝에 매달린 눈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한참을 침묵했다. 이윽고 떨리는 음성으로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모든 것이 잘됐어요. 그러면서도 또한 잘되지도 못했어요." 애패모호한 대답이었다. 그러나 장금방은 어렴풋이나마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묻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바보같이……." 문득 그녀는 전신을 휘청거렸다. 밀어닥치는 격동에 심기를 다친 탓인 것 같았다. "주, 주모!" 검왕 낙가유가 대경하억 달려들었다. 화예랑은 섬섬옥수를 들어 가볍게 저었다. "아니. 되었어요. 혼자… 있고 싶어요." 사르르……. 그녀는 두 눈을 무겹게 내리깔았다. '소천… 당신과 나. 결코 이대로 끝낼 수는 없는 거야.' 또 한 방울 눈물이 격동치는 그녀의 심정인 양 송글 솟았다. '이대로 끝나면 난 죽어서도 금백부( 伯父) 앞에 용서받지 못할 죄 인이 되고 말 거야.' 금백부. 그녀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아마도 금소천의 선친 용천제군을 말 하는 것 같았다. '아니, 그보다 소천… 그대 앞에 떳떳할 수가 없어.' 그녀의 눈꼬리가 극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툭! 눈물이 떨어지고 복우산의 밤은 깊어갔다. 20장 혈의환사가 도발을 시작하다 옥문관 근처에는 작은 야산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천마산(天馬山). 흡사 한 마리 천마가 하늘을 웅비하는 형상을 지녔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천마산에는 석양이 내리며 옥문관을 거쳐온 바람이 세외의 거친 숨 결을 토한다. 오늘따라 석양은 섬뜩하리만큼 핏물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한 석양을 밟으며 천마산의 한 계곡에 두 개의 인영이 모습을 나타냈다. 일남일녀(一男一女). 천하미청년과 천하절색의 벽안미소녀. 바로 금소천과 아사공주였다. 금소천은 중극봉의 볼일을 끝낸 후, 아사공주와의 약속대로 그녀를 옥문관까지 데려다주려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사히 천마산의 계곡을 빠져나갔다. 거기서부터 가파른 산길이 시작되었다, 핏빚 석양 위로 음산한 땅거미가 밀려들었다. 금소천은 침증한 신색으로 계속해 침묵을 지켰다. 아사공주는 간간이 그의 동정을 조심스레 살폈다. '벌써 사흘째… 이런 모습이야.' 그녀는 금소천의 침묵에 더 이상 참을 길이 없었다. "저… 이것 보세요." 금소천은 말없이 시선만 그녀에게 주었다. 아사공주는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당신 중극봉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저도 같이 고민을 할 수 없 을까요?" 그녀의 두 눈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금소천은 지그시 그녀를 웅시했다. 그의 입가에 부드러운 신비의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아사. 당신의 그 마음만으로도 고맙소." 순간 아사공주는 가장 예쁘게 환한 웃음을 보였다. "걱정이 있으면 저에게 말씀하세요." 여자의 변신은 죄가 없다던가. 항상 어리광이던 그녀에게 자상한 누이와도 같은 정이 엿보였다. "제 힘으로 힘들면 오빠에게 그 걱정거리를 풀어 달라고 하겠어요. 오빠는 나 아사의 말이라면 무엇이든지 들어주시거든요." 그녀의 오습엔 단 한 점 사심의 티끌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신선한 아침 이슬과도 같이 맑고 깨끗한 모습과 마음이었다. 금소천은 내심 탄성을 터뜨렸다. '진정 이토록 순진할 수가……?' 그의 입꼬리에 자신도 모르게 미소가 피어 올랐다. '도저히 아수마궁의 소녀임이 믿어지지가 않는군.' 아사공주는 금소천이 계속 미소를 보이자 안도의 표정을 했다. "그래요. 걱정이나 슬픈 일은 서로 나누어 가져야……." 그녀는 기분이 풀어진 듯 다시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의 상태는 오래 가지 못했다. 돌연 그녀는 말을 중단하며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저… 저게… 뭐지요?" 금방이라도 공포의 외침을 터뜨릴 그런 전율이었다. 금소천은 아사공주의 시선이 머문 곳으로 눈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