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24편 (24/79)
전신의 의복 또한 특이햇다. 섬뜩할 정도의 핏및 장포엿다. 두 눈은 살무사의 그것과 같아 연신 기괴한 사기를 내뿜고, 유독 시뻘건 입이 너무도 커 어린아이의 머리 하나는 그대로 삼켜 버릴 것 만 갈았다. 기괴하기는 손톱도 예외가 아니었다. 근 한 자 길이에 흡사 독수리 의 부리처럼 으스스하게 휘어져 있었다. 천하괴인은 지금 두 눈을 번들거리며 석대 위의 이국 미녀를 주시 하고 있었다. "쩝!" 괴인은 군침이 고인 듯 입맛을 다셨다. 그 소리에 석대 위의 이국 미녀는 부르르 전율을 일으켰다. 동시에 발악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 귀신 놈아! 본 공주에게 감히 이런 무례를?" 분노와 경악을 함께 내포한 음성이 서툰 한어로 튀어나왔다. 그녀 는 바로 문제의 아수마궁 아사공주였다. 천하괴인은 물론 인간의 심장만을 즐겨 먹는 식인혈마였다.. 식인혈마는 귀신 숨 넘어가는 듯한 괴소를 흘렸다. "크르르… 계집년! 계속 앙탈한다면 껍데기를 흘랑 벗겨 놓고 말겠 다." 아사공주는 순간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앙탈을 하지 않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식인혈마의 갈고 리 같은 손톱이 그의 상의를 찢어가기 시작했다. 찌익! 찌이익! 퉁! 상의가 찢겨지며 두 개의 젖가슴이 솟았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젖가슴은 백옥빛이고, 그 위의 두 알 열매는 수줍게 익은 연분홍 빛깔이었다. 아사공주는 흔비백산하여 대경성을 터뜨렸다. "이, 이놈아! 지금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냐?" 백옥빛 젖무덤이 경악으로 인해 바싹 굳었다. 기이하게도 그것이 더욱 농염한 매력을 더하고 있었다. 식인혈마는 구태여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녁의 상의를 완전히 찢어 버렸다. 곧 눈부신 유혹의 상체가 완전히 드러났다. "크르르… 계집년! 그리 걱정할 것 없다. 본 혈마는 색 따윈 좋아 하지 않는 군자이니까." 식인혈마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기겁을 할 정도로 징그러운 웃음이었다. "이… 나쁜……." 아사공주는 극도의 분노에 욕설조차 제대로 퍼붓질 못했다. 그녀는 십칠 년 동안 타인에게 자신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지저분한 마인 앞에 치욕을 드러냈으니 너무 도 당황한 것이었다. 식인혈마는 시뻘건 입술에 끈적한 침을 묻혔다. "흐흐, 네년이 천하절색이나 나는 결코 음심을 느끼지 않는다." 스윽! 길다란 손톱으로 그녀의 젖가슴을 슬쩍 건드렸다. "크르르… 이토록 싱싱할 수가? 내 평생 맛본 심장 중 가장 맛있는 심장이겠는걸? 크르르……." 식인혈마는 지나치게 기분이 좋았는지 시뻘건 손톱으로 석벽을 그 었다. 그러자 혼백을 빼앗는 섬뜩한 음향이 일며 석벽이 두부 갈라지 듯 갈라졌다. 아사공주는 그 광경에 파르르 진저리를 쳤다. '저 손톱으로… 나. 나의 가슴을?' 끔찍했다. 생각만 해도 혼백까지 죽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불행 하게도 그녀는 일체의 반항도 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크르르… 쩝! 쩝! 그럼 어디 맛을 볼까?" 식인혈마의 손톱이 천천히 아사공주의 가슴으로 향했다. 석벽을 두부처럼 갈라 버리는 손톱이 아닌가. 아사공주는 사색이 되어 절규를 터뜨렸다. "아. 안돼. 제발……." 그러나 식인혈마의 손톱은 이미 그녀의 심장 쪽 젖가슴에 닿고 있 었다. "크르르… 귀여운 것." 아사공주의 풍만한 젖무덤에 식인혈마의 손톱이 닿았다. 순간 그녀의 푸른 벽안이 잿빛으로 변해 버렸다. '안… 돼!' 그녀는 눈동자가 찢어질 정도로 부릅 치켜떴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돌연 광장으로 통하는 석문이 굉음과 함께 박살이 나 버렸다. 쾅! 파직! 막 아사공주 가슴을 가르려던 식인혈마의 경악성이 터졌다. "어떤 놈이냐?" 순간 석문이 부서져 나부끼는 짙은 돌 먼지 속에서 차가운 냉갈이 터졌다. "알 것 없다. 단지 네놈은 죽기만 하면 그만이다." 식인혈마가 제대로 대응할 틈도 없었다. 엄청난 검광이 냉갈보다 더 쾌속하게 그를 휘감았다 "사혼섬--!" 식인혈마는 전신에 화끈한 감각을 느꼈다. "늦었다." 늦은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검광이 스친 뒤 식인혈마의 두 팔과 두 다리는 자취도 없이 사라지 고 말았다. "으으… 꾸룩! 내 팔… 내 다리……." 식인혈마는 시뻘건 고깃덩이가 되어 바닥 위로 쓰러졌다. 그의 전신이 벌레처럼 꿈틀거렸다. 그러나 웅징은 아직도 끝난 게 아니었다. "영원히 지옥무저갱으로 떨어져라. 사천멸--!" 재차 가공할 검광의 폭사가 식인혈마의 몸통을 향해 벼락치듯 내리 꽂혔다. "크아악--!" 악마의 그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비명성이 터졌다. 천참만륙(千斬萬戮)! 식인혈마의 전신은 이제 그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다. 그저 수백의 뼈와 살 조각만이 여기 저기 나윙굴 뿐이었다. 마치 그가 언제 이 세 상에 존재했던가 의심이 갈 지경이었다. 한편 아사공주는 뜻밖의 사빼에 그저 혼백만 뺏기고 말았다. 그녀는 억지로 눈동자를 돌렸다. 그 누가 있어 천하의 대악인을 존 재조차 지웠는지 궁금하기 때문이었다. 스슷--! 가득 찼던 돌 먼지와 피무지개가 사라지며 인영 하나가 모습을 드 러냈다. 마군자 금소천 바로 그였다. 그가 장담한 대로 백상검에 의해 식인혈마 그 악의 전설은 막을 내 렸다. 기실 시인혈마는 정사십팔대고인 중 한 명인 만큼 그 일신마공 은 상상도 못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너무도 방심해 있었고, 또한 너무도 번갯불 같은 급습 을 당했다. 게다가 그 급습의 주인공이 바로 금소천이었으니 결과는 이미 정해진 것이엇다. 금소천은 천천히 수중의 백상검을 거두었다. "지옥조차 아까운 악귀놈 같으니……." 그는 분노를 식히며 비로소 석대 위의 아사공주에게 시선을 주었 다. 그의 굳었던 안색이 그녀를 대한 순간 평시대로 회복되었다. 짓궂은 악동위 모습인가 하면, 신비 가득한 미서생의 모습 같은 그 만의 모습이었다. "그대가 아사공주인가?" 아사공주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동시에 그녀는 재차 모든 넋을 뺏기고 말았다. '아! 중원에 이토록 멋진 미청년이 있었다니…….' 아사공주는 눈이 부셔 내심 절로 탄성을 쏟았다. 금소천의 너무도 멋들어지고 빼어난 신태에 그녀는 가슴이 두근거 렸다. 그러한 감정의 흔들림은 그녀로 하여금 순식간에 운명의 결정을 내 리게 만들었다. 여인들은 남자와는 달리 그 어떤 찰나적인 순간에 위대한 결정을 내려 버린다. 지금의 아사공주가 바로 그 운명의 결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다. '아! 나를 구해 주었어… 그것도 진정 가공할 무학으로…….' 그녀는 오직 감탄에 감복을 거듭할 뿐이었다. 죽음 직전에 나타난 금소천은 무공이 극강한 식인혈마를 번개같이 처치해 버렸다 그리고 그 뛰어난 용모와 출중의 신태는 눈을 멀게 할 지경이 아닌가? '왕자님.' 지금 그는 그녀에게 있어 꿈에 그리던 백마의 왕자와 같았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눈앞이 아득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기다리던 백마의 왕자는 너무도 입이 험했다. 금소천은 아사공주를 주시하며 특유의 괴소를 날렸다. "저번에는 금발의 발가벗은 계집이 내 눈을 어지 럽히더니 이번에 는 파란 눈알의 계집이 내 눈을 피곤하게 하는군 크크크… 이게 본래 의 내 팔자인가?" 그는 투덜대며 지그시 아사공주의 상체를 살폈다. 쪼개 놓은 박속 같은 현갈한 젖무덤이 그대로 나타나 있었다. 금소천은 예술품을 감상하듯 이채의 시선을 젖무덤에서 떼지 않았 다. 아사공주는 자신의 뜨거워진 마음에 찬꿀을 뒤집어쓰고 말았다, '눈알 파란 계집이라고?' 유난히 숱이 많은 그녀의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곤두섰다. "나, 나쁜… 지저분한… 감히 나 아사를 희롱하다니?" 약이 바짝 오른 탓인지 한어는 더욱 서툴게 더듬거렸다. 금소천이 히쭉 웃으며 말했다. "야율노격은 정말 예쁜 누이를 두었군." 순간 아사공주는 흠칫하여 급히 물었다. "오빠를 아시나요?" "크ㅋ. 내가 어찌 야율노격 같은 오랑캐 위인을 알겠느냐?" 아사공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오… 랑… 캐?" 대뜸 던진 오랑캐란 금소천의 말에 아사공주의 분노는 폭발하고 말 았다. 그녀의 분노는 백마의 왕자에 대한 분노까지 접쳐 더욱 고조되 었다. "이 이 천하의……." 한어는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그 말까지 하곤 계속하여 괴이한 언 어로 분갈을 터뜨렸다. 씨근덕거리며 터뜨리고 있는 그녀의 분갈은 한어가 아닌 천축어였다. 금소천은 그녀를 지켜보며 얇은 입술을 살짝 말아 올렸다. "도대체 뭐라고 떠들어대는 거야? 무슨 말인지 몰라도 분명 욕설 같은데……." 그러나 금소천은 화를 내지 않앗다. 오히려 그는 빙긋이 웃으며 천 천히 석대 쪽으로 다가들었다. "그래, 마음대로 해라. 내가 못 알아들으니 아무리 지독한 욕설을 퍼부어도 관계는 없다." 그는 아사공주의 전신을 덥썩 안아 어깨에 둘러메었다. 아사공주는 전신혈도가 제압당해 있는지라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 이 무슨?" 순간 금소천의 한 손이 아사공주의 풍만한 둔부를 경쾌하게 두드렸 다. '찰싹' 하는 소리가 유난히 경쾌했다. "입 다물고 얌전히 있지 못하겠느냐? 다시 한 번 입을 놀리면 이대 로 두고 떠나겠다." "이이……." 아사공주는 미칠 지경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욕지거리를 머리 속에 떠올려 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욕지거리는 생각으로 끝날 뿐이었다. 금소천의 다음 말이 그녀의 입을 절로 다물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곧 있으면 이곳은 박살이 나 버린다. 그러니 살고 싶으면 입 다물 고 있어야 할 것이다." 아사공주는 입 밖이 아닌 입 속으로 냅다 욕설을 퍼부었다. '이 야만인, 너구리, 늑대, 도둑, 거머리…….' 그러나 아무리 욕설을 퍼부어도 가슴은 후견해지질 못했다. 졸지에 식인종의 식사거리가 될 뻔했던 아사공주. 어쨌든 그녀는 입이 험한 백마의 왕자를 만나 목숨은 건졌다. * * * 꽝! 꽈콰쾅! 우르르르……. 복우산이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엄청난 굉음이 터졌다. 식인혈마가 도사리고 있던 만악(萬惡)의 계곡이 폭음 속에 영원히 그 종말을 고하고 있었다. 한 봉우리에서 금소천은 폭음과 함께 사라지는 마곡(魔谷)을 바라 보았다. '과연 뇌화진천 갈천후의 벽력뇌화탄. 정말 대단한 위력이야.' 뇌화진천 갈천후의 벽력뇌화탄! . 그는 천하제일 화기(火器)의 명인인 뇌화진천 갈천후의 벽력뇌화탄 을 이용해 식인혈마의 흔적조차 날려 버린 것이다. 연신 감탄성을 터뜨리던 금소천의 눈살이 가볍게 찌푸려졌다. '헌데… 단금성 그 자가 흘연히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금소천은 식인혈마를 없애고 단금성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도륙난 백여 명 식인혈마의 수하들만 있올 뿐. 그의 신형은 어디에서고 찾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 짧은 사이 마굴 안의 백여 명을 순식간에 해치우다니… 무서운 놈이다.' 금소천은 무거워진 표정으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였다. 그의 어깨에서 뾰족한 교갈성이 터졌다. "이 야만인! 언제까지 나를 메고 있을 셈이냐?" 금소천은 아직도 아사공주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는 낭랑한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핫! 믿음직한 이 어르신네의 어깨에 있는 것이 싫으냐?" 그의 음성은 특유의 유들거림으로 잔뜩 도배되어 있었다. 그러나 아사공주는 진정 미칠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그녀의 알몸이 된 젖무덤이 공교륨게도 금소천의 어깨에 짓눌려 있기 때문이었다. "이 미친놈! 당장 내려놓지 못하……."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욕설을 거듭할 수가 없었다. "아악--!" 욕설 대신 그녀는 고통의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콰당! 이유는 간단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금소천이 그녀를 보 기 좋게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었다. "너… 너……." 그녀는 엉덩이로부터 밀려오는 고통에 한 방울 눈물까지 흘려야 했 다. 금소천은 눈을 가늘게 뜨며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 네가 내려 달라고 하지 않았더냐?" 엄밀히 따지면 내려 준 것이 아니라 아예 내팽개친 것이었다. "너…… 감히 나에게…… 으아앙……." 아사공주는 너무도 기가 막혀 그저 눈물만 펑펑 쏟았다. 천하를 오시하는 아수마궁의 금지옥엽 아사공주. 지금 그녀의 수모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더욱이 자신에게 수 모를 주고 있는 인물은 더욱 분노를 부채질했다. 그녀가 펑생을 꿈에 그리던 백마의 왕자 이제는 그가 왕자인지 악 마인지조차 구분이 가지 않았다. 아사공주는 입술을 퍼가 맺히도록 깨물었다. 그래도 눈물과 오열은 여전히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흑흑……." 금소천은 아사공주가 눈물을 보이자 저절로 마음이 약해졌다. "아무리 아수마궁의 인물이라 해도 옇인이 아닌가?" 아사공주는 아직도 상의를 그대로 벗고 있는 상태였다. 눈발이 나풀나풀 떨어지며 그녀의 뽀얀 속살로 이슬처럼 젖어들었 다. 금소천은 회미한 고소를 지으며 다가갔다. 그리고는 자신의 장삼을 벗어 그녀의 나신 위에 덮어 주었다 동시에 그는 암중으로 그녀의 제 압되었던 혈도를 풀어주었다. "치워!" 아사공주는 울음 같은 교갈을 터뜨리며 금소천이 덮어준 장삼을 팽 개쳐 버렸다. 금소천은 옴성을 부드럽게 하여 말했다. "미안하다 너를 놀릴 생각은 없었다. 단지 나는……." "나쁜… 사람…… 으흑흑." 아사공주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그러자 오히려 상황이 난처해진 것은 금소천이었다. '여인이란 동물은 대체…….' 골치가 쑤셨다. 어찌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곧 절묘한 방법을 강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취할 가 장 현명한 방법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내가 떠나면 그만 아닌가?" 결정이 나자 행동만이 남았다. 그는 말없이 아사공주를 뒤로하고 신형을 옮기기 시작했다. 순간 아사공주의 울음과 눈물이 거짓말처럼 뚝 그쳤다. "어디 가?" 금소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하여 발길을 옮겼다. "나는 내 길로 가고… 너는 네 길로 갈 뿐이다." 그러자 등뒤로 아사공주의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서, 서라!" "난 서기 싫으니 따라오려면 네가 따라와라." 칼자루는 언제까지나 금소천이 쥐고 있었다. 아사공주의 약이 바싹 오른 외침이 터졌다. "내가 왜 너 같은 놈을 따라가야 하느냐?" "하하하, 싫다면 나도 좋고. 아마 나보다는 복우산의 밤짐승들을 상대하기가 더욱 편할 것이다." "밤짐승?" 아사공주는 문득 두려운 시선으로 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복우산에는 어느새 조금썩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주위는 오직 땅거미 지는 산뿐이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퉁기듯이 신형을 일으켰다. "서라 가, 같이 가자." 그녀는 두려움에 질린 아이처럼 다급히 금소천의 뒤를 쫓았다. 금소천은 그녁가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장삼을 내밀었다. "자! 너의 벗은 모습은 보기 흉하니 이것이라도 걸쳐라." 아사공주는 거절하려다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마침 한 송이 눈발이 그녀의 한쪽 유두에 살짝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것은 맑은 이슬이 되어 유두 끝에 맺혔다. 그제야 아사공주는 수치심을 느끼고 금소천의 장삼을 황망하게 걸 쳤다. 금소천의 장삼은 홉사 아사공주의 나신 위에 걸쳐진 작은 이불과도 같았다. '흠…….' 금소천은 아사공주의 지금 모습에 묘한 매력을 느꼈다. 창피한 마음이 든 아사공주가 무어라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때였다. 휙! 허공에서 훌연 한 덩이 금멎 물체가 금소천에게 날아들었다. 누군가의 공세나 병장기인 줄 알았으나, 그것은 아니었다. 바로 금빛의 앵무새. 단금성의 소화였다. 금소천은 짐짓 반가운 어조로 소화에게 물었다. "오. 소화야. 단가가 어디에 있느냐?" 소화는 허공에서 금소천에게 대답썼다. "단가가 말했다. 단가가 말했다. 금가에게 전해 달라고…." 금소천은 소화의 말에 피식 웃으며 거듭 물었다. "그래. 뭐라고 하떠냐?" 소화는 무엇인가를 금소천에게 떨어뜨렸다. "쪽지를 받아라. 금가야." 소화가 전해준 것은 한 통의 서찰이었다 소화는 서찰을 전해준 후 허공으로 솟구쳤다 "금가야. 안녕! 예쁜 계집아이. 너도 안녕!" 금소천은 유쾌한 대소를 터뜨리며 서찰을 읽어보았다. <금형, 갑자기 사라지는 단모를 용서하시오. 사부님으로부터 급한 연락이 있어 먼저 떠나오. 금형과는 오늘 처음 대면한 것이었지만 금 형에 대해선 삼년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기에 나로서는 스스럼이 없 었소. … 중략 … 금형! 중원은 광대하오. 금형은 어떤지 모르나 나는 어려서부터 이 중원의 판도를 놓고 한 판 숭부를 걸고 싶었소. 이것은 결코 속념이 아니오. 사나이의 야망이오. 금형은 알 것이오. 이 단모의 마음을… …. 금형! 중원에는 기인이사(奇人異士)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소. 그 러나 그 어떤 기인이사라 할지라도 십대천왕은 능가하지 못할 것이 오. 영웅 중 영웅! 그것이 바로 십대천왕이오. 나 단금성은 십대천왕 중 한 명인 천왕지맥이오. 금형 역시 마찬가지요. 때문에 나는 결코 금형을 용납할 수 없소. 금형, 오늘의 대면은 매우 유쾌했소. 그러나 다음 번 대면은 결코 유쾌하지 못할 것이오 나 단금성이 생각한 바론 내가 천하를 응패하 는데 있어서 금형은 가장 큰 적수요. 이것은 숙명이요. 끊을래야 끊 올 수 없는 금형과 나의 숙명……. 힘을 기르시오. 나 단금성은 내가 평가한 나의 가장 큰 적수가 맥 없이 스러지는 것을 원치 않소. 금형. 나 단금성을 금형이 생각할 수 잇는 한도에서 가장 크게 이기시오. 이것은 나의 오만한 자부심이 아 니오. 하하하! 천하에 나 단금성을 능가할 자 그 누가 있겠소? 금형! 이제 싸움은 시작되었소. 남은 젓은 단 하나! 천하의 주인은 과연 누가 되느냐 하는 것이오. 물론 결과는 정해져 있소. 나는 그대를 꺾고 천하의 주인이 될 것이오. 그럼 무운을 비오. 천마황 단금성.> 금소천의 안색이 무겁게 굳어졌다. 그는 수중의 서찰을 구겨 버리듯 힘주어 움켜잡았다. 사르르……. 서찰은 그의 수증에서 한줌 연기로 변해 버렸다. 그의 두 눈에서 무서운 한광이 폭사되었다. "단금성, 좋다. 그대가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니 나 금소천도 마음 이 편하다." 금소천의 전신에서 표현키도 힘든 막대한 무형의 기운이 햇살처럼 피었다. "천하를 얻는데 있어서 마땅한 적수가 없다면 그 또한 불행한 일인 법." 이어 그는 어두워오는 하늘을 향해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단금성. 그대는 알아야 한다. 나 금소천은 그대를 적수로 삼기 전 에 천하를 적수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하하하하!" 금소천의 모습은 눈이 부셨다. 아사공주는 금소천의 모습에 콧등이 찡하는 격동을 느꼈다. 지금 금소천의 모습에서 어찌 좀 전의 짓궂은 모습 따위를 짐작이 나 할 수 있겠는가? '어쩌면 저 모습이 저분의 참모습인지 몰라.' 그녀의 아름다운 두 눈에 반짝 이슬이 맺혔다. 그것은 분노나 서러움의 울음이 아니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감동 의 울음이었다. 그녀에게 잇어 금소천은 다시금 백마의 왕자가 되었다, 아사공주는 금소천을 향헤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저… 다. 당신은……." 그녀의 음성은 꿴지 모르게 촉촉한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금소천은 문득 격동에서 깨어났다 동시에 그의 표정은 또다시 짓궂 게 변해 버렸다. "ㅋ. 갑자기 왜 순한 양처럼 변했지?" 아사공주는 발그레 홍조를 보이며 옷자락을 매만졌다. 여인들이란 수줍고 가슴이 뛰면 꼭 무엇인가를 만진다. 자신이 직접 수줍음의 떨림을 확인하기 위함인지 뭔지는 알 수 없 는 노릇이다. "당신… 부탁이… 있어요." "부탁? 그게 뭔데?" 금소천은 여전히 무뚝뚝하게 반말을 했다. 아사공주는 또 다시 약이 오르고 말았다. "당신. 계속 이렇게 나오실 거예요?" 눈치 빠른 금소천이 그녀의 말뜻을 모를 리 있겠는가? "존귀하신 공주께 반말을 해서 불쾌한가?" "그래요. 무시당하는 것 갈아 기분이 좋지 않아요." 그녀는 동그란 눈을 깜박거리며 쏘아붙였다. 금소천은 히쭉 옷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공주에 대한 예의를 갖추겠다. 아니 갖 추겠소." 아사공주는 금소천이 너무 쉽게 허락하자 어리둥절해졌다. 그러나 이내 그녀는 가벼운 탄식성을 터뜨렸다. "호호호, 당신이란 분은 정말 이상해요." "뭐가 그리 이상하다는 말이오?" 금소천은 빙글거리며 짓궂게 물었다. 아사공주는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이며 고개를 푹 숙였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녀는 슬쩍 말을 줄였다. 여인은 간교하게도 마음을 고백할 때 항시 신비를 깔려든다. 지금 도 그랬다. 그녀는 슬쩍 한 겹 신비를 던진 것이었다. 적어도 애정 문제에 있어서는 멍청한 게 남자다. 금소천 역시 그녀 의 마음을 알 리 없어 피식 웃고 말았다. "그래. 부탁이 있다고 했는데 그 부탁이란 무엇이오?" 아사공주는 여전히 고운 손끝으로 옷자락을 매만졌다 그녀의 두근 거리는 마음의 흔적이 금소천의 장삼에 억전히 흔적을 남기며 파르르 떨렸다. "저를 혹시… 옥문관까지 데려다 주실 수 있나요?" 금소천이 되물었다. "옥문관까지?" 아사공주가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