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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77편 (77/79)

2026-09-22 08:16:38 조회 16
비틀……. 야율노격은 휘청이는 신형을 간신히 가눈 채 주변을 살폈다. 결과는 한마디로 처참했다. 야율노격 자신 이외에 살아남은 아수마궁의 인물은 오직 세 명뿐이 었다. 그들은 호무랍, 소리탑, 그리고 월랑이었다. 나머지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도망을 갔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을 포위한 고수는 무려 삼천인데 그들은 단지 네 명 뿐이었 던 것이다. 야율노격은 물밀듯 솟구치는 엄청난 분노에 이빨을 부서져라 갈아 붙였다. "으…… 이 야율노격이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다니……." 그는 핏발 선 시선을 돌려 호무랍을 응시했다. "호무랍. 너…… 너는 내가 운중산을 넘자는 것을 말리고 굳이 이 단혼평을 지나게 했다." 호무랍의 눈동자가 회미한 경련을 일으켰다, 야율노격은 분노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네…… 네놈은 호극천의 아들…… 천축제일의 현자다. 그러한 네 가 이러한 것도 짐작 못했단 말이냐!" 거센 분노가 담긴 질책이었다. 그러나 호무랍은 별반 표정의 변화가 었었다. 작전의 실패에 대한 자책도, 야율노격에 대한 미안함도 일절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입술이 의외로 담담하게 열렸다. "야율궁주, 미안하오." 그는 말투마저 달라져 있다. 야율노격은 자신도 모르게 흠칫해야 했다, 호무랍의 음성에 불길함 을 느꼈기 때문이다. 단 한 번도 자신에게 불경한 적이 없는 호무랍이다. 그런데 저렇듯 건방지기까지 한 당담한 말투라는 것은……. 혹시? 일순 등줄기가 오싹해지며 식은땀이 흘렀다. 야율노격은 자신의 천절삼인도를 꽉 움켜쥐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게냐?" 호무랍은 천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실상…… 내가 굳이 이곳으로 당신을 유인해 온 것은……." 야율노격은 자신의 불길함이 맞아떨어진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인' 이라는 단어가 결정적이었다. 그리고 불행히도 그의 예감은 정확했다. "아수마궁을 철저히 무너뜨리기 위함이었소." 콰쾅! 찰나 야율노격의 안색이 일시에 대변했다. 무거운 둔기가 일시에 뒤통수를 내려치고 있었다. "뭐…… 뭣이라고? 그러나 호무랍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다소 안색이 굳어진 것 을 제외하고는 그의 음성은 담담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아수마궁이 중원을 침공하여 정복한다는 본래 의도는 좋은 것이었 소. 그러나…… 당신은 지난 삼년 동안 너무나 변했소." 야율노격은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너무도 어이없는 충격 때문이었 다 호무랍은 야율노격을 똑바로 응시했다. "당신은 천축의 수많은 협의지사들을…… 오직 당신의 뜻을 거스른 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히 죽여 버렸소." 야율노격의 전신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네…… 네가 감히 그런 말을……." 그러나 호무랍은 동요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희미한 미소까지 떠올리고 있었다. "실상 내가 아버님의 뒤를 이어 중원으로 온 것은…… 아수마궁을 괴멸시키고 당신까지 죽이려는 의도에서였소." 그야말로 소름끼치는 오싹 끼치는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야율노격은 금세라도 폭발할 듯 노기충천하고 말았다. "이…… 이런…… 찢어 죽일 놈!" "지하에 계신 아버님도 내 뜻을 이해하실 것이오." 호무랍의 태도는 끝까지 담담했다. 이미 죽음까지도 각오한 모습이었다. "다…… 닥쳐라! 내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여 아수마궁 제자들의 피맺힌 혈한을 갚으리라!" 그는 부들부들 온몸올 경련시키며 그에게로 다가갔다. 전신의 살기가 땀방울처럼 뚝뚝 떨어졌다. 죽이리라……. 짐승의 울부짖음이 그의 터진 입술을 뚫고 나왔다. 호무랍은 시선을 돌렸다. 죽음이 눈앞에 내려앉고 있건만, 마음만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 분해졌다. "신념에 의해 행한 행동이다. 나는 잘못한 게 없어." 그는 겸허하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번-- 쩍--! 급기야 야율노격의 천절삼인도가 위맹하게 휘둘러졌다. 호무랍은 아예 두 눈을 감았다. 이미 죽음을 각오한 듯 털끝만큼의 두려움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천절삼인도는 그를 죽이지 못했다. 쨍--! 대신 귀청을 찌는 예리한 금속성이 일었다. "헛! 어떤 놈이 감히……." 야율노격은 급작스런 충격에 다급히 헛바람을 들이키며 부지중 뒤 로 물러섰다. 천절삼인도를 막고 그의 앞에 한 인영이 내려섰다. 그는 바로 아극이었다. 그러나 야율노격은 성장한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네놈은 또 누구냐?" 그는 무시무시한 살광을 내뿜었다. 아극은 빙그레 조소 섞인 웃음을 머금었다. "나의 이름은 아극…… 바로 당신에 의해 멸망당한 포달랍궁의 마 지막 후예요." "뭣이?" 야율노격의 안색은 또 다시 급변을 보였다. 아극은 그런 그를 향해 조용히 손올 모아 합장했다. "아미타불…… 야율노격, 이제 당신은 죄의 업보를 받을 때가 된 것 같소." 그의 태도는 지극히 부드러웠으나, 내부에는 극강한 패기를 담고 있었다. "크흐흐흐…… 정말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구나." 일순 야율노격의 입술 사이로 처절하기조차 한 괴소성이 음산하게 터져 나왔다. 펄럭…… 펄럭……. 한쪽 팔이 없는 소맷자막이 세찬 눈보라에 공허하게 흩날렸다. 그것은 마치 소리 없는 아우성 같았다/ 문득 '절망' 이라는 단어가 생각났다. 그리고 '허무' 라는 단어도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머리 속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야율노격의 입술이 기이하게 말려져 올라갔다. "그래…… 죽여 버리면 그만이다." 그는 수중의 천절삼인도를 다시금 치켜들기 시작했다. 그의 두 눈동자가 광기로 번뜩이기 시작했다. "흐흐흐…… 누구든지…… 내 앞을 막는 놈은 모조리 죽여버리겠 다." 광기 어린 대갈성과 함께 그는 진력으로 아극을 덮쳐갔다. "하늘이 있다면 그렇게는 안될 것이오, 야율노격!" 아극의 옥자(玉尺)는 재빠르게 천절삼인도를 맞이했다. 쨍-- 쨍--! 바야흐로 한과 원의 피맺힌 일대 접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기 시작했 다. 두 사람이 해묵은 원한을 풀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또 다른 싸 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막여사와 소리탑의 대결이 바로 그것이었다. "나는 막여사라 하네." "살막의 소리탑이오!" 그들은 처음 보는 순칸 서로가 적수임을 알아보았다. 기다리고 뭐고 할 틈도 없이 그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움판을 됨 굴기 시작했다. 그러나 싸움은 의외로 길게 가지 못했다. 막여사라는 고수를 상대 하기에는 소리탑이 너무도 지쳐 있는 탓이었다. "아-- 악!" 돌연 불에 덴 듯한 비명성이 처절하게 일었다 소리탑. 그는 창백한 얼굴로 완전하게 두 동강이 난 신월백린도를 내려다보 고 있었다. 그의 머리는 산발되어 있었으며 핏물에 푹 젖은 모습이었다. "정당한 대결이 아니라 유감이오. 하지만…… 시대가 그대를 원치 않는구려." 귀문장도 막여사의 생사교가 그의 심장을 무섭게 겨누고 있었다. 단 한촌의 힘만 가해도 소리탑은 그대로 즉사할 것이 분명한 상황이 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죽이시오." 소리탑은 역시 일문의 지존다웠다. 그는 자신의 신월백린도를 축 늘어뜨렸다. 그때였다. "이…… 나쁜 놈들! 그분을 건드리지 마라." 한켠에 있던 월랑이 피눈물을 뿌리며 귀문장도 막여사를 혼신의 힘 으로 공격해왔다. 막여사가 흠칫하며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정작 그보다 더욱 놀란 사람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는 바로 일랑이었다. "월랑! 이 배신자! 어디를 감히 끼여드는 게냐!" 그는 월랑을 향해 사정없이 일장을 뿌렸다. 그녀의 기억이 소멸되 었음을 모르는 일랑은 그 옛날의 수모가 뻣속까지 남아 있는 것이었 다. 펑--! "아-- 악!" 절치부심 수년 동안을 무공에 전념한 일랑. 기억까지 잃은 월랑은 이미 일랑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녀는 장력을 옆구리에 맞고 수장 밖으로 나동그라졌다. "으으……." 월랑은 신형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신음성만 흘리고 있었다. 그러한 월랑을 바라보는 일랑의 눈멎에 무수한 갈등이 거듭 떠올랐 다. "월랑……."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제아무리 사랑을 쫓아 모든 것을 버리는 게 억자라지만, 핏줄까지 무시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짙은 고뇌가 깃든 결연한 음성을 내뱉었다. "월랑! 내 심장의 한쪽인 너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구나. 부디 나를 원망 마라! 그는 서서히 쌍장을 치켜들었다. 월랑은 아직도 충격에서 혜어나오지 못한 채 신음성만을 흘리고 있 었다. 그 순간 소리탑이 절규하듯 소리쳤다. "안돼!" 온 산야를 떨어 울릴 정도로 커다란 음성이었다. 일랑이 흠칫하며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를 죽여서는 안돼! 그녀는 지금 기억이 상실되어 아무것도 알 지 못한다." 멈칫! 순간 일랑의 눈동자에 세찬 경련이 일었다. "기…… 기억을 잃었다고?" 막여사도 놀란 시선으로 월랑을 주시했다. 이때 쓰러져 있던 월랑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끄응……." 그녀는 골치가 아파 죽겠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이어 그녀의 회 미한 봉목이 일랑을 향했다. 일순 그녀는 곤혹스런 표정을 떠올렸다. "일랑……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그리고…… 이곳은 어 디야?" 순간 일랑은 물론이요, 소리탑도 경악을 하고 말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똑같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 기억을 회복했단 말인가?' 그러했다. 일랑의 장력에 적중당한 층격으로 그녀는 다시 기억을 되찾았음에 분명했다. 소리탑은 일순 전신의 피가 싸늘히 식는 기분을 느꼈다. "워, 월랑……." 그는 안타까운 어조로 그녀를 부르려 했다. 그때였다. 돌연 한쪽에서 심장을 토하듯 처절한 비명성이 솟구쳤다. "크-- 악!" 소리탑은 본능적으로 시선을 돌렸다. 비명성의 주인공은 야율노격이었다. 그는 두 눈을 튀어나을 듯 부릅뜬 채 가슴에서 피분수를 쏟고 있었 다. 밀납같이 창백한 입술 사이로 핏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부, 분하다. 나…… 야…… 야율노격이 이…… 이토록 허무하게… … 쓰러지다니……." 이토록 허무하게 다가오는 자신의 죽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믿지 않을 수도 없 었다. 뜨거운 피를 내뿜는 그의 심장이 믿어야 한다고 말해 주었다. "크…… 크하하하…… 쿨룩! 쿨룩!" 야율노격은 광소 끝에 시뻘건 선혈을 연신 토해냈다. 그는 풀리는 눈까풀올 애써 치켜떴다. "처…… 천년…… 아수마궁의…… 한을…… 이…… 이대로 묻어야 …… 하는가?" 그 나직한 음성이 마지막이었다. 그는 더 이상 버틸 기력을 잃고 말았다. 이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할 이유를 잃고 말았다. 쿠웅! 거목이 쓰러졌다. 아수마궁, 그 천년의 세월이 소리내어 무너져 내렸다. "구, 궁주……." 소리탑은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다. 온몸의 경련이 점점 심해지기 시작했다. 야율노격은 대답이 없었다. 싸늘하게 식어 버린 그의 체온이 느껴졌다. "궁주…… 우리가 어째서…… 어째서……." 믿을 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출정한 중원정벌의 장도다. 이미 한번의 실패도 있었기에 더 이상의 실패는 없으리라 자신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도 냉혹했다. "하늘이여……." 소리탑의 두 눈에서 쏟아지듯 피눈물이 흘러내렸다. 귀문장도 막여사가 그러한 소리탑을 무심히 응시했다. "소리탑…… 이제는 네가 죽을 차례다." 소리탑은 담담히 가라앉은 시선을 문득 월랑에게 돌렸다. 월랑은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황망한 표정으로 갈피 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생명처럼 사랑한 여인……. 그러나 이젠 너무도 멀리 있는 여인……. "당신이 되찾은 기억을 축하하오. 행복하시오." 그는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날이 시퍼런 막여사의 도가 시야에 잡혔다. "죽이시오……." 그때였다. "아…… 안돼요!" 월랑이 다급히 소리치며 다가왔다. 그녀는 막여사의 도를 가로막으며 버티어 섰다. "이…… 이분은…… 저에게 너무도 잘해 주셨어요, 절대…… 죽게 할 수 없어요." 놀라운 일이었다. 그녀는 모든 기억을 되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소리탑과의 생활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음……." 막여사는 잠시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 월랑은 결사적으로 소리 탑의 앞을 가로막았다, "절대…… 이분을 죽여서는 안돼요." 막여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러자 한켠에 서 있던 일랑 이 나섰다. "월랑…… 그 자는 우리들의 원수이다." 일랑이 안다까운 음성을 발하며 다가왔다. 월랑은 차분하게 자신의 분신을 응시했다. "일랑, 내가 기억을 붕은 동안…… 이분이 아니었으면 나는 벌써 죽을 목숨이었어. 이분이 죽는다면…… 나도 죽을 수밖에 없어… …." 또르르…….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떨구었다. 문득 귀문장도 막여사는 도를 내리며 고소를 머금었다. "다정(多精)이면 유한(有恨)인 것을……." 그는 이어 미련 없이 등을 돌려 한쪽으로 물러났다. "소리탑! 당신의 목숨은 미루어 놓겠다. 다시는 중원 땅에 발을 들 여놓지 말도록!" 그의 목소리는 또 하나의 선고였다. 소리탑과 월랑은 약속이나 한 듯 시선을 마주쳤다. "소리탑……." "월랑……." 복잡미묘한 감정들이 얼키고 설킨 눈빛이었다. 소리탑은 문득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보내주자…… 어차피 월랑은 중원인. 게다가 나는 얼굴도 이 모양 이고…… 흐흐흐…….' 그는 내심 통곡과도 같은 괴소를 터뜨렸다. 이어 천천히 무너진 자 신의 신형을 일으켜 세웠다. "소리탑……." 월랑이 안타까운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소리탑은 멈칫하며 신형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다시금 단호한 걸음걸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삐이익! 그는 몸을 돌리며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끼-- 아-- 악! 그러자 천지를 몸서리치게 하는 엄청난 괴성이 터지며 거대한 적웅 이 나타났다. 적응은 거센 바람을 일으키며 지면으로 내려앉았다. 소리탑은 적응을 향해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문득 그의 눈에 멍하니 서 있는 호무랍이 보였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쳤다. 이 모든 패배의 원흉인 자. 절치부심 갈아왔던 복수의 칼날을 부러뜨린 자. '그러나 이제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랴.' 그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호무랍, 돌아가세." 소리탑은 소리치며 적응의 둥을 향해 신형을 솟구쳤다. 호무랍은 탄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럽시다. 고향으로…… 돌아갑시다." 그는 천천히 적응의 등위로 올라탔다. 소리탑은 신헝을 돌려 귀문장도 막여사를 응시했다. "앞으로…… 중원은 영원히 평온할 것이오." 적응 위에서 소리탑은 쓸쓸히 웃었다. "살막은 영원히 신강을 벗어나지 않을 것을 약속하오." 한편 월랑은 적응을 바다보며 안색을 거듭 변화시키고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일랑과 소리탑 사이를 자꾸만 오갔다. 어찌해야 할지를 모르는 갈등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러자 일랑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그는 월랑의 심중을 눈치채고 재촉했다. "윌랑, 이제 만금성으로 돌아가자." 바르르……. 월랑의 전신에 잔 경련이 스쳤다. 급기야 그녀는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랑…… 용서해줘…… 나, 나는 신강으로 가야겠어." "뭐라…… 고?" 일랑은 대경하여 소리쳤다. 월랑은 더욱더 고개를 숙였다. "저분에게는…… 내가 있어야 해. 하지만 너는 내가 없어도…… 넌 많은 사람들이 있잖아." 일랑은 격동을 일으키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월랑……." 그러나 뭘랑은 적응을 향해 힘껏 내달았다. "미안해, 일랑." 그녀는 한 마리 나비였다. 사랑을 찾아, 꿈을 찾아 날아가는 나비의 모습이었다. "월랑……." 소리탑은 볼 수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월랑의 모습을……. 그것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월…… 월랑." 그의 동공이 기쁨에 크게 벌어졌다. 그는 황급히 적응의 둥에서 뛰어내렸다. "소…… 소리탑…… 저…… 저는……." "월랑!" 두 사람은 서로를 굳게 껴안았다. '다시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 월랑.' 소리탑은 몇 번이고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나란히 적응에 올라탔다. 끼-- 악--! 적응은 커다란 울음을 토하며 하늘 높이 치솟았다. "잘 있어, 일랑……." 월랑의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그러나 일랑은 멍하니 월랑이 탄 적웅을 바라볼 뿐이었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이 환상 같다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문득 막여사의 고소 띤 음성이 잔잔히 들렸다. "일랑. 월랑을 잊게. 그녀는 지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나는 것일 뿐이야." 일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후우……." 막여사는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돌렸다. 마침 고개를 돌린 그의 시야로 한 사람의 모습이 쏘아져 들어왔다. 바로 천갈마회 하설미였다. 그녀는 처참할 정도로 부상을 당한 모습이었다. 전신의 의복은 모조리 찢어져 있었고, 낯빛은 창백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의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사매……." 막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그녀를 불렀다. 두 사람의 시선이 묘한 불꽃을 일으키며 부딪혔다. "사형……." 하설미는 지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저…… 살아남았어요." 그녀는 웃었다. 비록 전신의 고통이 뻣속까지 스며들었으나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 았다. "그래……." 막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손을 뻗어 보였다. 순간 하설미의 눈동자에 빠르게 희열이 스쳐갔다. "사형!" 그녀의 작은 동체가 막먹사의 품속으로 안겨들었다. 막여사는 그녀 의 등을 가볍게 어루만졌다. 하설미의 전신이 가벼운 경련을 일으키 고 있었다. "그래…… 잘 해냈다. 너는 결국…… 당당하게 해냈구나." 막여사의 얼굴에도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고 있었다. 그는 하설미를 안고 있던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비 맞은 참새처럼 하설미의 가날픈 동체가 강하게 안겨들었다. "그래…… 우리는 살아남았구나." 63장 오존이 죽다 쏴아아! 비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썰물 빠지는 소리는 더더욱 아니었다. 황당하게도 이 소리는 화살이 쏟아지는 소리였다. 줄잡아 수천 개의 화살이 정신없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무척이나 비좁은 계곡. 양측의 절벽이 겨우 두어 사람 들어갈 정도로 밀착되어 있는 그러 한 계곡이었다. "치잇! 정말 지독한 오존문 놈들이야!" 이십대의 팔팔한 청년 하나가 피곤한 기색으로 투덜거렸다. 점창파의 이대 제자인 사영창(死影槍) 변광(卞廣). 그는 막 비오듯 쏟아지는 화살 속에서 나오는 중이었다. 그곳은 마혼곡 안에 있는 오존문으로 들어가는 몇 개 통로 중의 하 나였다. 그는 자파의 창술로 통로를 뚫어보려다가 반각도 버티지 못한 채 물러서고 있는 중이었다. "저 좁은 공간에 미친 듯이 화살을 쏘아대니 견딜 수가 있어야지. 대체 저걸 어떻게 뚫어야 하지?"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몇 사람의 구파일방 문도들이 다가와 그의 상처를 살펴주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아쉬운 듯 계곡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잠시 비켜주겠나?" 누군가의 나직한 저음이 들려왔다. 변광은 흠칫하며 고개를 돌렸다. 위맹한 인상의 도인이었다. 도인답지 않게 전신에서 막강한 패기가 줄기줄기 뻗어 나오고 있었다. "아…… 예……." 변광은 자신도 모르게 신형을 비켜서고 말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점창파의 기약 받은 후기지수인 자신이 어째서 그토록 허무하게 물 러서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맙네." 도인은 자신을 스쳐 천천히 걸어나갔다. 아니, 얼핏 정신을 차려보 니 천천히가 아니었다. 도인의 신형은 벌써 화살이 쏟아지는 계곡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앗! 지, 진인! 거기는 위험합니다." 변광은 재빨리 몸을 날리려 했다. 그러나 도인의 이미 빗발치는 화살 속으로 사라진 후였다. 쏴아아-- 아! 기다렸다는 듯 수천 개의 화살들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변광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넋을 놓고 말았다. "이, 이런……." 처참한 도인의 미래가 절로 그려졌다. 온몸에 수백의 화살을 꽂고 비틀거리며 금방이라도 도인이 나타날 것만 같았다. "크아아악!" 변광은 몸을 움찔했다. 자신의 예상이 잔인할 정도로 정확히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예상과는 다소 달랐다. 비명 소리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으아악!" "크윽!" 계곡 저편에서는 연이어 비명성이 터져 나왔다. 변광의 두 눈동자가 휘둥그렇게 변했다. 들어간 사람은 하나인데, 비명은 여럿이라니…… 이게 도대체 어떻 게 된 일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황당한 일은 또 있었다. 비오듯 쏟아지던 화살이 뚝 하고 멈추었다. 괴도인이 들어서고 화살이 멈추었다! 변광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호, 혹시……." 그는 이어 미친 듯이 계곡 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구파일방의 몇 사람도 그의 뒤를 따라 신 형을 날렸다. 예상대로 계곡을 통과하는 동안 아무 일도 띨어지지 않았다. 화살 은 기적처럼 멈추어져 있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더욱 황당한 일이 사영창 변광을 비롯한 구파일 방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