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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74편 (74/79)

2026-09-22 08:16:38 조회 19
"자! 우리도 어서 소림사로 돌아간다. 십대천왕 놈들이 무슨 수작 을 부려놨는지 모르니 전속력으로 달려가자!" 그러나 그는 발길을 옮길 수가 없었다. 누군가의 냉랭한 목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너는 소림사로 돌아갈 필요가 없다. 천불사존!" 천불사존은 다급한 헛바람을 들이켜야 했다. "어떤 놈이냐?" 그는 소리가 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의 눈동자는 경악으로 부릅 치켜져 올라갔다. "네, 네놈이?" 놀랍게도 그에게 소리를 친 자는 보고를 하러 왔던 하오밀문의 수 하였다.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보고를 하자마자 숨을 거두었던 그 하 오밀문의 수하. 그러나 지금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하게 몸을 일으키고 있었 다. "확실히 만겁마존은 멍청하더군. 복장만 보고 자신의 수하라고 확 신을 하다니 말이야." 그는 어투까지 확실하게 달라져 있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두두둑! 그가 어깨를 한번 움직이자, 온몸의 근골이 뒤바뀌고 있었다. 피로 범벅이던 얼굴도 엉뚱한 딴 사람의 것으로 바뀌었다. 천불사존은 경악성을 내질렀다. "네놈은 누구냐?" 하오밀문의 수하를 가장했던 자는 어느새 완전히 본색을 바꾼 상태 였다. 그는 천불사존을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분명 내 입으로 말을 해주었을 텐데…… 본좌가 바로 천마교 주인 천마황 단금성이다. 천불사존!" * * * 만겁마존은 정신없이 내달렸다. 이 순간 그의 뇌리는 본거지를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생각만으로 가 득 찼다. "어서…… 어서 가자! 어서!" 그는 연신 수하들을 재촉했다. 덕분에 수하들마저 다급히 몸을 움직여야 했다. 당연히 그들은 주위를 살필 겨를이 없었다. 무언가 함정이 있을지 도 모른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 철커덕! 철컹! 돌연한 금속성이 일었다. 동시에 여기저기서 단말마가 이어졌다. "크앗! 이, 이게 꿔야?" "더, 덫이다, 빌어먹을!" 황당한 일이었다. 짐승이나 잡을 때 쓰여야 할 쇠덫이 자신들의 발목을 움켜쥐고 있 었다. 적어도 명색이 무림 고수이기에 별다른 부상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 딪의 힘은 가공할 정도로 지독 했다. 전신 공력을 끌어올려 용을 써야 겨우 벗겨질까 말까 할 정도 였다. 물론 병장기로 내려치는 정도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딪에서 미처 빠져 나오기도 전에 그들을 습격하는 것 이 있었다. 두두두두두……. 지축이 울릴 듯한 요란한 소리였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몰렸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려야 했다. 소떼! 엄청난 규모의 소떼가 몰려오고 있었다. 어 림짐작으로 잡아도 족 히 수천 마리는 되어 보였다. 더구나 소떼는 평범한 소떼가 아니었다. 전신에는 철갑을 두르고 발바닥에는 날카로운 강침이 솟아있는 편 자를 박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소들은 눈까지 가리고 있었다. 당연히 소떼들은 미처 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하오밀문인들을 사 정없이 짓밟고 있었다. "크아아악!" "이, 이놈의 소떼가…… 크억!" 하오밀문인들은 결사적으로 살수를 펼쳤다. 그러자 소떼들은 더욱 광란을 하기 시작했다. 무공이란 상대도 정공법으로 나와야 적절한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무술은 고도의 수련에 의한 몸동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들에게 그러한 법도가 있을 리 만무였다. 소떼들은 정신없이 광란의 발작을 일으켰다. "으아악!" 하오밀문인들은 속절었이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비, 빌어먹을……." 만겁마존은 거듭되는 황당한 일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건 도대체 대책을 세울 수 없는 상황이었다.무엇보다 소떼를 조 종하는 상대가 눈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와라! 이 비겁한 놈들!" 그는 사방을 둘러보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그의 고함 소리는 한낱 허공을 칠 뿐이었다. 여전히 사람의 그림자라고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떼가 지나가자 이번에는 더욱 가공할 일이 벌어졌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수만 마리의 벌레들이 꾸물꾸물 몰려들기 시작 했다. 물론 단순한 벌레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가공할 독을 지닌 독충들이었다. "으아아악! 내 몸이…… 내 몸이 썩는다." "내 몸도…… 녹고 있어! 살려 줘!" 여기저기서 처절한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그야말로 지옥도가 따로 없는 상황이었다. 만겁마존은 몰려드는 독충들을 정신없이 쳐내고 있었다. 그의 소맷자락이 한번 펄럭일 때마다 수십 마리의 독충들이 산산조 각으로 찢어졌다. 그러나 상대는 끝도 없이 많았다. 죽이고 죽여도 또 다른 독충들이 수없이 날아들고 기어들었다. "빌어먹을……." 그의 입에서는 욕지거리가 떠나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런 짓 하지 말고 어서 모습을 드러내란 말이다! 빌어 먹을 놈들아!" 멀리 떨어진 한 야트막한 야산. 그곳의 정상에는 지금 세 사람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들은 만독노조 영호독과 천외천부주 화예랑, 그리고 천수장공 명 학초였다. "아무리 악인들이지만…… 너무 잔인한 것 같군요." 천외성녀 화예랑이 문득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자 만독노조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그렇지 않소이다. 저놈들이 그 동안 저지른 살인만 해도 저 독충 의 숫자만큼은 될 것이오." 그의 음성은 짐숭의 그것처럼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화예랑은 침음성을 발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론 만독노조의 말은 과장이었다. 그러나 분명 하오밀문을 비롯한 오존문의 악행이 어떠했다는 사실 은 화예랑 자신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문득 천수장공 명학초가 감탄의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허어…… 저 독충들의 위력이 어마어마하군요. 이건 웬만한 무림 고수보다 훨씬 나은데요." 그러자 만독노조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씀을…… 다 명노사가 만든 특수 덫과 소떼의 철갑 덕분이 오. 그것들이 없었으면 저런 고수들에게 독충 정도로는 씨알도 먹히 지 않았을 것이오." 그는 공을 명학초에게 돌렸다. 명학초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췌훼 내저었다. "저야 그저 시키는 대로 만들었을 뿐이지요.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면야 이 모든 계획을 세운 남궁군사가 가장 칭찬을 받아야 마땅하지 요." 그의 모습에 만독노조는 그만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허허허, 그럼 돌아가서 우리 같이 남궁군사를 축하해 주도록 합시 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소를 터뜨렸다. 그러나 그들의 웃음은 그리 길지 않았다. 만독노조가 화예랑을 바라보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 이제 부주께서 나설 차례요." 화예랑 역시 딱딱하게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겠지요." 그녀는 이어 양손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그러자 독층에게 혼나고 있는 하오밀문인들 주변으로 수천 명의 인 영들이 불쑥 솟아나왔다. 그들은 바로 엽무검을 비롯한 천외천부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이 나타나자 만독노조는 자그마한 피리를 꺼내 들었다. 날카로운 소성이 허공으로 울려퍼졌다. 그러자 수많은 독충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차 한잔 식 을 시각도 안되어 독충떼들은 씻은 듯이 모습을 감추었다. 만독노조는 흡족한 시선으로 화예랑을 돌아보았다. "그럼 우리도 마무리를 지으러 갑시다." 화예랑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던 손올 힘차게 내렸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 천외천부의 고수들이 밀물처럼 하오밀문인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와아아! 하오밀문을 박살내자!" "오존의 무리들을 죽여 버려라!" 오존문이 가진 또 하나의 핵심 세력, 하오밀문! 그들의 처참한 미래가 눈앞에 그려지고 있었다. * * * 천왕들의 대반격은 녹림칠십이채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었다. 총채주인 감사럽으로 위장해 있던 심령마존이 버티고 있는 녹림칠 십이채. 그들은 금소천이 직접 지휘하는 만금성 고수들에게 혼쭐이 나고 있 었다. 천왕들도 여섯 명이나 참가하여 거의 일방적인 도륙을 하고 잇었 다. 과거 직접적으로 금소천을 속인 적이 있는 심령마존인지라 더욱 비참한 복수를 당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이한 상황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정작 심령마존에 대한 공세가 늦추어진다는 점이었다. 이는 마치 일부러 심령마존을 놓아주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이상하구나. 저놈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심령마존은 다급하게 도주를 하면서도 의흑을 풀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저놈들이 무슨 흉계를 꾸미고 있다 하더라도 알 바가 아니다. 일 단 나를 놓아주었다는 사실이 뼈에 사무치도록 복수해 주마.' 그는 몇 번이고 그런 식으로 자신의 복수심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결코 내막을 알지 못하는 그는 답답함을 마음속 깊이 담아두어야 했다. "자! 가자! 대형이 있는 마혼곡으로……." 그는 힘껏 말고삐를 당겼다. 두두두두……. 하룻밤에 천 리를 간다는 오추마가 불을 뿜듯 내달렸다. 이미 녹림칠십이채는 전멸지경을 당한 후였다. "흥! 정말 꼬리가 빠져라 도망을 가는군요." 싸늘함이 풀풀 풍기는 냉소였다. 천하에 이런 냉랭함을 풍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하나, 바로 냉한 빙뿐이었다. 그녀의 곁에는 금소천이 의미를 알 수 없는 눈빛을 한 채 서 있었 다. "헌데 왜 저놈을 살려두신 거지요? 지금 같은 기회가 다시 오기는 힘들 텐데요." 냉한빙은 따지듯 물어왔다. 한 사람의 아내이기 이전에 천왕으로서의 자존심이 살아나는 것 같 았다. 금소천은 나직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저 자의 운명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오. 천하에서 저 자의 목숨 을 결정지어야 할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오." 그리고 그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냉한빙은 그의 눈동자에 묻어나는 강한 신념을 읽을 수 있었다. 이 럴 때는 무슨 말을 시켜도 소용없음을 그녀 자신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었다. "후우……." 그녀는 나직한 한숨을 토해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 이제 전열을 가다듬고 어서 만금성으로 되돌아가도록 합시 다." 금소천이 말과 함께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60장 아수마궁이 재침입하다 오존문 삼백팔십 개 분타의 초토화! 단 하룻밤! 마지막 해가 가며 오존문 삼백팔십 개 분타가 모조리 박살나 버렸 다. 소요된 시간은 단 하룻밤이었다. 그 사이에 오존문의 고수가 무려 이만이나 시체가 되어 버렸다. 쾌거! 이 역사적인 쾌거는 오존의 혈보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천하인들은 찾기 시작했다. 과연 중원의 역사를 가름하는 쾌거는 누구의 걸작인가? 답을 알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만금성! 만금성, 그리고 십대천왕이었다. 만금성은 결코 십대천왕들의 무덤 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금성, 천마교. 천외천부, 설궁, 지옥전……. 그밖에 소림, 무당 등 구파일방의 정예고수들이 섣달에 들며 중원 각지로 암암리에 흩어졌다. 그리고 그들은 번갯불 같은 위력으로 일시에 오존문의 각 분타를 급습했다. 특히 이 대일격에 참가한 십대천왕들의 활약상은 눈부신 것이었다. 그들의 활약은 수천 년 무림사의 한 장을 장식할 만큼 진정 눈부신 것이었다. 이처럼 오존문의 심장에 가한 번갯불 같은 대일격! 그것은 공포에 떨고 있는 중월무림에 혜성 같은 빛을 뿌렸다. 또한 그것은 수천 마디의 웅변이나 설득보다 훌륭한 기폭제가 되었다. -- 일어나자! -- 중원은 우리 것이다! 우리가 지켜야 할 중원이다! 천하인들은 녹슨 검을 갈고 소맷자락을 걷어붙였다. 전 증원은 유사 이래 최초로 합심을 했다. 만금성을 위시한 천하무림인들은 오존문 잔당들을 소탕하기 시작했 다. 오존문의 잔당들은 발악적으로 버텄다. 그러나…… 이미 대세는 기울고 있었다. 사망각의 괴멸! 오존 중 사망마존이 각주로 있는 사망각이 초토화되었다. 바로 신비스럽게 잠적한 혈궁에 의해서였다. 본래 암습을 전문으로 하는 사망각이 오히려 상대의 암습에 속수무 책이었다. 한나절도 채 지나기 전에 그들은 소속 고수의 절반을 잃어야 했다. 사망마존은 저주를 남기며 마혼곡으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뿐만이 아니었다. 오존은 계속하억 무너져갔다. 하오밀문의 붕괴! 녹림칠십이채의 초토화! 오존문의 모든 맥들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본래 지지기반이 약했던 정파 소속의 소림과 무당은 제대로 힘도 써 보지 못한 채 빼앗기고 말았다. 오존! 그들은 사방에서 무너지는 자신들의 힘을 지켜보며 뼈저리게 실감 했다. 십대천왕의 무서운 위력을 절감해야 했다. 오존의 첫째인 마안혈존! 그는 최후의 발악으로 무룽산 마혼곡에 배수진을 치고 결사적으로 버티었다. 그러는 가운데 봄은 새롭게 오고, 오존문의 혈겁은 무릉산 일대를 제외하고는 거의 종식되었다. 장장 일년에 걸친 대혈겁이었다. 그리고 그 피해는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오존문은 거의 사만이라는 상상도 못할 목숨을 희생시켰다. 중원무림은 무려 오만에 육박하는 엄청난 인명을 잃었다. 유사 이래 이토록 많은 생명이 회생된 적이 있었던가? 중원은 썩어드는 핏물에 잠겼다. 그러나 어쨌든 오존문의 대혈겁은 어느 정도 종식되었고 천하는 조 금은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 이제야 강호에 평화가 오려는가? 어떤 이들은 성급하게 무림의 평화를 예견했다, 러나 천하인들은 몰랐다. 오존문의 오만 고수들은 대부분 전멸했으나, 그들의 정예고수들은 아직 생존해 있었다. 무릉산 마혼곡. 오존을 비롯한 오백 인의 공포의 대마인들은 혈광 번뜩이는 무시무 시한 죽음의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어찌할 수 없는 대치 상태가 계속되었다. 오존과 오백 인 대마인들.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이것은 새로운 혈겹을 의미하는 또 하나의 무서운 징조였으니……. 그러나 아직은 아무도 몰랐다. 그러는 사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지났다. 또 한 번의 겨울이 지났다. 이년째. 오존의 대혈겁이 시작되고 이년째 새해가 밝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십대천왕과 오존의 피 튀기는 대혈전이 이제 이년째를 맞고 있는 것 이었다. 여전히 대치 상태는 계속되었고, 중원무검인들은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했다. 특별히 눈에 띠는 도발도 없자, 마음이 헤이해지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또 다른 한 곳에서 무섭게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중원의 저 먼 곳 변방의 땅. 그곳에서 또 하나 혈겁이 잉태되고 있었으니……. * * * 쾅! 만겁마존은 거칠게 탁상을 내려쳤다. "도대체 이런 수모를 언제까지 당하고 있어야 한다는 말입까? 당장 에 뛰쳐나가서 놈들과 사생결단을 벌이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는 따져묻듯 눈앞의 마안혈존을 응시했다. 그러나 마안혈존은 묵묵부답, 아무런 응대도 하지 않았다. 만겁마존은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지난 이년간 이 비좁은 마혼곡에서 지내오면서 마안혈존은 한번도 제대로 된 응대를 한 적이 없었다. 도대체 속에 무슨 생각이 들어찼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이거야 정말 미치겠군." 만겹마존은 자신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그러자 한켠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천불사존이 입을 열었다. "대형. 아우의 말도 어느 정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천왕 놈들이 기세 좋게 나간다 하지만, 우리가 사생결단을 각오 한다면 결코 패할 전력도 아닙니다. 헌데 이렇듯 침묵만 지키고 있다 는 건……." 그러나 고의 일장 연설은 증도에 멈추어야 했다. 마안혈존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패하지 않는다는 것은 약자나 지껄일 말이다. 나는 지금껏 이기기 위해 살아왔지, 패하지 않기 위해 살아오지 않았다." 그의 음성은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묘한 위력이 있었다. 그러나 천불사존은 단단히 각오를 한 것 같았다. 평소 신중한 성격 인 그인 만치 한번 결심을 굳히자 쉽사리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딱히 다른 방도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차라리 죽 을 각오로 밀고 나가는 것이……." "누가 방도가 없다 하였느냐!" 마안혈존의 목소리가 돌연 고성으로 터져 나왔다. 천불사존은 찔끔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라고 어찌 이 비참한 상황이 수치스럽지 않겠느냐! 나라고 어찌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사생결단을 벌이고 싶은 마음이 없겠느냔 말이 다!" 그의 음성은 사정없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천불사존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그렇다면……." 그의 음성에는 마안혈존에 대한 기대감이 들어차 있었다. 과연 마안혈존은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힘차게 무겁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두 달이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나머지 사존들의 시선이 그와 정면으로 부딪쳤다. "앞으로 두 달이면 천재일우의 기회가 우리에게 온다. 우리가 움직 여야 할 때는 바로 그때인 것이다." 너무도 자신감에 차 있는 목소리였다. 나머지 사존들의 눈멎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두 달……. 이제 두 달이라는 시간이 그들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 * * "두 달입니다." 남궁수의 목소리는 자못 심각했다. 그의 면전에 서 있던 금소천도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침묵을 먼저 깬 사람은 역시 남궁수였다. "얼마 전, 호무랍에게 비밀리에 서신을 띄웠습니다." 호무랍. 아수마궁 제일의 현자인 호극천의 아들이라는 호무랍. 남궁수의 입에서 어찌 그의 이야기가 나오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었다. "으음…… 그래서 어찌 되었는가?" 금소천이 되물었다. "아직 무어라 정확한 말씀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결국…… 제가 직접 가보아야 하겠습니다." "네가 직접?" 금소천이 경악하며 남궁수를 쳐다보았다. 남궁수의 얼굴은 이미 굳은 결심이 새겨져 있었다. "그렇습니다." 금소천은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안될 말이다." 그러나 남궁수는 단호했다. 그는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달리 방도가 없습니다. 이대로 있다가는 자칫 앞뒤로 공격을 받게 됩니다." 금소천은 신음성을 터뜨려야 했다. 그러나 그는 아무리 생각해도 안되겠다는 듯 다른 방법을 들고 나 왔다. "차라리 오존문을 정면으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 어떻겠느냐?" 남궁수는 고개를 저었다. "손실이 너무도 쿰니다. 이년 전 무림인들의 숱한 희생을 각오하면 서까지 그들을 마혼곡으로 밀어 넣었는데, 또 그러한 험로를 되밟을 수는 없습니다."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었다. 금소천은 남궁수의 의견 외에는 방법이 없음을 절감해야 했다. 금소천은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어쩌면 돌아올 수 없는 사지(死地) 로 떠나는 아우를 차마 쳐다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과연 방법이 없을까? 누군가의, 그것도 친 혈육이나 마찬가지인 아우의 희생을 각오하지 않고는 해답이 있을 수 었다는 말인가? 그러나 현실은 냉정했다. 그는 냉정한 현실을 가슴 깊숙이 느껴야 했다. "걱정 마십시오…… 형님." 남궁수는 오히려 금소천을 위로했다. 금소천은 여전히 딴 곳을 웅시하고 있었다. 남궁수는 나직한 한숨과 함께 발걸음을 돌렸다. 삐이걱! 문은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조심…… 하거라." 금소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남궁수는 흠칫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는 애써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물론입니다. 이 목숨은 형님이 살려주신 것 아닙니까? 소제는 형 님의 허락 없이 절대 죽을 수가 없습니다." 탁! 문이 닫혔다. 금소천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그려졌다. "녀석……." * * * 금소천에게는 위기요, 마안혈존에게는 절호의 기회인 두달. 그 두 달이라는 시간은 각각의 세력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해답은 비교적 간단한 것이었다. 두 달의 시간은 흐르고…… 해답은 모습을 드러냈다. <아수마궁.> 삼년 전, 피눈물을 뿌리고 옥문관을 넘었던 야율노격! 이제 그 야율노격이 삼년 만에 분노의 발길을 중원으로 디밀기 시 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중원천하는 또 한번 피의 가공할 전율 속에 휘말려들 기 시라했으니……. 아아! 피의 수레바퀴가 행진하는 중원이여! 그대는 오직…… 피…… 피뿐인가? * * * <옥문관.> 천지는 온통 백설로 뒤덮여 있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단 한 점의 티도 보이지 않는 백색의 세계 였다. 바람도 한 점 없었다, 두두두둑……! 회오리 태풍인가? 돌연 옥문관의 반대편 세외(世外) 쪽에저 휘날려 회오리치는 백설 의 폭풍이 있었다. 천지를 뒤흔드는 회오리 태풍. 그것은 일진의 말발굽 소리였다. 소리에 이어 백설 천지가 돌연 흑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말! 엄청난 숫자의 기마대였다. 일만…… 이만…… 삼만……. 숫자도 셀 수 언는 무수한 숫자의 기마대가 질풍같이 폭풍을 일으 키며 옥문관 쪽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기마대의 맨 선두에는 한 명 은의중년인이 흑발을 휘날리며 달리고 있었다. 두 눈에서 환화산 같은 가공무비한 살광을 폭사시키고 있는 은은한 중년인. 그는 바로 야율노격이었다. 그는 한쪽의 빈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연신 말에 채찍을 가하고 있 었다. 그의 우측에는 얼굴이 완전히 망가진 백삼괴인이 모습을 보이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