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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66편 (66/79)

2026-09-22 08:16:38 조회 13
그것은 차라리 아름답기조차 했다. 반대로 만겁마존의 전신은 짙은 묵광에 이어 짐승의 그것 같은 울부짖음을 토해냈다. "만겁천황기(萬劫天皇氣)--!" 우우우우웅…… 웅웅……. 만겁마존의 전신을 휘감고 있던 흑색의 마류(魔流)가 귀신의 호곡 성 같은 파공음을 일으키며 발출되었다. 무섭다. 만겁마존의 마류는 천하만악(天下萬惡)의 가공할 기운을 담고 뇌천 우사의 백옥빛 강기에 맞부딪쳐 들었다. 눈부신 백옥의 강기와 천지암흑의 검은 색 마류! 이 정반대의 각기 다른 공세들이 정통으로 격렬한 충돌을 일으켰 다. 꽈-- 꽝--! 꽈르르르릉--! 세상의 모든 흔백이 산산박살이 나버리는 엄청난 대폭음이 터져 나 왔다. 우르르릉……. 모든 것이 뒤엉켜 뒤범벅이 되어 버렸다. 천지박살의 조각들이 허공 수백 장까지 치솟구쳐 광란을 일으켰다. 무엇이 어떻게 되었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천뢰기--!" "천멸겁(天滅劫)--!" 대혼돈 속에서 두 마디 대갈호통성이 연이어 터졌다. 꽈꽈꽈꽈꽈--! 꽈꽝--! 폭음에 폭음이 이어졌다. 십대천왕과 오존의 숨가쁜 대혈전은 그대로 세상을 종말로 이끌 것 같았다. 하늘과 땅이 거꾸로 자리를 바꾸어 앉는 극히 엄청난 대폭음이 연 이어 사위를 진동시켰다. "으음……." 이윽고 대흔돈 속에서 회미한 낭패의 신음성이 터졌다. 워낙 창졸지간인지라 누구의 신음성인지를 알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상황은 곧 밝혀졌다. "뇌천우사…… 오늘의 빚은 결코 잊지 않겠다." 만겁마존의 저주 가득한 악갈이 터져 나왔다. "만겁마존! 어디를 가려는 게냐?" 뇌천우사의 우렁찬 외침도 들려왔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 역시 어딘가 모르게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태 였다. 잠시 후 허공을 가득 메웠던 대혼란의 잔재들이 서서히 가라앉았 다. 그러면서 점점 시야가 확보되어 갔다. 만겁마존의 모습은 이미 장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상황의 불리함을 깨닫고 장내를 빠져 나간 것이다. 뇌천우사. 그는 전신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몹시 피로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 다. "으음…… 간신히 놈의 행방을 잡았건만 이토록 허무하게 놓치고 말다니……." 그는 안타까운 음색으로 만겁마존의 흔적을 노려보았다. 그때였다. "으으…… 우욱!" 적미천군 사문곡이 시뻘건 핏덩이를 연거푸 토하고 있었다. "적허!" 뇌천우사는 항급히 적미천군 사문곡을 부축했다. 적미천군 사문곡은 고개를 저으며 황급히 말했다. "우, 우사…… 나보다도…… 사, 사혼을……." 뇌천우사는 적미천군 사문곡의 뿌탁에 따라 사혼을 살폈다. 사혼의 두 눈은 이미 많이 풀려 있었다. 더구나 그의 아랫배는 뻥 뚫린 채 피투성이 오장육부가 반이나 삐 져나와 있었다. 거의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틀렸다.' 뇌천우사는 사흔이 결코 소생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안타깝게 바라보는 적미천군 사문곡을 향해 고개를 내저었다. "적허…… 안됐지만 가망이 없네." 적미천군 사문곡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사혼……." 그는 기어가다시피 하여 사혼에게 다가갔다. "안돼…… 사혼 너는 이대로 죽어선 안된다. 결코 이대로 죽을 순 없어." 그의 전신은 안타깝게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사혼…… 죽어선 안된다. 이대로…… 이대로 죽기엔…… 풀지 못 한 한이 너무도 많지 않느냐." 한(恨). 적미천군 사문곡의 음성에도 풀지 못한 한의 짙은 여운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의 안타까운 절규를 알아듣기라도 했는지 사흔이 기적처럼 눈을 떴다. 그는 적미천군 사문곡의 비통한 외침에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저, 전주……." 사문곡의 피폐한 얼굴에 반색이 떠올랐다. 그는 피투성이의 손을 내밀어 사혼의 손을 잡았다. "이 사람…… 사혼……."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늘에서는 언제부터인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부슬부슬……. 처량하게 내리는 비는 겨울비였다. 겨울비가 부슬부슬 내리며 비꽃을 보인다. 내리는 겨울비와 피어 오르고 있는 비안개였다. 그 속에서 사혼은 죽어가고 있었다, 적미천군 사문곡은 비통하게 외쳤다. "사혼…… 절대 죽어선 안된다. 그 많은 한을 두고…… 어찌 죽을 수 있느냐……? 사혼……." 사혼은 풀리고 있는 두 눈에 애써 힘을 주었다. "저…… 전주…… 이제……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사혼……." 톡! 톡! 겨울비는 핏기를 잃은 사흔의 얼굴에 눈물까지 내렸다. 비안개가 피어나고, 사혼은 비를 맞고 있었다. "전주…… 좀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는데……." 그는 무엇을 더 알고 싶었을까? 한의 색깔, 그것이라도 알고 싶었는가? "전주…… 마…… 마지막 부탁을……." 사혼은 숨을 헐떡이며 적미천군 사문곡의 손올 찾았다. "사혼……." 적미천군 사문곡은 사흔의 손을 잡았다. 그는 손안에 가득 잡히는 사혼의 죽음을 느꼈다. 사혼은 엄습해 드는 죽음을 맞아 숨가쁘게 헐떡거렸다. "예, 옛날에는…… 극히 조그만 원한도…… 가슴에 새겼습니다…… 나 사혼…… 그렇게…… 원한만을 새기며 살아왔습니다." 사문곡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혼이란 인간이…… 만든 원(怨)과…… 한 (恨)이었습니다…… 결코…… 내가 만든…… 것은…… 아니고…… 사 혼…… 그가 만든 것일 뿐……." 이미 그의 분신처럼 전신에 휘감겨 있던 사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죽어가는 자의 피패한 기력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사혼이 아닌…… 주유타맛 아니었다. 비척비척……. 비안개 속을 움직이는 한 개의 섬세한 그림자가 있었다. 그림자는 흔상같이 비안개 속을 걷고 있었다. 커진다. 그림자는 사흔의 두 눈 가득한 눈물 속에서 점점 더 그 모습을 크 게 하고 있었다. 여인. 섬세한 그검자는 분명 한 명의 여인이었다. 나이는 대략 삼십 가량 되었을까? 만개한 만화(萬花)와 둥근 만월이 시새움을 할 아름다운 절세미녀 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미녁는 너무도 초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밀납같은 창백한 안색에 꽃잎 입술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일신의 옷은 걸레 조각이 되어 창백하게 질려 있는 속살이 군데군 데 드러나보였다. 더구나 그녀는 맨발이었다. 그녀는 맨발로 깔리는 비안개를 밟고 있었다. 그녀가 발을 옮길 때마다 비안개는 뒤따르듯 꿈틀거렸다. 점점 그 여인의 모습이 사혼의 습기 어린 눈 속에 크게 확대되었 다. 사혼. 그의 동공이 더 크게 열리며 환상처럼 그 여인을 빨아들였다. "호…… 홍앵……." 또르르……. 끈질기게 맺혀 있던 두 방울 눈물이 뺨을 타고 비안개 속으로 흘러 내렸다. 그 눈물 속에 아직도 흔적처럼 남아 있는 여인. 홍앵. 그녀는 바로 홍앵이었다. "홍앵……." 사혼의 동공 속에 차 드는 여인은 분명 홍앵, 그녀였다. 얄궂은 하늘의 안배인가? 아니라면 영감의 표현 못할 신비의 힘인가?ʼn 듣고 있었다. "주…… 주대…… 인." "홍앵……." 안았다. 그들은 서로의 몸을 있는 힘껏 껴안았다. 빗발도 격동을 하는지 더욱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홍앵……." 사혼은 그녀의 풀솜 같은 몸을 안았다. 홍앵은 사혼의 품에 녹아들 듯이 안겼다. "주…… 대…… 인. 십년…… 꼬박 십년 동안…… 대인…… 을 찾 아 혜맸어요." "홍앵……." "당신…… 당신께…… 한마디를 하기 위해……." 그녀도 사흔과 갈이 단 한마디를 할 것이 있다고 한다. 사혼은 창백한 입술에 회미한 미소를 보였다, "홍앵…… 너의…… 그 한마디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그것은…… 내가 하고픈…… 한마디와…… 같기 때문이다." 한마디. 그들은 그 한마디를 서로의 깨끗한 마음에 담고 있었다. "주…… 대…… 인." 홍앵은 전신 모든 기력이 탈진한 듯 힘없이 사혼의 가슴에 파리한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창백한 안색에 행복한 표정이 떠올랐다. "주대인…… 며칠을…… 굶었는지 몰라요. 그러나…… 이젠…… 힘 이…… 나는 것 갈아요." 비련(悲戀)의 여인. 사랑을 찾기 위해 몸까지 팔아야 했던 운명의 여인. 그러나 지금 그녀의 표정은 너무도 행복했다. 홍앵은 사혼의 입술을 찾았다. "웬지…… 이리로…… 오고…… 싶었어요…… 왠지는 몰라요…… 꼭…… 당신이 이곳에 있을 것…… 같았어요." 사혼도 고개를 돌렸다. 움직이지 않는 몸이지만 초인적인 정신력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 들었다. "홍앵…… 보고 싶었다……." "아…… 당신……." 파리한 그녀의 입술이 사혼의 창백한 입술에 포개졌다. 쏴아아아……. 비는 퍼붓고 그들의 입맞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비가 오고. 죽음이 그들 앞에 있고. 안타까운 사랑이 있어 그들의 입맞춤은 더욱 아름다웠다. 홍앵! 그녀는 이 한 번의 입맞춤에 지난 유한을 모두 씻어 버렸다. 사혼! 그는 이 한 번의 입맞춤에 자신의 모든 생을 화려하게 블태우고 있 었다. 홍앵은 편안하게 웃었다. "운명이…… 저를 당신께 보내고…… 저는…… 행복…… 해…… 요." 두 눈이 스르르 감겼다. 쏴아아아……. 비가 내리고 한 죽음이 있었다. 그 죽음은 아름다워 너무도 애절한 죽음이었다. "홍앵……." 사혼은 그녀의 감긴 두 눈 위에 떨어져 내리는 빗발을 바라보았다. 더 이상 그녀는 울지 않는다. 그의 품에 그녀의 죽음이 안겨 있었다. "무량수불……." 뇌천우사는 불호를 외며 하늘에 시선을 주었다. "무량수불……." 그는 그저 도호만 외울 뿐이었다. 잿빛 하늘…… 비 내리는 하늘이 이 노도인의 눈에 눈물 되어 맺혔 다. 적미천군 사문곡은 잊었던 불호성을 토해냈다. "아미타불……." 그의 불호성은 소리 없는 통곡이었다. 이미 숭복을 벗은 적미천군 사문곡. 이 아름다운 죽음 앞에 그는 눈물로 불호성을 외웠다. "저, 전주……." 사혼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 사문곡이 물기 어린 시선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전주…… 청학진…… 그 청학진에……." 더 이상 그의 목안에서 말이 나오질 않는다. 적미천군 사문곡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혼…… 아니 주유탁…… 그대와…… 홍앵을…… 함께 청학진에 묻어주겠다." 그의 말을 들었는가? 사혼, 이제는 주유탁인 한 남자의 입가에 마지막 미소가 안개처럼 맺혔다. "고…… 맙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홍앵을 안은 채 깊은 죽음 속에 빠져들었다. 쏴아아아아……. 비는 내리 퍼붓는다. . 새털처럼 가볍던 딸의 시신이 천근의 무게로 가슴을 짓눌렀다. 구유명은 홍앵을 끌어안고 거센 경련 속에 무너지고 말았다. "으아아--!" 그는 통곡했다. 시작과 영원을 같이하는 그의 피 토하는 통곡이었다. 쏴아아아…….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늘이 통곡하고 있었다. 52장 금소천을 구하러 가다 한 채의 단아한 모옥(茅屋). 그 안에 세 인물이 있다. 둘은 누워 있고 하나는 서 있었다. 그들은 각기 너무도 개성이 뚜렷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천하절륜의 미공자와 그에 걸맞는 천하절색의 미녀, 그리고 독사의 잔흑한 안광을 지닌 흑의노인이었다. 누워 있는 청년은 말할 것도 없이 금소천이었다.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침상 위에 길게 누워 있었다. 창백한 안색은 그의 짙은 검미와 뚜렷한 이목구비를 더욱 선명히 돋보였다. 그의 곁에는 반대로 보기 좋은 혈색을 가진 절색의 미녀가 누워 있 었다. 영호운령…… 바로 그녀였다. 그녀는 평온한 얼굴에 잔잔한 미소마저 띤 채 깊은 잠에 빠져있었 다. 그때였다. 한옆에 서 있던 영호독이 침상 곁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금성주, 몸은 좀 어떻소?" 일말의 감격과 미안함 등이 깃든 몹시 복잡한 음성이었다. 그러나 금소천의 두 눈빛은 지극히 담담하기만 했다. "괜찮소. 단지 전신에 기운이 없을 뿐이오." 영호독은 더욱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뭐라고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소." 그는 진정 금소천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금소천은 옆을 돌아보며 물었다. "따님의 병세는 치유되었소?" 영호독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딸을 응시하며 말했다. "덕분에……." 금소천은 천천히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담담한 시선을 영호독에게 똑바로 주었다. "현재 내 몸의 상태는 어떻소이까?" 순간 영호독의 움푹한 두 눈에 일말의 불안이 스쳤다. "지금…… 금성주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소. 그러나 보름정도 만 지나면 완전히 건강을 회복할 것이오. 단지……." 금소천은 눈빛을 굳히며 다그쳤다. "단지 무엇이오?" 영호독은 잠시 망설이다가 기어드는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내…… 내공은 영원히 회복할 수 없을 것이오." 쾅--! 금소천은 머리 속에서 벼락이 터지는 충격을 느꼈다. -- 내공을 영월히 회복치 못한다! 물론 이미 짐작했던 일이다. 그러나 막상 그것이 현실로 드러나자 그 충격이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것이었다. 천하의 만금성주이며 십대천왕의 일 인인 그가 모든 내력을 잃다니 …… 천하의 그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확고부동한 사실이었다. 금소천은 자신올 회생하여 두 사람을 소생시켰던 것이다. 천기서생 남궁수와 영호독의 무남독녀인 영호운령을……. 그러나 대가는 너무도 엄청난 것이었다. 금소천은 흔백이 나간 듯 멍하니 허공만 웅시하고 있었다. 영호독은 그런 그의 모습에 더욱 어쩔 줄 몰라 쩔쩔맸다. "금성주, 정말…… 할 말이 없소. 미안하오, 금성주……." 바로 그때였다. 돌연 어디선가 뮴시 사악한 괴성이 터졌다. "크카카캇…… 영호독. 용서할 수 없다! 네놈이 감히 금소천의 무 공을 영원히 없애 버렸다니……." 영호독은 본능적으로 목소리가 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 쪽이었다. 흙으로 발라 만든 토담이 시뻘건 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점점 그 빛은 넓고 짙게 확산되었다. 그러다가 일순 한쪽 벽면이 요란하게 족발하며 핏빛 회오리가 일었다. 휘-- 익! 한동안 회오리는 주위 사물을 혼란시킨 후 서서히 멎었다. 회오리의 움직임도 멎어 있었다. 대신 모옥 안에는 한 사람의 괴인 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핏빛 혈인이 우뚝 나타나 잇었던 것이다. 그는 바로 혈의환사였다. "너놈은 누구냐?" 영호독이 살기를 떠올리며 물었다. "금소천을 죽이는 것은 나의 회망이었다. 네놈은 나의 살아갈 희망 을 앗아가 버린 것이다. 네놈을 천하에서 가장 처참히 죽여 버리겠 다." 혈의환사는 살기 가득한 음성으로 소리쳤다. "미, 미친놈!" 영호독은 어이가 없는지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고 있었다. 혈의환 사를 모르는 그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기도 했다. 그러나 혈의환사는 더 이상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의 짙은 혈광이 이는 눈동자가 침상의 금소천을 향했다. "크카카카…… 금소천. 다시 만나게 되었구나. 이것이 세 번째인 가?" 그러나 금소천은 흥미 없다는 듯 담담히 대꾸했다. "기억력이 좋구려. 하지만…… 앞으로 네 번째 만남은 없어도 될 것 같소. "크흐흐…… 그 몸을 해 가지고도 여전히 입담은 좋구나." 휘리리리릭--! 혈의환사의 혈의가 회오리를 일으키며 마구 펄럭였다. "금소천! 천왕의 제일을 너로 여기고, 너를 꺾는 것을 일생 최대의 목표로 삼았었다." 금소천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혈의환사도 그의 반응 따위는 개의치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렇게…… 이 따위로 어이없게 무공을 상실하다니… … 우우…… 우……." 휘리리리--! 엄청난 분노의 회오리가 일었다. 적어도 혈의환사의 말은 진심이었다. 저주받은 운명을 타고난 그. 한 가닥 생의 미련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금소천을 꺾고 천왕지존 이 되겠다는 일념뿐이었다. 그리하여 일생의 원수인 오존을 꺾어야만 하는 것이었다. 그는 발작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소리쳤다. "영호독! 금소천을 원상태로 회복시켜라." 핏빛 회오리 속에 엄청난 분노의 폭갈이 터졌다. 그러나 만독노조 영호독은 싸늘한 일갈을 터뜨렸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싸늘할 정도로 냉정한 대답이었다. 금소천파의 대화에서 이미 상대의 내력을 짐작한 터이기에, 영호독 은 더욱 빗나가는 대답을 한 것이었다. 혈의환사의 대응은 예상대로였다. 그의 전신에 서린 혈광이 가공할 빛무리를 뿌려댔다.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겠다." 순간 만독노조 영호독의 움푹 꺼진 두 눈이 번뜩 독사의 광망을 내 뿜었다. "혈의환사! 너의 명성은 많이 들었다. 그러나 나 역시 너 못지않은 무공을 지닌 만독(萬毒)의 제왕이다. 네놈 따위는 조금도 두렵지 않 다." 그의 말은 허위도 과장도 아닌 진실이었다. 혈의환사가 사공(邪功)의 일인자라면 영호독은 독공(毒功)의 일인 자인 것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똑같이 천왕지신(天王之神)이 아니던가. 일순 혈의환사의 핏빛 기류 속에서 애의 사악한 괴소가 터져나왔 다. "크카카카…… 영호독 독충 찌꺼기나 상대하는 주제에 큰 소리는 잘 치는구나." 그러나 영호독은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흥! 네놈이야말로 사람의 몰골도 아닌 귀신이 아니냐?" 혈의환사를 둘러싼 핏멎 기류가 꿈틀하며 요동쳤다. 마치 보이지도 않는 혈의환사의 표정을 대신하는 것 같았다, "크크크…… 그래. 오늘이야말로 혈사환마문(血邪幻魔門)의 정수를 보여주마. 혈환마류--!" 핏빛 기류가 증명하듯 혈의환사는 더 이상 참지 않았다. 슈-- 슈르르르--! 살기 띤 폭갈과 함께 가공할 혈경(血勁)이 무지막지하게 영호독을 짓쳐갔다. "흥. 건방진 놈! 천독공(天毒功)으로 네놉을 한줌 혈수(血水)로 만 들어주마." 만독노조 영호독 역시 대갈일성하며 쌍장을 힘껏 밀어붙였다. 쉬쉬쉬-- 쉭--! 시커먼 묵빛 기류가 그의 장심을 떠나 혈경을 맞부딪쳐 갔다. 쾅--! 모옥이 통째로 뒤혼들리는 엄청난 굉음이 솟구쳤다. 혈의환사도 만독노조도 똑같이 한 걸음씩 물러나고 있었다. 막상막하! 일전의 겨룸은 어느 누구의 승부도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정도 상대를 경시했던 두 사람은 분노가 치밀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쳐죽일 놈! 다시 한 번 네 놈을 시험하겠다." "흥, 얼마든지……." 이어 그들은 다시 내력을 끌어올렸다. 조금 전과는 반대로 전신의 모든 공력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태풍이 몰아칠 것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그러나 그들의 두 번째 격돌은 불가능했다. 난데없는 방해자들이 나타났기 때문이엇다. "멈춰라! 영호독!" 번-- 쩍! 우렁찬 외침이 터지며 갑자기 엄청난 한 줄기 도광이 그들 사이에 끼여들었다. 영호독은 대경하억 다급히 쌍장을 뻗어냈다. 파파파파--! 콰쾅! 격렬한 격타음과 함께 영호독은 거센 충격에 의해 뒤로 주르르 퉁 겨났다. "어, 어떤 놈이 감히……." 영호독은 급작스런 상황에 흠칫 놀라 전면을 주시했다. 그의 전면에는 기공할 살기를 전신에 깐 한 인물이 그를 무섭게 노 려보고 있었다. '지옥혈도 궁사…….' 영호독은 내심 소리쳤다. 바로 그랬다. 나타난 인물은 바로 지옥혈도 궁사였다. 모옥에 나타난 이는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스슷--! 미세한 음향이 일며 천마교주 천마황 단금성이 출현했다. 뒤이어 일지겁천 구유명, 적미천군 사문곡, 뇌천우사 등이 속속 등 장했다. 이 돌연한 사태는 영호독의 음침한 안색을 창백하게 탈색시키기에 층분했다. 지옥혈도 궁사는 금소천을 응시하며 부르르 전신을 경련하고 있었 다. "금성주……." 일지겁천 구유명이 다급하게 물었다. "궁사, 금성주의 상세가 어떤가?" 궁사의 안면 근육이 전율을 일으켰다. 그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억지로 벌려야 했다. "내공을…… 잃었소." 순간 구유명을 비롯한 단금성 둥의 안색은 삽시간에 급변을 일으켰 다. 그들은 분분히 금소천의 신색을 살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명색이 천하제일을 다투는 고수들이 금소 천의 상태를 몰라볼 리 만무한 노릇이었다. 문득 일지겁천의 두 착이 지독한 녹광을 뿜기 시작했다. "흐흐…… 어쩐지 오늘은…… 겨울비가 지독히 오더군. 왠지…… 피가 그리운 날이야." 그의 무서운 녹광은 줄기줄기 영호독의 얼굴에 꽂혀 들었다, "내…… 강호에 나와 한 번도 천묵마정을 열두 개를 모두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영호독…… 네놈에게만은 예외를 두도록 하 겠다." 지옥혈도 궁사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그의 분노 또한 하늘을 뒤엎을 듯 엄청난 것이었다. "흐흐흐…… 지옥참마도법의 마지막 구초식(九招式)인 지옥파천황 (地獄破天荒)의 맛도 괜찮을 것이다." 그들은 영호독에 천천히 다가들기 시작했다. 영호독의 눈동자가 급변을 일으켰다. 천마황 단금성 그도 수중의 천마극을 어루만지면서 탄식했다. 영호노인, 당신은 나와의 약속을 어겼소." 삼 인. 그들의 분노는 서서히 극에 달하고 있었다. "크흐흐…… 난데없이 조력자들이 나타났군." 이 순간만큼은 혈의환사조차 똑같은 입장이었다. 그러나 금소천은 여전히 말없이 담담한 신색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 었다. 이 엄청난 격변의 상황 속에서도 그의 텅 빈 듯한 시선은 그 누구를 향하지도 않았다. "우우…… 네놈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