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내가 만드는 이야기

[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61편 (61/79)

2026-09-22 08:16:38 조회 15
석실 안에서는 세 명의 노승이 품(品)자로 자리하고 있었다. 하나 같이 나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온통 주름살투성이의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전신에서는 감히 근접키 어려운 성스러움과 고고함이 끊임없 이 발출되고 있었다. 소림삼신승(少林三神僧). 그랬다. 이들이야말로 소림의 살아 있는 생불(生佛)로 알려진 소림삼신승이 었다. 각기 천우신승(天宇神僧), 천공신승(天空神僧), 천후신승(天吼神 僧)으로 불리는 노승들. 이들의 나이는 이미 이백 세에 이르러 있으며, 일신에 지닌 절기는 감히 추측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그들 중에서도 천우신승은 전대 소림장문이었으며 사문곡의 사부이 기도 했다. "사부……." 사문곡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어 소림삼신승 앞에 이르러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의 눈빛은 미미하게 격동을 일으키고 있었다. 와중에도 눈빛은 똑바로 천우신숭을 향해 머물러 있었다. 천우신승의 물처럼 담담하고 깊은 눈길이 그를 마주보았다. "적허, 너는 이제 이 사부까지도 죽이려느냐?" 인자한 정이 넘치는 부드러운 음성이었다. 과거의 적허. 사문곡은 일순 전신을 부르르 경련시켰다. 그러나 그는 이내 이를 악물며 내뱉듯 입을 열었다. "제자는……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오." 말투조차 절반은 하대였다. 그는 원독 어린 시선으로 천천히 소림삼신승을 차례로 훑어보기 시 작했다. "세 분 사존께서도 과연 삼십년 전 지옥전의 혈겁에…… 가담 하시 었소?" 순간 좌측에 있던 천공신숭의 두 눈이 번뜩 불을 뿜었다. "이놈! 무례하다. 그것이 사존을 대하는 태도냐? 사문곡은 홈칫 입을 다물었다. 파르르……. 그의 눈꼬리에 미세한 경련이 스쳤다. 적지 않은 고뇌가 그의 전신 을 감싸고 있었다. 비록 몸은 지옥전주로 화해 있었지만, 소림 시절의 과거를 칼날같 이 지우기는 힘들었다. 털썩! 사문곡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제자가 무례했다면 그 죄를 빌겠소. 그러나…… 지금 제자가 알고 싶은 것은 지옥전 혈겁의 내막이오." 절규의 울부짖음 같은 목소리였다. 소림삼신승은 그 한마디에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일제히 갈등과 번뇌가 담긴 복잡한 광채가 떠올랐 다. 무엇이 이 덕망 높은 고숭들을 번뇌케 하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 었다. 사문곡은 그들이 말이 없자 차갑게 재촉했다. "세 분 사존! 대답을 해주시오. 지옥전의 혈겁에 참가하셨소이까?" 통한의 재촉이었다. 천우신승은 두 눈을 스르르 내리감았다. 이윽고 그의 입술이 무겁게 떨어졌다. "했다." 쾅--! 천지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둔증한 충격이 사문곡의 뒤통수를 세차게 내리켰다. -- 지옥전 혈겁에 소림삼신승이 참가했다. 그것은 이제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났다. 부르르……. 사문곡의 전신에 세찬 경련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이럴 수가…… 설마 했었는데…… 사실이라니…….' 그의 가슴은 거센 풍랑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곧 노도(怒濤)였다. 주체치 못할 엄청난 격정의 해일이 사 문곡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흐…… 흐…… 흐……." 그의 입술 사이로 억눌린 괴성이 새어 나왔다. 두 눈은 금세라도 드센 불길을 내뿜을 듯 활활 타올랐다. 급기야 괴이한 앙천광소가 동굴을 무너뜨릴 듯 터져 나왔다. "크으…… 으하하하하!" 우는 것인지 옷는 것인지조차 불분명했다. 점점이 통한과 통분이 맺힌 처절한 광소성이었다. '아미타불…….' 소림삼신승들은 지그시 눈을 감은 채 내심 불호성만을 외웠다.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어쨌든 사문곡의 살부지흉 (殺父之凶)의 원수인 것이다. 사문곡의 광소성은 한동안 동굴을 울리며 소림삼신승들의 가슴에 못을 쳤다. 이윽고 사문곡은 광소를 멈추었다. 원한의 불길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길이 광소를 대신했다. 그는 천천히 세 노승을 돌아보았다. "위선자들…… 당신들은 불(佛)의 탈을 쓴 악마들이요, 저주받을 원흉이외다." 노골적인 비난이었다. 과거 그의 숭앙을 받던 소림삼신승에 이젠 온갖 욕설이 퍼부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소림삼신승들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사문곡은 욕설을 멈추고 그들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리고는 격정을 지그시 억누른 채 말을 이었다. "지옥전은…… 분명 사도(邪道)의 문파였소. 그러나 그들은 결코 악행을 저지른 적은 없었소." 그의 목소리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말해 보시오. 지옥전…… 나의 아버님이 대체 무슨 대죄를 범했기 에 비명에 돌아가셔야 했소?" 소림삼신숭은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않는 것인지, 할 수 없는 것인지도 알 수 없었다. "아미타불……." 불호성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단어의 전부였다. "어서 말해 보시오" 사문곡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러자 천우신숭의 감겼던 눈꺼풀이 잔떨림을 일으키며 천천히 뜨 여졌다. 텅 비어 있는 공허한 눈멎이 사문곡을 향했다. "적허……." 사문곡은 발작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적허가 아니오. 지옥전주 적미천군빛나는 눈동자 로 천우신승을 똑바로 주시했다. "말해 주마. 너에게…… 모든 사실들을……." 천우신승은 풀리는 눈꺼풀을 치뜨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지옥전을 멸망시킨 것은…… 무림맹이었지만…… 원흉은 따로…… 있엇느니라." 순간 사문곡은 벼락을 맞은 듯 화들짝 놀랐다. "원흉이라니요? 그…… 그게 누굽니까?" 그는 천우신승의 처지도 잊은 듯 재촉을 했다, 천우신승은 간신히 입을 벌려 말을 하기 시작했다. "오, 오존……." 놀라운 말이 천우신숭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오존?" 사문곡은 부지불식중 그 말을 되뇌이며 천우신승의 다음 말을 기다 렸다. "노, 노납은…… 유명마승이…… 너를 데리고 소럼에 왔을 때…… 이미…… 너의 신분을 짐작했었다. 그러나…… 노납은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이고…… 너를…… 키웠다." 사문곡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지극히 자애로웠다.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의 눈길 같았다. "그러나…… 그것 역시도…… 오존의 눈올…… 벗어나지는 못했다. 오존은 지금…… 너를 이용…… 정도무림의 괴멸을…… 노리고 있 다." 드디어 무서운 음꼬의 전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천우신숭은 지난 삼십 년간 품어온 비밀을 모두 털어놓으려는 듯 안간힘을 다해 입을 열고 있었다. "이 모든 것…… 삼십 년 전부터…… 진행되어 온…… 음모…… 노 납도…… 너도…… 모두가…… 그…… 음모의 희생자……." 사문곡은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그는 황급히 물었다. "사존, 오존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천우신승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인 후 입술을 움직였다 "오…… 오존의…… 정체는…… 으악!" 말을 잇던 그가 갑자기 처절한 비명을 터뜨렸다. 사문곡은 대경하여 그의 몸을 감쌌다. 그러나 이미 일은 치러진 후였다. 그의 이마 한가운데 어느새 한 개의 암기가 날아와 꽂혀 있었다. 이마에 박힌 것은 검은 별 모양의 괴암기였다. 그것을 본 천공신승과 천후신승의 안색이 대경으로 물들었다. "흑마성(黑魔星)……." 그러나 그들 역시 말을 채 마치지 못했다. "으-- 악!" "크윽--!" 두 사람은 비명을 내지르며 쓰러졌다 천우신승과 마찬가지로 검은 별 모양의 암기가 그들의 이마에 박혀 있었다. 파공음도 없었다. 검은 별의 암기는 귀신도 모르게 날아와 그의 이 마를 꿰뚫었다. 가히 통천가공의 수법이었다. 사문곡은 급작스런 사태에 분노하여 신형을 벌떡 일으켰다. "어떤 놈이냐?" 그러나 전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뚜작정 밖을 향해 신형을 움직이려 했다. "적…… 허……." 순간 가는 음성이 그를 제지시켰다. 천우신승이었다. 그가 피에 젖은 얼굴로 힘겹게 눈을 뜨고 있었다. "사 …… 사부." 사문곡은 급히 천우신승에게 다가가 신형을 부축했다. 천우신승은 가물거리는 의식을 간신히 움켜쥐며 말했다. "이미…… 나는…… 무공이 거의 상실되어…… 마…… 마지막…… 이다……." 사문곡은 비통한 음성으로 소리켰다. "사존……." 그러나 천우신승의 귀에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창백해진 입술이 억지로 벌어졌다. "지옥전…… 혈겁의 원흉은…… 오…… 오존 중…… 한 명인…… 천불사존(天佛死尊)……." 천불사존. 또 하나의 오존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천우신승의 목소리는 계속되었다. "그, 그의 정체는…… 바로……." 사문곡은 안색을 굳히며 천우신승의 입술에 귀를 바짝 가져갔다. 속삭이는 듯한 음성이 귓전을 울렸다. "바로…… 무…… 무허(無虛)…… 장문…… 인." 순간 사문곡은 아연한 채 넋을 놓고 말았다. "무허 장문인이……?" 믿을 수 없는 일이엇다. 본래 무공보다는 타고난 인품으로 장문인의 직위에 오른 자가 바로 무허였다. 소림의 활불이요, 석가의 화신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였다. 당연히 사문곡은 정신이 다 빠져 나갈 지경이었다. 그 사이 천우신승의 음성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의 무공이…… 바로…… 흑마성……." 천공과 천후신숭이 죽기 직전에 외쳤던 암기의 이름. 이제 그것의 정체도 밝혀졌다. "적허야…… 너는 영원한…… 소림의 제자…… 소림…… 소림을… … 구해야…… 한…… 다." '소림을 구하라' 가 그의 마지막 말이었다. 툭! 천우신승의 고개가 맥없이 꺾였다. 죽음이 그의 인생에 종지부를 쩍고 만 것이었다. "사…… 부님……." 사부님! 사문곡은 천우신숭의 주검을 그렇게 불렀다. 차라리 평온해 보이는 사부의 주검. 사문곡은 그 앞에 넋을 송두리째 앗겼다. 문득 그의 입술이 허허롭게 열렸다. "무허…… 무허 장문사형이…… 지옥전 혈겁의 원흉이고…… 오존 중에 한 명인 천불사존이라고……?" 넋이 빠져 버린 듯한 중얼거립이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주르르 눈물이 흘러나왔 다. 그것은 선명한 붉은 빛의 피눈물이었다. "으…… 으…… 으아-- 아!" 사문곡은 나직한 신음성을 흘리며 허공에서 신형을 뒤집었다. 상상 외로 무허선사의 반응이 막강하기 때문이었다. 서서히 흙먼지가 가라앉자 무허선사의 신색이 시야에 들어왔다. 별 다른 부상을 당하지 않은 듯 그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사문곡의 입가에 비릿한 조소가 그려졌다. "흐흐…… 이래도 네놈이 나의 사형이라고 우길 수 있겠느냐? 어디 입이 잇으면 말해 봐라. 천하의 오존이 아니고서야 어찌 천왕의 공격 을 감당할 수 있는지……." 그의 조소는 일종의 격장지계였다. 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무허선사의 본색을 밝혀내고 싶었다. 심중이 아닌 본인의 입으로 듣고 싶었다. 그러나 무허선사는 끝까지 초연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뻔뻔할 정도로 침착했다. "사제는 완전히 마성에 접어들었네. 내 오늘 살계를 범하는 한이 있다 하더라도 사제를 징계할 수밖에 없겠구만." 무허선사는 녹옥불장을 하늘 늦이 치켜들었다. 사문곡의 눈동자에 벼락같은 섬광이 일었다. "좋다 나 역시 네놈과는 세불양럽할 수 없는 입장. 기필코 네놈을 죽여 부친과 스승의 원수를 갚갰노라" 사문곡은 말보다 빠른 동작으로 몸을 날렸다. 무허선사도 눈동자를 이글거리며 녹옥불장을 휘둘렀다. "대범천신공!" "차앗! 다라천강수!" * * * 사문곡과 무허선사의 싸움은 그야말로 백중지세였다. 어느 쪽에도 점수를 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사혼은 달랐다. 그는 소림사의 승려인지도 확실치 않은 자들에게 둘러싸여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어, 엄청난 놈들이다!' 처음 소림의 정문을 부수고 들어을 때의 승려들과는 차원부터가 달 랐다. 더구나 문제는 사혼 자신만이 아니었다. '지옥전의 식구들이 위험하다.' 바로 그 점이 또 하나의 커다란 문제였다. 아까부터 멀리서 들려오던 비명 소리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소 림 측이 당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너무도 낙관적인 생각 이었다. 지금처럼 함정에 빠진 게 분명한 상황하에서는 그 어느 것도 안심 할 수가 없다. 쐐애액! 잠시 딴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소림 승려 하나의 선장이 날아들었 다. 빠르기는 하나 결정적으로 위협적이라는 생각은 들지않았다. "치잇!" 사혼은 짐짓 투덜거림을 발하며 허리를 뒤틀었다.그 정도로 충분하 리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엉똥하게 이어졌다. 철컹! 선장은 빗나갔으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선장의 끝이 갈라지며 그 속에서 날카로운 검날이 튀어나왔다. 그 것도 날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재검이었다. 찌이익! 섬뜩한 소음과 함께 사혼은 옆구리가 길게 찢어지는 것을 느꼈다. 선명한 피분수가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내렸다. "으으…… 소림의 승려가 날이 선 병기를 사용하다니……." 내막을 모르는 그로서는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당황해 하고 있을 틈도 없었다. 사방에서 정신없이 똑같은 방식의 공격이 쇄도해 들었다. 어떤 것은 검날이요, 어떤 것은 창날이었다. 종류는 가지각색이었으나, 한 가지 공통점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섬뜩할 정도의 극렬한 살기였다. 쉬익! 화아악! 섬광이 번뜩이고 피가 튀었다. 사혼의 전신은 순식간에 혈인으로 둔갑하기 시작했다, "크으으……." 그는 신음성을 흘리며 연신 뒷걸음질쳤다. 그러나 물러서기도 용이하지가 않았다. 커다란 담벼락이 등뒤를 가 로막았기 때문이다. 그는 흠칫하며 전면을 둘러보았다. 정면은 물론이요, 좌우까지 소 림의 승려들이 밀려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절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절망이 내려앉았다. 쐐애액--! 쉬쉬쉬쉭! 병기들의 섬뜩한 예광이 번뜩였다. 섬전이 일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병기들은 이미 코앞에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때였다. 콰쾅! 우르르르……. 사혼의 옆에서 거대한 굉음이 들렸다. 석벽이 무너져 내리는 소리 였다. 이어 한 줄기의 우렁찬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이 사람의 탈올 쓴 악마들이여! 물러서라!" 동시에 무너진 석벽을 뚫고 누군가의 신형이 튀어나왔다. 신형은 튀어나온 탄력을 그대로 이용하여, 폭쫑처럼 소림의 승려들 을 쓸어갔다. "크어억!" "웬놈이…… 으아라!" 진정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폭풍의 신형은 그야말로 눈 깜빡할 사이에 수 째재재쟁! 차--앙! 현란한 불꽃이 튀며 열기가 '훅' 하고 뿜어져 나왔다. '우우…… 과연 뇌천우사로군.' 졸지에 사문곡과 뇌천우사의 공격을 함께 받은 무허선사는 오장여 를 물러서야 했다. 한편 사문곡은 그제야 뇌천우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뇌천우사! 어떻게 이곳을……." 뇌천우사는 경계의 빛을 늦추지 않은 채 대답했다. "말을 하자면 좀 기네. 일단은 저놈을 처치하고 보세!" 그는 무허선사를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무허선사의 표정은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지고 있었다. 힐끗 살펴보 니 자신의 수하들도 이미 당한 상태였다. "놈……." 그는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뇌천우사가 냉랭하게 응수했다. "무허! 이제는 순순히 정체를 드러내거라!" 그는 청강검을 움켜쥐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무허선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겼다. 그의 입술을 뚫고 음산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흐흐……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지만 꽤나 목숨이 긴 놈이로구 나. 그래, 모두 알려주지. 네놈들이 생각한 대로 나는 오존 중의 하 나인 천불사존이시다!" 결국 무허선사는 스스로 탈을 벗고 말았다.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안고 있던 사문곡의 안색도 급속도로 창백해 졌다. 무허선사. 아니 천불사존의 괴소가 이어졌다 "크흐흐…… 뇌천우사 네놈까지 제발로 기어 들어왔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다. 바로 이곳에서 천왕 중의 둘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말과 함께 천불사존은 별안간 뒤쪽으로 신형을 날렸다. 얼핏 보기 에는 마치 도주를 하는 것 같았다. 순간 사문곡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놈! 어디로 도망을 하려는 게냐?" 그는 자신도 신형을 날려 천불사존을 뒤쫓으려 했다. 뇌천우사가 황급하게 그를 말렸다. "잠깐! 멈추게. 지금 놈은 수하들을 부르러 간 것일세. 놈을 쫓다 가는 자칫 함정에 빠질 우려가 있으니 이만 물러가세." 사문곡은 주위의 인기척을 살펴보았다. 뇌천우사의 말대로 소림 전 체는 마기로 충만해 있었다. "으음……." 그는 나직한 신음성을 흘려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원수가 눈 앞에 있었지만, 쓸데없는 객기를 부릴 정도로 답답한 사람이 아니었다. "지옥전 고수들은 모두 피하라고 일러두었네. 자네와 나만 빠져 나 가면 되는 것이야. 그리고……." 뇌천우사는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를 나가면 일단 지옥전을 재정비하게. 그리고 어느 정도 기력 을 되찾으면 사천성의 구당협으로 오게나." 마지막 말을 할 때쯤 그는 이미 신형을 날리고 있었다. "반드시 찾아오게…… 반드시……." 섬전 같은 빠르기로 그의 신형은 사라지고 있었다. 사문곡은 의미 있는 눈길로 그의 등을 쫓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그는 소림사의 경전 쪽을 바라보다가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며 몸을 날렸다. "천불사존…… 반드시 돌아오마. 그리하여 네놈의 목을 취하고 말 것이다." 살부지한의 비밀을 알아낸 적미천군 사문곡! 전적인 타의로 무당을 벗어나야 했던 뇌천우사! 그들은 또 어찌 변화할 것인가? 경혼(驚魂)의 하루는 또 이떻게 지나가고 있었다. 47장 화예랑이 납치당하다 눈(雪). 눈은 폭설이 되어 휘날린다. 군산(君山). 동정호 중앙에 자리한 군산에도 눈은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군산의 눈은 여타의 그것과 달랐다. 내릴 때는 백설이되, 쌓여가면서 붉은 혈설로 변화하고 있었다, "으--!" 단말마의 비명이 터지고 피분수가 솟구쳤다. 검마제 목철심. 김문의 문주이기도 한 그는 머리가 산발한 모습으로 피투성이가 되 어 악귀같이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악--!" "아윽--!" 그의 검에 의해 혈궁의 제자들은 연이어 피를 쏟았다. 검마제 목철심은 이 순간 광난(狂亂)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혈귀 요, 라귀의 모습이었다. 일문의 지존이요, 절대고수로의 당당한 면모 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한나절 동안에 자신의 수하들을 모두 잃었 기 때문이다. 삼천에 달하던 검문 고수들은 단 한 명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직 목철심 흔자만이 악전고투하고 있을 뿐이었다. "찢어 죽일 놈들! 비겁하게 암수를 써서 본문의 고수들을 전멸시키 다니……." 그는 절로 이를 갈 수밖에 없었다. 창헤신마 용일범의 수공에 걸려 무려 이천오백의 고수들이 차가운 동정호에 수장되었다, 간신히 오백 명만 군산에 상륙했다. 그러나 그들의 목숨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도 혈궁에 의해 무 참하게 도륙당하고 만 것이었다. "한놈도 남겨두지 않으리라…… 이 비겁한 놈들!" 목철심은 광기를 번들거리며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그때였다. 어디에선가 지독하게 무심한 어조가 터졌다. "목철심. 병법에 있어 암습은 가장 훌륭한 전략 증 하나이다." 말과 동시에 한 물체가 허공을 날아 목철심의 발치에 '툭' 하고 떨 어졌다. 순간 목철심은 경악 속에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어헉!" 물체. 그것은 한 개의 수급이었다. "아, 아우야……." 목철심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치켜져 올라갔다. 수급은 온통 고통과 불신으로 인해 멋대로 일그러진 목철심의 아우 목초평의 것이었다. 검문 제 이인자인 귀변마검 목초평. 그가 한 개의 초라한 수급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초, 초평…… 또대체 어떤 놈이……." 목철심은 절규 같은 신음성을 홀리며 예의 음성이 인 곳으로 시선 을 주었다. 내리는 눈발 속에 한 인물이 모습을 보였다. 약 오순 가량의 극히 냉막한 모습의 중년인이었다. 등에는 길게 일 장 길이의 한 자루 장도를 메고 있었다. 귀문장도(鬼門長刀) 막여사. 바로 혈궁 이좌령(二坐令)이자, 금소천 대신 혈궁을 총괄하고 있는 그였다. 목철심은 잡아먹을 듯이 귀문장도 막여사를 주시했다. "네…… 네놈이 아우 초평을 죽였느냐?" 귀문장도 막여사는 냉막무심하게 대답했다. "물론. 단 일초라 너무 싱겁더구나." "으……." 목철심은 부르르 치를 떨었다. "네, 네놈은 누구냐?" 막여사는 지독할 정도로 무심한 어조로 대답했다. "귀문장도 막여사." 목철심이 흠칫하여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일전에 만난 혈의환사가 해주었던 경고가 떠올랐다. 귀문장도 막여 사를 조심하라던 그의 경고 아닌 경고. 목철심은 이제 그의 말이 틀림었는 사실임을 알 수 있었다. 막여사는 등뒤에서 장도를 뽑아 들었다. "이것은 인간의 죽음과 삶을 결정 짓는 생사교라 하지." 바로 막여사의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생사교였다. 그러나 목첩심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만큼 한가하지 못했다. 이 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넘치는 분노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꽉! 그는 분기탱천하여 수중의 묵검을 으스러지게 움켜쥐었다. "초평! 이 헝이 네 원한을 갚아 주겠다." 순간 목철심은 그대로 귀문장도 막여사를 향해 성난 멧돼지같이 짓 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