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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58편 (58/79)

2026-09-22 08:16:38 조회 14
간신히 중심을 잡고 있던 목철심이 대경하여 소리쳤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철관들은 무자비하게 배 밑바닥을 뚫으 며 통째로 박살을 내버렸다. 소용돌이 속에 솟구치는 철관들의 숫자 는 무려 수백 개에 달했다. 수백 척의 선박들은 솟구치는 철관들에 의해 한 치도 전진하지 못 했다. 아니, 전진은커녕 그저 속수무책으로 박살날 뿐이었다. 대책 없이 호수로 뛰어든 무인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비명과 함께 더운피를 뿌리며 숨져갔다. 콰콰쾅! 배들은 연이어 박살이 났다. "으악--!" 검문 고수들은 손 한번 쓰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있었다. 온통 혼란한 와증에 드디어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검문인을 제외 한 최초의 외인이었다. 그는 물 속에서 뛰어나와 한 철관 위에 날럽하게 내려섰다. 호랑이와 같은 용모를 한 증년인. 그는 바로 군산 칠십이채 총표파자인 창해신마 용일범이었다. "으하하핫…… 군산 칠십이채의 형제들이여! 검문의 잡졸들을 모조 리 쓸어버려라."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철관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검문의 대선단은 속수무척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으…… 이럴…… 수가!" 검마제 목철심은 돌변한 변화 앞에 치를 떨어야 했다. 쾅! 콰콰쾅! 철관들은 쉬지 않고 빼를 박살내었다.또한 호수 속에는 흡사 물고 기같이 유영하는 괴영들이 있었다. 겨울 호수 속인데도 불구하고 상체를 벗고 있는 괴인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날이 시퍼런 분수자(分水刺)들을 들고 있었다. 그것들 이 한 번씩 움직일 때마다 영락없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검문 고 수들의 목에서 촬팥 선혈이 뿜어졌다. 동정호는 어느덧 완전한 피의 호수로 변해 버렸다. 검마제 목철심은 넋을 놓고 외켰다. "시…… 실패다. 완전 실패……." 그의 외침은 서서히 절망으로 바뀌어갔다. 이것이 바로 검문 최후의 날이었다. * * * 천심뢰(天心牢). 만금성 깊숙이 자리한 뇌옥(牢獄)으로 중죄를 저지른 범인만을 가 두는 곳이었다, 총 일백이십사 개의 옥에 삼백여 명의 죄인들을 수용할 수 있는 규 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의 석옥(石獄). 어둠침침한 그 석옥 안에 싸늘한 냉기와 함께 우울한 기운만이 감 돌고 있었다. 어둠의 한켠에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잔뜩 웅크린 신형은 딱 딱한 장작개비인 양 바싹 메말라 있었다. 그러나 연신 시퍼런 녹광을 내뿜는 두 개의 안광만은 야광주처럼 번뜩였다. 눈빛의 사연은 누가 보아도 뻔한 것이었다. 원한에 이글이글 타오 르는 광기 어린 눈빛. 바로 그 자체였다. 적어도 지금의 만금성에서 그러한 눈빛을 할 자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천수장공 명학초. 천하제일의 장공이며 만금성을 축조한 장본인, 바로 그였다. 그는 지금 손목과 발목을 쇠사슬에 묶인 채 석옥 안에 갇혀 있었 다. 물론 누구나 알 듯이 첩자라는 대역죄의 죄명을 뒤집어쓰고 있는 상태였다. 단 며칠뿐이지만, 그의 얼굴은 초췌해졌으며 수염마저 덥수룩해 있 었다. 그의 메말라 갈라 터진 입술 사이로 뿌드득 원독에 찬 목소리가 터 져 나왔다. "금소천, 네가 나를 이토록 비참하게 만들다니……." 뼈와 가죽만 남은 그의 이마에 시뻘건 핏즐이 툭툭 불거졌다. "만일…… 내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금소천 너를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겠다." 부르르……. 그는 엄청난 살기를 온몸 가득히 내뿜었다. 전신이 벌벌 떨릴 정도 로 강렬한 살기였다. "나 명학초가 이름을 걸고 맹세하노니…… 반드시…… 반드시 너를 이 세상에서 가장 처참하게 죽먹 버리고 말 것이다." 힘이 없을수록 원한은 깊숙이 맺히는 법이다. 명학초의 맹세는 힘 없는 자의 가공할 맹세였다. 그러나 힘없는 자의 한계는 어디에서든 마찬가지였다. 천수장공 명학초는 이내 머리를 흔들며 긴 탄식을 내뿜었다. "휴…… 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내 목숨조차도 연명치 못하는 것을……." 다소 맥이 빠진 음성이었다. 아무리 분노가 치민다 할지라도 그는 지금 지하 깊은 뇌옥에 꼼짝 없이 갇힌 신세가 아니던가? 바로 그때였다. "흐흐흐…… 자고로 만사란 마음먹기 나름 아니겠소? 어쩌면 귀하 는 다시 살아날 수도 있소." 어디에선가 저숭사자의 웃음인 양 음산한 괴소가 들려왔다. 명학초는 홈칫 크게 놀라 두 눈을 부릅떴다. "누…… 누구냐?"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반응이 들려왔다. "쉿! 조용히 하시오." 예의 음성이 나직한 경호성을 발했다. 명학초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았다. 단 며칠뿐이지만, 그는 뇌옥에 서 자신의 메아리 이외에 아무런 소리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 다. 그때 다시 음침한 음성이 그의 고막을 파고들었다. "천수장공, 만약에…… 본인이 그대를 구해 준다면 어떻게 하시겠 소?" 구해 준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탈출을 시켜 준다. 명학초는 경악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로 사방을 살폈다. "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나 어느 한곳에서도 기척을 느낄 수 없었으며, 음성이 인 방향 조차 종잡을 수 없었다. "흐흐흐…… 천수장공, 어서 대답이나 하시오." 예의 괴소성의 임자가 재촉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이 이러할까? 명학초에게는 이미 선택 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 물론이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 명학초는 귀하의 부탁을 무엇이든 들어 드리겠소." "흐흐흐…… 됐소. 대답은 그것으로 충분하오." 괴목소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파파파-- 팟! 석옥 중앙의 지면이 폭죽 튀듯 튀어 올랐다. 그리고 사람의 그림자 하나가 그 속을 비쾌히 솟구쳐 올랐다. 암흑처럼 시커먼 흑영(黑影) 이었다. 그는 괴이하게도 전신에 비늘로 덮인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얼굴마저 검은 가죽 복면으로 가건 괴인은 품에서 한 자루 비수를 꺼내 들었다. 예리한 녹광을 끊임없이 뿜어내고 있는 극히 작은 비수 였다. 그것을 본 명학초는 은은한 경강의 탄성을 발했다. "녹옥혈비(綠玉血匕)." 괴인의 두 눈이 복면 속에서 실처럼 가늘어졌다. "흐흐…… 과연 천수장공이군. 이 천고의 물건을 한눈에 알아보다 니……." 괴인은 녹옥혈비라는 비수를 이리저리 돌리며 말했다. 그러나 정작 명학초를 놀라게 한 것은 녹옥혈비가 아니었다. "그, 그렇다면 귀하가 바로…… 지중혈마(地中血魔) 여백기(呂白 基)……?" 천수장공 명학초는 거듭 경악성을 터뜨렸다. 피인의 고개가 주저 없이 끄덕어졌다. "그렇소." 지중혈마 여백기. 그는 정사십팔대고인(正邪十八大高人)에 드는 절정고수엿다. 천하에 거칠 것이 없다는 무서운 마왕(魔王)이자. 특허 땅속을 자 유자재로 종횡무진하여 이름을 날렸다. 또한 그가 지닌 녹옥혈비는 천고의 병기로 유명했다. 그것은 쇠도 무 자르듯 하는 보기 드문 비 수였던 것이다. 지중혈마 여백기는 곧 녹옥혈비로 명학초를 묶고 있는 쇠사슬을 낍 었다 명학초는 자신의 몸이 훨씬 자유로워진 것을 알았다. 칭는 굳었던 근육을 몇 번 풀어 보고는 시선을 돌렷다. "본인을 살려준 대가는 무엇이오?" 그는 시선을 똑바로 여백기의 두 눈에 주었다. 여백기의 두 눈이 재차 가늘게 뜨였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 한 가지…… 바로 만금성주 마군자 금소천을 죽이는 것이오." 순간 천수장공 명학초는 쾡한 두 눈에 경악을 떠올렸다. 이어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말했다. "그, 그것은 불가능하오. 금소천…… 그 자의 무학은 인간의 그것 이 아니기 때문이오." 명학초는 은은한 두려움의 기색으로 황망히 두 손을 내저었다. 조 금 전까지 명백하게 존재했던 원한의 기운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 다. 지중혈마 여백기는 조소 어린 눈빛으로 그를 지그시 응시했다. "염려 마시오, 그를 제거할 능력을 가진 고수는 우리에게 얼마든지 있소." "그…… 그렇다면?" 명학초의 눈동자에 반색이 떠올랐다. 귀신 같은 금소천을 직접 상 대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여유가 생겼다, "그대는 단지 우리에게 만금성의 비밀도해(秘密圖解) 만 그려주면 되오." 여백기가 단정 짓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명학초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빨을 소리내어 갈아붙였다. "그것은 걱정하지 마시오. 본인이 금소천의 상대는 안되나, 어차피 놈을 죽이고 싶었으니까……." "되었소. 바로 그거요." 지중혈마 여백기는 벌떡 신형을 일으키며 그를 재촉했다, "자…… 이제 갑시다." 명학초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여백기는 자신이 방금 나왔던 땅속을 가리켰다. 두 사람은 은밀한 동작으로 함께 사라졌다. 천심뢰에 남은 것은 어둠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이 남긴 체 취마저 깨끗이 지워 버렸다. * * * 설기봉으로 오르는 길은 힘들었다. 워낙 가파르기도 했지만 보다 문제는 추위떴다, 주위의 지형적인 이상으로 인해 이곳은 유난히 추 위가 심했다. 더구나 이름 값을 하려는지 사방에 쌓인 눈도 발걸음을 늦추고 있었다. "이거야 원, 우리가 대체 어디까지 도망가야 하는지 알고나 가도록 하지." 일지겁천 구유명은 잔뜩 볼멘소리로 투덜거렸다. 그러자 지옥혈도 궁사가 다소 발걸음을 늦추며 대답했다. "거의 다 왔소이다." 목표가 거의 왔다는 말에도 일지겹천은 불만을 그치지 않았다. 말 을 할 때마다 입에서 뿜어지는 허연 증기도 짜증을 돋구었다. "도대체 이렇게 추운 곳에 무엇이 있길래, 도망자라는 오명까지 쓰 고 달려가는 겐가?" 그의 잔뜩 찌푸린 얼굴과 달리 궁사는 기이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 다. "놈들을 잡기 위해서요. 만약 우리끼리만 놈들과 싸운다면 자칫 우 리가 당하거나. 잘해야 놈들을 도주하게 만들고 말 것이 아니겠소?" "놈들이라니? 아까 사망마존과 그 수하들 말인가?" 궁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이다." "으음……." 일지겁천은 나직하게 신음성을 터뜨렸다. 대답은 들었지만 아직도 궁금한 게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헌데 하필 이곳까지 죽어라고 와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가? 진 작 계획이 있었다면 아예 아까 끝장을 보지 않고 말이야." 그는 여전히 불만에 찬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쉽사리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궁사는 급작 스럽게 신형을 멈추었다. "앗!" 일지겁천이 깜짝 놀라며 신형을 세우려 했다. 그러나 그는 십여 장을 더 나아간 후에 간신히 걸음을 멈출 수 있 었다. 눈이 쌓여 바닥이 미끄러운 탓이었다. 그는 궁사가 서 있는 곳으로 되돌아오면서 투덜거렸다. "그렇게 갑자기 서면 어쩌란 말인가? 눈 때문에 가뜩이나 미끄러운 바닥인데……." 그의 모습을 바라보며 궁사는 더욱 짙게 미소했다. 일지겁천이 다가오자 그는 웃음기 어린 음성으로 말했다. "후후후. 놈들을 애써 이곳 설기봉까지 끌어들인 이유가 바로 그것 이오." "그것이라니……?" "이 엄청난 추위 말이오. 북해로 가지 않는 이상, 이 정도의 추위 가 몰아치는 곳은 흔하지 않으니까." "추위 때문에…… 이곳을 택했다고……?" 일지겁천은 인상을 찡그렸다. 설명을 듣는다고 들었는데 갈수록 오 리무중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입을 열려 했다. 치미는 궁금증을 참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미처 의문을 풀 수가 없었다. "크흐흐흐, 겨우 여기까지 도망친 것이냐?" 생각조차 하기 싫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생각조차 하기 싫 은 모습도 나타났다, 바로 사망마존이었다. 그는 흑포에 눈을 맞으며 두 사람의 면전으로 다가왔다. 그의 뒤쪽 에서는 수백 명의 무리들이 하나 둘씩 따라붙고 있었다. "어디 좀 더 도망을 하시지? 벌써 기력이 떨어진 것인가?" 그는 짐짓 비아냥거림을 퍼부어댔다. 순간 일지접천의 눈동자에 예리한 살기가 번뜩였다. "놈! 찢어진 입이라고 잘도 떠들어대는구나." 그는 품속에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천고의 암기라 는 천묵마정이었다. "흐흐흐, 이땐에는 도망을 치지 않을 모양이지?" 일지겁천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무럽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래, 이번에는 확실히 네놈의 목줄기를 끊어주겠다." 그의 음성은 어느새 짐숭의 그것과 다름없이 변해 있었다. 가공할 살기가 그의 몸을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구노사."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지옥혈도 궁사였다. 일지겁천은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번에는 말리지 말게.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놈의 목줄기를 따 버리고 말 테니까." 궁사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일지겁천은 볼 수가 없었다. "말리지 않겠소. 다만 저 뒤에 쫓아온 떨거지 놈들은 신경쓸 것 없 다고 말해주고 싶을 뿐이오." 그의 목소리에는 현저한 자신감이 심어져 있었다. 그 목소리에 놀란 사람은 다름아닌 사망마존이었다. 도망을 친 사 람치고는 너무도 자신 있는 음성이기 때문이었다. '나의 수하들은 개개인이 일당백의 고수들이다. 제아무리 천왕이라 할지라도 그들 모두를 상대할 수는 없다. 과연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의문이었다. 지옥혈도 궁사 정도의 인물이라면 한눈에 상대의 능력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런데도 저렇듯 광오할 정도로 자신 있는 음성이라니. 도저 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일단 한번 의심을 하기 시작하자 기이한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 졌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그의 얼굴에 그려져 있던 조소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가, 가만있자…… 혹시?' 그는 다급하게 사방을 둘러보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낭랑한 여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호호호, 지옥혈도 궁 노선배님께서는 저희 얼굴에 금칠을 하시는 군요." 아름답지만 싸늘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사망마존은 다급하게 시선을 돌렸다. 그의 시야에 십여 명의 백의 여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같이 늘씬하고 절색의 용모를 소유한 여인들이었다. 살결까지 빙옥같이 투명하여, 인간의 그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장소가 이곳이라면 그리 틀린 말씀도 아니에요. 벌써부터 추위에 떨고 있는 저런 작자들을 상대하기란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쉬운 일이지요." 여인들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마치 평지를 걷듯 지극 히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그러나 정작 놀라운 것은 십여 명 백의여안들의 뒤쪽이었다. 그녀들의 뒤를 따라 엄청난 숫자의 썩인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녀들은 모두 옷을 벗은 알몸이었다. 이 혹독 한 추위에도 여인들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 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여인들을 알아본 사망마존의 얼굴에 경악이 떠올랐다. "너, 너희들은……?" 그는 주춤거리며 두어 걸음을 물러서야 했다. 이어 복면을 뚫고 답 답한 신음성이 새어 나왔다. "설궁……!" * * * 조금씩 땅거미가 깔리고 있었다. 만금성의 한 밀실. 소리 없이 문이 열리고 한 인물이 밀실에 들어섰다. 바로 만금성주 인 마군자 금소천이었다. 그는 밀실 안을 한 바퀴 둘러본 후 한쪽 벽쪽으로 다가갔다. 벽에는 한폭의 산수화로 된 족자가 걸려 있었다. 금소천은 손을 들어 족자를 한켠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족자가 밀려나며 손가락 두 개가 간신히 들어갈 구멍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 다. 구멍 속에는 가는 쇠고리가 들어 있었다. 철커덕! 금소천은 가볍게 쇠고리를 당겼다. 순간 희미한 굉음이 일며 벽이 한쪽으로 밀려났다. 쿠르르르릉……. 금소천은 신광을 번뜩이며 주위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연후 벽이 밀리며 생긴 통로 속으로 주저 없이 들어섰다. 쿠르르릉……. 밀려났던 벽이 다시 나오며 밀실 안의 모든 것은 원래 모습을 회복 했다. 벽 속의 통로에는 지하를 향한 계단이 비스듬히 뻗어 있었다. 약 십여 장의 길이에 달했다. 금소천은 계단을 내려와 어느 한 석실에 도착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규모의 정사각형의 석실이었다. 특이한 것은 사방의 네 구석이었다. 좌우로 각기 네 개의 청동으로 된 동상들이 서 있었다. 불교의 천룡(天龍), 백호(白虎), 주작(朱 雀), 현무(玄武) 등 사대신상(四大神像)들이었다. 금소천은 한구석으로 다가갔다. 길이 약 석자 가량의 석관이 놓여 있었다. 금소천은 석관을 열었다. 석관 속은 텅 비어 있었다. 순간 그의 안색이 대변을 일으켰다. "앗! 처, 천왕검(天王劍)이 없다." 천왕검. 바로 제황삼군 중 첫째인 마군의 신위가 아닌가? 금소천이 대경실색하며 석관 안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의 눈동자에 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본능이 자리하고 있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파파파잣! 석관이 폭발을 일으키며 박살나 버렸다. 동시에 한 가닥 엄청난 경 력의 혈광이 벼락치듯 금소천의 가슴을 두드려 들었다. 쐐애액! 금소천은 대경하억 급히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암습은 번갯불 같았다. 파파파팍! 금소천은 정통으로 가슴을 거세게 강타당하고 말았다. 금소천은 답답한 신음성과 함께 뒤로 나가떨어지며 피화살을 뿜었 다. "우우욱!" 스슷. 한 괴영이 유령같이 금소천의 전면에 내려섰다. 전신에 검은 가죽옷을 걸친 괴인. 그는 바로 천수장공 명학초를 구출한 지중혈마 여백기였다. "으하하핫……! 진정 뜻밖이군. 천하의 금소천이 나의 가벼운 암습 에 맥없이 당하다니…… 으하하핫! 하긴 아무리 네놈 금소천이랴 한 들, 이런 경우에 당하지 않을 수는 없지." 지중혈마 여백기는 득의양양하억 앙천광소를 그치지 않았다. 금소천은 비틀거리며 신음성을 홀려내고 있었다. 그는 간신히 신형을 추스르며 물었다. "네, 네놈은?" 여백기는 비릿한 조소를 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흐흐…… 지중혈마 여백기라 한다. 오존문(五尊門)의 십대고수 중 한 명이지." "오존문!" 금소천은 대경하고 말았다. 공포의 전설, 오존. 그 이름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금소천은 으르렁거리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헌데…… 네, 네놈이 어떻게 이곳을?" 당연한 의문이었다. 이 석실은 성 내에서도 오직 자신만이 아는 비 밀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어디선가 한소리 음산한 대답이 있었다. 그러나 지중혈마 여백기의 그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나 때문이오. 금성주." 금소천이 소리난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순간 그는 거센 충겨에 온몸을 떨고 말았다. "그, 그대는 명학초……." 금소천에 의해 천심뢰에 갇혀 있던 천수장공 명학초가 그의 시야에 가득 잡히고 있었다. "그대가…… 어찌 이곳을?" 이번의 대답은 지중혈마 여백기가 대신했다. "으하하핫! 만금성은 모두 천수장공 명형이 설계하지 않았더냐? 즉. 만금성의 모든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으음……." 금소천은 짧은 신음성을 흘릴 뿐이었다. 여백기는 조소를 지우지 않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는 이미 네놈이 매일 이곳에 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왜냐 면 이곳엔 바로 제황삼군 중 첫째인 마군의 천왕검이 있기 때문이 지." 금소천은 안색을 창백하게 변화시켰다. "그럴 리가 없다. 비록 비록 명학초가 오든 것을 다 안다 해도…… 그의 신분으로는 감히 이곳 제심전(帝心殿)에 접근을 못하는데……." 이 역시 당연한 의문이었다. 삼엄한 경비로 가득한 제심전을 천수 장공 명학초 정도의 위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의문은 곧 풀렸다. 어디에선가 낭랑한 대소성이 터져 나오며 금소천의 의문을 풀어 주 었다. "하하하…… 그야 물론이지. 하지만 내가 있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질 않소이다. 성주!" 나타난 인물은 놀랍게도 그는 바로 낙남신검 감사립이었다. 일순 금소천의 두 눈 깊숙한 곳에서 자신만이 알 수 있는 이채가 반싹 스쳤다. 그러나 이내 그는 짐짓 대경성을 발했다. "가, 감당주 그대가……?" "흐흐…… 금성주. 놀라셨나?" 낙남신검 감사립은 희미한 비웃음 흘렸다. 이어 그는 설득이라도 하듯 한 자 한 자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나 감사립은 말이오, 녹림칠십이채 총표파자라는 신분 외에도 또 하나의 다른 신분이 있소." "다른…… 신분?" 금소천이 본능적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감사립은 고개를 끄덕이며 양손을 자신의 얼굴로 가져갔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실로 기괴무쌍한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찍! 찌익! 그의 얼굴 껍질이 소리를 내며 갈라졌다. 뿐만이 아니었다. 믿을 수 없게도 두 눈동자까지 쑥 빠져 버리고 있었다. 이 가공할 변화들은 짧은 시간에 벌어졌다. 이윽고 낙남신검 감사럽의 얼굴은 완전히 바뀌었다. 피부는 눈보다 더 희고 유리알같이 투명하며, 두 눈은 완전히 뻥 뚫려 있었다. 그리고 가공스럽게도 비어 버린 동공 깊숙한 곳에서 은 은한 녹광이 뿜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보기만 해도 심혼이 그 녹광 이 이는 뻥 뚫린 두 눈으로 빨려들 것만 같았다. "정식으로 인사를 드리지, 금성주. 본인은 바로 오존문의 다섯문주 중 한 명인 심령마존(心靈魔尊)이라 하오." 쾅! 천지가 무너지는 듯한 충격음이 터졌다. 순간 금소천은 눈빛을 번쩍이며 내심 외쳤다. '드디어 오존 중 한 명이 나타났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