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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천왕]서장 전설이 도래하다 - 57편 (57/79)

2026-09-22 08:16:38 조회 19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아무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목적지도 모 르는 채 이틀 밤을 꼬박 달리기란 사실상 짜증이 나는 일이기 때문이 었다. "설기봉으로 가고 있소." 궁사가 나직하게 대답했다. "설기봉? 그곳에는 난데없이 왜?" 일지겁천은 희미한 잔주름을 만들며 물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대신 엉뚱한 장소성 이 들려왔다. "우우우…… 우우……." 소리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고막에 통증이 느껴질 정도로 강한 내력이 심어져 있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공할 내력이었다. "으응……? 정말 엄청난 공력이로군." 일지겁천 구유명은 방금 자신이 던졌던 질문도 잊어버렸다. 그만큼 장소성의 크기가 심상치 않은 탓이었다, 우우우--! 장소성은 어느새 지척까지 다가와 있었다.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음산한 광소가 들려왔다, "흐흐흐흐! 천왕지맥이 둘이나 있다니, 그야말로 횡재로군." 소름이 오싹할 정도로 살기가 짙은 음성이었다 목소리와 함께 두 사람의 시야에 한 명의 흑의인이 보였다. 마치 미라처럼 전신에 흑포를 칭칭 감은 괴인이었다. 오직 눈동자만이 흑 포 사이로 섬뜩한 빛을 뿌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체나 가질 수 있는 죽음의 눈멎이었다, 그는 질풍 같은 속도로 궁사와 일지겁천의 면전에 내려섰다.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니다. 천왕지맥을 제외하고 당금 무림에 이런 기도를 가진 자가 있다니…….' 일지겁천 구유명의 눈동자에 순간적으로 경악이 스켯다. "본래는 혼자 남은 지옥혈도 궁사만 잡을 목적이었건만, 일지겁천 까지 제발로 걸어을 줄이야 생각도 못했어. 흐흐흐……." 흑포괴인은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천하의 십대 천왕을 자신의 노리개쯤으로 여기는 듯한 말투가 무척이나 신경에 거 슬렸다. 당연히 성질 급한 일지겁천의 대갈성이 터져 나왔다. "네놈은 누구냐?" 흑포괴인은 특유의 음산한 괴소를 다시 한 번 터뜨렸다. "나 말인가?" 그는 자신의 손가락으로 가슴을 가리키며 말을 늘였다. 여전히 광 오할 정도로 거만한 모습이었다. "흐흐흐, 나는 사망마존(死亡魔尊)이라 불리고 있지." "사망마존?" 일지겁천은 안색을 찡그렸다. 도저히 기억에 남지 않는 이름이기 때문이었다. 자칭 사망마존이라는 흑포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동시에…… 세상의 인간들이 말하는 오존 중의 하나이기도 하고 말이야." "오, 오존?" 일지겁천은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질렀다. 그도 어지간한 강심장의 소유자였지만, 도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악마의 후예라는 전설의 오존. 십대천왕의 유일한 적수이며, 천하를 피로 씻을 혈마들. 드디어 그 증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러나 일지겁천은 과연 천왕지맥의 소유자다웠다. 그는 곧 안색을 바꾸며 회미한 괴소를 터뜨렸다. "후후후, 이거 나야말로 행운이로군. 전설의 악마 놈을 가장 먼저 쳐죽이게 되었으니 말이야." 그의 목소리에는 섬뜩한 살기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사망마존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기이하게 변화했다. "나를…… 죽여?" 믈론 표정을 살필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의 목소리로도 상황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크흐흐…… 과연 천왕답게 광오한 말이로군. 하지만 방향이 틀렸 어. 죽는 것은 오존이 아니라, 십대천왕이니까." 사망마존은 호언장담을 하다시피 했다. 일지겁천의 검미가 다시 한 번 꿈틀거렸다. "그래? 좋다. 그렇다면 어디 통쾌하게 싸워 보도록 하자." 그는 사망마존을 향해 천천히 다가들었다. 그러나 사망마존은 두어 걸음을 물러서며 손을 내저었다. "아. 잠깐, 이런 불리한 상황에서 싸움을 시작할 수는 없지. 누가 뭐래도 당신들은 천왕지맥의 소유자들이니까." 일지겁천은 걸음을 멈추며 말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사망마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비릿한 조소를 머금으며 우수를 치켜들었다. 그것은 일종의 신호였다. 손이 을라가자마자 여기저기서 사람의 그 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점점 늘어나기 시자하더니, 어느덧 일 천에 육박하는 숫자가 되었다. 일지겁천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 "비겁한 놈! 오존의 이름이 아까울 정도로구나. 사망마존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일지겁천의 말 따위는 신경도 쓰 이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흐흐흐, 싸움이란 필연적으로 숭자가 있게 마련이지. 그리고 나는 패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다네." 일지겁천의 눈동자에 블길이 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손올 쓸 듯 주춤거리며 앞으로 나섰다. "이, 이 비겁한……." 그러나 그는 자신의 뜻을 이를 수가 없었다. 누군가 팔을 붙잡으며 만류하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던 지옥혈도 궁사였다. "왜 이러는 거야? 저런 놈은 당장 요절을 내버려야……." 일지겁천이 화를 쏟아내며 말했다. 그러나 궁사가 재빨리 다가오며 전음성을 날렸다. (아무 말 말고 내가 신호하면 당장 도주를 하시오. 방향은 아까 얘 기한 대로 설기봉 쪽이오.) 일지겁천은 눈을 동그랗게 만들었다.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그러나 이번에도 그는 말을 채 마칠 수가 없었다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제발 더 이상 말하지 마시오.) 궁사는 전음성이 끝남과 동시에 재빨리 몸을 날렸다. "자! 어서 피합시다!" 궁사는 유난히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일지겁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천하의 지옥혈도 궁사가 이처럼 어이없이 도주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한 탓이었다. '제길! 할 수 없지. 자기에게 무슨 생각이 있다고 했으니, 무언가 대책도 있겠지.' 그는 마지못한 표정으로 몸을 날렸다. 그러자 정작 어이가 없는 자는 사망마존이었다. "도주를 해? 천하의 십대천왕이?" 그는 일지겁천 이상으로 놀라고 있었다. 그러나 놀라고만 있을 틈이 없었다. 이미 일지겁천과 궁사의 신형 이 까마득히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다급하게 신형을 날리며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모두 놈들을 쫓아라!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일단의 폭풍 같은 시간이 흘러갔다. 두 명의 십대천왕과 한 명의 오존이 출현한 설기봉의 길목에는 태 풍의 눈 같은 고요함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고요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누군가의 신형이 고요함을 뚫고 모습을 드러냈다. "으음…… 아깝게도 한발 늦고 말았군."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안타까운 탄성을 흘렸다. 펄럭이는 도포에 부리부리한 호안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기세 역시 눈동자만큼이나 패도적이었다. 걸음 하나하나에 지축을 울려대는 기운이 서려 있었다. 적어도 단금 천하에 이런 정도의 극강한 괘기를 가슴에 담을 수 있 는 사람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바로 뇌천우사였다. 그는 일지겁천 구유명과 지옥혈도 궁사의 흔적을 쫓아 이곳까지 추 적을 해왔던 것이다, "간신히 종적을 잡았는데…… 하지만 근처의 혼적으로 미루어 이곳 을 떠난 지 그리 오래되지는 않은 것 같군."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예리하게 주위를 살폈다. 무리들이 사라 진 방향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한 줄기의 청아한 목소리가 그의 귓전을 울렸다. "시금은 한가하게 그들의 뒤를 쫓을 때가 아닙니다." 뇌천우사는 흠칫하며 경계의 빚을 띠었다. 그의 시야 속으로 일남일녀가 쏘아져 들어왔다. 하나같이 절색의 용모를 소유한 젊은이들. 그들은 바로 화예랑과 엽무검이었다. '심상치 않은 기도를 가진 자들이군. 특히 저 여인은 막강한 기도 를 내면 속에 감추고 있다.' 뇌천우사는 본능적으로 상대의 능력을 감지해냈다. "당신들은……?" 그는 말꼬리를 줄이며 물음을 대신했다. 그러자 두 사람 중 여인, 화예랑이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소녀는 천외천부를 이끌고 있는 화예랑이라 합니다. 무엇보다 이 렇듯 갑작스럽게 나타나 무례를 범한 점, 먼저 사과를 드리겠습니 다." 그녀의 음성은 천상의 그것처럼 부드러웠다. 그러나 지금 뇌천우사의 귀에는 천둥소리처럼 강렬한 것이기도 했 다. 그는 손을 훼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 별 말씀을…… 오히려 신비의 천외천부주를 몰라본 본도장이 실례를 범했소이다." 화예랑은 살포시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뇌천우사는 일시에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을 맛보았다. '전설의 내미지상이로군. 허어…… 살아 생전에 내미지상의 여인을 볼 수 있다니, 나도 운이 좀 있는 편이로구나.' 그러나 그는 곧 자신의 신색을 바로잡았다. "헌데, 부주께서 조금 전 본 도장에게 한 말씀의 진의는 무엇이오? 적어도 내가 본파의 적도들을 뒤쫓는 다급한 입장임을 모르시지는 않 을 텐데……." 그의 음성에는 은은한 질책의 뜻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자 화예랑도 정색을 하며 입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노진인의 입장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일지겁천 이나 지옥혈도를 쫓아 무당의 위엄을 살리는 것보다 몇 배나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그녀의 음성에는 일체의 가식이나 허위가 묻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뇌천우사를 더욱 곤경에 빠뜨렸다. "흐음……." 그가 난색을 짓고 있자, 화예랑은 좀더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어쩌면…… 무당의 존망이 위험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순간 뇌천우사의 눈동자가 대경의 빛을 발했다. "무엇이라구요? 우리 무당의 존망……?" 그의 눈빛은 곧 이글거리는 광망으로 뒤바뀌었다. 타인에 의해 문파의 존망이 거론된다는 것은 확실히 기분 좋은 일 이 아니었다. 아니, 마땅히 분노해야 할 일이다. 뇌천우사는 으르렁거리며 따져 물었다. 부주께서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실 수 있겠소?" 화예랑은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으음……." 뇌천우사는 다시 한 번 신음성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도 해본 적이 없는 이런 황당한 상황에 쉽사리 적응하기가 힘 들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겨 들었다. 이 순간에도 점점 멀어지고 있을 일지겁천과 지옥혈도가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그리 오랜 시간은 필요하지 않았다 "좋소 내 부주의 말을 믿어 보리다." 그러자 화예랑의 굳어졌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그녀는 밝은 음성으로 고운 입술을 나풀거렸다. "잘 생각하셨어요. 그럼, 소녀를 따라 오시지요." 백년의 금제를 깨고 나온 뇌천우사. 그는 지옥혈도 궁사와 일지겁천 구유명의 추적마저 포기하고는 화 예랑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뇌천우사와 화예랑의 만남. 이것은 곧 또 하나의 태풍이 몰아칠 전주곡이었다. 44장 오존의 계략에 빠지다 그윽한 단향 냄새 감도는 방안. 월색도 무색한 절세미녀 한 명이 창가에 다소곳이 서 있다. 신비한 푸른 벽안에 칠흑빛 흑발……. 바로 아사공주였다. 그녀의 희디흰 옥용은 웬지 수척했으며 긴 속눈썹은 짙은 그늘을 드리웠다. 수심에 잠긴 모습이 처연하기만 했다. "호오……." 문득 고운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착잡한 그녀의 심정 이 그대로 실린 짙은 수심의 탄식성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야율노격의 참패 소식과 그의 부상 소식이 아사 공주에게 크나큰 충격을 준 것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증명이라도 하듯, 그녀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창 밖을 응시하는 아사공주의 벽안은 슬픔에 가득 차 있다. '오라버니는 무사히 돌아가셨을까?' 그녀는 불현듯 야율노격이 보고 싶어졌다. 비록 중원 정복을 꿈꿔 온 천하의 효웅이나, 그녀에게는 더할 수없 이 자상하고 믿음직한 혈육이 아니던가. "흑……." 급기야 아사공주는 옥루(玉淚)를 주르르 홀리고 말았다. "보고 싶어요…… 오라버니." 그때였다. 잔잔히 물결치는 아사공주의 어깨에 살며시 와 땋는 손길이 있었 다. 아사공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금소천이었다. 봄날 햇살같이 따사롭고 포근한 눈멎이 아사공주의 시선 속에 들어 있었다. "소…… 천……." 금소천은 비 맞은 배꽃같이 애련한 그녀의 모습에 코끝이 찡함을 느꼈다. "아사…… 미안하오." "흑…… 소천……." 아사공주는 금소천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곳이야말로 그 녀가 마음껏 울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또한 그녀에게 위안과 평 온을 주는 아늑한 안식처이기도 했다. 금소천은 그녀의 비단결 같은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아사, 너무 심려하지 마오. 그대의 오빠 야율노격은 무사히 옥문 관을 넘었소." 아사공주는 반짝 고개를 들었다. 함초롬히 젖은 두 눈에 가득 기대감이 넘쳤다. "그…… 그 말이 정말인가요? 금소천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사공주는 그제야 옥용을 활짝 펴며 다시 한 번 그의 품에 안겨들 었다. "아…… 나의 소천, 정말 당신께 무어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 겠어요." 금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무엇을 말이오?" "소녀 때문에…… 오라버니를 그대로 돌아가게 해주신 것…… 아사 는 이미 알고 있어요." 금소천은 일순 호탕하게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아사. 야율노격은 대장부 중의 대장부였소. 그는 내가 그렇게 하지 않아도 중원을 벗어날 수 있는 인물이오." 문득 금소천의 눈길이 그윽하게 변했다. "게다가 정확히 말하면…… 그는 나의 처남이 아니겠소?" "소천……." 아사공주는 옥용을 잘 익은 사과처럼 상기시켰다. 진정 깨물어 주 고 싶을 만큼 아름답고 사랑스런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시선을 창 밖으로 옮겼다. 밖에는 어느새 햇솜 같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 눈이 내려요." 아사공주가 나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금소천 역시 내리는 함박눈을 기분 좋은 시선으로 응시했다. "하하…… 아사, 당신처럼 아름다운 눈이구려 " 아사공주는 가볍게 도리질쳤다. "아니에요. 당신처럼 포근한 눈이에요." "아사…… 당신은 진정……." 금소천은 그윽한 눈길로 아사공주를 바라보았다. "네? 진정 무엇인가요?" 아사공주의 푸른 벽안이 그를 향했다. 동그랗게 변한 그녀의 눈동 자는 귀여운 의문을 담고 있었다. 금소천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아름답소." 아사공주는 돌연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쁨을 맛보았다. 결코 아름답다는 말올 들어서가 아니었다. 그 말은 그녀가 자라면 서 무수히 들어온 찬사였기 때문이다. 정작 그녀를 기쁘게 만든 것은 금소천이었다. 그녀는 이 순칸처럼 가슴 뛰는 기쁨과 환회를 느낀 적이 일찍이 없 었다. 그것은 바로 사랑하는 이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사공주는 양볼이 달아오르는 수줍음에 다소곳하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말도 할 수 없었다.괜스레 애꿎은 옷자락만 고생을 했다. "어멋!"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신형이 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화들짝 놀랐을 때 그녀는 이미 금소천의 팔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귓불로 뜨거운 사내의 숨결이 부어졌다. "아사, 갑자기 그대를 품고 싶어졌소." 아사공주는 새빨간 흥당무가 되어 항의하듯 입을 열었다. "소천, 지금 대낮에…… 으음……." 그녀는 숨이 막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두툼하고 뜨거운 입술로 그녀의 작은 입술을 한치의 빈틈없이 막아 버렸다. 뜨겁고 긴 입맞춤이 시작되었다. 어찌나 열렬한 입맞춤인지 아사공 주는 도무지 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였다. 꿈속을 거닐 듯 몽룽한 상태에서 그녀는 그대로 침상 위에 뉘어졌 다. "아아…… 소천……." 하늘은 암울한 잿빛이었다. 그 속에서 순백의 백설이 쏟아진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팔랑 팔랑……. 주먹만한 함박눈이 온통 새하얗게 시야를 가리며 떨어져 내렸다. 그와 함께 여인의 신비를 감추었던 꺼풀이 눈송이처럼 나풀거리며 냇 겨지고 있었다. 그리고 백설처럼 고귀한 여체, 천지조화의 온갖 신비와 아름다움이 깃들인 아사공주의 나신이 드러났다. "아사……." 금소천은 서서히 홍분을 하며 옷을 벗기 시작했다. 곧 그 역시 아 무것도 걸치지 않은 나신이 되었다. 그는 눈처럼 횐 아사공주의 나신에 자신의 몸올 실었다. 터질 듯 짓눌린 풍만한 젖가슴이 그의 가슴에 짜릿한 충격을 주었다. "으음……." 그는 나직한 탄성을 터뜨리며 여인의 전신을 더듬어갔다. 젖가슴의 탄력과 붉은 유실의 감촉이 더욱 흥분을 고조시켰다. 금소천은 입을 벌렸다. 그의 입안으로 아사공주의 젖가슴이 밀물처 럼 빨려들었다. "아아……." 아사공주의 허리가 퉁겨지듯 일어섰다. 금소천은 뜨거운 혀를 놀리기 시작했다. 붉은 유실이 똑같이 붉은 혀 위에서 움직였다. 아사공주는 흔백이 일시에 빠져나가는 듯한 감정을 느꼈다. 금소천은 집요하게 공세를 계속했다. 그는 아사공주의 몸을 속속들 이 알고 있었다. 어느 순칸 그의 한 손이 젖가슴에서 하복부로 내려왔다. 단단하게 굳어진 자신의 하물을 느끼며 금소천은 허리를 들이밀었다. 순칸 그 는 단전에서 온몸이 빨려 들어가는 듯한 묘한 감각에 빠져들었다. "아흑!" 아사공주는 온몸에 벼락이 치는 듯한 전율을 맛보았다. 몸속에 들 어온 뜨거운 불기둥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헉…… 아사……." "아음…… 소천……." 어느새 남녀는 뜨거운 열풍에 휩쓸멀 조그만 나룻배가 되었다. 잔잔한 파도를 타기도 하고 거친 풍랑을 혜쳐나가기도 했다. 뜨겁게…… 그들은 지칠 줄 모르며 사랑의 행위를 이어갔다. 숨가쁜 호흡과 끈끈한 땀방울이 솟았다. 동심일체를 향한 끊임없는 질주가 계속되었다. 밖에는 두 남녀를 축복이라도 하듯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고 있었 다. * * * 동정호(洞庭湖). 눈이 내리고 있다. 눈 내리는 동정호에 무려 삼천의 무럼인들이 구름같이 운집해 들었 다. 바로 혈궁을 치러 가는 검문의 고수들이었다. 그들은 비장감이 감도는 얼굴로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 중에서도 가장 바쁜 이는 검마제 목철심이었다. 그는 동정호에 도착하자 동정호 일대의 모든 선박을 모조리 사들였 다. 이유는 간단했다. 군산(君山). 바로 군산으로 향하기 위함이었다. 이튿날 아침. 목철심은 전 검문의 고수들을 이끌고 배 위에 올랐다. 무려 이백 척의 크고 작은 선박들이 삼천 검문 고수들을 싣고 일제 히 군산으로 발진했다. 눈은 아침 내내 내리고 있었다. 검마제 목철심. 그는 한 척 거선의 선두에서 전면을 주시했다. "저곳이 바로 혈궁이 위치한 군산인가?" 그의 전면에 내리는 눈발 속으로 섬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혈궁이 있는 군산이었다. 검마제 목철심 곁에 있던 아우 귀변마검 목초평이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형님. 너무 성급하게 일을 저두르는 것은 아닐까요?" 그는 조금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이상하게 혈궁 쪽에선 너 무도 조용합니다."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혈궁 쪽에서는 무슨 일인지 그저 깊은 침묵만 지키고 있을 뿐이었 다. 검마제 목철심은 고개를 저으며 스산한 괴소를 날렸다. "흐흐…… 우리는 밤을 달려 이곳에 도착했다. 놈들은 설마 음리가 이토록 빨리 도착하고. 행동을 개시하리란 것을 꿈에도 생각지 못할 것이다." 그의 음성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그러나 목초평은 달랐다. 그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무언가 불안한 표정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한 소리 다급한 외침이 터졌다. "문주님! 물결이 이상합니다." 바로 검문 제 삼인자인 필살무정검 포대강이었다. 목철심과 목초평은 홈칫하여 포대강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주었 다. 그의 말대로 동정호 물결이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단순한 물결이 아니라 은은한 소용돌이였다. 슈…… 슈르르르. 소용돌이는 갈수록 더욱 회전을 빨리하기 시작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목초평은 문득 곁에 있던 한 명 선원의 목을 움켜쥐었다. "께엑!" 졸지에 목졸림을 당한 선원은 눈알을 하얗게 뒤집었다. 그러나 목초평은 사나운 얼굴로 다그쳐 물었다. "동정호에 원래 이런 현상이 일어났느냐?" 선원은 목초평의 무서운 기세에 공포의 전율을 일으켰다. "소, 소인도…… 이런 괴변은 처음 당하는 일입니다요." "으음……." 목초평은 신음성과 함께 선원을 내팽개쳤다. 그는 목철심 등과 함께 두 눈을 부릅뜨고 괴소용돌이의 변화를 지 켜보았다. 우우우……. 소용돌이는 갈수록 더 무섭게 요동을 일으켰다. 배 전체가 마치 해 일을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그러던 어느 순간이었다. 쾅! 파직--! 굉음과 함께 수십 척의 패들이 이리저리 쏠리기 시작했다. 그것들 은 곧 서로 충돌을 일으키며 박살이 나버렸다. "으악--!" 도저히 어찌할 여지가 없었다. 육지라면 도망이라도 가겠건만 불행 하게도 그들이 있는 곳은 물 위였다. 배에 타고 있던 검문 고수들이 비명과 함께 동정호 호수 속으로 빠 져들었다. 이어 그들은 차가운 동정호에서 선혈을 뿌리며 고기 밥이 되고 말았다.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쾅-- 콰르르릉! 거대한 철관들이 수면을 뚫고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솟구쳤다. "앗! 저, 저건 또 뭐냐?"